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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95화 (95/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95화

화르르륵!

화로 안쪽에서 파도치듯이 움직이는 주홍빛의 불꽃.

벽면을 후려친 불꽃이 사방으로 흩어졌다가 중심지로 다시 모여들고 다시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우웅─

그 과정이 반복될 때마다 화로의 가운데에 놓인 거대한 숯 틈새로 주홍빛이 반짝였고, 반투명한 뚜껑 너머로 그 모습을 살핀 이세훈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좀 더 가열되어 주홍빛이 더욱 거세진 순간.

파삭

숯의 겉면이 바스라지기 시작했다.

“간다!”

우렁차게 외친 이세훈은 재빠르게 화로의 반투명한 뚜껑을 완전히 열었다.

화르륵!

화로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불꽃과 열기.

보급형 작업복의 방열 기능을 간단히 뚫어버리는 열기 속에서 이세훈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집게를 집어넣었다.

후웅!

주홍빛으로 달궈진 숯이 단숨에 작업대로 옮겨졌고, 화로의 뚜껑을 닫은 이세훈은 곧장 준비해둔 쇠꼬챙이를 곳곳에 찔러 넣었다.

화륵!

쇠꼬챙이가 파고들자 피처럼 뿜어 나오는 주홍빛의 불꽃.

요령 좋게 그 불꽃을 모두 피해낸 이세훈은 마지막으로 흑령사를 꼬챙이 끝에 연결해둔 다음 대기 중이던 루이제에게 던졌다.

“마지막 압축!”

흑령사를 낚아챈 루이제가 단숨에 입에 물었고, 머릿속으로 한참 동안 갈고닦은 심상을 담아 언령마법을 사용했다.

【Compression】

흑령사를 통해 루이제의 언령마법이 깊이 스며들었고 동시에 숯의 틈새로 빛나던 주홍빛이 더더욱 강해졌다.

쩌저적!

그리고 사방에 퍼진 균열이 한계에 다다르며 그 겉이 무너지려던 순간.

퍼엉─!

거대한 숯이 단숨에 폭발하며 사방에 재를 흩뿌렸다.

“콜록콜록…… 어우 씨…….”

주변뿐만 아니라 전신을 뒤덮은 재에 루이제가 눈매를 찌푸렸다. 작업복으로 갈아입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마음에 든 옷들을 전부 못 쓰게 됐으리라

“야! 어떻게 됐는데! 끝났어?!”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소리쳐서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그 반응에 루이제가 살짝 불안해할 때.

후우웅!

공방의 환풍구가 가동되면서 시야가 확 트였다.

“…….”

재로 뒤덮인 공방과 마찬가지로 엉망이 되어버린 이세훈. 그리고 폭발의 중심지였던 작업대가 텅 비어 있는 것을 본 루이제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실패라고?’

벌써 10시간째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데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단 말인가?

그냥 이세훈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도망치는 게 어떨지 루이제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끝났지.”

몸을 돌린 이세훈이 미소를 지으며 손에 쥐어진 주홍색 막대기를 보여주었다.

“아이 씨…… 쫄았잖아.”

안도의 한숨을 내쉰 루이제가 이세훈에게 다가가 손에 들린 완성품을 살펴보았다.

어림잡아 130cm 정도 되는 길이. 겉은 묘한 광택이 흘러 마치 유리로 만든 것처럼 보였는데 그 변화에 루이제가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뜨거워?”

“살짝 따뜻한 정도.”

“그럼 줘봐. 나도 좀 보게.”

이세훈에게서 완성품을 낚아채 간 루이제는 곧장 정보창을 읽어보았다.

[홍염장紅炎杖]

[등급 : 희귀] [품질 : 최상]

특수한 나무를 오랜 시간 가열해서 만들어낸 막대기.

불꽃을 흡수하고 저장하는 특성을 가지게 되었으며 양분으로 사용하여 파손된 부위를 재생할 수 있습니다.

내부를 순환하는 마력회로에 의해 출력을 효율적으로 유지할 수 있으며 그 상태에서는 강도가 증가합니다.

*무구에 저장된 불꽃으로 재생할 수 있습니다. 현재 저장량 : 100%.

*무구에 마력이 부여되었을 경우 강도가 상승됩니다.

“……뭐야. 겨우 희귀 등급?”

손안의 막대기, 홍염장의 등급을 본 루이제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생도의 기준에서 봤을 때 희귀 등급 최상품도 나쁘지 않은 결과물이긴 했지만, 여기에 들어간 자신의 노력과 시간.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료의 ‘양’을 생각하면 너무 낮게 나온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거 제대로 나온 거 맞아? 그 이상한 나무 조각을 몇 개나 압축시켰는데 이런 게 나와.”

신목의 조각에 언령마법을 불어넣어 활성화시키고, 이후 화로에 집어넣어 불꽃에 적응시킨다.

그렇게 조각이 가공을 거쳐 크기가 일정이상 줄어들면 똑같이 가공한 다른 조각과 붙여서 압축.

이런 과정을 수십 번이나 반복해 불꽃에 대한 능력과 내성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이 홍염장이었다.

‘그 정도 했으면 최소한 영웅 등급은 나와야지…….’

노력에 배신당한 것 같은 기분에 루이제가 인상을 찌푸리자 이세훈이 피식 웃었다.

“진정해. 아직 미완성이라 그런 거니까.”

“미완성이라고?”

“원래라면 이쪽 끝에 마력을 방출할 수 있는 창날이 있어야 하거든. 그것만 대충 달아두면 영웅 등급은 될 거야.”

이번에 만든 홍염장은 그림으로 치면 이제 선을 다 딴 상황. 이 상태로도 영웅 등급을 받을 뻔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잘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으리라.

‘도중에 실패만 덜 했어도 좋았을 텐데 말이지.’

새하얀 재로 변해 버린 신목의 조각 수십 개를 떠올린 이세훈이 아쉬워하고 있을 때.

“……창?”

루이제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거 설마 그 염 뭐시기한테 주는 거야?”

“어. 걔한테 팔…….”

“흐읍……!”

홍염장을 무릎에 내려찍으며 박살 내려는 루이제.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이세훈이 손으로 무릎을 막아내며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뭐 해?”

“그 새끼 무기인 줄 알았으면 안 도와줬지! 왜 그딴 놈한테 이런 걸 만들어줘!”

한 번 만났을 뿐인데 어지간히도 마음에 안 들었었는지 염성하에 대한 분노를 토해내는 루이제.

회귀 전에 광견만 봤다 하면 이를 갈던 폭견의 모습을 떠올린 이세훈이 피식 웃으며 어깨를 토닥였다.

“너무 화내지 마.”

“뭘 화내지 마. 너는 그런…….”

“염성하 그놈이 싸가지 없고 인성도 별로인 데다 자기 실력은 하나도 생각 안 하고 무기 탓만 하는 재수 없는 놈이긴 하지만 괜찮은 부분도 있으니까.”

“……진짜 왜 만들어준 거야?”

편을 들어주기는커녕 자신이 할 말을 다 해버리는 모습에 루이제가 어이없이 바라보자 이세훈이 담담히 대답했다.

“마음에 드는 녀석들한테만 팔면 장사는 어떻게 해? 그냥 기준치에만 맞으면 파는 거지.”

“뭐…… 재능이나 그런 거?”

“그렇지. 그리고 신념도 확실해야 하고. 그런 사람이 오래오래 살거든.”

전투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으며,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인간’으로 살아남는다.

그렇기에 이세훈은 회귀 전 삼견과 수많은 충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들에게 무구를 만들어줬던 것이다.

“……다음부터는 미리 말해. 사람 맥 빠지게 만들지 말고.”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안 도와주겠다고는 안 하는 루이제. 그 모습에 이세훈이 문득 아까부터 궁금했던 부분을 자연스럽게 물었다.

“근데 무구 만드는데 맥 빠지고 할 게 있어?”

“당연하지. 난 네가 쓸 줄 알고…….”

자연스럽게 대답하던 루이제의 몸이 경직됐고, 그 이야기에 대강 상황을 파악한 이세훈이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내가 쓸 줄 알고? 그래서 뭔데? 계속 말해.”

“……죽는다.”

“기왕 죽을 거면 듣고 죽어야지. 아! 알겠다. 내가 쓸 줄 알고 열심히 만들었다 이거구…….”

“야!!!”

***

“앞으로 뭐 만들 때 도움받을 생각은 꿈도 꾸지 마!!”

버럭 소리를 지르며 택시를 타고 떠나는 루이제. 공방 앞에서 이세훈과 함께 마중을 나온 김인철이 물었다.

“잠깐 자리 비운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장난 좀 쳤는데 애가 참을성이 없네요.”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말실수한 걸로 놀리면 고삐가 풀리는 것은 어째 변함이 없다.

‘이번에는 내성을 좀 키워줘야겠는데.’

명색에 언령술사가 말꼬리 좀 잡혔다고 저렇게 이성을 잃어서야 되겠는가. 이세훈이 속으로 다짐하고 있자 그 모습을 본 김인철이 쓰게 웃었다.

“적당히 하게나. 자네 말투나 표정이 사람한테 미움 사기 딱 좋으니.”

“그것 참 서러워지는 조언이네요. 아 참, 완성한 건 보셨습니까?”

이세훈의 물음에 김인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훌륭하더군. 어떤 창날이든 달아주는 순간 영웅 등급은 확정일 걸세.”

“감사합니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던 김인철은 이내 확신을 담아 이야기했다.

“부서진 불꽃에도 활용할 여지가 보였네.”

신목의 조각은 주변의 환경에 맞춰 성장할 수 있으며 상극이라 할 수 있는 불꽃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부서진 불꽃에 맞춰 성장시킨 다음 파괴된 ‘근원’을 대체하는 방법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김인철의 추측에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이네만…… 혹시 그 신목의 재료를 내게 조금만 팔아줄 수 있겠나?”

아무리 재료의 양이 많다고는 하지만 다시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재료인 만큼 사용하기가 꺼려질 수도 있다.

같이 연구하는 사이긴 하지만 자신이 협조를 요청했던 상황이었기에 김인철이 긴장한 채로 대답을 기다렸고.

“물론이죠.”

이세훈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재료는 넉넉하게 있으니까 그 정도는 얼마든지 드릴 수 있습니다.”

“……정말 고맙네.”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며 고개까지 숙이려는 김인철의 모습에 이세훈이 어깨를 잡으며 말렸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저도 교수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도 있었고요.”

“부탁이라면……?”

김인철의 물음에 이세훈이 조심스레 대답했다.

“다음에 부서진 불꽃의 불을 제련에 사용해 보고 싶습니다.”

“…….”

이세훈의 부탁에 김인철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신목이라는 희귀한 재료를 가져다주는데도 고민하는 모습. 그 반응을 이세훈이 눈여겨보고 있을 때, 김인철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조금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자네라면 괜찮겠지.”

“그럼…….”

“대신 한 가지만 약속해 주게.”

이세훈을 바라본 김인철이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완성된 무구에 부서진 불꽃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경우 반드시 파기하겠다고.”

부서진 불꽃이 외부에 알려질 경우 누군가에게 습격받을 수도 있다. 그것을 은근하게 말해주는 김인철의 모습에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믿겠네.”

고개를 끄덕인 김인철은 어두워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는 게 좋겠군. 태워다줄 테니 가세.”

차고에서 붉은색의 거대한 오토바이를 꺼내온 김인철은 순식간에 도로를 가로지르며 이세훈을 데려다주었고, 왔을 때와 같이 순식간에 도로 너머로 사라졌다.

부우우웅─!

눈 깜짝할 사이에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김인철.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세훈이 턱을 쓰다듬었다.

‘부서진 불꽃의 흔적을 알아보는 놈이 있다라…… 역시 주시자 내부에서 빼돌린 건가?’

몽환규도를 통해 본 회귀 전 빙견의 정보에 의하면 김인철은 한때 주시자에 속한 대장장이였으며 ‘염도사냥’에 휩쓸려 사망한 것으로 나와 있었다.

물론 그 정보가 진짜인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주시자 중에 대장장이랑 관련 있는 녀석들은 『공양供養』 그놈들밖에 없을 텐데.’

완벽한 무구를 만들기 위해 무엇이든 바쳐야 한다고 주장하던 괴팍한 놈들.

회귀 전에 가장 많이 만났던, 정확히는 자신을 끈질기게 쫓아다녔던 녀석들로 주시자 중에서도 내부구조를 가장 많이 파악하고 있는 놈들이기도 했다.

‘일단은 염도사냥의 범인, 염도사냥꾼부터 찾아야 겠구만.’

만약 녀석이 정말로 『공양』에 소속된 녀석이라면 몸에서 흔적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회귀 전에도 잡지 못한 범인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이세훈이 여러 방법을 고민하며 걷고 있을 때.

“늦었군.”

커다란 덩치가 앞을 가로막았다.

주말에 개고생을 하게 만든 그 재수 없는 목소리에 이세훈이 자연스레 얼굴을 쳐다봤다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너…….”

이마에 둘러맨 붕대와 뺨에 붙여진 거즈, 찢어져 있는 입술에 자잘한 상처 등등 얼굴에 난 상처가 그야말로 한두 개가 아니었다.

완전히 엉망이 된 청년, 염성하의 얼굴에 이세훈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 맞았냐?”

도대체 누가 이 망나니를 이렇게 두들겨 팼단 말인가. 이세훈의 물음에 염성하가 눈매를 살짝 찌푸리더니 화제를 돌렸다.

“창은 얼마나 만들었지?”

상처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한 표정. 그 단호한 모습에 이세훈이 떨떠름해 하면서도 대답했다.

“화속성은 창날만 달면 되고 암속성은 아직 시작 안 했어.”

“…….”

말없이 생각에 잠긴 염성하.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럼 사흘 동안 최대한 만들어서 넘겨라.”

그걸로 끝이라는 듯이 지나가려는 염성하. 그 모습에 이세훈이 자연스럽게 앞을 가로막았다.

“……뭐냐.”

“누구한테 맞고 왔는지는 모르겠는데 무구가 필요하면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정도는 설명해 줘야지.”

“굳이 그럴 필요가…….”

“어떤 놈 배때지에 쑤실 창인지 알아야 맞춰서 만들 거 아냐. 어쨌든 한 배에 탄 사이인데 이런 식으로 숨기면 나도 많이 섭섭해.”

듣기 전에는 비켜주지 않겠다는 듯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이세훈의 모습에 염성하가 물끄러미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염도사냥꾼이라 불리는 녀석을 죽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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