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93화
“후우…….”
류은하와 중급제련을 끝낸 뒤. 기숙사로 돌아와 간단히 씻은 이세훈은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좀 무리했나…….”
처음에는 간단하게 손질만 할 생각이었는데 류은하가 점점 질려 하는 것 같아서 자신도 모르게 속성마력까지 사용해서 대접해 버렸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나른함과 그와 반대로 또렷한 정신. 움직이기도, 쉬기도 애매한 상태에 이세훈은 오랜만에 몸 상태를 점검했다.
[이세훈]
근력 - C(170) 내구 - C(165)
마력 - C(190) 민첩 - C(167)
고유 스킬 : ‘인연의 대장장이’
속성 마력 : 홍륜염(D+), 월영(D+)
보유 스킬 : 천충검(S), 영연신마법(S), 몽상수납(A), 투안(A), 투살법(A), 불꽃의 장인(C), 언령 : 부여(C), 깨어나는 꿈(C), 흑령사(D)
“흐음…… 그럭저럭…….”
신체 능력은 여전히 바벨의 평균수준이지만 속성마력이나 보유한 스킬들이 꽤 많이 늘어났다.
특히 회귀 전에 익힌 적 없는 새로운 스킬이 많았는데 그 정보를 훑어보던 이세훈이 턱을 쓰다듬었다.
‘기존에 배운 적 없는 기술이 생긴 건 좋은데…… 좀 정돈이 안 된 느낌이네.’
회귀 전 이세훈은 영연신마법을 토대로 다양한 속성마력을 습득하고 그것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실력을 키웠다.
무술이나 마법에 대한 재능이 떨어지기도 했고 그때는 그쪽이 자신의 성향과도 맞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째 느낌이 달라졌단 말이지.’
마광수에게서 비전검법을 비롯하여 투살법과 투안을 단숨에 배웠고, 언령이나 주술 역시 상당히 쉽게 익히고 있다.
어쩌면, 아니 이제는 무술과 마법에 대한 재능이 생겨났다고 확신할 수밖에 없는 상황.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긴 하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자신이 할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일단 뭘 제대로 배워보긴 해야겠어.’
사용할 수 있는 재료가 있다면 뭐든지 사용한다.
사부에게서 배운 가르침을 떠올린 이세훈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일단은…… 세 번째 속성마력부터 얻자.’
영연신마법이 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세 번째 속성마력이 생긴 뒤부터.
앞으로 뭘 배우고, 어떻게 움직일지는 그것을 익힌 다음에 결정해도 늦지 않으리라.
‘보자. 이런 걸 부탁할 만한 사람이…….’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이세훈은 이내 적당한 사람을 떠올리며 휴대폰을 집어 들어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휴대폰 화면을 끄고 답장을 기다리려던 찰나.
[이노우에 에리카]
답장 대신 전화가 걸려왔다.
‘엄청 빠르네…….’
우연히 휴대폰을 보고 있었던 걸까. 신기해하면서도 이세훈이 곧장 전화를 받았다.
-부탁하고 싶은 게 뭐야?
“아. 다른 게 아니고 ‘정토석淨土石’을 좀 구해줄 수 있나 해서.”
마기에 침식된 대지를 깨끗하게 복원시키며 정순한 토속성마력이 담겨져 있는 광석.
구하기 힘든 물건은 아니지만 만마의 늪에 침식됐거나 각종 재배시설에 우선적으로 공급되는 물건이다 보니 질 좋은 물건을 구하기 위해서는 인맥이 필요했다.
-등급은 어느 정도로?
“최소 희귀 등급 이상으로. 보수는 중계수수료까지 해서 제대로…….”
-아니. 돈은 필요 없어.
이세훈의 이야기를 자른 에리카가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네가 만들어준 무구를 가지고 싶어.
“아. 그러고 보니 전에 만들어준다고 했었지.”
휘광검을 완성한 다음 토벌 실습을 준비하고 그 뒷수습까지 하느라 어영부영 밀리고 말았다.
‘순서로 따지면 염성하랑 루이제가 먼저긴 하지만…… 견적 빼는 것 정도야 진행해도 문제없겠지.’
저쪽에서 물건도 구해주겠다는데 어느 정도 성의는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결정을 내린 이세훈은 곧장 대답했다.
“그럼 지금 잠깐 만날까? 일단 견적부터…….”
-지금 갈게. 현관에서 봐.
뚝
대답하기도 전에 끊어진 전화. 덤덤한 말투에서 느껴지는 다급함에 이세훈이 당황하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어지간히도 가지고 싶었나 보구만.’
자신의 능력을 눈여겨보고 영입하려고 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르겠다.
침대에서 일어난 이세훈은 곧장 현관 아래로 내려왔고.
“안녕.”
“까악.”
먼저 도착한 에리카가 이세훈을 맞이했다.
하얀 니트 티에 갈색 롱스커트. 어깨에는 까마귀가 자연스럽게 앉아 있었는데 흐트러짐 하나 없는 그 모습에 이세훈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이 근처에 있었어?”
근처에서 산책하다가 전화를 받고 바로 왔던 게 아닐까. 의문이 담긴 이세훈의 물음에 에리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날아왔어.”
“깍.”
자신이 했다는 듯 한쪽 날개를 까딱이는 까마귀. 그 대답에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동용 주술도 있는 건가. 우르의 기숙사에서 여기까지 2분도 안 걸릴 정도면 속도가 꽤…… 음?’
에리카의 어깨에 앉은 까마귀를 살피던 이세훈이 무언가 발견하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
“혹시 지난번 까마귀 죽었어?”
처음에는 똑같이 생겨서 같은 녀석인가 했지만 살펴볼수록 분위기나 느낌이 조금 다르다.
뭐라 딱 잘라 설명하기 힘든 직감적인 부분이었기에 이세훈이 반신반의하며 물었고, 에리카가 말없이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수해에서 싸우다가 죽었어.”
“으음. 역시 평범한 까마귀로는 힘들었나 보네.”
검은연꽃 수해의 몬스터들은 그렇다 쳐도 신목의 뿌리를 상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버거웠던 모양이다.
‘새로운 까마귀도 보아하니 평범해 보이고…… 차라리 저쪽에 쓸 만한 무구를 만들어줘 볼까.’
회귀 전에 에리카가 사용했던 신화 등급의 무구의 능력에 까마귀를 엮어서 생각해 보던 이세훈은 금방 머릿속으로 한 도면을 떠올려냈다.
“잠깐만 이쪽으로.”
에리카를 데리고 근처의 공원으로 향한 이세훈은 구석진 곳의 벤치에 앉아 손을 내밀었다.
“까마귀 좀 잠시 보내줘”
“응.”
에리카가 옆으로 눈짓을 보내자 어깨에 앉아 있던 까마귀가 가볍게 활공하며 이세훈의 손 위에 앉았다.
“까악.”
“보자…….”
투안을 발동한 이세훈은 까마귀의 몸 안에 돌고 있는 마력의 흐름을 살펴보았다.
우웅!
전신에 얇게 흐르고 있는 보랏빛 마력과 전신에 뼈대처럼 박혀 있는 은빛의 마력. 그 구조를 살핀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간이술식을 박아놓고 버프를 거는 시간을 압축한 건가…… 꽤 터프하게 쓰는데.’
그림으로 비유하자면 스케치북을 든 채로 움직이는 대상을 매 순간마다 스케치해서 언제든지 선화로 넘어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수준.
조금만 조정이 느슨해져도 간이술식이 까마귀의 마력을 뒤틀어 버릴 수 있어 주의가 필요했는데 에리카는 그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는 것이다.
‘뼈대가 이미 만들어져 있으면 어려울 것도 없지.’
간이술식의 구조를 살핀 이세훈은 금방 그 구심점을 찾아내 손을 가져다 댔다.
‘흑령사.’
우웅─
손끝에서부터 까마귀의 몸 곳곳으로 이어지는 흑령사. 그 모습에 에리카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간이술식을 하나로 연결하려는 거야?”
“맞아. 정확히는 연동을 할 생각인데…… 손바닥 좀 펼쳐봐.”
“응.”
에리카의 오른쪽 손바닥을 살핀 이세훈은 곧장 손가락 끝에 연결되어 있는 흑령사를 곳곳에 연결시켰다.
“이쪽…… 아니, 좀 더 오른쪽인가…….”
손바닥에 흐르는 미세한 마력의 흐름에 맞춰 흑령사를 연결한 이세훈은 조심스레 손을 떼어냈다.
“이대로 마력 넣어봐.”
“이대로?”
이세훈이 연결시켜둔 흑령사를 살핀 에리카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구성이 나쁘진 않지만…… 효율이 그리 좋지 않아.’
기존에 자신이 사용하던 방식과 비교하자면 80% 정도밖에 안 되는 수준.
에리카가 이게 맞냐는 듯 바라보자 이세훈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일단 해봐.”
“……응.”
고개를 끄덕인 에리카가 흑령사에 마력을 불어넣자 까마귀의 몸이 점점 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우우웅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덮이는 은빛의 마력.
평소와 다르게 마력을 주입하다 보니 형태가 뭉개지거나 뭉친 부분들이 꽤 있었는데 그 모습을 살핀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지금 출력을 계속해서 유지해.”
오른손에 암속성마력 월영을 끌어올린 이세훈은 곧장 까마귀의 몸을 둘러싼 마력을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했다.
스스스
월영에 닿은 마력이 찰흙처럼 뭉개지기 시작했고, 그 변화에 이세훈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음. 너도 날개 펼쳐봐.”
“까악.”
시간이 흐를수록 까마귀를 둘러싼 은빛 마력이 이세훈의 손에 의해 가다듬어지고, 잠시 후 기존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까악!!”
전신에 칼날이 솟은 것처럼 날카롭게 뻗은 은빛의 갈기.
까마귀보다는 독수리를 연상케 하는 형태에 에리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게…… 의미가 있는 건가?’
저 형상을 만드는데 들어간 마력을 평소처럼 강화하는 데 사용했다면 지금보다 30%는 더 강화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의문이 담긴 눈빛에 이세훈이 씩 웃었다.
“이대로 하늘 위로 날아오르게 해봐.”
“응…….”
미심쩍어하면서도 에리카가 까마귀에게 마력을 불어넣으며 위로 날아오르라고 명령을 내렸고.
파앙─!
이세훈의 손아귀에 은빛의 섬광이 공기를 꿰뚫으며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
기존의 강화보다 압도적인 속도. 그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지만 에리카가 주목한 것은 세부적인 변화였다.
‘순간가속도는 최소한 두 배. 그리고 갈기가 맞물려서 관통 효과도 강해졌어…….’
거기에 기존의 공격이 단순히 부리로 꿰뚫기만 했다면 지금은 스쳐 지나가는 순간 갈기가 주변을 난도질하여 더욱 확실하게 피해를 입히게 됐다.
자신의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은 결과물에 에리카가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 거야?”
“까마귀가 원래 전투에 특화된 생물은 아니잖아. 신체 능력을 강화하고 주술을 더해준다고 한들 기존의 비효율적인 부분이 바뀌는 건 아니니까 그걸 개선한 거지”
에리카의 경우 까마귀 자체를 강화하는 것은 완벽하게 최적화를 끝내놨지만 ‘전투’에 특화된 형태에 대해서는 미숙했다.
회귀 전에 에리카의 주력기술 중 하나가 ‘귀오무장鬼烏武裝’이라 불리는 강화주술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재능이 없다기보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무관심했던 것이리라.
“이번에 보조 겸 연습용으로 쓸 수 있는 무구를 만들어줄 테니까 그걸로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지 한 번 연구해 봐.”
“……응. 알겠어.”
어느 정도 흥미가 생긴 에리카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다 한 가지를 떠올리며 물었다.
“언제쯤 완성돼?”
“글쎄다. 지금 앞에 밀린 녀석들이 둘이 있긴 한데…….”
염성하는 재료가 준비됐으니 오늘부터 틈틈이 만들면 되고, 루이제는 아직 재료가 없기도 하고 언령을 사용하는 데 익숙해져야 하니 좀 더 놔두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 여유가 있으니까 이번 주 안에…….”
우웅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 그에 이세훈이 휴대폰을 꺼내자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염성하]
‘이놈은 갑자기 왜…….’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염성하가 갑자기 전화를 거니깐 사고라도 쳤나 싶어서 살짝 불안해진다.
잠시 휴대폰을 바라보던 이세훈은 이내 한숨을 내쉬며 에리카에게 이야기했다.
“잠깐 전화 좀 받을게.”
“응.”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은 순간. 수화기 너머로 무뚝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은 다 만들었나?
“아니. 아직.”
-쯧.
“…….”
딱 두 마디를 나눴을 뿐인데 벌써 뭔가 욱하고 올라온다. 심호흡을 하며 속을 가라앉힌 이세훈이 다시금 물었다.
“왜. 무슨 일인데?”
-급히 필요할 일이 생겼다. 지금부터 만든다면 얼마나 걸릴 것 같나.
“음…… 넉넉잡아서 닷새 정도?”
어떤 식으로 만들지는 다 정해놨으니 조금 빠듯하게 움직이면 이번 주 안에는 충분히 가능했다. 이세훈의 대답에 잠시 침묵이 감돌더니 염성하가 담담히 이야기했다.
-나흘 안에 완성해라.
뚝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전화를 끊어버리는 염성하.
누군가는 뭐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이 다 있냐고 화를 낼 만한 수준이었지만, 이세훈은 오히려 다른 부분이 더 신경 쓰였다.
‘이놈…… 이거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염성하가 아무리 싸가지 없고 자기밖에 모르는 녀석이긴 하지만 맨손으로 가거나 아무 창이나 가져다 쓰면 썼지 빨리 만들라고 아쉬운 소리를 할 녀석은 아니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상황에 이세훈이 다시 전화를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옆에서 듣고 있던 에리카가 입을 열었다.
“내일 행사 때문인 것 같아.”
“행사?”
“염화문에서 새로운 프로젝트의 설명회랑 염성하의 칠륜승단식이 있을 거라고 안내가 왔었거든.”
“……슬슬 뭔가 시작하려나 보네.”
염성하가 급히 창이 필요하다고 한 것도 그것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상황을 파악한 이세훈이 에리카를 바라보았다.
“알려줘서 고마워.”
“이 정도는 별거 아니야.”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에리카의 모습에 이세훈이 슬쩍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데 무구는 좀 기다려야겠다.”
“……?”
“염성하 그 녀석이 선약이었는데 나흘 안에 만들어달라고 해서. 일정을 맞추려면 좀 빠듯할 것 같아.”
“…….”
점점 무표정하게 변하는 에리카의 얼굴. 그 심상치 않은 기세에 이세훈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다음에는 꼭 만들어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한껏 기대하게 만들어놓고 이러는 게 너무하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먼저 예약을 걸어둔 게 염성하였는데.
“그럼 다음에 보자!”
인사를 남긴 이세훈이 재빠르게 기숙사실로 돌아갔고, 홀로 남은 에리카가 벤치에 앉아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았다.
“까악!”
후웅!
그리고 그사이 있는 힘껏 비행을 마치고 내려온 까마귀가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주인을 바라보았고.
“나를 싫어하는 건가…….”
“…….”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모습에 조용히 날개를 접고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