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122화 (122/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22화

주술학부 본관.

결계구성학을 가르치는 강의실 내부로 담당 교수인 로버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른 기술이 심상을 현실에 펼쳐내는 것이라면 결계는 현실에 고정시키는 것이다. 이 차이를 이해해야만 더욱 고차원적인 결계를 구성할 수 있으며…….”

지루하기 그지없는 이론이 로버트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그 이야기를 듣던 이세훈은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곱씹었다.

‘남화동이라…….’

주작의 눈이 세 쌍이었으니 세상에 여섯 개밖에 없는 물건. 전설 등급인 데다 그 희소성과 효과를 생각한다면 엄청난 재료였고, 그렇기에 더욱 거슬렸다.

‘그걸 미끼로 썼단 말이지.’

다른 것도 아니고 전설 등급 재료를 미끼로 사용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깜짝 놀랄 이야기겠지만 이세훈에게는 그렇게까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회귀 전 만마전과의 전쟁 중에 전설 등급 재료를 일회용으로 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굵직한 놈을 죽이면 또 전설 등급 재료가 나왔었으니까.’

아깝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물건을 아낄 만한 상황도 아니었고, 투자할 가치가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사용했다.

하지만 이번에 몽환마가 보여준 태도는 조금 달랐다.

‘운반책인 아미르는 B급 턱걸이. 경호원이랍시고 붙어 있는 녀석들도 A급 3명쯤에 대부분 B급이었지.’

전설 등급 재료를 운반하기에는 많이 허술한 수준.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슬리는 것은 몽환마가 물건을 빼앗겼단 이야기에도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는 것이다.

‘상대를 유인해서 잡는 게 아니라…… 물건을 빼앗기더라도 정체를 알아보려고 한 건가.’

그렇다면 몽환마는 상대를 누구라고 가정했기에 전설 등급의 재료를 저렇게 거침없이 뿌린 것일까.

이세훈은 몽환마가 자신과 대화할 때 반응했던 단어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공간마법에 능숙. 십악을 습격할 만큼 미쳤거나 세력이 강함. 그리고 『공양』과의 연결고리가 있을 수 있음.’

여기에 부합하는 인물이 있는가. 그 고민 속에서 이세훈은 어렵지 않게 두 이름을 떠올렸다.

‘루트비히랑…… 김인철?’

공간마법의 권위자이며 십악도 두려워하지 않는 완등자. 그리고 과거 주시자와 엮인 것으로 추측된 대장장이.

후자는 몽환규도로만 확인한 정보였기에 확실치 않았지만, 적어도 전자는 루트비히 이외에는 없었다.

‘즉, 몽환마는 루트비히가 자신을 습격할 거라고 생각했단 건가…….’

회귀 전의 루트비히는 완등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세상일에 무관심하고 바벨의 운영에만 신경 썼었다.

그리고 만마전 역시 그 사실을 알기에 굳이 자극하지 않았고 자연스레 십악과 충돌을 일으킨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몽환마가 루트비히를 ‘경계’한다면 회귀 전의 그런 암묵적인 관계가 사실상 깨졌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건 나 때문일 수도 있겠네.’

은월산에 숨겨져 있던 『탈각』의 연구실을 파괴하고 검은연꽃 수해의 사건 이후 인형사를 공격, 거기다 이번에는 몽환마의 물건까지 습격해서 빼앗아갔다.

대부분 자신이 원인이지만 외부에서 보기에는 루트비히가 만마전을 향해 적의를 드러낸 것으로밖에 안 보이리라.

‘일이 좀 귀찮게 됐구만.’

십악이 완등자에 못 미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이길 수 없는 것은 또 아니다.

그리고 루트비히라면 굳이 당사자를 노리지 않고 다른 것, 바벨을 노려도 충분히 보복이 될 터.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이세훈의 눈이 가늘어졌다.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대비만 제대로 해둔다면…….’

오히려 이 기회를 통해서 십악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에 이세훈은 그전에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떠올렸다.

‘일단 김인철이 이번 일에 연관이 있는지 살펴보고, 정토석을 흡수해서 세 번째 속성마력도 얻자. 그리고 남화동을 사용할 방법도…….’

머릿속에 급한 순서대로 일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을 때. 수업종이 울리며 로버트가 설명을 마무리 지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지. 과제는 빠짐없이 해오고 다음 주 주말에 보르시파의 전시장에서 마공학 박람회가 열린다고 하니 결계 도구에 관심이 있으면 가보도록. 이상.”

짧게 이야기를 남긴 로버트가 먼저 강의실 밖으로 나섰고, 그 이야기를 들은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마공학 박람회라…… 밖에서 뭐 하나 몰래 들여오기에는 딱인 행사네.’

바벨이 그리 허술할까 싶지만 십악의 경계를 샀으니 주의를 해도 나쁠 건 없다.

이세훈이 그쪽으로도 막 신경이 쏠리려던 그때.

꾹꾹

왼쪽으로 당겨지는 소매. 거기에 이세훈이 고개를 돌리자 에리카가 무표정한 얼굴로 빤히 바라보았다.

“…….”

뭔가 잊은 게 없냐는 듯 항의하는 표정. 그 모습에 이세훈은 뒤늦게 잊고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아, 이런.’

이번에는 반드시 만들어주겠다고 했는데 또 미룰 뻔했다. 그 사실에 이세훈이 헛기침하며 물었다.

“크흠. 이다음에 수업 있어? 없으면 무구나 만들러…….”

“없어. 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에리카. 상당히 다급해 보이는 그 모습에 이세훈이 슬쩍 웃으며 일어섰다.

“그러면 일단 재료부터 사러 가자.”

“응.”

두 사람이 강의실 밖으로 나오자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생도들, 에리카의 부하들이 재빠르게 다가왔다.

“아가씨. 다음 수업…… 은 없으시죠! 먼저 가보겠습니다!”

활기차게 말하다가 갑자기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는 도망치는 이들. 그 모습에 이세훈이 에리카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평범한 표정. 그 모습에 이세훈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 빨리 가자.”

겉으로 티를 안 내서 그렇지 화가 많이 쌓인 모양이다.

얼른 풀어줘야겠다고 생각한 이세훈은 곧장 에리카와 함께 보르시파의 상점가로 향했다.

“어디에서 살 거야?”

“전에 추천받은 곳이 있어서 거기로 가보려고.”

레아의 병문안을 갔다가 레베카에게 답례로 들었던 상점을 떠올린 이세훈은 곧장 골목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안쪽 깊이 들어가 장사가 되긴 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괴팍한 가게들만 나올 때쯤. 막다른 골목 끝에서 목적지를 발견했다.

[알리페스 도매점]

밖에 이상한 잡동사니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가게.

겉보기에는 상당히 난잡하지만 주변의 분위기 때문인지 몰라도 뭔가 신비로운 분위기가 잔뜩 풍겼다.

“들어가자.”

“응.”

에리카와 함께 안으로 들어선 이세훈이 안쪽을 훑어보았다.

제련도 안 된 광석부터 시작해 찌그러진 무구. 거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루나 장신구들이 장식장 위에 무분별하게 놓여 있었는데 가게보다는 쓰레기장에 가까웠다.

‘거 컨셉 참…….’

그 지저분한 모습에 이세훈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보고 있을 때.

“흐음. 유명인들이 오셨구만.”

카운터에 신문을 읽고 있던 노인이 슬쩍 바라보았다.

얼굴과 목덜미에 물결 무늬의 문신이 새겨진 흑인. 나이도 많아 보이고 체구도 상당히 왜소했는데 눈빛과 행동거지에서 연륜이 묻어나와 만만치 않아 보였다.

“보시다시피 여기는 잡동사니뿐이라서. 뭔가 특별한 걸 찾는다면 여기서 오른쪽 골목으로 나가서 나오는 테리스놈의 도매점으로 가는 게 좋을 거야.”

담담히 말하고 다시 신문을 훑어보는 노인. 그 모습에 이세훈이 대답했다.

“레베카 교수님의 추천으로 왔습니다.”

“……설마 했는데 진짜 생도를 추천했을 줄이야.”

이세훈의 이야기에 노인이 헛웃음을 터뜨리더니 신문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따라오게.”

세 사람이 잡동사니를 피해 가게의 안쪽으로 향했고 노인이 벽면에 걸려 있는 장식줄 하나를 잡아당겼다.

스르륵

커튼이 양쪽으로 열리듯이 자연스럽게 갈라지는 벽면.

어두컴컴한 내부로 노인이 훌쩍 들어섰고 이세훈과 에리카도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후웅

공간을 넘어서는 이질감과 함께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고, 그 모습에 이세훈은 살짝 감탄했다.

‘꽤 좋은데.’

엉망인 바깥과 달리 깔끔하게 정리된 내부.

각 구획별로 다양한 재료들이 구비되어 있었는데 언뜻 살펴봐도 구하기 힘든 재료들이 꽤 많았다.

“살펴보게. 없으면 나와서 따로 주문하고.”

짧게 설명한 노인이 밖으로 나갔고, 그 모습을 살피던 에리카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여기 ‘메르카토르mercator’ 지점이었구나.”

“맞아.”

명성과 권력, 그리고 실력까지 갖춘 이들을 대상으로만 물건을 판매하는 VIP 전용 도매상 길드.

회원제로 굴러가는 데다 우수 고객의 추천이 필수라 조건이 꽤 까다로웠는데 레베카 덕분에 이렇게 쉽게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회귀 전에는 사부랑 만난 뒤에나 왔었는데 말이지.’

새삼 자신이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지 다시금 체감한 이세훈이 에리카를 바라보았다.

“목록 불러줄 테니까 보이면 다 챙겨줘.”

“응.”

두 사람이 매장 안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골랐고 총 4개의 상자를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결제는…….”

“이걸로 해주세요.”

이세훈이 대답하기 전에 카드를 내미는 에리카. 검은색에 금박이 씌워진 카드에 노인이 씩 웃었다.

“무제한 카드라…… 자네 좋은 친구를 뒀군.”

계산기를 가볍게 두드린 노인이 카드를 긁은 다음 다시 넘겨주었다.

“첫 방문이니 10% 할인했네. 다음에 또 오게나.”

결제를 마친 뒤. 재료가 들어 있는 상자를 아공간 포켓에 집어넣은 이세훈이 에리카에게 물었다.

“얼마나 나왔어?”

“나도 몰라. 따로 알림은 안 왔으니까 소액일 거야.”

“…….”

어림잡아도 몇억은 할 텐데 소액이라니.

잔고라면 이쪽도 빵빵하기는 하지만 저 사고방식 자체가 조금 아찔하게 다가온다.

‘하긴. 교류회 때도 그렇고 돈 태우는 솜씨 하나는 끝내줬으니…….’

에리카와 좀 더 친해져도 괜찮겠다고 이세훈이 생각하고 있을 때. 에리카가 이어서 물었다.

“만드는 건 어디서 할 거야?”

“제작은 어디서 할 거야?”

“글쎄다. 주변 눈만 없으면 어디든 상관없긴 한데…….”

“그럼 내 기숙실로 가자.”

자연스럽게 이어진 초대. 다른 사람 같으면 조금 당황할 법도 했지만 이세훈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좋네. 가자.”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행동 자체가 에리카가 어떤 인물인지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될 것이다.

* * *

두 사람은 별다른 말없이 곧장 걸음을 옮겼고, 우르의 기숙사 안으로 나란히 들어섰다.

“어…… 어?”

“잠깐…….”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서 올라가자 주변 생도들이 놀란 표정으로 웅성거렸고, 몇몇 이들은 화들짝 놀라 다가왔다.

“아가씨! 잠…… 깐 지나가겠습니다.”

하지만 금방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옆으로 스쳐 지나갔고, 그 반응을 살핀 이세훈이 다시금 에리카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별달리 특별한 것 없는 얼굴. 그 모습에 이세훈이 턱을 쓰다듬었다.

“쟤들한테 보여줬던 표정해 봐.”

“지금 이 표정이야.”

“좀 더 험악했을 거 같은데.”

“딱히.”

죽일 듯이 쳐다봤을 게 분명하면서 발뺌하는 에리카.

그 모습에 이세훈이 피식 웃으며 뒤따랐고, 이내 최상층에 위치한 에리카의 기숙실에 도착했다.

“흐음…….”

깔끔하게 정리된 내부.

이전에 찾아갔던 제이크의 기숙실만큼 병적으로 깔끔하진 않았지만 어질러진 곳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이것저것 뭐가 많네.’

입구에서부터 거실로 도착하는 복도까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은밀하게 깔린 결계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기숙실이라기 보다는 요새를 방불케 하는 내부에 이세훈이 주변을 둘러보자 에리카가 담담히 이야기했다.

“밖에서는 노려지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 그래서 설치해둔 거야.”

“하긴. 집안이 집안이니까.”

가진바 힘만큼이나 적과 경쟁자가 많은 것이 명문가다.

어떻게 보면 에리카가 정상이고 아무런 대책도 안 해둔 제이크가 안일하다고 볼 수 있으리라.

“마실 건?”

“괜찮아. 바로 시작하자.”

두 사람이 거실에 소파에 마주 앉았고 에리카가 이세훈에게 물었다.

“필요한 거 있어?”

“까마귀만 불러줘. 기왕이면 보면서 작업하는 게 좋으니까.”

“응.”

고개를 끄덕인 에리카가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닫혀 있던 방문 하나가 자연스럽게 열렸다.

“까악.”

열린 방문에서 자연스럽게 날아와 탁자 위에 착지하는 까마귀. 그 과정을 살핀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흐음. 눈짓으로 자연스럽게 조종할 정도면 기술식 전체가 손아귀에 들어가 있다고 봐도 되겠는데.’

이 시설로 자신의 실력을 확실히 살펴보려는 것일까. 에리카의 의도를 생각하며 이세훈이 재료를 꺼냈다.

“그럼 시작한다.”

이번에 메르카토르에서 구매한 재료는 크게 두 종류.

하나는 그림자를 뭉쳐놓은 듯한 검은색 광석 ‘쉐도우 매터’였고 다른 것들은 비행종 몬스터의 부산물들이었다.

“허밍 쉐도우와 썬더 팔콘의 뼈. 스톰 벌쳐의 깃털. 이게 이번에 사용할 주재료들이야.”

각각 검은색과 노란색으로 물들어있는 뼈. 그리고 탁한 은빛이 감도는 깃털들이 모여 있었는데 하나같이 담겨져 있는 마력이 상당했다.

“이것들로 뼈대를 만든 다음에 쉐도우 매터로 덮어서 완성할 건데 어떤 식으로 되는지는 보면 알 거야.”

짧게 설명한 이세훈이 백광비수를 꺼내 뼈를 깎아낸 다음 겉면에 술식을 새겨넣었다.

사각사각

거침없이 이어지는 손길.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에리카가 물었다.

“설계도는?”

“머릿속에 있어.”

“교차검증은 안 해도 돼?”

“설계도대로 못 만들 정도면 의뢰를 안 받았지.”

대답하면서도 이세훈의 손은 멈추지 않았고, 재료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손질되어 한쪽에 나열되어갔다.

그리고 모든 손질을 끝낸 이세훈은 완성된 뼈대를 거침없이 조립하기 시작했다.

딸깍!

원래 하나로 만들어졌던 것처럼 뼈들이 자연스럽게 맞물렸고, 그 사이사이에 이세훈이 언령각인을 불어넣었다.

“〈형상변환〉, 〈속성호환〉, 〈마력전도〉…….”

우웅

언령각인에 의해 뼈대 내부를 자연스럽게 순화하기 시작한 마력. 그 상태를 확인한 이세훈은 날개뼈 쪽에 스톰 벌쳐의 깃털을 가볍게 붙였다.

촤라락!

뼈대에 깃털이 달라붙자 살아 있는 것처럼 가지런히 정렬되었고, 그 과정을 바라본 에리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재료를 활성화시켰어…….’

부산물을 재료로 사용할 때 쓰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첫 번째는 힘 자체를 가공하여 다르게 변형하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몬스터가 살아 있을 적의 발휘한 힘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것이다.

이중 효율만 따지면 재료가 소모되지 않는 재현이 더 좋았지만 실제로는 잘 쓰이지 않았다.

‘몬스터의 생체 반응과 유사할 만큼 복잡한 마력 회로를 만들어내야 하니까.’

설계 과정에서도 골치 아프고 사용할 때도 조금만 엇나가도 효율이 떨어져 제작자나 사용자나 어려운 방식.

그렇기에 다른 이들 같으면 기겁할 만한 제작법이었지만 에리카는 오히려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생체무구 쪽으로도 재능이 있구나.’

에리카가 유심히 바라보는 사이 이세훈이 모든 깃털을 붙였고, 마지막으로 쉐도우 매터를 집어 들어 암속성마력인 월영을 끌어올렸다.

주르륵─

이세훈의 마력에 따라 쉐도우 매터가 그림자처럼 퍼졌고 뼈대 곳곳에 날렵하게 달라붙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완성된 검은색 외골격. 그 뼈대를 살핀 이세훈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까마귀를 불렀다.

“이리와.”

“까악.”

까마귀가 총총거리며 다가왔고 이세훈은 곧장 외골격을 등 뒤로 장착시켰다.

촤자작!

쉐도우매터가 까마귀의 체형에 반응하여 날개와 흉부에 자연스럽게 달라붙고 이어서 뼈대가 조각조각 맞춰진다.

그리고 까마귀의 마력이 내부로 스며들며 한 몸처럼 연결된 순간.

[무구 ‘영골장갑’이 완성되었습니다!]

[경지에 오른 대장장이가 자신의 발상을 아낌없이 쏟아부은 무구! 정교하게 맞물린 구조는 사용하기 까다로우나 익숙해진다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줄 것입니다.]

[판정결과 ‘영골장갑’의 등급은 ‘영웅’입니다.]

요란하게 나타나는 알림창. 그 내용을 살핀 이세훈이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재료값은 했네.’

쉐도우 매터 자체만 해도 영웅 등급인 데다 다른 것들도 희귀등급이긴 하지만 A급 몬스터의 부산물인 만큼 발로 만드는 게 아니고서야 이 정도는 당연히 나와야 한다.

다른 생도들이 들으면 분통을 터뜨릴 만한 생각을 하며 이세훈은 곧장 정보창을 살폈다.

[영골장갑影骨裝甲]

[등급 : 영웅] [품질 : 중]

까마귀에 맞춰서 만들어진 특수 외골격.

내부에 마력이 순환되고 있는 동안 비행능력을 강화하며 착용자에게 가해진 충격을 깃털로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특수한 경로로 마력이 공급될 경우 저장된 형태로 변형이 가능합니다.

*마력이 순환되고 있는 동안 비행능력이 강화됩니다.

*마력이 순환되고 있을 동안 착용자에게 가해진 충격을 깃털로 흘려낼 수 있습니다.

*스킬 ‘위영갑’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딱 됐구만.’

모든 확인을 끝낸 이세훈은 에리카를 바라보았다.

“완성이야. 살펴봐.”

“……응.”

까마귀에게 손짓을 해서 부른 에리카는 겉으로 살펴본 다음에 정보창도 읽어보았다.

그렇게 한참동안 살펴보고 있던 그때.

[대상 ‘이노우에 에리카’의 평가가 높아졌습니다.]

[대상 ‘이노우에 에리카’의 인연석이 생성됩니다.]

눈앞에 떠오르는 알림창. 그 내용을 읽은 이세훈이 두 눈을 빛냈다.

‘과연. 인간적인 부분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나 보구만.’

만약 에리카의 평가 기준이 사람의 복합적인 부분을 보는 거라면 영골장갑을 만든 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에리카는 성능을 확인한 바로 그 순간 자신에 대한 평가를 높이고, Lv.2의 인연석을 만들어냈다.

즉, 에리카의 평가기준은 순수하게 대장장이로서의 능력에만 한정된다는 것이다.

‘능력만 본다는 게 나쁘지 않기야 하지만…… 이 정도면 회귀 전 류은하보다 더 삭막한 것 같은데.’

사람이 이 정도로 공과 사를 구분할 수 있는가. 이세훈이 미묘한 표정으로 보고 있을 때.

“써봐도 돼?”

에리카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 상관은 없는데 어떻게 쓰는지는 알겠어?”

이세훈의 물음에 에리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강 알 것 같아. 보여줄게.”

까마귀를 손에 올린 에리카가 베란다로 향했고 이세훈도 그 뒤를 따라서 걸어갔다.

‘결산창에서 까다롭고 나오면 진짜 더럽게 어렵다는 뜻인데…… 어디까지 될지 궁금하네.’

영골장갑은 사용자의 능력에 따라서 효과가 결정되는, 어떤 의미에서는 편의성을 완전히 때려치운 수준으로 만들어졌다.

한 마디로 에리카의 기량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 물건. 그렇기에 어디까지 펼쳐낼 수 있을지 이세훈이 기대를 담아 보고 있을 때.

“풍인風引”

우웅

에리카의 속삭임과 동시에 은빛마력이 까마귀의 체내에 깃들었고, 동시에 영골장갑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촤자작!

넓게 펼쳐지는 날개 쪽의 외골격. 그 위로 은빛 마력이 자연스럽게 맺히더니 거대한 날개를 만들어냈다.

이전의 밋밋한 강화 주술과 다르게 자연스러운 형태. 그 모습을 확인한 에리카가 가볍게 손을 털어내 까마귀를 밖으로 날려 보낸 순간.

쿠오오오─

까마귀의 뒤로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겉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대기의 흐름.

거센 돌풍을 휘감으며 움직이는 까마귀의 모습에 이세훈이 감탄했다.

‘꽤 하는데.’

스톰 벌쳐의 깃털을 응용하여 만들어낸 형태.

바람이 상당히 거센 것이 공격이든 방어든 사용하기 편해 보였는데 처음 만들어낸 것치고는 완성도가 상당했다.

‘이 정도면 익숙해진 뒤에는 더…… 응?’

이세훈이 칭찬하는 사이 앞으로 날아가던 까마귀가 갑자기 유턴을 하더니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뒤를 따르던 바람들도 뒤따라 원을 그리며 거세게 회전하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이세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거…… 설마…….’

여기서 한 단계 더 할 수 있는 것인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처음에 그만큼 사용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그런 생각이 이세훈의 머리를 스쳐지나가고 있을 때.

“광풍狂風.”

에리카의 중얼거림과 함께 영골장갑의 형태가 다시 변했다.

사방으로 거칠게 뻗어 나간 거대한 날개. 그와 동시에 까마귀가 바람을 타고 더욱 빠르게 회전했고, 은빛 폭풍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쿠과가가각!

“뭐, 뭐야?!”

“누구야. 마인이야?!”

“나도 몰라!”

상대를 그대로 갈아버릴 듯한 사나운 폭풍.

그 무시무시한 바람에 베란다까지 바람이 미친 듯이 휘몰아쳤고, 아래쪽에서 기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광경을 말없이 바라보던 에리카가 기숙사 근처에 있는 작은 산을 가리켰고.

콰아아앙!

까마귀가 만들어낸 광풍이 산을 그대로 후려갈겼다.

광풍을 견디지 못하고 뜯겨나간 나무와 거대한 짐승이 긁은 것처럼 산 위에 처참하게 새겨진 흔적.

“…….”

그 예상을 뛰어넘은 광경에 이세훈이 멍하니 보고 있을 때. 에리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주 좋아.”

그리고 흡족한 듯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