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19화
사람이든 물건이든 서로 적게나마 상성인 것들이 존재하듯 회귀 전 삼견에게도 서로 그런 상성 관계가 존재했다.
“폭견이라는 녀석, 내 옆에 붙이지 마라. 거슬린다.”
광견은 마력동화를 사용하여 염륜잔화창의 잔화를 통제할 수 있는 폭견을 싫어했고.
“다음 임무에도 그 음습한 새끼랑 붙여놓으면 진짜 니들 대갈통 다 터뜨려 버릴 거야. 알았어?”
폭견은 동천안으로 심리를 꿰뚫고 투빙인을 비롯한 암기로 빈틈을 파고드는 빙견을 싫어했다.
“그 사람이랑 가라고요? 안 갈 겁니다. 차라리 절 때려 죽…… 이지는 마세요. 망치 내리시고.”
그리고 빙견은 광견과 함께하는 것을 죽는 것 다음으로 싫어했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녀석의 고유스킬인 ‘진원공명盡源共鳴’ 때문이었다.
파앙─!
두 마력이 공명을 일으키며 터져 나오는 마력 파동.
마력 배열을 뒤흔드는 이 특수한 파동은 상대의 기술이 섬세하면 섬세할수록 더욱 강력한 위력을 자랑한다.
건물을 위에서부터 차곡차곡 부수는 게 아니라 지반을 약하게 만들어서 폭삭 무너뜨리는 방식이라 아무리 기술이 섬세해도 의미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특히, 얼음을 극한으로 가공하여 만들어 내는 칼날, 투빙인은 진원공명의 마력 파동 앞에선 얼음 부스러기나 다름없었고.
파카앙!
나는 지금 그걸 마음껏 쓸 수 있었다.
“큭……?!”
다시 만들어 낸 투빙인들이 허무하게 박살 나고, 그 파편을 뚫고 다시 파고든 이세훈이 재빠르게 단검을 휘둘렀다.
카앙!
어깻죽지를 베기 전에 얼음으로 만들어진 두꺼운 단검이 공격을 쳐내고 반대쪽은 목을 노리고 찌른다.
주력 기술을 파훼당해 당혹스러울 텐데도 문제점이 무엇인지 바로 파악하고 두꺼운 얼음 단검을 만들어 체술로 즉각 대응하는 아미르.
재능은 어디로 안 갔는지 나름 깔끔한 대응이었으나.
카각!
그 역시 해결책이라 볼 수는 없었다.
단검을 역수로 바꿔 잡으며 목을 노린 얼음 단검의 날을 가볍게 흘려내고 아미르의 왼발 위로 이세훈이 자신의 발을 힘껏 찍었다.
콰앙!
간발의 차로 발을 뒤로 빼내며 피했지만 그 예정에 없던 움직임에 자세가 살짝 틀어졌고, 이세훈의 두 단검은 그 틈을 완벽하게 파고들었다.
“윽……!”
카가강!
단검을 사용해 싸울 때는 매 일격마다 힘을 주기보다는 서로의 공격을 쳐내고, 빈틈을 파고들며 피해를 누적시키다가 급소를 꿰뚫는 것이 정석.
아미르의 단검술 역시 그런 형태였지만 이세훈이 펼치는 것은 조금 달랐다.
카각!
얼음으로 만들어진 단검과 윌영을 머금은 검은 단검이 서로 부딪치고, 그 직후 서로 쳐내야 할 날들이 딱 맞물린 채 떨어지지 않는다.
정확히는 아미르는 쳐내려고 했지만 이세훈의 단검이 따라붙으면서 짓누르는 것이었는데 그 벗어날 수 없는 압박감에 눈매가 일그러졌다.
‘암속성마력의 흡인력…… 거기에 힘의 움직임을 파악해서 계속 달라붙고 있어……!’
힘이 어디로 향하는지만 알 수 있다면 그것을 흘려내는 것도, 짓누르며 제압하는 것도 간단하다.
물론 그것을 처음 보는 상대와 처음 보는 기술을 대상으로 펼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눈앞의 상대는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고 있었다.
“정신 차려야지. 뭐 해.”
빠악!
팔꿈치와 주먹이 몸을 두들겼고, 이어서 단검의 칼날이 급소를 향해 매섭게 파고든다.
이세훈의 공격을 다급히 쳐낸 아미르는 계속되는 전투에 혼란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게…… 도대체…….’
자신보다 강한 자와 싸우던 약한 자와 싸우던, 아미르는 언제나 동천안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방금 목을 노린 공격이 단순한 떠보기인지,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는 공격이 사실 비장의 한 수인지.
카드 게임에 비유하자면 아미르 혼자서 상대의 패를 보면서 게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각!
하지만 눈앞의 상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목을 노렸다고 생각한 단검이 머리카락만 스치며 가볍게 지나가고, 별것 없던 일격이 갑작스레 역수로 바뀌며 손목을 잘라낼 것처럼 휘둘러져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살면서 처음으로 느끼는, 환락가의 그 괴물과 마주쳤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
그 불쾌한 감각에 아미르는 당황하면서도 강제로 정신을 일깨웠다.
‘당황할 필요 없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야.’
그동안 자신이 남들보다 우위에 서 있던 이점이 사라졌을 뿐. 그것이 곧장 패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환락가의 괴물에게서 느꼈던 것이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었다면, 눈앞의 녀석은 그저 익숙하지 않은 전투에 대한 당혹스러움일 뿐.
‘나도 익숙해진다면……!’
상대의 기술과 약점을 파악하고 거기에 대응한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머릿속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아미르는 다시금 자신이 밀리고 있는 상황을 직시했다.
카앙!
앞을 가로막았던 얼음 단검들이 양옆으로 간단히 쳐내졌고, 텅 빈 가슴팍 위로 두 단검이 매섭게 휘둘러졌다.
옷 너머로 있던 갑옷을 긁어내며 튀어 오르는 불똥. 자칫 잘못하면 일격에 죽을 수도 있었던 일격에 아미르는 섬뜩함을 느끼면서도 두 눈을 빛냈다.
‘신체 능력 자체는 생각보다 낮아.’
버프 마법까지 두르고 있는 데도 갑옷 너머로 충격을 거의 주지 못할 정도라면 기술과 별개로 위력은 형편없다는 뜻일 터.
드디어 상대의 빈틈을 발견한 아미르는 뒤쪽으로 밀려나던 자세를 강제로 다잡고 아래쪽에 빙판을 만들어 냈다.
“어이쿠.”
콰앙!
본래는 조금이라도 자세를 흔들 작정이었지만 그 의도를 알아차린 듯 발끝에 마력을 담아 단숨에 안정시킨다.
후웅!
하지만 진짜로 노린 것은 빙판을 이용하여 자신의 자세를 다잡는 것. 몸을 유연하게 비틀어 이세훈의 공격을 피한 아미르는 곧바로 이세훈에게 달려들었다.
쩌적!
얼음 단검의 날 위로 더욱 가느다란 날이 덧씌워지듯 형성되고, 그대로 이세훈의 칼날과 있는 힘껏 맞부딪친다.
파카앙!
부서지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이중 칼날.
그 덕분에 끈덕지게 따라붙었던 이세훈의 칼날이 제대로 쳐내졌고, 자신의 의도대로 흘러간 상황에 아미르가 더욱 힘차게 몰아붙였다.
카가각!
강제로 이어가는 공세인 만큼 이세훈에게 허용되는 공격도 늘었지만 대부분 갑옷으로 보호받고 있는 급소.
실질적인 유효타가 없었기에 아미르는 더욱 거세게 단검을 휘둘렀고 그 결과 처음으로 대등함을 넘어서 우세를 점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여기서 제대로 된 빈틈만 찾아낸다면 일방적으로 이어지던 이 전투를 끝낼 수 있을 것이다.
그 빈틈을 찾아내기 위해 동천안이 아닌 아미르의 두 눈이 이세훈의 움직임을 완벽히 포착하며 움직였고.
카앙!
두 사람의 단검이 있는 힘껏 부딪치며 튕겨졌다.
양옆으로 벌려진 두 팔.
앞서 펼쳐냈던 기묘한 파동이 모두 단검을 부딪쳐서 만들어 낸 것임을 깨달은 아미르가 곧장 새로운 칼날을 만들어 냈다.
빙결연금氷潔鍊金 설추雪錐
완성도를 낮춘 대신 생성 속도를 늘린 새하얀 얼음송곳.
전신의 급소를 노리며 쏘아지는 송곳들의 모습에 이세훈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그래도 학습능력은 있다 이거구만.’
처음에는 너무 일방적으로 밀려서 실망이었지만, 상대에 맞춰서 새로운 빙결연금을 만들어 낼 정도라면 나쁘지 않다.
그리 생각하며 이세훈이 두 단검을 역수로 바꿔 잡았고.
투살법鬪殺法 빙파氷破
방금과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단검을 휘둘렀다.
카가강!
“?!”
회심의 일격이 생각했던 것이 단검에 의해 허무하게 박살 나고, 이어서 두 단검의 끝이 급소를 향해 쇄도해 온다.
앞서 파악한 것과는 전혀 다른 신체 능력. 그 모습에 아미르는 당황하면서도 재빠르게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자신의 얼음단검을 마주 휘둘렀고.
파카앙!
전력으로 만들어 냈던 얼음 단검이 허무하게 부서졌다.
“아.”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미세한 균열.
앞선 공방에서부터 차근차근 만들어졌던 그 빈틈 사이로 단검 끝이 파고들어 단숨에 무구를 부숴 버렸다.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그 일격에 아미르가 경악스러운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았고.
푸욱!
이세훈의 두 단검이 몸 안을 파고들었다.
콰득! 우득!
어깨와 양팔, 손목, 이어서 옆구리와 허리, 허벅지 등 갑옷으로 가려져 있지 않은 틈새를 사정없이 찌른다.
전신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통증. 그와 동시에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낀 아미르는 자세를 바로잡을 틈도 없이 곧장 뒤로 넘어졌다.
쿵!
“윽…….”
바닥에 넘어지자마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상처에서 피만 흘러나올 뿐. 전신에 힘이 안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며 마력조차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무슨 짓을…….’
공격당한 것에 비해 비정상적인 탈력감. 거기에 아미르가 눈매를 찌푸리고 있자 이세훈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약점을 파고들어서 흥분한 걸 알겠는데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정도는 잘 살펴봐야지. 순진하구만.”
흔치는 않지만 싸우기 전부터 약한 척 엄살을 부리는 녀석들도 있기 마련.
특히, 약해빠졌으면서 기술이랑 눈치만 좋은 녀석들이 이런 수를 자주 썼기에 뭔가 쎄하다 싶으면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급한 상황이니 속전속결을 노릴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점을 이용했을 줄이야. 모양새는 없지만 꽤 쓸 만하군요. 다음이 있다면 참고하겠습니다.”
비아냥거림이 반, 그리고 진심이 반쯤 섞인 아미르의 대답에 이세훈이 피식 웃었다.
“그러시겠지.”
회귀 전에 본인이 자주 사용하던 방식인데 어련하겠는가. 앞으로 다가간 이세훈은 움직이지 못하는 아미르를 내려다보았다.
“근육이랑 마력회로 몇 군데 꼬이게 끊어놨으니까 괜히 어설프게 움직이려고 하지 마. 재수 없으면 마력결상이니까.”
“……당신은 정말 뭐 하는 사람인지 알 수가 없네요.”
동천안도 안 통하고, 자신의 빙결연금도 완벽히 파훼하며 근접전도 가지고 놀다시피 상대했다.
거기에 특수한 스킬을 사용한 것도 아니고 몸 몇 군데를 요령 좋게 찔러서 이렇게 완벽히 제압하다니.
할 줄 아는 게 너무 많다 보니 도저히 그 정체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네가 알 필요는 없고…… 보자.”
아미르의 물음에 건성으로 대답한 이세훈은 단검으로 가슴 쪽을 가볍게 베어냈다.
찌직
와이셔츠가 잘려나가며 드러난 얇은 갑옷.
딱 봐도 값이 꽤 나가 보였는데 다른 사람이 벗길 수 없는 구조로 보였다.
그 형태를 살피던 이세훈은 홍륜염을 감싼 단검의 끝을 한 곳에 가져다 댄 다음 월영을 휘감은 단검으로 그 옆면을 후려쳤다.
진원공명盡源共鳴 투향透響
우우웅──쩌적!
두 단검이 만들어 낸 울림이 갑옷 깊숙이 퍼졌고, 잠시 후 명치를 가리고 있던 부분이 단숨에 균열이 퍼지며 쪼개졌다.
“뭐…….”
그 기묘한 한 수에 아미르가 당황하고 있을 때. 틈새를 강제로 벌려낸 이세훈이 아미르의 명치를 내려다보았다.
장미의 형태를 띤 연보라색 문양. 평범한 문신 같으면서도 그 안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마력에 이세훈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몽환의 징표인가…….”
현실과 꿈의 경계를 오갈 수 있는 몽환의 마력으로 만들어 낸 징표. 십악의 ‘몽환마’가 사용하는 기술로 일종의 낙인 같은 종류였다.
회귀 전에도 본 적 있는 형태에 이세훈이 가만히 살펴보자 아미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당신…… 정말로 정체가 뭡니까?”
몽환의 징표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몽환마와 어느 정도 엮여있는 관계자거나 아니면 거기에 당한 적 있는 ‘노예’밖에 없다.
더욱더 종잡을 수 없게 된 이세훈의 정체에 아미르가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그 시선에 이세훈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네가 알아서 뭐 하게?”
“…….”
“그리고 너 지금 사실상 시체나 다름없거든? 그만 주절거리고 그냥 얌전히 있어.”
뭐가 그리 궁금한지 계속 쫑알거리는 아미르에게 툭 쏘아붙인 이세훈은 투안을 사용해 몽환의 징표를 더욱 자세히 살펴보았다.
‘징표를 사용해서 운반할 물건을 심장에 겹치게끔 놔둔 건가. 보안이야 좋긴 하지만 완전 악질이구만.’
만약 누군가 억지로 이 물건을 꺼내려고 시도하는 순간 징표 안에 보관된 물건도, 아미르의 심장도 함께 꿈으로 변해 흩어져 버린다.
습격자의 손에 넘어가지 않는 것은 좋지만 아미르의 목숨도 덩달아 날아가는 과격한 방식.
그 형태에 이세훈은 새삼 지금이 과거라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능력을 인정받기 전에는 취급이 썩 안 좋다고 했었으니.’
싱 가문의 두령으로 내세워야 했기에 살려두긴 했지만 영 못 써먹겠으면 언제든지 ‘폐기’해도 상관없던 수준.
그 때문에 어린 시절 빙견은 살아남기 위해서 악착같이 활약해 환락간의 간부가 되고 몽환마의 비호까지 받게 되었지만, 나중에는 그것이 도리어 족쇄가 되었다.
‘너무 마음에 들어버린 탓에 전신에 징표가 새겨졌었지.’
자신의 도움으로 그것을 제거할 수 있었기에 그나마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끝까지 몽환마에게 부려 먹히다가 죽었을지도 모르리라.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는 적당히 무능한 편이 좋으려나.’
양지든 음지든 너무 주목을 받는 것도 썩 좋지 않은 법.
이번이 좋은 ‘실패’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이세훈이 자신의 명치에 손을 가져다 댔다.
“죽기 싫으면 지금부터 얌전히 있어.”
“그게 무슨…….”
아미르의 물음에 이세훈은 대답 대신 몽상수납으로 보관하고 있던 몽환규도를 꺼내 들었다.
화르륵
명치의 보랏빛 불꽃 안쪽에서 빠져나오는 보랏빛의 단검.
그 아름다운 형태에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던 아미르는 그 안에 담긴 힘이 무엇인지 깨닫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몽환의 마력?’
정말로 몽환마와 연관이 있던 인물인 걸까.
아미르가 머릿속으로 그 정체를 추론하는 사이 이세훈은 자신의 오른손 검지, 그 안에 숨겨진 불명자의 지골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경계의 눈.’
스스슥
손가락에서부터 솟구쳐 두 눈에 씌워지는 검은 마력.
아미르의 심장과 몽환의 징표를 구분 짓는 검은색 테두리를 확인한 이세훈은 그 경계선 위로 몽환규도를 조심스레 찔러 넣었다.
“윽……!”
명치를 파고드는 보랏빛 칼날.
그야말로 아찔한 광경이었지만 예상과 달리 보랏빛 칼날은 불꽃처럼 흩어져 고통 없이 파고들었다.
그 기묘한 감촉에 아미르가 눈매를 찌푸리고 있을 때. 이세훈은 몽환규도를 사용하여 징표을 조심스레 도려냈다.
스스스
술식을 끊어낼 때마다 명치에 새겨진 장미문양이 외곽에서부터 흩어졌고, 그 안을 이루고 있던 몽환의 마력이 바깥으로 풀려나왔다.
‘됐어. 여기서부터는 차근차근…….’
여기서 조금이라도 실수하는 순간 몸에 남은 몽환의 마력이 아미르의 신체 일부를 꿈의 경계로 밀어 넣을 수도 있다.
심장의 일부면 즉사할 수도 있었기에 이세훈은 신중히 잘라내면서 체내에 남은 몽환의 마력은 몽환규도로 집어삼켰다.
화르륵
남아 있는 마력을 연료삼아 더욱 짙게 물드는 몽환규도.
그러는 사이 마침내 심장에 달라붙어 있던 몽환의 징표가 완전히 도려내졌고, 그동안 흐릿해 보이던 물건이 좀 더 선명해지며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가.’
심장과 흐릿하게 겹쳐진 사각형 상자.
그것을 확인 이세훈은 재빠르게 몽환규도로 중심을 꿰뚫은 다음 바깥으로 끄집어냈다.
투웅─
보랏빛 불꽃과 함께 밖으로 빠져나온 흐릿한 상자. 당장에라도 흩어지려는 그 모습에 이세훈이 재빠르게 몽환규도를 휘둘렀다.
화르륵!
몽환의 불꽃이 상자를 둘러싼 마력을 모조리 불태웠고, 꿈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실체가 현실에 드러났다.
‘이게 블랙 암즈로 보내려 한 물건인가.’
광택 하나 없는 검은 상자. 겉에는 각종 인챈트와 부적이 빼곡하게 붙어있었는데 모두 불꽃을 가라앉히고 차단하는 종류였다.
‘불꽃과 관련된 물건이라…… 이 정도 봉인이라면 진짜 불가살이 기다리던 물건일 수도 있겠는데.’
불가살, 아니, 그 배후에 있을 『공양』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몽환마에게서 이런 물건을 구매하려 한 것일까.
주시자와 십악이 한데 얽힌 움직임에 이세훈이 무언가 거대한 흐름을 느끼고 있을 때.
딸깍
뒤쪽에서 작은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스스
탁자 위에 놓인 향로.
방 안 가득 퍼져 있던 몽환의 마력이 그 안에 스며들더니 이내 보랏빛 연기가 천천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연기가 방금 제거한 몽환의 징표를 이루고 있던 힘과 유사하다는 것을 깨달은 이세훈이 재빨리 손에 들린 몽환규도를 내던지려 한순간.
아아──
보랏빛 연기 너머로 몽롱하게 풀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몸 안쪽까지 파고드는 듯한 이상야릇하면서도 불쾌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에 이세훈이 눈매가 일그러졌다.
‘이건…….’
자신이 예상한 상대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세훈이 뒤쪽의 아미르를 바라보았고, 그 표정에 일어난 변화를 살폈다.
안도와 분노, 그리고 경멸과 두려움이 한데 섞인 복잡한 감정. 그것을 보고 나서야 이세훈은 상대가 누구인지 확신했다.
환락가의 주인. 꿈을 오가며 세계를 희롱하는 마인.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십악 몽환마의 목소리가 나긋하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