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48화
[내일 놀러올래?] - 이세훈
이세훈에게 문자를 받은 순간. 에리카는 곧장 부하를 불러서 준비해둔 병문안 선물을 사오게 시켰다.
“내일까지 이거 전부 준비해 와.”
“전부…… 말씀입니까……?”
종이에 빼곡하게 적혀 있는 선물 목록.
병문안 선물로 흔히 쓰이는 제이슨 과일 세트부터 시작해서 외부에서 구하기 힘든 주술용 재료들까지 다양했는데, 뭘 준비할지 몰라서 다 챙겨가는 느낌이었다.
그 리스트를 모조리 살핀 금발로 염색한 청년, 세이츠가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가씨. 이 정도면 상대가 부담스러워할 수도…….”
“심심할 테니 샌드백도 필요하겠네.”
“바로 사 오겠습니다.”
이세훈에게 두들겨 맞았던 기억을 떠올린 세이츠가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갔고, 다음 날 산더미 같은 선물을 아공간 포켓에 집어넣은 에리카가 병동에 도착했다.
‘오늘 병문안으로 어떻게든 관계를 개선해야 해.’
그동안 곁에서 지켜본 결과 이세훈과 심리적으로 가깝게 여기는 사람은 류은하 학과장. 그다음으로 염성하와 루이제 발렌트였다.
그 이외에는 그리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비슷했기에 신경 쓰지 않았는데 최근 제이크 마이어스가 조금씩 치고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동성인 데다 같이 마광수 교수의 수업을 듣는 점. 그리고 그 물렁한 성격이 편하게 작용한 거겠지.’
아직까지는 위협이 될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마이어스 가문에서 진행 중인 검기 양산화 프로젝트 때문에 앞으로 더 자주 접촉하게 될 터.
지금보다 더 가까워지기 전에 쐐기를 박기로 결심한 에리카가 두 눈을 빛내며 병실에 도착했고.
“아. 왔냐. 이거 한번 봐봐.”
이세훈의 손 위에 놓인 검은 말뚝을 보고 몸이 굳어졌다.
“…….”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는 굵기에 20cm 정도 되는 길이의 말뚝. 겉에는 검은 안개 같은 것이 희미하게 흘러나왔는데 에리카가 알고 있는 주술과 매우 비슷했다.
“흑무인…….”
이노우에 가문의 비전주술이자 렌의 주특기라고 할 수 있는 저주. 그것이 이세훈의 손에 펼쳐져 있는 모습에 에리카가 재빠르게 앞으로 다가갔다.
“이거…… 어떻게 만든 거야?”
혹시 자신이 모르는 사이 흑무인을 전수받은 것일까.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말뚝을 바라보는 에리카의 모습에 이세훈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런 기능을 가진 장비를 만들려고 했는데 약간 애매하더라고. 그래서 뭔가 비슷한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주술로 딱 떠올라서 그대로 만들어봤어.”
“……그게 다야?”
“그렇지? 아. 이전에 네 오빠한테 당했던 저주를 좀 참고하긴 했어. 그게 딱 맞더라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이세훈. 그 모습에 에리카가 다시 시선을 돌려 손 위에 만들어진 검은 말뚝을 다시 보았다.
‘중심부의 씨앗을 매개체로 만든 주술. 구조 자체는 저주라기보다는 무구에 가까워.’
본래 흑무인은 대상과 술자를 연결시켜서 주술을 쉽게 걸 수 있게 만드는 형태지만, 이세훈이 만들어낸 말뚝은 그와 조금 달랐다.
술자가 아니라 매개체로 쓰인 씨앗과 연결시키고 그 관계를 조율하는 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씨앗에 흡수되는 암속성마력의 양을 조절하는 형태. 마음만 먹는다면 모든 마력을 흡수해서 폐인으로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조절하려는 의도가 강해.’
흑무인에서 필요한 요소만 가져온 다음 매개체로 쓰이는 씨앗과 적절하게 조합한 주술.
대장장이로서의 관점이 뒤섞여 있기에 어떤 점에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형태였는데 놀라운 것은 그런데도 완성도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술에도 어느 정도 재능이 있는 건 알았지만…….’
이건 자신이 상정하던 것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더 높다. 볼수록 여러 생각이 들게 하는 주술의 구조에 에리카가 계속해서 말없이 바라보았고.
[대상 ‘이노우에 에리카’의 평가가 높아졌습니다.]
[대상 ‘이노우에 에리카’의 인연석이 생성됩니다.]
이세훈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흐음. 잘 만들어졌나 보네.’
알기 쉬운 채점 결과에 이세훈이 슬쩍 웃으면서 눈을 떼지 못하는 에리카를 바라보았다.
“뭔가 개선할 점은 보여?”
“음…… 상대를 죽일 생각은 없는 거지?”
“없어. 암속성마력을 이쪽으로 유도해서 다른 속성마력이랑 안 섞이게 만드는 게 목적이야.”
“그러면…….”
잠시 곰곰이 생각에 잠기던 에리카가 오른손바닥을 보란 듯이 펼쳐 보였다.
스스슥
손바닥에서부터 올올이 풀어지듯이 흘러나오는 은빛 실. 그것들이 하나둘씩 허공에서 교차하더니 특수한 패턴의 문양을 그려냈다.
“흡수량을 조절하면서 다른 속성마력을 배제할 수 있는 술식이야. 이걸 잘 적용시키면 지금보다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을 거야.”
“흐음. 잠깐만 그대로 있어 봐.”
에리카가 만들어낸 술식을 바라보던 이세훈이 곧장 새롭게 습득한 스킬인 ‘흑무사’를 사용했다.
우웅
검은 안개로 만들어진 듯한 가느다란 실. 그것을 움직인 이세훈은 곧장 에리카가 만들어놓은 술식에다가 연결시켰다.
스스슥
술식의 문양을 그대로 덧그리듯이 달라붙는 흑무사. 그대로 모든 패턴을 따라 하는 데 성공한 이세훈은 고스란히 그것을 말뚝에 연결시켰다.
우우웅─!
에리카가 보여준 술식이 자연스럽게 말뚝의 안쪽에 녹아들더니 잠시 후 겉에 똑같은 패턴이 자연스럽게 돋아난다.
본래 그런 형태였던 것처럼 깔끔하게 술식을 이어붙인 이세훈이 다시금 에리카에게 보여줬다.
“어때?”
“……그 정도면 될 것 같아.”
가능하다면 뭐라고 더 조언을 하고 싶었지만 기능을 추가하는 것 이외에는 굳이 손볼 곳이 없었다.
그 놀라운 완성도에 에리카가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때. 이세훈이 곧장 침대에서 일어섰다.
“좋아. 그럼 잠깐 나갔다 올게.”
“어디가?”
“옆 병실. 금방 다녀올 테니까 배고프면 과자라도 먹으면서 기다리고 있어.”
뭐라고 더 물어보기도 전에 이세훈이 재빠르게 병실 밖으로 나갔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에리카가 고개를 돌려 병실을 둘러보며 주변 냄새를 맡았다.
‘노폐물이 탄 냄새와 영약 냄새. 그리고 아까 움직임을 보니 부상도 없어 보였어.’
어디선가 영약을 얻어서 그새 몸을 회복시킨 것일까. 몇 달간 요양이 필요한 중상을 단숨에 회복한 이세훈의 모습에 에리카가 생각에 잠겼다.
‘주술의 적성을 A에서 A+로 상향조정. 그리고 육체에 대한 이해도도 이 정도라면 A 이상으로 봐도 돼.’
머릿속에서 다시금 수정되는 평가. 그것을 검토하던 에리카가 침대에 걸터앉으며 중얼거렸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 * *
[대상 ‘이노우에 에리카’의 평가가 높아졌습니다.]
[인연석이 이미 생성되어 있습니다. 숙성도가 증가됩니다.]
방을 나서기 무섭게 떠오르는 알림창. 하루 만에 수직 상승하는 에리카의 평가에 이세훈이 씩 웃었다.
‘이러다가 얘가 제일 먼저 3레벨 되겠네.’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알림창을 없앤 이세훈은 어제 습득했던 흑무사의 정보를 다시 살폈다.
[흑무사黑霧絲] 『B+』
저주의 안개를 압축시켜 실처럼 만들어낸 결계.
대상을 침식하여 그 성질을 모방하는데 특화되었으며 사용자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대상을 연결시킬 수 있다.
술식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을 경우 체내에 잠복하여 조건이 충족될 때 다시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침식된 대상에 따라 흑령사의 성질이 변화됩니다.
*흑령사를 통해 대상을 서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제어권을 강탈 당할 경우 자동으로 결계가 붕괴됩니다.
*술식의 근원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을 경우 마력을 공급하여 연결을 다시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흑령사에 흑무인의 연결기능이 반영된 흑무사.
원본과 비교하면 은밀함이나 유지력은 떨어졌지만 대신 흑령사가 가지고 있던 범용성이 대폭 강화되어 이전보다 더욱 다양하게 쓸 수 있게 되었다.
관계자인 에리카조차 인정할 만큼 뛰어난 완성도. 그 기능에 이세훈도 만족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의문이 생겨났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잘 만들어졌단 말이지…….’
교류회 때 손에 박힌 저주를 틈틈이 살펴보기는 했었지만 그래 봐야 겉핥기. 이렇게 요령 좋게 장점만 쏙쏙 빼 올 만큼 파악했다고 보긴 어려웠다.
뭔가 따로 이유가 있었나 싶어 이세훈이 생각을 곱씹고 있을 때. 불현듯 한 가지가 떠올랐다.
‘아. 혹시 그때 기억을 훔쳐본 것 때문인가?’
교류회 날. 이세훈은 자신의 기억을 훔쳐보려고 했던 렌의 수작을 이용해서 역으로 과거를 훔쳐본 적이 있었다.
어쩌면 그때 저주를 이용하면서 자연스럽게 구조에 대해서 이해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리라.
‘그것만으로 따라 할 수 있을 만큼 주술에 재능이 생겼단 건가…….’
회귀 전에는 몰랐던,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없었던 재능.
이전에는 그 원인이 무엇일지 짐작도 가지 않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이세훈은 한 가지 짐작 가는 것이 생겼다.
‘영혼이겠지.’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회귀하면서 영혼이 변질되었고, 그 결과 이전에 없던 재능이 생겨난 것이 분명하다.
물론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게 가장 유력하리라.
‘재능이 생긴 것까지는 좋지만…… 마혈기에 제약이 걸린 건 좀 그렇단 말이야.’
만마전과의 전쟁 말기에 이세훈이 꾸역꾸역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이들에게 보호받은 덕분도 있지만 마혈기, 거기서 만들어지는 혼원무구의 활약도 컸다.
그런데 거기에 제약이 걸려 버렸으니 지금 당장은 안정성이 대폭 줄어든 것이다.
‘영혼을 회귀 전으로 되돌린다면 해결되겠지만…… 그러면 새로 생긴 재능들이 사라지겠지.’
처음부터 없었으면 모를까 이렇게 잘 써먹고 있는 재료들을 잠자코 없애버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
‘영연신마법을 뜯어고친다.’
대장장이 이세훈의 근원이나 다름없는 기술.
그것을 뜯어고친다는 생각에 이세훈이 잠시 고민해 보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짜 기술 한번 더럽게 만들어놨네…….’
사람 몸을 여러 갈래로 쪼개고 영혼이라는 미심쩍은 힘을 연마하는 기술답게 구조가 복잡함을 넘어서 해괴망측한 암호나 다름이 없었다.
특히 기술을 사용하는 것과 근본을 뜯어고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기에 쉽사리 개선 방향이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틈틈이 생각해 보고 정 안되겠다 싶으면…… 원작자를 찾아야겠구만.’
이 세상에서 영연신마법을 뜯어고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단 한 명, 자신의 사부인 혈공밖에 없다.
나중에 그쪽으로도 한번 알아보기로 하며 이세훈이 어느새 도착한 염성하의 병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야 염성하. 들어간다.”
말리는 소리가 없었기에 문을 열고 들어서자 병실에 우두커니 서 있는 염성하의 모습이 바라보였다.
“…….”
뭔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 그 모습에 이세훈이 안으로 들어가며 물었다.
“뭐 하고 있어?”
이세훈의 물음에 염성하가 슬쩍 바라보더니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그냥 서 있다.”
“왜?”
거듭되는 물음에 염성하가 살짝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툭 내뱉듯이 대답했다.
“한 번만 더 병실에서 운동하면 온몸을 결박해서 집중치료실에 집어넣는다더군. 그래서 그냥 서 있는 중이다.”
“…….”
누워서 쉬라고 운동을 금지시켰더니 가만히 서 있다니.
심지어 자세히 보니 그냥 서 있는 것도 아니고 엄지로만 바닥을 디디고 서 있었다.
‘이런 건 또 광견이랑 똑같네.’
회귀 전과 차이가 없는 염성하의 모습에 이세훈이 쓴웃음을 짓고 있을 때.
“……설마 다 나은 건가?”
이세훈의 몸을 살펴보던 염성하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깨진 유리창이 바스락거리며 걸어 다니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갓 제련을 마친 쇳덩어리로 변해 버린 것이다.
“그렇지 뭐. 그리 큰 부상도 아니었으니까.”
“…….”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이세훈의 모습에 염성하가 말없이 바라보았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하기 싫은 듯한 모습. 회귀 전에도 자주 본 그 모습에 이세훈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금방 나을 수 있는 방법. 가르쳐줄까?”
이세훈이 먼저 제안하자 염성하의 눈매가 꿈틀거리더니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가는?”
“당장 필요한 건 없으니 외상으로.”
“…….”
이제야 대금을 좀 정산하는가 싶었더니 또다시 쌓인다니.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하루라도 빨리 병동에서 벗어나 지난 전투에서 얻은 깨달음을 습득하는 게 중요하다.
‘거래인데 굳이 사양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결정을 내린 염성하는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 방법이 뭐지?”
“이거야. 작동 원리가 뭐냐면…….”
그림자 나무의 씨앗으로 만든 저주를 보여준 이세훈은 계속되는 부상의 원인, 그리고 해결법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염성하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잠재된 스킬로 인한 폭주…… 확실히 말이 되는군.”
“스킬이 언제 습득될지 모르니까 우선은 이걸로 암속성마력을 억누르면서 지내. 그사이에 부상이 완치되면 자연스럽게 이전으로 돌아갈 거야.”
“알았다. 그럼 해라.”
얼른 저주를 꽂아 넣으라고 망설임 없이 다가오는 염성하. 그 모습에 이세훈이 저주를 꽂아 넣기 적합한 장소를 찾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놈 이거 왜 이렇게 고분고분하지?’
여기 오기 전에 에리카에게 확인을 받긴 했지만 염성하가 보기에는 전문가도 아닌 제련학부 1학년짜리가 만든 저주에 불과하다.
물론 학과수석인 데다 여러 가지로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좀 불안할 수도 있지 않은가.
‘광견이었으면 몇 번이나 확인하고 서약까지 받은 다음에야 고민하고 받아들였을 텐데…….’
회귀 전과 사뭇 다른 태도에 이세훈은 잠시 고민하다가 염성하에게 물었다.
“근데 너 안 무섭냐?”
“갑자기 무슨 소리냐.”
“내가 말하긴 뭐하지만 주술 쪽 전문가도 아니잖아. 뭔가 좀 불안하거나 그런 거 없어?”
이세훈의 물음에 염성하가 어이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실없는 소리를 하는군.”
“뭐?”
“문제가 있는 물건을 속여서 판다면 그건 사기다.”
담담하게 이야기하던 염성하가 힐끗 쳐다보더니 이내 껄끄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네놈이라면 바가지를 씌우더라도 사기는 안 치겠지. 그것뿐이다.”
그게 다라는 듯 툭 내뱉고는 시선을 돌리는 염성하. 그 이야기에 이세훈이 멍한 눈으로 바라보다 이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놈이…… 나를 믿는다고……?’
물론 전적으로 믿겠다는 신뢰감 가득한 말은 아니었지만, 이것도 회귀 전이라면 인연레벨이 Lv.4일 때나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그런데 그게 고작 인연레벨이 Lv.2 일 때 듣다니. 류은하와 비슷한 상황에 이세훈이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이쪽도 관계가 변해서인가? 그래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놈이 어떻게…….’
혹시 머리도 다쳤나 싶어 이세훈이 유심히 살피자 염성하가 눈매를 찌푸렸다.
“언제까지 쳐다만 보고 있을 거냐.”
“아, 그래. 알았어.”
이쪽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한 이세훈은 명치 부근에 저주를 겨눴다.
급소에 가까울수록 그림자 나무의 씨앗이 활성화되기 때문에 이쪽이 가장 효율 좋게 암속성마력을 흡수할 수 있다.
“처음에 진짜 말뚝에 찔리는 것처럼 아플 테니까 너무 놀라지 말고.”
“…….”
주삿바늘이 따끔하다는 듯이 말하는 이세훈의 모습에 염성하가 잠시 미친놈처럼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라.”
“좋아. 그럼…….”
잠시 숨을 고른 이세훈은 재빠르게 염성하의 명치에 저주를 찔러 넣었다.
“큭…… 쿨럭!”
가슴에 저주가 박히기 무섭게 비틀거리며 기침을 토해내는 염성하.
겉보기에는 뭔가 문제가 생긴 것처럼 보이겠지만, 흑무사를 통해 연결된 이세훈은 염성하의 몸 상태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잘 분리되고 있네.’
그동안 무분별하게 섞여 있던 두 속성마력이 저주로 인해 강제로 분리되면서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이 정도라면 이전처럼 갑자기 상처가 터지거나 피를 토하는 일은 없어지리라.
‘근데 이러고 있으니까 내가 이놈을 찌른 거 같네.’
저주가 다 스며들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거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조금 살벌하게 보이지 않을까.
그렇게 실없는 생각을 하며 이세훈이 피식 웃던 그때.
똑똑
“실례하겠습니다. 영웅 협회의 특무과에서 나온 하선우 조사관이라고…….”
가벼운 노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온 검은 정장의 청년, 하선우 조사관이 병실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바라보더니 그대로 표정이 굳어졌다.
“아니. 이건 그런 게 아니라…….”
그 모습에 뭔가 오해를 샀음을 깨달은 이세훈이 조사관에게 설명하려던 찰나.
“커헉!”
염성하의 입에서 터져 나온 거무죽죽한 핏물이 이세훈의 얼굴을 뒤덮었다.
가슴을 찌르고 있는 검은 말뚝과 피투성이가 된 얼굴. 더 이상 말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이세훈이 잠시 굳어 있다가 한숨을 내쉬었고.
“체, 체포하겠습니다!”
하선우 조사관이 수갑을 꺼내 들며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