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27화
“보상은 다음에 박람회 관련으로 부를 때 건네주마. 조심히 돌아가라.”
란 페이와 이야기를 끝낸 뒤. 마공학부의 본관 건물에서 나온 이세훈은 루이제를 바라보았다.
“그럼 이제…….”
“너 따라와.”
이세훈의 손목을 붙잡은 루이제는 그대로 근처의 으슥한 뒷골목으로 끌고 가더니 팔짱을 끼며 바라보았다.
“박람회 스태프는 또 뭐야. 대충 둘러대지 말고 지금 제대로 설명해.”
다른 사람이 보기에 어떨지 몰라도 눈앞의 녀석이 그깟 대기업의 기술을 훔쳐보기 위해서 나설 리가 없다.
뭔가 있음을 직감한 루이제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보았고, 그 시선에 이세훈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하나…….’
다른 사람은 십악이나 주시자에 관한 걸 설명하기가 다소 껄끄럽지만, 이미 『여명』과 엮인 루이제라면 조금 더 터놓고 이야기해도 괜찮을 것 같다.
결론을 내린 이세훈은 블랙 암즈에서의 사건부터 차근차근 설명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루이제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진짜 여기를 습격한다고?”
“물증은 없어. 다만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시기가 너무 적절하다는 거지.”
“으음…….”
이세훈의 이야기에 루이제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내 무언가 떠올린 듯 물었다.
“그런데 그래 봐야 학원장님 있으면 상관없는 거 아니야?”
바벨이 외부의 습격으로부터 안전한 것은 뛰어난 기술력과 고위 영웅들의 존재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학원장, 승천제 루트비히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루트비히가 대응하지 못할 습격을 아무런 전조도 없이 그것도 그 정원인 바벨에서 은밀히 할 수 있을까.
아무리 봐도 불가능해 보이는 이야기에 루이제가 의문을 표하자 이세훈이 담담히 이야기했다.
“있으면 상관없겠지. 하지만 없으면?”
“그건…….”
“학원장, 완등자가 강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전지전능한 건 아니야. 죽이기가 어려울 뿐이지 싸우면서 발목을 붙잡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위험을 무릅쓰고 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그 차이일 뿐이지 절대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완등자에게 너무 기대서는 안 돼.’
만마전과의 전쟁이 다시 시작되던 초기. 인류는 완등자만 존재한다면 얼마든지 그들에게 맞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만마전은 완등자의 능력에 대해서 철저히 분석했고, 육대마신이라는 존재를 이끌고 그들을 하나씩 죽여 나갔다.
물론 그 결말이 공멸이기는 했으나 녀석들의 목적이 인류의 멸망인 것을 생각해 보면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긴. 학원장님이 전지전능했으면 바벨 안에서 다치는 생도들도 없었겠지.”
목의 흉터를 가린 초커를 쓰다듬은 루이제가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그래서 이번 일은 우리 둘이서 하는 거야? 네 말대로라면 규모가 너무 큰 것 같은데.”
그냥 범죄자도 아니고 십악과 주시자가 다 같이 쳐들어올지도 모른다니.
바벨이 불바다가 되는 모습을 상상한 루이제가 눈매를 찌푸리자 이세훈이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 큰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낮아. 애초에 그럴 생각이면 이런 식으로 조용히 숨어들어 오지도 않았을 테고.”
십악과 주시자의 성향을 생각하면 이번은 어디까지나 경고 차원.
육대마신도 없는 상태에서 완등자와 전면전을 벌일 이유도 없고, 그럴 가능성도 낮았다.
‘애초에 그런 놈들이니까.’
회귀 전에 만마전과 마지막까지 싸웠던 이세훈이기에 확신할 수 있는 부분. 하지만 이걸 전부 설명할 수 없었기에 이세훈은 둘러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앞에도 말했지만 어디까지나 심증이야. 자세한 건 이번에 박람회에서 직접 확인한 다음에 대처하면 충분해.”
“흐음…… 알았어.”
이세훈의 이야기에 루이제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이 저렇게 말했다면 너무 낙관적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이세훈이라면 믿을 수 있었다.
그동안 수많은 사건 사고들 속에서 언제나 최적의 결과를 만들어냈었으니까.
‘그런데 이 녀석은 저걸 어떻게 아는 걸까…….’
십악은 몰라도 주시자는 세간에 알려진 게 하나도 없는 비밀스러운 집단이었다.
그런데 이세훈은 자신과 비슷하게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면서 어떻게 그걸 저렇게 자세히 알고 있을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에 루이제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금방 털어냈다.
‘아무래도 상관없어.’
이세훈이 어떤 비밀을 품고 있든 간에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준다면, 그리고 배신하지만 않는다면 상관없다.
그렇게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낸 루이제가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그럼 박람회에 불려가기 전까지는 뭐 해?”
뭔가 일이 벌어진다는데 조금이라도 준비해두는 편이 좋지 않겠는가.
루이제의 물음에 이세훈이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언령마법으로 뭔가 조종해 본 적 있어?”
“조종? 아니, 조작계열은 해본 적 없는데.”
예전에 원소학부 출신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원소계열 마법을 위주로 연습해 왔다.
루이제의 대답에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백광비수를 한 자루 꺼냈다.
“잘됐네. 그럼 잘 봐.”
이세훈이 뒷골목에 버려져 있는 음료수 캔 하나를 집어 들었고 곧장 머리 위로 집어 던졌다.
후웅!
위로 힘껏 솟구쳤다가 아래로 떨어지는 음료수 캔. 그 모습에 이세훈이 곧장 백광비수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고.
“〈자동요격〉”
언령각인이 안쪽 깊숙이 새겨졌다.
투웅!
머리 위로 떨어지던 음료수 캔을 꿰뚫고 그대로 벽에 박힌 백광비수. 별도로 조종한 것이 아니라 비수가 스스로 움직였던 그 모습에 루이제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자동마법……?”
기본적으로 마법은 사용자의 제어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예를 들어 마력 방벽으로 ‘공격을 막아라’ 라고 지정한다면 모든 공격을 차단하지만 ‘불꽃을 막아라’ 라고 지정할 경우 조금 애매해진다.
불과 바람이 뒤섞인 복합적인 마법이 날아올 때, 그것을 순수한 불꽃이라고 여기지 않아 통과시킬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동마법의 술식은 엄청 복잡하게 만들어진다고 했었는데…….’
양도 양일뿐더러 위와 같은 오류가 생기지 않도록 술식을 매우 세세하게 구성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이런 자동마법의 술식은 일종의 비전처럼 취급받을 만큼 까다로웠는데 이세훈은 그것을 언령 하나만으로 가볍게 펼쳐낸 것이다.
‘아니, 그래도 자동요격 정도면…….’
주변에 접근해 오는 것을 모두 쳐내는 정도라면 간단하니까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루이제의 생각을 읽은 듯 이세훈이 담담히 이야기했다.
“나한테 주먹 날려봐.”
“뭐, 뭐?”
“그냥 해봐.”
벽면에 박힌 백광비수를 힐끗 쳐다보던 루이제는 이내 각오를 다지며 있는 힘껏 이세훈의 배를 후려갈겼다.
빠악!
“윽……?!”
바위를 때린 것 같은 저린 감각에 루이제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빼냈고, 동시에 벽면에 박혀 있던 백광비수를 향했다.
“안 움직였다고?”
주변에 접근하는 것은 모두 쳐내는 거라면 방금 자신의 공격에도 반응했어야 할 텐데. 의아해하는 루이제의 모습에 이세훈이 담담히 설명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언령마법은 일반적인 마법이랑 체계가 완전히 달라. 즉, 네가 알고 있는 마법의 난이도는 이쪽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거지.”
“그럼…… 언령마법은 자동마법에 특화됐다는 거야?”
“특화라기보다 쉬운 거지.”
벽에 박힌 백광비수를 빼낸 이세훈이 루이제를 바라보았다.
“이걸 예시로 들어보자. 음료수 캔은 단번에 꿰뚫었지만 네 주먹에 반응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음…….”
사물과의 거리, 재질, 투사체 등 여러 이유가 떠올랐다가 이내 루이제의 머릿속에서 단번에 지워졌다.
‘그런 조건이라면 물어보지도 않았겠지.’
일반적인 마법으로는 어렵고, 언령마법으로는 쉽게 설정할 수 있을 것 같은 조건.
그것을 고민해 보던 루이제는 문득 이세훈의 배를 때린 이후 저린 주먹을 바라보았다.
“……위해가 되지 않는다?”
“맞아.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맞아도 상관없다는 거지.”
“그런 애매한 조건을 어떻게 그 짧은 언령으로만…….”
아무리 언령마법의 체계가 다르다지만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당황하는 루이제의 모습에 이세훈이 설명을 이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 언령, 그리고 거기에 사용된 심상을 네 ‘분신’이라고 생각해 봐.”
“……아!”
이세훈의 이야기에 루이제는 그제야 방금까지 보여줬던 언령각인의 효과를 정확히 이해했다.
‘심상 안에 해당 효과에 대한 내 기준이 분신처럼 새겨져 있는 거구나.’
불꽃을 보면 뜨거울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연상하듯 언령마법 안에도 그런 본능적인 생각이 담기게 된다.
그 결과 별도의 술식을 구성하지 않더라도 뜨거워 보이는 불꽃이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언령으로 이뤄진 자동마법이 거기에 반응하는 것이다.
“물론 단점이 없는 건 아니야. 일반 마법은 철저하게 술식을 기준으로 삼기에 오류가 없지만, 언령마법은 사용자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달라지거든.”
상대가 펼친 공격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으면 재빠르게 반응할 수 있지만, 그 종류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면 자연스럽게 반응이 느려진다.
즉, 일반적인 자동마법이 얼마나 술식이 섬세하게 짜느냐로 결정된다면 언령마법은 얼마나 실전 경험이 다양한가로 결정되는 것이다.
“흐음. 그러면 내가 적을 공격하라고 설정하면 평소에 마음에 안 들었던 녀석에 날아갈 수 있는 건가?”
“그런 셈이지.”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적의가 강하게 서려 있는 루이제는 자동마법을 사용할 때 어떤 식으로 튀어나올지 모른다.
그렇기에 언령마법으로 자동마법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서는 자기 객관화가 정확하게 되어야만 했다.
“좀 조심해야겠네.”
“그러니까 지금부터 연습해서 폭주하지 않도록 기준을 세워두는 게 좋아. 그리고 전투 경험이 늘어날수록 반응도 빨라지니까 대련도 많이 하고.”
“대련이라…… 마침 잘됐네. 이번에 교수님들이 졸업한 선배들을 왕창 부른다고 했었거든.”
“아. 그러고 보니 마투학부도 아칼쿠프였지.”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 현역 영웅을 초청하여 실시되는 특별 수업. 이쪽으로도 십악이나 주시자가 숨어들어 올 수 있었기에 한 번 제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그쪽은 어떻게 찔러보는 게 좋을까…….’
그냥 수업에 참가하는 것보다 좀 더 쉬운 방법이 없을까. 그에 대해서 고민하던 이세훈의 머릿속으로 한 사람이 문득 떠올랐다.
“잠깐만.”
휴대폰을 꺼낸 이세훈이 곧장 전화를 걸었고, 신호가 조금 길게 이어지는가 싶더니 상대의 대답이 돌아왔다.
-무슨 일이냐?
검술학부의 지도교수이자 아칼쿠프의 차기 학과장으로 내정되어 있다는 카사르. 그에게 전화를 건 이세훈이 잽싸게 용건을 이야기했다.
“이번에 열리는 특별 수업 알고 계십니까?”
-알다마다. 루크 그 노친네가 말년에 뭐 좀 해보겠다고 졸업생들을 있는 대로 부르더군. 근데 그건 왜?
“마광수 교수님이 저도 그 수업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궁금해서 연락드렸습니다.”
-그래? 그 주정뱅이가 그런 말을 했단 말이지…….
카사르가 무언가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야기가 이어졌다.
-아직은 어떻게 진행될지 모른다. 이대로 무난하게 진행된다면 그냥 학부마다 따로따로 진행되겠군.
“그럼…….”
-어떤 식으로 바꾸면 되냐?
앞뒤 자르고 들어오는 카사르의 물음에 이세훈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 그게 무슨…….”
-정말로 수업 방식이 궁금해서 나한테 전화했을 리는 없고 뭔가 원하는 방식이 있어서 전화한 것 아니냐? 다음 주에는 출장 가니까 이번 주 안에 다 처리해 주마.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카사르. 그 말투에 이세훈은 한결 편하게 자신이 생각한 수업 방식을 이야기했다.
-흐음…… 나쁘지 않군. 확실히 그쪽이 더 효율적이겠어.
“가능할까요?”
-가능하지. 루크 그 노친네는 이미 이빨 다 뽑혔으니까.
올해가 마지막이기에 사실상 허수아비나 다름없다. 카사르의 자신 있는 이야기에 이세훈이 슬쩍 웃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런데 그걸로 뭘 할 생각이냐?
호기심 가득한 카사르의 물음에 이세훈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광고나 좀 하려고요.”
* * *
보르시파의 본청 건물에 마련된 회의실.
각 학부의 지도교수가 모인 장소에서 진행을 맡은 교직원이 마이크를 잡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다음은 미래 전시회에 1학년 학과수석인 이세훈 생도의 작품을 출품하는 안건입니다.”
안건의 내용에 회의실에 찾아오는 무거운 침묵. 누구 하나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도교수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두 사람을 향했다.
“…….”
“…….”
무표정하게 상석에 앉은 류은하와 그 좌측 대각선 자리에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앉은 미하엘.
올해 1학년 학과수석에 대해 학과장과 부학과장 사이에 의견 차가 있다는 것을 알다 보니 어느 쪽에 부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류은하 학과장이 언제 그만둘지 모른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세훈 때문에라도 최소 4년은 더 할 가능성이 높아.’
‘바르무트도 지난 사건 때문에 예전 같지 않고…… 노선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차기 학과장으로 유력하던 미하엘의 입지가 최근 들어 크게 흔들렸던 만큼 지도교수들도 매우 신중해졌다.
‘버러지 같은 놈들…….’
미하엘로서는 있는 대로 받아 처먹고 그렇게 눈치를 살핀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은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되새기며 미하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괜찮지 않겠습니까. 이미 영웅 등급의 무구도 여러 번 만들어냈고, 직접 요청할 정도라면 그만큼 책임질 자신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주변의 지도교수를 찬찬히 바라보던 미하엘의 시선이 김인철에 닿았다가 이내 류은하에게 향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간에 말입니다.”
뼈가 느껴지는 미하엘의 이야기에 류은하가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이야기했다.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류은하의 물음에 지도교수들이 서로 눈치를 살피다가 대답했다.
“괜…… 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학과수석들 사이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으니 기회를 주는 것까지는 괜찮겠지요.”
권력에 민감한 지도교수들이 재빠르게 찬성했고, 그쪽으로 관심이 없는 이들도 별다른 이견 없이 찬성했다.
그들도 이번 1학년 학과수석인 이세훈이 어떤 물건을 만들어올지 매우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럼 다음 안건으로…….”
끼익
회의실의 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직원 한 명이 재빠르게 걸어 들어와 류은하의 곁으로 다가갔다.
“학과장님. 루크 학과장님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과거 S급 영웅이었으나 노환과 부상으로 은퇴하고 바벨에서 교육자로서 살아온 아칼쿠프의 학과장 루크 베이커.
그의 갑작스러운 연락에 류은하가 의문을 느꼈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그와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크게 교류를 가진 적이 없었기에 류은하가 의문을 느끼면서도 회의장을 바라보았다.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회의를 중단시키고 나온 류은하는 밖으로 나와 직원이 들고 있던 휴대폰을 건네받았다.
“전화 받았습니다.”
-류 학과장.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신경질적인 외침에 류은하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죠.”
-요즘 당신이 밀어주는 그 1학년 학과수석 말입니다! 그 생도가 지금 아칼쿠프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단 말입니다!
“……이세훈 생도 말씀입니까?”
-그래요!
루크의 외침에 류은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세훈 생도가 조금 거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이유 없이 난동을 피울 정도는 아닐 텐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류은하가 의문을 느끼고 있을 때.
“하, 학과장님! 이것 좀……!”
다른 직원이 달려오며 류은하에게 자신의 휴대폰을 내밀었다. 화면에 떠 있는 것은 한 대련장을 찍고 있는 영상.
두 자루의 단창을 쥔 청년과 장창을 쥔 중년의 사내가 맞서 싸우고 있었는데 그 공방이 상당히 치열했다.
-크윽……!
두 단창에서 흩뿌려지는 거센 불꽃에 중년인이 속절없이 밀렸고, 잠시 후 검붉은 섬광이 영상에서 폭발했다.
카앙!
허공에 떠올랐다가 바닥에 떨어지는 창날. 그 모습을 중년인이 허탈하게 보고 있을 때, 청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실력은 괜찮지만 아쉽군. 만약…… 만약…….
뭔가 북받쳐 오르는지 몇 번이고 말을 더듬으며 입술을 깨무는 청년. 그 모습에 대련장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모여 있을 때.
-빨리해!!
대련장 아래에서 울려 퍼지는 외침. 거기에 청년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믿음직스러운 후배…… 이세훈이 만들어준 무구가 없었다면…… 졌을 수도 있겠어.
원통하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청년, 염성하의 모습이 영상에 잔뜩 담기다가 이내 다른 한쪽으로 화면이 움직였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싱글벙글 웃고 있는 이세훈. 그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류은하가 당황하고 있을 때, 문득 영상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현역 영웅 도장깨기 #12]
“……도장깨기?”
이세훈 생도가 다른 생도들을 이끌고 현역 영웅들과 대련을 펼치며 그들을 박살 내고 있다.
도대체 무슨 목적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기에 류은하가 더더욱 묘한 표정으로 영상을 바라보았고.
-말 잘한다!
이세훈은 그저 즐겁다는 듯이 힘차게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