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38화
작은 주방 옆에 놓인 식탁.
분홍색의 아기자기한 앞치마를 입은 7살 남짓한 소녀가 낑낑거리며 도마 위에서 빵 반죽을 주물럭거렸다.
움직임은 제대로지만 손이 작아서인지 영 느린 속도.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자니 묘하게 불편함이 느껴져 물었다.
“도와줄까?”
기왕이면 손이 큰 자신이 하는 편이 빠르지 않겠는가. 그 물음에 소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요. 12번 아저씨는 손재주가 없잖아요.”
“…….”
내년에 수석연구원 자리가 확정된 자신에게 저런 말을 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어린애의 말에 발끈하는 것이 우습기도 했고 혼자서 만들고 싶어 하는 기색이 보였기 때문이다.
식탁 위에 흐르는 기묘한 침묵에 견디지 못하고 다른 화젯거리를 꺼냈다.
“네 아빠는?”
“일하러 가셨어요. 다음 주에 있을 공양의식 때문에 바쁘시대요.”
“…….”
소녀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공양의식이라는 단어에 아주 잠깐 표정이 굳어졌다.
영혼을 담아낼 그릇, 무구에 혼을 바쳐서 완성시키는 의식. 그동안 수없이 많이 이뤄져 온 실험이지만 어째서인지 해가 지날수록 그 과정이 껄끄럽게 느껴진다.
‘지친 건가…….’
이번 의식이 워낙 중요한 프로젝트다 보니 계속 긴장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스스로에게 변명하듯 생각을 이어나가던 그때. 이번에는 소녀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이번 공양의식은 아저씨가 진행하는 거죠?”
“……나를 포함해서 다른 연구원들도 같이하는 거지.”
“어떻게 진행되나요?”
여전히 반죽을 주물럭거리며 물어보는 소녀.
요 몇 년, 아버지와 단둘이서 지낸 탓일까. 일찍 철이든 것 같은 그 모습에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몸을 안정시킨 다음에 그릇과 동조시켜서 안쪽에 혼을 전이시킨다. 이번에는 불꽃을 통해서 이뤄지겠군.”
“불꽃…….”
“전신에 불꽃이 붙으면서 자연스럽게 안쪽으로 녹아드는 거다. 고통은 없지.”
변명을 하듯이 덧붙인 뒷말에 반죽을 주무르던 소녀의 손이 잠시 멈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금 천천히 움직이며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엊그제 아빠가 그랬어요. 이번 공양의식은 모든 연구소를 통틀어 최고의 의식이 될 거라고, 자신이 그렇게 만들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요.”
“…….”
“그렇게 기뻐하는 아빠는 처음 봤어요. 제가 처음 간식을 만들어드렸을 때도 그만큼은 아니었는데…….”
서운함과 씁쓸함이 느껴지는 중얼거림.
그런 소녀의 목소리에 어째서인지 얼굴을 볼 수가 없어 자연스럽게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사실 경호대장의 딸은 이전부터 뭔가 불편했었다. 시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어린아이 같으면서도 저 성숙한 모습이 왠지 모르게 불쾌감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그 망할 놈…….’
애초에 초대를 했으면 자리는 지키고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속으로 경호대장을 욕하고 있으니 소녀가 다시금 이야기를 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엄마의 의식이 실패했을 때는 엄청 좌절하셨으니까…… 제가 이번에 잘한다면 아빠도 기뻐하시겠죠.”
“…….”
“그리고 다들 공양의식은 좋다고 하잖아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궁극의 행복이라고…… 절 괴롭히던 남자애도 부럽다고 칭얼거릴 정도였으니까요.”
공양의식은 완전한 무구를 만들어내는 의식이자 불완전한 육신에서 벗어나는 의식.
혈육으로 이뤄진 육체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충만감. 그리고 한 단계 격을 오른 황홀감이 영혼을 가득 채워준다.
그것이 이곳 『공양』에서 가르치는 지식이었고, 실제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모두 연구결과에 따른 것이니.
‘그래. 틀린 건 아니지…….’
공양의식의 재료로 선택받은 이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자신의 영혼을 바친다.
고문이나 협박과 같은 강제적인 수단으로 그들을 사용하면 품질이 저하되거나 성능이 뒤틀리는 경우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간의 시선과 상관없이 자신들의 행위에는 아무런 문제는 없다. 애초부터 그들은 가혹한 현실보다 완전한 무구에 몸을 받치기로 한 자들이니까.
그 상념이 끝없이 깊어지려던 찰나.
“아저씨.”
소녀의 목소리가 무겁게 다가왔다.
“좋은 게 맞죠?”
“…….”
“아저씨한테 듣고 싶어요.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똑똑하고…… 거짓말을 안 하실 것 같으니까요.”
“…….”
“부탁드릴게요…… 그냥…… 그 말이 듣고 싶어요.”
간절하게 이어지는 부탁에 주먹이 움켜쥐어지고 입술을 짓씹었다. 그리고 힘겹게 입을 열어 대답했다.
“네가 그리 믿는다면…… 그리될 거다.”
공양의식은 낙원으로 향하는 길이다. 하지만 그 낙원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어디로 향하는가.
자신조차 알 수 없었기에 그 대답이 최선이었고, 시야 끄트머리에서 반죽을 멈춘 작은 손이 보였다.
그리고 그 위로 떨어지는 투명한 물방울. 그 모습에 자연스레 시선이 위로 올라갔고.
“무서워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얼굴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 * *
“……!”
의식이 돌아온 순간. 김인철은 식은땀에 젖은 채로 재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공방의 안쪽을 가득 채운 보랏빛 안개. 딱 봐도 심상치 않은 그 상태에 숨을 멈추고 곧장 환풍 장치를 가동시켰다.
후우우웅!
공기 중에 섞인 환각제와 각성제. 그리고 그것을 강화시키던 몽환의 마력이 모조리 바깥으로 배출된다.
탁 트인 공방의 모습에 김인철은 내부를 살폈고, 이내 맞은편에서 익숙한 사내가 보였다.
“…….”
공방의 벽에 기댄 채 이쪽을 바라보며 서 있는 사내. 기억하던 때보다 얼굴이 초췌하게 변했지만 입가에 자리 잡은 특유의 미소는 여전하다.
그 잊을 수 없는 모습에 김인철이 가만히 보고 있을 때. 사내, 염도사냥꾼이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야.”
“……그래. 오랜만이군. 경호대장.”
오랜만에 불러본 명칭에 김인철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고, 그 모습에 염도사냥꾼이 피식 웃었다.
“경호대장은 때려치운 지 오래됐으니까 됐어. 지금은…… 그래, 염도사냥꾼이라고 부르면 되겠네.”
“염도사냥꾼…… 너였었군.”
“맞아. 배신자를 찾느라 조금 여기저기 들쑤셨는데 그런 별명이 붙어버렸더라고.”
화속성 도를 만들어낸 장인들만 습격하여 손을 잘라간 정체불명의 범죄자.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었던 적의 정체에 김인철이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지금 일어난 사건들도 나를 노리고 저지른 거냐?”
“그건 아니야. 아니지, 맞기도 한데 복합적이라고 해야 하나…… 뭐, 나도 자세히는 몰라. 결정은 윗놈들이 하는 거니까.”
어깨를 으쓱거린 염도사냥꾼이 씩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보다 많이 늙었네. 마력은 노화도 방지해 준다던데…… 20년을 정통으로 맞은 것 같아.”
오랜 친구와 만난 것 같은 장난스러운 태도.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언제 폭발할지 모를 만큼 불안정했다.
뜬금없이 공격을 해올 수도 있었기에 김인철은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며 천천히 대답했다.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아. 이거 한 방 먹었네.”
쓴웃음을 지은 염도사냥꾼이 한숨을 내쉬었다.
“수련은 열심히 했는데……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답이 없더라고. 매일 2시간도 못 자는 데다 그마저도 악몽이다 보니 너무 힘들었거든.”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염도사냥꾼이 천천히 김인철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12번…… 아니, 이제는 김인철인가?”
“……마음대로 불러라.”
“그래. 인철이 아까 보니 너는 꽤 편안하게 자는 것 같던데…….”
김인철을 바라본 염도사냥꾼이 두 눈을 빛냈다.
“무슨 꿈을 꿨지?”
잠들었을 때 바로 죽이지 않았던 것은 이 대답을 듣기 위해서인가.
그 비정상적인 사고방식에 김인철이 경계하면서도 솔직하게 대답했다.
“연구실에서의 기억이다.”
“그래? 세계 100대 장인으로도 뽑히고 바벨에서 지도교수도 하고 있길래 완전히 잊고 사는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아니었던 모양이네.”
비아냥거리는 듯하면서도 안심하는 듯한 대답. 그 모습에 김인철이 음울하게 대답했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으니까.”
연구소에서 빠져나와 전 세계를 떠돌다 바벨에 정착하여 새로운 삶을 얻었다고 해도 12번 연구원으로서 살아온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김인철은 언제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 과거의 일부가 지금 자신의 앞에 찾아온 것이다.
“좋은 대답이야. 혹시 잊고 살았으면 어쩔까 고민했거든.”
스윽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염도사냥꾼이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키며 김인철을 바라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이제 끝자락이라서 말이야.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고.”
“……다음?”
“그래.”
김인철의 물음에 염도사냥꾼이 미소를 지었다.
“오늘 나와 같이 갈 테니까.”
콰앙!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염도사냥꾼의 몸이 단숨에 바닥을 박차며 왼손을 앞으로 뻗어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좁혀진 거리.
과거에도 숙련된 A급 영웅이었고, 2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은 준S급이라고 봐도 무방한 실력자였다.
평생을 대장장이로 살아온 자신으로서는 싸움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만큼 강력한 적이었고.
딸깍─
그렇기에 이 순간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 왔다.
카앙!
김인철의 주변으로 두터운 방벽이 펼쳐지며 왼손을 막아냈고, 이어서 사방의 벽면이 열리며 장착된 포탄들을 미친 듯이 쏘아냈다.
콰가가가강!!
눈 깜짝할 사이에 공방을 휩쓰는 폭발.
단순한 포탄이 아니라 마력의 운용을 방해하고 독극물이 담긴 특수한 물건으로 고위 영웅에게도 치명적으로 적용되는 물건들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죽일 수 없다.’
다른 것도 아니고 『공양』 그자들이 염도사냥꾼을 홀로 보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김인철은 준비해둔 함정이 시간을 끄는 사이 뒤쪽에 지키고 앉아 있던 화로의 뚜껑을 열었다.
화아아악!
바깥으로 터져 나오는 열기. 그 중심에 힘껏 가열되고 있는 부서진 불꽃을 본 김인철이 곧장 맨손으로 그 자루를 붙잡고 끄집어냈다.
치이익!
불꽃에 강한 내성을 지닌 육체조차 단숨에 불태우기 시작하는 무시무시한 힘. 그에 김인철이 눈매를 일그러트리면서도 준비해둔 검은 손잡이, 선화목을 끝에 연결시켰다.
화르륵!
부서진 불꽃와 맞닿자 선화목이 불타올랐지만 오랫동안 달궈놓은 탓에 녹아내리지 않고 견뎌냈다.
그 모습에 김인철은 녹아내리기 시작한 왼손에 더욱더 마력을 불어넣으면서 부서진 불꽃의 자루를 선화목의 안쪽 끝까지 밀어 넣어 결합시켰다.
우우웅─
두 물건이 맞물린 순간. 왼손에 옮겨붙던 불꽃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마력을 연료로 사용자를 불꽃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선화목의 효과. 그것이 부서진 불꽃의 열기를 억눌러준 것이다.
“후우…… 후우…….”
불완전하게나마 부서진 불꽃을 제어할 수 있게 된 김인철은 곧장 몸을 돌려 염도사냥꾼을 바라보았다.
화르르륵!
폭발로부터 보호해 주던 방벽이 부서진 불꽃의 열기를 견디지 못해 녹아내렸고, 자욱한 연기 속에서 염도사냥꾼의 모습이 드러났다.
온몸에 박혀 있는 수십 개의 무구. 하나하나가 영웅 등급의 무구였으며 그 안에 담긴 힘과 저주가 계속해서 몸을 갉아먹고 있었다.
평범한 영웅이었다면 이미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치명상.
“하하하…… 준비가 꽤 철저한데.”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염도사냥꾼은 즐겁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기괴하기 짝이 없는 모습에 김인철이 부서진 불꽃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이제 끝내지.”
“아아. 그래. 끝내야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인 염도사냥꾼이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오른팔을 움켜쥐었다.
“발악하는 건 다 봤으니까.”
주르륵
핏물이 흘러내리듯 잘려나간 어깻죽지에서 주홍빛의 불꽃이 흘러내려 팔의 형상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손에서 생겨나는 기다란 도.
부서진 불꽃과 비슷하게 생겼으면서도 더욱 거대한 힘을 품고 있는 그 모습에 김인철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건…… 설마!’
머릿속에 울리는 경종. 그와 동시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두 사람이 불꽃의 도를 동시에 휘둘렀고.
─────!
태양과도 같은 거대한 불꽃이 두 사람을 집어삼켰다.
갑작스러운 부유감과 흔들리는 몸.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고 싶었지만, 시야는 뿌옇게 물들어 돌아올 기미가 안 보였고 귀 역시 고막이 터졌는지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혹시 이미 죽은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적막한 주변. 그리고 아주 조금씩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후우웅─
몸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 뿌옇던 시야가 조금씩 회복되고 이내 주변의 풍경이 김인철의 눈에 들어왔다.
‘숲…….’
공방 뒤편에 있던 산. 수백 미터를 튕겼다는 것을 깨달은 김인철이 자신의 몸을 살폈다.
부러지지 않은 곳을 찾는 게 빠를 정도로 엉망이었고, 안쪽은 방금 충돌로 마력역류가 일어났는지 뒤틀려 있는 감각과 함께 입가로 피가 새어 나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심한 것은 부서진 불꽃을 휘두른 두 손.
처음 왼손은 아예 숯덩이처럼 타버렸고 오른손 역시 엄청난 화상을 입은 상태였다.
‘끝인가…….’
이 지경인데도 몸에서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천천히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에 김인철은 두려움보다 걱정이 들었다.
방금 일격으로 염도사냥꾼을 제압할 수 있었을까. 부디 그가 살아 있지 않기를 간절히 빌고 있을 때.
“엉망이네.”
맞은편에서 여유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화르륵
불꽃의 검과 부서진 불꽃을 양손에 쥔 채 여유롭게 걸어 올라오는 염도사냥꾼.
온몸에 새겨진 상처에 불꽃이 피어오르자 조금씩 아물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툭 투둑!
전신을 꿰뚫은 무구들을 녹이거나 밀어내면서 치료되는 몸. 과거에 없었던 그 능력에 김인철이 그 진상을 깨닫고 중얼거렸다.
“특화의식을 치렀군…….”
『공양』에서 만들어낸 무구에 육체를 특화시키는 작업.
완성품에만 치러지는 작업이었으며, 능력을 인정받은 이들만 받을 수 있는 작업이었다.
“그래. 네가 회수하지 못한 근원을 복원해낸 다음에 내 몸에다가 이식했지.”
부서진 불꽃의 근원. 그것을 주작의 힘과 성화공의 화로로 부활시킨 다음 체내에 심었다.
그로 인해 염도사냥꾼은 주작의 재생 능력뿐만 아니라 부서진 불꽃에 버금가는 화력을 손에 얻게 된 것이다.
“드디어 만났구나…….”
자신의 손에 들린 부서진 불꽃을 본 염도사냥꾼이 벅차오르는 표정을 지었다.
딸의 영혼은 그릇을 완성시킬 뼈대로 쓰였기에 이 안쪽에 깃들어 있었다.
이제 이것을 자신의 몸에 이식한 근원과 하나로 합친다면 완전한 무구를 완성해냄과 동시에 딸과 만날 수 있게 되리라.
오랜 세월을 기다려온 순간에 염도사냥꾼이 부서진 불꽃을 흡수하려던 그때.
“하지…… 마라…….”
김인철이 목소리를 쥐어 짜내며 이야기했다.
“그걸 결합시키면…… 네 딸의 영혼은 다시 그 안에 묶이게 된다…… 정말 그걸 보고 싶은…….”
콰앙!
말이 이어지기도 전에 김인철의 몸이 걷어차였고, 수십 그루의 나무를 부수고 거대한 바위에 처박혔다.
“컥…….”
속에서 올라온 피가 입 밖으로 터져 나왔고 시야가 흐려진다. 정신을 못 차리는 김인철의 모습에 염도사냥꾼이 다가와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강제로 고개를 들게 만들었다.
“이 더러운 배신자 새끼가 한 방 맞장구를 쳐주지 주제를 모르고 기어오르는군. 뭐? 내 딸이 여기에 묶인다고?”
“…….”
“내 딸은 완전한 무구를 만들고자 자신의 영혼과 육신을 바치고 먼저 낙원으로 향한 거야. 제 엄마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그 어린 나이에 해내고자 열심히 해냈단 말이다.”
딸을 모욕당했다는 사실에 염도사냥꾼은 그동안 보였던 여유를 내던지며 억눌렀던 분노와 혐오감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런데 동료들을 배신하고 과거를 숨긴 채 이곳에서 위선자 행세나 하던 네놈이 그렇게 잘난 듯이 말할 자격이 있나?”
“…….”
“어디 한번 대답해 봐라. 12번, 아니, 김인철.”
염도사냥꾼의 재촉에 김인철은 끊어지려는 정신을 다잡으며 대답했다.
“나는…… 스스로가 원한다면 인간의 혼을 재료로 사용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들 모두 완전한 무구를 만들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했고…… 나 역시 그랬었으니까.”
언젠가 자신의 차례가 오더라도, 그때의 자신이라면 기꺼이 그 한몸을 받쳤을 것이다. 처음부터 그런 각오를 가지고 『공양』의 일원이 되었으니.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지원자에 한해서 치러지던 의식은 재료를 선정한 다음 그자를 설득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적합한 영혼, 재료를 사용하기 위해 그를 설득한다. 그 역시 제대로 이뤄졌다면 믿을 수 있겠지만, 김인철은 그때부터 그것을 순순히 믿을 수 없게 되었다.
“그 설득이 정말로 제대로 이뤄지는 것일까? 그리고 완전한 무구의 안쪽이 낙원이라면…… 실패한 무구의 안쪽은 그들에게 어떤 장소인 거지?”
설령 그 안이 지옥 같다고 해도 그들이 스스로 각오한 길이라면 말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면, 자신들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수급해 오는 재료…… 고아원과 빈민가에서 데려온 아이들……. 정말 『공양』은 그들에게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나?”
재료로 사용하기 좋은 영혼들이 우연히 고아와 빈민으로 전락하여 자신들에게 들어온 것이 정말 우연인 걸까.
한 번 피어난 의문은 끝없이 이어지며 김인철의 신념에 균열을 만들어냈고, 거기에 쐐기를 박은 것이 바로 염도사냥꾼의 딸이었다.
“네 딸은 공양의식을…… 죽음을 두려워했다. 그저 아빠가 기뻐했으면 하는 마음에 끝까지 제 마음을 숨기고 거기에 올라선 거지.”
“…….”
“정말로 모르는 거냐? 네가 진짜 부모라면…… 그것을 모를 수…….”
푸욱!
김인철의 말이 이어지는 것보다 더 빠르게 불꽃의 도가 허벅지를 꿰뚫었다.
치이이익!
“크윽…….”
뼈와 근육을 녹이고 신경을 불태운다.
방금까지 희미했던 감각들이 미친 듯이 날뛰었고, 흐릿했던 시야가 스파크가 튀듯이 다시금 선명해지며 염도사냥꾼의 얼굴을 보였다.
“궤변이 길군. 제 좋을 대로 말하는 게 같잖기 그지없어.”
“…….”
“내 딸이 두려워했다…… 그래. 끝까지 그렇게 믿겠다면 직접 보여주는 게 빠르겠군.”
불꽃의 도를 없애고 자신의 몸에 남아 있는 단창을 뽑아낸 염도사냥꾼이 그것을 김인철의 어깨에 찔러 넣었다.
푸욱!
“컥……!”
몸을 꿰뚫고 뒤쪽의 바위에 깊이 박히는 단창.
그대로 김인철의 몸을 고정시킨 염도사냥꾼이 뒤로 물러서며 입가를 비틀었다.
“잘 봐둬라.”
불꽃으로 이뤄진 오른손으로 부서진 불꽃을 움켜쥔 염도사냥꾼은 곧장 그 안에 근원의 힘을 불어넣었다.
우우웅!
부서진 불꽃의 도신에 새겨져 있던 균열. 그 안쪽으로 불꽃이 차오름과 동시에 불꽃이 피어오르며 그 형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곧게 뻗은 주홍빛의 도신. 코등이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붉은 수정구가 요사스럽게 빛났고 그 주변에 불꽃이 맺혀 손잡이인 선화목과 도신을 연결시켰다.
화르르륵
수십 년의 세월을 지나 드디어 완성된 오행무구 화천태도.
그 힘이 사방으로 뻗어 나감과 동시에 염도사냥꾼의 귓가로 한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아아───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오늘까지 자신을 지탱해 준 딸의 목소리. 그 환희에 찬 목소리에 염도사냥꾼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이내 눈물을 흘렸다.
“그래…… 이제 더 이상 널 놓치지 않으마…… 어디에도 보내지 않을 거야…….”
화천태도의 안에 선명히 느껴지는 영혼. 마치 한 몸이 된 것 같은 일체감에 염도사냥꾼은 끝없는 수십 년의 세월을 보상받는 듯한 충족감을 느꼈고.
──아아아악!
김인철은 끝없는 절망을 느꼈다.
타오르는 도신에서 사방으로 터져 나오는 비명 소리. 그릇과 근원을 만들어내는 데 들어간 수백 수천 명의 영혼.
그것들이 안쪽에서 장작처럼 불태워지며 강력한 불꽃을 만들어낸다. 그 끔찍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김인철이 탄식을 내뱉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저들을 해방시킨다는 목적은 이루지 못하는가. 전신에서 느껴지는 무력감에 김인철이 허탈하게 보고 있을 때.
부웅─
숲을 가로지르며 나타난 붉은색의 거대한 오토바이가 염도사냥꾼을 덮쳤다.
쿠과가각!
오토바이에서 뻗어 나온 은색 실이 염도사냥꾼의 몸을 꽁꽁 묶어 그대로 지면에 갈아버리며 나아간다.
그리고 그대로 한참을 달려 멀찍이 떨어진 순간.
콰아아아앙!!!
무시무시한 폭발이 숲 너머에서 터져 나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교통사고. 그 상상을 초월한 광경에 김인철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왜 내 오토바이가…….’
오랜 세월 동안 개조를 거듭해서 몰고 다녔던 자신의 애마. 그게 왜 갑자기 나타나고, 또 폭발한단 말인가?
그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굳어 있을 때.
“후우.”
오토바이를 힘차게 내던지며 착지한 이세훈이 씩 웃었다.
“구하러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