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84화
검은연꽃 수해의 터미널 로비.
평상시에는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영웅들이 오가는 장소였지만 오늘은 그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허공에 떠올라 있는 수백 개의 화면. 수해에 퍼트려 놓은 사역마들에 의해 몬스터들과 맞서 싸우는 생도들의 모습을 선명히 송출된다.
그리고 아래에서 그 화면을 살피던 교수들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21번 로터스 보어 6마리. 점수배분 A192점 B108점. 27번 블랙 드래고 8마리. 점수 배분 A108점 B132점…….”
2인 1조를 이룬 생도들이 몬스터를 사냥할 때마다 그 기여도에 따라서 점수를 배분한다.
동시에 여러 생도가 전투를 벌일 때도 있었지만 모두 관측계열의 능력을 보유한 교수들이었기에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전투과정을 살피며 읊었다.
타닥타닥
거기에 맞춰 조교들이 빠르게 점수를 입력했고 틈틈이 미리 점찍어둔 화면을 힐끗거리며 살펴보았다.
‘실전에서 더 잘 싸운다더니 진짜네.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데 능숙해.’
‘정령을 다루는 솜씨는 뛰어나지만 의존도가 심해. 시야가 저리 좁아서야…….’
담당 교수나 지인, 아니면 의뢰인의 부탁을 받고 주목받고 있는 후배들의 능력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렇게 교직원들에 의해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나 빠르게 채점이 이뤄지고 있을 때.
“256번. 로터스 보어 8마리. 점수 배분 A281점 B119점.”
“다시 256번 블랙 드래고 5마리. 점수 배분 A30점 B120점.”
“다시 256번. 로터스 래빗 7마리…….”
드문드문 이어지는 다른 파티와 다르게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점수 배분.
폭주 기관차나 다름없는 그 속도에 주변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화면을 향했다.
후웅!
다른 생도들과 다르게 빠르게 움직이는 화면.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다른 생도들과 달리 두 256번의 두 사람은 조깅을 하듯 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한 조교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길 달린다고……?”
질척거리는 흙과 지저분하게 솟아난 나무줄기. 거기에 다양한 식물들의 점액질과 곳곳에 자란 이끼까지.
몸을 움직이는 데 어설픈 생도라면 걷다가도 넘어지는 곳이 검은연꽃 수해의 땅인데 영상 속의 두 사람, 이세훈과 제이크는 그 위를 평지처럼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
‘제이크야 그렇다 쳐도 이세훈 저놈은 도대체 뭐야?’
‘진짜 제련학부 맞아?’
산길에 익숙한 듯 요령 좋게 발을 디디며 달리는 이세훈의 모습에 교직원들이 자연스레 다른 영상들을 바라보았다.
-으악!
-야! 빨리 일어나!!
몬스터와 싸우다가 발을 헛디뎌 바닥을 나뒹구는 신입생들. 같은 1학년인데도 차원이 다른 모습에 모두가 묘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달리기를 보고 있을 때.
-쿠어어!!
질척거리는 흙 속에서 나타난 세 마리의 몬스터.
크기는 3m 정도였고 몸 곳곳에는 검은 연꽃과 줄기가 솟아나 있었는데 큼지막한 두 팔로 다리가 없는 몸을 질질 끌며 움직였다.
검은연꽃 수해에서 최상위권에 속하는 C급 몬스터 로터스 골렘. 한 마리당 400포인트나 주는 강력한 몬스터가 나타난 것이다.
“흐음. 저러면 잠시 멈춰야겠는데.”
“저놈들 질기기는 엄청 질기니까.”
진흙으로 이뤄진 몸과 그 안에 빽빽이 자라난 연꽃 줄기.
물리적인 방어력에 한해서는 B급 몬스터 수준이었고 기껏 상처를 입혀도 주변의 토양을 흡수해 곧장 재생해 버린다.
그런 녀석이 세 마리나 있으니 앞에처럼 지나가면서 잡기는 힘들 것이다.
모두가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후웅!
이세훈의 손끝으로 쏘아진 새하얀 비수.
얼마나 날카로운지 로터스 골렘의 몸에 자루까지 파고들었지만 크기가 크기인 만큼 큰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그 무의미해 보이는 공격에 모두가 의아함을 느꼈고.
투웅!
제이크가 더욱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왔다.
서걱─!
허리춤에서부터 뻗어 나온 푸른색 궤적.
그 끝으로 시선을 따라간 교직원들은 자신들의 눈에 보인 물건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검?”
별빛이 담겨져 있는 푸른색 대검.
예술작품과도 같은 그 검신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을 때. 그 궤적이 훑고 지나간 로터스 골렘들의 몸이 움직였다.
쿵!
반으로 갈라져 아래로 무너지는 몸.
이세훈이 던진 비수의 아래쪽, 그 안쪽에 있던 핵이 일격에 잘려나가면서 재생 한 번 못해보고 토벌당한 것이다.
“…….”
“…….”
멈추기는커녕 간단하게 무력화시키고 계속 달리는 두 사람. 예상을 뛰어넘은 그 모습에 교직원들이 멍하니 보고 있을 때.
“256번. 로터스 골렘 3마리 격파. 점수 배분 A800점 B400점.”
팔짱을 끼고 있던 카사르가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점수 배분은 이 정도면 되겠지?”
“아, 예. 맞습니다.”
“그럼 다들 한눈 팔지 말고 계속 채점해. 누락되는 거 나오면 교수고 뭐고 시말서야!”
“예, 예!”
어수선한 분위기를 환기시킨 카사르는 화면 속에서 달리고 있는 두 사람, 그중 제이크를 먼저 바라보았다.
‘저 녀석…… 언제부터 검을 다룰 수 있게 된 거지?’
수많은 장인의 검을 고철 덩어리로 만들고 끝내 검을 포기한 뒤 무투학부에 들어온 마이어스 가문의 차남.
그 비운의 주인공이 하루아침에 검을 들고 나타나다니.
알려지는 순간 엄청난 화제를 모을 그 광경에 카사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현역 대장장이가 만들었으면 이걸 숨기고 있을 이유가 없어. 그렇다는 건 설마…….’
제이크의 옆에서 달리고 있는 이세훈을 바라본 카사르는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식칼을 갈아놓은 걸 봤을 때도 놀랐었지만, 제이크의 검을 만들어낸 것은 그와 비교도 안 될 만큼 엄청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전투 중의 완급조절도 귀신같고…… 도대체 뭐하는 녀석이야?’
매 전투에서 딱 필요한 만큼의 힘을 적재적소로 사용한다.
듣기에는 그게 그리 대단한가 할 수도 있지만 자신, S급 영웅의 시선에서도 크게 흠잡을 곳이 없다는 것이 중요했다.
‘본인은 그렇다 쳐도 아군의 능력까지 저리 맞춰주는 건 힘든데…… 마광수 그 주정뱅이가 가르친 건가.’
처음에는 적당히 살펴볼 생각이었는데 바닥을 보이기는커녕 더 많은 것을 보여주니 눈을 뗄 수가 없다.
여러 생도를 살피던 카사르의 시선이 이세훈 한 사람에게만 집중되던 그때.
“교수님. 잠시 드릴 말씀이…….”
수해를 모니터링 중이던 조교가 다급히 카사르를 향해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방금 8번째 안개숲이 발생했습니다.”
검은연꽃 수해에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결계인 ‘안개숲’.
오감을 차단하는 안개를 만들어내는 결계였는데 보통 하루에 3~4번 정도만 발생하는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잠깐 사이에 8번이나 발생했다. 더 이상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카사르가 턱을 쓰다듬었다.
“에어리어 보스인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위험지역에 비정기적으로 출몰하는 강력한 몬스터인 ‘에어리어 보스’.
정확한 발생원인은 알 수 없지만 방치해 두면 ‘진화’를 통해 위험지역의 등급을 한 단계 승급할 수도 있기에 반드시 토벌해야만 했다.
“사전조사 때는 발생확률이 낮다고 하더니…… 역시 이쪽으로는 기술력이 많이 부족하구만.”
“죄, 죄송합니다.”
“아니. 갈구려고 말한 게 아니라…… 쯧. 됐다.”
고개를 숙이려는 조교에게 손을 휘적거린 카사르는 허공의 패널을 두드려 에어리어 보스 정보를 읽었다.
‘로터스 하이브. 대형종에 C+급 개체군.’
플러스 등급은 해당 등급의 영웅이 대응은 할 수 있지만 ‘토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 붙게 된다.
즉, 로터스 하이브를 토벌하려면 B급 영웅이거나 그에 버금가는 화력을 보유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상위권들이 나서면 잡을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문제는 뒤쪽의 안개숲이군.’
로터스 하이브가 등장하면 안개숲도 영향을 받아 안개의 범위가 두 배로 늘어나고 몬스터들도 활발하게 움직이게 된다.
현역 영웅들이라면 모를까 실전 경험이 부족한 생도들은 부담스러울 수 있는 상황.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카사르가 두 눈을 번뜩였다.
‘잠깐. 이거 괜찮겠는데?’
애초에 이 토벌 실습 자체가 실전에서 벌어지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얼마나 잘 대응하는지 보기 위해서가 아닌가.
잠시 생각하던 카사르는 자신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조교를 바라보았다.
“시험은 속행한다. 안전장치도 확실하고 에어리어 보스도 특정구역에서만 나타나니 큰 문제는 없겠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허공의 화면 속에 보이는 생도들, 그중에서도 이세훈을 바라본 카사르가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대응할지 한 번 떠보자고.”
***
[대상 ‘카사르’와의 인연이 성립되었습니다.]
달리기를 멈추고 몸을 풀어주던 이세훈은 눈앞에 떠오른 알림창에 씩 웃었다.
‘꽤 좋게 보였나보구만.’
S급 영웅 ‘연군검煙軍劍’ 카사르.
회귀 전 마신과 맞서 싸웠던 인류연합의 간부 중 한 사람으로 무력뿐만 아니라 지휘 능력이 탁월해 여러 전장에서 엄청난 활약상을 펼쳤었다.
특히 십악 중 한 명인 ‘괴검怪劍’의 병력을 쓸어버린 것으로 가장 유명했는데, 덕분에 아시아의 멸망이 3년 정도 늦춰졌다는 평가를 들었었다.
‘그것 때문에 멸검의 마신이 된 괴검한테 가장 먼저 죽게 됐지만…….’
전신에 수백 자루의 검이 꽂혀 죽어버린 카사르. 그 모습을 떠올린 이세훈은 금방 머릿속에서 기억을 밀어냈다.
막말로 회귀 전에 자신을 비롯해서 좋게 끝난 놈이 누가 있던가. 지금 중요한 것은 비참했던 최후보다 카사르가 자신에게 줄 수 있는 도움들이었다.
‘분명 굵직한 몬스터들 나올 때마다 지휘관으로 불려갔다고 했었지.’
자기들끼리만 해 먹는 길드나 기업, 지휘권 안주기로 유명한 영웅협회조차 대규모 토벌전마다 고용하는 베테랑 지휘관.
그것이 바로 카사르라는 인물이었고 이세훈은 그 ‘인맥’을 노리고 있었다.
‘진짜 좋은 재료들은 지들끼리 다 해 처먹으니까 말이야.’
고위등급의 몬스터를 사냥한 뒤 시장에 나오는 재료들은 대부분 희소가치가 떨어지는 물건들뿐.
진짜배기라고 할 수 있는 재료는 대부분 자기들이 독점하거나 친분이 있는 자들에게만 판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전에 그거 때문에 많이 싸웠었지…….’
실력도 없으면서 연줄로 온갖 희귀한 재료들을 독차지해 희귀한 쓰레기를 만들어내던 버러지들.
회귀 전 이세훈이 가장 질색하던 유형이었는데 몇 놈은 망치로 머리통을 후려갈긴 적도 있었기에 악연이 깊었다.
‘싸워봐야 귀찮기만 하니까 이번엔 나도 편하게 간다.’
카사르를 통해 인맥을 만들어 희귀한 재료를 구매한다. 머릿속으로 계획을 모두 점검한 이세훈은 스트레칭을 끝내고 옆을 바라보았다.
“…….”
눈을 감은 채 바닥에 조용히 앉아 있는 제이크.
겉모습만 보면 매우 차분한 모습이었지만 조금만 귀를 기울여보면 조금 달랐다.
쿵쿵쿵쿵─
가슴 안쪽에서 미친 듯이 뛰는 심장.
방금까지 달리면서 빨라진 심장박동을 혈술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호흡이 흐트러지는 등 조절에 실수했지만 몇 분 사이에 완벽히 적응한 것이다.
‘나는 이 상태까지 몇 달은 걸렸었는데…… 이렇게까지 빠르니 살짝 약 오르네.’
재능에 대한 질투보다는 자신보다 덜 고생하고 빠르게 배우는 것 같아서 느껴지는 띠꺼움.
살짝 불만스럽게 제이크를 바라보던 이세훈은 헛기침하며 입을 열었다.
“제이크. 슬슬 움직이자.”
“아, 응.”
두 사람은 다시 가볍게 숲을 달리기 시작했고 이세훈의 뒤를 따르던 제이크가 주변을 살펴보았다.
“갈수록 몬스터들이 잘 안 보이네. 다른 애들도 잡고 있어서 그런가?”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크지.”
검은연꽃 수해가 아무리 넓고 몬스터가 많기로 유명하다곤 하지만 천 명 가까이 되는 생도들이 안쪽을 휘젓고 있는 만큼 변화가 없을 리가 없다.
특히 다른 종임에도 불구하고 한 집단처럼 대응하는 이곳 몬스터들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슬슬 무리를 형성하기 시작했으리라.
‘이 정도면 수련은 충분히 시켜준 것 같고…… 슬슬 신목이나 깨워볼까.’
회귀 전 신목이 위험지역에서 숨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녀석이 땅속 깊은 곳에 가사상태로 잠들어 있어 평범한 식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신목을 밖으로 꺼내기 위해서는 우선 가사상태에서 깨울 필요가 있었는데 거기서 필요한 게 바로 ‘뿌리’였다.
‘쉽게 찾는 방법도 있지만…… 그쪽은 힘들겠지.’
굳이 행운을 기대하고 돌아다니기보다는 착실하게 찾는 것이 좋다. 결정을 내린 이세훈이 막 투안을 사용하려던 그때.
-아아. 잠시 긴급발표가 있겠다.
망토의 앰블럼에서 카사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긴급발표……?”
“잠깐 멈춰봐.”
달리기를 멈춘 두 사람은 곧장 앰블럼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현재 검은연꽃 수해 곳곳에 에어리어 보스가 나타날 징조가 발견되고 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긴 하지만 충분히 대응이 가능하다고 판단되어 몇 가지 규칙을 추가하겠다.
우웅!
망토의 앰블럼에서 재차 마력이 요동치는가 싶더니 두 사람의 눈앞에 푸른색 창이 떠올랐다.
검은연꽃 수해 전역이 그려져 있는 지도. 그 위에는 푸른색과 하얀색, 붉은색 점이 각각 표시되어 있었다.
-지도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푸른색 점은 현재 너희들의 위치고 하얀색 점들은 안개숲이 발생한 위치. 그리고 붉은색 점은 에어리어 보스가 나타날 장소지.
카사르의 설명에 맞춰 각 점들이 살짝 빛나더니 하얀색 점들이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중 안개숲에 들어가 ‘연꽃나무’를 파괴하는 생도들에게는 보상으로 각각 3천 포인트씩 주겠다.
“3천 포인트……?”
카사르의 이야기에 제이크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전투로 얻는 포인트와 별개로 3천 포인트. 최상위권에도 적지 않은 점수이며 중위권의 생도들에게는 순위를 단숨에 뒤바꿀 어마어마한 점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어리어 보스인 로터스 하이브의 경우 인원제한이 없으며 토벌에 성공했을 경우 참가한 생도들에게 모두 1천 포인트. 그리고 전투로 인한 포인트는…….
잠시 말끝을 흐린 카사르는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총 5만 포인트를 기여도에 따라 배분하겠다.
“…….”
-교수진들의 분석에 의하면 1시간 안에 로터스 하이브가 나타날 것으로 추정되니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이상.
통신이 끊어지고 그 내용을 곱씹던 제이크가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5만 포인트를 기여도에 따라 배분한다…… 말로는 엄청 쪼개질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
로터스 하이브는 전투 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대신 강력한 내구력과 재생력을 가지고 있었다.
즉, 어중간한 공격은 모두 유효타로 인정받지 못하며 상위권에 속한 생도들에게 기여도가 몰릴 것이 분명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 명이 몇만 포인트를 챙길지도…….’
중하위권의 생도들은 몰라도 최상위권의 생도들이라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상황을 파악한 제이크는 곧장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내 생각에는 에어리어 보스 쪽으로 가서 미리 준비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할래?”
“…….”
제이크의 물음에 이세훈은 대답 대신 지도를 살펴보았다.
에어리어 보스가 나타나는 ‘연꽃의 무덤’ 지역은 달려서 10분. 지금 바로 움직이면 여유롭게 바로 움직일 수 있었지만, 이세훈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오늘이 날인가 보구만.’
자신들의 바로 근처에 위치한 하얀 점, 안개숲을 바라본 이세훈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세간에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안개숲을 유지하는 핵인 연꽃나무가 바로 신목의 뿌리였다.
즉, 지금이라면 누구에게도 의심받지 않고 아주 쉽게 뿌리에 접근해서 신목을 깨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우연히 알게 된 것처럼 신목을 깨우고…… 교수들 불러다가 토벌하면 되겠지.’
직접 토벌이 아니어도 그런 숨겨진 위협을 발견해낸다면 에어리어 보스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게 점수를 퍼줄 터.
거기에 루트비히와 잘 협상한다면 신목의 부산물도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을 테니 그야말로 완벽한 계획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진정시킨 이세훈은 근처에 하얀 점을 가리켰다.
“가기 전에 안개숲에 잠깐 들리자.”
“뭐? 에어리어 보스만 제대로 잡아도 시험은 무조건 1등 할 텐데 뭐하러…….”
귀찮다는 듯이 투덜거리는 제이크에게 이세훈은 길게 설명할 것 없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예비용 검. 필요 없나 보네?”
“아직 힘들어 보이는데 속도 좀 낮출까? 아니면 업어줄 수도 있는데.”
언제 귀찮은 티를 냈냐는 듯이 깍듯하게 나오는 제이크.
어떻게든 휘광검을 인질로 잡히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그 모습에 이세훈이 씩 웃었고.
“잘됐네. 업어줘.”
“…….”
자신보다 큰 이세훈을 업게 된 제이크가 여러 감정이 담긴 얼굴로 안개숲을 향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