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96화
이세훈의 기숙사실 방 안.
거실에 장식처럼 놓여 있던 TV가 처음으로 켜지더니 이윽고 한 화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차기문주 후보로서 문주께 대련을 신청하겠습니다.]
승단식이 끝나기 무섭게 공개적으로 대련을 신청하는 염성하.
그 갑작스러운 도전에 주변이 소란스러워지더니 묵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좋다. 덤벼 보거라.]
왼쪽 볼에 불꽃 모양의 흉터가 새겨진 짧은 적발머리의 중년인, 이원룡의 수락에 두 사람이 아래쪽에서 연습용 창을 건네받으며 대련이 시작된다.
콰아아앙!
창이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대련장 전체를 집어삼킬 것처럼 터져 나오는 이원룡의 염륜과 그 기세를 겨우겨우 막아내며 버티는 염성하의 흑염륜.
준 S급으로 취급되는 A급 영웅과 이제 막 바벨의 3학년에 올라간 예비 B급 영웅.
승패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는 대련인 만큼 그 흐름도 일방적이었다.
퍼억! 빠악!
방어에만 급급하던 염성하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원룡의 창에 복부를 후려 맞고, 이어서 얼굴과 어깨 등 전신을 두들겨 맞았다.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겠다는 듯 전신을 구타하듯 펼쳐지는 이원룡의 공격. 하지만 그 상황 속에서도 염성하는 항복을 외치는 대신 끝까지 공격을 쳐내며 버텨냈다.
그리고 계속해서 뒤로 밀려나던 몸이 마침내 대련장의 끝에 다다른 순간.
빠각!
명치를 노린 찌르기가 두 단창을 박살 내며 염성하를 대련장 밖으로 떨어뜨렸다.
쿠웅!
아래쪽에 내다 꽂히다시피 떨어진 염성하가 잠시 꿈틀거리더니 이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마와 입에서 흘러내리는 피로 엉망이 된 모습. 그런데도 염성하는 흔들림 없는 눈으로 대련장의 위에 서 있는 이원룡을 올려다보았고.
[다음에 다시 도전하겠습니다.]
선전포고와 같은 말과 함께 영상이 끝났다.
“…….”
거실의 소파에 앉아 TV를 바라보던 이세훈은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있는 영상 속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말 없이 소파에 앉아서 이쪽을 쳐다보는 염성하. 그 당당해 보이는 모습에 이세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미친 새끼…….”
설마 승단식이 끝나자마자 문주, 이원룡에게 이렇게 공개적으로 도전장을 던질 줄이야.
상상을 초월하는 염성하의 행동에 이세훈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차분히 물었다.
“한번 들어나 보자. 갑자기 왜 이런 거야?”
염성하가 비록 한번 결정을 내리면 앞뒤 안 가리고 들이박는 미친놈이긴 하지만, 그 전까지는 확실하게 사리판단을 하는 녀석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선전포고를 한 것에도 이유가 있을 터. 이세훈의 물음에 염성하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문주가 중립을 유지하던 이들을 숙청하기 시작했다. 내가 움직이기 전에 염화문을 정리하려는 것 같더군.”
“그래서 조금 이르지만 패를 깠다?”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염성하의 모습에 이세훈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저 말대로라면 이번에 나서는 게 맞긴 하네.’
미래의 염성하가 이원룡을 뛰어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 과정에서 아무런 충돌이 없을 리는 없다.
특히 이권을 노리고 이원룡에게 붙은 자들은 염성하의 자질이나 실력이 어떻든 간에 적대할 가능성이 높을 터.
그러니 그 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아끼지 않고 들이박는 편이 좋았다.
‘실제로 반응도 나쁘지 않고.’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린 이세훈은 영상을 틀기 전에 찾아봤던 기사를 살펴보았다.
[염화문의 최연소 사범 염성하. 문주에게 도전하다.]
[두 자루의 단창을 사용하는 염성하 사범, 염륜잔화창에 새로운 물결이 오는가.]
[염화문 측 대변인 ‘염성하 사범의 염륜과 창술은 독자적인 것. 효율성이 입증되기 전까지는 채용할 생각 없다.’]
‘관계자들 불러놓고 어떤 식으로든 면박을 줄려고 했던 거 같은데…… 의도한 거랑 반대로 돼버렸네.’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염성하가 시종일관 두들겨 맞다가 결국 패배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어느 정도 볼 줄 아는 사람들의 눈에는 다르다.
이원룡과 염성하의 불꽃이 서로 상쇄되고 결착을 지었어야 할 일격들이 평범한 타격으로 흘려 내진다.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해도 B급 영웅 수준인 생도를 단숨에 제압하지 못한 상황. 그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이원룡의 기술이 그만큼 수준이 낮거나…… 염성하의 재능이 말도 안 되거나.’
사람에 따라 해석은 다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염성하라는 차기문주 후보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밖에 없을 터.
그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도 기회를 잘 파고든 염성하의 모습에 이세훈이 살짝 감탄했다.
‘힘이 모자라서 그런가? 회귀 전보다 똘똘하게 움직이네.’
회귀 전의 광견이었다면 반대하는 놈들을 모조리 박살 내고 자기가 염륜잔화창의 전통 후계자라고 증명하며 끝냈을 텐데.
빠르기는 그쪽이 빠르겠지만 염화문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조금 돌아가더라도 이쪽이 더 좋으리라.
“얼굴이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건지는 이제 알겠고…… 염도사냥꾼은 그래서 왜 잡는 건데?”
영상이나 뉴스만 봐서는 염도사냥꾼이 지금 왜 언급되는지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세훈의 물음에 염성하가 말없이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듯 대답했다.
“염화문의 사범들은 여러 혜택을 받는 대신 정기적으로 임무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승단 직후 실력을 정확히 테스트하기 위해 간단한 임무가 주어지지.”
“그게 염도사냥꾼을 죽이는 거라고?”
“정확히는 녀석이 습격할 것이라 예상되는 염화문 소속의 대장장이를 보호하는 임무다.”
“예상이라…….”
지금이야 한창 염도사냥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세훈은 회귀 전에 그 사건이 미제로 끝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녀석이 염화문한테 동선을 들켰다라…… 말 같지도 않은 소리구만.’
앞서 이원룡이 숙청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떠올린 이세훈이 염성하에게 물었다.
“그 대장장이라는 사람. 혹시 문주한테 밉보였냐?”
“……그렇다더군.”
“그럼 그렇지.”
습격해 오는 괴한들이 진짜 염도사냥꾼일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목표가 염성하라는 것은 확실하다.
이번 대련 때문인지는 몰라도 의도를 숨길 생각이 없어 보이는 이원룡의 모습에 이세훈이 골치 아픈 표정을 지었다.
“거절하는 건 안 돼?”
“그러면 바로 새로운 임무가 배정될 거다. 그리고 마땅한 이유 없이 세 번 이상 임무 수행을 거절할 경우 사범직에서 박탈당한다.”
“그래. 그렇겠지.”
예상한 그대로의 대답에 한참 동안 고민하던 이세훈은 이내 생각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좋아. 일단 사흘 안에 어떻게든 만들어볼게.”
“그럼 보수는…….”
“대신.”
말을 잘라낸 이세훈이 염성하를 바라보았다.
“나도 같이 간다.”
이세훈의 이야기에 염성하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이내 욕이라도 들은 것처럼 눈매가 일그러졌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군. 내가 왜 네놈을…….”
“영웅 등급의 창. 필요 없어?”
“큭…….”
거절하려던 입이 말을 잇지 못하더니 염성하의 눈매가 불쾌하다는 듯 찌푸려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나며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따라와서 죽든 말든 알아서 해라.”
그걸로 끝이라는 듯 밖으로 나가 버리는 염성하.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세훈이 혀를 찼다.
“도와준다고 하면 그냥 고맙다고 하면 될 것이지…… 경고도 더럽게 못 해요.”
마음과 같아서는 그럼 알아서 하라고 하고 싶지만 어쩌겠는가. 저렇게 못난 놈이어도 미래에 마신을 죽일 수 있는 에이스인데.
자리에서 일어난 이세훈은 곧장 승천제의 반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후웅!
허공의 공간이 펼쳐지며 바닥에 놓인 아공간 박스.
본래 아공간 아이템은 이런 식으로 공간 능력을 사용해 보관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루트비히가 무슨 짓을 했는지 승천제의 반지를 사용하면 가능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아공간 술식을 만든 게 이 양반인데 뭘 못하겠어.’
나중에 이쪽도 한번 살펴보기로 하며 이세훈은 곧장 아공간 박스 안에서 미리 봐둔 재료를 꺼냈다.
후웅
연꽃줄기가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의 속살. 홍염장을 만들 때 사용한 신목의 조각보다 크기는 작았지만, 밀도 자체가 남달랐다.
[신목의 뿌리]
[등급 : 영웅] [품질 : 최하]
검은연꽃 수해에서 자라나던 신목의 뿌리.
핵에게 직접 영양분을 공급하던 뿌리 중 하나로 마력을 흡수하는데 특화되었다.
*내부에 부여되는 마력에 따라 성질이 빠르게 변화된다.
신목의 조각보다 한 등급 높은 재료인 신목의 뿌리.
마력을 흡수하는 성질이 강해 빠르게 숙성이 가능했는데 신목의 부산물 중에서도 귀한 재료였다.
“그리고…….”
명치에 손을 가져다 댄 이세훈은 곧장 스킬 ‘몽상수납’을 발동했다.
화륵!
명치에서 피어오르는 보랏빛 불꽃. 그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은 이세훈은 글귀가 빼곡하게 새겨진 검지 뼈, 불명자의 지골을 꺼냈다.
‘이것도 오랜만에 꺼내보는구만.’
승천제의 반지와 마찬가지로 완등자의 권능이 담긴 물건.
혹시라도 위르겐이 감지할까 봐 아껴두고 있었는데 여태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안심해도 될 것 같았다.
겉을 살핀 이세훈은 오랜만에 정보창을 살펴보았다.
[불명자의 지골]
[등급 : 영웅] [품질 : 최상]
완등에 성공한 절대자, ‘위르겐 크루거’의 왼쪽 검지 뼈.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사령술사의 육체는 그 자체만으로 강력한 사령마법의 촉매가 됩니다.
마력을 부여하는 것으로 검지에 새겨진 세 개의 사령마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스킬 ‘경계의 눈’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스킬 ‘망자의 부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스킬 ‘명안계암’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흐음. 명안계암을 쓸 수 있게 됐네.’
폴몬트에게서 막 빼앗았을 때는 사용할 수 없다고 표시되어 있었던 사령마법.
아마 류은하를 잠깐 봉인했던 그 기술이 명안계암일 가능성이 높으리라.
‘S급도 닿기만 하면 통하니까 요긴하게 쓸 수 있겠는데…….’
조금 위험하다 싶을 때는 꺼내두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불명자의 지골을 간단하게 살펴본 이세훈은 곧장 신목의 뿌리에 가져다 댔다.
뿌드득!
“?!”
불명자의 지골이 닿기 무섭게 검은색으로 물들어가는 신목의 뿌리. 그 엄청난 속도에 이세훈이 재빠르게 떼어냈다.
뿌득─
하지만 그런 뒤에도 신목의 뿌리가 검은색으로 물들어 갔고, 잠시 후 크기가 10% 정도 줄어든 형태로 완성되었다.
“……과연. 이 정도란 말이지.”
역시 완등자의 일부라고 해야 할지 자신의 상상 이상으로 성능이 뛰어나다.
신목의 뿌리에서 느껴지는 짙은 암속성마력에 이세훈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이 정도면 창을 만들 시간은 넉넉한 것 같고…… 남은 건 염화문이 보낼 암살자 쪽인가?’
이번 대련으로 어중간한 B급들은 염성하에게 역으로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으니 좀 더 철저하게 준비할 가능성이 높았다.
‘A급. 거기에 추가로 뭔가를 더 보낼 수도 있겠지.’
한 놈이라면 염성하를 내세워서 어떻게 틈을 해볼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이상이라면 힘들어진다.
거기에 자신을 노리는 다른 세력이 끼어들지도 모르는 상황. 그렇기에 이번에는 믿음직한 아군이 필요했다.
암살자를 죽이는데 도가 텄으며 실전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거기에 딱 부합하는 꼬장꼬장한 노인네, 마광수의 모습을 떠올린 이세훈이 슬쩍 웃었다.
“앓는 소리 좀 해야겠네.”
***
일요일 아침.
주말이라 고요해야 할 무투학부의 강의실 한 곳에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카앙!
허공에서 부딪치는 두 자루의 철검.
서로의 급소를 망설임 없이 노리는 검들의 움직임은 보기만 해도 섬뜩했지만, 막상 당사자들은 태연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래서 거길 따라가겠다고?”
목을 노린 검을 쳐내며 어이없다는 되묻는 마광수. 그에 이세훈이 재차 심장을 찌르며 대답했다.
“혼자 보내면 어디 한 군데 작살 나서 올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가서 좀 도와줘야죠.”
“남들이 들으면 비웃을 말이구만.”
창술학부의 3학년 수석이자 무학관의 랭킹 10위. 거기에 A급 영웅의 승급을 노리고 있는 것이 염성하였다.
그런데 올해 입학한 1학년, 그것도 제련학부의 생도가 돕는다? 아칼쿠프에 자부심을 가진 이들이 듣는다면 콧방귀를 뀔 만한 이야기였다.
“사람들이 그놈을 몰라서 그렇죠. 정면에서나 싸울 줄 알지 뒤통수 맞으면 정신 못 차릴 걸요.”
“그럼 너는 정신 차릴 수 있고?”
“그야…….”
카가각!
대답하기도 전에 검날을 긁으며 손목을 향해 파고드는 마광수의 검. 눈 깜짝할 사이에 빈틈을 파고드는 공격에 이세훈은 곧장 손목을 반 바퀴 비틀면서 검 등을 발로 걷어찼다.
카앙!
서로 검이 쳐내며 한 걸음씩 물러서는 두 사람. 재빠르게 자세를 가다듬은 이세훈은 숨을 돌리며 대답했다.
“어느 정도는요.”
“…….”
자신의 검을 쳐낸 이세훈의 모습에 마광수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허튼 생각하지 말라는 뜻으로 조금 진지하게 날린 공격이었는데 그걸 이렇게 깔끔하게 쳐내다니.
‘괴물 같은 놈…….’
투살법을 넘겨준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설마 이렇게까지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될 줄이야.
말을 꺼낼 기회를 놓친 마광수는 헛기침을 하며 강제로 이어나갔다.
“흠흠. 아무튼 네가 끼어들 만한 일이 아니야. 이원룡 그놈이 아무리 문주 자리에 미쳤다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무리수를 던지겠냐?”
“진짜로 던지면요?”
“뭐…… 뒈지겠지.”
턱을 긁적인 마광수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근데 그놈이 선택한 길이잖아. 그럼 자업자득이지.”
염화문의 문주 자리만 포기한다면 목숨을 위협받을 일도 없이 충분히 고위 영웅으로서 잘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도 굳이 문주의 자리를 노리며 함정으로 걸어 들어간 것은 염성하 본인이니 그 행동에 대해서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뭐, 그렇긴 하죠.”
“그러니까…….”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한숨을 푹 내쉰 이세훈이 마광수를 바라보며 쓰게 웃었다.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는데.”
“…….”
“아무튼 뭐, 그렇게 됐으니 다음 수업은 불참하겠습니다. 그 뒤에도 소식 없으면 대충 그렇게 된 거구나 생각해 주세요.”
고개를 꾸벅인 이세훈이 연습용 검을 꽂아둔 뒤 떠났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마광수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저저 미친놈 저거…….”
도대체 뭐 하러 그런 약속을 하고, 또 바보같이 그걸 지키겠답시고 위험한 짓을 사서 한단 말인가.
그 바보 같은 행동에 마광수는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딱 봐도 오래 못 살 놈이군. 차라리 잘 됐어.’
자신보다 일찍 죽을 놈이라면 천충검을 가르친다 해도 보람이 없다. 그리 생각하며 마광수가 이세훈에 대해 생각을 털려 할 때.
‘─약속한 겁니다.’
불현듯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한 청년의 모습에 마광수가 멈칫하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왜 약속 타령하는 놈들 중에는 정상인 놈이 없는 건지…….”
불만스럽게 투덜거리며 휴대폰을 꺼낸 마광수는 수요일에 수업이 예정되어 있던 2학년에게 문자를 보냈다.
[출장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