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86화
신목神木.
C급 위험지역인 검은연꽃 수해에 갑작스레 나타난 이 몬스터는 당시 전 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수십 년간 관리를 맡았던 영웅협회의 눈을 피했을 뿐만 아니라 모습을 드러낸 단 2시간 만에 검은 연꽃 수해를 A급 위험지역으로 진화시켰기 때문이다.
검은연꽃 수해 전역에 뿌리를 내려 자신과 한 몸처럼 만들었기에 가능했던 현상.
오랜 대치 상황에 느슨해져 있던 인류에게 큰 경각심을 안겨주었던 사건이었으며.
쿠구구궁
“또 온다!!”
이세훈과 제이크를 덮친 재앙이기도 했다.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솟구쳐 올라온 수십 개의 나무뿌리. 그 크기가 크기다 보니 마치 나무가 솟아난 것처럼 보일 정도였지만 거기에 마냥 감탄할 시간은 없었다.
후웅!
꼿꼿이 솟아 있던 나무뿌리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뱀처럼 휘어지며 달려들었다.
그 무시무시한 광경에 이세훈은 빠르게 눈동자를 굴린 뒤 제이크에게 소리쳤다.
“북서쪽!”
“알았어!”
두 사람의 몸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쏘아지고 동시에 검을 휘두른다.
콰아앙!!
터져 나온 불꽃과 푸른색 검격에 갈기갈기 찢겨져나가는 나무뿌리들. 그리고 그 틈새를 향해 파고들어 두 사람이 재빠르게 빠져나갔다.
콰가가가강!
간발의 차이로 남은 나무뿌리들이 두 사람이 서 있던 땅을 후려갈겼고, 포위망에서 벗어난 이세훈은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재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저쪽에서 또……!’
땅 아래에서 지렁이처럼 무시무시한 속도로 올라오는 나무뿌리들. 투안으로 그 움직임을 살핀 이세훈은 길이 뚫린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숲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나무. 지상 밖으로 나온 ‘신목’의 모습에 이세훈이 눈매를 찌푸리며 소리쳤다.
“다시 뚫고 간다!”
“알았어!”
제이크와 함께 신목의 반대방향으로 포위망을 뚫고 나가면서 이세훈은 적들에 대해 냉정히 분석했다.
‘이 정도면 잘 쳐봐야 B급 턱걸이 정도…… 아마 억지로 깨운 후유증이겠지.’
본래라면 수십 년 뒤에 깨어났어야 할 신목을 강제로 일깨운 것이니 당연한 상황.
그 덕분에 어떻게든 포위망을 뚫고 도망칠 수 있었지만 그렇게 그렇다고 상황이 썩 좋지는 않았다.
‘점점 신목이 있는 호수와 가까워지고 있어.’
최대한 반대쪽으로 도망치고 있는데 어째서인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신목과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다.
처음에는 신기루처럼 환영을 보고 있는 건가 했지만 주변의 안개를 살핀 이세훈은 금방 그 원인을 알 수 있었다.
꿀렁
공간 자체가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현상.
안개의 내부에 오감차단 효과뿐만 아니라 공간을 비틀 수 있는 효과도 생겨난 것이다.
‘회귀 전의 신목한테는 없었던 능력이지만…… 인형사, 그 자식이면 못할 것도 없지.’
영웅과 마인의 육체를 재료로 사용해 그들이 생전에 가지고 있던 능력을 부여해 준다는 생체무구 ‘큐브’.
그걸 이용해 신목에게 공간계열의 능력을 부여하고 검은연꽃 수해 전역을 차단해 바깥으로부터 고립시켰다.
그 상황에 이세훈은 상황이 상당히 귀찮게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러면 강제전이 기능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도 높고…… 생도들 전원이 인질이 된 거나 다름없어.’
강제전이 기능이 없는 망토는 평범한 방어구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 신목의 뿌리로 생도들을 확보한 다음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것이 분명하리라.
‘도대체 뭘 노리고 있는 거지?’
자신들을 인질로 교직원 중 누군가를 처리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생도 중에 목표가 있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이대로 가만히 당할 수는 없다.
결정을 내린 이세훈은 함께 달리던 제이크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제이크.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
“두 가지?”
“첫 번째는 이대로 교직원들이 올 때까지 도망치면서 버티는 방법. 무난하지만 언제까지 버텨야 하는지 알 수도 없고, 그사이에 다른 녀석들이 죽을 수도…….”
“두 번째!”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돌아온 대답에 이세훈이 놀란 표정으로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다 듣지도 않고?”
“그렇게 말하면 보통 두 번째가 정반대잖아. 위험하지만 단번에 이 상황을 해결하고 다른 애들도 안 죽는 방법.”
서걱!
따라붙은 나무뿌리를 휘광검으로 베어낸 제이크가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영웅이라면 그쪽으로 가야지.”
확고한 제이크의 대답에 이세훈이 그 얼굴을 살폈다.
여유를 가장하지만 두려움에 눈가가 희미하게 떨렸으며 몸 곳곳에서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명문가의 자식이라 해도 결국은 경험이 부족한 생도. 두려운 것이 당연하지만, 그럼에도 이것이 옳은 길이기에 물러서지 않는다.
‘왜 단명했는지 알겠구만…….’
제이크가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이해하게 된 이세훈은 손을 뻗어 자연스레 등을 툭 쳤다.
[대상 ‘마일즈 마이어스’에게서 인연을 추출합니다.]
[제작자 ‘이세훈’과의 인연은 Lv.1 입니다.]
‘이거라면…… 더 수월하게 되겠어.’
손끝으로 타고 들어오는 인연. 그 안에 담긴 힘을 가늠한 이세훈은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좋아. 대신 한 가지만 약속해.”
“뭔데?”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시킨 일에만 집중하기로.”
콰앙!
옆에 따라붙은 나무뿌리를 오색화도로 쳐낸 이세훈이 확신을 담아 이야기했다.
“그러면 무조건 성공할 테니까.”
***
검은 연꽃 수해의 북서쪽에 위치한 거대한 호수.
수면 위에 검은 연꽃이 빼곡히 피어있어 ‘연꽃 호수’라고 불리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그 모습이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쏴아아
본래 크기보다 2배는 넓어진 호수. 물이 늘어났다기보다는 넘쳐나서 범람한 것에 가까웠는데 그 원인은 바로 호수의 중앙에 솟아 있는 나무 때문이었다.
콰드득
높이 70m에 둘레 100m. 크기만 해도 에어리어 보스인 로터스 하이브를 압도할 정도였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그 크기를 불려 나간다.
그 무시무시한 성장을 나무 위에서 직접 내려다보던 윌리가 순수하게 감탄했다.
“C급 위험지역 밑에 이런 걸 키울 생각을 하다니…… 누군지 몰라도 참 징그러운 녀석들이군.”
도중에 깨운 것이 이 정도라면 완성됐을 때는 어느 정도일까. 밀려오는 호기심에 윌리가 자신이 서 있는 나무, 신목을 내려다보고 있던 그때.
“대장!”
뒤쪽에서 다급한 부하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목표가 포위망을 못 뚫고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래? 하긴 슬슬 지칠 때도 됐지.”
A급 영웅의 공간 능력을 사용해서 몰아넣고 있으니 학과수석이니 뭐니 해도 오래 버티긴 힘들었을 것이다.
슬슬 이 귀찮은 임무도 끝이 다가옴을 느낀 윌리는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슬슬 마무리할 테니까 운반 준비해! 인질로 잡아둔 떨거지들은 반쯤 죽인 다음에 발목 붙잡는 데 쓰고.”
“예!”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린 윌리는 곧장 자신의 뒤쪽에 있는 공간으로 향했다.
스스스
나무의 위에 자리 잡은 거대한 연꽃 봉오리.
아래쪽에서부터 절반까지 잎이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주변에는 줄기가 빼곡히 자라나 주변을 뒤덮을 뿐만 아니라 나무 아래까지 파고들어 있었다.
이 거대한 나무의 뇌이자 심장이라 할 수 있는 핵이 바로 이 연꽃 봉오리였다.
“큐브는 그새 흡수했나. 아깝게…….”
가능하면 회수하려고 했지만 침식형 몬스터답게 체내로 모두 흡수해 버린 모양이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앞으로 다가간 윌리는 나무를 파고든 줄기 중 하나를 뜯어내 자신의 목덜미에 가져다 댔다.
콰드득!
목에 닿음과 동시에 순식간에 파고드는 연꽃 줄기. 그리고 시야가 잠시 어두워지더니 전혀 다른 풍경을 비쳤다.
사방에서 덤벼드는 나무뿌리를 피해 호수로 달리는 두 생도. 함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갈 수밖에 없는 그 분한 얼굴에 윌리가 피식 웃었다.
‘진작 포기했으면 땀도 덜 흘리고 좋았을 텐데.’
저 둘을 위해서라도 빨리 끝내주기로 한 윌리는 곧장 바닥의 줄기를 더 뜯어 자신의 몸 곳곳에 연결시켰다.
콰드득 콰득
줄기가 늘어날수록 점점 몸이 부풀고 시야가 사방으로 확장되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호수와 인근에 뿌리내린 자신의 ‘몸’이 느껴진 순간.
콰드드득!
신목과 한 몸이 된 윌리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두 애송이를 바라보았다.
“윽…….”
전신의 솜털이 곤두설 정도로 강렬한 시선.
거대한 나무에게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존재감에 제이크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멀리서도 이 정도인데 저 앞에 서면 어떤 느낌일까. 점점 커져 가는 나무, 적의 모습에 제이크가 긴장하고 있을 때.
“제이크.”
옆에서 달리던 이세훈이 담담히 이야기했다.
“할 일. 기억하지?”
짧은 한마디지만 자신이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다시금 상기시켰다.
긴장감을 애써 떨쳐낸 제이크가 입술을 꽉 깨물며 대답했다.
“걱정 마.”
“좋아.”
여기까지 말했으면 나머지는 제이크의 몫이다.
눈앞의 적에게 고개를 돌린 이세훈은 이번에 새롭게 만들어낸 인연석을 오른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인연 - 축조석縮造石]
[등급 : 고급] [품질 : 최상]
끊임없이 압축되는 광석.
내부에 부여된 마력을 빨아들여 압축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구도 이상의 밀도가 형성될 경우 파손됩니다.
*흡수된 마력을 압축합니다.
짙은 푸른빛에 꽉 압축된 것처럼 단단한 광석.
제이크에게서 추출해 낸 인연석을 움켜쥔 이세훈이 곧장 오른손의 인연각인을 발동했다.
[인연각인 ‘탐철’이 발동됩니다.]
콰득!
얼음이 깨지듯 축조석이 흔적도 없이 부서졌고 그 안에 담겨져 있던 힘이 이세훈의 몸속 깊은 곳까지 녹아들었다.
까드득
뼈와 근육, 혈관을 비롯한 전신이 압축되는 것 같은 감각. 그리고 그것이 착각이 아님을 증명하듯 시야가 약 1할 정도 아래로 내려온다.
“후우…….”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푸른색 증기.
모든 준비가 끝났음을 확인한 이세훈이 안개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 호수를 바라보았고.
투웅─
바닥을 박참과 동시에 발아래로 호수가 펼쳐졌다.
쾅!!!
굉음보다도 먼저 호수에 도착해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한 이세훈은 그대로 있는 힘껏 물 위를 내달렸다.
투두두두!
수면에 마력을 방출해서 튕기듯이 달리는 방법.
본래 이세훈의 몸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탐철로 증가한 신체 능력, 축조석의 효과로 압축된 육체가 출력을 이끌어내 아슬아슬하게 펼쳐낸 것이다.
‘오래 쓰면 어디 한 군데 터지겠는데……!’
조금만 마력의 컨트롤에 실수해도 발바닥이든 어디든 몸이 터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방법.
하지만 이세훈은 자신의 감각을 믿은 채 완벽하게 내달렸고,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는 그 모습에 신목을 조종하던 윌리는 깜짝 놀랐다.
‘뭣…… 갑자기 속도가……!’
해봐야 C급 정도밖에 안 되던 녀석이 그 잠깐 사이에 B급에 버금갈 정도로 상승하다니?
이세훈을 살펴보던 윌리는 붉게 달아오른 머리카락 끝과 입가에서 새어 나오는 푸른 증기를 발견하고 눈매를 찌푸렸다.
‘스킬로 몸을 강화한 건가? 쓸데없는 짓을…….’
자칫 잘못하면 이번 습격의 목적인 재료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세훈을 빠르게 제압하기로 한 윌리는 곧장 호수 인근에 뿌리내린 자신의 몸을 움직였다.
쿠구궁!
호수 아래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수십 개의 나무뿌리.
숲에서 공격해 오던 것들보다는 2배는 컸으며 속도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강화니 뭐니 해봐야 B급 정도지.’
앞서 숲에서의 공격이 손가락 끝마디로만 움직였다면 지금은 팔 전체를 움직이는 상황.
주제를 모르고 덤벼드는 이세훈의 모습에 윌리가 곧장 솟구친 나무뿌리로 거대한 ‘그물’을 엮어냈다.
콰가가각!
겹겹이 둘러싸여 정면을 모조리 뒤덮은 나무뿌리.
제아무리 움직임이 빠르고 검격이 날카롭다 해도 피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다 베어내지 못할 정도로 뒤덮어 짓뭉갠다면 어찌할 방법이 없다.
수해 전역에 뿌리를 내린 초대형 몬스터의 강점을 살린 공격.
어지간한 B급 영웅도 간단히 짓뭉개 버릴 수 있는 압도적인 질량이 덮쳐들었고.
“……찾았다.”
회색빛으로 물든 이세훈의 두 눈이 눈앞의 적을 꿰뚫듯이 바라보았다.
투살법鬪殺法 난선亂線
서걱─
허리춤에서 터져 나온 새하얀 섬광.
그 폭발적인 검격 앞에 나무뿌리가 난도질당하듯 사방으로 갈라졌고, 그 쪼개진 파편들이 서로 부딪치며 비틀려서 딱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낸다.
그 사이로 이세훈의 몸이 자연스럽게 빠져나왔고.
콰아아앙!
‘……아?’
구멍이 뚫린 그물이 텅 빈 호수를 허무하게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