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89화
검은연꽃 수해에서 귀환한 뒤.
모든 생도는 아스쿠스 병동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고 큰 부상이 없는 이세훈도 간단하게나마 검사를 받았다.
“이 정도라면 굳이 입원 치료는 필요 없겠군. 오늘 바로 퇴원해도 좋네.”
“감사합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병동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이세훈은 전치 2주나 받은 제이크를 놀리며 밖으로 나왔지만, 그것이 착각임을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연꽃나무에서 인형사의 꼭두각시 파편을 발견하여 이상을 알아차렸다. 그 이외에 또 다른 점은 없었나?”
“그 신종 몬스터가 나타나기 전에 따로 전조증상은 없었죠? 수해 내부가 평소와 다른 점이 보였다던가…….”
“이세훈 생도!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 한 말씀만…… 으악!”
이번 사태에 조사를 나선 바벨과 영웅협회 측의 조사관. 그리고 허가받지 않고 취재하러 들어온 기자들까지.
오랜만에 터진 대사건에 바벨이나 바깥이나 그야말로 난리가 났고 자연스레 그 관심이 목격자인 두 사람, 그중 퇴원한 이세훈에게 몰린 것이다.
‘제이크 이 새끼 왜 웃나 했더니…….’
당장에라도 병문안을 가서 망치로 때려주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사태가 사태인 만큼 사방에서 이세훈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계속되는 마인들의 흉악범죄. 이대로 괜찮은가!]
[검은연꽃 수해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몬스터. 서식 기간이 최소 15년 이상으로 추측되어…….]
[UD 그룹 총수 위르겐 크루거, ‘영웅협회는 위험지역을 완전히 관리할 능력이 없다’]
그냥 마인도 아니고 십악의 인형사가 위험지역에 숨겨져 있던 몬스터를 조종하여 바벨의 생도들을 습격했다.
하나만 터졌어도 엄청난 사건인데 두 개가 동시에 일어났으니 그 여파는 엄청났고, 이때다 싶어 여러 집단이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서로를 헐뜯었다.
그리고 바벨 역시 그 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함께 끌려들어 갔다.
[인공섬에서 벗어난 바벨, 그 실체가 세상에 드러나다.]
[방만한 바벨의 커리큘럼. 지금이라도 개편해야.]
[키론 사관학교의 에반 플린 학원장 ‘이번 사건은 시작에 불과하다.’]
바벨의 능력을 깎아내리는 온갖 자극적인 기사들.
상황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그 비상사태에 죽은 사람 한 명도 없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지만, 사전에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은 피할 수 없다.
그렇기에 바벨은 굳이 논란을 해명하기보다는 깔끔하게 인정한 다음 다르게 대응했다.
[마이어스 가문의 차남. B+급 변종 몬스터를 쓰러뜨리고 동급생을 구하다!]
[수많은 장인이 포기한 비운의 천재. 그에게 검을 쥐여준 것은 누구?]
수해에 나타난 B+급 몬스터, 신목을 쓰러뜨린 제이크. 그리고 그런 제이크에게 검을 만들어주고 보조한 이세훈.
바벨은 두 사람의 활약상을 대중들에게 내세우며 시선을 돌렸고, 자연스레 그 관심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위험지역을 총괄해서 관리하는 영웅협회와 달리 바벨은 어디까지나 교육기관. 이번 대처에 아쉬움은 있어도 잘못이라고 할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네 덕분에 어떻게 잘 수습됐군. 그동안 수고 많았다.”
어느 정도 사태가 정리된 뒤. 카사르에게 유명 일식집으로 초대받은 이세훈은 그 칭찬에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고생은 교수님이 하셨죠. 이번에 기자회견이니 협회 조사니 엄청 바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하지. 예나 지금이나 싸우는 것보다 그 뒤에 쓸데없는 말 하고 다니는 게 더 피곤하단 말이야.”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카사르. 그래도 얼추 사태가 마무리되어 후련해 보이기도 했는데 그 모습에 이세훈이 분위기를 살피며 물었다.
“교수님.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뭐냐?”
“그 안에서 도대체 뭐 하시는 겁니까……?”
카운터석에 앉아 있던 이세훈의 물음에 맞은편에서 생선을 손질하던 카사르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뭐 하긴. 초밥 만들 준비하고 있지.”
보고도 모르냐는 듯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카사르.
덩치에 안 맞게 새하얀 요리사복까지 정갈하게 차려입은 그 모습에 이세훈은 메뉴판에 적혀 있는 가게의 이름을 다시금 읽어보았다.
[연군煙軍]
‘가게 주인인 줄 알았더니…… 아예 주방장이었을 줄이야.’
여러모로 충격적인 광경에 이세훈이 떨떠름하게 보고 있을 때. 생선 손질을 마무리한 카사르가 손을 씻으며 대답했다.
“S급에 지도교수까지 달아버리니 교수고 생도고 내 눈치만 살피기 바쁘더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짜증 나서 취미생활 겸 편히 이야기하려고 만든 게 여기다.”
“오…… 그래서 많이 편해지셨습니까?”
“아니. 먹고 나면 죄다 체해서 소화제를 사 간다던데. 업무 이야기를 꺼내는 게 영 부담인 모양이야.”
“…….”
그러면 여기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런 이세훈의 시선을 알아차린 듯 카사르가 씩 웃었다.
“어쨌든 내 마음은 전보다 편해졌으니 잘 된 셈이지.”
양쪽 모두 불편한 상황에서 한쪽만 불편해졌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에 이세훈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어?”
카사르가 꺼내든 식칼에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건…….’
아칼쿠프의 철물점에서 은퇴한 제련학부의 교수, 헬레나의 특제 숫돌로 갈았던 식칼.
자신의 손길이 아직 남아 있는 그 모습에 이세훈이 놀란 표정을 짓자 카사르가 슬쩍 바라보았다.
“이 식칼. 이전에 네가 갈았다면서?”
“아, 예. 알고 계셨습니까?”
“누님한테 들었지. 그때는 신입생이 갈았다길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했었는데 말이야…….”
이번에 해낸 일을 생각한다면 그 전조였을지도 모르겠다. 생선 살을 단숨에 잘라낸 카사르는 능숙하게 초밥을 만들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일단 토벌 실습 점수는 너랑 제이크 모두 만점으로 결정됐다. 변종까지 잡았으니 이 정도 격차는 나야겠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번 주말쯤에 감사장 수여식이 있을 텐데 학원장님이 따로 보상을 챙겨주신다고 하니 뭘 받을지 생각해두고.”
다른 곳이었으면 감사장 하나로 끝냈을 수도 있을 텐데 굳이 또 보상을 챙겨준다니. 바벨다운 씀씀이에 이세훈이 흐뭇해하고 있을 때.
“그리고 변종 몬스터, 신목의 조사도 곧 마무리될 거다.”
가장 중요한 이야기에 이세훈이 곧장 자리를 고쳐 앉았다.
“별다른 이상은 없다고 하니 전투 기여도에 따라서 배분될 예정인데…… 제이크가 너한테 지분을 다 넘긴다고 하더군.”
“예. 앞에 약속한 게 있었거든요.”
휘광검을 만들어준 보상. 제이크는 이번에 얻은 신목의 부산물로 그 대가를 지불한 것이다.
“그러면 네가 80%. 그리고 내가 20%로 책정될 거다.”
“…….”
과거 수많은 기업과 영웅들이 수백 갈래로 쪼개서 나눠 가졌던 신목. 그걸 자신이 80%나 차지한다는 사실에 이세훈은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니, 아직은 모른다. 진정하자.’
회귀 전과 달리 이번에 토벌된 신목은 B+급에 겨우겨우 걸칠 정도로 불완전한 상태.
미숙한 상태인 만큼 회귀 전처럼 사용하기 위해서는 여러 시행착오가 있을 수도 있으니 가능한 많이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어떤 부위를 가져갈지도 중요하고.’
들뜬 마음을 가라앉힌 이세훈이 카사르를 바라보았다.
“교수님 몫의 저한테 파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호오…… 독점하려고?”
“재료는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어디 가서 다시 구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닌 것 같고요.”
이세훈의 제안에 초밥 한 조각을 완성한 카사르가 접시 위에 올려놓으면서 대답했다.
“그럼 두 가지 조건이 있다.”
“말씀하시죠.”
“아직 일정이 정확하진 않지만 조만간 인도네시아 쪽 ‘순례길’에 대규모 토벌이 있을 예정이다. 그때 특별한 일정이 없다면 따라와라.”
“순례길…….”
완등자 중 한 명인 ‘순례자巡禮者’ 칼 안데르센이 만마의 늪을 막기 위해 신성방벽을 펼쳐둔 일종의 경계선.
이 순례길에는 만마의 늪이 신성방벽을 침식하지 못하도록 힘을 약화시킬 토벌대를 정기적으로 꾸리는데 카사르는 그곳에 참전을 제안한 것이다.
‘인도네시아 쪽이면 C~B급 위험지역 정도니까…… 비명횡사 당할 일은 없겠네.’
물론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지만 카사르도 같이 갈 테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접시에 놓인 초밥을 먹으면서 고민하던 이세훈은 결정을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두 번째는요?”
“내가 아는 녀석들 중에 실력을 괜찮은데 무구를 제대로 못 쓰는 녀석들이 있다. 나중에 시간이 맞으면 그 녀석들을 좀 봐줬으면 하는데.”
예상치 못한 제안에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제이크 같은 사람들입니까?”
“그놈 정도까진 아니지만 얼추 비슷하지. 무조건 만들어달라는 건 아니고 만나서 살펴만 봐주면 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카사르가 인정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이들.
회귀 전에 알던 녀석들일 수도 있고, 인맥으로 삼아도 나쁠 건 없었기에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살펴보는 것 정도야 어려울 것도 없죠. 해보겠습니다.”
“좋아. 그럼 양쪽 다 일정이 잡히면 연락하마. 한 2주 전에 넉넉하게 말해줄 테니 신경 쓰지 말고 네 할 일이나 하면서 기다려라.”
“알겠습니다.”
이야기를 끝낸 카사르가 어느새 텅 비어 있는 접시를 힐끗 쳐다보았다.
“더 만들어줘?”
“만들어주시면 먹겠습니다.”
연군검이 만들어주는 초밥을 언제 또 먹어보겠는가. 망설임 없이 리필을 요청하는 이세훈의 모습에 카사르가 오히려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이놈은 어째 내가 아무렇지도 않나 보군…….’
인형사의 부하들과 싸우던 것도 그렇고, 역시 배포가 있는 녀석이다. 대화를 나누면서 더 호감이 생긴 카사르는 씩 웃으며 새로운 생선을 꺼냈다.
“좋아. 오늘 원 없이 먹여주마.”
신나게 생선을 손질하는 카사르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을 때. 이세훈이 문득 한 가지를 떠올리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학원장님은 어디 가셨습니까? 기자회견에서도 안 나오시는 것 같던데.”
“아. 학원장님?”
생선의 비늘을 벗겨내고 목을 쳐낸 카사르가 담담히 이야기했다.
“주제도 모르는 놈 손봐주러 가셨겠지.”
***
프랑스의 변두리에 세워져 있는 을씨년스러운 창고.
오랫동안 방치되어 곳곳이 녹슬고 먼지로 가득한 내부로 후드를 꾹 눌러쓴 사람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흩날리는 먼지와 깨진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노을빛. 점점 어두워지는 창고의 풍경에 안으로 들어선 사람, 비에르 바르무트가 입을 열었다.
“나와라.”
창고에 울려 퍼지는 한마디.
그와 동시에 그늘진 구석에서 무언가 들썩이더니 사람처럼 보이는 그림자가 움직였다.
끼릭 끼긱
뚝뚝 끊어지며 기괴하게 움직이는 그림자. 그 몸이 그늘 안에 놓인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우리 고객님. 화가 많이 나신 것 같네?”
기괴한 움직임과 달리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여인의 목소리. 그 능청스러운 물음에 비에르가 눈매를 일그러뜨렸다.
“상황을 알면서도 지금 그딴 소리를 하는 건가?”
“당연히 알지. 아니, 모르나? 부하들한테 보고를 못 들었으니까…….”
턱을 쓰다듬는 그림자의 모습에 비에르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며 소리쳤다.
“네놈이 보낸 그 잘난 인형들이 이세훈을 죽이기는커녕 중상조차 못 입히고 나가떨어졌단 말이다!!”
처음 의뢰를 넣었을 때. 비에르 역시 무조건 성공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바벨이 생도들의 실습에 나설 때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하는지도 알고 있었고, 현장에 S급 영웅인 연군검 카사르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대한 것은 절반. 오랫동안 요양이 필요한 중상만 입혔어도 『여명』과의 공조로 마력회로를 먹통으로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결과는 참패. 부상은커녕 이세훈은 더욱 높은 위치로 올라가 버리면서 모든 것이 꼬여 버렸다.
“이번 일로 전 세계의 사람들이 녀석에 대해서 알아버렸어. 이번 일로 승천제의 비호를 받게 되면 다 끝장이라고! 이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할 셈이냐!”
단순히 뛰어난 생도인 것과 바벨의 학원장, 승천제 루트비히의 ‘비호’를 받는 생도인 것은 차원이 다르다.
바벨의 수장이자 완등자로서 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 그가 비호하는 인물과 적대하는 것만으로 자신들과 거리를 두는 이들이 속출하게 되리라.
‘바벨에서 아버지를 포함해서 관련된 이들이 모두 물갈이되는 건 물론이고 외부 사업도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슷하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불명자 위르겐 크루거가 지휘하는 UD 그룹의 산하로 들어가는 것.
하지만 그 순간 바르무트 가문이라는 주체가 사라지고 그들의 계열사, 부품이 되어 지금과 같은 위상과 자유는 절대 누릴 수 없으리라.
자신의 실패로 점점 심각해져 가는 상황에 비에르가 분노와 두려움으로 꽉 움켜쥔 주먹을 떨고 있을 때.
“아하하하핫!”
그 이야기를 듣던 그림자, 인형사가 웃음을 터뜨렸다.
호쾌한 웃음소리와 달리 기괴하게 들썩이는 그림자. 그 뒤틀린 모습에서 느껴지는 섬뜩함에 비에르가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자 인형사가 손을 내저었다.
“너 그 영감탱이가 어떤 인간인지 모르는구나.”
“……뭐?”
“그 영감이 재능 있는 녀석들을 좋아하긴 하지만 기준이 그렇게 간단하진 않거든. 아직까지 비호라고 할 만한 걸 받을 정도는 절대 아니야.”
단언하듯이 이야기한 인형사가 턱을 쓰다듬었다.
“하지만…… 그러네. 너희들은 여기저기 줄을 많이 댄 편이니까 조금 거슬린다 싶으면 바로 가지치기를 당.”
전조도 없이 끊어지는 목소리. 선이 끊어진 듯한 그 반응에 비에르가 흠칫하며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창고 안으로 기묘한 침묵이 계속되던 그때.
“아. 미안. 중계 지점 하나가 방금 날아가서 잠시 끊어졌네. 영감탱이가 좀 짜증 나긴 한 모양이야.”
“그 말은…….”
“우리 위대하신 승천제님께서 직접 내 거점을 쥐잡─ 듯이 마구 뒤집── 어 대고 있단 뜻이지. 더 이야기하면 여기로도 오겠는데?”
능청스러운 인형사의 이야기에 비에르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가문과 십악과 거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들킨다면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면…….’
인형사와 어떻게든 협상해서 다음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자신은 물론이고 아버지마저 정말 잘려나갈 수도 있다.
비에르가 떠나지도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을 때.
“어쨌든 이세훈은 그 녀석은 걱정하지 마. 다음에 확실히 처리해 줄 테니까.”
인형사가 의자에 기대며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정말인가?”
“이번에 가져다 쓴 나무의 주인이 엄청 화가 났거든. 입을 닥치게 하는 대가로 일을 하나 도와주기로 했는데…… 그때 겸사겸사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아.”
다른 집단과 협력을 맺어 또 일을 꾸미는 것인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인형사의 모습에 비에르가 눈매를 찌푸렸다.
“만약 다음에도 이번처럼 끝난다면…….”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비에르의 말을 잘라낸 인형사가 의자에 기대앉았던 몸을 슬쩍 앞으로 내밀었다.
그늘 속에서 빠져나온 얼굴.
히죽거리는 입을 제외하고 온통 사람의 가죽으로 덧대어진 인형의 얼굴이 작게 속삭였다.
“그땐 너희들을 인형으로 만들어서라도 도와줄 테니까.”
“…….”
자신의 가문을 지워 버리겠다고, 그렇게 호의를 담아 이야기하는 인형사의 모습에 비에르의 몸이 희미하게 떨렸다.
S급 영웅조차 사냥하여 재료로 사용하며 수천, 수만 개의 인형을 넘나들어 그 누구도 본 모습을 알지 못한다는 괴물.
십악의 인형사가 어떤 존재인지 다시금 깨달은 비에르가 주먹을 꽉 움켜쥐며 대답했다.
“그럴 일은…… 없을 거다.”
그 말을 끝으로 비에르가 창고를 떠났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인형사가 노을이 들어오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바벨이라…….”
자신도 한때 머물렀었던 승천제의 정원. 그 안에 피어 있을 한 송이의 꽃을 떠올린 인형사가 씩 웃었다.
“잘 컸으면 좋겠네.”
그리고 실이 끊어진 것처럼 인형의 몸이 의자 위로 힘없이 축 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