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74화
강의실 안쪽의 대련장.
옷을 갈아입고 온 이세훈이 가볍게 몸을 풀었고 그 맞은편에 선 마광수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저놈……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이번에 완성된 ‘투안’은 여태까지 만들어온 기술들 중에서도 손꼽힐 만큼 까다로운 난이도를 자랑했다.
기술을 만들어낸 자신조차 10번 중에 2~3번은 실패하는 수준. 그런데 그것을 연습 한 번 안 하고 바로 보여주겠다니?
‘아무리 봐도 그만한 재능은 아닌 것 같은데…….’
도통 짐작할 수 없는 상황에 마광수가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 준비운동을 끝낸 이세훈이 돌아보았다.
“어떻게 보여드릴까요?”
“……일단 발동부터 해봐라.”
투안은 눈을 직접 강화하는 안법으로 세간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기술 중 하나였다.
눈이 다른 신체기관에 비해 약하기도 하고, 마력에 쉽게 영향을 받는 터라 완벽히 제어하지 않으면 부작용을 겪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안 되겠다 싶으면 무리하지 말고 바로 멈춰라. 평생 환각을 보면서 살 수도 있으니까.”
다른 곳은 몰라도 눈은 한 번이라도 고장 난다면 치료하기가 힘들어진다. 마광수의 경고에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걱정은 무슨…… 빨리해라.”
투덜거리며 재촉하는 마광수의 모습에 이세훈은 슬쩍 웃으며 앞서 전달받은 투안의 발동법을 떠올렸다.
‘발동법 자체는 어려울 것도 없지.’
정해진 경로에 정해진 양의 마력을 집어넣는다.
물론 그 경로가 매우 좁고 복잡하며 마력제어를 조금만 실패해도 다칠 수 있을 만큼 까다로운 일이었지만.
‘영연신마법.’
자신의 신체를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이세훈에게는 기본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철컥─
투안의 경로를 따라 임시마력회로가 완벽히 형성되고 곧바로 마력이 그 안쪽으로 스며든다.
우웅!
망막에 떠오르는 회색의 마력.
투안의 운용법으로 변질된 특수한 마력이 눈동자 위에서 작게 소용돌이치더니 렌즈처럼 달라붙으며 안정화되었다.
투안의 발동이 완료된 것을 확인한 이세훈은 천천히 뒤바뀐 시야를 확인했다.
“호오…….”
흑백사진처럼 변한 시야.
강의실의 천장부터 대련장의 바닥까지 모두 흑백으로 물들었는데 그중에서 유일하게 색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있었다.
맞은편에 선 마광수의 신체. 그 안쪽에서 회색빛이 일정한 경로를 그리며 체내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보이는 거구만’
투안의 가장 기본적인 사용법인 ‘관觀’.
생명체의 마력을 감지하는 데 특화된 능력이었는데 대련장을 비롯한 시설의 마력이 보이지 않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다.
‘흐음. 마력을 감지한다기보다는…… 그 안에 깃든 심상을 감지하는 느낌인데.’
어딘가 익숙한 감각에 이세훈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그 모습을 본 마광수가 입을 떡 벌렸다.
‘진짜 성공했다고……?’
자신이 잘못 본 것인가 싶었지만 은빛을 띤 눈동자나 자신의 마력을 따라 움직이는 시선이나 투안이 발동된 것이 확실해 보였다.
한 번 만에, 그것도 자신보다 훨씬 능숙하게 투안을 발동하다니.
예상을 넘어선 이세훈의 능력에 마광수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이 녀석…… 좀 더 확실하게 살펴봐야겠어.’
지금까지는 졸업 후에나 도움이 될 거라고만 생각했지만 이 정도라면 집행관의 입단 테스트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이세훈에 대한 기준을 바꾼 마광수는 간단한 검술을 분석시키려 했던 계획을 고치고 자세를 잡았다.
“내 마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이냐?”
“세세하게는 아니지만 큰 줄기까지는 보입니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검술을 하나 보여주겠다.”
훈련용 검을 쥔 마광수가 천천히 자세를 잡으며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이 검술을 정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다면 합격으로 쳐주지. 할 수 있겠냐?”
앞서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던 때와 사뭇 달라진 태도. 그 모습에 이세훈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얼마든지요.”
“그럼 간다.”
대련장의 바닥을 겨누며 느슨하게 늘어뜨려진 검.
겉으로 보기에는 허술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지만 투안을 발동 중인 이세훈의 눈에는 달랐다.
우웅─
자세를 잡음과 동시에 체내를 질주하는 마력. 그리고 마광수의 전신이 완전히 은빛으로 물든 순간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윽
지면을 훑듯 부드럽게 뻗어가는 오른발.
본래라면 그 움직임에 맞춰서 검을 휘둘러야 했겠지만 어째서인지 마광수의 검은 여전히 지면을 겨눈 채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검술보다는 바닥을 쓰는 빗자루와 같은 움직임. 누가 봐도 기묘한 움직임이었지만 마광수는 여전히 진중한 표정으로 몸을 움직였다.
스스슥
부드러운 발놀림과 지면에서 떨어지지 않는 검.
그 모습을 투안을 사용한 채 뚫어져라 바라보던 이세훈은 문득 한 가지 이질적인 것을 발견했다.
‘잔상……?’
마광수의 앞쪽으로 흐릿하게 남는 은빛 잔상.
저것이 마광수가 말한 검술의 ‘본체’라는 것을 파악한 이세훈은 투안의 감각을 더욱 날카롭게 가다듬었다.
우웅!
흑백사진 같던 풍경이 이제는 검은 배경과 하얀 선으로만 보이기 시작했고 마광수의 체내를 가득 채우고 있던 마력의 움직임도 선명해졌다.
앞으로 내디딘 발부터 시작해서 무릎과 골반, 척추와 어깨 팔꿈치를 타고 검 끝을 향해 마력이 질주한다.
그리고 그 빛줄기가 바깥으로 뻗어 나간 순간.
후웅!
은빛 검이 잔상을 가르며 허공을 갈라냈다.
“끝.”
걸음을 멈춘 마광수가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어떤 검술인지 알겠냐?”
“음…….”
마광수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이세훈은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검 좀 빌려주세요.”
“……받아라.”
마광수가 던져준 검을 받은 이세훈은 앞에 본 것처럼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이것보다 좀 더 느슨하게…….’
몸은 이완시키고 마력은 날카롭게 회전시킨다.
조금 전의 자신과 완전히 똑같은 자세를 취하며 발만 움직이는 이세훈의 모습에 마광수는 감탄하면서도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역시 준비 자세만 보였나 보군.’
저만한 재능이라면 자신의 비전검법인 ‘천충검淺充劍’을 단숨에 꿰뚫어 보지 않을까 했지만, 아무래도 과한 기대였던 모양이다.
마광수가 아쉬움을 삼키며 이세훈의 자세에서 부족한 부분을 살펴보려던 그때.
스윽
지면을 겨누고 있던 이세훈의 검이 하늘을 향해 자연스럽게 휘둘러졌다.
“뭐…….”
두 발은 마광수가 선보인 발걸음을 따르고 두 손에 쥐어진 검은 앞서 보았던 ‘잔상’을 따라간다.
후웅!
그러자 신체와 마력이 검을 뒤쫓듯 자연스레 어우러졌고 느릿하게 움직이던 이세훈의 몸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게 아냐. 몸과 마력의 오차를 좀 더 줄여서…….’
마광수가 선보인 움직임을 바탕으로 동작에서 비효율적인 부분들을 잘라내고 개선해나간다.
딱 한 번 본 동작을 개량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핵심은 투안으로 확실히 봤으니 제대로 맞추기만 하면 돼.’
상대의 마력과 그 안에 깃든 심상을 엿볼 수 있는 투안.
그것으로 뼈대를 만들어내고 거기에 회귀 전 자신이 지겹도록 수리했던 마광수의 검, 거기에 새겨진 ‘흔적’으로 살을 채워 넣어간다.
“흐읍……!”
한 번만 펼치려 했던 검술이 자연스럽게 반복되었고 그 완성도가 횟수를 거듭할수록 갈고닦아졌다.
그리고 발끝에서부터 손끝으로 솟구쳐 오른 마력이 한 자루의 검으로 벼려진 순간.
파캉!
앞으로 휘둘렀던 검이 산산조각 났다.
“후우…… 후우…….”
본의 아니게 동작이 끊어진 이세훈은 턱밑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며 손에 들린 검을 바라보았다.
손잡이만 남기고 흔적도 없이 박살 난 검. 그 휑한 모습에 이세훈의 눈매가 찌푸려졌다.
‘더럽게 못 만들었네.’
설마 검이 버티지 못해 이런 식으로 끝날 줄이야.
어중간하게 끝나 버린 결과에 이세훈이 눈매를 찌푸리고 있던 그때.
[스킬 ‘투안(A)’을 습득하셨습니다.]
[스킬 ‘천충검(S)’을 습득하셨습니다.]
“……?”
눈앞에 떠오른 두 개의 알림창.
투안을 습득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 밑에 따라붙은 내용에 이세훈의 머릿속에 의문이 가득 찼다.
‘천충검이면…… 마광수 저 양반 비전검법 아니었나?’
회귀 전. 죽었다 깨어나도 못 익힌다는 소리를 듣고, 실제로 몇 번이나 배웠음에도 감도 못 잡고 때려치웠던 기괴한 검법.
그것을 습득했다는 사실에 이세훈이 멍한 표정을 짓다 마광수를 바라보았다.
“그…….”
“습득했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마광수의 물음에 이세훈이 멈칫하다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것 같네요……?”
“같네요는 무슨…….”
자신이 뭘 한 건지도 모르는 이세훈의 표정에 마광수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방금 보았던 광경을 떠올렸다.
‘도중에 끊어지긴 했지만…… 분명히 검기였다.’
그것도 평범한 검기가 아닌, 자신이 직접 만들어내고 그 누구도 따라 하지 못했던 천충검의 검기.
예상치 못한 결과에 마광수가 잠시 이세훈을 바라보다 이내 결정을 내린 듯 입을 열었다.
“일단 합격이다. 도와주마.”
“감사합니다.”
검술을 꿰뚫어 봤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직접 펼치기까지 했으니 당연한 결과.
조금 당혹스럽긴 하지만 어쨌든 마광수와 그 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단 생각에 이세훈이 만족하려던 그때.
“대신 오늘부터 넌 내 수제자다.”
“……예?”
“투안이야 그렇다 쳐도 비전검법까지 배워갔으면 당연히 값은 치러야지.”
자기가 그냥 보여줘 놓고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이세훈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마광수가 다 안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감사 인사는 필요 없다. 대신 비전검법을 익히는 게 쉽지 않을 테니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거야.”
“…….”
“그리고 앞으로는 사부님이라 부르며 깍듯하게 대하도록. 알겠나?”
기고만장하게 이야기하는 마광수의 모습에 이세훈이 잠시 바라보다가 금방 결론을 내렸다.
“싫습니다.”
* * *
이세훈이 돌아간 뒤. 강의실에 홀로 남은 마광수가 침대에 드러누운 채 눈매를 찌푸렸다.
“싸가지 없는 자식…….”
다른 것도 아니고 자신이 수제자로 삼고 비전검법인 천충검도 알려주겠다는데 어떻게 싫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지금 A급, 그리고 S급 영웅으로 활동하는 녀석들이 생도 시절에 자신을 수제자로 받아달라고 했을 때도 자신이 거절하면 거절했지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배운다고 할 때까지 두들겨 패? 아니, 그놈 눈깔을 보니 나처럼 죽어라 덤비면 덤볐지 배우려고 숙이진 않을 거야.’
자신과 조금 비슷한 면이 보였기에 설득이 쉬워 보이지가 않는다. 잠시 고민하던 마광수는 돌연 짜증이 치밀어 올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니. 내가 왜 고민해? 그딴 자식 나도 안 받으면 그만이잖아!”
자신에게 항의하듯 소리친 마광수.
하지만 강의실에 울려 퍼진 소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단 한 번 만에 투안과 천충검을 습득했던 이세훈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끄응…….”
그렇게 침대에 앉은 채 한참을 고민하던 마광수는 이내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재능만 없었어도…….”
천충검의 전수도, 그리고 도플갱어를 찾는 것도 이세훈의 도움을 받는다면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몰랐으면 몰라도 이미 알아버렸기에 마광수는 저 성질머리 더러운 놈을 어떻게 맞춰줄지 고민했다.
‘일단은…… 약속한 일부터 처리해야겠군.’
속물적인 녀석이니 이번 일로 자신의 영향력을 체감한다면 먼저 수제자로 받아달라고 태도를 고칠지도 모른다.
결정을 내린 마광수는 옆 탁자에 놓아둔 휴대폰을 잡고 전화를 걸었다.
-늦어.
신호음이 한 번 울리자마자 연결된 통화. 마치 기다렸다는 듯한 그 대답에 마광수가 눈매를 찌푸렸다.
“보고 있었냐?”
-보고 있던 게 아니라 보이고 있는 거지. 루트비히가 자리를 비워서 구멍이 여기저기 뚫려 있거든.
여유로운 여인의 목소리에 마광수가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휴대폰 너머로 이죽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보다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야. 그 콧대 높은 마광수가 어린애 비위 맞춰주려고 나한테 전화까지 다 하고.
“……시끄러워.”
-시끄럽기는. 재밌어 죽겠는데.
능글맞은 여인의 목소리에 마광수의 눈매가 흉악하게 일그러졌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부탁 좀 하자.”
-바르무트인가 그놈들?
“그래.”
-뭐, 좋아. 한창 자라날 유망주에 손대는 놈들이라면 조금 손봐줘도 되겠지.
흔쾌히 수락하는 여인의 목소리에 마광수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에라도 이유가 부족했다면 그걸 채우기 위해 자신이 온갖 개고생을 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 보호할 리스트가 정해지는 대로…….”
-아. 대신 조건이 있어.
뒤늦게 조건을 붙이는 상대의 태도에 마광수가 눈매를 찌푸렸다 다시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뭔데?”
-아까 그 녀석. 꽤 볼 줄 아는 거 같던데.
이세훈을 향한 흥미를 드러내는 목소리. 그 태도에 마광수가 흠칫 놀라며 물었다.
“설마…… 가르쳐볼 생각이냐?”
-아직 그 정도까진 아니고. 다음에 우리 조카 손주 보낼 테니까 자리나 만들어줘.
결과에 따라서 가르쳐보겠다는 말투. 그 예상 밖의 반응에 마광수가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알았다. 오는 대로 만들어주마.”
-좋아. 아, S급 떴네. 이만 끊는다.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뚝 하고 끊어진 전화. 그 휴대폰을 바라본 마광수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평범한 놈은 아닌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눈이 까다롭기로는 세상에서 제일간다는 완등자 ‘원견사遠見師’ 하백연에게 바로 주목받다니.
그 사실에 감탄하는 한편 마광수는 묘하게 불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도 절대 뒤지지 않지만 아무래도 완등자랑 비교하면 인지도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뭐 더 없나.”
생전 처음 발견한 수제자 후보. 그 인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마광수가 투덜거리며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