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101화 (101/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01화

파앙───

멀리서 느껴지는 희미한 파동. 그 힘을 느낀 마광수가 고개를 돌려 산 쪽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처리하긴 했나 보군.”

그 둘에게 조금 벅차지 않을까 싶었지만 어떻게 잘 처리해낸 모양이다.

유일한 걱정거리가 사라졌음을 확인한 마광수가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

봉두난발이 된 머리카락과 온몸을 더럽힌 피. 오른팔이 있어야 할 어깻죽지는 텅 비어 있었고, 방금까지 휘두르던 단검 역시 반 토막이 난 채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노인의 모습에 마광수가 오른손에 만들어낸 회색빛의 검을 어깨에 걸쳤다.

“나도 슬슬 끝내고 싶은데 오른팔 말고 또 그림자로 바꿀 것 있냐? 있으면 빨리해. 바로 잘라줄 테니까.”

심드렁한 마광수의 재촉에 노인의 눈매가 꿈틀거리더니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 오만한 성정은 여전하군. 검귀.”

검귀劍鬼.

그 오래된 별명을 들은 마광수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짓다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옛날 별명을 알 정도면 경력이 꽤 됐다는 건데…….’

옛날에 상대했던 녀석들 중에 비슷한 녀석이 있던가. 잠시 기억을 더듬던 마광수는 불현듯 한 이름을 떠올렸다.

“그래. 뭔가 움직임이 익숙하다 싶더니…… 너 ‘암막暗漠’ 출신이었구만.”

밤중의 사막에만 나타나 영웅들을 무참하게 사냥하고 다녔던 마인집단.

수많은 사막지대를 위험지역으로 변이시킨 원흉과도 같은 녀석들이었는데 오래전에 토벌되어 사라진 집단이었다.

“……기억하고 있었을 줄이야. 의외군 그래.”

“귀찮았던 놈들은 다 기억하지. 그런데 어떻게 살아 있는 거냐? 그때 분명 루트비히랑 같이 다 죽였을 텐데…….”

“그때는 승천제가 아니라 ‘천공天空’이지 않았나. S급이라 해봐야 결국 인간이니 피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지.”

완등자가 되기 전 루트비히의 별명을 이야기하며 이죽거리는 노인. 그 모습에 마광수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옛날이라 해도 그놈이 그리 허술하진 않은데…….’

오히려 지금보다 힘이 부족했기에 더 철두철미하게 움직였던 시절이다.

한참 동안 노인을 바라보던 마광수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됐다. 보아하니 말할 생각도 없어 보이고 그냥 여기서 끝내지.”

“삭막하군 그래.”

“네놈만 할까. 실없는 소리 하면서 애송이들을 인질로 삼을 생각이나 하고 말이야.”

“……!”

담담한 마광수의 이야기에 노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적영대의 움직임을 알아차렸다고……?’

자신이 제압당한 다음에 공간이동으로 넘어왔을 텐데 이곳으로 잠입했을 텐데 어떻게 알아차렸단 말인가.

정말로 알아차린 건지 아니면 자신을 압박하려는 심리전인 건지 노인이 고민하던 그때.

치링─

투명한 종소리와 함께 푸른빛의 검 수십 자루가 숲 곳곳에서 마광수를 향해 날아왔다.

“뭐…….”

마광수의 뒤쪽으로 가지런히 나열되는 수십 자루의 검.

60cm 정도 되는 짧은 길이에 공예품과 같이 단아한 형태였는데 수십 자루가 동일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그것만 해도 상당히 신비로운 광경이었지만, 그 본질을 알아차린 노인이 이내 경악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검기……?”

검기를 사용해 검을 만들어낸다.

그 자체는 검기를 다루는 데 익숙한 고위 영웅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수십 자루나 만들어내 개별적으로 제어하는 것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렇군. 완등자가 되지 못했을 뿐…… 기술은 더욱 진보하고 있었다는 것인가.’

자신이 어쭙잖게 시간을 끌고 있었을 때. 이미 적영대는 저 푸른색 검들에 꿰뚫려 전멸한 상태였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노인은 그제야 마광수의 별명이 검귀에서 파검으로 바뀐 이유를 뒤늦게 떠올렸다.

‘부러진 검을 보면 도망쳐라.’

무의미한 전투를 피하기 위해, 적을 가늠할 줄 모르는 마인을 살리기 위해 인류와 만마전이 인정한 별명.

완등자가 되기 전 승천제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그 괴물의 모습에 노인이 쓴웃음을 지었고.

“검을 보여줘야 도망을 치지…….”

푸른빛의 검 수십 자루가 노인을 향해 겨눠졌다.

천충검淺充劍

청경靑磬

치잉─

청아한 울림과 함께 수십 자루의 검이 노인의 몸을 꿰뚫었고, 마광수의 눈짓과 함께 자연스레 마력으로 풀어지며 사라졌다.

그 모습을 확인한 마광수는 곧장 노인에게 다가가 누더기가 된 상의를 뜯어냈다.

치이익

상처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아지랑이. 체내가 엉망이 되어가고 있음을 알아차린 마광수가 눈매를 찌푸렸다.

“폭탄에 독. 거기에 저주까지 알뜰살뜰하게 붙여놨구만.”

숨통을 끊어냄과 동시에 몸에 숨겨둔 장치들을 최대한 제거했지만 준비성은 저쪽이 한 수 위였던 모양이다.

껍데기만 남아버린 노인의 시체에 마광수가 미묘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이 정도로 철저한 놈은 조율사밖에 없는데…….”

인형사에 이어서 조율사까지 엮이다니. 우연인지 아닌지 몰라도 이렇게 단기간에 십악 둘과 엮인 적 있는 유망주는 난생 처음이었다.

“쯧…… 귀찮은 놈이군…….”

대충 처리하고 갈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바벨로 돌아갈 때까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아공간 박스에 시체를 집어넣은 마광수가 투덜거리며 다시금 숲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

“흐음…….”

붉은 창날의 테두리에 깔끔하게 자리 잡은 검은색.

우연히 새겨진 것치고는 깔끔하게 만들어진 관일창의 무늬에 이세훈이 살짝 감탄했다.

‘설마 한 방에 마력회로를 새겨 넣을 줄이야.’

무구의 동화율이 90% 이상 도달했을 때 발생하는 현상.

흔히 무구가 신체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단계가 바로 이때였는데 염성하는 단 한 번 만에 거기에 도달하여 불안정한 창을 관일창으로 완성시킨 것이다.

“그냥 이대로 써도 되겠네. 가져가.”

달리면서 관일창을 넘겨받은 염성하는 공방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정말 아무런 일도 없는 것 맞나.”

“그렇다니까. 걱정 말고…… 아, 저기 보이네.”

산에서 벗어나며 박진환의 공방이 모습을 드러냈고, 마당에서 언데드 암살자 네 마리와 대치하고 있는 두 명의 모습이 보였다.

염화문의 도복과 칠륜에 오른 사범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어깨의 표식. 그 모습을 확인한 이세훈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는 놈들이야?”

“강현운과 장폴 사범이군. 둘 다 A급에 문주의 직속 부하나 다름없는 녀석들이다.”

“강현운…… 아, 그놈인가.”

이전에 염성하의 실력을 점검하러 왔다가 창만 부숴 먹고 돌아간 얼간이. 아는 얼굴에 이세훈이 흥미롭게 바라보았고.

“쯧…….”

두 사람을 발견한 강현운이 짧게 혀를 찼다가 표정을 가다듬으며 두 사람을 맞이했다.

“무사하셨군요. 저희가 늦은 건가 싶어서 걱정했습니다.”

“귀찮으니 본론만 이야기하지. 문주가 보냈나?”

직설적인 염성하의 물음에 강현운의 눈매가 살짝 꿈틀거렸으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문주님께서 염성하 도련님 혼자서는 염도사냥꾼을 상대하기가 벅찰 거라고 판단하셔서 저와 장폴 사범을 지원으로 보내셨습니다.”

짧은 갈색머리에 2m가 넘는 거구인 서양인, 장폴이 두 사람을 보고는 살짝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했다.

“그런데 부상을 입으신 것 같은데 몸은 괜찮으십니까?”

걱정스럽다는 듯 몸 상태를 살피는 강현운과 장폴. 하지만 그 시선에 담긴 의도가 다른 것을 알아차린 염성하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너희들에게 죽을 정도는 아니지.”

“……농담이 지나치시군요. 도련님.”

정색하며 대답하는 강현운의 모습에 염성하가 무심하게 고개를 돌려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언월도를 꺼내라.”

“예예.”

아공간 포켓에서 안길현의 언월도를 꺼낸 이세훈이 보란 듯이 앞으로 내밀었고, 그 무구를 알아본 강현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건…….”

“파문당한 안길현 전 사범의 ‘염룡도炎龍刀’다. 이놈이 염도사냥꾼을 사칭해서 공방을 습격하려고 했더군. 방금 처리하고 오는 길이다.”

염성하의 설명에 강현운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안길현이 당했다고……?’

A급 영웅에 문주를 거역한 ‘배신자’들을 도맡아서 처리하던 사냥개가 불과 얼마 전에 사범이 된 녀석에게 졌다니.

그 믿기지 않는 결과에 강현운의 눈이 문득 염성하의 양손에 쥐어진 두 자루의 단창으로 향했다.

‘본 적 없는 무구다.’

겉으로만 봐도 평범해 보이지 않는 두 자루의 단창.

만약 저 두 개가 모두 영웅 등급이라면, 그리고 안길현이 염성하의 실력을 얕보고 방심했다면 허무하게 당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박진환 같은 퇴물이 저런 창을 만들었을 리가 없겠지. 그렇다는 건…….’

염성하의 창을 만들어준 이가 누구인지 알아차린 강현운이 자연스레 염룡도를 들고 있는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 만해도 학과수석이라고 건방 떠는 애송이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명성과 실력을 겸비한 염성하의 ‘후원자’가 되어버렸다.

‘이번 임무에 대해서 외부에 알려진다면 염성하와 이세훈 모두 이전보다 더 주목받게 되겠지.’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강현운의 머릿속으로 문주의 당부가 떠올랐다.

‘기회가 보인다면 깔끔하게 정리해라.’

여기서 망설이면 모든 것이 틀어진다. 그렇게 강현운이 창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두 사람을 다시 살피려던 순간.

“그 눈.”

염성하가 싸늘한 표정으로 강현운을 바라보았다.

“그만 굴리는 게 좋을 거다. 도려내 지기 싫다면.”

두 단창의 끝을 아래로 늘어뜨린 채 바라보는 염성하. 그 모습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에 강현운의 몸이 굳어졌고, 자신의 반응을 깨달으며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내가…… 정면에서 위축됐다고?’

이전에는 그저 난폭하기만 한 들개 같았다면, 지금은 죽는 한이 있어도 자신의 물어 죽일 ‘광기’가 느껴졌다.

며칠 사이에 다른 사람처럼 변해 버린 그 모습에 강현운이 한참을 마주 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상대를 너무 과소평가하셨습니다. 문주님.’

사범을 세 명, 아니, 네 명만 보냈더라도 여기서 염성하를 처리할 수 있었을 텐데.

염성하를 처리할 방법이 없음을 확인한 강현운이 기세를 가라앉히며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그리고 문주님께 전달 드릴 증거가 필요하니 염룡도를 넘겨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러지.”

투웅

관일창을 반 바퀴로 돌린 염성하가 창대로 염룡도를 위쪽으로 쳐올렸다.

후웅!

공중으로 떠오른 염룡도. 그 모습에 다시 관일창을 반 바퀴 돌린 염성하가 두 눈을 빛내며 창날을 있는 힘껏 휘둘렀고.

스각!

염룡도의 창날과 창대가 가볍게 분리되었다.

“챙겨가라.”

퉁!

떨어지는 창대가 염성하의 발에 걷어차였고, 그것을 받아낸 강현운의 얼굴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지금 무슨…….”

“안길현은 문주와 친하게 지냈었다고 하니 창대만 있어도 알아볼 수 있을 거다.”

“…….”

상당히 중의적인 한 마디. 그에 강현운이 한참을 노려보다가 이내 장폴을 바라보았다.

“그만 갑시다.”

더 이상은 시간 낭비라는 듯 인사도 없이 떠나는 두 사람. 그 모습에 염성하가 무심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서 전해라.”

“…….”

걸음을 멈춘 두 사람의 모습에 염성하가 담담하게, 각오를 담아 이야기를 이었다.

“설령 사부님이 내 곁을 떠나가신다 해도…… 그분의 뜻은 내 창을 통해서 계속 증명될 거라고.”

염진현이 인질로 잡아도, 그리고 끝내 죽임을 당하더라도 자신은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염성하의 각오가 담긴 선언에 강현운이 담담히 대답했다.

“후회하지 마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다시 걸어가는 두 사람.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염성하가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저 창날은 네가 가져라.”

“뭐…….”

영웅 등급의 무기였던 염룡도의 창날을 넘겨주겠다는 염성하의 이야기에 이세훈이 깜짝 놀랐다가 무언가 알아차리고 피식 웃었다.

“이것도 대금으로 준다는 거지?”

예전이면 몰라도 이제 이런 뻔한 수법은 안 통한다. 그런 이세훈의 물음에 염성하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같이 싸웠으니 전리품을 나누자는 거다.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나?”

“…….”

예상치 못한 대답에 이세훈의 얼굴이 굳어졌다가 이내 심호흡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아주 고맙다.”

바닥에 떨어진 염룡도의 창날을 주워든 이세훈은 가볍게 상태를 살펴보았다.

‘파손되기 직전인가…… 그래도 아예 못 쓸 정도는 아니네.’

다음에 다른 재료랑 섞어서 쓰기로 한 이세훈은 아공간 포켓에 챙겨 넣은 다음 염성하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중립파가 인질로 이용당하는 것은 서로 힘을 합치는 것으로 막을 계획이다. 문주가 아무리 막 나가도 이번 같은 일을 자주 할 수는 없을 테니.”

“임무 자체도 위험할 것 같은데.”

“정기적으로 몬스터 토벌을 나가서 방지할 생각이다. 이렇게 실적을 쌓아두면 얼마든지 임무를 거부할 수 있으니.”

“몬스터 토벌이라…….”

염화문에서도 겉도는 염성하를 받아주는 이들이 과연 있을까. 찾다 보면 나오기야 하겠지만 무엇을 노리고 받아줬는지는 알 장담할 수 없다.

‘신분이 확실하고 이원룡의 수작질에 넘어가지 않을만한 사람들이 필요한데.’

해당되는 사람이 있을지 잠시 생각하던 이세훈은 이내 한 사람을 떠올리며 물었다.

“너. 카사르 교수님 알지?”

“아칼쿠프 생도 중에 모르는 사람은 없지.”

“내가 그분한테 말씀드려볼 테니까 그쪽으로 소개받고 참가해. 염화문을 통해서 받는 것보단 훨씬 안전할 테니까.”

“…….”

이세훈의 이야기에 염성하가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연군검과도 연줄을 만들었다니.

‘수완 하나는 좋군…….’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전투 외적으로는 자신보다 뛰어난 것 같다. 전투와 관련되지 않은 장점은 처음으로 순수하게 인정한 염성하가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창도 그렇고…… 받은 게 더 늘어나 버렸어.’

특히 이번에 받은 창들은 대금을 세 배로 지불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대금이 산더미처럼 쌓여 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을 받아갈 생각도 않는 이세훈의 모습에 염성하의 심기가 살짝 불편해졌다.

‘이게 정말 거래인가…….’

사실상 자신 혼자서 빚을 지고, 일방적으로 폐를 끼치는 상황이 아닌가. 그렇게 염성하가 고민하고 있을 때.

“그리고 거기서 희귀한 몬스터 부산물 얻으면 나한테 바로 가져와.”

이세훈이 담담하게 이야기를 덧붙였다.

“괜찮은 거 있으면 대금 대신 받아갈 테니까. 알았어?”

“…….”

도움도, 동정도 아닌 어디까지나 거래라는 것을 강조하는 이세훈. 그 모습에 염성하가 말없이 바라보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걱정 마라. 좋은 걸로 챙겨올 테니.”

[대상 ‘염성하’와 거래가 성립됐습니다.]

[대상 ‘염성하’에게 인연석이 생성됩니다.]

***

모든 일이 정리된 뒤. 피난 보냈던 마을의 주민들이 돌아왔고, 홀로 남은 박진환은 자신의 공방을 바라보았다.

“……여기도 이제 끝인가.”

그동안은 이곳에서 집중이 잘 된다는 이유만으로 악착같이 머물렀지만, 무언가를 배우기에는 썩 좋은 장소가 아니다.

‘염화문 쪽으로 돌아가 봐야 눈엣가시일 테고…… 차라리 마이스터 쪽으로 가볼까.’

중소규모의 장인들이 모여서 서로 교류하기도 좋고 무엇보다도 순례교가 보호를 약속한 집단인 만큼 문주도 쉽사리 건드릴 수 없을 것이다.

‘겉만 번지르르한 원로지만 그래도 받아는 주겠지.’

목적지를 정한 박진환이 공방의 짐을 막 싸려던 그때.

“실례하지.”

공방의 입구에 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 주인이 화속성 무구를 만드는데 실력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는데…… 의뢰는 받나?”

명치까지 오는 긴 장발머리에 턱수염이 거뭇거뭇 나 있는 음울한 얼굴의 중년 사내.

망토 안쪽으로 곳곳이 헤진 경갑과 붉은 칼집이 도가 허리춤에 채워져 있는 것이 보였는데 자세만 봐도 실력이 상당해 보였다.

“미안하군. 오늘부로 영업을 그만두게 됐네.”

“그런가? 영웅 등급의 무구를 제대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찾기가 쉽지 않은데.”

아쉬움이 묻어나는 사내의 대답에 박진환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도 모두 옛날이야기일세. 지금은 반년을 매달려도 만들까 말까 한 퇴물이지.”

박진환의 진심이 담긴 대답에 사내가 조용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다음에 기회가 닿는다면 그때 부탁하도록 하지.”

인사를 남긴 사내가 공방을 떠났고, 다시 짐을 정리하던 박진환이 불현듯 무언가 떠올랐다.

‘허리에 차고 있던 도…… 영웅 등급은 되어보이던데.’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한 가지 가능성. 하지만 박진환은 금방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무 예민해진 모양이군.’

방금 그자가 정말 염도사냥꾼이라면 어째서 창밖에 안 만드는 자신을 찾아온단 말인가.

그리 생각을 정리한 박진환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짐을 정리했고.

“또 허탕이군…….”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내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