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81화
보르시파의 기숙사 주차장.
주말이라 더 한산한 내부에 금빛 스포츠카가 부드럽게 멈춰 서더니 안에서 이세훈과 제이크가 내렸다.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세훈의 감사 인사에 운전석에 앉아 있던 마일즈가 손을 내저었다.
“아냐아냐. 그런 멍청한 짓을 했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아까 일은 정말로 미안했다.”
어깨를 붙잡은 것에 대해 거듭해서 사과하는 마일즈. 자신이 알던 광검이 맞나 싶을 만큼 깍듯한 모습에 이세훈이 신기해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습니다. 솔직히 제가 봐도 수상하게 볼 만했으니까요.”
“그렇지? 역시…….”
“삼촌.”
제이크의 나지막한 부름에 마일즈가 움찔하더니 잠시 풀어졌던 표정을 가다듬었다.
“크흠. 아니. 무조건 내가 잘못했지. 혹시라도 나중에 어깨에 이상이 생기면 제이크한테 이야기해. 내가 전부 책임질 테니까.”
“알겠습니다.”
“아참. 그리고 아까 계승식에 관한 이야기다만…….”
슬쩍 눈치를 살피는 마일즈의 모습에 이세훈은 대강 어떤 이야기일지 알아차리며 먼저 입을 열었다.
“입단속에 관해서는 아리아 선배랑 이야기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래? 하긴 아리아 걔가 그런 일 처리는 빠르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인 마일즈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일단 전례가 없던 일이라 가문에서 조사를 할 것 같은데 상황에 따라서 협조 요청이 들어갈 수도 있을 거야. 보상은 확실하게 해줄 테니까 그때는 긍정적으로 생각해 줘.”
“기회만 주신다면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는 이세훈의 모습에 마일즈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고맙다. 시간만 널널했어도 술이나 같이 마셨을 텐데 작은 형님…… 아니, 가주님이 빨리 오라고 보채서 말이야.”
귀찮다는 듯이 한숨을 푹푹 내쉰 마일즈가 이세훈에게 왼손을 내밀었다.
“다음에 시간 나면 또 보자.”
“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세훈이 손을 맞잡은 순간. 자연스럽게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대상 ‘마일즈 마이어스’와의 인연이 성립되었습니다.]
‘오…….’
회귀 전에는 생긴 적 없는 인연. 그 내용에 이세훈은 손을 놓기 전에 재빠르게 인연을 추출해냈다.
[대상 ‘마일즈 마이어스’에게서 인연을 추출합니다.]
[제작자 ‘이세훈’과의 인연은 Lv.1 입니다.]
“그럼 간다. 제이크 너도 다음에 보자!”
부우웅!
악수를 끝낸 마일즈는 순식간에 스포츠카를 몰며 사라졌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제이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미안해. 뭔가 귀찮은 일에 휩쓸리게 만들었네.”
“그러게 말이다.”
아리아와 대화할 때만해도 조금 특이한 사건이라고만 생각했지만, 방금 마일즈와의 대화를 통해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아리아의 계승식 결과는 가문 내부에서도 비밀이었구만.’
생각해 보면 아리아의 계승식 결과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마일즈가 저렇게까지 놀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가주의 친동생도 모르는 비밀이라…… 이거 좀 깊은 곳까지 발이 들어간 것 같은데.’
좋게 말하자면 더욱 깊은 사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경우에 따라서 목이 댕강하고 잘려나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이어스는 비교적 깔끔하긴 했었지만…… 주의는 해야겠지.’
어느 집단이든 개인으로 상대할 때는 절대 방심해선 안 된다. 당장 회귀 전에도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기에 연합에 협력하지 않았던가.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이놈부터 해결해야겠네.’
멋쩍은 표정을 짓고 있는 제이크를 바라본 이세훈이 담담히 물었다.
“제이크.”
“어, 응. 왜?”
“내가 휘광검을 왜 망치로 때렸는지 알아?”
“그건…….”
이세훈의 물음에 제이크가 잠시 대답을 망설이더니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대답했다.
“내가 휘광검을 제대로 만들지 못해서겠지.”
“이유는?”
“검기를 다루는 실력이 미숙해서잖아. 마지막에 검신이 깨진 것도…….”
자신이 만들어낸 검기조차 감당하지 못하던 꼴사나운 모습. 그 순간을 떠올린 제이크가 부끄러워하던 찰나.
“틀렸어.”
이세훈이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틀렸다고?”
“검기를 다루는 게 미숙했다면 오리진의 검기를 넘겨받을 때부터 문제가 있었겠지. 진짜 원인은 따로 있어.”
“진짜 원인이라니…….”
도저히 짐작조차 가지 않는 내용에 제이크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자 이세훈이 담담히 이야기했다.
“힘 조절.”
“……힘 조절?”
“그래. 휘광검의 검신을 만들어낼 때. 무의식중으로 손에 힘을 빼버리는 바람에 불완전한 상태로 나온 거야.”
“그, 그럴 리가…….”
자신은 분명 전력을 다해 손잡이를 움켜쥐었는데 무의식중에 힘을 빼버렸다니? 쉽사리 믿기지 않았지만, 또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었다.
어찌 됐든 휘광검을 불완전하게 만들어졌고 이세훈은 그것을 바로 알아차리고 고쳐내지 않았던가.
‘정말 원인이 나한테 있다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던 제이크는 무언가 결심한 듯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몇 가지 있기는 하지.”
무의식이라고 하니 어려워 보이지만 결국은 몸에 익은 습관.
그렇기에 ‘간단한’ 충격으로 그 습관을 지우고 다시 쌓는다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었다.
“보자. 일주일 동안 가사상태로 만들어서 감각 극대화시키기, 오감 차단하고 동굴에 집어넣기, 마력을 전부 역행시켜서 일시적으로…….”
“자, 잠깐!”
이세훈의 입에서 나오는 무시무시한 방법들에 제이크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것들 진짜 다 가능한 거 맞아?”
“진짜야. 내가 해…… 보진 않았지만 효과는 봤어.”
회귀 전에 거래했던 고위 영웅들에게 직접 들은 정보인 만큼 위험도와 별개로 효과 하나는 확실했다.
‘전부 해보기도 했고.’
원래라면 까딱 잘못했다간 죽을 수도 있을 만큼 위험한 기행들이지만 적당히 조절하면 ‘비교적’ 안전하게 진행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 자신감 넘치는 이세훈의 모습에 제이크가 가만히 바라보다 물었다.
“어디서 봤는데?”
“……동영상 사이트?”
“…….”
“…….”
갑자기 찾아오는 어색한 침묵.
자신을 묘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제이크의 모습에 이세훈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돈 주고도 못 배울 노하우를 그냥 알려주겠다는데 배가 불러 가지고…….’
예전 같았으면 그냥 알아서 하라고 때려치웠겠지만, 자신이었어도 조금은 미심쩍게 볼 만한 상황이니 이세훈은 좀 더 배려심을 발휘하기로 했다.
‘이놈 성격상 힘들어 보인다고 거절하진 않았을 테고…… 그럴싸해 보이는 게 중요한 거겠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방법을 하나씩 골라내던 그때. 문득 이세훈의 귓가에 과거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몸이 멀쩡한데도 네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제대로 못 쓰고 있다는 뜻이지. 걱정 마라. 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이해시켜줄 테니.’
사부의 밑으로 들어가 가장 먼저 들었던 수업. 떠올리기만 해도 치가 떨렸지만, 지금 제이크에게 이만큼 적절한 방법이 없었다.
“그럼 지금 상황에 유용할 기술을 가르쳐줄게.”
“그것도 동영상으로 배운 건 아니지?”
“아냐 임마. 그리고 내가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기술이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그래?”
이세훈의 설명에 제이크가 의심을 지우고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는 상황을 만들어내던 이세훈의 주력 기술이라고 하니 흥미가 안 생길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방금 말한 방법들보다 절대 쉽지 않아. 이게 맞나 싶은 순간들도 있을 거고. 그래도 날 믿고 배울 수 있겠어?”
“……물론이지.”
자신의 검을, 그 푸른색 검기를 제대로 펼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뭐든 가르쳐줘. 반드시 배워볼 테니까.”
비장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제이크.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세훈은 문득 과거의 자신이 겹쳐 보였다.
‘과연…… 그랬던 건가.’
각오를 다진 자신을 바라보며 묘한 웃음을 보였던 사부.
그때는 왜 그리 재수 없게 웃었는지 몰랐지만, 이제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 각오가 언제까지 갈지…… 그걸 기대하던 표정이었어.’
참 성격 고약한 양반이었구나 싶지만 이세훈은 자신의 사부를 크게 힐난하지 않기로 했다.
“좋아.”
자신 역시 기대되었기에.
***
무투학부의 복도.
오랜만에 학원장실을 다녀온 마광수는 손에 쥐고 있던 큼지막한 보드카를 병나발을 불며 털어 넣었다.
“흐으…….”
입안에 감도는 알코올과 마력의 잔향. 조금씩 올라오는 취기에 마광수가 눈매를 일그러뜨린 채 중얼거렸다.
“루트비히 이 개놈의 새끼…….”
바벨의 다른 사람들이 듣는다면 절로 식은땀을 흘릴 욕지거리. 하지만 당사자인 마광수는 오히려 들으라는 듯이 복도에서 소리쳤다.
“친구끼리 그냥 들어줄 수도 있지…… 돈도 많은 새끼가 속만 좁아서는……!”
요 며칠간 이세훈을 수제자로 만들기 위해 골머리를 싸맸던 마광수는 결국 오랜 친구이자 직장 상사인 루트비히에게 찾아가 도움을 구했다.
지원을 약속받아 그걸로 협상을 시도하거나, 아니면 학원장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강제로 자신의 밑으로 붙이는 방법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야 제대로 배우겠는가. 잘 설득해 보게.’
하지만 기대와 달리 루트비히는 미소를 지으며 단칼에 거절했고, 그 결과 아쉬운 소리만 잔뜩 하고 이렇게 빈손으로 돌아온 것이다.
‘전에는 별 시답잖은 놈들한테 천충검을 가르쳐보라고 권유하던 놈이…… 이제는 가르치겠다고 해도 난리야.’
역시 이세훈이 눈대중으로 천충검을 배워갔다는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가.
얌체 같은 루트비히의 모습을 떠올린 마광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보드카를 다시 들이켰다.
“흐으…… 도대체 뭘로 설득하란 건지…….”
재료는 굳이 자신을 통해서가 아니어도 충분히 구할 수 있었고, 천충검도 거절할 녀석을 다른 기술로 전수해 주겠다며 끌어들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낙제점을 주겠다고 협박이라도 할까 싶었지만 앞에 본 성격상 때려치우고 나가면 나갔지 고개를 숙이진 않으리라.
‘그나마 흥미를 가질 만한 거라면…… 야천인가.’
자신의 애검 ‘야천夜天’을 떠올린 마광수가 진지하게 고민에 잠겼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설 등급의 무구이자 수많은 장인이 한 번이라도 살펴보기를 희망했던 명검.
대장장이라면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다른 놈이면 몰라도 그놈은 야천을 보는 것만으로 천충검의 비전을 더 빼 갈지도 몰라.’
야천은 검이면서 동시에 천충검의 비급과도 같은 물건.
물론 본다고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천충검을 눈대중으로 훔쳐 배운 놈이라면 또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마광수는 문득 자신의 태도를 되새기며 눈매를 찌푸렸다.
“아니지.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돼?”
아무리 재능이 있다지만 굳이 밑천을 다 까발리면서까지 천충검을 배워달라고 애걸복걸할 이유가 있는가.
자신이 너무 저자세로 나갔음을 깨달은 마광수는 단호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이런 기술을 못 배우는데 그놈이 아쉽지 내가 아쉽나?’
세상에 천충검을 가르쳐달라고 애걸복걸하던 녀석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 값어치를 모르는 듯한 이세훈의 모습에 마광수가 입가를 씩 올렸다.
‘아직은 자기가 얼마나 큰 복을 걷어찼는지 모르는 것 같으니까 그런 헛소리가 나오는 거겠지. 몇 가지 응용 기술만 가르쳐주면 제 입으로 가르쳐달라고…… 이런 젠장.’
머리를 조금 굴린다 싶으면 이세훈을 꼬드길 방법을 고민하는 자신. 그 한심스러운 모습에 마광수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놈의 술이 문제야…….”
제정신이었다면 이런 헛소리도 안 했을 텐데.
술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면서도 마광수가 새 보드카를 꺼내며 강의실에 들어선 순간.
“──줘!”
대련장 쪽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
진심이 담긴 절규에 마광수의 눈이 날카로워짐과 동시에 그 몸이 대련장의 문을 걷어차고 안쪽으로 들어섰다.
콰아앙!
우렁찬 굉음과 함께 활짝 열린 문.
손날을 세우며 자세를 갖춘 마광수는 재빠르게 소리가 들려온 대련장 위를 바라보았다.
“이러다가 죽어! 죽는다고!!”
상반신을 피로 물들인 채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 제이크.
“계속 그러고 있으면 죽는 거야! 빨리 피를 끌어들여! 자꾸 그러면 이거 확 부수고 다시는 안 만들어준다?!”
푸른색 십자가를 당장에라도 망치로 부숴 버릴 것처럼 자세를 잡고 협박하는 이세훈.
그 비정상적인 광경에 마광수가 멍하니 바라보았고.
‘……술을 줄이긴 해야겠군.’
헛것을 보게 만드는 술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며 보드카를 아공간 포켓에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