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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125화 (125/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25화

주시자 『공양』.

대장장이를 주축으로 모인 이들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무언가를 바치는 것으로 완전한 무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공양의식’을 통해 자신들이 만드는 무구에 무언가를 바쳤었는데, 그중 가장 보편적으로 쓰인 재료가 바로 인간, 정확히 말하자면 ‘혼魂’이었다.

“좀 괜찮은 물건이 나왔다 싶으면 ‘장인의 혼이 깃든 물건’이라고 포장하지 않느냐. 그놈들은 그걸 좀 더 안정적으로 만들고 싶어 한 거다. 아주 제대로 미친놈들이었지.”

혼이 깃든 물건일수록 완성도가 높아지니 처음부터 혼을 집어넣는다.

사부의 말대로 미친놈이나 할 법한 발상이지만, 문제는 그게 실제로 효능이 있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몸에 깃든 마력과 심상.

그 두 가지가 만들어낸 미지의 힘이 무구의 완성도를 대폭 높였고, 『공양』은 자신들의 사상에 확신을 가지며 연구를 거듭했다.

그렇게 인간, 몬스터, 마인 등 살아 있는 생명이라면 무엇이든 재료로 사용했고.

‘당신도 함께하지 않겠습니까?’

최후에는 자기 자신들을 재료로 무구를 만들어냈다.

회귀 전에 『공양』의 하수인에게 들었던 제안을 다시금 떠올린 이세훈은 자신도 모르게 눈매를 찌푸렸다.

‘다시 생각해도 짜증 나네.’

그 제안을 듣자마자 연합군을 불러서 공양의식을 막으러 갔었지만 남아있던 것은 텅 비어버린 연구소와 이미 완성되어 버린 ‘신화 등급’의 무구.

‘좋군요.’

그리고 그것을 쥐고 흡족해하던 멸륜滅輪의 마신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살아서 돌아온 것도 기적인가…….’

기존의 멸륜만 해도 완등자가 아니면 대처하기 어려웠는데 『공양』이 만들어낸 신화 등급의 무구까지 얻으면서 그야말로 재앙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원견자의 엄호 사격이 있었기에 3할이라도 살아남았지 아니었으면 그 자리에서 전멸했으리라.

‘김인철이 『공양』 출신이다…….’

그렇다면 그 역시 인간의 혼을 재료로 무언가를 만들어냈던 것일까.

이세훈이 그에 대해서 깊이 생각에 잠기려던 그때.

[깨어나는 꿈이 발동되었습니다.]

화악─!

머릿속에 차가운 물이 강제로 끼얹어졌다.

‘이놈은 기준이 영 애매하다니까.’

단숨에 생각의 고리에서 벗어난 이세훈은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흐읍……!”

“어설프다.”

카앙!

휘광검의 푸른 검신을 힘껏 휘두르는 제이크와 훈련용 가검에 마력을 대충 둘러서 그것을 요령 좋게 쳐내는 마광수.

자신이 신체제어학 수업을 듣고 있었던 것을 떠올린 이세훈이 눈매를 매만졌다.

‘밖에서는 좀 주의하는 게 좋겠어.’

물론 싸우는 도중에 이렇게 잡생각에 빠져들지는 않겠지만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긴장감을 가지는 편이 좋다.

살짝 느슨해진 마음을 이세훈이 다시금 다잡고 있을 때.

빠악!

대련장 위에서 찰진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쿠웅!

낙법을 펼칠 새도 없이 바닥에 얼굴을 들이박고 그대로 쓰러지는 제이크.

미동도 없는 걸 보면 의식을 잃은 것으로 보였는데, 그 와중에도 양손에는 휘광검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짜식…….’

그 기특한 모습에 이세훈이 피식 웃고 있을 때. 제이크를 내려다보던 마광수가 가검으로 자신의 어깨를 툭툭 치다가 평가를 내렸다.

“그럭저럭이군.”

듣기에는 썩 평가가 좋지 않은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마광수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실력이 상당하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굳이 기절을 시켰다는 건 그만큼 제압하기가 까다로웠다는 뜻이기도 하고.’

직접 검술을 펼치는 데 조금 어색해하지 않을까 했는데 방금 대련을 보니 금방 적응을 한 모양이다.

이세훈이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자 마광수가 고개를 돌려 가검으로 제이크를 가리켰다.

“이놈 치워라.”

“예.”

대련장에 올라온 이세훈이 제이크의 발목을 잡고 질질 끌어서 그대로 아래에다가 내려놓았다.

그리고 오색화도와 소광의 망치를 각각 한 손에 쥔 다음 마광수의 맞은편에 섰다.

“그럼 갑니다.”

“오냐.”

이세훈이 자세를 잡고 마광수도 어깨에 올려둔 가검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으며 긴장감이 한껏 높아진 순간.

투웅!

이세훈의 몸이 바닥을 박차며 재빠르게 쇄도해 왔다.

심장을 노리고 찔러 들어온 오색화도. 여전히 군더더기 없이 효율적인 움직임이었으나, 그렇다고 막아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카앙!

마광수의 가검에 오색화도가 간단히 쳐내지고 이후 그 틈새로 날렵하게 파고들어 온다.

그 모습에 이세훈은 당황하는 대신 침착하게 몸을 뒤로 빼내면서 소광의 망치를 힘껏 휘둘렀다.

터엉!

검끼리 부딪쳤을 때보다 좀 더 깊은 울림.

충격을 미처 다 흘려내지 못하고 뒤쪽으로 밀려난 자신의 가검에 마광수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힘의 중심을 노려서 때린 건가. 겉모습은 무식한데 기술은 머리를 쓰는군.’

약간이라도 때리는 포인트가 어긋나면 도리어 역공을 당할 수도 있었지만, 이세훈은 그 지점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짚어냈다.

카가강! 터엉!

찔러 들어오는 검과 막아서는 망치.

마치 오래전부터 이렇게 싸워왔던 것처럼 균형이 제법 괜찮게 쌓여 있었는데, C급 정도의 기술과 힘으로는 뚫기는커녕 막아내기도 급급했다.

‘이놈도 한 단계 높여야겠군.’

이세훈이 상당히 성장했음을 확인한 마광수가 검을 고쳐 잡았고 막 휘둘러져 오던 오색화도와 부딪쳤다.

카가각─!

검날을 타고 안쪽으로 단숨에 들어오는 검신.

그 모습에 이세훈이 재빠르게 손목을 튕겨내며 막으려 했지만, 거기에 맞춰서 마광수의 검이 움직였다.

카각!

이쪽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힘의 중심을 정확히 짓누른다.

이전에 아미르를 제압할 때 사용했던 기술이 고스란히 이세훈에게 돌아왔고 반응이 느린 사이 안쪽 깊이 파고들어 왔다.

손목 아니면 가슴을 노리는 공격.

어느 쪽이든 간단히 찔러 들어올 수 있는 그 회심의 일격에 이세훈의 두 눈이 부릅떠졌고.

‘지금……!’

오색화도에 담아둔 마력을 터뜨렸다.

콰앙!

“?!”

검면에서 터져 나온 예기치 못한 폭발.

그 반탄력에 마광수의 검이 옆으로 튕겨져 나왔고, 이어서 소광의 망치가 가검의 축을 노리고 후려쳤다.

‘이런…….’

이대로라면 검이 망가지거나 부서질 수 있다. 이에 마광수가 재빠르게 자세를 고치며 검을 뒤틀었지만 공격을 완전히 막아낼 수는 없었다.

터엉!!!

소광의 망치에 검면을 후려 맞은 가검이 멀찍이 튕겨져 나갔고, 그 틈새로 이세훈이 발바닥에 마력을 터트리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콰앙─!

이전이라면 몸이 다쳤을 급가속. 하지만 어젯밤 정착시킨 토속성마력 ‘정토’의 효능으로 마력회로가 반탄력을 완벽히 흡수해냈다.

기존에 보여주지 않은 기술과 달라진 신체 능력.

그 두 가지를 활용한 이세훈의 공세가 완벽히 빈틈을 파고들어 마광수의 심장을 향해 오색화도를 찔러 넣었고.

우웅─

허공에 만들어진 투박한 검 한 자루가 목을 겨눴다.

“……이건 좀 치사한 거 아닙니까?”

간발의 차로 몸을 멈춘 이세훈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보았고, 그 시선에 마광수가 씩 웃었다.

“B급 시절에도 어검술은 쓸 수 있었어. 힘을 숨길 줄 아는 게 너만 있는 줄 아냐?”

검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기술인 어검술御劍術. 일종의 응용법에 가까웠기에 몇 가지 조건만 받쳐준다면 B급 영웅도 충분히 쓸 수 있기는 했었다.

“그러니까 B급 시절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검기로 검을 빚어내고 어검술로 그걸 목에 겨누는 걸 단 1초 만에 하실 수 있었다는 뜻입니까?”

하지만 그걸 방금처럼 펼쳐내는 것은 명백히 다르다.

간단히 비유하자면 재료를 도마 위에 얹어놓고 써는 것과 실에 매달아 놓고 허공에서 써는 것의 차이 정도.

‘A급 시절이면 몰라도 B급? 누굴 호구로 아나.’

이세훈의 질문에 마광수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태연하게 대답했다.

“물론 그때는 단검으로 펼쳤었지. 그래도 속도는 그때랑 똑같았어.”

“단검이 보였으면 저도 그걸 의식하면서 싸웠겠죠.”

“그럼 나도 네가 의식하는 걸 의식하면서 싸웠겠지. 너 내가 B급 때 얼마나 독기가 넘쳤는지 아냐? 비상사태라고 강제로 징집당해서…….”

과거 이야기까지 꺼내기 시작한 마광수. 회귀 전에도 술에 취하면 질리도록 하던 이야기였기에 이세훈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예예. 알겠습니다. 제가 졌어요.”

본인이 그렇다는데 어쩌겠는가. 이세훈의 불만이 가득한 대답에 마광수가 헛기침하며 화제를 돌렸다.

“흠흠. 뭐,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다. 만약 네가 나한테 천충검을 제대로 배워서 비슷하게 어검술을 펼칠 수 있었다면 방금 공격에도 대응할 수 있었겠지.”

“……아. 그렇군요.”

“물론 나처럼 검기로 펼쳐내는 것은 힘들겠지만 작은 비수 정도라면 금방…….”

이때다 싶어 천충검의 효능과 그 대단함을 설명하기 시작한 마광수. 그 모습에 이세훈은 방금 대련에서 왜 그렇게까지 치사하게 굴었는지 알아차렸다.

‘왜 그러나 했더니 천충검 배워라, 이거였구만.’

아무리 봐도 제자가 될 것 같지가 않으니 장점을 알려주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 방향을 바꾼 모양이다.

‘뭐, 천충검이면 나쁘지 않기야 하다만…….’

사용자가 수련을 거듭할수록 끝없이 강해지는 정직한 검술.

회귀 전에 마광수가 보여준 엄청난 활약을 생각한다면 좋은 기술인 건 맞지만, 문제는 그 태도였다.

“오늘부터라도 네가 천충검을 익히는 데 집중한다면 몇 년 안에 결실이…….”

“안 배웁니다.”

“……쯧.”

적당히 가르치겠다고 하면 얌전히 배울 텐데 꼭 다른 것들을 모두 정리하고 천충검만 배우라고 한다.

물론 평범한 기술도 아니고 비전검술인 만큼 집중하라는 것도 일리가 있지만 이세훈의 입장에서는 굳이 그렇게까지 배울 가치를 못 느꼈다.

‘게다가…… 뭔가 보다 보면 알 것 같단 말이지.’

허공에 떠 있는 천충검의 검기를 살핀 이세훈의 두 눈이 가늘어졌고, 그 모습을 본 마광수가 피식 웃었다.

“이것도 보고 배우려고? 관둬라. 마력 꼬인다.”

“제가 그 정도로 실력이 떨어지진 않습니다.”

“예전에 그러다가 실려 간 놈이 한 명 있어서 하는 말이야. 눈으로 보이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지 마.”

진지한 마광수의 충고에 이세훈이 다시금 천충검의 검기를 바라보았다.

‘뭐, 확실히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긴 하지.’

보통 비전이라 불리는 기술들은 대부분 사용자의 ‘심상’이 그 안에 아주 깊게 반영되어 있다.

그렇기에 그 기술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형태뿐만 아니라 심상도 제대로 이해해야 했는데, 그 부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폭주가 일어날 위험도 있었다.

‘마광수의 심상이라…….’

회귀 전에는 고유스킬 ‘인연의 대장장이’를 습득하기 전이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단골로서 이런저런 교류를 하면서 본 것이 많다.

게다가 이번에는 고유스킬을 가진 채로 회귀한 덕분에 진작 인연이 성립된 상황.

‘인연을 추출해서 잘 살펴본다면 가능할지도.’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이세훈이 천충검의 검기를 더욱 자세히 바라보았고, 그 모습에 마광수가 흠칫했다.

‘설마…… 아니, 그럴 리가.’

기본기야 자신이 세세하게 보여줘서 그렇다 쳐도 검기로 어검술을 펼쳐내는 것은 눈으로 보고 따라 할 수준이 아니다.

그렇게 확신을 하면서도 혹시나 싶은 생각에 마광수가 묘한 눈으로 보고 있을 때.

우웅!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 거기에 마광수가 휴대폰을 꺼내 상대를 보고는 눈매를 살짝 찌푸렸다.

“잠깐 전화 좀 받고 오마.”

검기를 거둔 마광수가 훈련장 밖으로 나갔고, 그 뒷모습을 바라본 이세훈이 턱을 쓰다듬었다.

‘저 양반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면 대부분 도플갱어랑 엮였을 때인데…….’

혹시 흔적이라도 찾아낸 걸까. 이세훈이 궁금한 표정으로 닫힌 문을 보고 있을 때.

“끄윽…….”

대련장 아래에서 앓는 소리와 함께 제이크가 일어섰다.

“어…… 아. 또 당했구나.”

후려 맞은 턱을 쓰다듬으며 쓴웃음을 짓는 제이크. 그 모습에 이세훈이 씩 웃었다.

“너무 풀 죽지 마. 기절시키는 게 편할 만큼 잘 싸웠다는 뜻이니까.”

“그래? 그리 생각하면 좋기야 한데…… 매번 엎어지니까 좀 기분이 그러네.”

아무리 좋은 의미라 해도 매번 기절 당하면서 대련이 끝나면 찝찝할 수밖에 없다. 아쉬워하는 제이크의 모습에 이세훈이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전에 가르쳐준 혈술. 계속 연습하고 있어?”

“아, 응. 시간 날 때마다 하고 있어.”

“그러면 맞을 때 순간적으로 온몸의 피를 맞을 때 굳힌다고 생각해봐. 그러면 한 번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야.”

“굳힌다…….”

이세훈의 조언에 제이크가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문이 열리더니 마광수가 고개를 내밀었다.

“나 출장 간다.”

“출장이요?”

“그래. 언제 돌아올지는 모르니까 연락 오기 전까지는 자습…… 아니지.”

무언가 떠올린 듯 마광수가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아까 루크 그놈이 한다는 게 뭐였지?”

“현역 영웅분들을 초청해서 특별 수업을 하신다고…….”

“딱 좋군. 거기 참가한 애송이들한테 이기는 게 이번 과제다. 저놈은 내가 말해둘 테니까 같이 데려가고.”

“예? 저희가 어떻게…….”

“못 하면 내신도 깎이고 나한테도 맞는 거지. 이만 간다.”

일방적으로 전달한 마광수가 다시 문을 닫으며 나갔고,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이세훈이 제이크에게 물었다.

“현역 영웅은 또 무슨 이야기야?”

“저번 검은연꽃 수해 사건 때문에 바벨에서 실전의 중요성에 대해 좀 더 이야기가 나왔거든. 그래서 학과장님이 이번에 현역 영웅분들을 초청해서 특별 수업을 여신다네.”

“현역 영웅…… 몇 명 정도인데?”

“아칼쿠프에 있는 모든 학부에 해당되니까 아마 100명은 넘지 않을까.”

“흐음…….”

제이크의 설명에 이세훈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좀 더 다양한 경험을 위해 현역 영웅을 초청한다. 이유만 놓고 보면 그리 이상할 건 없었지만, 문제는 그 시기였다.

‘하필이면 우르에서 마공학 박람회가 열리는 시기에 아칼쿠프에도 사람이 들어온다라…….’

우연히 시기가 겹친 걸 수도 있지만, 십악이 루트비히를 경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조금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기에 만약 보르시파까지 낀다면…….’

설마 그러겠냐만 또 모르는 일 아닌가. 이세훈이 그렇게 의심하고 있을 때.

우웅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 거기에 휴대폰을 꺼내 상대를 보니 ‘아리아 마이어스’라는 글자가 떠올라 있었다.

“누구야?”

“네 누님.”

“……얼른 받아줄래?”

제이크의 부탁에 이세훈은 살짝 찝찝함을 느끼면서도 전화를 받았다.

-잠시 통화 괜찮을까?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이세훈이 제이크를 슬쩍 보며 대답했다.

“예. 무슨 일이십니까?”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양산형 검기 무구의 시제품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해서.

“아. 그거라면…….”

아리아의 물음에 이세훈은 머릿속에 그려둔 설계도를 한 번 점검해 본 다음 대답했다.

“구상은 다 끝나서 만들려면 바로 만들 수 있습니다.”

-잘됐네. 그럼 이번 전시회에 참가해보는 건 어때?

“……전시회요?”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이야기에 이세훈이 미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직 못 들었나 보구나. 이번에 보르시파에서 학부수석으로 졸업한 장인들을 불러서 전시회를 준비한다던데.

“졸업생…….”

-마침 마공학 박람회로 사람들도 많이 모일 테고. 거기 전시회에 네가 시제품을 선보이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어때?

아리아의 물음에 이세훈이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그 전시회는 언제 열립니까?”

-이번 주에 준비해서 다음 주 주말에 열린다고 들었어.

아칼쿠프에 초청된 백 명이 넘는 현역 영웅. 우르에서 열리는 마공학 박람회. 그리고 보르시파의 전시회까지.

모든 학과에서 준비 중인 자잘한 행사와 외부인의 유입.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절묘한 맞물림에 이세훈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이 새끼들 봐라.’

바벨에 무언가 준비되고 있다.

그 사실을 확신하게 된 이세훈이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그거 괜찮네요.”

무언가 준비되고 있다면, 그 안으로 직접 들어가서 휘저어 버리면 그만이다. 두 눈을 빛낸 이세훈이 자신이 가진 재료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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