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36화
보르시파의 외곽에 위치한 약제학부 본관.
갑작스럽게 건물의 중앙에서 솟구쳐 오른 붉은 기둥과 주천염혼의 효과에 의해 주말에 나와 있던 생도와 조교, 교수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위험물질은 고장 나도 상관없으니까 아공간 포켓에 집어넣어! 차라리 그쪽이 안전해!”
“몸에 화속성마력이 뭉치기 시작하면 당장 털어내! 안 그러면 타 죽는다!”
다른 곳은 대기 중의 마력을 치환시키는 것이 전부였지만, 붉은 기둥이 있는 약제학부의 근처는 주천염혼의 효과가 더욱 강하게 적용됐다.
화르륵!
화속성마력이 일정 이상 뭉친 순간. 불꽃이 피어오르며 대기 중의 마력을 먹어치우고 빠르게 불어나기 시작한다.
허공에 갑작스럽게 피어나는 것이 마치 도깨비불과 같은 모습. 소방설비 덕분에 큰불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완전히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큭…… 이쯤이면 됐다. 다들 빠져!”
“대피한다!”
대폭발로 일어질 수 있는 위험한 물건들만 급히 처리한 뒤. 교수와 조교들의 인솔하에 생도들과 직원들이 발 바쁘게 대피를 이어갔다.
그리고 그 중심엔 아칼쿠프에 초청받아서 온 빅터 역시 함께 대피를 돕고 있었다.
“이쪽으로 움직이세요!”
주말에 보르시파에 놀러 왔다가 사건에 휘말리고 그 즉시 민간인과 생도들의 구조에 힘쓰는 빅터.
그 모습은 그야말로 모범적인 영웅이었으며 주변의 교수와 조교들도 좋게 보았지만, 정작 그의 속내는 전혀 달랐다.
‘젠장……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바벨에 초청을 받아 건너왔을 때. 빅터가 『공양』에게 받은 명령은 간단했다.
보르시파에 특수한 결계가 발동됐을 때 대련용 무구로 위장시켜둔 장치를 붉은 기둥이 솟구친 장소에 꽂아 넣는다.
임무 장소가 바벨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크게 어렵지 않은 조건. 그렇기에 빅터는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바벨이라고 해봐야 결국은 승천제 이름값이지.’
심지어 그 승천제도, 그 이외에 이름 있는 S급 영웅들도 계획이 실행되는 날 모두 외부로 나가 있다고 한다.
위험이 없지는 않지만 누군가를 암살하는 임무에 비한다면 훨씬 깔끔하고 뒤탈 없는 계획. 거기에 보상까지 엄청났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정작 계획이 실행되고 펼쳐진 광경은 그의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결계가 발동되면 전부 황급히 도망칠 거라더니…… 뭐가 도망친다는 거야……!’
계획한 것에 비해 주천염혼이 너무 불안정하게 펼쳐졌고, 그 결과 바로 도망쳤어야 할 교직원들이 대응하겠답시고 남아버린 탓에 몰래 진입할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처음부터 대처가 꼬여 버린 상황에 빅터가 계속해서 대피를 도우면서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된 거 그냥 포기할까?’
놈들도 이런 상황을 아예 염두에 두지 않은 건 아니었는지 상황이 개의치 않으면 근처에 머무르기만 해도 상관없다고 했었다.
다만 보상은 줄어들겠지만 어쨌든 인생이 끝장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그래도 보상이 20배 차이인데…….’
어느 쪽이 맞을지 빅터가 고민하고 있던 그때.
타닥!
뒤쪽에서 들린 발소리. 마치 자신을 쫓아오는 듯한 그 발소리에 빅터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두 자루의 단창을 움켜쥔 채 뛰어오는 굳은 표정의 청년.
‘염성하?’
아칼쿠프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염화문의 차기문주로서 유명한 생도.
이전에 이세훈의 도장깨기를 상대할 때 보고 처음이었는데 그 모습에 빅터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 녀석이 여길 왜 온 거지?’
다른 교수에게 이곳을 지원하라고 부탁이라도 받은 것일까. 도통 짐작이 가지 않았지만, 빅터는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그 등장으로 마음이 확실히 정해졌기 때문이다.
‘그래. 괜히 무리하지 말자.’
이대로만 있으면 정체를 들키지도 않고 약간의 보상도 챙길 수 있다. 그렇게 빅터가 다짐하며 연기를 계속하는 사이 염성하가 곁으로 다가왔고.
후웅!
붉은 창끝이 그의 심장을 노리고 파고들었다.
“?!”
사각에서 펼쳐진 예상치 못한 기습. 그 모습에 빅터는 마력을 거의 터트리다시피 끌어올려 허리춤의 한손검을 뽑으며 찌르기를 막아냈다.
터엉!
“커헉!”
검면을 타고 오르는 묵직한 충격.
심장이 꿰뚫리는 것은 막아냈지만 그 힘을 버텨내지 못하고 몸이 붕 뜨면서 뒤로 튕겨져 나갔다.
무리해서 공격을 막아낸 반동과 그 틈새를 뒤흔드는 일격. 연달아 겹친 고통에 일순간 정신이 아찔해졌지만 뒤이어오는 공격 탓에 한눈팔 틈은 없었다.
카가가강!
빅터의 검과 염성하의 두 단창이 서로를 빠르게 후려갈기며 불꽃을 튀겼고, 이내 그 결과가 몸의 상처로 드러났다.
푸확!
빅터의 팔뚝과 허벅지에 새겨지는 자상. 그리고 상처 하나 없이 거리를 더욱 좁혀 밀어붙이는 염성하.
첫 공방에 호흡을 완전히 빼앗겨 버린 빅터가 경악하며 공격을 막아냈고,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약제학부의 교수와 조교들이 놀란 표정을 바라보았다.
“가, 갑자기 뭔가! 자네 지금 뭐하는 짓이야!”
“지금 당장 멈추게!”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생도가 사람들을 대피시키던 모범적인 영웅을 습격한다.
누가 봐도 수상한 쪽은 염성하였고, 그 분위기를 알아차린 빅터가 다급히 소리쳤다.
“도, 도와주십시오! 이 생도가 갑자기……!”
만마전의 내통자라든가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는 필요 없다. 억울하고 다급한 외침에 교수와 조교들이 당황하다가 이내 각자 자신들의 스킬과 마법을 펼쳤다.
키이잉!
염성하를 제압하기 위해 사방에서 쏟아지는 기술들.
실제로 제압하지는 못하더라도 염성하가 저들에게 해명하기 위해서 움직임이 더뎌지는 순간. 그 틈을 노려서 어떻게든 상황을 뒤집는다.
‘그래. 딱 한 번만 기회가 온다면……!’
사람이라면 누구든 반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 거기에 빅터가 희망을 걸었고.
후웅!
염성하의 창이 흔들림 없이 그의 목을 노리며 휘둘러졌다.
콰아아앙!!!
등 뒤로 터져 나온 잔화가 쏟아진 기술들을 모조리 상쇄시켰고, 그 사이에 염성하가 더욱 거세게 빅터를 몰아붙였다.
‘뭔가 일이 벌어졌을 때. 여기에 적힌 녀석들이 이상한 곳에서 알짱거리고 있으면 바로 죽여. 그럼 그 수만큼 값을 쳐줄게.’
이세훈에게 건네받았던 리스트. 그중엔 빅터가 있었고, 놈은 실제로 붉은 기둥이 솟구친 건물 앞에서 수상하게 알짱거리고 있었다.
‘그걸로 충분하다.’
우연일 수도 있고, 자신의 착각이거나, 이세훈이 무언가 잘못 알았을 수도 있다.
빅터가 정말로 만마전의 내통자인지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었지만, 염성하는 그에 대해서 간단히 정리했다.
‘죽이고 나면 알게 되겠지.’
그 이상의 생각은 전투에 방해되고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비정상적이고 융통성이라고 없는 꽉 막힌 사고. 하지만 거기서 비롯된 집중력이 염성하로 하여금 전투에 모든 것을 쏟아붓게 만들어 주었고.
카앙!
잔머리를 굴리느라 허점이 잔뜩 드러난 빅터의 방어를 말 그대로 분쇄해 버렸다
푸콰악!
옆구리와 어깨가 붉은 창날에 베이자 불꽃에 지져지는 고통 때문에 몸이 경직된다.
그리고 그 틈을 노려서 목을 향해 찔러 들어오는 검은 단창. 그 모습에 빅터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한 번만 막으면…….’
즉사만 피해서 상처를 입으면, 뒤쪽에 있는 교수와 조교들이 황급히 눈앞의 녀석을 제압해 줄 것이다.
그에 빅터가 마력역류를 각오하며 공격을 흘려내기 위해 한손검을 절묘하게 휘둘렀고.
잠영潛影
꿀렁
그림자로 변한 암영창이 빅터의 기교를 무시한 채 검신을 관통했다.
푸욱!
목을 꿰뚫은 암영찰의 창날.
급소를 공격당했다는 사실에 빅터의 두 눈이 휘둥그레 떠졌고, 주마등처럼 주변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그리고 떠오르는 것은 오늘 아침 『공양』의 관계자에게 받아 왼쪽 이빨에 숨겨둔 급속마인 각성제.
‘이 앰플을 씹으면 치명상도 단숨에 치유되고 육체가 강화될 거다. 대신 지금의 삶을 잃어버리겠지. 잘 선택해서 사용해라.’
더 이상 인간으로서 살 수 없게 된다. 그 사실에 빅터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목을 찔렸지만 다행히 척추는 비껴갔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응급처치만 한다면 충분히 회복할 수 있는 수준.
‘그래. 아직 기회가…….’
마지막 미련. 자신의 삶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어금니를 깨물려던 빅터의 몸을 붙잡았고.
“잡생각이 많군.”
염성하의 창날이 그 생각을 끊어냈다.
서걱!
암영창의 창날에 빅터의 목이 깔끔하게 잘렸고, 눈앞에서 벌어진 살인에 교수와 조교들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무, 뭐…….”
“지금……!”
처음에 덤벼들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정말로 죽여 버릴 줄이야.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상황에 모두가 경악하며 창을 내려놓으라는 등 소리치고 있을 때.
염성하는 그들의 경고를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빅터가 쥐고 있던 한손검을 위쪽으로 걷어찼다.
서걱!
불꽃을 머금은 관일창에 의해 두 동강 난 한손검. 그와 동시에 약제학부의 본관 건물 쪽에서 즉각 반응이 나타났다.
파카앙!
전력이 끊어진 듯 조각조각 깨지며 사라지는 붉은 기둥. 그 모습에 염성하를 제압하려고 했던 이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 저건…….”
“설마…….”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에 머리가 절로 혼란스러워졌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빅터가 이 소란과 관계된, 만마전의 내통자다.
그 사실에 모두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비켜라.”
염성하가 조교와 교수들을 지나치며 다른 기둥이 있는 곳을 향했다.
“자, 잠깐! 뭔가 알고 있으면 우리도…….”
다급히 외치는 교수의 물음에 염성하가 짧게 대답했다.
“필요없다.”
다른 이들을 몰고 가봐야 경계만 살뿐. 빈틈을 파고들어 처리하는 것은 지금처럼 혼자서 상대하는 것이 편하다.
‘그리고 그만큼 대금도 줄어들 테고.’
가능한 많은 녀석을 죽여서 빚을 청산한다. 그 각오를 다지며 염성하가 두 눈을 번뜩이며 달렸다.
* * *
쿠구구궁─
붉은 기둥이 하나둘씩 부서져 갔고 자연스럽게 주천염혼의 영향력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세훈이 말한 대로 흘러가는 상황에 루이제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고 있길래 저렇게 빨리 죽이는 거야?”
이세훈이 이야기한 의심스러운 영웅들은 대부분 A급이거나 그에 준하는 실력 있는 B급 영웅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을 저렇게 간단히 처리하다니. 아무리 봐도 비정상적인 결과에 루이제가 의아해하자 이세훈이 담담히 설명했다.
“일단 장비 차이도 있고, 무엇보다도 정체를 들킨 걸 모르니까. 기습의 이점을 살리면 쉽게 제압할 수 있지.”
“그래도…….”
“거기에 망설임이 없기도 하고.”
“……망설임?”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한 루이제의 물음에 이세훈이 담담히 설명했다.
“저런 배신자들이랑 싸울 때는 마음가짐이 중요하거든.”
모든 증거가 확실하고 배신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현역 영웅들도 쉽게 배신자를 처단할 수 있겠지만, 애매한 ‘심증’만 있는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신이 잘못 판단했을 때 생겨나는 불이익과 문제. 그런 잡다한 걱정거리 때문에 곧장 죽이기보다는 우선은 제압한 다음에 사정을 알아보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염성하 저놈은 다르지.’
자기가 생각하기에 어느 정도 합당하다고 판단이 든다면 주변이 뭐라 하든 개무시하고 그대로 밀어붙인다.
그게 잘못됐을 때는 그야말로 대참사가 벌어지지만, 이번처럼 제대로 풀린다면 저쪽이 개수작을 부리기 전에 곧장 목을 따버리니 그만큼 깔끔한 일 처리가 없었다.
“그리고 성격은 좀 그래도 실력은 확실해. 조만간 A급으로 승급할 수 있을걸.”
특별 수업 때 싸우는 모습을 보니 새로 만들어 준 단창도 적응이 끝나가는 것 같고 염륜잔화창의 자세도 안정된 것처럼 보였다.
아마 아리아를 제외한다면 자신이 아는 생도들 중에서는 가장 강하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그렇단 말이지.”
염성하를 칭찬하는 이세훈의 모습에 루이제가 살짝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가 곧장 고쳤다.
‘애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칭찬한다고 심통 나다니. 자기가 생각해도 유치한 행동이었기에 루이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물었다.
“그래서 이젠 어떻게 할 거야?”
“저놈들이 주작으로 뭘 하려고 하는지 알아봐야지.”
“뭐냐니. 이 결계 아니야?”
루이제의 물음에 이세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것도 준비 단계야. 진짜는 아마 이 다음이겠지.”
회귀 전에 봤던 『공양』의 성향을 생각한다면 지금 펼쳐진 이 주천염혼은 어디까지나 의식을 위한 환경조성.
진짜는 영웅들에게 넘겼던 단말로 진행하려고 했을 의식 쪽이 분명하리라.
‘염성하가 잘해주고 있긴 하지만…… 저쪽에서도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불완전하게라도 강행할 가능성이 높아.’
적의 계획이 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던 만큼 처음부터 완벽하게 막을 생각은 없었다.
중요한 것은 틈을 만들고 그 안에 파고드는 것. 모든 재료가 준비된 것을 확인한 이세훈이 루이제에게 물었다.
“오토마톤은?”
“네가 말한 곳에 전부 보내뒀어.”
“좋아. 그럼 슬슬 시작하자고.”
이세훈의 이야기에 루이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준비해 둔 언령마법을 사용했다.
【Assimilation】
투웅!
언령의 파동이 퍼진 순간. 전시장 곳곳에 흩어져 있던 오토마톤들이 공명을 일으키며 마력을 동화시켰다.
이전에는 주작의 마력을 강제로 동화시켰다면, 이번에는 이쪽이 저쪽의 마력에 동화하여 흉내 낸다.
우우웅─
주작을 억누르고 있는 의식. 거기에 접속된 것을 확인한 이세훈이 왼손의 손등에 새겨진 문양으로 말을 걸었다.
‘어이. 불닭.’
돌아오지 않는 대답.
겉보기에는 여전히 제압당한 것처럼 보였지만, 이세훈은 주작의 통제가 느슨해진 것을 이미 확인했기에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모른 척하지 말고 이번에도 서로 좀 도와보자.’
[……나를 이용해먹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 울리는 까칠한 주작의 목소리. 그 물음에 이세훈이 담담히 대답했다.
‘내가 언제 이용해먹었다고.’
[내 시야를 비틀어 네 적을 죽이는 데 사용하지 않았나.]
‘너한테 강제로 명령을 내린 놈들인데 좀 죽이면 어때.’
[……그런가?]
생각해 보니 오히려 좋은 일이 아닌가. 살짝 어벙한 주작의 대답에 이세훈이 계속해서 속삭였다.
‘나를 믿으라고 하지는 않아. 대신 날 도와주면 지금 몸에 걸린 주박을 모두 풀어줄게.’
이세훈의 파격적인 제안에 주작이 잠시 침묵하다가 물었다.
[풀어준 다음에 어떻게 할 생각 아닌가?]
‘그러겠지. 근데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다른 눈만 돌아오면 그대로 날 죽이려고 할 생각 아니었어?’
[…….]
‘인간이랑 마수 사이에 무슨 우정이 생기겠어. 그냥 저놈들만 같이 패고 서로 한바탕 하자고.’
이세훈의 제안에 주작이 깊이 생각에 잠겼다.
기껏 부활하는가 싶었더니 곧장 목줄에 묶이고 온몸을 꿰뚫리더니, 이제는 자신의 힘을 마구잡이로 이용당하고 있다.
자신의 눈을 앗아간 이 인간도 마음에 안 들지만, 굳이 따지자면 저쪽이 더 미운 것은 맞았다.
어느 쪽이든 잃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 주작이 물었다.
[……뭘 하면 되지? 몸의 제어권은 더 이상 줄 수 없다.]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주작의 모습에 이세훈이 곧장 물었다.
‘네 힘이 가장 많이 모인 곳. 거기가 어디지?’
그곳이 『공양』의 중심지가 분명하다. 이세훈의 물음에 주작이 잠시 침묵하더니 대답했다.
[지하다.]
‘지하?’
이세훈의 되물음과 동시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소. 제련학부의 본관을 본 이세훈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곳 지하에 숨겨져 있는 화로에 내 힘이 모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