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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91화 (91/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91화

“오…….”

황금색 반지, 승천제의 반지를 오른손 약지에 끼운 이세훈이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반지에서 느껴지는 짙은 존재감. 이전에 은월산에서 얻었던 위르겐의 검지 뼈인 불명자의 지골과도 상당히 유사했다.

‘권능이라…… 진짜 생각지도 못한 물건을 주네.’

누군가는 그래 봐야 영웅 등급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권능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기에 하는 말이다.

승천제가 어떻게 공간을 다루는지, 그리고 그 힘이 어떤 식으로 작용되는지 이 반지 하나만 있다면 얼마든지 연구가 가능하다.

한마디로 ‘완등’이라는 영역에 다다를 수 있는 비급이나 다름없는 것이 바로 이 권능인 것이다.

‘뭐, 그래 봐야 가능성만 있다는 거지만.’

똑같은 것을 보고 배우더라도 재능에 따라 성취가 다르듯 완등자의 권능도 다르지 않았다.

당장 순례자만 해도 자신이 만들어낸 신성마법을 순례교의 신자들에게 아낌없이 가르쳤지만 결국 자신이 죽는 그 날까지 새로운 완등자를 키워내지 못했다.

‘예전에도 느꼈지만…… 완등자들은 도대체 뭔지 모르겠어.’

영웅의 탑을 끝까지 오른 초월자들.

하지만 그 조건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완등자들 본인조차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그럼 나는 어떨까…….’

이 힘을 분석해서, 아니면 스스로를 갈고 닦아서 완등이라는 경지까지 올라설 수 있을까.

회귀 전에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던 그 가능성에 이세훈이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이세훈 생도.”

가만히 지켜보던 루트비히가 물었다.

“이전에 공간계열 능력은 다뤄본 적 있는가?”

“아…… 아뇨. 직접 써본 적은 없습니다.”

공간계열 능력이 담긴 무구를 만들거나 간단히 응용해 본 적은 있었지만 그 힘을 직접적으로 사용해 본 적은 없었다.

계산적인 부분보다는 재능을 요구로 하는 능력이다 보니 타고난 게 없었던 이세훈으로서는 쉽사리 다룰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흐음. 그러면 당장 사용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겠군.”

잠시 고민하던 루트비히가 휴대폰 화면을 넘기듯 두 손가락으로 허공을 그었다.

카각!

반지의 안쪽에 새겨진 자그마한 글귀. 그 모습에 이세훈이 자신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

‘이 미친 영감탱이가…….’

글귀를 새겼던 압력을 반대로 작용시켰다면 그대로 손가락이 난도질당하듯이 잘려 나갔을 것이다.

고의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방식에 이세훈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자 루트비히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아아. 그러고 보니 자네는 보는 눈이 좋았었지. 미안하네. 익숙한 대로 한다는 것이 본의 아니게 위협을 가해 버렸군.”

“아닙니다. 그럴 의도가 있으셨던 것도 아니고…… 그보다 뭘 새겨 넣으신 겁니까?”

“자네가 쓸 만한 공간마법을 몇 가지 새겨뒀네. 확인해 보게나.”

루트비히의 이야기에 이세훈이 정보창을 다시 살펴보았다.

*스킬 ‘공간압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스킬 ‘공간도약’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스킬 ‘공간왜곡’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승천제의 반지에 새롭게 생겨난 세 가지의 공간마법.

공간계열의 능력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종류였는데 전투는 물론 제련에도 사용하기 유용한 것들이었다.

“우선은 그것들로 공간을 다루는 데 익숙해지는 것부터 시작하게. 자네라면 금방 감을 잡을 수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이렇게 친절하게 알려준다면 못 할 것도 없다.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은 이세훈의 모습에 루트비히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럼 기대하고 있겠네.”

이세훈이 떠나간 뒤. 하얀 구멍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적당한 방어구나 던져 주겠거니 했더니 권능이라니…… 도대체 무슨 꿍꿍이지?]

“꿍꿍이라고 할 게 뭐가 있겠소. 저 아이에게는 저 힘이 더 유용할 거라고 생각해서 넘겨준 것뿐이오.”

담담한 루트비히의 대답에 목소리가 으르렁거리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래서 문제라는 거다. 놈에게 권능을 분석 당하면 어쩔 셈이냐.]

완등자의 힘이 초월적이긴 하지만 세계에 흩어진 불명자 위르겐 크루거의 신체처럼 그것을 이용하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런데 그 권능을 담아서 건네주다니. 자신의 약점을 노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썩 내키지 않았다.

[다른 머저리들은 몰라도 저 애늙은이는 위험해. 정말로 네 권능을 분석하고 써먹을지도 모른다.]

“그새 평가가 좋아졌구려.”

[……내가 지금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것 같나?]

쿠구궁─

희미하게 떨리는 학원장실.

어지간한 고위 영웅조차 벌레처럼 짓눌러 버릴 위압감이 하얀 구멍 안쪽에서 흘러나왔으나 루트비히는 미소를 지은 채 담담히 이야기했다.

“진정하시게. 내가 이전부터 말하지 않았소. 우리의 힘을 연구당한다면 두려워할 게 아니라 오히려 즐겨야만 한다고.”

[완등자를 건드렸다고 『탈각』의 연구시설 절반이나 부숴 버린 놈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건 시간의 문제였지. 그리고…….”

루트비히의 시선이 책상에 놓인 기사, 그 첫 장에 제이크와 함께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는 이세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저 아이에게는 힘이 있소.”

[힘?]

“완등자와 십악. 영웅과 마인. 인류와 만마전.”

세계를 양분하는 두 세력. 그 모두의 관심사가 이세훈을 향하기 시작했음을 확인한 루트비히가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크게 요동치게 될 것이오. 그러니 조금은 힘을 보태줘야겠지.”

더욱 크게 요동치기 위해, 그리고 더욱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루트비히의 이야기에 목소리가 잠시 침묵하다가 담담히 이야기했다.

[음흉한 놈 같으니…….]

철컥─

하얀 구멍이 황금빛 열쇠 구멍으로 닫히며 사라졌고, 루트비히가 몸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움직일 때가 되었지…….”

다만 그 흐름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으리라.

***

다음 날.

제련학부의 개인용 제련실에 들어온 이세훈은 화로를 달궈놓고 의자에 걸터앉은 채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공간압축.”

팡─

시동어와 동시에 손바닥 위쪽에서 터져 나오는 박수 소리.

두 공간이 양면에서 압축되면서 공기가 터져 나온 것이었는데 그 모습을 살핀 이세훈이 차분히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압력은 나쁘지 않네. 제대로 쓰면 손가락 하나 정도는 으스러뜨릴 수 있을 것 같아.’

위력을 확인한 이세훈은 이어서 발화석 하나를 오른손으로 쥔 다음에 가볍게 던졌다.

“공간도약.”

후웅

화로로 날아가던 발화석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잠시 후 뚜껑이 닫힌 화로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화르륵!

발화석에 의해 거세게 타오르는 화로. 그 모습에 이세훈이 방금 보였던 발동과정을 살폈다.

‘터널을 만드는 방식이라…… 집중력이나 마력 소모가 크니까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되겠어.’

백광비수 같은 투척용 무기로는 꽤 쓸 수 있겠지만 몸 전체를 이동시키는 것은 지금으로써는 불가능하리라.

이쪽은 신중하게 사용하기로 하며 종이 한 장을 집어 든 이세훈은 마지막 공간마법을 사용했다.

“공간왜곡.”

우웅

손바닥 위쪽에서 나타나는 희미한 비틀림. 그 순간 종이의 절반이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남은 절반의 중심 위쪽으로 솟아올랐다.

T자 모양이 된 종이. 아주 자연스럽게 붙어 있는 종이의 상태에 이세훈이 혀를 내둘렀다.

‘이건 다시 봐도 무시무시하네.’

일부분을 다른 곳으로 날려 버릴 뿐만 아니라 그대로 다른 곳에 연결시켜 버린다.

종이니까 그냥 붙는 걸로 끝났지 만약 손가락이었다면 그대로 잘려 버렸으리라.

‘뭐, 그렇게 쉽게 쓰지는 못하겠지만…….’

공간도약도 그렇지만 효과가 강하면 강할수록 물체의 크기, 그리고 마력의 유무에 따라서 난이도가 차원이 달랐다.

특히 공간왜곡은 조금만 까다로워도 실패해 버렸는데 이걸로 사람의 신체를 날려 보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리라.

‘그래도 이 왜곡이라는 현상 자체가 꽤 좋단 말이지.’

이걸로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이세훈이 승천제의 반지를 내려다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이세훈 생도?”

제련실로 들어온 류은하가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 오셨어요?”

“예. 그런데…….”

이세훈의 손, 정확히는 오른손 약지에 끼워진 승천제의 반지를 빤히 쳐다본 류은하가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반지는 어디서 얻으신 겁니까?”

“아아. 학원장님이 이번 사건에 대한 보상으로 주신 물건입니다.”

“보상…….”

작게 중얼거리며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승천제의 반지를 노려보는 류은하. 그 예상치 못한 반응에 이세훈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왜 이래?’

최근에 루트비히랑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걸까.

이세훈이 의아하게 바라보자 그 시선을 알아차린 류은하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표정을 가다듬었다.

“좋은 보상을 주셨군요. 이번에 이세훈 생도의 활약상이 마음에 드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과분한…….”

“과분하지 않습니다.”

이세훈의 말을 단칼에 잘라낸 류은하가 단호하게 덧붙였다.

“이세훈 생도는 ‘합당한’ 보상을 받으신 겁니다. 이번 일로 학원장님께 부채감이나 미안함을 느낄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와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는 류은하. 머릿속에 때려 박듯이 이야기하는 그 열정적인 모습에 이세훈이 살짝 당황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알겠습니다.”

“……흠흠. 죄송합니다. 이전에도 그렇고 이세훈 생도가 자신의 가치를 너무 낮잡아보시는 것 같아서 말씀드린 겁니다.”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를 다잡은 류은하가 뒤로 물러서며 제련실을 둘러보았다.

“그래서 오늘 제련은 어떻게 진행하시는 겁니까? 문자로는 제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아. 지금부터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정신을 차린 이세훈은 류은하를 작업대로 데리고 온 다음 미리 올려둔 재료를 보여주었다.

검붉은색 광석과 한쪽 면이 붉은색으로 물든 망치. 그리고 양산형 무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는데 그중 광석을 살핀 류은하가 두 눈을 빛냈다.

“이전에 학원장님께 받은 용폐석이군요.”

“맞습니다.”

[용폐석龍肺石]

[등급 : 영웅] [품질 : 상]

화속성 마력을 축적하는 광석.

일정한 경로로 내부의 마력을 자극할 경우 보관된 화속성 마력을 단숨에 방출할 수 있다.

*화속성 마력을 저장, 방출할 수 있습니다.

은월산 사건 때 흑염의 망치를 개조하기 위해 루트비히에게 받았던 재료.

그동안 기회가 없어 미루다가 오늘에야 꺼내게 된 것이다.

“이 용폐석을 사용해서 망치를 개조할 생각입니다.”

“개조…… 그럼 저 양산형 무구는 어디에 사용하시는 겁니까?”

“아. 저건 학과장님께 드릴 물건들입니다.”

“……?”

무구를 만드는데 왜 자신에게 양산형 무구를 준단 말인가? 의아해하던 류은하는 문득 용폐석의 효과를 떠올리며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혹시…… 제 불꽃을 재료로 사용하시려는 겁니까?”

“정확하십니다.”

류은하의 고유스킬 ‘용혼광로’가 만들어내는 불꽃 ‘광염鑛炎’.

이세훈은 그것을 용폐석에 담아 흑염의 망치를 개조하는 데 사용하려 했다.

“으음…….”

그 이야기에 류은하가 살짝 복잡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죄송하지만 그건…….”

“용폐석이 녹을 수도 있어서 어려울 것 같다고요?”

“……알고 계셨습니까?”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류은하의 모습에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미리 자료를 찾아봤었거든요.”

류은하가 웨폰이터라 불리는 것은 무구를 먹어서도 있지만 그에 대한 ‘상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도 있었다.

무구, 더 나아가 광석을 파괴하는데 특화된 광염.

그렇기에 류은하를 상대한 적들은 운 좋게 목숨을 건지더라도 모든 무구를 잃고 빈털터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회귀 전에 저거 한번 써먹어 보겠다고 돈을 어지간히도 날려 먹었었지.’

연구하는 데만 1년이 걸렸고 모아둔 재산의 80%를 날려 먹었다. 방법을 찾았으니 망정이지 실패로 끝났다면 화병으로 그때 회귀했을지도 모르리라.

이세훈이 옛 기억을 떠올리는 사이 류은하가 살짝 놀란 눈으로 물었다.

“그럼 광염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찾으셨다는 겁니까?”

“확신은 아니고 아직은 추측 정도입니다. 오늘 살펴보고 제 예상이 맞다 싶으면 용폐석에 써보는 거죠.”

자신만만한 이세훈의 이야기에 류은하가 잠시 고민했다.

수많은 장인의 시간과 돈을 날려먹은 자신의 불꽃. 이것만큼은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문득 오른손에 끼워진 황금색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학원장님의 힘이 느껴지는 반지…… 저런 물건을 절대 그냥 주셨을 리가 없다.’

이전에 영입할 생각이 없다고 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때 이야기. 이번 활약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을지도 모르며, 실제로 눈앞의 반지는 그 증거이기도 했다.

이대로라면 루트비히가 주는 보상에 중독되어 바벨에 영원히 남겠다고 할지도 모르는 상황.

‘그건…… 안 돼.’

모처럼 찾아낸 유망주를, 그리고 자신의 이해자를 그렇게 허무하게 빼앗길 수는 없다.

각오를 다진 류은하는 주먹을 꽉 움켜쥐며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 먹으면 될까요?”

당장이라도 양산형 무구를 모조리 먹어 치울 듯한 류은하의 모습에 이세훈이 슬쩍 사이를 가로막았다.

“아뇨. 이것도 몇 가지 실험을 해볼 게 있어서요.”

“실험……?”

의아해하는 류은하의 모습에 이세훈이 슬쩍 웃었다.

“학과장님도 좋아하실 테니까 즐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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