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39화
“자네…….”
이세훈의 모습에 김인철은 뭐라 말이 나오지 못했다.
누군가 자신 같은 인간을 구하러 와줬다는 사실에 기쁨. 그리고 무관계한 사람을 끌어들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 형용할 수 없는 기분들에 김인철이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무언가를 깨닫고 다급히 소리쳤다.
“빨리 도망치게! 방금 같은 폭발로 죽을 녀석이 아니야!”
“그렇겠죠. 저도 압니다.”
담담하게 대답한 이세훈이 김인철의 어깨를 꿰뚫은 단창 조각을 붙잡고 단숨에 빼냈다.
푸화악!
뻥 뚫린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피. 그 모습에 이세훈은 곧장 사접석의 힘으로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촤라락!
은색 실이 엉망이 된 김인철의 체내에 파고들어 부러진 뼈를 맞추고 찢어진 근육을 꿰매며 마력회로를 이어붙였다.
“크윽…….”
마취도 안 한 채 전신을 까뒤집고 수술하는 듯한 감각. 그 통증에 김인철이 몸을 부들거렸지만 이세훈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치료를 이어갔다.
그리고 몸이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만 고친 다음 아공간 포켓에 들어있는 포션 하나를 꺼내 몸에 부었다.
치이익!
“……!”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급속도로 치료되는 몸.
이제는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몸을 부들부들 떨어대는 김인철의 모습에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전에 기억을 봐둬서 그런가. 치료가 잘됐네.’
몽환규도를 통해 엿봤던 김인철의 기억. 그때 그의 육체와 심상을 경험한 덕분인지 사접석을 이용한 치료가 상상 이상으로 잘 풀렸다.
‘일단 이쪽은 됐고…….’
김인철의 응급처치를 끝낸 이세훈은 그제야 오토바이가 날아간 곳을 바라보았다.
화르르륵!
주변의 숲을 불태우며 하늘 높이 치솟은 불기둥.
오는 길에 사접석으로 오토바이의 구조 자체를 공격용으로 개조했었는데 아무래도 상대가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우드득─콰득─
잔해의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섬뜩한 소리.
폭발에 넝마가 된 육체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고, 그 모습에 이세훈이 견적을 내면서 김인철에게 물었다.
“교수님.”
“말하게…….”
응급처치를 받기 전보다 더 초췌해진 김인철의 대답에 이세훈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좀 도와주셔야겠는데요.”
“……도망가라고 해도 안 갈 테지?”
“그렇죠. 이미 늦기도 했고.”
오토바이도 박살 난 마당에 맨발로 도망쳐봐야 자신보다 강한 녀석을 따돌릴 수 있겠는가.
이세훈의 대답에 김인철이 쓴웃음을 지으며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주르륵
살짝 일어났을 뿐인데 조금 아물었던 상처 사이로 피가 흘러나온다. 살짝만 건드려도 곧장 찢어질 만큼 위태로운 몸.
그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김인철이 숨을 고르며 이세훈에게 물었다.
“뭘 하면 되겠나.”
이세훈이 오색화도가 끼워진 화적초를 허리춤에서 빼내 김인철에게 건네줬다.
“달궈주세요. 최대한 많이.”
“…….”
영웅 등급도 되지 않는 무구들을 가열해서 도대체 어디에 쓰겠다는 것일까.
자신으로서는 짐작도 가지 않는 일이었지만, 김인철은 되묻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럼 맡기겠습니다.”
밑 작업을 김인철에게 맡긴 이세훈은 곧장 곧 있을 전투를 대비하여 작업에 들어갔다.
후웅
이전에 염성하를 습격한 자객이 사용한 언월도의 창날. 그리고 레아에게서 추출해 둔 Lv.2의 인연석.
그 두 가지를 왼손으로 움켜쥔 이세훈이 인연각인을 발동시켰다.
[인연각인 ‘탐철’이 발동됩니다.]
콰드득!
탐철의 효과에 의해 두 재료가 한 줌의 쇳물로 녹아 몸 안쪽으로 스며들어 광혈을 만들어낸다.
본래 영웅 등급이었던 무기의 파편. 거기에 재료의 잠재력을 한계까지 증폭시켜주는 레아의 인연석 ‘착폭화’가 더해지자 어마어마한 상승효과가 일어났다.
우우웅!
입에서부터 전신에 폭발하듯이 휘몰아치는 무구의 맛.
전신의 솜털이 곤두서는 것처럼 광혈이 미친 듯이 전신을 질주했고 머리카락 끝이 더욱 선명하게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화르르륵
이전에는 단순히 유사한 강화 스킬처럼 보였다면, 지금은 정말 용혼광로를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
거기에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두 눈동자에도 열기가 깃들기 시작했는데, 이세훈은 그것이 용혼광로의 2단계 ‘주안朱眼’이 발현된 것임을 알아차렸다.
‘2단계는 또 다르다고 하더니…… 그 말대로구만.’
기존의 강화가 단순히 육체를 강화시켜주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전신의 모든 감각이 예민해지면서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감각. 그리고 저 멀리 오토바이의 잔해를 치우고 일어서기 시작한 적의 존재에 이세훈이 소광의 망치를 꺼내 들고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저 멀리서 전신이 불꽃에 휩싸인 적, 염도사냥꾼의 모습이 이세훈의 눈에 보인 순간.
투웅─
불꽃이 폭발함과 동시에 그 몸이 바로 눈앞에 쇄도해 왔다.
목을 노리고 휘둘러져 오는 화천태도의 칼날. 재생 중에 신체가 강화된 것인지 A급에서도 최상위 수준이었고, 무구 역시 전설 등급에 가까웠다.
그에 반해 이쪽은 모조리 긁어모아서 A급 턱걸이에 시간제한까지 걸린 상황. 정면에 싸우는 순간 박살 나는 것이 정해진 차이였지만.
‘보였다.’
날카롭게 곤두선 감각이 그 차이를 매울 수 있노라고 이야기했다.
카앙─!
소광의 망치와 맞부딪친 화천태도의 칼날.
본래라면 망치와 함께 반 토막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힘의 차이였지만, 염도사냥꾼이 휘두른 화천태도는 마치 스스로가 빗겨낸 것처럼 허무하게 튕겨 나갔다.
────!
그 예상치 못한 결과에 염도사냥꾼이 거칠게 울부짖으며 화천태도를 다시 미친 듯이 휘둘러댔지만 그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카가가강!
이세훈의 소광의 망치가 요령 좋게 도신과 칼날을 후려치며 공격을 흘려냈고, 막무가내로 이어지는 주먹질과 발길질 역시 가볍게 피해냈다.
마치 떼를 쓰는 어린아이와 싸워주는 것처럼 여유로운 모습. 그 광경에 오색화도를 달구고 있던 김인철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이세훈의 신체능력이 강화된 것은 봤지만 염도사냥꾼을 상대로 저렇게 대등하게, 아니, 압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던 김인철은 이내 그 공방이 어떻게 성립되고 있는 것인지 알아차렸다.
‘이성을 잃어버린 건가?’
재생 직후 괴성을 내지르며 거세게 덤벼드는 염도사냥꾼. 처음에는 단순히 격분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지만, 자세히 보니 모든 움직임에 기교가 사라져 있었다.
‘그래.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급조해서 특화의식을 진행했으니…….’
본래 특화의식은 무구에 육체를 완벽하게 맞추기 위해 오랜 시간에 걸쳐서 조정하는 것이 정석.
하지만 염도사냥꾼은 화천태도의 근원을 부활시킨 다음 주작의 힘을 사용하여 강제로 육체에 용접하듯이 붙여 버렸다.
그 결과 화천태도에 맞춤으로 몸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쪽에 ‘융화’되어 버린 것이다.
────!
콰아앙!!
수십 년을 단련해 온 기술조차 잊어버린 채 화천태도에 끌려다니듯 마구잡이로 공격을 퍼붓는 염도사냥꾼.
물론 움직임이 어설플 뿐이지 그 위력은 스치기만 해도 치명적이었기에 이세훈은 더욱더 감각을 곤두세웠다.
콰앙!
지면을 짓밟은 염도사냥꾼의 발. 거기서부터 솟구쳐 오른 힘이 전신을 타고 올라 이내 화천태도의 칼날로 이어진다.
그 한 줄기의 흐름을 두 눈으로 명확히 인지한 이세훈은 이어서 정확히 그와 반대되는 흐름을 펼쳐냈다.
투살법鬪殺法 경격鏡擊
카앙─!
거울로 비춰내듯 완벽히 상반되는 힘이 염도사냥꾼의 힘을 절묘하게 흘려내며 파훼해낸다.
하지만 거기에 성취감을 느끼기도 전에 염도사냥꾼이 더욱 괴성을 내지르며 미친 듯이 화천태도를 휘둘렀다.
콰과과강!!
어떻게든 공격을 받아치는 데 성공하고는 있지만, 이쪽이라고 부담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칼날을 쳐낼 때마다 손아귀가 찢어질 것 같았고 주먹과 발길질을 피할 때는 옆을 스치기만 했는데도 한 대 맞은 것처럼 온몸이 삐걱거렸다.
‘더럽게 무겁네……!’
기술로 힘의 격차를 극복하기는 했으나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 그리고 무엇보다도 골치 아픈 것은 바로 주작의 힘이 지닌 재생능력이었다.
우득!
빈틈을 노려 손목과 관절을 부숴 무력화시키려도 해도 불꽃이 한 번 거세게 타오르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재생된다.
‘저 정도면 목을 베어도 잘려나가는 도중에 재생한다.’
어설프게 공격을 시도했다가는 역으로 붙잡혀 박살 날 상황. 탐철의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 결착을 지어야 하는 이세훈에게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성이었다.
카앙!
하지만 이세훈은 조급해하는 대신 침착하게 소광의 망치를 후려치며 화천태도를 바라보았다.
‘조금만…….’
주홍빛으로 물든 도신. 그리고 그곳에 아직 희미하게 남아 있는 균열을 보며 단조를 하듯 쉴 새 없이 망치를 휘둘렀다.
그리고 두 눈동자를 맴돌던 열기가 빠져나가려던 순간.
쩌적─
화천태도의 도신에 균열이 퍼졌다.
쿠웅!
처음으로 이세훈의 발이 먼저 앞으로 내디뎌졌고, 두 손이 교차하며 허리춤의 아래로 내려가 힘을 끌어모았다.
정수리를 쪼갤 기세로 내리쳐지는 화천태도. 소광의 망치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는 그 공격에 이세훈은 곧장 체내에서 보다 날카롭고 강력한 무구를 벼려냈다
천충검淺充劍
백광白光
앞으로 내디딘 발에서부터 전신을 관통하듯이 솟구쳐 오른 백색의 검기. 그것을 하나의 검으로서 벼려내는 데 성공한 이세훈은 그대로 두 손을 교차하듯이 전력으로 휘둘렀다.
카아앙!!
백광이 먼저 균열의 틈새에 파고들 듯이 휘둘러지고, 이어서 소광의 망치가 그 뒤편을 때리며 충격을 안쪽까지 때려 박는다.
염도사냥꾼의 무구이자 힘의 근원인 화천태도. 그 빈틈을 노린 일격이 균열을 넘어 그 축까지 닿았고.
“훌륭해.”
또렷한 염도사냥꾼의 눈이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화르륵!
부서져야 할 화천태도가 불꽃처럼 흩어졌고, 이어서 비어 있던 염도사냥꾼의 손이 앞으로 뻗어졌다.
푸욱!
다시금 손에서 뻗어 나온 주홍빛의 칼날이 가슴을 꿰뚫었고, 그 모습에 이세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두 손을 파르르 떨며 무구를 놓쳤다.
투욱
바닥에 떨어지는 소광의 망치와 허공에 흩어져 사라지는 백광.
공격할 수단은 잃은 이세훈은 마지막 발버둥을 치듯 자신의 가슴을 꿰뚫은 화천태도를 칼날을 오른손으로 붙잡았다.
치이익!
맞닿은 손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그 무의미한 발버둥에 염도사냥꾼이 말없이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기술도, 대응도 더할 나위 없었어. 딱 하나 아쉬운 점은 내가 폭주상태일 거라고 너무 쉽게 믿은 점이군.”
“하아…… 하아…….”
“나처럼 싸움이 일상인 녀석은 싸우거나 맞으면 오히려 이성이 쉽게 돌아오거든.”
만약 자신에게 맞서 싸우는 대신 도망치는 쪽을 선택했다면 운 좋게 빠져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표적이 되어 죽었을 수도 있겠지만, 본인이 대신 죽어서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가능하면 살려서 데려오라고 했는데…… 뭐, 이 녀석에게는 이쪽이 더 나을 수도 있겠군.’
재생능력이나 화천태도가 없었다면 자신도 이렇게 간단히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이세훈의 실력을 인정한 염도사냥꾼이 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 세계에 주목받던 유망주이자 제자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싸우다가 죽어버렸으니 과연 어떤 기분일까.
‘네놈은 절대 죽이지 않는다.’
자신이 고통받은 20년의 세월만큼 그 대가를 치르게 만들 것이다. 그 원념을 불태운 염도사냥꾼이 김인철을 보았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경악보다는 의문이 떠오른 얼굴. 그 예상과 다른 모습에 염도사냥꾼이 묘한 이질감을 느끼던 순간.
“공간왜곡.”
화천태도를 움켜쥔 이세훈의 오른손, 승천제의 반지가 공간을 비틀었다.
빠악!
그 힘의 파동을 느낀 순간. 염도사냥꾼은 반사적으로 이세훈의 몸을 걷어차며 떨어뜨렸다.
콰아앙!!
나무를 부수며 튕겨져 나간 이세훈. 그 모습에 염도사냥꾼은 죽었는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화천태도를 바라보았다.
“뭐…….”
그러자 보이는 것은 도신 전체에 퍼져 있는 거대한 균열.
방금 이세훈이 펼쳐낸 공간왜곡이 화천태도의 축을 완전히 비틀어 망가뜨려 버린 것이다.
화르륵!
균열 사이로 불꽃이 미친 듯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덩달아 염도사냥꾼의 몸에 붙은 불꽃 역시 일그러진다.
그 심상치 않은 모습에 염도사냥꾼이 재빠르게 화천태도의 불꽃을 통제하려고 했다.
우우웅!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화천태도의 불꽃이 더욱 거세게 날뛰었고 균열이 퍼져나가며 사방으로 힘을 흩뿌렸다.
안쪽에 담긴 영혼들이 바깥으로 도망치려는 듯, 그 난폭하기 그지없는 반응에 염도사냥꾼이 발작하듯 소리쳤다.
“왜…… 도대체 왜 도망치려는 거야……!”
자신들이 원하고, 꿈꾸던 낙원이 바로 그 안이 아니었던가.
안쪽에서 몸부림치는 배신자들의 움직임에 염도사냥꾼이 핏발이 선 눈으로 보다가 이빨을 꽉 깨물었다.
‘이대로는 안 돼…….’
원래부터 불완전하게 치러진 특화의식. 여기서 더 비틀렸다가는 아예 실패작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모든 계획이 실패하는 일이 있더라도, 설령 화천태도가 적에 손에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만큼은 안 된다.
그래야만 딸의 영혼이 가치 있게 쓰였음이 증명될 테니.
‘깨진 그릇부터 보강해야 돼. 그러려면…….’
적성을 가진 영혼이 필요하다. 그 생각에 염도사냥꾼의 눈이 이세훈이 튕겨져 나간 곳을 바라보았다.
『공양』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유망주. 그 영혼이라면 필시 그릇을 보강하고도 남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순간 염도사냥꾼이 다급히 달렸다.
화르르륵!
사방으로 무차별적으로 뻗어 나간 불꽃이 나무를 집어삼키고 숲 전체를 불태워간다.
순식간에 번져가는 불꽃 속에서 염도사냥꾼이 이세훈의 모습을 발견했다.
“죽을 뻔했네…….”
피투성인 상태로 서 있는 이세훈.
화천태도에 찔렸던 가슴은 옷만 찢어져 있고 몸은 멀쩡했는데 희미하게 보랏빛 불꽃이 맴돌고 있었다.
그제야 염도사냥꾼은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차리며 두 눈을 부릅떴고, 이세훈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기술도, 대응도 나쁘진 않았는데…… 내가 너한테 속고 있었을 거라고 순진하게 믿었던 게 가장 치명적이었네.”
염도사냥꾼은 나름대로 잘 숨겼다고 생각한 듯하지만 이세훈은 그의 이성이 돌아온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급소를 노린 공격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쪽을 의식하는 듯한 움직임이 전신에서 희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쌓아 올린 기술. 그게 오히려 걸림돌이었지.’
그때부터 이세훈은 염도사냥꾼이 심장을 공격하게끔 유도하며 움직였고, 결정적인 순간에 몽상수납을 사용하여 공격을 빗겨냈다.
그리고 승천제의 반지를 사용하여 화천태도의 축, 힘을 담아내고 있는 그릇을 완전히 박살 낸 것이다.
“……그래. 내 실수군.”
이세훈의 비웃음에 염도사냥꾼은 끓어오르는 분노와 힘을 억누르며 이야기를 이었다.
“그러니까 너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제안하마. 이 무구를 같이 완성시키지 않겠나?”
“…….”
“이 안에 담긴 내 딸의 영혼…… 거기에 너의 영혼까지 더해진다면 이 무구도 ‘신화’의 영역에도 다다를 수 있어!!”
어떻게든 이세훈을 설득하기 위해 염도사냥꾼이 애원하듯이 소리쳤다.
모든 대장장이가 생애 한 번이라도 도달하고 싶어 하는 단계인 ‘신화 등급’.
회귀 전을 통틀어서 세계의 몇 없는 그 등급에 도달할 수 있다면 확실히 대단한 업적일 것이다.
“누가 그걸 원하는데?”
“그거야…….”
“죽은 네 딸이, 그 안에서 울부짖으며 빠져나가려는 영혼들이, 정말 그걸 원한다고 말하든?”
이세훈의 삐딱한 물음에 염도사냥꾼이 무언가에 홀린 듯이 폭주하는 화천태도를 바라보았다.
─────!
타오르는 불꽃 속에 희미하게 엿보이는 일그러진 얼굴들. 그 모습에 염도사냥꾼의 눈동자가 흔들리다가 이내 이를 악물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이 안은 분명히 낙원이……!”
아──
귓가에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거기에 발작하던 염도사냥꾼의 몸이 흠칫 떨리며 굳어졌다.
“딸……?”
자신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일까.
첫 부름 이후 이어지는 희미한 중얼거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뭉개진 발음에 염도사냥꾼이 귀를 기울였고.
아파요
아이의 힘없는 절규가 아비의 귓가에 처음으로 닿았다.
─────!
짐승 울부짖음과 같은 절규가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고, 이성이 무너지며 억눌려지던 화천태도의 힘이 미친 듯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숲을 집어삼키다 못해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 같은 힘. 그 모습에 이세훈이 그 규모를 가늠했다.
‘저 정도면…… 일단 이 일대는 다 날아가겠네.’
근처가 주택가인 만큼 피난이 모두 이뤄지지 않았다면 자신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이들이 죽게 될 것이다.
그 예상한 모습에 이세훈이 곁으로 다가온 김인철에게 손을 뻗었다.
“주세요.”
“…….”
이세훈의 손에 김인철이 자신이 전력을 다해 가열한 오색화도를 바라보았다.
우우웅
화적초의 기능으로 최대한 가열을 해봤지만, 그래 봐야 화천태도의 티끌도 되지 않는 힘이다.
그런데 이런 보잘것없는 것으로 도대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내 영혼으로 화천태도를 고치거나 힘을 비튼다면…….’
이세훈이라도 살아남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 실 날 같은 가능성에 김인철이 각오하며 움직이려던 순간.
빠악
턱을 스치는 발길질과 함께 그 몸이 아래로 무너져 내렸다.
“달라니까 쓸데없는 생각이나 생각하고…… 쯧.”
혀를 찬 이세훈은 쓰러진 김인철에게서 오색화도를 뺏어 든 다음 눈앞을 바라보았다.
화르르륵!
불꽃으로 뒤덮인 세계와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처럼 타오르는 거센 불꽃. 바위로 계란 치기나 다름없으며, 자신이 이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 비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이세훈은 오래전, 사부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깔끔한 공방. 최상급의 재료. 넉넉한 시간. 이딴 헛소리는 모두 머릿속에서 집어치워라.’
공방은 심심하면 파괴당하고, 필요한 재료는 언제나 손에 없으며, 늘 시간이 부족한 것이 대장장이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대장장이가 진정으로 믿고 갈고 닦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부에게 질리도록 들어왔던 해답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 이세훈이 오색화도를 심장에 찔러 넣었다.
푸욱!
불꽃으로 달군 도신이 가슴을 뚫고 등 밖으로 삐져나온다.
회귀 후 처음으로 겪어보는 그 기괴하고 아찔한 감각. 심장을 불태우는 그 열기를 통해 이세훈은 자신의 피, 그 안에 담긴 영혼의 정보를 불러냈다.
영연신마법靈硏身磨㳒 마혈기魔血氣
쿠드득─콰득─
흘러내리는 피가 오색화도에 덧씌워지고 이내 이세훈이 영혼 속에 각인한 무구의 형태를 ‘재현’해낸다.
영혼과 육체를 연마하여 공방이자 저장고로써 사용하는 기술.
영연신마법의 비전이 이세훈의 손에서 펼쳐졌고.
푸화악!
한 자루의 검이 심장의 안쪽에서 벼려졌다.
새카맣게 타버린 숯처럼 곳곳이 바스러진 검신. 군데군데 뻗은 가지들은 칠지도의 형상을 띄고 있었으나 말라비틀어져 볼품없었다.
그 기괴한 ‘마검’을 움켜쥔 이세훈은 천천히 검을 옆으로 뻗으며 불꽃을 풀어냈다.
주르륵
마검에서 흘러내린 불꽃이 핏물처럼 아래로 흘러내리며 이내 불타오르는 숲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한다.
화천태도의 불꽃을 집어삼키는 검붉은 불꽃. 그 섬뜩한 광경에 하염없이 울부짖던 염도사냥꾼의 몸이 흠칫 떨리다가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화르르륵!
불타오르는 숲을 등진 채 기괴한 검을 늘어뜨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이세훈.
그 가증스러우면서도 두려운 적의 모습에 염도사냥꾼의 이성이 아주 잠시 돌아왔고.
─────!
남은 모든 힘을 불태우며 이세훈을 향해 덤벼들었다.
육체가 무너지고 거대한 불꽃으로 타오르며 쇄도해 오는 염도사냥꾼과 화천태도. 그 모습에 이세훈이 손에 쥐어진 마검을 휘둘렀고.
혼원무구魂原武具 성염환星染煥
검붉은 불꽃이 눈앞의 세상을 모조리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