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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143화 (143/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43화

이른 아침. 온몸이 난도질당하는 통증과 함께 잠에서 깨어난 이세훈이 눈앞의 알림창을 살펴보았다.

“갱생이라…….”

돌아간 김인철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알림창의 내용으로 어느 정도 깨달은 이세훈이 곧장 알림창을 없앴다.

‘본인이 직접 선택했다면 뭐든 된 거겠지.’

속죄라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살아만 있다면 몇 번이고 반복하여 그 죗값을 조금이나마 씻어낼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자신이 관여할 수 있는 것은 없었기에 이세훈은 김인철에 관한 생각을 깔끔하게 정리한 다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의식을 잃은 지 일주일이라고 했었던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다만 이번에 일어난 사건의 규모를 생각한다면 상당히 시끄러웠을 것이 분명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이세훈은 어제 검사를 받느라 건드리지 못했던 휴대폰을 집어 들어 전원을 켰다.

우우웅!

전원을 켜기 무섭게 미친 듯이 울리는 진동. 그 격한 반응에 이세훈이 알림 내용을 살펴보았다.

대부분 어제 밤중에 도착한 메시지로 의식을 찾았다는 소식이 퍼져서인지 몸 상태를 물어보는 질문이 많았는데 그중에서 딱 하나 눈에 띄는 내용이 보였다.

[정산은 언제쯤 할 생각이지?] - 염성하

그동안 한가득 쌓인 대금을 정산할 생각밖에 없어 보이는 염성하. 그 한결같은 내용에 이세훈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이놈은…… 에휴. 됐다 됐어.”

애초에 기대도 안 했던 놈이라 별생각도 안 든다.

염성하를 제외하고 모두에게 괜찮다고 답장을 보내둔 이세훈은 곧장 인터넷으로 일주일간의 뉴스를 살폈다.

[무의미한 보안 체계. 바벨의 안보 이대로 괜찮은가?]

[루트비히 학원장 “십악이 다수 개입한 이례적인 사건. 바벨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 주의가 필요한 시점”]

[UD그룹 위르겐 회장 “승천제는 주변 이들과 발을 맞출 줄 모른다. 언젠가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킬 것.”]

“개판이구만…….”

사건으로부터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정리되기는커녕 책임을 따지기 위해 더욱 난장판이 되어 있다.

당연히 주된 표적은 이번 사건을 막아내지 못한 바벨이었는데 그 내용을 살피던 이세훈이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면 잘 막은 편인데 말이야…….’

조율자와 인형사, 몽환마. 십악 중에 무려 셋이나 직접 나선 데다 내부에서는 『여명』과 『공양』이 합작을 벌였다.

전자는 완등자가 아니라면 어느 집단이든 쉽사리 대처할 수 없는 강자들이었고, 후자 역시 오래전에 침투시켜놓은 내부자를 이용한 만큼 대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도시나 육성기관이었다면 수만 명의 인명피해가 났어도 이상하지 않은 사건. 이게 수십 명으로 끝난 것은 사실상 바벨이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보아하니 위르겐 이 양반이 들쑤시고 있나 보구만.’

UD그룹의 회장이자 루트비히와 마찬가지로 완등자 중 한 사람인 불명자 위르겐 크루거.

평소에도 영웅 업계의 영향력을 두고 은연중에 경쟁해 온 만큼 기회다 싶어 바벨을 마구 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 건수로 이렇게 바벨을 몰아붙이기가 쉽지는 않을 텐데.’

조금만 냉정하게 봐도 미리 막을 수 있는 사건이 아니었고 바벨이 전력을 다해 수습한 것이 보일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명분으로 이렇게 여론전을 펼치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이 많이 본 뉴스 위주로 살피던 이세훈은 금방 그 원인을 찾아냈다.

[이번 사건의 피해가 줄어든 것은 만마전이 만들어낸 결계가 약화되었기 때문인데요. 이걸 무려 한 사람, 그것도 아직 3학년인 생도가 해냈다고 밝혀져…….]

[전시회장을 장악한 주작. 이 마수를 누가 제압했는지 아십니까? 생도 두 사람이랍니다! 도대체 바벨의 교직원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길래…….]

바벨, 정확히는 교직원들을 향해 비판하고 있는 사람들. 그 내용에 이세훈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나 때문인가?’

현장에 있던 생도들이 사태를 파악하고 재빠르게 대응하여 피해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단순하게 보면 그냥 생도들이 대단한 이야기로 끝나겠지만, 바벨이 교육 기관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상황이 참 미묘하게 변해 버린다.

‘생도들이 저러는 동안 너희들은 한 게 뭐냐?’

일반인 다음으로 보호받아야 할 생도들이 사건을 해결하고, 현역 영웅이자 교육자로서 모두를 보호해야 할 교직원들은 아무것도 한 게 없다.

염성하가 A급 영웅에 비견될 만큼 강력한 무력을 가지고 있던, 루이제의 언령마법이 독보적이던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바벨이 무능한 걸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런 반응은 예상 못 했는데…….’

적을 확실하게 끌어들일 겸 정보가 새어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몰래 준비한 것이었는데 설마 이렇게 바벨을 공격할 명분이 되어버릴 줄이야.

상상도 못 한 상황에 이세훈이 쓴웃음을 지으며 기사와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고 있을 때.

똑똑

“들어가겠네.”

가벼운 노크와 함께 안정완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잠은 편하게 잘 잤나?”

“아, 예.”

일어날 때 조금 아프긴 했지만 이 정도면 준수한 편이다.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이세훈의 모습에 안정완이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하게 체크만 할 테니 편하게 있게.”

이세훈의 곁으로 다가온 안정완이 손바닥만 한 휴대용 관측기구를 몸에 가져다 댔고, 손에 들고 있는 단말기에 상태가 떠올랐다.

[회복속도] - 580%.

“……?”

단말기에 나타난 수치를 살핀 안정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회복속도는 비슷한 신체 능력을 지닌 이들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표시된다.

즉, 지금 이세훈의 회복속도가 580%라는 것은 비슷한 신체 능력을 가진 이들보다 5배 이상 빠르게 부상이 회복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자네 혹시 어제 몰래 영약이라도 먹었나?”

“예? 아뇨. 그냥 그 이후로 쭉 잠만 잤습니다만…….”

“…….”

이세훈의 대답에 안정완이 묘한 표정으로 다시금 단말기의 정보를 살펴보았다.

‘확실히 영약을 먹은 흔적은 없다…… 그러면 이게 정말 순수한 자연회복 속도라는 건가?’

다른 것도 아니고 내장과 혈관, 마력회로처럼 섬세한 부위들이 이렇게 빠르게 회복되다니.

그 속도도 속도지만 안정완이 가장 놀라운 것은 회복 중인 몸이 깔끔하다는 점이었다.

‘이 정도 속도면 몸이 어긋난 방향으로 회복될 가능성도 있을 텐데 말이야…….’

회복 속도가 신체의 통제능력을 넘어서서 발생하는 현상. 이것 역시 자칫 잘못하면 마력결상으로 악화될 수 있었기에 주의가 필요했는데 이세훈의 몸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이 정도 회복 속도에 통제 능력이면 2개월…… 아니, 그전에도 완치될 수도 있겠군.’

지난번에 입원했을 때와 한층 달라진 이세훈의 신체 능력에 신기하게 바라보던 안정완은 여러 변수를 고려한 다음 처방을 내렸다.

“상태가 생각보다 괜찮아서 가벼운 산책이나 재활도 괜찮을 것 같군. 오늘부터 규칙적으로 조심히 움직여보게.”

생각보다 긍정적인 안정완의 반응에 이세훈이 슬쩍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그럼 입원 기간은…….”

“이대로라면 3개월을 다 채울 필요는 없겠군. 하지만 조금이라도 악화될 조짐이 보이면 입원 기간을 늘릴 테니 절대 무리하지 말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단말기를 두드리며 검사 결과를 입력하던 안정완이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병문안은 어떻게 하겠나? 자네가 조용히 쉬고 싶다면 당분간 더 막아두겠네만.”

“음…… 풀어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다들 걱정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병문안을 거절할 만큼 몸 상태가 나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지금은 의식을 잃은 동안 일어난 일들을 파악해야 한다.

‘뉴스에 안 나오는 이야기들도 있을 테니 그것들도 좀 알아둬야지.’

이세훈의 대답에 안정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럼 일단 승인제로 설정해둘 테니 상태가 괜찮을 때만 신청받아서 만나보게나. 탁자 위의 단말기를 쓰면 되네.”

“알겠습니다.”

간단히 설명을 끝낸 안정완이 밖으로 나갔고, 이세훈이 침대에서 일어나 탁상에 놓인 단말기를 집어 들었다.

“병문안 신청이라…… 사람이 좀 모이긴 했나 보네.”

자유롭게 풀어주면 사람들이 한 번에 들이닥칠 테니 승인제로 바꾼 것이 분명하리라.

‘얼마나 모여 있으려나.’

살짝 호기심이 생긴 이세훈이 곧장 단말기를 조작해 병문안 신청을 받도록 설정을 바꿨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

띠리리링!!!

“……어?”

수백 개의 알림이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졌다.

* * *

아스쿠스 병동의 로비.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의료기관인 만큼 평상시에도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장소였지만, 오늘은 그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

“…….”

로비 곳곳에 흩어져서 서로 눈치를 살피는 사람들.

생도들은 학년과 학부를 가리지 않을 정도로 다양했고, 외부에서 찾아온 방문객들은 하나같이 평범하지 않았다.

각 국가의 공무원은 물론 다양한 기업과 언론사의 직원 등 영웅 업계와 관련된 관계자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거기에 그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휴대폰을 붙잡고 무언가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는데 수백 명이 동시에 그러고 있으니 상당히 기괴하게 보였다.

“오늘은 없는 건가…….”

“차라리 확답이라도 해준다면…….”

초조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바라보는 이들. 그렇게 묘한 긴장감이 계속되던 그때.

“떴……!”

한 생도가 깜짝 놀라 외친 한마디와 함께 로비에 흩어져있던 사람들이 재빠르게 데스크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영웅협회에서 파견 나온 고 팀장이라고 합니다. 이세훈 생도에게 병문안 신청을…….”

“UD인더스트리에서 나왔습니다. 이세훈 생도에게 병문안 신청을 하고 싶습니다만 꼭 저희 기업 이름도 같이 적어서…….”

“소정의 선물도 가지고 왔다고 적어서 보내 주세요……!”

자신의 이름과 소속 집단, 거기에 챙겨 온 선물까지 같이 적어다가 알려달라는 사람들.

말이 병문안이지 사실상 입찰 경쟁을 펼치는 경매장을 방불케 하는 풍경이었는데, 이런 기괴한 상황이 펼쳐진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양산형 검기는 무슨 일이 있어도 확보해야 돼!’

‘이번에 뒤처졌다가는 향후 몇 년간 계속 뒤처진다……!’

그동안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으나 이세훈에 의해 실현된 양산형 검기 기술.

아직 완성도나 위력에 대해서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찌 됐든 향후 영웅 업계의 향방이 걸려 있을 만한 세기의 발명이었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관련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이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그 개발자인 이세훈에게도 관심이 쏠린 것이다.

‘듣자 하니 만마전이 노린 것도 이 양산형 검기 기술이랑 이세훈이라고 하던데.’

‘실제로 사건 당시에 탈취 시도가 있었던 걸 이노우에 에리카랑 제이크 마이어스가 막았다고 했으니…….’

‘이런데도 일개 생도로 취급한다면 머리에 문제가 있는 녀석들이지.’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모르는 영웅 업계에서 선두를 유지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판가름 짓는 병문안.

그렇다 보니 모두가 누가 처음으로 들어가게 될 것인지 경계했고, 자연스럽게 가장 유력해 보이는 사람에게로 시선이 모여들었다.

“…….”

소파에 앉은 채 불편한 표정을 지은 금발의 청년, 제이크가 손에 든 빵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그냥 다음에 올 걸 그랬나…….’

괜찮다는 메시지를 받고 병문안이나 가 볼까 싶어서 와봤는데 로비의 풍경이 상상 이상으로 살벌하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경계심 섞인 시선들에 제이크가 어색하게 주변을 살피고 있을 때.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은 한 소녀가 보였다.

“…….”

정면을 바라보며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 에리카.

주변으로 뭔가 알 수 없는 압박감이 흘러나왔는데 그 때문인지 주변에 사람들이 얼씬도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시선도 잘 주지 않았다.

‘……그냥 집에 갈까.’

약간 체할 것 같은 느낌에 제이크가 자리에서 일어날지 말지 고민하고 있을 때.

우우웅

제이크의 휴대폰이 짧게 울렸고, 로비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모여들었다.

그 엄청나다면 엄청난 광경에 자신도 모르게 흠칫 떤 제이크가 휴대폰에 도착한 메시지를 살펴보았다.

[밑에 개판이냐?] - 이세훈

이세훈의 물음에 제이크가 주변을 슬쩍 살펴본 다음 답장을 보냈다.

[완전 개판이야.]

정말 그 말 이외에 지금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 답장을 보내둔 제이크가 한숨을 내쉬던 그때. 옆에서 느껴지는 묘한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

그러자 보이는 것은 어느새 고개를 돌려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에리카의 모습.

그 인형 같은 얼굴과 깊게 가라앉은 눈동자에 제이크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다가 곧장 이세훈에게 추가로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바빠 보이니까 다음에 올게.]

보아하니 건강에 문제도 없어 보이는데 나중에 시간 날 때 봐도 괜찮지 않겠는가.

전쟁터나 다름없는 로비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제이크가 재빠르게 빠져나갔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에리카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이제 됐네.’

제이크가 있었다면 양산형 검기에 대해서 의논한다고 먼저 불려갔을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자신이 가장 유력해졌다.

곧 자신이 호출될 것이라고 확신한 에리카가 병문안 선물로 가지고 온 선물꾸러미를 집어 든 채 조용히 차례를 기다렸고.

“류은하 학과장님 계십니까?”

“예.”

“안으로 들어 가실게요.”

구석에 앉아 있던 류은하가 직원의 부름을 받고 병동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오늘 이세훈 환자분이 더 이상 병문안 안 받으신다고 하시니 신청하신 분들은 모두 돌아가 주세요.”

“이런…….”

“역시 류 학과장인가…….”

직원의 안내에 기다리던 이들이 모두 혀를 차면서 로비를 빠져나갔고, 북적이던 내부가 순식간에 한적해졌다.

그리고 자리에 남아 있던 에리카가 물끄러미 선물꾸러미를 내려다보았고.

“…….”

풀죽은 얼굴로 포장지를 만지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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