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23화
에리카의 힘자랑이 끝난 뒤. 상황을 전달받은 교직원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달려왔다.
거주구역에서 강력한 기술을 사용한 것도 모자라 기숙사 근처의 산, 생도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공원 겸 훈련 장소까지 파괴했다.
인명피해가 없었다고는 해도 벌점을 받기에 충분한 행동이었지만.
“음. 확실히 이렇게 까다로운 무구라면 그런 사고가 일어날 법도 하군요.”
어디를 가든 예외는 있는 법이었다.
“예? 하지만 원칙적으로 따지면 그런 행위는 지정된 훈련 장소에서만…….”
“어허. 방금 못 들으셨습니까? 간단하게 강화주술만 걸었는데 장비를 착용한 까마귀가 갑자기 폭주하는 바람에 그런 사고가 일어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 네…….”
“그리고 그렇게 혼란스러운 와중에 인명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재빠르게 수습까지 했는데 그 노력을 무시하면 에리카 아가…… 크흠! 생도가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잽싸게 달려온 주술학부 교수의 변호에 본청에서 연락을 받고 찾아온 교직원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처벌은…….”
“박람회 때문에 본청 쪽도 많이 바쁘실 테니 저희 쪽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끔 확실하게 교육하겠습니다.”
교수의 이야기에 교직원은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럼 자체교육으로 처리해 두겠습니다.”
“허허. 감사합니다.”
머리를 긁적거린 교직원이 돌아갔고, 그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교수가 고개를 돌려 에리카를 바라보았다.
“그럼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당분간은 조심해 주십시오.”
“응.”
공손히 인사를 남긴 교수가 떠나갔고, 그 모든 과정을 옆에서 보고 있던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권력이 좋긴 좋네.’
아무런 뒷배도 없는 생도라면 교수가 오기도 전에 벌점을 받고 끝났을 것 같은데 이걸 그냥 넘기다니.
이세훈이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자 에리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벌점 없이 넘어간 게 좀 신기해서.”
“그야 학과수석이니까.”
예상과 조금 다른 대답에 이세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너네 가문이라서 넘어간 게 아니고?”
“가문의 힘으로 된 건 자잘한 조사를 생략한 것뿐이야. 이 정도라면 내가 아니라 다른 학과수석이어도 비슷해.”
담담한 에리카의 대답에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학과수석은 거기까지 편의를 봐주는 건가.’
바벨이 재능과 성과에 따라서 노골적으로 우대하는 장소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여기까지 차이가 있을 줄은 몰랐다.
‘즉, 결과만 좋다면 과정은 조금 거칠어도 된다는 뜻이군.’
상당히 유용한 팁이었기에 이세훈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고맙다. 나중에 쓸 만하겠네.”
“응.”
고개를 끄덕인 에리카가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계산은 어떻게 할 거야?”
“계산? 아아 그렇지 참.”
에리카의 이야기에 이세훈이 이전에 자신이 미리 받았던 것들을 떠올렸다.
‘예전에 음양환으로 의뢰비는 먼저 받았고, 정토석이랑 블랙 암즈에서 도와준 것도 있었지.’
능력을 보조해 주고 방향성을 알려주는 영골장갑의 값어치를 생각하면 조금 남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뭔가를 콕 집어서 달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했다.
잠시 머리를 굴리던 이세훈은 이내 결정을 내렸다.
“돈 말고 다른 걸로 아무거나 챙겨 줘.”
“아무거나?”
“재료도 좋고, 영약도 좋고, 아니면 나중에 일이 생겼을 때 편의를 봐줘도 좋고. 편한 대로 해주면 돼.”
보통 이렇게 아무거나 라고 말하는 건 ‘내가 뭘 원하는지 나도 모르겠지만 네가 알아서 가져와’라는 뜻이지만 이번에는 정말 뭐든 상관없었다.
‘이 녀석이라면 자기한테 유용한 방향으로 가져다줄 테니까.’
회귀 전 류은하가 자신이 원하는 종류의 무구를 만들게 하기 위해 전문서적을 산더미처럼 선물하던 것과 비슷한 느낌.
이세훈은 그렇게 얼마 안 남은 보상을 활용하여 에리카의 ‘목표’가 정확히 무엇인지 살펴보려는 것이다.
“음…… 알았어. 생각해 볼게.”
“그래. 그러면 이만 간다.”
“응. 다음에 봐.”
* * *
에리카와 헤어진 이세훈은 기숙사 아래로 내려와 해야 할 일들을 다시금 점검했다.
‘밀린 의뢰는 끝났고…… 다음은 김인철인가.’
새로운 일거리에 이세훈은 걸음을 옮기면서 머릿속으로 차근차근 정보를 정리했다.
‘과거에 주시자 『공양』 출신으로 의심. 오행무구 중 화천태도 보유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염도사냥꾼에게 쫓기는 상태로 추측. 그리고 회귀 전에는 높은 확률로 사망.’
무언가 수상쩍은 과거를 지닌 대장장이. 그 정보에 이세훈이 골치 아픈 표정을 지었다.
‘이런 양반들 입 열게 만드는 게 제일 귀찮은데.’
하물며 동등한 입장도 아니고 한참 어린 생도의 위치에서는 더더욱 듣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으음. 일단은 만나서 생각하자.’
어차피 가서 해야 할 일도 많으니 차차 생각하면 된다. 결정을 내린 이세훈은 김인철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공방에 찾아가도 될까요?]
메시지를 보내진 것을 확인한 이세훈이 잠시 기다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동이 울리며 전화가 걸려왔다.
“예. 교수님”
-공방에는 언제쯤 올 생각인가?
“오늘 다른 수업은 없어서 교수님이 괜찮으실 때면 언제든 상관없습니다.”
-잘됐군. 오늘 일정도 다 끝나서 막 돌아가려던 참이었는데. 어디인지 알려주면 데리러 가겠네.
이세훈이 도로 쪽으로 나가 위치를 알려주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붉은색의 흉흉한 오토바이가 다가왔다.
“타게.”
“넵.”
도로를 가로지르는 붉은 오토바이. 그 위에 올라탄 이세훈은 김인철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기습적으로 물었다.
“교수님.”
“왜 그러나?”
“주작의 부산물 중에 전설 등급인 부위가 있다면 부서진 불꽃의 근원도 수리할 수…….”
끼이익!
이세훈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오토바이가 급정거했고 김인철이 곧장 뒤돌아보았다.
“혹시 학원장님께 받은 건가?”
놀라움을 넘어 다급함마저 느껴지는 모습. 상상 이상으로 격렬한 반응에 이세훈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 아뇨. 그냥 지난번에 남화우를 살펴보니까 어쩌면 잘 맞지 않을까 해서…….”
“그런가…….”
이세훈의 대답에 흥분을 가라앉힌 김인철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네. 혹시 자네라면 정말 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흥분했군…….”
“아닙니다. 제가 설명을 제대로 못 한 게 잘못이죠.”
“흠흠. 그럼 일단 계속 가지.”
김인철이 다시 오토바이를 몰기 시작했고, 이세훈이 당황하던 표정을 싹 고치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동안 수리할 방법을 하나도 못 떠올린 건 아니었나 보네.’
주작의 부산물을 사용하면 부서진 불꽃의 근원을 수리할 가능성이 높다.
김인철의 반응으로 그것을 알아낸 이세훈은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럼 왜 굳이 다른 방법을 찾으려고 한 걸까?’
수리 방법에 확신이 없어서. 재료를 구하기 힘들어서. 루트비히와의 약속이라서.
여러 경우의 수가 떠오르고 이세훈의 생각이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그 모든 가능성을 검토한 이세훈이 깔끔하게 결론을 내렸다.
‘전혀 모르겠구만.’
알고 있는 정보 자체가 너무 부족하다 보니 뭐라고 딱 결론지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이세훈은 쓸데없는 생각을 계속 이어나가는 대신 확실한 것만 짚었다.
‘김인철은 전설 등급인 주작의 부산물에 환장한다.’
이거라면 블랙 암즈에서의 거래가 루트비히, 그 밑에 있는 김인철을 노렸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이세훈이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했을 때쯤. 오토바이가 김인철의 공방에 도착했다.
“들어가지.”
“예.”
주택 옆에 있는 공방에 들어온 이세훈은 곧장 벽면에 붙어 있는 다섯 개의 화로를 살펴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 드렸던 신목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아아. 잠시 기다리게.”
옆에 걸린 집게를 집어든 김인철은 두 번째 화로를 열었다.
화아악!
뚜껑을 열기 무섭게 밖으로 뻗어 나오는 열풍. 바로 앞에서 집게를 화로 안에 집어넣은 김인철은 금방 30cm쯤 되는 새카만 막대기를 꺼냈다.
“흐음. 이 정도면…….”
막대기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김인철이 벽면의 패널을 가볍게 두드리자 푸른 액체가 담긴 통이 바닥에서 올라왔다.
‘마석액으로 만든 냉각수인가.’
꽤 비싼 재료에 이세훈이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을 때. 김인철이 곧장 통 안에다가 막대기를 집어넣었다.
화르르륵!
냉각수 표면에 피어오르는 거센 불꽃.
안쪽에 담긴 마력이 막대기에 반응하여 불을 피워낸 것으로 보였는데, 신기한 점은 열기가 상당한 데도 냉각수가 전혀 끓어오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부글부글!
그러다가 불꽃이 사그라들자 기다렸다는 듯이 냉각수가 끓어오르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살피던 김인철이 막대기를 꺼냈다.
치이익
희미한 수증기를 내뿜는 검은 막대기.
화로 안에서 막 꺼냈을 때보다 광택도 보이고 상당히 단단해 보였는데 어딜 봐도 신목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정도면 되겠군. 한번 보게나.”
김인철이 검은 막대기를 작업대 위에 올렸고 이세훈이 그 곁으로 다가가 정보창을 살폈다.
[선화목選火木]
[등급 : 영웅] [품질 : 하]
마력을 먹어치워 불태우는 나무막대기.
내부에 스며든 마력을 연료로 삼아 불꽃을 피워 내거나 강화할 수 있습니다.
마력을 모두 흡수할 때까지 대상을 열기로부터 보호합니다.
*흡수한 마력을 연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마력을 흡수중인 대상은 불꽃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스킬 ‘선화選火’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역시 마력을 먼저 태우게 만들었구만.’
젖은 손이 뜨거운 쇳물에 닿았을 때. 순간적으로 발생된 수증기가 열을 막아주듯 김인철은 마력으로 그와 비슷한 효과를 만들어냈다.
‘이러면 마력을 공급하고 있는 동안은 아무리 뜨거운 불꽃이라도 영향을 받지 않고, 부서진 불꽃의 열기도 견뎌낼 수 있겠지.’
심지어 흡수된 마력은 불꽃을 강화하는 데 쓰이니 조금이나마 부서진 불꽃의 열기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접근법에 이세훈이 만족하고 있을 때. 김인철이 조심스레 물었다.
“어떤가?”
“괜찮은데요? 착용하기 전까지 열기에 노출된다는 점이랑 열기를 제어할 수단이 여전히 없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뼈대로는 충분한 것 같습니다.”
잠깐 살펴본 것만으로 자신의 모든 의도를 알아낸다.
설명해 줄 필요가 없는 이세훈의 모습에 김인철이 자신도 모르게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우선은 착용자부터 보호 대상으로 집어넣고 차근차근 추가해서 힘을 제어하는 게 어떨까 싶었네.”
“그러면 다음은 칼집이 무난하겠네요. 묵중암을 사용해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것도 고려하고 있네. 다만 유지방면에서 영 좋지 않아 어떻게 해볼지 조금 고민일세.”
“아, 그거라면 제가 최근에 얻은 기술이 있는데…….”
이세훈이 여러 방향성을 제시하고 김인철이 그것을 듣고 고민하다가 좀 더 세밀하게 수정한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던 이세훈은 자연스럽게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역시 김인철은 부서진 불꽃, 화천태도의 원형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어.’
아무것도 모른다면 근원, 열기가 새어나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겠지만 김인철은 그와 동시에 몇몇 기능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그중 핵심은 바로 불꽃을 통해 태우는 대상을 ‘지정’할 수 있는 효과.
‘뭔가 따로 태우고 싶은 게 있는 건가.’
도대체 뭘 노리는 걸까. 여전히 아리송한 김인철의 목적에 이세훈이 고민하고 있을 때.
“……고맙네.”
맞은편에 서 있던 김인철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자네 덕분에 몇 년 만에 제자리걸음에서 벗어난 것 같군.”
“제가 드린 건 재료밖에 없는데요 뭘. 전부 교수님이 노력하신 덕분이죠.”
“아닐세. 그 재료가 없었다면 이런 방법도 시도해 보지 못했을 거야.”
고개를 가로저은 김인철이 이세훈의 손을 붙잡으며 이야기했다.
“정말 고맙네.”
진심이 담긴 감사.
그 모습에 이세훈은 김인철이 정말로 고마워하고 있는 것도, 그리고 새로운 인연석이 생겨난 것도 깨달았다.
하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며 살짝 묘한 표정을 지었다.
‘흐음. 인연레벨이 오를 정도는 아닌 건가.’
이렇게 반응할 정도면 도움을 많이 준 것 같은데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게 반응이 상당히 미적지근하다.
‘어쩌면 속으로 거리를 꽤 두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어.’
이 역시 김인철이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니 명확하게 파악할 수가 없다. 거듭되는 원인에 이세훈은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냥 딱 터놓고 이야기해?’
주시자 출신인 것과 부서진 불꽃이 화천태도라는 사실은 조금만 거짓말을 섞으면 충분히 의심받지 않고 추궁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세훈이 아직까지 하지 않은 것은 김인철과의 관계가 틀어질 위험도 있고, 무엇보다도 그가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쯧. 구린 양반이었으면 바로 망치랑 인사시켰을 텐데.’
좀 더 깔끔하고 은밀한 방법이 없을까.
그에 대해서 고민하던 이세훈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아쉬움이 떠올랐다.
‘내 기억처럼 몽환규도로 볼 수 있으면 쉬울 텐데…….’
자신의 몸이 멋대로 움직이기 전까지는 과거의 기억을 제대로 보여줬으니 김인철도 그게 가능하면 쉽지 않았을까.
거기까지 이세훈의 생각이 닿았을 때.
‘……잠깐. 안 될 게 있나?’
몽환규도로 과거를 살피는 것은 인연석의 내부, 심상과 결합되어 있는 기억만 추출해서 자신의 체내에 쑤셔 넣는 것이었다.
그러니 자신의 기억이 아니라 타인의 기억이어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
꽈악
“으음?”
돌연 손에서 느껴지는 압력에 김인철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내려다보았고, 이세훈의 손이 자신의 손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갑자기 왜 이러지?’
손을 잡은 게 불쾌하기라도 한 걸까. 거기에 김인철이 손을 떼어내려 했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이세훈이 놓아주지 않았다.
“그…… 갑자기 왜 그러는가?”
김인철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자 가만히 손을 내려다보던 이세훈이 고개를 들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그리고는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김인철을 바라보았다.
“으음?”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붕붕!
거세게 악수를 나눈 이세훈이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않고 공방을 떠났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김인철이 황당해하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나도 아직 완전히 늙지는 않았나보군…….”
젊은 친구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다니. 거기에 김인철이 멋쩍게 웃었고.
‘조금만 보겠습니다!’
김인철의 과거를 보기 위해 이세훈이 있는 힘껏 자신의 기숙실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