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140화 (140/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40화

타닥─

숯처럼 새카맣게 타버린 나무들이 힘없이 바스러지며 부서졌고 희뿌연 재와 함께 매캐한 연기가 흩날렸다.

화천태도의 불꽃마저 집어삼키고 모든 것이 불타 버린 대지. 그 검게 물든 세계에 이세훈이 느릿하게 숨을 내뱉었다.

“후우…….”

회귀 후 처음으로 사용한 마혈기.

아직 영연신마법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기에 억지로 펼쳐낸 것이었는데 다행히 위력은 크게 나쁘지 않았다.

‘회귀 전의 7할 정도…… 사부가 알면 난리나겠군.’

마혈기의 가장 중요한 점은 언제 어디서든 저장해둔 무구의 힘을 완전하게 발휘해내는 것.

그런데 3할을 날려 먹었으니 사부가 이 결과물을 봤다면 형편없다고 며칠을 갈궜으리라.

‘거기에 조금 빠듯하기도 했고…….’

이세훈이 염도사냥꾼과 화천태도를 상대로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마혈기로 만들어낸 ‘성염환’의 불꽃이 보다 상위의 힘이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 이외에는 모두 밀리고 있었던 상황이었기에 만약 화천태도와 염도사냥꾼 둘 다 멀쩡했다면 다 태우기 전에 자신의 목이 먼저 잘려나갔으리라.

‘역시 아직 한참 멀었어.’

무기가 통해도 그걸 제대로 휘두를 수 없으면 의미가 없다. 이세훈이 다시금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있을 때.

쩌적!

손에 쥐고 있던 성염환에 거대한 균열이 퍼지며 불꽃이 사라졌다.

“흠. 다 됐나 보네.”

마혈기로 만들어낸 혼원무구는 어디까지나 이세훈이 영혼에 각인해둔 무구를 재현하는 것. 그렇기에 힘이 다하면 이렇게 껍데기만 남고 사라지는 것이다.

그냥 숯덩어리처럼 변해 버린 성염환의 모습에 이세훈은 불현듯 한 가지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이걸 만드는 데 사용했던 재료가 인형사의 수르트였던가?’

회귀 전 인형사가 화천태도를 이용해서 만든 자동인형. 그 파편이 성염환의 재료로 쓰였던 것을 떠올린 이세훈이 앞을 바라보았다.

새카맣게 탄 채로 바닥에 겨우 꽂혀있는 화천태도.

그릇이고 근원이고 못 써먹을 정도로 타버린 그 형태에 이세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글렀구만…….’

상태가 저래서야 재료로 써먹기도 힘들어 보인다. 아쉬움을 떨쳐낸 이세훈은 고개를 돌려 김인철의 상태를 살폈다.

자신에게 턱을 후려 맞고 시체처럼 바닥에 축 늘어져 있는 김인철. 불꽃을 조절했기에 다친 곳은 없었지만 문제는 그 이전에 생긴 상처들이었다.

‘망치질하긴 힘들겠는데…….’

왼손은 마력회로가 거의 다 훼손되어 마력을 담아낼 수도 없게 되었고 오른손에는 마력결상의 흔적이 보였다.

장인으로서의 생명이 사실상 끝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 그 처참한 모습에 이세훈은 가만히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중에 생각하자.’

일단은 이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게 생각한 이세훈이 김인철을 일으키려던 그때.

스륵

새카맣게 탄 숲 위로 나타나는 검은 그림자들. 이전에 염성하를 도울 때 본 적 있는 그 흐릿한 존재감에 이세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눈치 없는 새끼들…….”

딱 깔끔하게 싸움이 끝날 타이밍인데 꼭 초를 쳐야겠는가. 밀려오는 짜증을 억누르며 이세훈이 상황을 살폈다.

탐철을 이용한 육체 강화도 끝났고 성염환도 모든 힘을 잃었다. 남은 것이라고는 바닥난 마력과 한계 직전인 육체뿐.

‘마혈기를 또 쓰는 건 조금 위험한데…….’

지금 수준으로는 재료도 없이 마혈기를 펼치는 것은 실패할 가능성도 높고 무엇보다도 위험하다.

자신을 둘러싼 그림자의 모습에 이세훈은 어떻게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금방 결정을 내렸다.

‘여기서 허무하게 끌려가는 것보다야 낫겠지.’

약간의 부상은 감수한다. 그렇게 각오한 이세훈이 다시 한번 마혈기를 사용하기 위해 피를 움직이려던 순간.

꿀렁

가슴의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

영연신마법으로 완전히 고쳐놨던 심장의 상처가 어째서인지 다시 벌어져 있다. 그 상태에 이세훈은 주변에 적이 있는 것도 잊은 채 의아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이게 무슨…….’

마혈기를 발동하는 과정 자체는 회귀 전과 비교해서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뭔가 바뀌었다.’

자신의 몸, 영혼이 회귀를 통해 무언가 변해 버렸다.

그 사실에 이세훈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 마혈기의 반동이 몸 곳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주르륵

피눈물이 흘러내리며 시야가 붉게 물들고 이내 목 안쪽에서 끈적거리는 무언가가 치솟아 오른다.

“쿨럭……!”

입에서 터져 나오는 검은 피. 완전히 통제에서 벗어난 자신의 몸에 이세훈이 가슴의 상처를 움켜쥐며 비틀거렸고.

“아주 개지랄을…….”

의식을 잃으며 앞으로 쓰러졌다.

쿠웅!

바닥에 쓰러진 이세훈. 그 모습에 주변을 포획한 그림자, 조율자의 암살자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염도사냥꾼과의 전투를 통해 이세훈이 아주 주도면밀한 타입이라는 것을 확인했었기 때문이다.

[접근하기 전에 사지를 잘라두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렇게 하지.]

변수를 없애기 위해 암살자 중 한 명이 쇠사슬에 연결된 사각형의 넓적한 칼날을 몇 바퀴 돌렸다가 이세훈의 팔을 향해 날렸고.

서걱─

황금빛의 검기가 그 칼날과 암살자를 깔끔하게 양단했다.

자신이 죽은 것도 깨닫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지는 암살자의 시체. 그 갑작스러운 공격에 남은 이들이 화들짝 놀라며 검기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흐음…….”

이세훈이 들고 있던 성염환을 쥐어 들고 그것을 유심히 살펴보는 황금빛 머리칼의 여인.

언제 어떻게 나타났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그 모습에 암살자들의 몸이 그대로 굳어졌다.

[위험하다…….]

[이미 사정거리 안에…….]

사이의 거리만 수십 미터에 자신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눈길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손끝 하나라도 움직였다가는 그대로 어딘가 잘려나갈 것을 알기에 암살자들은 도망치지도, 공격하지도 못한 채 그저 가만히 서서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성염환을 살피던 여인, 아리아 마이어스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신기하네…….”

뒤늦게 도착해서 싸우는 것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상황을 보면 이세훈은 이 검으로 적을 쓰러뜨린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결과물에 비해서 검의 수준이 너무 형편없었는데, 특히 그 재료가 비정상적이었다.

‘아무리 힘이 빠져나간 상태라도 흔적이 남기 마련인데…… 그조차도 없어.’

성염환을 만드는 데 들어간 재료의 값어치가 1이라면 일반적인 장인들은 100 정도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이세훈은 그것의 10배, 100배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

대단함을 넘어서 이치에 맞지 않는 결과물. 빈껍데기만 남은 성염환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아리아가 고개를 돌렸고.

콰앙!

암살자들이 이를 악물며 동시에 덤벼들었다.

이빨에 숨겨둔 앰플이 깨지며 전신의 육체가 흉측하게 부풀고 두 눈에 이성이 사라진다.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발악. 그 모습에 아리아가 껍데기밖에 남지 않은 성염환을 수평으로 가볍게 휘둘렀고.

스각─

황금빛이 눈앞의 모든 것을 갈라냈다.

덤벼들던 암살자들도, 주변의 나무들도 검을 휘두른 궤적을 따라 어긋나며 무너져 내린다.

수십 명의 암살자를 가볍게 처리한 아리아는 다시금 손에 들린 성염환을 바라보았다.

파스슥

균열이 완전히 퍼져 재로 변해 흩날리는 성염환.

처음부터 껍데기밖에 남지 않았기에 당연한 결과였지만, 아리아는 무언가에 홀린 듯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방금…….’

아주 잠깐, 정말 찰나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껍데기밖에 없던 검이 자신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물론 퍼센트로 따진다면 1%가 될까 말까 한 희미한 감각이었지만,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기에 그조차도 선명히 다가왔다.

“…….”

손에 남은 재를 바라보던 아리아는 그것을 가볍게 털어내고 이세훈에게 다가가 쪼그려 앉은 채로 내려다보았다.

갑자기 쓰러진 것이 그리도 억울했는지 피범벅이 된 채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모습. 그 흉흉한 얼굴에 아리아가 잠시 내려다보았고.

“기대할 만하네.”

흥미롭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대상 ‘아리아 마이어스’와의 인연이 성립되었습니다.]

* * *

휘우우웅

북태평양의 바다 위로 울려 퍼지는 기괴한 바람 소리. 그 휘몰아치는 듯한 소리에 허공에 서 있는 루트비히가 주변을 다시금 둘러보았다.

콰르르륵!

바다 곳곳에 새겨진 거대한 흉터들.

끝없는 절벽이 아래쪽에 펼쳐진 것처럼 바닷물들이 끝없이 흉터의 아래로 떨어지며 거대한 폭포를 만들어낸다.

그 비현실적인 풍경을 내려다보던 루트비히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과했나…….”

저쪽에서도 발목만 붙잡으려 하기에 가볍게 주고받았는데 어느 순간 자신을 죽이려고 가늠을 하기에 조금 진지하게 받아쳐 버렸다.

엉망이 되어버린 바다의 모습에 루트비히가 멋쩍어하자 하얀 구멍 너머로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전축까지 비틀어놓고 그런 태평한 소리를 하다니. 다른 놈들도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군.]

“바로 되돌려뒀으니 괜찮을 것이오.”

[괜찮기는. 아마 조만간…….]

우우웅!

목소리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울리는 진동. 그 울림에 루트비히가 휴대폰을 꺼내 도착한 메시지를 읽어보았다.

[빨리 고치세요] - 칼 안데르센

자신과 마찬가지로 완등에 도달한 초인이자 순례교를 창시해낸 순례자 칼 안데르센. 그가 직접 보낸 메시지에 루트비히가 쓴웃음을 지었다.

“으음…… 조금 심하긴 했나 보군.”

전 세계를 자신이 만들어낸 방벽 ‘순례길’로 보호하고 있는 칼이 재촉할 정도라면 큰 영향을 끼친 것이 분명하다.

사태를 파악한 루트비히는 곧장 엉망이 된 바다를 바라보며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쿠구구궁

바다에 깊게 파인 상처, 공간의 비틀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북태평양의 바다가 본래의 형태로 돌아왔다.

다만 그 힘의 영향이 남아 바다 곳곳이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었는데 그 모습에 루트비히가 두 손을 뻗어 가볍게 아래로 내리눌렀다.

후우웅

혼란스럽던 바다가 처음과 같이 진정되었고 이내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전투 중의 여파까지 없앤 것은 아니었기에 해안가 몇 군데에 해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는 영웅협회 쪽에서 알아서 처리할 수 있으리라.

“그러면 남은 건…….”

수습을 끝낸 루트비히가 그대로 몸을 돌렸고 주변이 자연스럽게 바벨의 위쪽으로 돌아왔다.

보르시파를 중심으로 벌어진 소란.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루트비히는 단숨에 자신의 마력을 퍼뜨려 상태를 파악했다.

‘피해는…… 생각보다 적군.’

주작의 결계, 주천염혼이 제대로 펼쳐졌다면 몇 구역이 초토화되고도 남았을 텐데 화재 이상으로 번진 곳이 없었다.

처음에 결계가 제대로 펼쳐지지 않은 것도 있었고, 전신에 피칠갑을 한 채 달리고 있는 염성하가 계속해서 기둥을 무너뜨려 효과를 약화시킨 덕분도 있었다.

‘거기에 주작까지 죽이지 않고 포획했다라…….’

초조한 표정으로 주변을 왔다 갔다 하는 루이제가 주작을 꽁꽁 묶어둔 것을 확인한 루트비히는 다른 쪽을 살폈다.

아리아 마이어스의 품에 안긴 채 병동으로 옮겨지는 이세훈. 혹시 부상이 심한가 싶어서 살펴보았지만, 피범벅인 것치고는 멀쩡했다.

‘그런데…… 뭔가 특이하군.’

전투로 생겼다기에는 조금 특이한 상처들.

그 흥미로운 모습에 루트브히가 더 유심히 보고 있을 때. 도로 위를 달리던 아리아가 돌연 그가 서 있는 곳을 힐끗 쳐다보았다.

“……호오.”

바로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돌렸지만 이쪽의 시선을 알아차린 것이 분명했다.

[저 정도면 쇳덩어리보다 먼저 완등에 도달할 수도 있겠군.]

쇳덩어리, 류은하에 비교하며 아리아의 재능을 칭찬하는 목소리. 그 이야기에 루트비히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대로라면 그리되겠지만…… 류 학과장도 최근 들어 많이 변하고 있으니 아직은 모르는 일이오.”

[그럴지도 모르지. 그보다 저기 장난치고 있는 놈이 있군.]

목소리의 이야기에 루트비히가 두 사람이 향하고 있는 아스쿠스 병동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보르시파에서의 사건 소식을 전해 듣고 다급히 현장으로 출동하는 의료진들. 그 혼란스러운 와중에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는 병실 하나가 있었다.

“그러니…… 아, 이런. 벌써 도착해 버렸네.”

의자에 앉아서 이야기하던 하워드 그랜트가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침대에 꽁꽁 묶여 옴짝달싹도 못 하는 레아 클로델을 보았다.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하워드가 의자에서 일어섰고 그대로 병실의 창문을 열고 그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루트비히가 서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었고.

투웅

온 힘을 다해 병실의 아래로 몸을 내던졌다.

“뭣, 잠깐…… 인형사님…….”

콰득!

짧은 단말마와 함께 숨이 끊어진 하워드 그랜트.

보르시파의 3학년 학과수석의 최후라기에는 허무하기 그지없는 그 모습에 목소리가 한심스럽게 이야기했다.

[힘을 빌려 쓸 때는 그 여파도 잘 생각했어야지…… 재능이 좋아도 멍청하면 답이 없군.]

뛰어난 재능과 명문가의 혈통.

본인은 그 가치를 높게 잡고 십악과 대등하게 거래를 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실제로는 몇 마디 말만 전하고 곧장 버려질 만큼 하찮을 수준이었다.

허무하게 죽어버린 하워드의 모습에 루트비히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직 다 피어나지도 못했거늘…….”

씁쓸하게 하워드의 시체를 바라보던 루트비히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마무리를 짓기 위해 바벨 전역을 내려다보았다.

[어떻게 처리할 거지?]

살짝 기대하는 듯한 목소리의 물음에 루트비히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남김없이 전부.”

[좋군. 빨리하자고.]

목소리의 재촉을 들으며 루트비히가 천천히 바벨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인공섬 전체를 뒤덮을 만큼 거대한 투명한 정육면체. 자신이 만들어낸 공간의 형태를 본 루트비히가 천천히 주먹을 움켜쥐었고.

“공간격리.”

정육면체가 단숨에 주먹만 한 크기로 압축되었다.

섬 전체를 훑으며 무언가를 솎아내듯이 줄어든 정육면체. 그것을 자신의 손으로 가져온 루트비히가 안쪽을 바라보았다.

꾸드득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무언가가 한데 뒤엉켜 오물처럼 정육면체의 안을 가득 채운다.

그것을 바라본 루트비히가 가볍게 손을 내저었고.

후웅

정원을 더럽혔던 ‘침입자’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며 모든 소동은 마무리되었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