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34화
양산형 검기무구가 공개된 뒤. 이세훈은 곧장 전시회장에서 빠져나와 스태프 자켓과 야구모자를 눌러쓴 다음 관계자용 통로로 향했다.
‘그놈들이 노리는 게 박람회장이라면 사람이 빠졌을 때가 최적의 타이밍이다.’
계획에 자신이 있다 해도 변수는 최대한 줄이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정.
특히, 주시자는 과격하긴 해도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했기에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그렇기에 이세훈은 자신의 전시품에 의해 사람들이 빠졌을 때가 기회가 될 거라 판단했고, 실제로 그렇게 일어났다.
콰아아앙───!
바깥에서 터져 나오는 우렁찬 폭음.
본격적으로 만마전과 주시자의 습격이 시작되었음을 깨달은 이세훈은 당황한 스태프처럼 신속하게 통로를 달려갔다.
“무, 무슨 일이야?!?”
복도 끝에서 마주친 관리 직원. 깜짝 놀란 그 모습에 이세훈이 빠르게 살핀 다음 다가갔다.
“크, 큰일 났어요! 바깥에서 폭발이…….”
후웅!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간을 찔러오는 송곳.
마지막까지 표정을 유지한 채 상대를 죽이려 드는 관리 직원의 모습은 그야말로 암살자의 모범이었지만.
푸욱!
그 끝에 걸린 것은 야구모자 하나뿐이었다.
스각─
“윽!?”
공격이 빗나갔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허벅지가 끊어지는 감각과 함께 다리에 힘이 풀리며 관리 직원이 무릎을 꿇었다.
푹! 콰득!
그리고 양 어깻죽지가 날카로운 무언가에 후벼 파지며 양팔에도 힘이 빠졌고, 마지막으로 목젖에 새하얀 빛을 휘감은 비수가 겨눠졌다.
“뭐…….”
“쉿. 소리 지르면 죽는다.”
농담이 아니라는 듯 목에 살짝 파고드는 백광비수.
그 끝에서 흘러내리는 섬뜩한 예기와 자신의 피에 관리 직원, 『여명』의 단원이 몸을 굳혔다.
‘무, 무슨 일이…….’
환영마법으로 자신의 행동을 철저하게 숨겼을 텐데 어째서 들켰단 말인가. 그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단원이 당황하고 있을 때.
“어느 소속이지? 몽환마? 아니면 『여명』?”
이세훈이 담담하게 물었다.
“……뭐?”
“작전이 외부로 새어나가서 혼선이 생겼어. 신분이 확인되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하고 처리하라는 게 위쪽 명령이야.”
갑작스러운 상대의 이야기에 단원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 막 시작한 작전에 혼란이 생겼다니?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상대가 자신들에 대해서 완벽히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 걸렸다.
‘설마 그 잠깐 사이에 다른 녀석들을 심문해서 알아냈을 리도 없고…….’
자신을 공격한 것 역시 기존의 협력체계를 보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애초에 바벨을 공격한다는 점만 동일했을 뿐. 저마다 목표가 달랐기 때문이다.
“흐음. 마땅한 답이 없다면…….”
무심하게 목을 파고드는 비수에 단원이 마지막까지 머리를 굴리다가 다급히 대답했다.
“나는 『여명』이다.”
“대상은 회수했나?”
자신들의 목적에 대해서 알고 있다. 거기에 속으로 안도한 단원이 재빠르게 대답했다.
“아직은 아닐 거다. 훼손되지 않도록 가급적 안전하게 회수하기로 했으니까.”
일단 설득부터 하기로 한 걸까. 시간에 여유가 조금 생긴 것을 확인한 이세훈이 비수를 떼어냈다.
“계획이 새어나간 이상 시간을 지체하는 건 위험해. 바로 보고해서 앞당겨.
“……이 꼴로 만들어놓고?”
“치료 수단 정도는 가지고 있을 텐데. 없는 척하지 말고 빨리 움직여라.”
이세훈의 퉁명한 이야기에 단원이 입술을 꽉 깨물면서 준비해 둔 회복마법을 사용했다.
후웅!
방금 입었던 상처들이 단숨에 회복되고, 자리에서 일어선 단원이 투덜거렸다.
“애초에 시간을 넉넉히 잡은 건 우리가 아니라 그 대장장이 놈들인데……?!”
몸을 돌린 단원이 이세훈의 얼굴을 본 순간. 기습할 때까지 완벽히 관리하던 표정을 무너뜨리며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너…….”
서걱!
단원이 뭐라 말하기 전에 백광비수가 목을 깔끔하게 잘라냈고, 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본 이세훈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이놈들…… 나도 노리고 있었나?’
일반적인 주시자였다면 자신의 얼굴을 봤을 때 ‘너도 주시자였어?’ 라고 반응하는 것이 맞았다.
서로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만큼 각자의 소속 인원에 대해서 모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앞의 녀석은 무언가 잘못된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인즉 『여명』 혹은 다른 녀석들이 자신을 목표로 정해뒀다는 것이다.
‘흐음…… 이것도 써먹을 수 있겠는데.’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한 이세훈은 재빠르게 복도 안쪽으로 다시금 달렸다.
직원이나 스태프 중 대다수는 앞서 전시회장에 일어난 소란 때문에 그쪽으로 급히 투입된 상황.
그렇다 보니 이쪽 통로에서 마주치는 이들의 수는 매우 적었고, 그 대부분은 『여명』의 단원들이었다.
“헛…… 무슨 일…….”
푸욱!
“컥……!”
눈앞에 갑자기 표적이 나타나자 대부분이 정체를 숨긴 채 자연스럽게 확보하려 했고, 그 안일함에 순순히 거리를 내줬다가 손도 못 써보고 목과 심장이 꿰뚫렸다.
‘일반 직원으로 위장한 놈들은 역시 실전 감각이 무디구만.’
평상시에 정체를 숨기고 일반 직원처럼 행동해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움직이나 대응이 굼떠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기습을 통해 어느 정도 수를 줄인 다음. 이세훈은 더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이전에 루이제와 함께 봐뒀던 보일러실로 빠졌다.
‘이 정도 죽였으면 바보가 아닌 이상 알아차렸겠지.’
놈들의 목적이 전시장의 장악이라면 이미 중요시설 쪽에 포진해서 단단히 지키고 있을 터. 그렇기에 이세훈은 거기로 가는 대신 바깥으로 빠졌다.
지금 몸으로는 싸워서 이기기도 힘들고, 애초에 그럴 필요가 없게끔 사전에 준비를 해뒀기 때문이다.
쿠웅─!
박람회장 쪽에서 울려 퍼지는 강렬한 진동.
그 심상치 않은 울림과 마력파이프 안쪽에서 미친 듯이 흐르기 시작한 마력에 이세훈은 곧장 몽상수납 안쪽에서 검은 상자를 꺼내 들었다.
우우웅─
희미하게 떨리며 공명을 일으키는 우윳빛의 구체, 주작의 동공인 남화동의 모습에 이세훈이 두 눈을 빛냈다.
‘역시 주작의 심장을 사용했구나.’
MT 인더스트리에서 만들어낸 화천로. 그리고 그 이외에 불꽃과 마력을 제어하는 데 사용되는 다양한 장치들.
그것들이 박람회장의 중앙에 배치된 것을 본 이세훈은 상대가 주작의 심장을 활용하여 무언가 꾸미고 있다는 것을 곧장 알아차렸다.
‘이제 남은 건 그 심장으로 뭘 하는가.’
워낙 변수가 많았기에 그동안 섣불리 확신할 수 없었지만, 심장박동처럼 일정하게 울리는 진동과 대기 중의 마력에 화속성이 조금씩 깃드는 것을 본 이세훈이 단번에 깨달았다.
‘주작을 부활시킨다.’
이로써 상대의 모든 수를 확인했다.
그것을 확인한 순간 이세훈은 곧장 자신들이 준비해 둔 재료를 사용하여 대응했다.
우웅!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을 운반하며 격하게 떨리는 마력보급용 파이프.
그 거센 흐름에 이세훈은 손을 얹으며 천천히 자신의 마력을 흘려보냈다.
‘박람회장의 설비는 주작의 심장을 보조해 줄 내장. 그리고 이 파이프 안쪽의 마력이 그것을 움직이게 만들 피다.’
여기에 마력을 조금 더한다고 해서 특별한 일을 일으킬 수는 없겠지만, 주작과 관련된 힘이라면 조금 다르다.
화르륵
상자에서 꺼내든 남화동. 화속성마력인 홍륜염으로 그 새하얀 불꽃을 통제한 이세훈은 그것을 곧장 파이프 안쪽으로 살짝 흘려보냈다.
그리고 그 미약한 힘이 다른 마력들과 뒤섞여 파이프의 끝, 주작의 심장을 보조하고 있는 화천로에 도달한 순간.
쿠구구궁─!
파이프를 역류하며 올라온 어마어마한 마력이 이세훈의 손을 타고 안쪽으로 순식간에 파고들었다.
콰드득!
오른손바닥을 타고 팔을 찢어버릴 기세로 파고드는 어마어마한 마력. 살아 있는 생명체 같은 그 거센 움직임에 이세훈이 두 눈을 번뜩였다.
‘물었다……!’
인공적인 마력이 이런 능동적인 반응을 보일 리가 없다.
즉, 화천로를 통해서 부활하고 있는 주작. 그 자아가 자신의 눈인 남화동을 빼앗아가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치이익!
몸의 수분이 증발하며 피어오르는 연기.
힘의 일부만 왔음에도 엄청난 열기였지만 이세훈은 물러서는 대신 이를 꽉 깨물었다.
‘불닭새끼가 어딜 감히……!’
아무리 뜨겁다 해도 회귀 전에 다루던 불꽃에 비하면 촛불이나 다름없다.
몸 안에 파고든 주작의 마력을 확인한 이세훈은 정신을 가다듬으며 그것을 가두기 위한 임시회로를 만들어냈다.
촤자자작!
영연신마법을 통해 체내에 새롭게 생성된 길.
주작은 이세훈의 방어가 허물어졌다고 생각하며 냉큼 들어섰고, 그 순간 이세훈이 재빠르게 입구를 닫아버렸다.
카앙!
카앙!
심상의 망치가 후려치며 새롭게 완성된 임시회로.
자신이 육체 안에 가둬진 것을 깨달은 주작이 움찔하더니 이내 거세게 내부를 헤집기 시작했다.
“후우…….”
그 거센 움직임에 이세훈이 토속성마력인 정토를 끌어올려 마력회로를 단단히 보강해 그 여파를 억눌렀다.
강제로 고삐가 채워진 야생마처럼 몸부림치는 주작. 하지만 조금씩 힘이 빠지더니 남화동을 강탈할지도, 파이프를 통해 심장으로 돌아가지도 못했다.
그리고 불완전한 지능으로 자신의 상황을 파악한 순간.
[풀어…….]
이세훈의 귓가에 희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대로 말하기보다는 웅얼거리는 것에 가까운 목소리. 그것이 주작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세훈이 곧장 대답했다.
‘일단 내 물건에서 손부터 떼시지.’
[그거…… 내 눈…… 네가…… 도둑…….]
어이없어하는 주작의 대답에 이세훈이 담담히 이야기했다.
‘그거야 네가 살아 있을 때고. 죽은 지 오래인데 그게 무슨 소용이야.’
[그러면…… 죽인다…….]
‘그럴 수 있다면야. 대신 눈을 되찾는 건 포기해야 할걸.’
심장에 비하면 중요도가 떨어지긴 하지만 동공인 남화동 역시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대상의 영혼을 꿰뚫고 그 죄악감에 불태우는 힘.
신체적인 특징을 떠나서 승천제의 반지처럼 주작의 권능이 담긴 것이나 다름없다 보니 욕심을 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기왕 부활하는 거 조금이라도 멀쩡한 상태로 살아나고 싶겠지.’
생물로서 욕구가 존재하는 한 조금이라도 완전한 상태로 부활하는 것에 욕심을 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주작은 마수치곤 그 성정이 온화하고 지능이 높은 편이었으니 무조건 싸우기보단 원활하게 풀어나가려고 할 가능성이 높으리라.
‘그만큼 똑똑한 상태라면 말이야.’
부활한 주작의 지능이 어느 정도일지 이세훈이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때
[원하는 것…… 제시해라……]
다시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 이세훈에게 협상할 의지가 있음을 깨달은 주작이 곧장 제안하는 것이다.
‘눈은 돌려주겠어. 대신 그 제어는 내가 한다.’
상당히 해괴한 조건에 주작이 의아함을 드러냈다.
[괴상한…… 제안이군……]
‘몸을 달라고 해봐야 안 줄 거 아냐. 그러니까 딱 눈만 넘겨. 어차피 힘 자체는 돌려받잖아’
[…….]
이세훈의 제안에 주작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말대로 눈의 제어권을 넘겨봐야 별로 다른 것도 없고, 시간은 걸리겠지만 다른 눈도 차츰 재생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강한 상태로 부활해야 하는 상황. 그 모든 사태를 고려한 주작이 곧장 판단을 내렸다.
[좋다…….]
치이익!
주작이 수락한 순간. 남화동을 움켜쥐고 있던 왼손의 손등에 연기와 함께 문양이 생겨났다.
불꽃처럼 일렁이는 눈의 문양. 그것이 주작과 연결된 권능임을 파악한 이세훈이 씩 웃었다.
‘가져가라.’
화르륵!
굳게 닫혔던 임시회로가 열리고, 남화동이 새하얀 불꽃으로 변해 파이프를 타고 박람회장으로 재빠르게 옮겼다.
우우웅!
그와 동시에 희미하게 빛을 내뿜는 손등의 문양.
그 모습에 곧장 의식을 집중하자 주변의 시야가 순식간에 박람회장이 내려다보이는 장소로 변했다.
‘완전 개판이네.’
격자무늬처럼 마력방벽과 공간마법에 의해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박람회장.
전시장의 모든 기능을 『여명』에게 빼앗긴 것인지 완전히 차단된 상태였는데 딱 한 명 예외가 있었다.
콰과가강!
“저 새끼 뭐야!!”
“왜 혼자서만 마법을 쓰는 건데!!”
마공학 장치로 보이는 권총 두 자루를 쥐고 스태프와 관람객을 보호하며 『여명』의 단원과 맞서 싸우고 있는 란 페이.
뒤쪽에는 남은 스태프와 방문객들이 있었는데 그 모습에 이세훈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허. 그래도 마공학 교수 이름값은 하는구만.’
이런 사태를 대비하고 있었던 건지는 몰라도 제어권을 뺏긴 것과 별개로 술식 단절 장치의 영향에서 벗어나 혼자서 『여명』과 맞서 싸우며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아마 란 페이가 저렇게 버티지 않았다면 곧장 루이제 쪽으로 몰려가서 공격을 퍼부었으리라.
화르르륵!
주작의 육체가 완벽히 형성되고 그동안 웅얼거리던 의사가 더욱 선명하게 변했다.
[살아났다! 진짜 살아났어!!!]
죽었다가 살아난 게 그리도 기쁜지 힘차게 울부짖는 주작.
S급 마수라기엔 너무나도 순진무구한 그 의사에 이세훈이 살짝 어처구니없어할 때.
키이잉
붉은 마법진과 함께 검은 말뚝이 주작의 목을 꿰뚫었다.
[크에에에엑!]
불꽃으로 이뤄진 몸인데도 어지간히 아픈지 목이 비틀린 닭처럼 울부짖는 주작.
그리고 말뚝을 통해 강렬한 의사가 전달되더니 이내 한 가지 문장이 만들어졌다.
-적들의 정신을 불태워라.
루이제를 비롯하여 박람회장에 남아 있는 일반인들.
그 전원의 정신을 불태우라는 명령이 주작의 움직임을 강제시킨다. 불완전하게 부활하긴 했지만 힘의 크기만 따지자면 준S급은 될 주작.
지능이 높은 만큼 그 명령을 거부하려 들었지만, 심장을 보조하고 있는 화천로와 각종 장치가 연달아 작동했다.
우우웅!
[끄르륵……!]
주작과도 같은 마수를 부활시키는데 아무런 통제 장치를 마련해두지 않았을 리가 없다.
결국 주작의 몸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불꽃을 끌어올렸고 이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적들을 바라보았다.
‘흐흐.’
유일하게 존재하는 ‘눈’을 통해서.
콰아아앙!
박람회장 전체를 불사르는 어마어마한 불꽃.
그 여파는 확실히 대단했지만, 초기의 목적과 다르게 박람회장을 통제하고 있는 설비와 찰스를 비롯한 『여명』의 단원들을 모조리 휩쓸었다.
‘굳이 몸을 다 통제할 필요는 없지.’
주작도 결국은 생명체. 공격할 대상을 잘못 봤다면 본의 아니게 ‘오인사격’을 할 수밖에 없다.
콰가가강!!
적을 제거하지 못했으니 공격은 계속해서 쏘아지고, 이세훈은 그 방향을 계속해서 비틀어 박람회장을 장악한 적들을 모조리 쓸어버렸다.
그리고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됐음을 루이제에게 알리기 위해 가볍게 눈을 깜빡였다.
“……야이 미친놈아!”
미소와 함께 극찬을 보내는 루이제. 그 반응에 이세훈이 만족하며 다시금 주변을 살폈다.
‘일단 첫수 교환은 잘 풀렸는데.’
중요한 것은 이다음에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가. 주작을 어떤 식으로 다뤄야 할지 이세훈이 고민하던 그때.
“──하.”
괴성을 내지르던 찰스의 입에서 기묘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하───하하핫!”
찢어지는 괴성과 호쾌한 웃음소리. 그 목소리가 완벽히 번갈아 나오는 상황에 이세훈과 루이제가 긴장하고 있을 때.
파스슥
초록빛 마력과 함께 숯처럼 타버린 찰스의 몸이 무너졌다.
그러자 나타난 것은 앙상한 뼈. 하지만 평범한 뼈가 아닌 것을 증명하듯 곳곳에 인챈트와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고, 갈비뼈 안쪽에 검은 큐브가 초록빛 마력을 뿜어냈다.
‘큐브…… 인형사인가.’
인간의 내장과 마력회로로 만들어내는 물품. 즉 찰스라는 인간은 이미 인형사에 의해 ‘퍼펫’으로 개조당한 것이다.
“설마 역으로 함정을 파뒀을 줄이야. 자네들은 정말 날 놀랍게 만드는군.”
자신을 공격한 주작을 본 찰스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상황을 보건대 아마 이세훈이 무언가 영향을 가했을 터.
정말 예상치도 못한 일격이었기에 마력의 소모는 물론 정신까지 일부분 마모되어 버렸지만, 그런데도 찰스는 분노보다 기쁨을 느꼈다.
‘주작과 같은 마수에게 이만한 영향력…… 역시 그분의 심장이 될 자질이구나.’
루이제와 마찬가지로 후보를 넘어서 적합자에 가까운 재능. 그 자질을 확인했으니 자신의 몸 따위 어떠한가.
하지만 그 가능성을 깨달았기에 더더욱 안타까웠다.
“모두 데려갔으면 했거늘…….”
우우웅!
주작의 발치에 위치한 마법진이 빛을 흩뿌리며 확장된 순간. 목을 꿰뚫었던 것보다 더욱 거대한 말뚝이 전신을 꿰뚫었다.
────!
주작의 괴성과 함께 말뚝에 꿰뚫린 몸이 위쪽으로 끌려가듯 천장을 부수고 하늘 높이 솟구쳤다.
탁 트인 시야와 함께 내려다보이는 전시장 주변. 처음 폭발로 생겨난 불꽃이 거대한 방벽처럼 주변을 감싸고 있었는데 그 형상 자체가 거대한 마법진으로 이뤄져 있었다.
‘이 구조는…….’
그 마법진의 형태를 본 순간. 이세훈은 저쪽이 준비해 둔 수단이 무엇인지 곧장 알아차렸다.
주작을 부활시킨 것은 어디까지나 의식의 밑거름. 적들이 노린 것은 이 몸에 깃들어 있는 한 능력이었다.
우우웅─!
주작에 몸에 박힌 말뚝들이 공명을 일으키듯 거세게 떨렸고, 이어서 전시장과 멀리 떨어진 보르시파의 곳곳에서 붉은빛이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그 빛들이 주작에게로 쏟아져 거대한 새장처럼 일대를 모두 뒤덮은 순간.
[주천염혼朱天染魂]
하늘이 타오르는 불꽃처럼 주홍빛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