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83화 (83/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83화

지평선까지 뻗은 거대한 수림.

20m를 가볍게 넘는 거대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나 하늘을 뒤덮고 사이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가로등처럼 내부를 밝힌다.

이끼가 자라나 축축하고 미끌미끌한 바닥과 희미하게 깔려 있는 안개.

그 음침한 숲, C급 위험지역 검은연꽃 수해의 초입부에 선 생도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으으…… 여기 진짜 엄청 독하네.”

“첫 토벌 실습은 어지간하면 D급 위험지역이라더니. 진짜 거지같…… 콜록콜록!”

위험지역을 다녀본 적 없는 생도들은 연신 기침을 토해내거나 헛구역질을 했고, 경험이 있는 생도들도 대부분 상태가 좋지 않았다.

C급 위험지역에서도 대기 중의 마기함유량이 높기로 유명한 장소. 그게 바로 검은연꽃 수해였기 때문이다.

“으윽…… 안 되겠다…….”

“못 하겠어…….”

검은연꽃 수해의 대기를 만만하게 봤던 생도들은 급속도로 떨어지는 컨디션과 마력역류 증세에 재빠르게 기권을 선언하며 터미널로 다시 돌아갔다.

괜히 여기서 무리했다가 큰 부상이라도 입는다면 1학기 전체를 망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신중하게 해야겠어…….”

“진짜 거지 같은 곳이야…….”

그 모습을 본 생도들이 더욱더 주의를 기울이며 한창 검은연꽃 수해의 가혹한 대기에 적응하고 있던 그때.

“음. 됐구만.”

이제 막 들어왔던 이세훈이 가볍게 몸을 털어내며 걷기 시작했다.

“저게 뭔…….”

“허…….”

숨 고르기에도 바빴던 생도들은 그런 이세훈의 모습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학과수석이라지만 보르시파, 전투와 관련 없는 기술직 생도가 저런 적응력을 가지고 있다니?

‘장비라도 따로 착용했나?’

‘그냥 경갑밖에 안 보이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광경에 다른 생도들이 당황하며 쳐다보고 있을 때. 걸음을 옮기던 이세훈이 가볍게 숨을 들이마셨다.

우우웅

마기가 뒤섞인 공기가 체내로 들어오자 안쪽에 자리 잡은 암속성마력 ‘월영’이 그물처럼 퍼져나간다.

스스스

스며들었던 마기를 걷어내 그대로 흘려보내는 월령. 그 상태를 살핀 이세훈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암속성마력이 생기니 전보다 편하네.’

화속성마력은 마기를 불태우기 위해 충돌을 일으키다 보니 조절하기가 까다로웠는데 암속성마력이 생기니 좀 더 쉽게 걷어낼 수 있게 되었다.

회귀 전만큼은 아니지만 잘 적응해나가는 육체에 이세훈이 만족하며 옆을 바라보았다.

“적응은 다 했냐?”

이세훈의 물음에 어느새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던 에리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까악!”

짧은 대답에 따라붙는 거친 울음소리. 그 낯익은 소리에 시선을 내리자 새하얀 새장과 깃대에 앉아 있는 까마귀의 모습이 보였다.

“그놈 오랜만에 보네.”

“평소에는 필요 없으니까.”

입학 시연회 때 에리카의 버프를 받고 오토마톤을 박살 냈던 까마귀. 사역마가 아니라 평범한 동물이라 기억에 남았는데 토벌 실습에 데리고 온 것이다.

‘그냥 시연회에서만 쓰는 줄 알았더니…… 실전에서도 쓰는 거였어?’

아무리 에리카의 버프가 뛰어나다 해도 잠깐이라도 효과가 약해지는 순간 맥없이 당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되면 까마귀가 불쌍한 것은 둘째 치고 에리카의 ‘무구’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이기에 썩 좋지 않은 것이다.

“평범한 까마귀로 괜찮겠어?”

“괜찮아. 여기는 별로 안 위험하니까.”

“흠. 그것도 그렇긴 하지.”

에리카가 싸우는 것을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시연회 때 보여준 버프나 조금씩 보여준 잠재력을 보건대 최소 B급.

검은연꽃 수해가 아무리 까다로워도 결국 C급 위험지역인 만큼 에리카에게 위험을 안겨주기는 힘들 리가.

‘그만큼 자신감이 있으니 생도복만 입고 온 걸 테고.’

새장을 제외하면 별다른 무구가 없어 보이는 에리카. 그 모습에 혹시 어디 숨겨뒀나 싶어서 이세훈이 자세히 살펴보고 있을 때.

“까악!”

그 시선에 항의하듯 새장 안에서 날개를 펼치며 우는 까마귀. 그 모습에 이세훈이 어이없이 바라보자 에리카가 새장 안으로 검지를 집어넣었다.

“깍!”

총총거리며 다가와 부리와 얼굴을 부비는 까마귀.

‘완전히 애완동물이구만.’

그 애교 넘치는 까마귀의 모습에 이세훈이 신기하게 보고 있을 때. 새장을 내려다보던 에리카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쿠웅!

에리카의 말을 잘라내는 묵직한 소리.

몬스터라도 나타났나 싶어 고개를 돌리자 지면에 놓인 작은 단상과 그 위에 올라선 한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저 양반은…….’

2m를 넘기는 거구에 통나무를 깎아서 붙여놓은 것은 굵직한 몸통. 짧은 머리카락에는 새치가 섞여 있었으며 얼굴에도 주름과 흉터가 깊게 파여 세월과 위압감을 동시에 안겨준다.

익숙한 얼굴의 상대에 이세훈이 두 눈을 가늘게 뜨는 사이 주변 생도들의 시선을 모은 사내가 입을 열었다.

“이번 1학년 토벌 실습의 총책임자인 검술학부의 지도교수 카사르다! 본격적으로 시험을 시작하기에 앞서 짧게 이야기를 할 테니 잠시 주목하도록!”

사내, 카사르의 소개에 어수선하던 생도들이 재빠르게 자세를 고치며 그를 바라보았다.

내년에 아칼쿠프의 차기 학과장으로 거의 내정되었다는 교수. 바벨에서 손꼽히는 권력을 차지할 사람이었기에 모두가 즉각 대응한 것이다.

“알고 있는 녀석들은 다 알겠지만 이 토벌 실습은 바벨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험이다! 영웅이란 결국 얼마나 몬스터와 마인을 잘 죽이는 가로 평가받는 직종이니까.”

긴장한 생도들의 얼굴을 천천히 훑어보던 카사르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었다.

“첫 실습인 만큼 긴장한 사람들이 꽤 많을 테니 한 가지만 조언해 주마! 그건 바로…… 오늘 결과에 크게 신경 쓰지 마라!”

오늘 실패하더라도 열심히 노력해서 다음에 잘하면 된다. 생도들은 그런 상투적인 조언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는 달랐다.

“평소보다 긴장을 했든, 너무 여유로워서 방심을 했든 잘난 놈들은 잘만 싸운다! 즉, 오늘 실습 결과가 나빴다면 그건 너희들의 재능과 실력이 형편없었단 거지 다른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란 거다!”

“…….”

“그러니 미리 경고하는데 시험이 끝나고 나서 저런 시답잖은 이유로 결과에 이의를 제기한다면 낙제점으로 고쳐줄 테니 명심하도록!!”

결과에 대해서 변명하지 말 것.

조언을 빙자한 경고에 생도들이 긴장이 풀리기는커녕 더욱더 위축된 표정을 지었다.

한 번의 실수조차 용납되지 않는 상황. 안 그래도 검은연꽃 수해의 가혹한 환경에 카사르 같은 거물이 경고를 하니 부담감이 몇 배로 늘어난 것이다.

“윽…… 못하…… 우웨엑!”

“나, 난 다음에 할래.”

안 그래도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생도들이 더더욱 이탈을 선언했고 어느 정도 여유가 있던 생도들도 다시 자신의 몸을 점검했다.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된 생도들의 모습에 으름장을 놓았던 카사르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음음. 이 정도는 돼야 그래도 실전 느낌이라도 내지.’

각종 보호 장비와 감독관들의 보호를 받으며 진행되는 실습인 만큼 아무리 실전처럼 생각하라고 해도 힘들기 마련.

그렇기에 카사르는 다른 방식으로 생도들의 심리를 압박하여 조금이라도 실전과 같은 중압감을 심어준 것이다.

‘자기 수준도 모르고 설쳐봐야 금방 목이 날아갈 뿐이니.’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육성법이 발전했다고 해도 이것만큼은 변치 않는다. 그 진리를 떠올리며 카사르가 생도들을 훑어보았고.

“비 안 오니까 몬스터들 찾기는 쉽겠네.”

“나는 비 와도 잘 찾을 수 있어.”

아무런 동요도 없이 잡담을 나누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벌써 적응을 끝낸 건가.’

1학년들에게는 조금 버거울 공기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나누는 이세훈과 에리카.

심지어 방금 경고에 부담을 느끼는 모습도 일체 보이지 않았는데 자만하기보다는 익숙하다는 분위기였다.

‘이노우에야 그렇다 쳐도…… 이세훈 저 녀석은 정말 특이하군.’

분명 제련학부의 생도인데 지금 모습만 보자면 경험 많은 영웅을 보는 듯하다.

그것만으로도 특이한데 카사르의 흥미를 끄는 것은 또 따로 있었다.

‘헬레나 누님한테 맡겼던 식칼. 그걸 손질한 게 저 녀석이라고 했었지.’

1학년이 손질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날카로웠던 검. 그때는 반신반의했지만 그동안 이세훈이 펼쳐온 활약을 보면서 이제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 어떻게 싸우는지 좀 봐야겠군.’

자신쯤 되면 싸우는 모습만 봐도 상대가 어떤 인물인지 감이 오기 마련. 이세훈을 예의주시하기로 마음먹은 카사르는 시선을 거두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남을 사람들은 다 남은 것 같으니 진행방식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혼란스럽던 주변의 분위기가 다시 가다듬어졌고 카사르는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교들에게 손짓을 보내 허공에 거대한 화면을 띄웠다.

“이번 토벌 실습은 포인트제로 진행한다. 제한시간 동안 얼마나 효율적으로 몬스터를 사냥하는지 보겠다는 뜻이지.”

허공에 검은연꽃 수해에 서식하는 몬스터들의 이미지가 떠올랐고 그 옆으로 포인트가 적혀 있었다.

E급은 20~30, D급은 60~80 정도였는데 몇몇 C급 몬스터들이 점수가 상당히 높게 배정되어 있었다.

“검은연꽃 수해는 규모에 비해 C급 몬스터들이 적다. 만약 실력에 자신이 있다면 바쁘게 움직여야 할 거야.”

경쟁자들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한다. 그 설명에 생도들이 서로를 힐끔거렸고, 그 모습에 카사르가 만족스러워하며 설명을 이었다.

“제한시간은 6시간. 시간 내로 복귀하지 못하면 감점당하니까 이 부분은 명심하고…… 또 한 가지 전달할 점이 있다.”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교에게 망토를 건네받은 카사르가 보란 듯이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이 망토는 이번에 새로 도입된 보호 장비인데 착용자가 받는 모든 피해를 흡수해 준다.”

퉁퉁

망토를 가볍게 두드려 보호장치가 활성화된 것을 확인한 카사르는 생도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막아주면 시험에 문제가 생기니까 한 가지 기능을 추가했는데 그게 바로 ‘강제전이’ 기능이다.”

콰앙!

카사르의 주먹이 망토를 있는 힘껏 후려갈긴 순간. 망토에 복잡한 마법진이 떠오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그 모습에 생도들이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카사르는 손을 털어내며 설명을 이었다.

“전투 불능 혹은 죽음에 다다랐을 타격이 누적됐을 경우 망토가 너희들을 터미널로 이동시킨다. 이게 뭘 말하는지는 알겠나?”

시험 도중에 밖으로 퇴장당한다. 어떤 시험이든 그 결말은 다름없다.

“강제전이 된 놈들은 1위든 2위든 무조건 낙제점이란 뜻이다. 죽은 놈에게 점수는 의미가 없으니까.”

“…….”

“실전처럼 생각하고 자신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명확히 파악해라. 그게 영웅이 가져야 할 기본이다.”

진심이 담긴 경고에 생도들이 모두 긴장한 표정을 지었고 그 반응을 살핀 카사르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 시작은 20분 뒤. 진입은 망토를 착용하고 순차적으로 진행할 테니 낙제점 받기 싫으면 알아서 기권하도록. 이상!”

설명을 끝낸 카사르가 단상 아래로 내려오더니 자신이 밟고 있던 것을 그대로 들어 올렸다.

후웅!

소리만 들어도 심상치 않은 무게. 그 단상을 한 손에 든 카사르가 터미널 안쪽으로 돌아가려던 그때.

“아. 이걸 깜빡했군.”

걸음을 멈춘 카사르가 다른 생도들을 바라보았다.

“이번 토벌 실습은 2인 1조도 가능하다. 원하는 대로 구성하도록.”

가장 중요한 말을 마지막으로 던진 카사르가 터미널로 들어갔고, 생도들이 자연스럽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6시간 동안 자신을 한계까지 쥐어 짜내야 하는 피 말리는 시험. 여기에 믿음직한 아군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점수는 그야말로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야 가자!”

“어…… 우리 3명으로 구성하지 않았나?”

“누가 나갈래?”

토벌 실습에 파티를 허용한 적이 여러 번 있었기에 미리 짜둔 생도들이 저마다가 붙었고, 수가 맞지 않게 된 이들은 빠르게 정리해 버렸다.

그 과정에서 여러 잡다한 다툼이 있었지만 한시가 급한 만큼 파티를 만들지 못한 생도들은 능력 있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발 바쁘게 움직였다.

“소란스럽네.”

그 광경을 본 에리카는 무심하게 이야기했다.

2인 1조라는 것을 오라버니에게 미리 전해 듣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여기에 대해서는 걱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랑 하자.”

신체 능력이 부족한 이세훈에게 자신처럼 보조가 가능한 인물은 반드시 필요할 터. 그런 확신이 있었기에 에리카가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했고.

“아. 미안. 제이크랑 하기로 해서.”

이세훈이 일말의 고민도 없이 거절했다.

“……나랑 하면 안 돼?”

“응. 안 돼.”

사실 모처럼 실전이니 제이크를 제대로 훈련시켜줄 생각으로 고른 것이지만, 거기까지 설명할 필요는 없었기에 이세훈은 재빠르게 선을 그었다.

“너라면 줄지어서 올 테니까 나보다 더 좋은 놈 찾아서 가. 그럼 간다!”

손을 흔든 이세훈이 다른 생도들에게 둘러싸인 제이크에게 향했고, 에리카는 미동도 없이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저기…….”

“눈치 챙겨 임마.”

그 모습을 본 다른 생도들은 권유하기는커녕 혹시나 찍힐까 봐 재빠르게 도망쳤고, 홀로 남은 에리카는 저 멀리서 같이 서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까악!”

그리고 새장 안에 있던 까마귀가 주인을 대변하듯 거세게 울부짖었다.

***

검은연꽃 수해에 존재하는 수많은 땅굴.

D급 몬스터 로터스 래빗의 서식지로 성인 남성이 기어들어 갈 수 있을 만큼 클 뿐만 아니라 땅속 깊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우드득 콰득

그런 땅굴 안쪽에서 울려 퍼지는 소름 끼치는 소리.

뼈가 부서지고 고깃덩어리 으깨지는 소리가 몇 번이고 반복되더니 잠시 후 땅굴에서부터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열 명이 걸어 나왔다.

“후우…… 몬스터 시체로 몸 만드는 건 몇 번을 해도 기분이 더럽네.”

가장 먼저 나온 사내, 윌리는 눈매를 찌푸린 채 투덜거리면서도 자신의 육체를 내려다보았다.

로터스 래빗의 시체와 각종 인공신체를 얼기설기 엮어서 만들어낸 육체. 본능적인 혐오감을 부추기는 모습이었지만 윌리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지난 몇 년간 이보다 더한 육체도 쉴 새 없이 번갈아 탔었기 때문이다.

“대장. 우리 진짜 안 걸리는 거 맞습니까?”

뒤따라 나온 부대원의 질문에 윌리가 몸을 가볍게 풀어주며 대답했다.

“안 걸려. 저놈들 레이더에는 몬스터처럼 나올 테니까. 움직일 때만 조심히 움직이면 돼.”

“살다 살다 저런 코흘리개들 죽이겠다고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네요.”

“그러게나 말이다. 그래도 우리 주인님이 하라는데 별수 있겠냐.”

몸을 다 풀어준 윌리는 곧장 자신의 복부에 나 있는 작은 이음새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활짝 열었다.

딸깍!

상자처럼 단숨에 열린 복부. 그 안쪽의 아공간에 손을 집어넣은 윌리가 검은 보따리 하나를 꺼내 부하에게 던졌다.

“구석구석 잘 심어둬.”

“예.”

고개를 끄덕인 부하들 절반이 지면에 착 달라붙더니 순식간에 숲 너머로 사라졌고, 윌리는 다시 아공간에 손을 집어넣어 한 물건을 꺼냈다.

두근두근─

붉은 글씨가 빽빽하게 새겨진 주먹만 한 큐브.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불쾌한 박동을 지닌 큐브를 살피던 윌리는 자신의 주인, 인형사에게 들었던 명령을 떠올렸다.

‘신목이라…… 얼마나 쓸 만할지 궁금하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십악의 인형사가 보증한 재료.

곧 벌어질 상황을 상상하며 미소를 지은 윌리는 남은 부하들과 함께 조용히 수해의 안으로 향했다.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