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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80화 (80/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80화

키이잉

오리진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떨림. 계승식의 끝나가는 것을 확인한 마일즈가 제이크가 유지 중인 황금빛 검기를 바라보았다.

‘유지율은 90% 정도인가. 아리아에 비하면…… 아니, 그쪽은 비교하는 게 실례지.’

가문 최초로 선대의 검기를 100% 유지해냈던 아리아. 검술의 재능에 한해서는 사실상 규격 이외의 재능이었기에 예외로 두는 것이 맞았다.

‘어쨌든 이 정도면 S급은 충분히 노려볼 만하겠네.’

A급에 정체된 자신과 차원이 다른 잠재력. 그 재능에 대견스러워하며 마일즈가 휘광검을 다시금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 정도면 전용검도 굳이 만들 필요 없겠고.’

걱정과 달리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린 계승식에 마일즈가 만족스러워하던 그때.

“……음?”

갑작스레 대련장 위로 올라오는 청년.

그게 제이크의 검을 만들어준 친구, 이세훈이라는 것을 확인한 마일즈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왜 저러지?’

뭔가 급한 용무라도 생긴 걸까.

성큼성큼 다가오는 모습을 바라보던 마일즈는 문득 이세훈의 오른손에 쥐어져 있는 물건을 발견했다.

‘마, 망치……?’

도저히 목적을 알 수 없는 모습에 마일즈가 당황하고 있을 때. 대련장 위로 올라온 이세훈이 휘광검의 모습에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역시…….’

검날뿐만 아니라 안쪽까지 스며든 오리진의 황금빛 검기. 겉보기엔 그저 검기가 충만해서 벌어지는 현상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조금 달랐다.

‘저건 검기에 물든 거지.’

검이란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베어내는 물건.

그렇기에 무엇을 담아내고 무엇을 베어내든 결코 거기에 물들어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다른 것이 섞여 버린다면 그 검은 처음과 완전히 다른 검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게 설령 선대의 검기라 할지라도 말이야.’

어떻게 수리해야 할지 방향을 정한 이세훈이 제이크의 뒤쪽으로 향했고, 그 모습에 마일즈의 눈이 깊이 가라앉았다.

‘살의는 없지만…….’

무슨 이유에서든 제이크를 건드렸다간 검기의 통제가 느슨해지면 모두가 다칠 수 있었다.

방호장치가 있어도 위험할 수 있었기에 마일즈가 이세훈을 제압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그냥 두세요.]

귓가에 울리는 담담한 목소리.

그 소리에 따라 시선을 돌린 마일즈는 대련장 아래에서 지켜보고 있는 아리아의 모습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걸 그냥 놔두라고……?’

다른 사람이었다면 개소리 말라고 무시했겠지만, 한 번도 허튼 소리를 한 적이 없는 아리아의 말이다 보니 망설여진다.

그렇게 마일즈가 고민하는 사이 제이크의 바로 뒤에 선 이세훈이 흑염의 망치를 뒤로 젖혔고.

카앙!

흐리멍덩해진 휘광검의 검신을 있는 힘껏 후려갈겼다.

“큭?!”

손아귀가 터질 것처럼 울려 퍼지는 강한 진동.

검기를 받아들이느라 완전히 집중하고 있던 제이크는 깜짝 놀라면서도 반사적으로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쩌저적!

검신 전체로 퍼져나가는 거대한 균열과 그 틈새로 새어 나오는 푸른색 빛.

당장에라도 부서질 것 같은 그 위태로운 모습에 제이크의 안색이 창백해졌지만, 실제로 일어난 것은 달랐다.

우웅─

휘광검의 검신 곳곳에 별처럼 반짝이던 마력들이 균열을 타고 하나로 이어졌고, 자연스레 그 빛이 더욱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푸른빛이 휘광검을 물들였던 황금빛의 검기를 모조리 밀어낸 순간.

스스스

오리진의 검기가 푸른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뭐…….”

누구에게나 선대의 검기를 전해주던 오리진.

가문의 이정표이자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그 검이 먼 후대의 색, 푸른색 검기로 물들어가는 모습에 마일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 무슨 일이…….’

상상도 해본 적 없는 광경에 마일즈가 어찌할 줄 모른 채 굳어버렸고, 그것은 휘광검을 쥔 제이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이건…….”

오리진의 검기를 머금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감각.

두 손을 가득 채우다 못해 터져 버릴 것 같은 충만감에 제이크의 팔이 떨리기 시작했다.

비슷한 크기의 양손검보다 훨씬 가벼웠던 휘광검의 무게가 갑자기 수백 배로 늘어난 것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잠깐…….’

아무리 악력이 강하다 해도 무게를 견뎌내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전신을 짓누르는 무게감에 제이크가 넘어지기 전에 반사적으로 손에 힘을 풀었고.

파카앙!

휘광검의 검신이 산산조각 났다.

“아…….”

허공에 흩뿌려지는 푸른빛의 입자.

방금까지 휘광검에서 느껴졌던 무게감이 거짓말처럼 사라지자 제이크는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차렸다.

‘내 검기를 내가 못 견딘 거라고……?’

완등자에 근접했다던 선대의 검기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던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검기를 견디지 못하다니.

그 어처구니없는 사실에 제이크가 멍하니 자루만 남은 휘광검을 보고 있을 때.

“쓰읍…….”

옆에 서 있던 이세훈이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아리송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이세훈. 그 모습에 제이크가 무슨 소리냐고 물어보려던 찰나.

“너!”

뒤늦게 정신을 차린 마일즈가 이세훈에게 다가가며 빈손으로 어깨를 붙잡았다.

“방금 제이크의 검에 무슨 짓을 한 거야? 네가 그 푸른색 검기를 만들어낸 거냐? 도대체 어떻게…….”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탓인지 흥분하며 이야기하는 마일즈. 자연스레 어깨를 움켜쥔 손에도 힘이 들어갔는데 그 압력에 이세훈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이 양반이 힘 조절은 해야지…….’

본인이 A급 영웅이고 상대가 생도라는 것도 잊은 것인가. 줄어들기는커녕 점차 강해지는 압력에 이세훈이 막 움직이려던 찰나.

탁!

마일즈의 손이 쳐 내지며 이세훈의 몸이 뒤로 당겨졌다.

“괜찮니?”

허리를 부드럽게 받쳐주는 손과 앞을 가로막듯 서서 바라보는 아리아. 위기에서 구해주는 기사처럼 서 있는 아리아의 모습에 이세훈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예. 뭐…… 부서지진 않은 것 같네요.”

“그래. 다행이네.”

부드럽게 웃어 보인 아리아는 그대로 손을 떼어내고 아직도 상황파악을 못 한 마일즈를 바라보았다.

“작은아버지는 조금 진정하시는 게 좋겠어요.”

“뭐? 그게 무슨…… 아.”

쳐 내진 손과 이세훈의 어깨를 번갈아 본 마일즈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미, 미안하다. 내가 너무 흥분해서…….”

“그럴 수도 있죠. 생각이 다 정리되실 때까지 손님은 제가 모시고 있을게요. 제이크?”

“예, 예!”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제이크가 아리아의 부름에 재빠르게 대답했다.

지금 자신의 누이가 짓고 있는 미소가 상당히 심기가 불편할 때 나오는 것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아버지가 진정되시면 같이 올라오렴.”

이세훈과 단둘이서 이야기하겠다는 아리아의 말뜻을 이해한 제이크가 재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습니다.”

방금 일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은 게 많지만 눈치 없이 지금 꺼냈다가는 인생이 고달파진다.

그런 동생의 모습에 아리아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그럼 올라가서 이야기 좀 할까?”

단숨에 상황을 정리하고 자신을 이끌고 가려는 아리아. 새삼 이곳에서 누가 가장 높은지 알게 된 이세훈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가시죠.”

***

별장 뒤쪽의 안뜰로 나온 이세훈은 원형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아리아와 마주 앉았다.

“흐음…….”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빤히 바라보는 아리아.

긴 머리카락은 햇살을 머금은 채 금빛으로 반짝였고 짙게 가라앉은 눈동자는 황금을 깎아낸 것처럼 빛난다.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과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외모.

하지만 이세훈은 그 모습을 볼 때마다 회귀 전의 광경이 덧씌워지듯 보였다.

‘이것도 별 볼 일 없는 검이었네.’

권태로움에 찌든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질린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아리아. 그리고 피로 물들어 있는 자신의 두 손.

그 불쾌하기 짝이 없는 광경에 이세훈의 눈매가 살짝 찌푸려지던 순간.

[깨어나는 꿈이 발동되었습니다.]

화악─!

머릿속의 잡념을 쓸어가는 싸늘한 감각.

눈앞을 덧씌웠던 기억들이 모조리 사라진 것을 확인한 이세훈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도 병이구만.’

회귀 전의 일은 최대한 분리해서 봐야 하는데 몇몇 부분들은 쉽지가 않다.

이세훈이 살짝 난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을 때.

“교류회 때는 조금 애매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리아가 부드럽게 웃었다.

“정말로 나를 싫어하는구나?”

“…….”

최대한 감정을 숨기려고 했지만 아리아처럼 감각이 예민한 사람 앞에서 어디 그러기가 쉽겠는가.

어느 정도 예상한 상황이었기에 이세훈은 미리 준비해둔 답을 꺼냈다.

“저도 대장장이로서 자부심이라는 게 있거든요.”

“자부심?”

“제가 만든 검을 나뭇가지랑 똑같이 취급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좋아하겠습니까.”

“…….”

이세훈의 대답에 아리아의 눈이 살짝 동그래지더니 이내 입가를 가리며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구나. 그 부분을 간과해 버렸어.”

자신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아리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그럼 좀 더 정진해야겠네. 난 내가 마음에 든 상대한테 미움받고 싶지 않거든.”

“……그러게 말입니다.”

대놓고 실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아리아의 모습에 이세훈은 속으로 콧방귀를 꼈다.

‘진짜 마음에 들었으면 인연이 성립됐겠지. 거짓말은…….’

처음 제이크의 검을 보고 칭찬했을 때도 그렇고 아리아의 반응은 결코 겉만 보고 판단해선 안 됐다.

‘이래서 뭘 보여주기가 싫었던 건데.’

방금 보여준 것도 마이너스가 아니었을까 싶어 이세훈이 고민하고 있을 때.

“아까 만들었던 검.”

그 반응을 살피던 아리아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꽤 흥미로웠어.”

경악한 마일즈에 비하면 미적지근하기 그지없는 반응. 하지만 이세훈은 그것이 방금과 달리 진짜라는 것을 깨닫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게 그 정도라고?’

그냥 살펴보다가 고칠 부분이 보이길래 건드렸을 뿐인데 영웅 등급 무구로 이만큼 호의적인 평가를 들을 줄이야.

이세훈이 떨떠름해 하자 아리아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오리진에 담긴 ‘파편’은 상당히 유동적인 힘이야. 상대가 비어 있을 때는 안을 채워주고, 반대로 꽉 차 있을 때는 자신의 빈 부분을 채우려고 하지.”

선대의 검기, 정확히는 그것을 만들어내는 힘의 근원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아리아.

그 내용에 이세훈이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그럼 제이크가 맨 처음 만들어낸 휘광검의 검신에는 빈 부분이 있었다는 거네요.”

“맞아. 물론 그 원인을 따지자면 우리 바보 같은 동생이지만…….”

“그런 부분도 보완해 줄 수 있는 게 장인의 실력이겠죠.”

자신이 하려던 말을 완벽히 가로채는 이세훈의 모습에 아리아가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참 신기하네. 몇 번 만나지도 않았는데 친숙한 느낌이 들어. 이게 흔히 말하는 상성이 좋다는 걸까?”

“제가 사람 상대하는 데 좀 익숙해서 그럴 겁니다.”

상성이 좋다는 말에 빈말로도 동의하지 않는 이세훈.

그 모습이 마치 목줄에 매여 옴짝달싹 못 하면서 끝까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들개처럼 보여 아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정말 재밌는걸.’

사람과 대화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게 얼마만일까. 이세훈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진 아리아는 가장 적절해 보이는 이야깃거리를 꺼냈다.

“아무튼 네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어.”

“제안이라 하시면?”

“모처럼 괜찮은 검을 얻었는데 이대로라면 제이크가 계속 엉터리로 사용할 것 같거든. 도와줄 수 있을까?”

“흐음…….”

아리아의 제안에 잠시 고민하던 이세훈은 담담하게 물었다.

“보수는 어떻게 됩니까?”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면 합당한 범위 내에서 뭐든지.”

상당히 애매모호한 대답이었지만, 아리아가 저리 말한다면 정말 어지간한 것은 다 맞춰주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군말 없이 받아들이는 이세훈의 모습에 아리아는 흡족해하며 미소를 지었다.

“부족한 동생이지만 잘 부탁할게.”

“걱정 마세요. 그럼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그래. 조심히 들어가.”

고개를 꾸벅이며 별장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이세훈은 문득 한 가지가 떠올라 등을 돌린 채 물었다.

“선배는 계승식 때 어떻게 됐습니까?”

오리진에 담겨 있다던 파편은 아리아의 재능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그 물음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고.

“증조할아버님의 검기.”

권태로움이 담긴 아리아의 대답이 들려왔다.

“지금보다 좀 더 밝은색이었어.”

선대의 검기는, 이미 더 뛰어난 검사의 것으로 대체된 지 오래였다. 그 예상을 뛰어넘는 대답에 이세훈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재수없네.’

역시 자신과 아리아는 맞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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