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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77화 (77/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77화

네팔에 위치한 에베레스트 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과거에도 기후변화가 극심한 고산이었지만 마력이 생겨난 지금은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쿠구구궁!

화창한 날씨에 갑작스레 몰아치는 강풍.

거대한 바위조차 가볍게 날려 버릴 바람이 쉴 새 없이 정상 부근을 할퀴었고 체온과 마력을 통째로 얼리는 한기가 차갑게 내려앉는다.

마력이 생겨나고 변이가 일어난 지역 중에서도 극심한 장소. 그 험악한 고산의 위에 이질적인 소리가 끼어들었다.

끼익─

바람에 따라 앞뒤로 천천히 흔들리는 갈색 흔들의자.

옆에는 새하얀 장궁이 놓여 있었고 위에는 새하얀 중절모와 코트를 걸친 노파가 몸을 편히 기대고 있었다.

한 줄기로 묶은 새하얀 머리카락과 지그시 감은 두 눈. 고산의 험악한 환경을 마치 리조트처럼 즐기고 있던 노파, 하백연이 무선이어폰을 낀 채 입을 열었다.

“몸통이나 한번 찾아볼까 해서 몰아넣었더니 몽환마의 은신처로 도망가더라고. 그래서 그냥 다 죽였다.”

-다 죽였다고? 몇 놈이었는데.

“34마리. 14마리가 A급이고 나머지는 B급이었어. 규모가 꽤 되던데.”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하백연의 이야기에 마광수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몽환마가 은신처를 만들어줄 정도면 어느 정도 연차가 된 녀석들이었을 텐데. 누가 들으면 졸개만 잡은 줄 알겠군.’

외부에 알린다면 대규모 소탕이라며 떠들썩해질 사건.

다른 영웅이었다면 자신의 명성을 위해 발표했겠지만, 하백연은 아무런 관심도 없어 보였다.

그런 것 자체에 무관심하기도 했고 완등자인 하백연에게 그 정도 마인들은 언제든지 죽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증거라고 할 만한 건 하나도 못 찾은 건가?

“그런 셈이지. 마인을 써먹는 놈들이 그 정도 대비도 안 해두겠냐. 이미 꼬리들도 다 죽었을 거다.”

-쯧. 쉽게 풀리지 게 없구만.

본래 목적인 각 공방의 관계자들을 보호하는 것은 성공했지만 근본적인 원인, 바르무트 가문을 압박할 수단을 얻지 못한다면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

휴대폰을 쥔 채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마광수의 모습에 하백연이 피식 웃었다.

“인상 펴라. 그 얼굴에 주름 더 생기면 꼴 보기 싫으니까.”

-……보지 마라.

“보는 게 아니라 보이는 거다.”

후우웅!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에베레스트의 정상에서 바벨이 세워진 북태평양의 인공섬까지 수천 킬로미터의 거리를 아무렇지 않게 꿰뚫어 본다.

그 비정상적인 시력, 아니, 그런 개념을 넘어선 능력에 마광수가 짜증스럽게 하백연이 있는 방향을 노려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한 가지 부탁 좀 하자.

“그 친구 좀 지켜봐달라고?”

-……그래. 네가 끼어든 걸 알았으니 공방은 안 건드리겠지만 대신 그놈을 더 집요하게 노릴 수도 있어.

공방을 노리는 것도 어떻게 보면 바르무트 가문의 입장에서는 간단하면서도 온건한 해결책.

하지만 그것이 하백연에 의해 불가능해졌으니 이제는 방향을 틀어 모든 원흉인 이세훈을 노릴 가능성이 높으리라.

‘바벨뿐만 아니라 바깥 어디든 노릴 수 있으니 주의를 기울여야 해.’

자신도 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 곁에서 지켜줄 수도 없는 노릇. 그러니 최선의 방법은 어디든 보이는 하백연에게 경호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흐음…….”

진중한 마광수의 표정에 하백연이 턱을 쓰다듬다 대답했다.

“안 되겠는데.”

-뭐?

“예전이면 겸사겸사 봐줬을 텐데…… 여유가 없어졌거든.”

담담한 하백연의 대답에 마광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누구든 사정에 따라 여유가 없어질 수도 있지만, 그게 완등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생긴 거냐?

“검은 바다가 조금씩 움직이고 있어. 확실치는 않은데…… 뭔가 일어날 수도 있어.”

하백연은 원견사라는 별명답게 세계 전체를 보고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은 아니었다.

남극을 뒤덮은 만마의 늪. 십악과 같은 강력한 마인들. 그리고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여섯 개의 마경.

그중 ‘검은 바다’라 불리는 마경이 갑작스럽게 남극해에서 천천히 북상하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 쪽도 요즘 뭔가 뒤숭숭하고 신경 쓸 게 많아. 여유가 있으면 살펴보겠지만 장담은 못 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누구에게든 우선순위가 있는 법.

당장 마광수 역시 도플갱어의 위치를 안다면 그쪽을 우선시했을 것이기에 아쉬워하면서도 미련을 접었다.

그런 마광수의 모습을 바라보던 하백연이 다른 곳을 슬쩍 쳐다봤다가 씩 웃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지금 상황이 꽤 재밌게 돌아가니까.”

-뭐가?

“기다리다 보면 알게 될 거다. 공방은 계속 봐줄 테니 약속대로 조카 손주랑 자리나 제대로 만들어줘.”

할 말을 끝낸 하백연이 전화를 끊었고 마광수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던 하백연이 돌연 시선을 돌렸다.

“흐음. A급인가.”

중국의 한 도심 골목길. 맨홀 뚜껑을 열고 조심스레 빠져나오는 마인.

처리 목록에 있던 마인이라는 것을 확인한 하백연은 흔들의자에 기대어져 있는 새하얀 장궁의 시위에 손을 가져다 댔다.

투웅─

검지로 가볍게 튕겨낸 활시위.

하지만 그 끝으로부터 튕겨져 나간 푸른색 화살은 주변의 돌풍을 찢어발기며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가 마인의 정수리 위로 정확히 떨어졌다.

터엉!

한 줌의 핏물로 사라진 마인. 그 모습을 바라본 하백연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의자에 몸을 기댔다.

끼익─

그리고 눈보라가 사라진 화창한 고산 아래서 흔들의자가 천천히 움직였다.

* * *

[바르무트 가문. 양산 무구 산업 전면 재검토]

[가주 막스 바르무트 ‘내실을 다지고 준비 중인 프로젝트 위주로 다시금 움직일 것.’]

[바르무트를 물리친 중소공방들. ‘서로 힘을 합하여 약소 장인들을 보호할 새로운 단체 만들 것’]

전 세계의 뉴스 사이트를 뒤덮은 속보들.

무구 산업에서 거래량으로 따지면 가장 큰 양산형 무구 시장. 거기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던 바르무트 가문이 중소규모 공방들에게 항복을 선언한 것이다.

그 믿기지 않는 소식에 사람들이 깜짝 놀랐고, 뒤늦게 소식을 접한 이들은 자연스레 이 모든 사건의 시발점인 류은하의 리뷰 영상에 몰려들었다.

[D급 양산형 장검 비교 먹방(진짜 먹음)] - [류은하]

조회수 : 94,282,146 댓글 : 150,216

일주일도 안 돼서 1억에 가까워진 조회수.

후속으로 올라온 영상들 역시 기본적으로 천만을 넘겼는데 무구를 음식처럼 씹어 먹으며 진지하게 리뷰하는 그 모습이 화제를 모았기 때문이다.

진정되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상황. 그 반응을 확인한 이세훈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 정도 화제가 될 건 예상했지만…… 이렇게까지 반응이 좋을 줄은 몰랐네.’

회귀 전에는 알지 못했던 류은하의 새로운 재능. 이참에 계속 먹방을 해서 돈이나 벌어보는 것도 어떨까 하고 이세훈이 잡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진짜 장난 아니네…….”

어깨 위로 고개를 내민 레아가 신기한 표정으로 휴대폰의 뉴스들을 바라보았다.

“무슨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어떻게 바르무트가 하루아침에 갈려 나가. 이거 합성 아니지?”

“인터넷 조금만 돌아다녀도 나오는데 합성은 무슨. 뉴스도 안 봐?”

이세훈의 핀잔에 레아가 어깨에 턱을 얹으며 투덜거렸다.

“어디에 사는 성질 나쁜 후배가 검기 무구 양산화에 쓸 인챈트 좀 빨리빨리 개발하라고 닦달하는 바람에 뉴스 볼 시간도 없어졌거든. 몰라서 미안하네요~”

근래 얼마나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지 눈가에 다크서클이 가득한 레아. 그 모습을 슬쩍 바라본 이세훈이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못하겠으면 말고.”

“……못하는 게 아니라 맡긴 일에 비해 시간이랑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거야. 엄연히 다른 거라고!”

다른 것도 아니고 수십 개의 기업과 연구진들이 갈려 나간 무구 산업의 난제를 해결하고 있는 중인데 어떻게 저리 무신경할 수 있단 말인가.

울분이 담긴 레아의 말에 이세훈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뭐라 했어? 난 준비 다 끝났으니까 빨리 좀 만들라고 했었지. 겨우 그걸로 앓는 소리는…….”

몇 달 안에 완성 못 하면 가둬 버리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뭐가 문제란 말인가.

진심으로 의아해하는 이세훈의 모습에 레아가 미소를 지었다.

“우리 후배는 나중에 꼭 혼자서 사업해. 아니지, 주변에서 홧병나서 다 죽고 자연스럽게 혼자가 되겠네. 하하핫.”

일이 힘든지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레아의 모습에 이세훈은 더 상대해 주는 대신 챙겨온 신용카드를 꺼냈다.

“받아.”

“이게 뭔데?”

“예산 부족하다며. 한 120억쯤 들어가 있다니까 그걸로 필요한 거 있으면 사.”

설계도를 넘겨준 대가로 각 공방에게서 받은 계약금.

판매수익은 초기투자금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고 했지만 저 정도면 레아와 자신이 연구비로 쓰고도 남으리라.

“…….”

이세훈의 이야기에 레아가 멍한 표정으로 손에 들린 신용카드를 바라보다가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사랑합니다. 사장님.”

“예예. 이제 헛소리 말고 일이나 하러 가세요.”

“넵!”

깍듯이 대답한 레아가 어질러진 강의실 한쪽으로 달려갔고 그 모습을 어이없게 바라보던 이세훈은 다시금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슬슬 배후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나오기는 하네.’

한두 개도 아니고 바르무트가 담당하고 있는 모든 양산형 무구의 상위호환이 동시에 나왔으니 의심을 안 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표면상으로는 김인철 교수가 구심점으로 나올 테고…… 그러면 가장 의심받는 건 루트비히 그 양반이겠지.’

자신과 김인철이 가까운 사이기는 하지만 상식적으로 이제 막 입학한 신입생이 이 모든 설계도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미친놈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아마 대다수는 루트비히가 여러 장인을 남몰래 지원해 설계도를 개발했고, 그걸로 양산형 무구 산업을 차지한 것으로 생각하리라.

‘완등자가 개입했다고 생각했으니 대부분 안 건드리겠지만…… UD 그룹은 또 모르겠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재벌인 UD 그룹의 총수, 위르겐 크루거 역시 루트비히와 같은 완등자인 만큼 눈치를 보며 물러설 리가 없다.

거기에 바르무트와 혈연으로도 맺어진 협력 관계인 만큼 여러 방향으로 압박을 넣을 수도 있으리라.

‘결국 쟁점은 바르무트가 나에 대해서 말하느냐다.’

이세훈은 이번 사건에 일부러 바르무트에게만 자신이 개입했음을 순순히 드러냈다.

바르무트가 자신을 처리하려고 급하게 움직이는 빈틈을 노릴 생각도 있었고, UD 그룹과의 관계도 확실하게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협력 관계라면 끌어들이고, 아니라면 숨기겠지.’

직접 말하기는 뭐 하지만 이번 일에 대한 진상을 안다면 누구든지 자신을 가볍게 여길 리가 없다.

UD 그룹은 물론 바르무트조차 자신을 죽이기보다는 납치해서 어떻게든 써먹을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만약 UD 그룹에게 알리지 않는다면…… 그쪽은 이 판에서 완전히 빼버리는 게 좋은데.’

지금 이 사태에 등판한 완등자는 총 세 명.

자신의 배후가 된 승천제 루트비히와 원견사 하백연. 그리고 바르무트의 협력자인 불명자 위르겐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하백연은 공방의 경호만 맡았을 뿐. 그 이외에 간섭하지 않았기에 사실상 대등한 상황이라 볼 수 있었다.

‘UD 그룹이 도와주는 상황에서는 바르무트가 침착하게 움직일 수도 있으니까…….’

어떻게 해야 그쪽에서 손을 떼게 만들 수 있을까.

이세훈이 머릿속으로 고민하고 있던 그때. 휴대폰의 뉴스사이트가 새롭게 갱신되더니 한 속보가 눈에 들어왔다.

[순례교 ‘인류의 평화를 위해 약소 장인들의 보호에 협력할 것’]

[순례자 칼 안데르센 ‘신도들에게 보다 뛰어난 무구를 보급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증명’]

“……어?”

* * *

미하엘의 연구실 안.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던 미하엘이 무표정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UD 그룹에서 이번 일에 아예 손을 뗀다고 하더구나. 순례교가 끼어든 게 아무래도 결정타였던 모양이야.”

“…….”

“이세훈 그놈이 배후라는 것을 알린다고 해도 힘을 합쳐서 처리하기보다는 우리와 관계를 끊고 녀석을 회유하려 할 가능성이 높겠지. 아니, 그렇게 될 거다.”

가문으로부터 전달받은 소식을 담담하게 읊조린 미하엘은 아무런 말 없이 서 있는 자신의 큰아들, 비에르를 바라보았다.

“이번 일로 가문이 입은 피해가 얼마나 많은지 말로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다. 오죽하면 네 할아버지께서 내게 가주직을 물려주는 걸 다시 생각하겠다고 하시겠느냐.”

“…….”

“네 삼촌도 지금쯤 신났을 거다. 평생 지하에 처박혀 얼굴도 못 들고 다닐 줄 알았는데 이렇게 기회가 생겼으니까.”

담담하게 이야기하던 미하엘은 자신의 앞에 놓인 명패를 바라보았다.

보르시파의 부학과장. 이 자리에 오기까지, 그리고 학과장으로 이어지는 길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 왔던가.

그 기억을 되짚으며 미하엘의 손이 명패를 쓰다듬었고.

파카앙!

그 쇳덩어리가 비에르의 얼굴에 날아가 산산이 조각났다.

주르륵

얼굴을 적셔 턱 아래로 흐르는 피.

평범한 사람이라면 머리가 곤죽이 되고도 남았지만, 비에르는 이마가 찢어지는 선에서 끝났다.

하지만 미하엘은 상처가 얕은 것이 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눈매를 일그러뜨리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비에르.”

“……예.”

“이제 네 계승권 따위가 문제가 아니야. 내가 평생을 바쳐 약속받은 가주직이 너의 그 멍청한 행동 때문에 사라지게 생겼단 말이다.”

분노를 넘어 살의마저 깃든 미하엘의 두 눈에 비에르가 조용히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이마가 찢어지고 피가 흘러도 변함없는 표정. 그 동요하지 않는 모습에 미하엘이 잠시 숨을 고르다가 물었다.

“뭐라도 준비했으니 그리 뻔뻔히 나오겠지. 말해봐라.”

“인형사와 접선했습니다.”

“…….”

비에르의 이야기에 미하엘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번에 자신들이 의뢰를 맡겼던 마인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십악 중 한 명.

그자와 접선했다는 이야기에 미하엘이 한결 진지해진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대가는?”

“의뢰비와 별도로 녀석의 시체를 갖겠다고 했습니다.”

“확실히 그 정도 재능이라면 넘겨주지 않겠지…… 우리가 먼저 연구할 수 있는 조건으로 수락해라. 시기는?”

미하엘의 물음에 비에르가 두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다음 실습 시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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