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06화
[언령각인] 『B』
대상에게 언령을 각인할 수 있는 기술.
언령에 사용한 심상과 마력의 양, 사물의 재료에 따라 효과와 유지 시간이 달라진다.
제거되지 않고 남아 있는 각인은 마력을 부여하는 것으로 다시 활성화시킬 수 있다.
*대상에 따라 언령각인의 유지 시간이 달라집니다.
*비활성화된 언령각인은 마력을 공급하는 것으로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허…….”
새롭게 습득한 스킬 ‘언령각인’의 정보창을 살핀 이세훈이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기존에 사용하고 있었던 ‘언령 : 부여’의 완벽한 상위호환. 그것만으로도 놀랄 만도 했지만 이세훈이 진짜 놀란 점은 바로 스킬의 이름이었다.
‘언령 : 각인이 아니라 그냥 언령각인이라…….’
기본적으로 특정한 기술이 아니라 ‘계열’을 지칭하는 스킬은 습득되는 경우가 잘 없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검을 단순히 내려친다고 해서 ‘검술 : 내려치기’ 같은 스킬이 생기는 경우는 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드물 뿐이지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그런 스킬이 생기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진짜 더럽게 재능이 없을 것.’
앞서 비유한 검술로 보자면 내려치기를 해낸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기술로 인정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재능이 없을 때 그런 스킬이 생겨난다.
즉, 회귀 전 이세훈은 언령의 응용법 중 하나인 부여를 주로 사용했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칭찬받듯 ‘언령 : 부여’ 스킬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습득한 스킬이 언령각인이라는 건…… 나한테도 독자적인 방식이 생겨났다는 건가.’
이세훈이 고안해낸 새로운 언령마법. 실제로 효과 역시 자신이 사용하기 딱 좋은 형태로 만들어졌다.
“〈불꽃점화〉”
화륵
가볍게 쏘아낸 언령이 허공에 손가락만 한 불꽃을 만들어냈고, 마력을 모두 소모하자 그대로 사라졌다.
본래라면 여기서 마법이 끝난 상황. 하지만 이세훈의 언령각인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작은 흔적은 넘겼다.
‘앞에 쏘았던 언령인가.’
여러 글자가 중첩되어 불꽃처럼 보이는 모습. 빛바랜 그 모습에 이세훈이 곧장 손을 가져다 대 마력을 불어넣었다.
화륵!
그러자 언제 사그라들었냐는 듯 다시 불꽃으로 돌아온 언령. 그 모습에 이세훈의 머릿속으로 과거의 기억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왜…… 왜 이걸 못해? 7살짜리도 하는 건데 도대체 왜 못하냐고. 너 지금 일부러 그러는 거지? 빨리 그렇다고 말해!!!’
‘내가 인생에 회의감을 느낀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중 절반이 너한테 언령을 가르칠 때 같아…….’
‘이런 고급 운용법은 왜 가르쳐 주냐고? 누가 들으면 쉬운 건 잘 따라 한 줄 알겠네. 그냥 닥치고 들어 진짜 처맞기 싫으면.’
분노와 후회, 그리고 달관으로 이어졌던 폭견의 가르침. 그때 그 폭언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던가.
마음과 같아서는 보란 듯이 언령마법을 배워서 되갚아주고 싶었지만, 그때는 재능이 없어서 똑같이 폭언으로 받아치는 게 한계였었다.
‘처음으로 회귀한 게 아깝게 느껴지네…….’
이세훈이 뿌듯하면서도 아쉬운 기분으로 눈앞의 불꽃을 바라보고 있을 때.
“야.”
뒤쪽에서 한창 연습 중이던 루이제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다가왔다.
“언령을 퍼뜨리는 것까지는 어떻게 되는데 다시 모이는 게 영 안 되는데. 뭐 어떻게 하는 거야?”
도저히 감이 안 잡힌다는 듯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 루이제. 그 모습에 회귀 전의 폭견을 겹쳐 본 이세훈이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뭐야. 갑자기 왜 웃는데.”
“아. 그냥 옛날 생각이 좀 나서. 나보고 더럽게 재능 없다고 뭐라 하던 친구가 있었거든.”
자신을 비웃는가 싶어 흘겨보던 루이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재능이 없다고?”
인정하기는 싫지만 이녀석만큼 여러 분야에 재능이 있는 녀석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의아해하는 루이제의 물음에 이세훈이 씩 웃었다.
“있어. 그런 녀석.”
회귀 전과는 입장이 반대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한숨을 푹푹 내쉬고 쌍욕을 퍼부어도 가르치는 것을 멈추지 않던 폭견처럼, 자신도 성심성의껏 루이제를 가르친다.
옛 기억을 털어낸 이세훈이 목을 가볍게 풀었다.
“확산 다음이 어렵다 했지? 그러니까 그 뒤로는 소문을 들은 사람이 몰려오는 것처럼 심상을 잡아두고…….”
그 뒤로 이세훈은 몇 시간 동안 루이제에게 언령마법을 가르쳤고 해가 질 때쯤에 마투학부 본관 밖으로 나왔다.
“뭔가 평소보다 시간이 빠르네…….”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저녁이라니. 떨떠름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던 루이제가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너 근데 괜찮겠어? 내일까지 뼈대 만든다며.”
“아. 문제없어. 아까 연습하다가 좋은 방법이 떠올랐거든.”
원래는 언령부여로 만들 예정이어서 시간이 좀 걸릴 거라 예상했지만 이번에 언령각인을 습득한 덕분에 여유가 생겼다.
그 대답에 루이제가 슬쩍 시간을 살피며 물었다.
“그래? 그러면 뭐…… 같이 밥이나 먹을까?”
이런 권유를 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듯 멋쩍은 표정을 짓는 루이제. 그 모습에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뭐.”
“그래? 그러면 전에 봐둔 맛집이…….”
“후배!!!”
저 멀리서 들려오는 우렁찬 외침. 그에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고개가 돌아갔고, 저 멀리서 달려오는 한 사람이 보였다.
“흐억…… 허억…….”
머리를 몇 번 쥐어뜯었는지 마구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입다가 말아서 팔꿈치쯤에 걸려 있는 백색 가운.
거기에 바닥이라도 뒹굴었는지 생도복과 얼굴 곳곳이 마석 가루가 묻어 엉망이었는데 그 엄청난 모습에 이세훈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공방이 터지기라도 했나…….’
하루 사이에 엄청난 꼴이 된 모습에 이세훈이 어이없어하고 있을 때. 바로 앞까지 온 레아가 숨을 헐떡이며 이야기했다.
“잠…… 도움…… 급…… 콜록콜록!”
얼마나 달렸는지 호흡이 엉켜서 숨이 넘어갈 것처럼 기침을 터뜨리는 레아. 그 모습에 이세훈이 한숨을 내쉬며 등에 손을 가져다 댔다.
우웅
이세훈의 혈술이 레아의 몸 곳곳을 자극하여 흐트러진 호흡을 자연스럽게 다잡았다.
“후우…… 고마워. 이제 좀 살 것 같네…….”
“그래서 갑자기 이게 무슨 난리야?”
“아. 그래. 선발 대회 제출품 관련으로 좀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지금 시간 괜찮아?”
“시간? 뭐, 문제는…….”
“야.”
차가운 목소리가 이세훈의 대답을 가로막았고, 루이제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보았다.
“밥 안 먹어?”
갑작스러운 레아의 난입에 상당히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모습. 그 반응에 이세훈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놈 이거 삐지면 오래 가는데.’
무슨 부탁인지 몰라도 밥 먹은 뒤에 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바꾼 이세훈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
“후배.”
하지만 이번에도 차가운 목소리가 말을 가로막았고, 루이제를 쳐다보던 레아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나 의욕 나게 해준다며. 설마 거짓말한 건 아니지?”
“거짓말은 아닌…….”
“넌 뭔데 아까부터 사람 말하는데 자꾸 끼어들어?”
신경질적인 루이제의 물음에 레아가 다시 고개를 돌리며 코웃음 쳤다.
“너는 끼어들어도 되고 나는 안 돼? 웃기는 애네.”
“웃긴 건 지금 네 꼬락서니고. 나이 처먹고 옷에 질질 묻히고 다니고 아주 가관이네 가관이야.”
“그러는 너는 나이 처먹고 말하는 꼬락서니가 가관이네. 주변에 쌍욕 퍼붓고 으스대는 게 자랑거리인가?”
“…….”
“…….”
서로를 노려보던 두 사람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고, 그 분위기를 파악한 이세훈이 자연스레 뒤로 빠졌다.
두 눈을 푸른빛으로 빛내며 내려다보는 루이제와 다크서클이 잔뜩 낀 탁한 눈으로 올려다보는 레아.
그렇게 한참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꺼져.”
“싫어.”
어느 한쪽도 물러서지 않는 치열한 대치. 그 모습에 뒤로 빠졌던 이세훈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 둘도 궁합이 안 좋은가…… 아니, 욕하는 게 얼추 비슷한 걸 보면 통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은데.’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라 으르렁거리지만 의외로 기회만 맞으면 죽이 척척 맞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세훈이 두 사람의 상성을 가늠해 보고 있을 때.
“야.”
“후배.”
루이제와 레아가 서로를 노려본 채로 물었다.
“어느 쪽 따라갈 건지 정해.”
“현명한 선택을 할 거라 믿어.”
선택권은 넘겼지만 그 후폭풍은 자신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되는 상황. 그에 이세훈은 잠시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꺼냈다.
“흐음…… 흠…….”
담담하게 휴대폰을 바라보며 툭툭 두드리는 이세훈. 그 모습에 루이제가 답답하다는 듯 눈매를 찌푸리며 돌아보았다.
“정하라니까 뭐 하고 있어.”
“포장.”
“……뭐?”
예상치 못한 대답에 레아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되물었고.
“공방 가서 먹을 거야.”
이세훈은 두 사람을 지나쳐 주문한 가게로 향했다.
***
“…….”
“…….”
대충 치워진 책상 위에 한껏 차려진 피자와 치킨, 파스타. 그 음식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루이제와 레아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다가 이런…….’
‘뭔가 아닌데…….’
보통은 둘 중 하나를 고르든가 아니면 못 고르겠다고 내빼는 게 보통 아닌가?
이세훈에게 농락당한 것 같은 기분에 두 사람이 묘하게 기분 나빠하고 있을 때.
“둘 다 안 먹고 뭐 해?”
손 씻고 돌아온 이세훈이 상석에 앉으며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그 태평한 모습에 루이제와 레아가 뭔가 말하려다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먼저.’
‘좋아.’
괜히 말이 겹칠까 봐 두 사람이 암묵적으로 순서를 정했고, 루이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온건 그렇다 치고 밥을 왜 네 멋대로 골라.”
“너는 밥 먹자고 했고, 쟤는 여기에 오자고 했으니까 당연히 메뉴는 내가 골라야지. 그래야 공평한 거 아냐?”
“…….”
묘하게 설득력이 있는 대답에 루이제의 입이 다물어졌고, 이어서 레아가 물었다.
“그래도 거기서는 보통 한 명을 고르는 게…….”
“그러면 내가 나쁜 놈 되잖아. 서로 보자마자 쌍욕 퍼부으면서 치고받고 싸운 건 너희 둘인데 왜 내가 뒤집어써?”
“…….”
레아의 입이 조용히 다물어졌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세훈이 혀를 찼다.
“쯧쯧. 하여간 둘 다 성질머리하고는…… 배고프니까 밥부터 먹어.”
더 할 말도 없다는 듯이 피자를 집어서 먹기 시작하는 이세훈. 그 모습에 루이제와 레아의 눈매가 동시에 일그러졌다.
‘저놈을 확 그냥…….’
‘맞는 말을 해도 재수가 없어.’
이세훈을 노려보던 두 사람이 문득 서로의 표정을 알아차렸고, 이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어색하게 음식을 집어 먹던 도중. 루이제가 먼저 레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레아 클로델 맞지? 1학년 때 보르시파 학과수석이었던.”
“아, 응. 알고 있었어?”
“나도 그때 입학했었거든. 휴학해서 아직 2학년이지만…… 난 루이제 발렌트야.”
멋쩍은 루이제의 소개에 레아가 잠시 눈매를 찌푸리다가 무언가 떠올린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아. 혹시 게르윈 그 재수 없는 새끼 박살 냈다던?”
“그렇지. 근데 게르윈 알아?”
“알다마다. 1학년 때부터 집안 믿고 깽판 치고 다니던 쓰레기 새끼잖아. 진짜 잘 박살 냈어.”
“……흠흠.”
공통된 화제가 나오자 두 사람의 분위기가 살짝 풀어졌고, 한두 마디씩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 모습에 말없이 음식을 먹던 이세훈이 슬쩍 웃었다.
‘역시 공감대가 중요하다니까.’
누구에 대한 분노든, 특정한 화제든 하나만 제대로 맞물리면 젊을 때야 금방 친해지는 법이다.
분위기가 어느 정도 풀어진 것을 확인한 이세훈이 흡족해하며 음식을 먹었고.
“가끔 거들먹거릴 때 진짜 한 대 패고 싶지 않아?”
“후배가 말하는 게 좀 싸가지 없긴 하지. 나도 자주 그래.”
루이제와 레아가 기다렸다는 듯이 불만을 쏟아냈다.
“뭐 할 때 설명을 안 한다니까. 방금도 어쨌든 밥 같이 먹을 거면 메뉴 정도는 좀 고르게 해주지 진짜 답답해가지고…….”
“아아. 나도 바로 전날에 무슨 인챈트 할 거라면서 다짜고짜 말하는데 그때는 진짜…….”
쌓인 게 많았는지 쉴 새 없이 나오는 불만. 서로 신나서 이야기하는 둘의 모습에 이세훈이 헛기침했다.
“크흠. 그래서 부탁하고 싶다는 일이 뭐야?”
“밥 먹는 중이잖아. 안 보여?”
“식사 자리에서 일 이야기를 하면 쓰나.”
“…….”
합심한 것처럼 자신을 갈구는 둘의 모습에 이세훈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이것들이 도와준 은혜도 모르고 콱 그냥…….’
저 배은망덕한 놈들을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루이제와 레아가 시선을 교환하며 피식 웃었다.
“농담이야 농담.”
“장난 좀 친 것 가지고 그러기는.”
“……됐고 빨리 본론이나 말해.”
까칠한 이세훈의 대답에 레아가 피식 웃으며 뒤쪽에서 한 물건을 가져왔다.
“이거야.”
“흐음…….”
고리 네 개가 서로 교차되어 있는 물건.
과거 천체관측기구로 쓰였다는 ‘혼천의渾天儀’와 비슷했는데 곳곳이 새카맣게 그을리고 약간 찌그러져 있었다.
“폭발했다는 게 이거야?”
“맞아. 이번에 새로 만든 인챈트를 새겨 넣었는데 바로 폭발하더라고. 아무래도 이 물건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흐음. 일단 이게 정확히 뭔지 알아야겠는데.”
“아. 잠깐만 기다려봐.”
다시 뒤쪽으로 향한 레아가 잡동사니 틈새를 뒤지더니 이내 설계도 한 장을 가지고 왔다.
“이거야.”
방금 건네받은 고리와 비슷한 물건이 그려져 있는 설계도. 곳곳에 지워지거나 명확하게 적어두지 않은 부분이 많았는데 딱 봐도 미완성으로 보였다.
‘제작자는 데인 클로델…… 레아의 아버지인가?’
딱 봐도 사연이 있어 보이는 설계도에 이세훈이 그 내용을 읽어보았다.
‘간이 인챈트를 통해서 인위적으로 공명현상을 만들어내는 통제장치라. 발상이 꽤 좋은…… 음?’
머릿속에 간질거리는 감각. 그 흐릿한 기억에 이세훈이 머리를 쥐어 짜냈고, 이내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말도 마라. 마지막에 갑자기 인형들이 서로 공명을 일으키면서 힘이 증폭됐는데…… 류은하가 제때 도착해서 그 장치를 파괴하지 않았으면 전멸했을 거다.’
회귀 전 인형사의 토벌전에 참가했다가 푸념하듯이 이야기하던 마광수. 그 내용에 이세훈이 다시 설계도를 바라봤다.
“……이런.”
인형사의 비장의 무기가 이 안에 담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