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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150화 (150/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50화

“…….”

여느 때처럼 아침 회진을 돌아다니던 안정완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후우…….”

왼손의 검지와 중지만으로 물구나무를 선 채 흔들림 없이 중심을 유지하는 이세훈.

그 자세만 해도 유지하기가 어려울 텐데 거기다 양 발바닥에 각각 화속성마력과 암속성마력을 동그랗게 방출해서 일정한 속도로 회전시킨다.

‘몸의 중심. 그리고 마력의 제어까지 완벽하다 이건가.’

크게 다칠 때마다 기량이 떨어지기는커녕 무서운 속도로 올라가는 이세훈.

흠잡을 곳 없는 그 모습에 안정완이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퇴원하게.”

탁!

잽싸게 자세를 바로 한 이세훈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안정완에게 고개를 꾸벅였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아래에서 류 학과장님이 기다리고 계시니 얼른 짐 챙겨서 내려가게나.”

“예.”

“아. 그리고 이것도 챙겨가서 살펴보고.”

안정완이 건넨 얇은 서류 파일을 받은 이세훈은 곧장 그것을 펼쳐보았다.

[신성력과 영약의 상관관계 분석]

신성력을 사용한 영약 제조와 효과의 변화에 대한 수업개요.

수업 중에 사용할 방법들과 재료로 쓰이는 영약들이 자세하게 적혀 있었는데 그 내용을 살피던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전에 임시 조교로 도와줬으면 한다던 수업인가요?”

“맞네. 원래는 다른 수업이었는데 자네가 그동안 바빠서 미루다 보니 그쪽으로 바뀌었지.”

“흐음…….”

안정완의 이야기에 이세훈이 다시금 서류를 살폈다.

완등자 중 한 명인 순례자 칼 안데르센이 발견하고 그가 만들어낸 순례교와 함께 전 세계에 널리 퍼진 신성력.

마력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매우 특수한 힘이었는데 회귀 전에 이세훈도 여러 방면으로 많이 접했던 힘이었다.

‘정토도 슬슬 자리 잡은 것 같고…… 나쁘진 않겠네.’

안 그래도 이번 일로 바벨과 순례교가 동맹을 맺는다고 하니 그전에 신성력을 한번 살펴봐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결정을 내린 이세훈이 서류 파일을 아공간 포켓 안에 챙겨 넣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서 자세히 살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수업은 다음 주니까 그때까지 편하게 생각해 보게나.”

용건을 마친 안정완이 먼저 밖으로 나갔고, 짐을 모두 챙긴 이세훈도 아래로 내려갔다.

로비로 이어지는 복도의 끄트머리.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류은하의 모습에 이세훈이 곧장 곁으로 다가갔다.

“좋은 아침이네요. 학과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인사를 받아준 류은하가 그대로 이세훈의 몸을 바라보았다.

옷 너머까지 꿰뚫어 볼 기세로 몸을 살피는 류은하. 그 걱정 가득한 모습에 이세훈이 슬쩍 웃어 보였다.

“이제 아픈 곳 없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안 교수님도 문제없다고 하셨고요.”

“……알겠습니다.”

직접 보기에도 문제없는지 어느 정도 걱정을 덜어낸 류은하는 그대로 고개를 살짝 돌려 로비 쪽을 슬쩍 바라보았다.

“조금 많이 모였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많이 모이든 적게 모이든 다 거기서 거기니까요.”

자신만만한 이세훈의 모습에 류은하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시죠.”

류은하와 함께 걸음을 옮긴 이세훈이 탁 트인 로비로 나왔고, 발 디딜 틈도 없이 모여 있는 기자들이 그대로 이세훈을 맞이했다.

찰칵찰칵!

밖으로 나오기 무섭게 사방에서 터지는 카메라 소리.

그동안 난제로 여겨졌던 검기 양산화에 성공한 천재 대장장이.

그리고 만마전의 테러에 재빠르게 대응하여 피해를 막아내는 데 성공한 영웅.

걸어 다니는 기삿거리나 다름없는 이세훈의 등장에 로비가 순식간에 떠들썩하게 변했고, 그 광경에 이세훈이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야. 옛날 생각나네.’

회귀 전에 현상수배가 취소되고 영웅 협회에 쌍욕을 퍼부었던 기자회견이 딱 이 정도였던 것 같다.

새삼 자신이 얼마나 화제의 인물이 되었는지 확인한 이세훈이 그대로 고개를 돌려 류은하에게 시선을 보냈다.

“앞에 허가받으셨던 기자분들만 앞으로 나와주십시오.”

류은하의 부름에 기자들이 재빠르게 마이크를 든 채 모여들었고 그 앞에 선 이세훈이 의기양양하게 입을 열었다.

“질문 받겠습니다.”

“이번에 양산화에 성공한 검기가 마이어스 가문의 검기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한 질문이었기에 이세훈이 담담하게 기자들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유사하게 보일 수는 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완전히 다른 검기입니다. 제작 중에 마이어스 가문의 검기를 조금 참고하기는 했습니다.”

“마이어스 가문과 독점 형태로 제작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사실입니까?”

“아직은 논의 중이기에 확답 드리기는 어렵습니다만 양산형 검기 무구는 다른 무엇보다도 품질이 가장 중요하기에 차분히 진행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리아 마이어스 양과 정략결혼은 사실…….”

“헛소문입니다.”

연달아 쏟아지는 질문들에 이세훈이 그럭저럭 쓸 만한 것들만 골라서 대답했고, 그 모습을 본 기자들이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이면 긴장할 법도 한데 능숙하네.’

‘이전에 검기 양산화의 밑밥을 던져서 홍보한 것도 그렇고 뭔가 아는 친구야.’

평소에 언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 같기에 이쪽으로 완전히 문외한인가 했는데 이제 보니 써먹을 때는 확실하게 써먹는 영악한 청년이었다.

기자들이 내심 감탄하고 있던 그때. 그동안 가만히 기회를 노리고 있던 기자 한 명이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바벨에서 이번 테러 사건을 이세훈 생도를 차세대 유망주로 밀어주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자의 질문에 로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주변에 몰려 있는 기자들이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바벨의 안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다니. 그 분위기에 질문을 던진 기자가 재차 말을 하려던 순간.

쿠구궁─

이세훈의 옆에 서 있던 류은하의 몸에서 터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위압감.

전신이 짓눌리는 듯한 그 압박감에 막 입을 열려던 기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고, 류은하가 머리카락 끝을 주홍빛으로 불태우며 입을 열었다.

“당신…….”

“학과장님.”

이세훈의 부름에 기자를 쫓아내려 했던 류은하가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다리고 있었다는 느낌. 그 모습에 무언가 깨달은 류은하가 마력을 거둬들였다.

어느 정도 상태가 정리된 것을 확인한 이세훈은 질문을 던졌던 기자를 바라보았다.

“어디 소속이십니까?”

“……치, 칠성일보에서 나왔습니다.”

새파랗게 질린 채 대답하는 기자의 모습에 이세훈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이면 확실히 달갑지 않을 수도 있겠지.’

이번에 바벨이 UD그룹과 순례교와 협력을 맺으면서 세 명의 완등자가 협력관계를 갖추게 되었고, 자연스레 그들이 배후에 있는 세력들이 독보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그러니 성화공 리 켄세를 배후에 두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자신의 존재가 거슬릴 수밖에 없으리라.

‘게다가 대장장이기도 하고 말이야.’

일종의 견제라는 것을 알아차린 이세훈이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뭘 물어보고 싶은지는 알겠습니다. 솔직히 올해 막 입학한 신입생한테 그런 질문을 하는 게 좀 꼴불견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어쨌든 대답해드리죠.”

이세훈의 이야기에 바짝 긴장하고 있던 기자들이 두 눈을 반짝였다.

바벨의 내부라서 눈치가 보였을 뿐. 그들 역시 저 소문에 대해서는 궁금했었기 때문이다.

그런 기자들의 모습에 이세훈이 잠깐 뜸을 들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천재입니다.”

“……예?”

“그것도 그냥 천재가 아니고 완등자이신 리 켄세님에 버금갈 만큼 불세출의 천재나 다름없죠.”

“…….”

상상한 것과 전혀 다른 내용에 기자들이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이세훈은 자신만만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서 그런 쓸데없는 소문이 따라붙는 것도 이해합니다. 원래 천재라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을 싸잡아서 부르는 거니까요.”

“…….”

“그런데 여기서 확실하게 말씀드리는 건데, 겨우 이 정도로 사기극이네 마네 떠들어대다가는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겁니다. 왜냐.”

자신을 바라보는 기자와 카메라를 천천히 훑어본 이세훈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앞으로 만들어낼 물건들은 이것보다 더 엄청날 테니까요.”

겨우 이 정도로 호들갑을 떨어대면 나중에는 감당도 안 될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한 이세훈이 침묵에 휩싸인 로비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었다.

“그래도 못 믿겠으면 망치 들고 찾아오세요. 얼마든지 상대해 줄 테니까. 아, 물론 검기 양산화에 성공하신 분들만 상대하겠습니다. 급수는 맞아야 하니까요.”

전 세계의 장인들에게 던져지는 선전포고에 기자들이 입을 떡 벌렸고, 이세훈이 태연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 질문은 이 정도면 된 것 같고…… 다음 질문 있습니까?”

“…….”

“없나요? 그럼 뭐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걸로 끝이라는 듯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로비 밖으로 걸어가는 이세훈.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기자들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따라붙었다.

“자, 잠깐만요!”

“아직 질문이……!”

특종의 냄새를 맡고 끈질기게 달라붙는 기자들. 차를 타도 쫓아올 듯한 그 분위기에 이세훈이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류은하를 바라보았다.

“학과장님. 둘이서 가죠.”

“알겠습니다.”

이세훈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빠르게 알아차린 류은하가 곁으로 다가가 가볍게 안아 들었다.

그리고 류은하의 머리카락 끝이 주홍빛으로 타오른 순간.

투웅!

바닥을 박참과 동시에 두 사람이 기자들을 따돌리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 * *

보르시파의 본청 옥상.

몇 번의 도약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한 류은하는 품에 안고 있던 이세훈을 내려다 주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뇨, 뭘. 고생은 학과장님이 하셨죠.”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대충 정리한 이세훈은 기지개를 피면서 옥상의 난간 너머의 도심을 내려다보았다.

‘거의 다 복구됐네.’

얼마 전에 대규모 테러가 발생한 구역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깔끔한 모습.

자신이 얼마나 깔끔하게 반격했는지 새삼 깨달은 이세훈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건 몰라도 바벨 안은 당분간 깔끔해지겠지.’

주시자의 벌레 같은 생존력을 생각하면 내통자들이 조금씩 남아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번처럼 사건을 일으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할 것이다.

세력이 줄어든 것도 있고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정체가 알려질까 봐 자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단 만마전이랑 주시자는 확실하게 갈라둬야 해.’

주시자는 만마전과 협력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서로 이해관계일 뿐.

자신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재빠르게 발을 빼기 때문에 이쪽을 노려서 협력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회귀 전처럼 주시자랑 본격적으로 손을 잡았다간 마신이 더 빨리 나올 수도 있으니까.’

한순간에 변하지는 않겠지만, 조금씩 자신이 알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상황이 변해가기 시작할 것이다.

모든 변수를 제어해서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겠지만 내부를 분열시키는 원인, 혹은 골치 아픈 녀석들을 미리 제거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리라.

‘앞으로 더 바빠지겠구만.’

쉴 틈이 없는 상황에 이세훈이 쓴웃음을 짓고 있을 때.

“이세훈 생도.”

곁으로 다가온 류은하가 조심스레 물었다.

“방금 인터뷰는 내리게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예?”

“제 경험상 그렇게 솔직하게 말하고 나면 귀찮은 일들이 벌어졌던지라…….”

걱정스럽다는 듯 이야기하는 류은하의 모습에 이세훈이 슬쩍 웃었다.

“괜찮을 거예요. 그리고 그쪽이 제가 노리는 거고요.”

만약 오늘도 적당히 겸손하게 이야기하며 실력을 숨기는 식으로 이야기했다면 오히려 경계를 샀을 가능성이 높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수많은 장인이 난제로 여겨왔던 검기 양산화에 성공한 상황. 그런데도 운이 좋다거나 우연이라고 둘러대 봐야 어떻게 보이겠는가.

‘속이 시커먼 녀석으로밖에 안 보이겠지.’

뭔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상대방도 여러 상황을 대비해서 더욱 철저하게 준비하기 마련.

그렇기에 이세훈은 어설프게 숨기기보다 오히려 자신감 넘치고 거만한 생도의 모습을 당당하게 드러낸 것이다.

‘똑같이 경계 받아도 이쪽이 좀 더 만만하게 여겨질 테니.’

그리고 그 사소한 빈틈이 이번 사건처럼 급소를 찌를 재료가 되리라. 생각을 정리한 이세훈은 문득 한 가지가 떠올라 류은하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말할 때 어색하지는 않았죠? 나름대로 잘 연기한 것 같은데.”

최대한 회귀 전의 삼견 같은 느낌으로 말하긴 했는데 이래 봐야 연기라는 걸 들키면 말짱 꽝이다.

이세훈의 물음에 류은하가 묘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게 연기하시는 거였습니까?”

“예? 그러면 뭐라고…….”

“그냥 말씀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연기였다는 게 더 놀라운지 눈을 살짝 크게 뜨고 바라보는 류은하. 그 모습에 이세훈은 안심하면서도 한편으로 묘한 기분을 느꼈다.

‘내가 그렇게 싸가지 없어 보이나……?’

평소에 말을 조금 까칠하게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삼견 같은 망나니 수준은 아니지 않은가.

이세훈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부정하고 있던 그때.

우웅

류은하의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한 류은하가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회의실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아. 그럼 저희도 내려가죠.”

잡다한 생각을 떨쳐낸 이세훈은 곧장 류은하와 함께 옥상에서 본청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이번에 제련학부에 새롭게 취임한 지도 교수. 학부 생활은 물론 김인철을 통해 운영하고 있던 중소공방 연합인 마이스터의 방향성 등 의논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산도 받아내야 하고 말이지.’

어떻게 구워삶는 것이 좋을까.

머릿속으로 여러 반응을 생각하며 이세훈이 류은하와 함께 회의실의 안으로 들어섰고.

“늦어.”

젓가락을 비녀처럼 꽂고 헐렁한 작업복을 걸친 노인, 철물점의 주인이자 제련학부의 교수였었던 헬레나가 두 사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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