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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79화 (79/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79화

바벨이 자리 잡은 인공섬은 규모가 규모인 만큼 각 구역에 다양한 건물들이 마련되어 있다.

휴양을 위한 리조트나 바벨과 협력 관계를 맺은 기업이나 길드의 연구소. 그리고 유력가문들의 ‘별장’ 역시 그런 건물들 중 하나였다.

“이쪽이야.”

“흐음…….”

제이크와 함께 차를 타고 섬의 바닷가 쪽으로 온 이세훈은 마이어스 가문의 별장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검소한데?’

10명은 거뜬히 지낼 수 있는 크고 화려한 건물이었지만 오는 길에 봤었던 다른 별장들과 비교하면 평균에도 못 미치는 크기.

예상 밖의 모습에 이세훈이 제이크의 뒤를 따라 현관 안으로 들어섰을 때.

“음?”

거실 쪽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그리고 상대도 그것을 느꼈는지 복도 끝쪽에서 한 사람이 불쑥 튀어나왔다.

꽁지머리로 대충 묶은 긴 금발머리. 후줄근한 하얀 와이셔츠와 구겨진 정장 바지. 피로에 찌들어 보이는 얼굴의 사내는 제이크를 발견하더니 두 눈을 반짝거렸다.

“제이크!!!”

“사, 삼촌?!”

“요놈 새끼!!”

눈 깜짝할 사이에 복도를 가로지르고는 제이크의 양 겨드랑이를 붙잡아 번쩍 들어 올리는 사내.

190cm를 가볍게 넘기는 키 때문에 170cm 초반인 제이크가 어린아이처럼 대롱대롱 들렸는데 그 모습에 이세훈이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요동쳤다.

“사, 삼촌. 옆에 친구…….”

“친구가 뭐 어때서! 반년 만에 만난 삼촌 반겨주는 게 먼저 아냐?!”

“으거어걱!”

장난감처럼 제이크를 마구 털어대며 쾌활하게 미소를 지어 보이는 사이, 마일즈 마이어스를 본 이세훈이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광검한테 이런 모습이 있었을 줄이야…… 의외인데.’

전장에서 피를 보기만 하면 전투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쉬지 않고 검을 휘둘러 ‘광검狂劍’이라 불렸던 A급 영웅.

무모한 전투 방식과 달리 꽤 오랫동안 살아남은 인물이었는데, 말년에는 준 S급으로 인정받을 만큼 뛰어난 검사였다.

‘문제는 본인 가문에 소속된 사람이 아니면 개무시한다는 점이었지만…….’

그 괴팍한 성격 때문에 회귀 전에 몇 번 충돌을 일으킨 적이 있었는데 아리아와 거래를 시작한 이후로는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들었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이번에는…….’

어떤 식으로 반응을 보일지 이세훈이 잠자코 지켜보고 있을 때. 한참 동안 가지고 놀던 마일즈가 제이크를 아래로 내려준 다음 고개를 돌렸다.

“손님 앞에서 너무 즐겼네. 기분 나빴다면 미안하다.”

“반년 만에 만났으면 그럴 만도 하죠. 저는 신경 쓰지 말고 좀 더 즐기셔도 됩니다.”

담담한 이세훈의 대답에 마일즈가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씩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제이크가 친구를 잘 만들었네. 이 녀석 삼촌인 마일즈 마이어스다. 편하게 마일즈 씨라고 불러.”

“이세훈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이 친근하게 악수를 나누고 있을 때. 눈 깜짝할 사이에 엉망이 된 제이크가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보다 삼촌은 갑자기 무슨 일이세요? 요즘 엄청 바쁘시다더니…….”

“왜 왔겠냐? 우리 조카가 드디어 계승식 한다길래 바로 지원해서 달려왔지.”

“……그럼 삼촌이 진행하시는 거예요?”

“그렇지. 왜? 작은형님이 아니라서 실망했어?”

마일즈의 물음에 제이크가 움찔거리더니 금방 표정을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아버지는 삼촌보다 더 바쁘시잖아요. 기대도 안 했어요.”

“실망했으면서 허세 부리기는…… 나머지는 안에서 이야기하자. 친구도 따라와.”

이세훈과 제이크를 거실의 소파에 나란히 앉힌 마일즈는 부엌으로 향하며 물었다.

“둘 다 마실 건? 어지간한 건 다 있어.”

“전 괜찮아요.”

“저도 괜찮습니다.”

“그래? 그럼 뭐 나만 마시지 뭐.”

찬장에 장식된 양주를 덥석 집은 마일즈는 그대로 맞은편 소파에 앉으며 엄지로 가볍게 뚜껑을 튕겼다.

퐁!

가볍게 뽑혀 나오는 코르크와 자연스럽게 병째로 마시기 시작하는 마일즈.

누가 보면 물이라도 마시는 듯한 그 자연스러운 모습에 이세훈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때부터 알콜 중독이었나?’

마광수만큼이나 물 대신 술을 달고 다니던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때도 이러고 있었을 줄이야.

고위 영웅들의 간이 얼마나 튼튼한지 이세훈이 새삼스레 느끼고 있을 때. 옆에 앉은 제이크가 부끄러움에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이야기했다.

“삼촌…… 그런 건 나중에 드시면 안 돼요?”

“후우…… 안 돼 안 돼. 요즘 이걸 안 마시면 머리가 영 안 돌아가거든.”

단숨에 양주를 절반이나 마신 마일즈는 실실 웃으며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번에 얻었다던 그 검은?”

“하아…… 여기요.”

제이크가 한숨을 내쉬며 아공간 포켓에서 휘광검을 꺼내주자 마일즈가 비어 있는 손으로 건네받았다.

“꽤 특이하게 생겼네. 어디 보자…….”

한 손으로 휘광검을 가볍게 살펴보던 마일즈의 얼굴에 의문이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움직임이 딱 멈췄다.

“…….”

반대쪽에 들고 있던 양주도 탁상에 내려놓고 진지한 얼굴로 휘광검을 살펴보기 시작한 마일즈.

그렇게 한참이 지나더니 제이크 옆에 앉아 있던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아리아한테 듣기론 네가 만든 검이라던데. 진짜야?”

“예. 제가 만들었습니다.”

“혹시 이거 만들 때 제이크 피라도 썼어?”

잠깐 살펴본 것만으로 검에 들어간 재료를 파악해내는 마일즈. 무구에 대해 상당히 해박해 보이는 그 모습에 이세훈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제이크의 피를 이용하면 무구가 부서지는 현상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렇구만. 확실히 이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아니, 했었더라도 시도도 못 했을 방법이야.”

발상까지는 가능하지만 그것을 실현하기에는 필요한 것이 너무나도 많다. 그런데 그것을 제이크와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완성해 내다니.

‘아리아가 흥미롭다길래 무슨 별종인가 했더니…… 말도 안 되는 녀석이었네.’

손에 들린 휘광검을 다시 살펴본 마일즈는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물었다.

“일단 계승식에 사용하기에 문제는 없는데…… 너 이거 많이 위험한 방식이었던 건 알고 있지?

“생체 무구와 관련된 부분이라면 알고 있습니다. 아리아 선배에게도 주의받았고요.”

이세훈의 대답에 마일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정도면 문제없긴 한데 그래도 안 쓰는 게 좋아. 인형사 그놈 때문에 특히 경계 받는 분야거든.”

영웅의 시체를 재료로 사용해 생전의 능력을 재현할 수 있는 도구까지 만들어낸 인형사.

초창기에 어느 정도 허용되고 있었던 생체 무구 분야가 엄격하게 관리받게 된 것도 모두 인형사 그 미치광이 한 명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미 만든 건 어쩔 수 없지만…… 마인들한테 후원받고 싶은 거 아니면 휘광검의 제작 과정에 대해서도 말하지 마.”

말이 후원이지 납치해서 온갖 금제를 걸어둔 다음에 무구를 만들어내는 도구로 쓰일지도 모른다.

마일즈의 진심이 담긴 조언에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슬슬 일어나볼까.”

남아 있는 양주를 단숨에 털어 넣은 마일즈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바라보며 고개를 까딱였다.

“따라와.”

마일즈와 함께 지하로 이어진 계단을 타고 내려가자 천장의 불이 켜지며 깔끔하게 꾸며진 훈련장이 나타났다.

최신식 단련기구와 방호장치가 설치된 대련장까지 준비되어 있는 내부. 그중 대련장 위로 곧장 올라간 마일즈가 이세훈에게 손짓했다.

“친구는 혹시 모르니까 멀리 떨어져 있자. 방호장치가 있긴 한데 바벨 안에 있는 것만큼 튼튼하진 않거든.”

“알겠습니다.”

“제이크 너는 검 들고 올라오고.”

“……예.”

제이크가 휘광검을 쥔 채 대련장 위로 올라가자 맞은편에 선 마일즈가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아공간 포켓을 두드렸다.

후웅!

허리춤에서 가볍게 뽑혀져 나오는 황금색 검.

얼마나 오랫동안 손질을 안 했는지 검날의 이가 다 나가 톱처럼 뾰족했는데 그 후줄근한 모습과 별개로 검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예사롭지 않았다.

투툭

핏물이 흐르는 것처럼 아래로 뚝뚝 떨어져 대련장의 바닥에 박히는 황금빛 기운. 그 기괴한 현상에 이세훈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마력이라기보다는…… 검기인가?’

검안에 축적된 검기가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것으로 보였는데 눈여겨볼 점은 마일즈가 자신의 마력을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는 건 다른 사람이 미리 불어 넣어둔 검기라는 건데…… 도대체 누구지?’

회귀 전에도 본 적 없는 이상한 무구에 이세훈이 흥미롭게 보고 있을 때.

“증조할아버님부터 쭉 내려온 검이야.”

기척도 없이 옆에 나타난 아리아가 담담히 설명했다.

“우리 가문의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는 물건이지.”

“……인기척은 좀 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반사적으로 공격할 뻔했던 이세훈이 숨을 고르자 아리아가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바로 반응했으면서 약한 소리 하네. 위장이니?”

목소리를 듣자마자 가라앉혔던 살의조차 놓치지 않는다.

여전히 초인적인 아리아의 감각에 이세훈이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담담히 대답했다.

“그러다가 공격하면 큰일 나지 않습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나 때문에 망설이는 버릇이 생기면 미안해지잖아.”

자신의 공격 정도는 간단히 받아낼 수 있으니 그냥 공격하라는 아리아. 그 엉뚱한 대답에 이세훈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냥 제대로 기척을 드러내면서 오시면 안 됩니까?”

“그건 안 되겠네. 나한테 나쁜 버릇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말이 통하지 않는 아리아의 모습에 이세훈이 한숨을 내쉬며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계승식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

“간단해. 제이크가 저 검, ‘오리진Origin’에 자신의 검을 맞댄 다음 흘러나오는 검기를 넘겨받을 수 있으면 돼.”

“검기를 넘겨받는다고요?”

상당히 기묘한 방식에 이세훈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아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완등자에 근접했다던 증조할아버님의 검기를 직접 느끼고 정진하라, 라는 의미야. 가문의 검술에 얼마나 숙달됐는지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고.”

아리아의 설명에 이세훈이 마일즈에 손에 들린 오리진을 다시 바라보았다.

‘검기를 넘겨 받는다라…… 방법 자체는 괜찮네.’

마이어스 가문도 세대를 거치며 과거에 비해 검술이 달라졌겠지만, 그 근원은 아직도 유지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같은 근원을 공유하며 더 높은 경지에 올라섰던 영웅의 검기를 직접 느낀다면 제이크 같은 천재들은 여러 가지를 깨달을 수 있으리라.

“원래는 계승식의 결과를 참고해서 몸에 딱 맞는 전용검을 만들어주는데, 제이크는 순서가 반대로 돼버렸네.”

아리아의 이야기에 이세훈은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전용검이라…….’

과연 휘광검은 제이크의 몸에 ‘완벽히’ 맞췄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일까.

이세훈이 바라보는 동안 대련장 위에서도 계승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자. 그럼 슬슬 한번 꺼내봐.”

“예!”

마일즈의 이야기에 제이크가 곧장 휘광검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까드득

흘러나온 결정수가 압축되어 만들어지는 푸르스름한 검신. 별빛이 담긴 듯한 그 신비로운 형태에 마일즈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말이 검이지 사실상 검기나 다름없네.’

검신 안쪽에 압축된 채 빛나고 있는 마력들. 방출이 제대로 되지 않아 절삭력은 떨어졌지만 강도는 검기와 부딪쳐도 견뎌낼 수 있을 만큼 강했다.

‘특수성으로 영웅 등급을 받은 줄 알았더니…… 아주 제대로 만들어졌어.’

휘광검에 대해 평가를 다시 한번 수정한 마일즈는 손에 들린 오리진을 앞으로 내밀었다.

“방법은 알지?”

“예.”

“긴장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마일즈의 이야기에 제이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휘광검의 검신을 오리진에 가져다 댔다.

우웅─

아래로 흘러내리던 황금빛의 검기가 자연스럽게 휘광검의 검신으로 옮겨가 검날에 자리를 잡는다.

‘이게…… 검기…….’

검 안쪽이 가득 들어차는 듯한 충실감과 무엇이든 베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선대의 검기를 느낀 제이크는 홀린 듯이 그 감각을 쫓았고 마일즈는 맞은편에서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검 한번 제대로 휘둘러본 적 없는 녀석이 이 정도로 유지해 내다니…….’

역시 재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뒤늦게 빛을 보는 조카의 모습에 마일즈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깨닫기를 빌며 오리진의 검기를 계속해서 넘겨주었다.

그렇게 대련장 위의 두 사람이 계승식에 집중하고 있을 때.

“흐음.”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리아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나쁘지 않네. 생각보다 잘 만들어졌는걸.”

“……그렇습니까?”

“물론이지. 그동안 검술도 제대로 수련 못 했던 제이크가 저만큼 검기를 안정적으로 받아내고 있잖아. 훌륭한 검이야.”

화사하게 웃으며 이야기한 아리아가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역시 학과수석이네.”

역대 생도들 중에서 최강이라고 칭송받는 아리아 마이어스의 인정. 누구라도 어깨가 으쓱일 수밖에 없는 칭찬이었지만, 이세훈은 무언가 찜찜함이 느껴졌다.

‘말하는 게 뭔가…….’

화사한 겉모습과 달리 속이 텅 비어 있는 느낌. 그 내용에 이세훈은 제이크의 손에 들린 휘광검을 다시 보았다.

황금빛의 검기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유지하고 있는 푸른빛의 검신. 그리고 두 색의 경계선이 아주 살짝 흐려진 모습이 이세훈의 눈에 들어왔고.

“다음에도…….”

“잠깐만요.”

아리아의 말을 끊으며 대련장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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