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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90화 (90/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90화

바벨의 구 본관이자 학원장실로 쓰이는 마두르크 저택.

그 내부에 마련된 연회실에서 두 명의 생도가 저택의 주인, 루트비히 학원장의 앞에 나란히 서 있었다.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동료를 구하여 영웅으로서 모범을 보인바. 위 생도에게 감사장을 수여하겠습니다.”

상장문을 모두 읊은 루트비히가 앞에 선 두 사람의 이름을 각각 호명했다.

“아칼쿠프의 검술학부 1학년 제이크 마이어스.”

“예!”

“보르시파의 제련학부 1학년 이세훈.”

“예.”

순서대로 두 사람에게 상장이 건네졌고 이어서 세 사람이 나란히 선 채 함께 사진을 찍는다.

그렇게 간단하게 행사가 끝난 뒤. 두 사람을 학원장실로 따로 불러낸 루트비히가 부드럽게 웃었다.

“주말인데 번거롭게 만들어서 미안하네. 오늘이 아니면 좀처럼 시간이 안 나서 말일세.”

“아, 아닙니다! 학원장님께서 직접 시간을 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죠!”

잔뜩 긴장한 채로 대답하는 제이크의 모습에 루트비히가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게 생각해 준다니 고맙군. 몸은 좀 어떤가?”

“병동의 교수님들 덕분에 멀쩡해졌습니다!”

“다행이로군. 영웅으로서의 마음가짐도 좋지만 몸을 너무 혹사하지는 말게나. 자네와 같은 생도는 인류에게 있어 보물이나 마찬가지니.”

“학원장님…….”

빈말이 아닌 진심이 담긴 이야기. 그 칭찬에 제이크가 두 눈을 반짝이며 루트비히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인류 최초의 완등자. 수많은 이에게 존경받는 영웅에게 칭찬을 받았으니 어지간한 생도들이라면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지겨워 죽겠네…….’

볼 장 다 본 이세훈을 제외한다면.

‘사진만 대충 찍고 끝낼 것이지 뭐가 이렇게 길어?’

원래도 이런 종류의 행사를 썩 좋아하지 않았던 데다 근래 조사다 뭐다 끌려다녔다 보니 더욱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이런. 이 이야기를 할 게 아니었는데 조금 새어버렸군.”

그런 이세훈의 낌새를 알아차린 루트비히가 슬쩍 웃으며 재차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자네들의 활약으로 수많은 생도를 살릴 수 있었던 만큼 학원장으로서 답례를 하고 싶네. 필요한 게 있는가?”

입학식 때와 같은 증정식.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가자 이세훈이 언제 짜증 냈냐는 듯이 두 눈을 빛냈다.

‘이전에 남긴 것까지 쓰면 그럭저럭 괜찮은 걸 받을 수 있겠지?’

루트비히의 씀씀이가 크기를 기도하며 이세훈이 막 입을 열려던 찰나.

“학원장님.”

제이크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제 몫은 세훈이한테 전부 넘겨주셨으면 합니다.”

“뭐?”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이세훈이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루트비히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괜찮겠나? 신목도 전부 넘겼다고 들었네만.”

“예. 지금 당장은 필요한 게 없기도 하고…… 세훈이한테 이전에 약속했었거든요.”

이세훈을 힐끔 본 제이크가 씩 웃어 보였다.

“보수는 과하다 싶을 만큼 주겠다고요.”

이걸로 부족하다고 말하지는 않겠지, 그렇게 바라보는 제이크의 시선에 이세훈이 피식 웃었다.

‘요놈 봐라.’

신목으로 끝난 줄 알았더니 설마 이렇게 나올 줄이야. 예상치 못한 추가 보상에 이세훈이 기특하게 바라보았고, 루트비히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리하도록 하지. 검술학부에서의 활약도 기대하고 있겠네.”

“감사합니다!”

“그럼 조심히 돌아가게나.”

고개를 꾸벅인 제이크가 학원장실 밖으로 나갔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루트비히가 담담히 이야기했다.

“이전보다 잠재력이 깊어졌군. 자네가 만들어줬다던 그 검이 딱 맞았던 모양이야.”

“그렇게까지 대단한 물건은 아닙니다.”

“허허. 대단하지 않다니. 자네가 그리 말하면 앞서 곤욕을 치른 장인들은 얼굴도 못 들고 다닐 걸세.”

휘광검에 대한 이야기가 외부에 알려지면서 영웅들, 특히 제이크의 검을 만들겠다고 도전했던 장인들에게서 격렬한 반응이 터져 나왔었다.

‘바벨은 지금 영웅을 만들기 위해 거짓 선동을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를 우습게 봐도 정도가 있지!’

‘무구의 가치는 시간이 알려주는 겁니다. 지금 누가 더 뛰어난지 말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도 없지요.’

입학한 지 반년도 안 된, 그것도 집안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1학년 생도가 영웅 등급의 무구를 만든 것도 놀라운데 그게 자신들이 실패한 검이라니?

그렇기에 장인들은 과장된 이야기라고 주장했고,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도 그쪽을 더 신뢰했다.

이야기만 보면 너무 허무맹랑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나 같아도 직접 보기 전에는 못 믿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실제로 그런 물건이 만들어졌는데.

“실력보다는 발상의 차이니까요. 나중에는 다 이해할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것도 그렇지. 너무 걱정하지는 말게. 류 학과장이 직접 만나서 정리하고 오겠다 했으니.”

“……그렇군요.”

순간 걱정을 안 해도 되나 싶었지만 이세훈은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었다.

때때로 과격하게 움직여서 그렇기 결과만 놓고 보면 류은하도 일처리를 깔끔하게 잘하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똑똑한 광견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지.’

저돌적이긴 하지만 상황은 제대로 파악하고 저지른다. 그러니 류은하가 나섰다면 저 잡음도 금방 정리되리라.

“그럼 이제 보상에 대한 이야기네만…… 그 전에 자네에게 한 가지 보여줄 게 있네.”

루트비히가 허공에 손을 가볍게 내리긋자 황금빛 열쇠 구멍이 나타나 열리며 한 물건이 아래로 떨어졌다.

주먹만 한 크기의 검붉은색 열매. 묘한 아지랑이가 흐르는 그 물건에 이세훈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건…….”

“한번 보게나.”

루트비히에게 열매를 건네받은 이세훈은 곧장 정보창을 살펴보았다.

[신목의 씨앗]

[등급 : 영웅] [품질 : 최하]

숲 전역을 집어삼키려했던 거목의 씨앗.

완전히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급하게 만들어낸 씨앗이기에 모든 힘이 불완전하게 뒤섞여 있다.

손에 쥐고 있을 경우 공간능력에 대한 저항력을 가질 수 있으며 흡수한 양분에 따라 성질이 변화된다.

*공간능력에 대한 저항력을 부여합니다.

*흡수한 양분에 따라 성질이 변환됩니다.

“…….”

손안의 열매, 신목의 씨앗을 본 이세훈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게 있었다고?’

회귀 전에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재료.

그때는 이미 성장을 다 끝낸 상태에 토벌당해서인지, 아니면 누군가 중간에서 빼돌려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정보만 읽어보면 그야말로 엄청난 물건이었다.

‘잘만하면 신목을 다시, 그것도 원하는 형태로 키울 수 있는 거야.’

물론 그게 쉽지는 않겠지만 충분히 도전해 볼 가치는 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이세훈은 문득 루트비히가 어째서 자신에게 이걸 보여줬는지 생각했다.

“이름을 보니 이번에 나온 변종 몬스터의 부산물이군요.”

“맞네. 수거한 잔해를 분석하던 도중 거대한 연꽃의 안쪽에서 발견된 물건이지.”

이세훈을 바라본 루트비히가 진중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알다시피 몬스터의 부산물 중 ‘부활’의 가능성이 있는 물건들은 관리기준이 엄격하다네. 게다가 이 안에는 인형사의 큐브, 생체무구의 잔재도 남아 있는 상태이고.”

“그렇다는 건…….”

“영웅특별법에 의거해 자네에게는 다른 보상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네.”

예상했던 루트비히의 이야기에 이세훈은 뒷골이 뻐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재료를 빼앗긴다니……!’

혼자서 잡았다면, 하다못해 전투 직후에 힘이라도 남아 있었으면 몰래 빼돌렸을 텐데.

그렇게 이세훈이 억울함에 속으로 욕지거리를 마구 퍼부으려던 순간.

“보통이라면 말일세.”

루트비히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예?”

“모처럼 고생해서 얻은 재료인데 빼앗기는 건 조금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무엇보다…… 자네가 이걸 어떻게 키워낼지도 궁금하더군.”

예상과 다른 대답에 이세훈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저한테 이 씨앗을 주신다는 겁니까?”

“그렇지. 다만 앞에 설명했던 대로 위험한 물건인 만큼 지켜야 할 조건이 있네.”

루트비히가 내건 조건은 두 가지.

첫 번째는 공개적으로는 씨앗의 소유권을 자신이 보유한 걸로 처리한 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바벨에 지정된 장소에서 키울 것.

두 번째는 향후 씨앗을 키우기 시작하면 정기적으로 성장상태에 대해서 보고서를 작성하여 자신에게도 보여줄 것.

‘귀찮은 일이 없도록 몰래 연구하자 이거구만.’

매번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번거롭긴 하지만 장소와 재료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외부에서 키우는 것도 24시간 지켜볼 수 없으니 위험이 크고…… 무엇보다도 루트비히와 접점이 늘어나는 게 좋아.’

루트비히의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곧 바벨에서 받는 지원과 혜택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잃을 게 없다는 것을 확인한 이세훈이 물었다.

“키우는 건 언제부터 하면 될까요?”

“어떤 식으로 키울지 방향이 정해지면 말해주게. 그러면 거기에 딱 맞는 장소를 선정해서 골라주지.”

신목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새로운 고민거리에 이세훈은 찬찬히 생각해 보기로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좋아. 그러면 보상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야겠군.”

신목의 씨앗을 다시 하얀 구멍 안에 집어넣은 루트비히가 기대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자네에게는 전에 남겨둔 몫도 있지. 필요한 게 있다면 뭐든 말해보게나.”

은월산 이후 다시 찾아온 루트비히의 보상. 그 물음에 이세훈은 미리 정해뒀던 대답을 꺼냈다.

“만일의 사태에 목숨을 지킬 수 있는 물건이 필요합니다.”

“만일의 사태라면 어느 정도를 말하는가?”

“제가 받을 수 있는 모든 보상을 쓸 만큼입니다.”

이세훈의 대답에 루트비히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보통 이런 일을 겪으면 조심할 생각을 하던데…… 자네는 오히려 돌아다녀도 괜찮게끔 대비를 하는군.”

“그게 적의 노림수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저쪽에서 절 피하게끔 만들어야죠.”

질질 끌려다니는 경험은 회귀 전만으로도 족하다.

이세훈의 각오가 담긴 이야기에 루트비히가 살짝 놀란 눈으로 바라보다 이내 미소를 지었다.

“좋은 마음가짐이군.”

후웅

하얀 구멍이 이세훈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작은 반지 하나가 툭 떨어졌다.

“앗.”

반사적으로 그것을 낚아챈 이세훈은 손에 쥐어진 반지를 살펴보았다.

루트비히가 종종 허공에 만들어내던 황금빛 열쇠 구멍과 비슷한 무늬가 새겨진 반지.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반지의 정보창을 살펴보았고.

[승천제의 반지]

[등급 : 영웅] [품질 : 최상]

최초로 완등에 성공한 절대자, ‘루트비히 슈베르트’가 직접 만든 반지.

공간을 다루는 승천제의 권능이 깃들어 있으며 마력을 소모하는 것으로 그 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마력을 소모하여 공간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영웅 등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한 설명. 하지만 그 안에 적힌 내용을 읽은 이세훈은 두 눈을 부릅떴다.

‘공간계열의 무구……?’

그것도 특정한 스킬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마력을 소모하여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구조.

편의성은 물론 범용성까지 지닌 그 엄청난 무구에 이세훈이 놀라고 있자 루트비히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떤가?”

말은 질문이지만 이미 확신이 담긴 물음. 거기에 이세훈이 고개를 들어 루트비히를 바라보았다.

“학원장님이야말로 인류의 보물이십니다.”

이 시대의 참된 영웅이 눈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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