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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137화 (137/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37화

불이 꺼진 거대한 통로.

대형 화물트럭 두 대가 나란히 들어오고도 남을 그 넓은 통로 위에서 후드를 뒤집어쓴 청년, 비에르 바르무트가 앞쪽을 바라보았다.

콰아아앙!!

통로의 갈림길 너머에서 울려 퍼지는 굉음.

후끈한 열기와 함께 빛이 번쩍였고, 거대한 무언가와 싸우는 검사의 그림자가 현란하게 움직인다.

마치 한편의 그림자극과 같은 그 움직임이 계속될 때쯤. 한 차례 묵직한 쇳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그림자의 움직임이 뚝 하고 멎었다.

“끝났다.”

갈림길 너머에서 들려오는 무미건조한 목소리.

그 신호에 비에르가 앞으로 걸음을 옮겨 그림자로만 보고 있던 전장을 살펴보았다.

화르르륵

거대한 골렘의 잔해를 불태우고 있는 불꽃. 곳곳이 갈라지고 녹아 있는 그 처참한 모습에 비에르가 굳은 표정을 지었다.

‘경비용 골렘의 맷집이 A+급은 된다고 했었지.’

그것을 단신으로 쓰러뜨렸다는 것은 S급이거나 그에 버금가는 화력을 보유했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자신의 상상 이상으로 강력한 무력에 비에르가 골렘의 잔해를 등지고 서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

검붉은색의 경갑에 180cm 정도는 기다란 붉은 도.

망토로 가려진 오른쪽 어깨는 휑하니 비어 있고 얼굴은 며칠을 잠을 자지 못한 것처럼 초췌해 약해 보였지만, 그 눈빛과 분위기가 상당한 위압감을 안겨주었다.

거기다 몇 차례의 전투가 있었는데도 다치기는커녕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

‘혼자 보낸 이유가 있었군.’

처음에는 외팔이를 혼자 대뜸 보내기에 자신을 버린 말로 사용하는 것인가 했는데 아무래도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비에르가 평가를 수정하는 사이 사내가 메마른 눈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다시 들어가지.”

자신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는 목소리.

일꾼으로 부려먹는 듯한 그 태도에 순간적으로 불쾌감이 치밀어 올랐지만 비에르는 금방 그 감정을 억눌렀다.

‘지금은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다.’

인형사, 그리고 만마전에게 협력하여 그들을 바벨로 끌어들인 순간 무슨 일이 있어도 목적을 완수해야만 한다.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며 자존심을 억누른 비에르는 사내, 염도사냥꾼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비에르가 선두에 서는 것으로 두 사람이 골렘의 잔해를 지나서 다시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3분 정도 이동했을 때쯤. 끝없이 이어진 통로를 살피던 비에르가 두 눈을 회색빛으로 물들이며 앞으로 손을 뻗었다.

우우웅!

손끝에서 뻗어나가는 희미한 진동.

금속의 근원과 공명을 일으키는 비에르의 스킬 ‘광원공명’이 앞으로 퍼져 나갔고, 잠시 후 공간이 일그러지며 통로의 풍경이 변했다.

눈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격벽문. 그 안쪽의 금속과 공명된 것을 확인한 비에르가 곧장 마력을 끌어올려 제어했다.

쿠구구궁

그러자 굳게 닫힌 문이 천천히 양옆으로 열리기 시작했고 잠시 후 새로운 공간이 두 사람의 앞에 나타났다.

휑하게 느껴질 만큼 텅 빈 내부.

안쪽에 낡은 화로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는데 그 모습에 비에르가 무언가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타닥─

장작 몇 개를 태우며 작게 타오르고 있는 화로의 불.

겉으로만 볼 때는 박물관에 보관되어야 할 정도로 낡아빠지고 구시대적인 구조를 가진 화로였다.

하지만 그 모습, 정확히는 그 안쪽에 피어난 불꽃에 비에르는 뭔가 알 수 없는 힘을 느꼈다.

‘저건…… 도대체…….’

안내와 해야 할 일을 전달받긴 했지만 정확히 무슨 물건이 있는지는 듣지 못했기에 절로 당혹스러웠다.

저런 화로가 도대체 왜 여기에 있나 싶어 비에르가 뚫어져라 보고 있을 때.

꽈악─

염도사냥꾼이 어깨를 붙잡아 뒤로 패대기쳤다.

쿠웅!

저항할 새도 없이 바닥에 나뒹군 비에르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노려보았다.

“지금 무슨…….”

염도사냥꾼을 추궁하려던 찰나. 앞쪽을 다시 본 비에르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타닥─

분명히 200m는 족히 떨어져 있던 화로가 어느샌가 자신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혹시 화로가 움직였나 했지만 뒤를 보았지만 보이는 것은 다가온 만큼 멀어진 입구.

그 모습에 비에르가 뒤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내가 저 불꽃에 홀렸단 말인가?’

자신이 화로의 불꽃 속에 몸을 내던지려던 했음을 깨달은 비에르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릴 때부터 장인들의 공방을 오가며 수많은 화로와 특수한 불꽃을 봐왔었지만 이런 경우는 난생처음이었다.

‘승천제는 도대체 뭘…….’

비에르가 식은땀을 흘리며 불꽃을 보고 있을 때. 앞에서 바라보던 염도사냥꾼이 담담히 이야기했다.

“성화공의 화로다.”

“……뭐라고?”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완등자가 되기 전까지 사용하던 화로지. 저 불꽃에는 그자의 권능 일부가 깃들어 있다.”

염도사냥꾼의 설명에 비에르가 다시금 놀란 표정으로 눈앞의 화로를 바라보았다.

성화공의 권능이 깃든 화로라니. 그 이야기에 비에르는 자신이 홀린 것을 납득하면서 한편으로 의문을 가졌다.

‘만마전은 이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지?’

애초에 이놈들은 정말 만마전이 맞는 것일까.

그동안 거래해 온 마인이나 범죄집단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에 비에르의 눈이 염도사냥꾼을 향했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더 있다.’

무언가 이용당하는 듯한 상황에 다시금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비에르는 금방 그것을 털어냈다.

‘어차피 이번 일이 끝나면 알게 되겠지.’

차차 알아가게 될 일에 다급하게 굴 필요는 없다. 비에르가 마음을 다잡을 때쯤에 염도사냥꾼이 자신의 도를 내밀었다.

“이걸 화로에 넣은 다음에 공명을 일으켜라.”

“그게 다인가?”

“첫 시동만 걸면 나머지는 결계가 알아서 이쪽으로 마력을 공급해 줄 거다.”

보르시파에 펼쳐져 있는 주작의 결계 ‘주천염혼’에 의해 변질된 화속성마력을 이쪽으로 모은다.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떠올린 비에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도를 건네받았다.

‘최소 영웅 등급 최상품…… 이런 물건을 시동용으로 사용하는 건가.’

도대체 이 화로를 통해 무엇을 만들어내려는 것일까. 그에 대해서 대장장이로서 호기심을 느끼며 비에르가 도를 안쪽에 집어넣었다.

화륵!

도신에 달라붙어 작게 타오르는 불꽃.

겉보기에는 끝에서부터 야금야금 타고 올라 달라붙기만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검을 쥐고 있는 비에르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도가…… 잡아먹히고 있다고……?’

도에 담겨져 있는 힘과 기능. 그 모든 것들이 저 작은 불꽃에 덧씌워지며 무언가 다른 물건으로 변질되고 있다.

단숨에 재료를 덧씌워 버릴 만큼 압도적인 존재감. 심상치 않은 불꽃의 힘에 비에르는 도가 완전히 망가지기 전에 재빠르게 광원공명을 펼쳐냈다.

우우웅─!

비에르와 도가 공명을 일으킨 순간. 돌연 모든 감각이 몸을 벗어나 사방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이건…….’

화로에 연결된 주작의 힘. 그것이 도를 통해 비에르의 일부가 된 순간, 보르시파 전역에 퍼진 화속성마력이 그의 제어하에 들어간 것이다.

“하…… 하하…… 하하핫!”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비에르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광활한 마력을 제어하고 있다는 압도적인 전능감.

기존에 자신의 육체와 마력은 먼지처럼 느껴질 만큼 그 거대한 힘에 비에르의 머릿속이 단숨에 흐트러졌다.

그리고 마력과의 공명이 더욱 깊어지며 그 영향력이 사방으로 뻗어 나간 순간.

우웅

보르시파의 외곽, 주택가로부터 희미한 공명이 느껴졌다.

자신과 비슷하면서도 텅 빈 껍질 같은 존재감. 이쪽을 부르고 있는 듯한 그 감각에 비에르가 의아해하며 신경을 곤두세우던 그 순간.

“거기 있었구나.”

뒤쪽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푸욱!

귓가에 들려오는 섬뜩한 소리와 가슴에서 느껴지는 이질감. 바깥으로 붕 떠올랐던 감각이 곤두박질치듯이 현실로 끌어 내려졌고, 비에르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심장을 꿰뚫고 나온 붉은 손날. 그 모습에 비에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염도사냥꾼을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너희 가문의 가주가 그러더군.”

비에르를 바라본 염도사냥꾼이 무심하게 이야기했다.

“증거는 확실하게 없애달라고.”

이번 일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바르무트 가문의 인원이 거기에 가담했다는 증거는 결코 남아서는 안 된다.

그 이야기에 비에르의 표정에 당혹스러움과 절망, 그리고 자신을 이렇게 만든 모든 이들에 대한 분노로 뒤덮였다.

“모두…… 죽…… 죽인…….”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더듬거리는 비에르. 마력과 함께 솟구치는 그 격렬한 감정에 처음으로 염도사냥꾼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고.

“좋은 재료가 되겠군.”

가차 없이 왼손을 뽑아냈다.

푸화악!

의식을 잃은 비에르의 몸이 크게 휘청거리다가 이내 중심을 잃고 화로의 안쪽으로 쓰러졌다.

화륵─

도에 달라붙었던 것처럼 화로의 불꽃이 비에르의 시체에 달라붙었고, 이내 안쪽에서 거대한 울림이 퍼지기 시작했다.

우우웅!

공명을 통해 비에르의 일부가 된 주작의 힘이 본체를 부활시키고자 이곳으로 모든 마력을 끌어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키이잉!

천장에서부터 벽면과 바닥을 타고 화로의 안쪽으로 미친 듯이 쏟아지는 막대한 마력.

그 빛으로 인해 내부가 순식간에 붉은색으로 물들었고, 화로의 불꽃이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염도사냥꾼은 곧장 피 묻은 손을 자신의 가슴에 얹었다.

우웅

보랏빛 안개, 몽환의 마력이 사방에 풀어지더니 그의 몸 안에 보관되어 있던 물건 하나가 바깥으로 꺼내졌다.

안쪽이 불꽃처럼 일렁거리는 붉은 수정구. 그것을 왼손으로 조심스럽게 쥔 염도사냥꾼이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곧 만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자신들을 떨어뜨린 그 가증스러운 배신자 역시 죽여 버릴 수 있으리라.

두 눈을 차갑게 빛낸 염도사냥꾼이 수정구를 화로의 안쪽으로 집어넣었고.

우우웅!

붉은 불꽃이 방안을 가득 채우듯 터져 나왔다.

* * *

“제련학부 본관의 지하라고?”

전시장을 겨우 수습하는 데 성공한 란 페이는 이세훈의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은 아직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지도 못했는데 적들의 근원지를 발견하다니. 하지만 진짜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예. 주작을 통해서 확인했으니까 확실합니다.”

적이 부활시킨 마수, 주작과 교섭을 벌여서 알아냈다.

이 상황에 농담을 하는 건가 싶었지만 손등의 문양, 계약의 징표가 사실이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이 정보를 믿어야 할지 말지 고민하던 란 페이는 이내 결정을 내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지금 즉시 교직원들을 파견해서 지하를 한 번 살펴보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그리고 너희들은…….”

손등의 문양과 공중에 박제된 주작을 살핀 란 페이가 굳은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여기에 남아서 주작을 제어하며 지금처럼 상황을 지켜봐 줬으면 한다. 가능하겠나?”

대피시켜야 할 생도에게 일을 맡긴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일까. 무신경한 것 같으면서도 책임감 넘치는 란 페이의 모습에 이세훈이 슬쩍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태프로 뽑혔으니 밥값은 해야죠. 걱정하지 마세요.”

“……고맙군. 사태가 해결되면 반드시 보상하마.”

두 사람에게 연락용 무전기를 넘겨준 란 페이가 밖으로 급히 달려나갔고, 그 뒷모습을 바라본 이세훈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제련학부 본관…… 내가 알기로 그쪽 지하에는 별다른 시설이 없었을 텐데.’

특히 화로가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시설의 존재에 이세훈은 자연스레 몽환규도를 통해 보았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빙견이 내밀었던 자료 중에 그런 게 하나 있었지.’

바벨에 숨겨져 있는 특수 시설 설계도.

첨부된 사진과 설계도는 대부분 검열되어 있어서 정보가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중에 ‘화로’의 형태를 취한 것이 있기는 했었다.

‘김인철이 주시자 출신인 걸 맞춘 것도 그렇고…… 단순한 환상이 아니었던 건가.’

도대체 그때 그 기억은 무엇이었던 걸까.

지하에 숨겨진 화로는 무엇이며 『공양』은 그 존재를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무언가 탐탁지 않은 이야기에 이세훈의 생각이 깊어지려던 순간.

[크윽…….]

주작의 몸에 박혀 있던 말뚝들이 검은 빛을 내뿜었다.

후우우웅!

주변에 흩어진 화속성마력이 지면 아래로 빨려갔고, 그 엄청난 흐름에 이세훈이 놀란 표정으로 주작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지하에서…… 내 근원을 모조리 뽑아가고 있다…….]

그동안은 힘을 공유하고 있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이쪽의 자아가 무너질 정도로 강렬하게 힘을 빨아들이고 있다.

자신의 몸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듯한 감각에 주작이 다급히 소리쳤다.

[빠, 빨리 주박을 풀어라! 이대로 가다간……!]

제련학부의 본관 지하 밑에서 무언가 시작되었다. 그 이야기에 이세훈은 곧장 루이제에게 소리쳤다.

“루이제!”

“알았어!”

두 사람이 재빠르게 체내의 마력을 끌어올리며 무언가 준비했고, 그 모습에 주작이 살짝 의외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정말 약속을 지키는 건가.’

인간이기에 반신반의했지만 어쩌면 생각보다 나쁜 녀석들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주작이 한시라도 빨리 해방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Spirit Bind】

촤악!

전시장 곳곳에서 수십 개의 쇠사슬이 튀어나와 그 몸을 꽁꽁 묶었다.

[이게 무슨…… 끄아아악!]

저쪽으로 끌려가던 근원이 전신을 옭아맨 쇠사슬에 의해 꽉 붙들린다. 정신이 반으로 찢겨나가는 고통에 주작이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주박을 풀라니까 무슨 짓이냐!!]

‘지금 어설프게 풀어봐야 저쪽으로 끌려가기만 할 뿐이야. 지금은 참아.’

[참으라니! 지금 내 영혼이 찢어질 것 같단 말이다!]

‘나도 아니까 조금만 참아.’

[너 이 더러운 개…….]

귓가에 악에 받친 주작의 저주가 울려 퍼졌지만, 이세훈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루이제를 보조하여 술식을 강화하며 줄다리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쇠사슬이 한계에 다다라 끊어지려던 바로 그 순간.

후웅

아래로 끌려가던 마력이 돌연 멈췄다.

“……이제 됐나?”

언령마법을 유지하던 루이제가 지친 표정으로 물었고, 이세훈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잠시만…….”

우웅

란 페이가 두고 간 무전기에 희미한 마력이 감돌더니 잠시 후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련학부의 지하 공간에서 거대한 불꽃의 알을 발견했다. 마력패턴을 보건대 주작의 예비 육체로 보이니 혹시 그쪽에 문제가 생기면 즉각 대피해라.

란 페이의 이야기에 이세훈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역시 함정이었나.’

자신들이 주작의 술식을 파괴한 순간. 저쪽에서 새롭게 부활시켜 도착한 이들을 습격하게끔 설계했다.

이쪽의 대응을 예상하고 발을 붙잡기 위한 함정. 어떻게든 대응하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거기에 이세훈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럼 앞에 조금씩 흡수하던 마력은 어디로 간 거지?’

애초에 『공양』의 목적은 도대체 무엇인가.

짐작조차 가지 않는 상황에 이세훈이 머리를 굴리다가 불현듯 한 가지를 떠올리며 무전기에 외쳤다.

“혹시 김인철 교수님 보신 분 계십니까?”

무전기로 이야기가 전달되고 잠시 후 대답이 돌아왔다.

-전시장 부근에서 대피를 돕다가 갑자기 조사할 곳이 있다면서 어디론가 가셨다는군. 무언가 문제라도……?

란 페이의 대답을 들은 순간. 이세훈 곧장 루이제에게 소리쳤다.

“이쪽은 맡길게. 위험한 일 생기면 바로 도망쳐.”

“응? 무슨…… 야! 어디가!”

당황한 루이제를 뒤로 한 채 이세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시장의 밖으로 달려갔다.

‘주천염혼. 그걸로 부서진 불꽃, 화천태도의 위치를 찾고 있는 거였어.’

주작의 부산물로 수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그와 관련되거나 비슷한 재료가 안에 사용되었다는 뜻.

그러니 그 힘을 잘 이용하면 공방에 꽁꽁 숨겨진 화천태도를 찾아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뛰어가는 걸로는 늦는다.’

이미 시간이 상당히 지체되었음을 깨달은 이세훈은 탈 것을 확보하기 위해 주차장으로 향했고, 이내 붉은색의 거대한 오토바이를 발견했다.

‘저거라면…….’

김인철의 오토바이로 달려간 이세훈은 곧장 그 상태를 살펴보았다.

주천염혼의 효과 때문인지 시동이 걸리지 않는 상태. 그 모습에 이세훈은 곧장 위에 올라타면서 에리카의 인연각인을 발동했다.

[인연각인 ‘사접석’이 발동됩니다.]

촤라락!

손에서 뻗어 나오는 은색의 실이 내부에 끊어진 회로의 배열을 즉석에서 비틀고 보강해서 수리한다.

어설프게나마 마력회로를 뜯어고치는 데 성공한 이세훈은 곧장 시동을 걸었다.

쿠구궁!

무시무시한 배기음을 울리는 오토바이. 그 모습에 이세훈이 두 눈을 번뜩이며 공방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콰가가강!

붉은 오토바이가 주차한 차를 짓뭉개며 미친 듯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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