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05화
원형 돔처럼 생긴 마투학부의 본관 건물.
이곳에는 다른 건물들보다 회복실이 많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마투술의 특성 때문이었다.
보통 무술계통은 체력을, 마법계통은 마력과 정신력을 소모하는데 무술과 마법을 병행하는 마투술은 세 가지를 골고루 사용하게 된다.
그렇다보니 조금만 실수해도 체력과 마력, 정신력이 모조리 바닥나면서 탈진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흐에엑…….”
“교수님. 한 명 쓰러졌습니다!”
“그럼 탈진 직전인 사람이 옮겨서 같이 쉬고 와.”
강의는 물론 훈련 중에도 탈진 증세로 기절하는 생도가 속출하는 마투학부.
그렇다 보니 휴게실이 아예 1인실로 따로 만들어질 만큼 엄청났는데 몇몇 생도들 사이에서 밀담을 나누는 장소로 쓰이기도 했다.
그리고 1인실 중에서도 가장 구석진 곳에 위치한 방.
“그러니까…… 그 레아인지 뭔지 하는 애 때문에 특기생 선발 대회에 참가하겠다고?”
이세훈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루이제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정확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세훈의 모습에 루이제가 팔짱을 낀 채 삐딱하게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걸 왜 나한테 말하는데?”
“네가 도와주면 좀 좋을 것 같아서.”
“…….”
이세훈의 이야기에 루이제가 말없이 바라보더니 이내 생각이 정리된 듯 물었다.
“너 내가 뭐 때문에 목이랑 손에 구멍 난 건지는 알지?”
“특기생 선발 대회 때문에 견제당한 거라며.”
“찰스 교수가 거기 심사위원인 것도 알고?”
“당연하지. 너랑 관련된 일인데 설마 모르겠냐.”
“……크흠.”
심기가 불편해졌는지 작게 헛기침하며 표정을 가다듬은 루이제가 잠시 고민하다 물었다.
“그런데도 굳이 나보고 도와달라는 건…… 이번 기회에 저쪽을 한번 찔러보겠다는 거네.”
“그런 셈이지.”
원소학부의 교수이자 루이제를 마력불능으로 만들려고 했었던 『여명』의 소속원 찰스 레이놀즈.
그동안은 경계를 받을 수 있어 접촉을 피했지만 이번에 자연스러운 이유가 생긴 김에 찰스교수, 정확히는 『여명』을 한 번 살펴볼 생각이었다.
“괜찮겠어? 그때 그놈들 위험하다고 했었잖아.”
“그거야 전면전일 때 이야기고. 살짝 찔러보는 정도라면 문제없어.”
기본적으로 주시자에 속한 집단들은 정도가 다를 뿐이지 다른 무엇보다도 기밀유지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만마전과 다르게 인류 쪽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보니 정체를 들키게 되면 단숨에 무너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뒤에서 쓱싹 당하는 거 아냐?”
“그거야 상대가 보잘것없을 때나 하는 짓이고. 나는 요즘 잘나가잖냐.”
루트비히는 물론이고 류은하와 마광수, 그리고 카사르 등 엮여 있는 거물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만마전처럼 막 나가는 녀석들이라면 모를까 주시자처럼 주의 깊은 녀석들은 결코 섣불리 손을 쓰지 않으리라.
“……재수없어.”
질색하며 바라보는 루이제의 모습에 이세훈이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설명을 이어갔다.
“아무튼 우리가 우연히 범죄자를 발견해서 노리는 것처럼 꾸민다면 저쪽에서도 싸우려고 하기보단 꼬리를 자르고 도망칠 거야. 그게 더 안전하고 이득이니까.”
“흐음…… 그럴싸한데.”
“물론 그렇다고 가만히 당하기만 한다는 건 아냐. 아마 찰스에게도 정체를 들키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대응법이 있겠지. 내가 노리는 건 그 ‘한계’를 알아내는 거야.”
『여명』에서 루이제와 자신에게 매겨놓은 가치. 그리고 찰스가 가지고 있는 권한.
그게 어느 정도인지만 알아낸다면 훤히 드러나 있는 꼬리 따위 얼마든지 제거할 수 있었다.
이세훈의 설명을 모두 들은 루이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런 거라면 무조건 해야지. 뭐부터 할까?”
복수와 관련된 것이라 그런지 두 눈을 빛내며 의욕을 불태우는 루이제. 그 모습에 이세훈이 시간을 확인했다.
“그럼 오랜만에 실력 좀 확인해 보자.”
“갑자기 왜?”
“특기생 선발 대회는 개인 출전이거든. 그래서 내가 언령마법에 관련된 물건을 만들고, 널 도우미로 참가시킬 거야.”
루이제가 따로 참가하면 무학관에서처럼 수작을 부렸을 때 대응하기가 어려우니까 최대한 붙어 다닐 수 있는 게 좋았다.
“실력이라…… 그러면 이쪽으로 와.”
루이제와 함께 휴게실 밖으로 나온 이세훈은 그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지나갑니다…….”
“으어…….”
탈진한 생도를 업은 채 태평하게 걸어가는 이들. 들어올 때부터 종종 보이던 그 모습에 이세훈이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여긴 학년이 높아져도 탈진을 하네.”
처음에는 1학년들만 실려 가는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 2학년이나 3학년도 심심찮게 보였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점잖은 척하며 콧대가 높아지는 다른 학부와는 다른 광경. 그 모습을 살핀 루이제가 피식 웃으며 설명했다.
“연습 중에 탈진 한 번이 전투 중에 목숨을 한 번 살린다는 게 교수님들의 신조거든. 그래서 몇 학년이든 죽어라 굴려.”
“흐음…… 뭘 좀 아시는 분들이네.”
실전에서는 몰라도 연습 중에 탈진은 많이 겪으면 겪을수록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이세훈, 정확히는 사부의 지론이었다.
자신의 한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기도 하고 육체가 극한에 몰릴수록 더욱 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삐끗하면 바로 작살 나는 거지만…… 바벨이니까 그런 부분은 잘 조절하고 있겠지.’
회귀 전에 들어본 적이 없어서 별 볼 일 없는 학부인가 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꽤 괜찮은 곳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못 들었을 뿐이지 마신과의 전쟁에서도 활약했을지도 모를 일이지.’
마투학부를 다시 보게 된 사이 이세훈이 주변을 살피고 있을 때. 두 사람이 자동문을 넘어 새로운 구획에 들어섰다.
“여긴?”
“마력제어실. 요즘 자주 쓰는 곳이야.”
일렬로 쭉 뻗어 있는 새하얀 복도와 양쪽 벽에 일정한 간격으로 놓인 문. 그중 빈방으로 표시된 문 앞으로 간 루이제가 생도증을 꺼냈다.
“찍고 들어와.”
삐익─
단말기에 생도증을 찍자 문이 열렸고, 이세훈도 뒤따라 생도증을 찍은 다음 안으로 들어섰다.
탁한 회색으로 칠해진 천장과 벽. 그리고 격자무늬가 그려진 하얀색 바닥. 그 중심으로 걸어 들어간 루이제가 몸을 가볍게 풀며 바라보았다.
“어떻게 할까. 평소에 하던대로?”
“그게 좋겠네.”
“오케이. 그럼 60% 세팅.”
우웅─
루이제의 설정에 맞춰 벽 틈새로 마력이 빨려 들어갔고 잠시 후 대기 중의 마력농도가 60%로 맞춰졌다.
평상시보다 조금 뻑뻑하게 느껴지는 공기. 오랜만에 느껴보는 환경에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마력이 부족한 환경은 이번이 처음이네.’
특수한 위험지역이나 고위 영웅들이 장기간 결투를 벌일 때나 생기는 현상이다 보니 별도로 훈련을 하지 않으면 경험할 일이 거의 없었다.
이세훈이 주변 환경에 차차 적응하고 있을 때. 루이제는 익숙하다는 듯 숨을 고르며 언령마법을 준비했다.
【Set─】
허공에 그려지는 사람 머리만 한 푸른색 마법진.
그 수가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잠시 후 루이제의 머리 위로 총 13개의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모든 마법진에 마력이 충만하게 차오르며 빛을 발한 순간.
【Lightning Vortex】
새하얀 섬광이 눈앞을 뒤덮었다.
콰르르릉!
마법진에서 동시에 뿜어져 나온 13줄기의 번개들이 서로 뒤얽히며 소용돌이치듯 훈련실의 벽과 바닥을 후려갈긴다.
적을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 버릴 것처럼 쏟아진 언령마법의 위력에 이세훈이 살짝 감탄했다.
‘꽤 하는데…….’
대기 중의 마력을 주로 사용하는 언령마법은 마력농도가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위력과 발동속도, 제어 등 여러 방면으로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루이제는 영향을 받지 않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언령마법을 펼쳐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마력에 대한 ‘지배력’ 덕분이었다.
우우웅─
주변의 마력농도가 60%로 유지되고 있는 자신과 달리 거의 100%로 유지되고 있는 루이제.
마법을 사용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만으로 주변의 마력이 그 생각에 ‘동화’되면서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회귀 전에 이걸 몰라서 폭견한테 당한 녀석들도 많았지.’
이것도 아직 고유스킬인 ‘마력동화’가 각성하지 않았기에 이 정도지 회귀 전 폭견이라면 훈련실의 모든 마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냈으리라.
“후우…… 어때?”
“많이 늘었네. 위력은 크게 최대야?”
“제어를 포기하면 좀 더 늘릴 수 있는데 그러며 다칠 수도 있어서 그냥 여기까지만 쓰고 있어.”
“흐음. 제어란 말이지…….”
위력 쪽은 사용자의 심상이 더 중요하기에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없지만, 제어를 돕는 거라면 그리 어렵지 않다.
‘술식의 완성도를 보조해 주는 무구…… 이거면 특기생 선발 대회에서도 꽤 먹히겠는데.’
마법사들이라면 흥미가 생길 수밖에 없는 물건이었고, 마법에 완전히 미쳐있는 『여명』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 이세훈이 머릿속으로 설계도를 정리하며 미소를 지었다.
“대충 정해진 것 같네. 내일 일단 뼈대만 만들어서 가지고 올게.”
“……그럼 이걸로 끝이야?”
“그렇지? 왜 뭐 더 보여줄 거 있어?”
이세훈의 물음에 루이제가 살짝 움찔거리다가 이내 툴툴거리며 대답했다.
“그건 아니고…… 한 번밖에 안 봤는데 그렇게 확신하는 게 맞나 싶은 거지.”
“한 번이면 다 보고도 남지. 내가 누구냐? 제련학부에 나타난 불세출의 천…….”
“아, 됐어. 다 봤으면 가 그냥.”
이세훈의 어깨를 잡고 훈련실의 문 쪽으로 미는 루이제. 그 까칠한 반응에 이세훈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걱정하는 것 같아서 잘난 척도 해줬더니…… 쯧.’
예전의 폭견도 그렇고 왜 이렇게 감정이 오락가락하는지 모르겠다. 속으로 혀를 찬 이세훈이 그대로 입구를 향해 쭉쭉 밀리고 있을 때.
“아.”
무언가 떠올리며 몸을 멈췄다.
“잠깐만. 나 할 거 생각났다.”
“뭔데?”
“나도 언령마법 좀 써보자.”
회귀 전과 달리 자신에게 언령마법의 재능이 생겼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그게 어느 정도인지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마력농도도 조절할 수 있고 딱 적당했기에 이세훈이 곧장 루이제의 몸을 돌려 어깨를 잡고 다시 훈련실 중심으로 밀고 들어갔다.
“생각난 김에 언령마법도 좀 봐볼게. 아까 보니까 슬슬 새로운 응용법 배워도 괜찮을 것 같더라.”
“……크흠. 돌아가서 쉬려고 했는데 사람 귀찮게.”
내키지 않은 척하면서도 들뜬 게 보이는 뒷모습. 그 반응에 이세훈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애 설마 회귀 전처럼 화병이라도 났나?’
폭견처럼 손바닥 뒤집듯이 감정이 바뀌면서 오락가락하는 걸 보니 상태가 영 안 좋아 보인다.
다음에 날이라도 잡고 심도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로 다짐하며 이세훈이 루이제를 뒤에 세워놓고 앞으로 나섰다.
“보자…… 일단 30% 세팅으로.”
우웅─
순식간에 반으로 뚝 떨어지는 훈련실의 마력농도.
마른땅처럼 보일 만큼 척박한 마력농도에 루이제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너 진짜 여기서 할 수 있겠어?”
60%까지는 조금만 의식해도 마력이 모여들었는데 30%까지 떨어지니 마력이 좀처럼 모여들지 않았다.
여기서 도대체 어떻게 언령마법을 쓰려는 것인지 루이제가 의아하게 보고 있을 때. 이세훈이 어깨를 으쓱였다.
“실패할 수도 있고. 일단 어디까지 가능한지 보려는 거야.”
회귀 전의 자신이라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환경. 실패할 때마다 마력농도를 높이며 확인하기로 한 이세훈은 곧장 입안에 마력을 정제했다.
그리고 심상을 담아내기 전. 폭견에게 들었던 조언을 다시금 떠올렸다.
‘몇 번이고 말했지만 어려울 거 없어. 그냥 소문이 퍼지는 과정을 상상하는 거야. 그러면 이렇게…… 아니 왜 못하냐고 이 개빡통새끼야!!!’
폭견의 이빨 몇 개나 갈아먹으며 겨우겨우 배웠지만 실전에서는 제대로 써먹지도 못했던 응용기술.
그때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이세훈이 마력의 안쪽에 심상을 담아냈고.
“〈언령확산〉”
언령의 파동이 훈련실 전체를 후려쳤다.
우웅─
훈련실 내부에 감도는 기묘한 울림. 그와 동시에 소량의 마력들이 동시에 요동쳤고, 이어서 이세훈의 앞으로 연결되는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이건…….”
마치 세간에 떠도는 소문을 듣고 모여드는 이들처럼, 훈련실의 얼마 없는 마력들이 이세훈의 앞에 뭉친다.
그 거대하게 부풀어진 마력을 향해 이세훈이 이어서 준비해둔 언령마법을 부여했고.
“〈뇌격〉”
거대한 번개가 이세훈의 눈앞에서 쏘아졌다.
콰르릉─!!
훈련실의 벽면을 그대로 후려갈기는 푸른 번개.
순간적인 화력은 자신보다도 강해 보이는 그 모습에 루이제가 멍한 표정을 지었고.
[스킬 ‘언령 : 부여(C)’가 스킬 ‘언령각인(B)’으로 승급하였습니다.]
“……재능 있네.”
이세훈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