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10화
주변을 뒤덮은 어둠. 그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세훈은 반사적으로 언령마법을 사용했다.
“〈발광구체〉”
파앗!
“……!”
허공에 나타난 빛의 구체가 어두워졌던 주변을 단숨에 밝혔고, 그 모습을 본 루이제가 재빠르게 상황을 파악하며 언령마법을 연이어 펼쳤다.
【Light Chandelier】
화아악!
이세훈이 만들어낸 빛의 구체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빛의 샹들리에.
몇 배로 확산된 빛이 순식간에 시야를 확보했고, 그 모습을 본 생도들이 웅성거렸다.
“뭐, 뭐야?”
“연출인가 본데?”
갑작스러운 정전과 기다렸다는 듯이 펼쳐진 마법.
너무 자연스러운 흐름에 생도들은 당연히 짜고 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던 란 페이는 캐스팅을 멈추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나보다 대응이 빠를 줄이야.’
언령마법의 특성 때문에 발동이 빠른 것도 있었지만 순간적인 판단력도 매우 뛰어났다.
마치 오랫동안 전장을 구른 영웅을 보는 듯한 모습. 신기한 표정으로 이세훈을 바라보던 란 페이는 곧장 시선을 돌려 다른 교수들을 바라보았다.
“사전에 들으신 것 있으십니까?”
“저는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찰스와 레베카의 대답에 란 페이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런 예정도 없이 상아탑의 마력 공급이 끊어졌다니…….’
다른 건물이라면 몰라도 상아탑 내부에서 마력 공급이 끊어진다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건물 내부에 마력을 사용하는 설비가 다른 이들보다 몇 배는 많은 만큼 건물이 무너지기 직전에도 원활하게 마력을 공급할 수 있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의 공격이 온 건가? 아니, 바벨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리도 없고…… 만약 그랬다면 이 정도로 끝났을 리 없다.’
단순한 사고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개입인가.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 란 페이가 주의를 기울이고 있을 때.
[상아탑 전체에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위쪽의 스피커에서 다급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현재 마력 공급 시설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 현상이 발생하여 마력 공급이 중단되었습니다. 곧 각층에 마련된 비상엔진이 가동될 테니 그대로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안내 방송에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생도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사고였어? 그럼 저 샹들리에는 뭔데?”
“저 둘. 장난 아니네…….”
경험이 부족한 생도들은 그저 의아하게만 바라보았고, 어느 정도 눈치가 있는 이들은 이세훈과 루이제가 순간적으로 보인 반응이 얼마나 터무니없었는지 깨달았다.
그렇게 시험장 내부가 생도들의 웅성거림으로 소란스러워지려던 그때.
“자. 모두 주목하세요.”
찰스가 마법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키우며 외쳤다.
“마력 공급이 불안정한 시설을 돌아다니는 것은 매우 위험하니 정상화될 때까지 잠시만 대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간단하게 상황을 정리한 찰스가 빛으로 만드렁진 샹들리에를 살핀 다음 레베카와 란 페이를 바라보았다.
“어두우면 생도들이 불안해할 수도 있으니 우선 주변부터 밝혀두지요.”
“알겠습니다.”
“그러죠.”
후웅!
세 교수는 시험장을 돌아다니며 자신들의 마법이나 인챈트로 빛을 만들어냈고, 시야가 밝아지자 생도들도 금방 진정하며 기다리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소란이 가라앉은 내부. 그 상황을 말없이 살피던 루이제가 조용히 물었다.
“맞지?”
“아마도.”
마법 설비를 갖춘 건물에서 절대로 있어선 안 되는 사고가 하필 자신들이 방문했을 때 터진다?
누군가는 우연이라 치부할지 몰라도 이곳에 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두 사람은 절대로 믿지 않았다.
‘불이 꺼진 사이에 수작을 부리려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찰스로부터 마법이 날아오는 낌새도 없었고, 지난번처럼 특수한 장치를 이용한 방해도 없었다.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공격해 올 것인가. 자신을 『여명』의 일원이라 생각하며 이세훈의 시선이 시험장 전체를 훑어보고 있을 때.
우웅─
조명에 다시금 불이 들어왔다.
“어. 불 들어왔다.”
“비상엔진인가 그거 가동됐나 보네.”
큰 문제없이 본래대로 돌아온 시험장. 그 모습에 생도들이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 잠시 긴장했던 레베카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별일 아니었나보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상아탑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나중에 난리나겠군요.”
찰스가 골치 아프다는 듯 중얼거렸고, 그 모습에 란 페이가 주변을 슬쩍 둘러보며 이야기했다.
“갑자기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빨리 마법을 해제하고 남은 심사를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좋아요.”
“그렇게 합시다.”
방침을 정한 세 교수는 곧장 자신들이 만들어낸 빛을 단숨에 없앴다.
후웅!
촛불이 꺼지듯 한 번에 사라진 빛. 그 모습에 란 페이가 막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
우웅
방금 사라졌던 빛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되돌아왔다.
“……뭐지?”
혹시 자신이 실수를 한 것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다른 두 교수의 불빛 역시 언제 꺼졌냐는 듯이 복구되어 있었다.
그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던 그때.
치직
스피커로부터 안내음이 울려 퍼졌다.
[마력 공급 시설의 문제가 해결되었으므로 지금부터 순차적으로 재공급에 들어가겠습니다.]
고장 났던 마력 공급 시설이 고쳐졌다. 그 이야기에 생도들은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이해했고.
“……뛰어!”
아래쪽에서 밀려오는 마력의 파도에 이세훈이 루이제의 손을 붙잡고 레아를 향해 달려갔다.
투웅─
마력 공급 시설로부터 올라오는 거대한 마력.
본래라면 이때 12층의 비상엔진이 자연스럽게 꺼지면서 제한 권한을 넘겨줘야했지만 ‘우연히’ 발생한 오류가 오히려 공급량을 늘리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평소 공급량의 두 배가 넘는 마력.
그 감당할 수 없는 출력에 12층 전체가 단숨에 과부하 상태에 들어섰고, 상아탑의 관리 장치가 해당 현상을 막기 위해 아직 가동되지 않은 설비를 찾았다.
스스슥
그리고 12층, 제 3시험장 안을 가득 채운 참가자들의 제출품에 상아탑의 마력이 연결되었고.
화르르륵!
쿠구구궁!
모든 술식과 술식병장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도, 도망쳐!!”
“마력 폭주다!!”
과부하를 일으키며 제출품들이 폭주하기 시작한 순간. 시험장에 모여있던 생도들이 고함을 내지르며 재빠르게 비상구로 도망쳤다.
자칫 잘못하면 연쇄적으로 폭발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 어쭙잖게 제어하는 것보다 올바른 선택이었지만, 그 결과는 좋지 않았다.
쿠웅!
과부하에 상태에 들어간 상아탑의 방호 설비가 격벽을 내리고 마력 장벽을 펼치며 출구를 완벽하게 봉쇄했다.
“뭐야! 저게 지금 왜 내려오는데!!”
“우리는 내보내주고 해야 할 거 아냐!!”
뒤늦게 달려오던 생도들이 그 모습을 발견하며 경악했고, 시험장 내부는 눈 깜짝할 사이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끝없이 올라오는 마력. 뒤에서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굉음을 내기 시작한 제출품들. 그리고 사라진 출구까지.
퍼엉! 쿠궁─쾅!
등 뒤에서 들려오는 작은 폭발음이 생도들의 이성을 좀먹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자극했다.
그렇게 패닉 상태에 휩싸인 생도들은 자연스럽게 자신들을 가로막은 격벽을 바라보았다.
“부…… 부숴! 저거만 부수면 돼!”
벽이 가로막는다면 그것을 부숴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 그 생각에 몇몇 생도들이 공격 마법을 준비했고, 그 모습을 본 란 페이가 두 눈을 부릅떴다.
“멈춰! 여기서 마법을 썼다간……!”
현재 시험장 내부는 대기 중의 마력이 200% 이상 늘어난 과포화 상태.
제대로 된 실력을 갖춘 이들이라면 모를까 이성을 잃은 생도들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우웅!
하지만 란 페이의 외침을 듣기 전에 마법을 펼친 생도들이 나타났고, 그 결과 곳곳에서 새로운 폭탄이 생겨났다.
“뭐, 뭐야. 왜 마법이…… 크윽……!”
“누, 누가 좀 도와줘……!”
마법을 사용하려했던 이들이 순식간에 폭주를 일으켰고 그 모습에 다른 생도들이 깜짝 놀라며 사방으로 달아났다.
서로를 밀치고 짓밞으며 더욱더 혼란스러워지는 내부. 그 모습에 란 페이가 눈매를 일그러뜨렸다.
“젠장…… 주변이 이래서는…….”
마력이 부족한 상황이라면 자신의 마력으로 보충해서 어떻게든 할 수 있지만, 지금처럼 과포화된 상태에서는 폭주된 이들을 가라앉힐 만큼 세밀한 운용이 불가능하다.
자칫 잘못하면 마력결상을 일으킬 수도 있는 상황. 그렇기에 란 페이는 곧장 자신보다 가능성이 높을 레베카를 바라보았다.
“레베카 교수님! 인챈트로…… 레베카 교수님?”
“도, 도대체…….”
자신이 불렀는데도 레베카는 멍하니 뒤를 바라보았고, 그 모습에 란 페아가 당황하며 그 시선을 쫓았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모두가 황급히 자리를 떠난 시험장의 중심. 거기에 한가롭게 서 있는 세 사람의 모습.
“무슨 미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아직까지 저기에 남아있단 말인가. 그 아찔한 광경에 란 페이가 머리가 지끈거려올 때
“쯧쯧.”
그 난장판을 바라보던 이세훈이 혀를 찼다.
“도망치는 거까지야 그렇다 쳐도 냅다 마법을 쓰다니…… 애들이 겁이 없네.”
바로 뒤에서 폭탄 같은 게 터지려고 하니 무서운 마음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본인이 폭탄이 돼서 터질 생각을 해서야 되겠는가.
한가롭게 이야기하는 이세훈의 모습에 도망치기는커녕 여전히 책상 위에 앉아 있던 레아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우리 여기 계속 있어도 되는 거야?”
우우웅!
당장에라도 터질 것처럼 요동치는 제출품들.
그 무시무시한 광경에 레아조차 간담이 서늘했지만, 이세훈은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괜찮아. 그리고 우리가 여기 있어서 안 터지는 거야.”
“……우리 때문에?”
“당연하지.”
의아해하는 레아의 물음에 이세훈이 루이제의 언령에 봉인되어 있는 물건을 가리켰다.
“우리가 만약에 저걸 놔두고 도망쳤으면 어떻게 됐겠어?”
“……그러네.”
이세훈의 이야기에 레아가 천에 둘러싸인 물건, 자신의 제출품인 ‘스피어Sphere’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주변의 물건들은 혼자서 폭주할 뿐이지만 자신의 스피어는 모든 물건을 강제로 공명시킨 다음 그 위력을 몇십 배로 부풀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놔뒀으면 아마 반 이상은 죽었을 거야.”
사실 말이 절반이지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녀석들이 대부분이리라.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규모에 이세훈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우리한테만 수작질을 부릴 줄 알았더니…… 아예 통째로 날려 버릴 생각을 할 줄이야.’
정말로 터뜨릴 생각이었는지, 아니면 반응만 보려고 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제정신으로 할 짓은 아니었다.
‘아니. 처음부터 제정신이 아니긴 했지.’
어쨌든 이걸로 상대, 『여명』을 떠본다는 목적은 완수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이 상황을 큰 피해 없이 마무리하는 것.
“나한테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있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
“뭔데?”
루이제의 물음에 이세훈이 진지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너희 둘 다 어제까지 성공 못 했던 기술을 여기서 한 방에 성공해야 돼.”
“…….”
“…….”
평소에 잘하던 일도 중요한 순간, 그것도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하라고 하면 긴장해서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성공한 적 없는 기술을 여기서 한 번에 성공해야 한다?
듣기만 해도 아찔한 이야기였지만.
“그건 늘 있던 일 아니야?”
“후배는 매번 그러잖아.”
두 사람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매번 일을 하기 전이나 직전에 대뜸 설명하고는 그대로 해보라고 하는 게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그리고 그동안 이세훈을 봐온 두 사람에게는 한 가지 확신이 있었다.
‘해볼 만하니까 하라고 시키는 거겠지.’
정말 죽을 것처럼 힘든 일을 시키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불가능한 일을 시키진 않는다.
마치 노동 착취로 신고하려고 해도 법적으로 절대 문제가 없게끔 아슬아슬하게 부려 먹는 악덕 사장 같은 느낌.
그런 체념에 가까운 믿음이 있었기에 두 사람이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설명을 기다렸고.
“좋아. 그럼 해보자고.”
그 신뢰감 가득한 모습에 이세훈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 *
혼란스러운 출구 주변.
그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찰스가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혼란에 빠진 이들을 진정시켰다.
“모두 진정하게! 제출품이 폭주한다고 해서 무조건 폭발로 이어지는 건 아니야! 탈출하겠다고 무리하게 마법을 쓰는 게 더 위험해!”
먼저 쓰러진 이들을 본 덕분인지 생도들은 조금씩 침착함을 되찾기 시작했고, 그들을 격려하던 찰스가 저 멀리 있는 세 사람을 향했다.
‘설마 도화선을 단숨에 알아낼 줄이야…… 판단력 하나는 수준급이로군.’
본래 계획은 내부가 어두워졌을 때 레아 클로델의 제출품 스피어에 간섭하여 2년 전의 사건을 재현하려 했었다.
하나둘씩 폭주하며 폭발하는 제출품과 사방에서 쏟아지는 원성과 공포. 거기서 저 세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는 것이 찰스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설마 바로 시야를 확보하고 폭주가 일어나자마자 스피어부터 봉인해 버릴 줄이야…….’
마치 자신들의 계획을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은 수준. 하지만 이세훈이 매 순간 판단을 내리는 과정을 봤기에 찰스는 의심하기보다는 감탄하고 있었다.
‘마법에 대한 소질은 조금 아쉽지만…… 보조 정도는 할 수 있겠어.’
바르무트 그 얼간이들은 위험하다고 떠들어댔지만, 저런 인재를 그냥 두는 것도 자신의 성미에 맞지 않는다.
그렇게 찰스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우웅─
주변에 스쳐 지나가는 기묘한 파동.
마치 누군가에게 목 뒷덜미를 붙잡힌 듯한 감각에 찰스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시험장의 중심에 서있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후우우…….”
X자 무늬가 새겨진 검은색 강철 마스크를 쓴 채 눈을 감고 있는 루이제.
그 알 수 없는 위압감에 생도들이 반사적으로 자신의 마력을 끌어올리려 했고.
“지금부터.”
루이제가 푸르게 빛나는 두 눈으로 모두를 노려보았다.
“내 마력 건드리는 새끼들은 다 뒤질 줄 알아.”
사나운 들개가 으르렁거리듯 그 경고가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 강압적인 명령에 반발이 생길 법도 하지만, 거기에 저항하는 이들은 없었다.
루이제의 경고 안에 담겨져 있는 감정. 이 상황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주변의 마력과 ‘동화’하면서 선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됐어.’
그 모습을 바라본 루이제는 주먹을 움켜쥐며 지금부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복기했다.
‘이 시험장에 불필요한 마력들을 전부 제어한다.’
이세훈과 훈련실에서 몇 번이나 연습했었던 ‘언령확산’의 응용.
그때보다 몇 배나 넓은 장소이긴 했지만 마력이 과포화 상태인 만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 멀리. 생도들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옛 은사이자 원수.
그 인자한 얼굴 너머에 숨겨진 본성과 자신을 기만해 온 행동을 떠올리자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올라왔다.
빠드득─
당장에라도 저 가증스러운 원수의 목을 찢어발기고 싶었지만, 루이제는 그 분노를 철저하게 통제했다.
언령술사는 자신의 감정마저 도구로 사용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러니 지금 순간만큼은 원수를 향한 증오를 자신의 은인을 살리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후우…….”
우우웅──
루이제의 내뱉은 숨결에 마력이 뒤따라서 움직였고, 이어서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주변으로 모이고 시작했다.
자신의 뜻에 따라서 주변에 모여드는 마력. 언령의 준비를 끝낸 루이제는 이세훈에게 배웠던 언령확산의 심상을 되새겼다.
‘소문이 퍼지고, 사람들이 듣고 몰려오는 느낌…….’
적절한 비유였기에 감을 잡는 데는 좋았지만, 그 심상 자체는 자신과 전혀 맞지 않는다.
그렇기에 루이제는 다른 이미지를 떠올렸다.
‘내가 부르는 거야.’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자신의 통제하에 넣어서 올 수밖에 없게 만든다.
무리를 이끄는 대장의 부름. 그 선명한 심상이 루이제의 입 밖으로 뻗어나갔고.
【Wolf's Howl】
파앙─!
시험장 전체를 단숨에 휩쓸었다.
쉴 새 없이 차오르던 마력들이 일순간 멈췄고, 이내 기다렸다는 듯이 루이제의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치 대장의 부름에 모여드는 늑대무리와 같은 모습.
“주변의 마력이…….”
과포화 상태에서 순식간에 정상으로 돌아오는 주변의 광경에 란 페이가 경악하고 있을 때.
“지금!”
“간다!”
촤악!
천이 벗겨지며 황금빛의 고리, 레아가 새롭게 리뉴얼한 스피어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