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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103화 (103/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03화

인챈트학부 본관건물에 내부에 만들어진 공용작업실.

생도들이 자신의 캔버스에 인챈트 술식을 새기고 다른 이들과 의견을 나누며 작업에 매진하고 있을 때. 단 한 사람만이 구석진 곳에서 홀로 앉아 있었다.

“…….”

팔짱을 낀 채 텅 빈 캔버스를 바라보는 레아.

느릿하게 깜빡이는 눈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미동도 보이지 않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석상을 가져다 놓은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 기묘하기 그지없는 광경에 공용작업실을 사용하던 인챈트학부의 생도들이 힐끔거리며 쑥덕거렸다.

“지금 며칠째였지?”

“이주는 넘은 것 같은데.”

“사전제출까지 일주일도 안 남았는데 저 상태인 거 보면 글렀네.”

매일같이 저렇게 가만히 있을 수 있다는 것에 감탄스럽고, 저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한심스러웠다.

한때 학과수석으로 존경과 질투를 담아 우러러보던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진 시선.

이전의 레아라면 이 분위기가 걸리적거려 공용작업실에 나타나지도 않았겠지만.

‘망했다…….’

지금은 다른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 있어서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어떻게든 될 것 같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놈의 검기 양산화를 안 건드렸을 텐데……!’

따지고 보면 상아탑의 특기생 선발대회와 검기 양산화를 동시에 진행하려고 한 자신의 자업자득이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변명거리가 있었다.

‘지금이라도 제출품에…… 잠깐, 어차피 인챈트를 겹겹이 쌓을 거면 양면으로 구성해서 마력에 대한 힘을 늘린다면…… 아니. 제출품부터…… 맞아! 백광의 인챈트를 서로 충돌시켜서 마력을 가다듬는다면…… 아아악!!’

머리로는 일주일이 남은 특기생 선발 대회의 제출품이 먼저라는 것을 아는데 마음은 검기 양산화의 인챈트를 갈고 닦을 생각밖에 안 한다.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 레아가 눈동자를 파르르 떨며 새하얀 캔버스를 바라보고 있을 때.

“또 백지야?”

곁에서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푸른빛이 감도는 머리카락에 훤칠한 키. 어른스러우면서도 서늘한 느낌을 안겨주는 청년, 하워드 그랜트가 레아의 앞에 놓인 캔버스를 바라보았다.

“이렇게까지 힘들면 주변에 의논이라도 해보는 게 어때. 공용작업실이 애초에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거잖아.”

“…….”

“어디에서 고민 중인지 알려주면 나도 도와줄게. 특기생 선발대회면 조언받는 것까진 문제없잖아.”

“…….”

나긋하게 이야기하는 하워드와 여전히 캔버스만 바라보며 눈동자만 깜빡이는 레아.

대답은커녕 쳐다보지도 않는 그 모습에 다른 생도들이 매섭게 바라보았다.

‘저럴 거면 공용작업실은 도대체 왜 온 거야?’

‘아직도 지가 학과수석인 줄 아나…….’

사교성이 썩 좋지 않은 레아. 그리고 보르시파의 3학년 학과수석으로 인챈트학부의 자랑인 하워드.

두 사람 중 누구에게 호의가 가는지는 명확했고 자연스럽게 적대적인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 상황에 레아의 곁에서 말을 걸던 하워드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이것도 슬슬 질리네.’

전공수업을 제외하면 늘 자신의 공방에만 처박혀 있던 레아가 공용작업실에 나타났다길래 찾아왔는데 반응이 없으니 뭘 해도 재미가 없다.

어떻게 건드리는 게 좋을까 고민하던 하워드는 이내 두 눈을 빛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예전에 그 ‘사고’ 때문에 그래?”

“…….”

“이제 다 지나간 일이잖아. 지금은 네 일에 집중…….”

“하아…….”

레아의 입에서 새어 나온 한숨. 처음으로 보인 반응에 하워드가 기대를 담아 바라보았고.

“한 것도 없는데 배고프네.”

불만스럽게 투덜거린 레아가 캔버스를 아공간 포켓에 집어넣고 하워드를 지나쳐갔다.

아주 잠깐 자신에게 닿았던 시선. 하지만 그것은 주변의 풍경, 길가의 돌멩이를 보고 피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무시당하는 것을 넘어서 제대로 인지조차 당하지 못했다. 그 사실에 하워드의 눈매가 찌푸렸다.

‘기분 나쁜 녀석…….’

인챈트를 제외하면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한 태도.

예나 지금이나 불쾌하기 짝이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반응이 조금 만족스럽기도 했다.

‘이세훈이라는 녀석이랑 어울려 다닌다길래 뭔가 달라진 줄 알았더니 그냥 그대로였네.’

아마 인챈트와 관련된 일이 있어서 몇 번 만났을 뿐. 레아의 본질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으리라.

그렇게 하워드가 안심하고 있을 때.

스윽

작업실 입구에 한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카만 머리칼에 사나운 인상. 이제는 모를 수가 없는 그 얼굴에 공용작업실에 있던 생도들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세훈……?”

“쟤가 여기는 무슨 일로…….”

“레아랑 친하다는 소문 있었잖아. 그거 때문 아냐?”

소문만 무성한 사실에 모두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안쪽을 살피던 이세훈이 레아를 발견하며 불렀다.

“선배님.”

“음?”

누가 말을 걸어도 반응하지 않던 레아가 곧장 고개를 들었고, 이세훈을 발견하더니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 음…… 그게…….”

떨리는 눈동자와 경직되는 얼굴.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세훈은 다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나가서 이야기합시다. 선배님.”

“……네.”

고개를 푹 숙인 레아가 이세훈과 함께 밖으로 나갔고, 공용작업실에 남은 생도들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뭐야. 진짜 친한 사이인가 본데?”

“저 녀석 요즘 장난 아니라던데…… 레아 쟤는 능력도 좋네.”

“왕년에 학과수석이었다고 꼬드겼나 보지. 그래 봐야 밑천 다 드러나면 끝 아니겠어?”

낙오자 따위가 천재의 곁에서 얼마나 버티겠는가. 그렇게 모두가 레아를 비웃으며 이야기를 나눴고.

“…….”

하워드가 두 사람의 나간 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

레아와 함께 카페 라일락으로 온 이세훈은 샌드위치와 마실 것을 주문한 다음 자리에 앉았다.

“자. 얼마나 진행됐는지 슬슬 들어봅시다.”

“그게…….”

“설마 8억을 넘게 긁어놓고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

이전에 레아에게 연구비로 쓰라고 넘겨줬던 카드. 잔고야 김인철을 통해 마이스터에서 매달 채워주고 있지만 어쨌든 적지 않은 돈이었다.

‘없다고 하기만 해봐라.’

돈을 얼마나 쓰든 빚만 안 진다면 상관없지만, 그렇게 해놓고 성과가 없는 것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심상치 않은 이세훈의 시선에 레아가 재빠르게 대답했다.

“다, 당연히 있지! 나를 뭘로 보는 거야!”

“그럼 보여줘 봐. 아니면 설명해 보든가.”

“그…… 래야지. 그래야 되는데…….”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손을 꼼지락거리던 레아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아공간 포켓에서 한 물건을 꺼냈다.

30cm 정도 되는 검은색 광석. 짧은 몽둥이 같은 형태에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정보창을 살펴보았다.

[성람석星籃石]

[등급 : 영웅] [품질 : 최상]

마력을 담아내는 어둠의 파편.

내부에 저장한 힘을 재현할 수 있으며 그 구조에 따라 사용횟수가 달라집니다.

*내부에 저장된 힘을 재현할 수 있습니다.

“돈을 어디다 썼나 했더니 이거 때문이었구만.”

“양산형 인챈트는 이걸로 실험하는 게 제일 좋으니까.”

어느 기술이든 양산을 전제로 할 때는 많은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범용성에 초점을 맞추기 마련.

특히 인챈트는 마력으로 이뤄진 술식인 만큼 재료의 성질, 무구의 마력회로, 사용자의 특성 등 고려해야 할 부분이 특히 많았는데 그 검증에 쓰이는 재료가 바로 성람석이었다.

“부여한 술식이 두 번 발동하면 호환율이 50%. 세 번 발동하면 70%였던가?”

“맞아.”

다른 힘과 호환되지 않고 독자적인 구조를 가질수록 재사용횟수가 떨어지는 성람석의 특성을 활용한 검증법.

보통 양산형 인챈트라고 인정받으려면 호환율이 최소 70%는 돼야 했기에 성람석으로 세 번 이상 발동해야 했다.

“그래서 몇 번 발동했는데?”

“……한 번.”

호환율 50% 미만. 사실상 양산형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이야기에 이세훈이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안에 인챈트는 넣어놨고?”

레아가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에 이세훈이 곧장 성람석 내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우우웅

이세훈의 마력이 성람석에 녹아들자 안쪽에 저장된 인챈트 술식이 다시금 재현되며 발동되기 시작했다.

스스스

성람석의 겉면에 둘러지는 새하얀 빛.

윤곽이 흐릿하던 백광비수 때와 다르게 이번에는 테두리가 선명했는데 그 모습에 이세훈이 두 눈을 빛냈다.

‘진짜 검기네.’

양산형이다보니 영웅들이 직접 만들어낸 검기와 비교하면 수준이 훨씬 떨어졌지만, 그래도 그 검기와 부딪쳐도 몇 번 버텨낼 수는 있었다.

검기에 따른 절대적인 상성을 부숴 버릴 수 있는 인챈트. 회귀 전보다 훨씬 일찍 만들어진 그 기술에 이세훈이 흥미롭게 보고 있을 때.

후웅

성람석에서 인챈트가 증발되며 사라졌고, 그 모습을 확인한 이세훈이 탁자에 내려놓았다.

“…….”

심판을 기다리는 것처럼 바짝 긴장한 레아. 그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던 이세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잘 만들었네.”

“죄송합…… 뭐?”

고개를 숙이며 사죄하려던 레아가 목이 튕겨지듯 올라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방금 뭐라고…….”

“잘했다고. 검기가 제대로 만들어졌잖아.”

“아니, 그건 그런데 성람석으로 한 번밖에 발동 안 했잖아.”

검기 양산화가 목적인데 양산이 안 돼서야 만들어져봐야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레아의 물음에 이세훈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거야 양산형 검기 ‘인챈트’를 팔 생각이면 문제가 있겠지. 내가 만들자고 한 건 양산형 검기 ‘무구’잖아.”

애초부터 인챈트의 목적은 검기를 만들어내는 것. 나머지는 자신이 거기에 맞춰 양산이 가능한 설계도를 제작하기만 하면 끝이었다.

“아…… 윽…… 크윽…….”

그제야 자신이 무슨 착각을 했는지 깨달은 레아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범용성을 높여보겠다고 수십 장의 설계도를 찢었던 행동에 대한 허무함. 밤잠을 줄이고 커피를 물처럼 마셔댔던 과거의 자신에 한탄.

그리고 이 모든 걸 이제야 말해주는 저 썩을 후배놈에 대한 분노와 원망과 쪽팔림.

“그럼 그걸 미리 말했어야…….”

“나야 검기만 만들어지면 일단 보고할 줄 알았지. 협업하는 사람이 중간보고가 이렇게 없을 줄 누가 알았겠어?”

“…….”

이세훈의 대답에 레아의 입이 다시금 다물어졌다. 뭐라고 불평을 하고 싶은데 하나같이 맞는 말이라 따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 아으…… 으윽…….”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레아가 괴로움에 괴상한 소리를 내는가 싶더니 탁자에 머리를 처박았다.

쿵─

기절이라도 한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는 레아.

자괴감이 잔뜩 느껴지는 그 모습에 이세훈이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누가 보면 인생 망한 줄 알겠네.’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는 거지 인챈트의 호완율을 높여주면 그만큼 설계도를 만들기도 쉬워졌기에 나쁠 것도 없었다.

‘지금대로면…… 나쁘지 않겠네. 조금 아쉽긴 하지만 인챈트가 개선되면 거기에 맞춰서 차차 수정하면 되겠지.’

어차피 시제품이니 처음부터 너무 완벽하게 만들려고 할 필요는 없다. 생각을 정리한 이세훈은 눈앞을 바라보았다.

‘그럼 남은 문제는 이녀석인가.’

여전히 머리를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는 레아. 생각이 많아 보이는 그 모습에 이세훈이 말없이 바라보다 주문해둔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궁상 그만 떨고 샌드위치나 먹어.”

“…….”

배가 고프긴 했는지 레아가 슬쩍 고개를 들더니 바람 빠진 풍선 같은 표정으로 샌드위치를 내려다보았다.

“……긴장이 풀려서 힘이 없어.”

“그래서?”

“먹여줘.”

“…….”

그냥 샌드위치랑 커피를 챙겨서 일어나 버릴까 잠시 고민했지만, 장난으로 하는 말 같지는 않아 보였기에 이세훈이 한숨을 내쉬며 나이프와 포크를 잡았다.

“입 벌려.”

샌드위치를 한입 크기로 자른 이세훈이 먹여줬고, 레아가 느릿하게 씹으며 받아먹었다.

그 괴팍한 모습에 주변에서 묘한 시선들이 쏟아졌지만 이세훈은 신경 쓰지 않고 레아에게 물었다.

“그래서 뭐가 그렇게 고민인데?”

“……무슨 고민.”

“일 좀 더한 거 가지고 이렇게까지 난리 피울 리가 없잖아. 뭔가 따로 걱정거리가 있는 거 아니야?”

이세훈의 물음에 레아가 씹고 있던 샌드위치를 삼킨 다음 힘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상아탑에 특기생 선발 대회라고 알아?”

“알긴 알지.”

우르에 세워진 30층짜리 빌딩의 소유주, 재단법인 ‘상아탑’에서 후원할 마법 분야의 생도를 뽑는 대회.

루이제가 과거에 이 특기생 자리를 노리던 게르윈 크루거에게 견제를 당해 마력결상을 입었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이번에 내가 거기에 참가할 예정이거든 그리고 이제 일주일 뒤에 제출을 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하나도 안 만들었다?”

“……그렇지.”

다시 풀이 죽는 레아. 그 모습에 이세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냥 참가 안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상아탑에게 후원을 받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받아야만 할 이유가 있는가.

거기에 의문을 느끼던 이세훈의 머릿속에 이전에 들었던 대화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네가 뭘 하든 간섭은 안하겠지만, 약속은 잊지 마려무나. 알겠니?’

이전에 몽환규도를 만들 때 레아의 할머니인 레베카 교수가 특기생 선발 대회를 언급하며 말했던 이야기.

그제야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이해한 이세훈이 레아를 바라보았다.

“레베카 교수님이랑 뭘 약속한 거야?”

“그게…….”

잠시 대답을 망설이던 레아가 멋쩍게 대답했다.

“특기생으로 못 뽑히면 자퇴하기로 했어.”

“……자퇴?”

“응.”

“…….”

레아의 대답에 이세훈이 앞에 놓인 레모네이드를 한 모금 마셨고, 그 신맛에 눈을 살짝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조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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