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18화
쿠구궁!
밤하늘을 가린 먹구름 속에서 거센 비바람이 몰아쳤고 파도가 크게 요동치며 여객선을 쉴 새 없이 후려쳤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쉴 새 없이 떨리는 선내.
그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한창 여행을 즐기던 승객들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고, 긴급 방송이 흘러나왔다.
[갑작스러운 마력 폭풍에 의해 선박이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들께서는 안전을 위해 방으로 들어가셔서 안전장치를…….]
해상에서 돌발적으로 생겨난 마력 폭풍.
흔한 일은 아니지만 길 가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종종 마주치는 일이었기에 승객들이 긴장을 풀며 투덜거렸다.
“아이 씨. 왜 하필 오늘이야?”
“기껏 놀러 왔더니.”
마음과 같아서는 무시하고 싶었지만 이런 비상사태 때 통제를 무시하고 움직였다가는 마인으로 의심받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승객들은 얌전히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자신들의 객실로 돌아갔고, 잠시 후 환풍구로부터 무색무취의 가스가 소리 없이 흘러나왔다.
“낮에 너무 놀았나…….”
“어차피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데 일찍 잘까…….”
가스를 맡은 승객들이 자연스럽게 침대에 누워 잠에 들고, 여객선을 뒤집어놓을 것처럼 몰아치던 비바람과 파도가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그리고 선박의 내부가 완전히 고요해졌을 때쯤. 닫혀 있던 문이 열리며 잠들지 않은 이들, 블랙 암즈의 직원들이 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금방 도착하니까 빨리빨리 움직여!”
“물건들 체크하고 바로바로 내릴 수 있게 준비해!”
운항 경로를 수정하여 블랙 암즈가 숨겨진 인공섬에 도착할 때까지 약 20분.
그 안에 하선 준비를 끝내놓지 않으면 블랙 암즈의 주인 ‘오너Owner’가 무슨 난리를 피울지 몰랐기에 모두가 다급히 움직였다.
그리고 자연스레 선박 전체를 지휘하는 이들도 바빠졌는데 그것이 바로 ‘중앙 관제실’이었다.
“C-22구역에 있는 화물 전부 B-12로 이동시켜!”
“지금 그쪽 다른 공간이랑 정렬 중인 거 안 보여? 순서대로 해! 순서대로!”
“A-10이랑 A-11 아직도 안 붙여놨어? 지금 길 끊겼다고 난리잖아!!”
공간 마법으로 각 구획이 퍼즐처럼 나뉜 여객선 내부를 제어하고 화물이 보관된 창고의 보안을 관리하는 통제 시설.
평상시에도 혹시 모를 침입자에 대비하기 위해 바빴지만 지금처럼 하선을 앞두고 있을 때는 여객선 전체에 닦달을 받는 터라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다.
“D-11구역 보안 빨리 풀어달랍니다.”
“다른 곳들 풀고 있으니까 좀 기다리라고 해!”
원탁처럼 만들어진 탁자에 앉아 바쁘게 패널을 두드리는 직원들. 그때마다 중앙에 떠올라 있는 선박 형태의 홀로그램이 이리저리 분리되었다가 다시 합쳐지며 현황을 보여준다.
그렇게 중앙 관제실 내부로 고성이 오가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 직원 한 명이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음? 엘리베이터가 왜…….”
객실 쪽에서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하는 엘리베이터.
원래 하선을 준비하고 있을 때는 각 구획 사이에 끼일 수가 있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인데 누가 탑승한 것이다.
“팀장님. 누가 엘리베이터…….”
“보나 마나 화물 팀장 그 새끼겠지! 그냥 창고 아무 곳이나 일단 집어넣어!”
“아, 넵.”
신경질적으로 대답하는 팀장의 모습에 직원은 재빠르게 대답하며 시선을 돌렸다.
이럴 때 괜히 건드렸다가는 이런 일도 제대로 처리 못 하냐고 들들 볶일 게 뻔하다.
아래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의 모습에 직원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 팀장급 아니면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없긴 하지.’
하선을 준비할 때는 모든 엘리베이터가 공간 마법으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팀장급 직원 카드가 없으면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듯 융통성 있게 처리하기로 하며 직원이 패널을 두드리며 창고 쪽으로 경로를 수정했고.
“……어?”
엘리베이터는 그 제어를 무시하고 더욱 빠르게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잠깐. 팀…….”
그제야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한 직원이 황급히 팀장을 부르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모든 것이 늦은 뒤였다.
콰아아앙!!!
위에서 내려온 엘리베이터가 중앙관제실의 천장을 부수며 나타났고 순식간에 내부가 붉게 점멸하며 곳곳에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상황. 거기에 모두가 깜작 놀라 굳어 있을 때. 엘리베이터의 문 사이로 검은 장갑을 낀 손가락이 튀어나왔다.
콰드득!
엘리베이터의 문이 종잇장처럼 양쪽으로 벌어졌고, 그 틈 사이로 선글라스를 쓴 청년과 베일로 얼굴을 가린 소녀, 이세훈과 에리카가 밖으로 걸어 나왔다.
“흐음…… 생각보다 최신식이네.”
공간 마법으로 분리해둔 각 구획을 직원들이 수동으로 제어하는 형태.
이전에 교류회가 열렸던 바벨의 샹그릴라보다 구식이긴 했지만 구획을 움직일 때마다 관리자의 동의가 필요했기에 보안면에서는 좋았다.
제어 장치에 대해서 빠르게 파악한 이세훈은 옆에 선 에리카에게 물었다.
“어때. 내가 말한 거 할 수 있겠어?”
이세훈의 물음에 같이 안쪽을 살피던 에리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 패턴만 알아내면.”
“좋아. 그러면…….”
이세훈이 막 관리자를 찾기 위해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
후웅!
눈앞의 공간이 일렁이며 수십 개의 송곳이 나타났다.
수십 명이 동시에 내던진 것처럼 사방을 뒤덮은 암기. 거기에 이세훈의 시야 바깥, 등 뒤에 갑작스레 나타난 사내가 손에 쥐어진 두 단검을 매섭게 휘둘렀다.
엘리베이터가 떨어지고 나서 상황을 살피던 중앙 관제실의 팀장, A급 공간 능력자인 그가 기회를 노리고 단숨에 습격한 것이다.
‘잡았다……!’
공간 이동을 활용하여 사방에 암기를 투척하고 사각에서 급소를 노려 공격한다.
발동 전에 회피한다면 모를까 이렇게 둘러싸인 순간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자신이 봐도 완벽한 기습에 팀장이 두 눈을 빛냈고.
투웅!
엘리베이터의 안쪽에서 붉은 유성이 쏘아져 나왔다.
파앙─!
내지른 주먹의 풍압에 사방에서 쇄도해오던 송곳들이 튕겨져 나갔고, 이어서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이 팀장의 명치와 복부를 눈 깜짝할 사이에 후려갈겼다.
쾅! 우드득!
옷 안에 입은 갑옷이 단숨에 박살 나고 뼈가 으스러진다.
눈이 뒤집힌 팀장의 목을 낚아챈 붉은 머리의 경호원, 류은하는 곧장 반대편에서 에리카를 덮쳐들던 다른 직원의 턱을 돌려차기로 후려갈겼다.
빠각!
턱뼈가 산산 조각나며 눈이 풀린 직원. 그 모습에 류은하는 곧장 손에 잡고 있던 팀장의 몸을 그쪽으로 힘껏 내던졌다.
콰아앙!
팀장과 직원의 몸이 함께 벽면에 처박혔고 그 모습을 본 다른 이들이 입을 떡 벌렸다.
이 안에서 그나마 싸움 좀 한다는 두 사람이 몇 초도 버티지 못하고 단숨에 제압당한 것이다.
“또 있나?”
무심하게 주변을 둘러보는 류은하의 모습에 직원들이 식은땀을 흘렸다.
‘저, 저건 무조건 S급이다.’
‘수틀리는 순간 다 끝장이야.’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든 자신들의 목숨은 눈앞의 저 괴물이 결정짓는 것이나 다름없다.
모든 저항 의지를 상실한 직원들이 손 하나 까딱이지 못했고, 그 사이 주변을 둘러보던 이세훈이 두 눈을 빛냈다.
‘저놈이네.’
벽면에 처박혀 기절한 팀장, 그 안쪽의 마력의 흐름을 투안으로 살펴보던 이세훈은 곧장 그 형태를 손바닥 위에 만들어냈다.
“이런 느낌으로 구성하면 될 것 같아.”
“음…… 알았어.”
이세훈이 만들어준 견본을 살핀 에리카가 곧장 제어 장치의 패널에 오른손을 가져다 댔다.
우우우웅
에리카의 손에서 뻗어 나간 은색 마력이 제어 장치의 안쪽으로 파고들어 중앙 관제실 전역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 과정을 가만히 살펴보던 직원들은 벌벌 떨면서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그냥 덧그리고 있잖아?’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마법진을 파훼하거나 장악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 위에 똑같이 만들어내기만 한다.
도대체 저런 무의미한 행동으로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의문 속에서 마법진을 완벽히 그려낸 에리카가 손을 떼어냈다.
“됐어.”
“좋아.”
똑같은 형태의 마법진이 서로 겹쳐져 있는 상황.
뼈대가 완성된 것을 확인한 이세훈은 검은 장갑을 낀 오른손을 장치 위에 얹으며 이전에 읽은 공간 능력의 교본을 떠올렸다.
‘공간계열 능력은 크기보다 밀도가 중요하다.’
두 명의 공간 능력자가 한 공간을 두고 다툴 때. 거기서 우선권을 차지하는 것은 힘의 밀도가 높은 사람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A급 공간 능력자와 B급 공간 능력자가 싸울 때 B급이 아무리 마력을 많이 쓴다 해도 반드시 A급 공간 능력자가 먼저 공간을 다룰 수 있는 것이다.
‘사실상 접속 권한이나 다름없지.’
유저 계정이 아무리 많다고 한들 운영자 계정에게는 힘을 쓰지 못하듯, 공간 능력 역시 그와 흡사하게 돌아간다.
여기서 이세훈은 한 가지 발상을 떠올렸다.
‘공간을 제어하는 마법진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을 때. 공간은 어느 쪽의 지시를 따라 움직이는가.’
해봐야 A급 정도인 공간 능력자의 지시인가, 아니면 완등에 이른 초월자의 지시인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는 결과에 검은 장갑, 그 안쪽에 끼워진 승천제의 반지로부터 권능이 안쪽에 스며들었고.
철컥─
선박 전체가 이세훈의 명령에 따라 재조립되기 시작했다.
* * *
“…….”
의자에 앉아 책을 읽던 아미르는 돌연 눈매를 찌푸렸다.
아래쪽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진동. 하선 준비 중에 절대로 느껴져선 안 될 울림에 무언가 일이 생겼음을 직감한 것이다.
“무슨 문제지?”
아미르의 물음에 허공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전신이 검은 천으로 뒤덮인 부하가 조용히 대답했다.
“선박 아래에서 무언가 문제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자세한 원인은?”
“진입하려고 해도 공간 마법에 의해 모든 구역이 차단되어 있어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
부하의 대답에 아미르의 눈매가 살짝 찌푸려졌다.
별거 아닌 문제일 수도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이번에 자신이 맡은 ‘거래’에 지장이 갈 수도 있다.
잠시 고민하던 아미르는 이내 결정을 내린 듯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계약해둔 경호원들을 소집해. 나는 마담께 연락을…….”
쿠구궁─
조금 전과 차원이 다른 진동. 무언가 사건이 벌어졌음을 확신하게 된 아미르가 재빠르게 외쳤다.
“빨리 움직여!”
부하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아미르 역시 재빠르게 탁자 앞으로 향했다.
“후우…….”
연락하는 것이 내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일 자체를 망칠 수는 없다. 입술을 살짝 깨문 아미르가 아공간 포켓에서 고급스러운 형태의 향로를 꺼낸 순간.
쿠웅!
객실 전체가 아래로 푹 꺼지듯이 뒤흔들렸다.
“이게 무슨…….”
배를 통째로 무너뜨리기라도 하는 것인가.
그 이해할 수 없는 진동에 아미르의 시선이 자연스레 탁자 옆의 창밖으로 향했다.
“뭐…….”
본래라면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여야 할 창밖. 그곳에 어느새 강철로 만들어진 거대한 벽이 생겨난 것이다.
‘벽? 저런 게 갑자기 어디서…….’
도대체 이 여객선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아미르가 굳어 있을 때.
콰앙!
경호원을 불러모은 부하가 다급히 거실을 열고 나타났다.
“도련님! 선박의 구조가 변형되기 시작했습니다!”
“구조가 변형됐다고……?”
부하의 외침에 아미르가 다시금 밖을 바라보았다.
바깥을 둘러싼 강철의 벽. 그 일부가 선박의 복도나 통로와 유사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아미르가 뒤늦게 상황을 이해했다.
‘내가 있는 구획을 아래쪽으로 끌어내린 건가?’
일반적인 배라면 불가능하겠지만 선박 전체가 공간 마법으로 분리되어 있는 이 특수한 여객선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이런 일을 벌이려면 중앙 관제실을 탈취하고 제어 장치까지 장악해야 할 텐데……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벌인 거지?’
중앙관제실의 탈취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제어 장치를 장악하는 것은 S급 공간 능력자가 와도 쉽지 않은 일이다.
직원 중에 배신자가 있던 것인가. 아니면 블랙 암즈가 다른 뜻을 품은 것인가. 그리고 이 소동으로 노리는 표적은 누구인가.
‘더 이상 고민할 상황이 아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음을 깨달은 아미르가 재빠르게 탁자에 꺼내둔 향로로 손을 뻗었고.
파카앙!
창밖의 벽 일부가 열리며 은빛 마력을 두른 청년이 창문을 깨부수고 안으로 난입했다.
“……!”
아미르가 반사적으로 탁자 뒤로 몸을 내던졌고, 동시에 부하와 경호원이 침입자를 향해 덤벼들었다.
자신들 이외에는 모두 적이라고 가정한 완벽한 대응. 그 반응 자체는 흠잡을 곳 없이 완벽했으나.
후웅─
뒤이어 들어온 붉은 유성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콰아아앙!
달려들었던 부하와 경호원들이 모조리 문밖으로 튕겨져 나갔고, 바닥에 착지한 류은하가 담담히 이야기했다.
“최대한 붙들고 있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류은하가 방 밖으로 달려나갔고 동시에 객실 전체가 다시 요동치더니 문밖이 벽으로 가로막혔다.
‘또 분리시킨 건가.’
그냥 떨어진 것도 아니고 최소 A급 이상으로 보이는 강자가 발목을 붙잡고 있으니 도움을 구하기는 어렵다.
자신이 홀로 남게 된 것을 깨달은 아미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그렇게 멍청한 사람이 있었을 리가 없는데…… 참 어리석었네요.”
난입해 온 이가 카지노에서 마주쳤던 철부지, 이세훈이라는 사실에 아미르가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자신의 동천안이 뛰어나다고 해도 한 번쯤은 의심해 봤어야 했는데. 그 자책에 이세훈이 가볍게 어깨를 풀었다.
“원래 처음이란 게 다 그런 거지. 그래도 너무 기죽을 필요는 없어. 내가 좀 특별한 거라서.”
능청스러운 이세훈의 대답에 아미르의 눈매가 살짝 일그러졌으나 금방 평정을 되찾았다.
“그렇군요. 처음 만났을 때도 이렇게 속 터놓고 이야기했으면 더 재밌었을 것 같은데…… 조금 아쉽습니다.”
“너야 재밌었겠지. 난 재미없었을 거고.”
“그것도 모를 일이지 않습니까? 무슨 목적이신지 몰라도 서로 뜻이 일치할지도 모르는데.”
여유롭게 이야기를 하며 아미르가 이세훈의 무장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무기는 흔히 구할 수 있는 고급 등급의 양산형 단검 둘에 허리춤에 장검 하나. 정장 안에 방어구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특별해 보이진 않아.’
전신에 맺힌 은빛 마력은 아마 육체를 강화해 주는 버프계열일 터. 그 이외에 무언가 있는지 살펴본 아미르가 경계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저런 보잘것없는 상태로 뭘 기다리고 있는 거지?’
첫 습격 때 몰아쳐도 모자랄 텐데 도대체 왜 자신과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이 상황을 만들어내느라 지친 것일까.
평소라며 동천안을 토대로 판단을 내렸겠지만 눈앞의 상대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니 오로지 자신의 감으로만 대응해야 한다.
‘일단은…… 기다린다.’
어차피 시간이 없는 것은 저쪽일 터. 그렇기에 아미르는 모든 준비가 끝날 때까지 침착하게 상황을 기다렸다.
그리고 눈앞의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 움직이려던 그때.
“다 끝났어?”
맞은편에 있던 이세훈이 두 단검을 치켜들었다.
“그럼 간다.”
우웅!
양쪽 단검에 각각 휘감기는 진홍빛 마력과 검은색 마력.
화속성마력 ‘홍륜염’과 암속성 마력 ‘월영’을 단검에 담아낸 이세훈은 곧장 두 칼날을 마주 휘둘렀고.
[인연각인 ‘적명흑석’이 발동됩니다.]
염성하에게서 추출한 Lv.2의 인연석이 그 힘을 터뜨렸다.
파앙─!
두 속성 마력이 공명을 일으키며 터져 나오는 강력한 파동.
몸 안쪽까지 파고 들어오는 듯한 엄청난 압력에 막 달려들려던 아미르의 몸이 움츠러들었고, 더 나아가 주변에 만들어냈던 ‘칼날’을 휩쓸었다.
콰장창!
“?!”
투명할 정도로 얇은 얼음 칼날인 ‘투빙인透氷刃’.
자신이 준비한 기술이 처음부터 파악 당해 단숨에 파훼되었다는 사실에 아미르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고.
“일단 한 대!”
빠악!!
그 파편 사이로 파고든 이세훈의 발이 아미르의 가슴을 있는 힘껏 걷어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