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45화
세 완등자의 협력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이 발표된 뒤. 전 세계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조직적인 움직임은커녕 서로 적대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교류가 없던 완등자들이 처음으로 협력 의사를 보였다.
물론 발표 내용 자체는 바벨의 개편에 관한 것뿐이었지만 그걸 정말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없었다.
“진짜 십악 토벌하는 거 아니야?”
“완등자들이 같이 움직이면 무조건 가능하지. 이번에도 승천제 혼자서 셋이나 상대했다잖아.”
십악에 대한 두려움은 자연스럽게 토벌의 기대감으로 바뀌었고 세간에 형성되던 불안감도 조금씩 해소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사건 덕분에 나날이 고공행진을 펼치고 있는 집단이 있었으니, 당연히 세 완등자가 같이 관리하게 된 바벨이었다.
“지금 본청 쪽이 죄다 마비 상태라더라. 다른 아카데미에서 상위권들이 전학 오겠다고 난리래.”
“그 정도라고?”
이세훈의 물음에 제이크가 능숙하게 사과를 깎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학원장님 때문에 안 들어왔던 사람들이 대다수니까. 학년 가리지 않고 신청이 쏟아져서 외부에서는 아예 2차 입학식이라고 부르고 있어.”
“개판이구만…….”
바벨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육성기관이긴 하지만 이권 때문에 입학하지 않는 이들도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 두 완등자, 특히 루트비히와 사사건건 충돌을 일으키던 UD그룹의 위르겐이 동참하면서 그의 눈치를 보던 이들이 입학신청을 넣은 것이다.
‘근데 위르겐 그 양반은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꾼 거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바벨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던 양반이 도대체 무슨 대가를 받았길래 냉큼 협력한 것일까.
이세훈이 잘 안 돌아가는 머리를 애써 굴리며 추측해보고 있을 때. 제이크가 포크를 내밀었다.
“여기.”
“아. 고맙…….”
토끼 모양으로 깔끔하게 깎여져 있는 사과 조각.
수상할 정도로 잘 깎은 그 모양에 이세훈이 고개를 돌리며 바라보자 제이크가 슬쩍 시선을 피했다.
“그…… 누님이 좋아해서.”
“……그렇구만.”
동생의 비애를 느낀 이세훈이 사과 조각을 씹어 먹으며 제이크에게 물었다.
“네 누나는?”
“또 다른 의뢰가 들어와서 바로 나가셨어. 너한테 안부 인사만 전해달라고 하더라.”
“흐음…….”
기절한 자신을 암살자들에게서 구해주고 병동까지 옮겨준 아리아. 만약 그때 나타나서 자신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상태가 더욱 심각했을 것이 분명하리라.
그 사실에 이세훈은 순수하게 감사함을 느끼는 한편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인연이 성립됐다라…….’
자신이 기절한 사이에 도대체 무엇을 보고 느낀 것일까. 도저히 짐작도 안 가는 상황에 이세훈이 잠시 고민하다가 생각을 떨쳐냈다.
‘이건 다음에 만나서 알아보는 수밖에 없지.’
지금 생각해 봐야 머리만 아플 뿐이다. 이세훈이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제이크가 슬쩍 눈치를 살피다 물었다.
“근데 세훈이 너, 에리카는 언제쯤 부를 거야?”
“음?”
조금 예상치 못한 질문에 이세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 문제라도 있어?”
“문제까지는 아닌데 좀 의기소침해졌다고 해야 하나…… 오늘 내가 먼저 왔으니까 아마 더 심해질 것 같아서.”
난감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제이크의 모습에 이세훈은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아. 집안 때문인가.’
어느 정도 흉흉한 분위기가 해소되자 마이어스 가문도 기다렸다는 듯이 양산형 검기 무구에 대한 기사를 사방에 뿌리기 시작했다.
그것 때문에 이노우에 가문이 영입전에서 패배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돌고 있었는데 오늘 병문안까지 제이크가 먼저 온 것이 알려지면 분명히 말이 나오리라.
‘예나 지금이나 확대 해석이 제일 귀찮단 말이지.’
속으로 혀를 찬 이세훈은 남은 사과 조각을 단숨에 먹으며 대답했다.
“다음에 부를게.”
“그래. 그럼 나도 오늘은 이만…… 아참.”
자리에서 일어나던 제이크가 뭔가 떠올린 듯 물었다.
“그러고 보니 염 선배는 만나봤어?”
“염성하? 보니까 그놈은 병문안 신청도 안 했던데.”
정산하자고 답장할 때까지 올 생각도 없는지 어딜 봐도 병문안을 신청한 흔적이 없었다.
이세훈의 대답에 제이크가 의아해하다가 이내 무언가 깨달은 듯 이야기했다.
“아. 너 염 선배 입원하신 거 몰랐구나?”
제이크의 이야기에 사과 조각을 씹어 먹던 이세훈의 움직임이 딱 멈췄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입원?”
“응. 이번에 변절자들이랑 싸우다가 크게 다쳐서…….”
“가자.”
“어, 어?”
침대에서 재빠르게 일어난 이세훈은 곧장 제이크를 앞장세워 염성하가 입원해 있는 병실로 향했다.
[염성하]
“…….”
문 옆에 떡하니 붙어 있는 환자명. 그것을 본 이세훈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지난 전투의 격렬함을 증명하듯 흉터와 꿰맨 자국으로 엉망이 되어 있는 근육질의 몸.
“흐읍……!”
그리고 물구나무를 선 채로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는 염성하의 모습이었다.
뚝뚝
얼마나 오랫동안 했는지 전신에서 비 오듯 땀이 쏟아지며 바닥에 떨어진다. 보는 사람이 땀이 날 만큼 후끈해 보이는 그 모습에 이세훈이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병원이라면 학을 떼는 놈이 입원을 했다길래 루이제처럼 영구적으로 문제가 생겼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이세훈이 안도하고 있던 그때. 쉴 새 없이 팔굽혀펴기를 하던 염성하의 몸이 멈췄다.
“음?”
고개를 돌려 이세훈과 제이크를 본 염성하는 곧장 바닥을 손바닥으로 밀쳐내며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러자 뒤돌아있는 상태라 보이지 않았던 정면이 보였는데 늑골과 복부를 가로지르는 깊은 흉터가 보였다.
‘……저건 좀 깊긴 했네.’
겉으로 보이는 게 저 정도라면 다쳤을 당시에는 충격 때문에 내장에도 영향이 갔을 가능성이 높다.
전체적으로 살폈을 때 중상에 가까운 상처. 그래도 일주일 동안 잘 치료받았는지 대부분 아물어 있었기에 이세훈이 걱정을 덜어내며 물었다.
“괜찮냐?”
이세훈의 물음에 염성하가 잠시 바라보다 대답했다.
“보다시피.”
“…….”
염성하의 애매한 대답에 이세훈과 함께 온 제이크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보다시피 라는 건…… 안 괜찮다는 건가?’
아물기는 했지만 어쨌든 정상은 아니지 않은가. 이세훈의 질문을 비꼬는 것인지 제이크가 고민하던 그때.
“그래. 보니까 괜찮은 거 같네.”
이세훈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혼자서 문제없다며. 어쩌다가 다쳤어?”
“체력이 떨어지니 창술의 허점이 금방 드러나더군. 녀석들이 공격받는 걸 알아차려서 기습의 이점도 사라졌고.”
“그러니까 적당히 싸우다 빠지라니까…… 몇 명 처리했는데?”
“14명.”
“호오…….”
현역으로 활동하던 영웅 14명을 혼자서 처리했다.
물론 기습을 통한 각개격파에 무장 차이도 있었으니 염성하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지만, 그 짧은 시간에 저만큼 해낸 것이라면 훌륭한 전적이었다.
“그 정도면 대금도 더 쳐줘야겠네.”
“……마음대로 해라.”
별 상관없다는 듯이 이야기하면서도 입꼬리를 살짝 씰룩거리는 염성하. 그 모습에 이세훈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전치 몇 주 나왔냐?”
“8주라더군. 2주 뒤에 나갈 생각이다.”
“어떻게?”
이세훈의 물음에 염성하가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본가에서 요양하겠다고 하면 보내준다. 그렇게 1주일 정도 쉬다가 복귀하면 남은 시간은 그냥 날릴 수 있지.”
“오…….”
얌전히 치료받을 생각을 하기는커녕 빨리 빠져나갈 생각밖에 안 하는 염성하와 이세훈.
죽이 척척 맞는 두 사람의 모습에 뒤에서 지켜보던 제이크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교수님한테 말씀드려야 하나…….’
안 좋은 쪽으로는 호흡이 찰떡같은 두 사람의 모습에 제이크가 고민하던 그때.
“그래서 정산은 얼마나…… 음…….”
염성하가 갑자기 말을 멈추고 눈매를 살짝 찌푸리더니 상처 주변의 혈관이 울긋불긋 솟으며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염성하가 그 모습을 슬쩍 내려다보았고.
“조금 무리했나 보군.”
푸화아아악!
아물었던 상처들이 찢어지며 사방으로 피가 튀기 시작했다.
“……간호사!!!!!”
갑자기 벌어진 유혈사태에 제이크가 기겁하며 소리쳤고 바깥에서 의료진들이 재빠르게 달려들어 왔다.
“환자분! 운동하시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염성하를 혼내며 응급처치를 시작하는 의료진들.
다행히 상처가 살짝 벌어진 정도였는지 출혈은 금방 멎었는데 방금까지 운동을 하고 있었던 탓에 심박수가 빨라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이게 무슨…….”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병실에 제이크가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바로 앞에서 피를 뒤집어쓴 이세훈이 자신의 몸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이상하네. 이렇게 터질 만한 상처가 아니었는데.’
남들이 보기에는 염성하가 무리하다가 다친 것처럼 보이겠지만 자신이 보기에는 그 정도로 약화된 상태는 아니었다.
뭔가 이질적인 상황에 이세훈은 잠시 고민하다가 주변에 시선이 없는 틈을 타서 손에 묻은 염성하의 피를 살짝 핥았다.
“흐으음…….”
피에 담긴 염성하의 신체 정보들이 머릿속에 무분별하게 나열되었고, 이세훈은 영연신마법을 응용하여 그 정보들을 정리하며 분석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이세훈의 머릿속에 염성하의 육체 구조가 도면처럼 정리되었고.
“……마력혼용?”
염성하가 보유한 두 개의 마력이 탁하게 뒤섞여 있는 것을 깨달았다.
* * *
자신의 병실로 돌아온 이세훈은 피를 씻어내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침대에 걸터앉은 채 생각에 잠겼다.
‘마력혼용이라…….’
이름 그대로 복수의 마력이 서로 뒤섞이는 증세.
보통 부상 때문에 제어 능력이 떨어질 때 종종 발생했는데 그렇게까지 심각한 증상은 아니었다.
부상이 치료되고 제어 능력이 회복되면 별 탈 없이 본래대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말이지.’
염성하의 상처가 갑자기 터졌던 것을 떠올린 이세훈은 천천히 자신의 몸을 살폈다.
‘흐음. 이 정도면 약간 정도는…….’
전신을 가다듬은 이세훈은 왼손과 오른손에 각각 화속성마력과 암속성마력을 따로 끌어올렸다.
우우웅
주인의 몸 상태를 아는지 조심스레 흘러나오는 마력들. 그 양을 확인한 이세훈은 곧장 허공에 두 마력을 섞어냈다.
검붉은색으로 변한 두 속성마력. 염성하의 상태와 비슷하게 섞인 것을 확인한 이세훈은 곧장 인연각인을 발동했다.
[인연각인 ‘적명흑석’을 발동합니다.]
파앙─!
염성하의 인연각인을 발동시키기 무섭게 공명현상을 일으키며 폭발하는 마력.
양 자체가 얼마 안 됐기에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 과정을 살핀 이세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역시 이거 때문이었구만.”
염성하의 고유스킬 ‘진원공명’.
아직 제대로 각성하지는 않았지만 몸 곳곳에 그 힘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상태였는데 그게 방금처럼 마력혼용에 반응하여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어설프게 각성이 된 상태라서 생긴 일인가…… 이건 좀 위험할 것 같은데.’
오늘이야 상처가 터지는 정도에서 끝났지만, 자칫 잘못하면 장기나 마력회로가 엉망이 될지도 모른다.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는 상황.
그 상태를 확인한 이세훈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치료를 하거나 아니면 안전장치가 필요해.’
치료는 지금 몸 상태로 해주기 어렵고 무엇보다도 염성하의 성장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럼 역시 안전장치를 만드는 건데…….’
지금 만들 수 있는 종류가 뭐가 있을까. 이세훈이 머릿속으로 도면들을 떠올리던 그때.
우우웅
오른손 약지에 끼운 황금색 반지, 승천제의 반지가 희미하게 떨리더니 공간을 일그러뜨렸다.
“잠시 괜찮은가?”
공간 너머로 들려오는 루트비히의 목소리. 그 부름에 이세훈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아, 예. 괜찮습니다.”
이세훈이 대답하는 순간. 주변이 풍경이 살짝 일그러지더니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사라락
과일의 껍질을 벗겨내듯이 병실의 모습이 한 꺼풀 벗겨지고 이어서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공간이 주변에 펼쳐진다.
‘이건…….’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공간 이동의 과정. 그 새하얀 공간에 이세훈이 무언가를 느끼고 고개를 돌리려던 순간.
후웅!
주변의 풍경이 낡고 고풍스러운 학원장실로 바뀌었다.
“윽…….”
공간 이동이 끝남과 동시에 밀려오는 울렁거림.
이전에는 이 과정을 못 봤기에 약간의 기시감으로 끝났지만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보면서 영향이 나타난 것이다.
‘공간 능력이 어설프게 생기는 것도 썩 좋지는 않네…….’
울렁거리는 속에 이세훈이 눈매를 찌푸리고 있을 때. 책상에 앉아 있던 루트비히가 그 모습을 휘둥그레진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네…… 뭔가 봤는가?”
정말 예상치 못했다는 듯한 물음. 그 격한 반응에 이세훈이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새하얀 공간 같은 게 보이던데요.”
“……허. 벌써 ‘여백餘白’을 인지하다니.”
감탄하듯 중얼거리는 루트비히. 그 모습에 이세훈이 울렁거리는 속을 가라앉히면서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뭐길래 저 양반이 저렇게까지 놀라는 거지?’
단순히 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볼 수 있었던 게 아니었던 걸까. 이세훈이 의아해하는 동안 루트비히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도록 하지. 아직 자네에게는 이른 개념이니.”
“예…….”
“그래서 몸 상태는 조금 어떤가? 안 교수 말로는 상태가 좋다고 들었네만.”
루트비히의 물음에 이세훈이 괜찮다고 대답하려다가 살짝 바꿔서 대답했다.
“괜찮기는 한데…… 조금 아쉽다고 해야 하나…….”
“아쉽다?”
“이럴 때 영양분이나 마력을 팍팍 들이 부어주면 부상도 금방 회복되고 몸도 좋아지는데 교수님이 너무 걱정을 하시는 바람에…….”
류은하의 병문안 선물 중에도 영약 계열은 하나도 없었고, 제이크 역시 들어올 때 가지고 온 선물을 확인하더니 영약 계열 물건은 모두 반입 금지라고 막혔다.
이제 남은 희망은 눈앞에 있는 바벨의 최고 권력자뿐. 이세훈의 이야기에 루트비히가 가만히 바라보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것 참 안타깝겠군. 안 교수가 실력은 좋은데 조금 과민한 경향이 있어.”
“그러면…….”
좋게 흘러가는 분위기에 이세훈이 두 눈을 빛내던 그때.
“그래도 주치의가 그렇게 판단했으면 다 이유가 있지 않겠나. 전문가의 판단도 존중은 해줘야지.”
루트비히가 담담하게 희망을 끊어버렸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원하는 대답은 아니다.
두 눈을 가늘게 뜬 이세훈이 힘이라고는 쥐꼬리만큼도 없는 최고 권력자를 바라보았다.
‘이런 양반이 무슨 학원장을 하겠다고…….’
이세훈이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을 때. 루트비히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안 교수가 영약을 왜 금지한다든가?”
“……복용 중에 마력이 폭주할 가능성이 있다고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에 한해서는 그럴 일이 거의 없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이세훈의 대답을 들은 루트비히가 슬쩍 웃었다.
“그렇다면 폭주할 일이 없는 안전한 방법이라면 괜찮겠군.”
그런 방법이 있냐고 이세훈이 물어보려던 찰나. 루트비히가 허공에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후웅
공간이 반으로 갈라지며 안쪽에서 불꽃이 흘러나왔고 이내 머리통만 한 크기로 뭉치더니 그 형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양쪽으로 쫙 뻗은 날개와 화려한 꼬리 깃털. 그 익숙하면서도 작은 크기에 이세훈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주작……?”
루트비히가 처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디에 써먹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몰래 사역했던 것인가.
[나를 이런 형태로…….]
“조용.”
뭐라고 투덜거리려던 주작이 단 한마디에 조용해졌고, 그 모습을 본 루트비히가 설명을 이어갔다.
“자네가 포획한 주작의 분신일세. 본체는 다른 곳에 가둬둔 상태인데 바벨 안에서는 이 분신으로 본체의 힘을 끌어다 쓸 수 있지.”
“그렇군요.”
바벨에 한정해서 본체의 힘을 고스란히 사용할 수 있는 분신. 그 설명에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연구하면서 우연히 알아낸 사실인데 주작은 자신이 불태운 물건의 힘을 흡수할 수 있더군.”
“힘…… 말입니까?”
이세훈의 물음에 루트비히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이나 특성 같은 것들 말일세. 간단하게 말하자면 형태만 불꽃으로 바꾼다고 할 수 있지.”
“형태만…….”
얼핏 듣기만 해도 쓰임새가 무궁무진할 것 같은 능력.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이세훈은 불현듯 루트비히가 말한 안전한 방법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주작에게 영약을 먹이고…… 그 변형된 힘을 불꽃으로 바꿔서 흡수한다?”
물론 불꽃을 흡수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주작과 ‘계약’만 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하면 영약을 먹는 게 아니라 계약한 소환수인 주작에게 힘을 받는 셈이니 주치의인 안 교수의 처방에도 문제는 없겠지. 그렇지 않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능청스럽게 물어보는 루트비히. 예정된 보상도 주고 상대가 원하는 사용법도 알려준다.
그 모습에 이세훈도 마주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학원장님이십니다.”
최고 권력자의 품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