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72화
여러 사건으로 뒤숭숭해졌던 연회장은 금방 수습되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돌아갔다.
연회장을 오가며 서로를 소개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생도들. 신입생들의 영입 과정이 끝나고 본래 취지대로 서로 교류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교류회에 참가한 생도들이 가장 기대하며 기다렸던 시간. 그렇기에 모두가 열성적으로 돌아다녔지만.
“…….”
이세훈이 앉은 테이블은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였다.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둘러져 있는 것처럼 텅 비어 있는 주변.
말을 걸기는커녕 근처에 다가오지도 않는 생도들의 모습에 이세훈이 턱을 괴었다.
‘이건 뭐 완전 투명인간 취급이구만…….’
말이라도 한 번 붙여보려고 몰려들던 때와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 이세훈이 바르무트 가문과 본격적으로 대립하는 모습을 보이자 모두 발을 빼버린 것이다.
‘하긴. 아직 생도인 놈들이 무슨 결정을 내리겠어.’
바르무트 가문은 미하엘 부학과장을 필두로 보르시파 내부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가문.
이세훈이 보여준 능력이 아무리 뛰어났다고는 해도 그런 집단과 섣불리 적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저쪽에 붙어서 갈구지만 않아도 양반이지.’
오늘부로 바르무트와 완전히 적대관계로 돌아섰으니 이제 제련학부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다방면에서 공격이 들어올 터.
무슨 일이든 방심해선 안 됐기에 이세훈이 머릿속으로 진행 중이던 계획을 되짚어 보았다.
‘검기 양산화는 마이어스랑 손잡으면 별일 없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투자자를 좀 더 끌어모아야 하나.’
테이블에 홀로 앉은 채 이세훈이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을 때. 사람들 사이에서 제이크가 피곤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미안. 오는 길에 사람들한테 계속 붙들리는 바람에…….”
“미안할 것까지야. 그보다 아깐 어디 갔었어?”
이세훈의 물음에 제이크가 주변을 슬쩍 둘러보더니 조용히 이야기했다.
“누님한테 불려갔었어. 너한테 말하지 말고 조용히 나오라고 하셔서.”
“역시…….”
혹시나 싶었는데 아무래도 진작 연회장에 도착해 내부를 살펴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철두철미한 아리아의 행동에 이세훈이 속으로 혀를 내두르고 있을 때. 제이크가 다시 주변을 살피며 물었다.
“그보다 아까 누님이랑 단둘이서 이야기했다고 들었는데…… 별일 없었어?”
“별일?”
“그…… 강압적으로 말했다든가…… 그런…….”
혹시라도 아리아가 듣고 있을까 봐 협박 대신 돌려서 말하는 제이크의 모습에 이세훈이 피식 웃었다.
“그런 일 없었어. 네 검이랑 검기 양산화 관련으로 말 좀 했지.”
“그럼 다행…… 잠깐. 검기 양산화라고?”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제이크가 깜짝 놀라며 되묻자 이세훈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협력하는 게 어떠냐고 했는데 아직 시제품도 없어서 일단 미루기로 했어. 나중에 만들어지면 너한테 말해달라더라.”
“그, 그래?”
이세훈의 이야기에 제이크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경매장에서 이세훈이 유사 검기를 만들어내 주목받긴 했었지만 검기 양산화를 논할 수준은 아니었기에 가문에서도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다.
그런데 저런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은 자신의 누이가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렸다는 것.
‘누님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처음 보네…….’
2년 만에 교류회에 참석한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자신의 상상 이상으로 이세훈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모양이다.
상황을 파악한 제이크는 방금보다 더 조심스러운 태도로 이세훈에게 물었다.
“혹시 그 이외에 뭐 다른 이야기는 없었어?”
“의뢰를 왜 거절하냐고 물어봤었는데 그 부분도 잘 설명해뒀으니까 걱정 마. 앞으로는 너한테 귀찮게 안 굴 거야.”
“저, 정말?”
이세훈의 이야기에 제이크의 표정이 환해졌다.
안 그래도 방금 불려 나갔을 때 의뢰는 못 따오고 얌체같이 자기 검만 맡겼다고 갈굼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해방이구나……!’
제이크가 속으로 쾌재를 내지르고 있을 때. 그 반응을 보던 이세훈이 피식 웃었다.
“어지간히도 괴롭혔나 보네.”
“아니,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아니긴 뭘 아냐. 표정에서 다 보이는데. 그리고 이미 갔을 텐데 불평 좀 하면 어때.”
음료를 홀짝이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이세훈. 당당하기 그지없는 그 모습에 제이크가 주변을 힐끗 보았다.
‘확실히 누님이라면 용건이 끝나자마자 가셨겠지…….’
여기서는 괜찮겠다 싶어진 제이크가 긴장을 풀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피곤하긴 했지.”
“알아서 하라고 해놓고 결과물 마음에 안 들면 격려하는 척 막 긁어대지 않냐? 딱 그럴 느낌인데.”
“맞아! 진짜 차라리 욕을 하지 계속 그러니까…….”
직접 당해본 것처럼 적절하게 받아주는 이세훈의 맞장구에 제이크는 그동안 털어놓지 못했던 아리아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한참 떠들면서 가슴 속의 응어리가 조금 풀렸을 때쯤. 연회장에 안내음이 울려 퍼졌다.
[곧 폐회식이 있을 예정이니 생도분들께서는 정원으로 나와주시길 바랍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생도들이 하나둘씩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세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난 슬슬 가봐야겠다.”
“폐회식은 안 보려고? 앞이랑 다른 불꽃놀이라던데.”
“불꽃놀이가 거기서 거기지 뭐. 다음 수업 때 보자.”
밖으로 걸어가는 이세훈의 뒷모습에 제이크는 붙잡을까 하다가 말았다. 오늘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서 그런지 상당히 피곤해 보였기 때문이다.
‘나도 조금만 더 있다가 돌아갈까.’
먼저 밖에 나가 있을 친구들을 떠올리며 제이크가 막 자리에서 일어나던 그때.
우웅
주머니에서 짧게 울린 진동.
이유 모를 불길함을 느낀 제이크의 몸이 딱 굳어졌고 이내 천천히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떨리는 눈동자로 도착해 있는 문자를 확인했고.
[^^] -아리아 마이어스
“아…….”
곧 찾아올 절망에 탄식을 내뱉었다.
* * *
퍼펑!
건물 뒤편에서 요란하게 터져 나오는 불꽃들.
간간이 자신의 동아리를 홍보하거나 멋들어진 그림을 그린 불꽃도 터져 나왔는데 그 모습에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저게 벌써 만들어져 있었나.”
폭발 직전 주입한 마력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가변형 폭죽.
회귀 전에 무기로 써먹은 적도 있었는데 비싸긴 하지만 효과 하나는 확실했다.
‘지금은 써먹기 어렵겠네. 개조도 해야 하고.’
나중에 필요하면 알아보기로 하며 이세훈이 다시 언덕 아래로 걸어 내려가려던 그때.
부웅─
옆 도로에 부드럽게 멈춰서는 검은 리무진. 그에 이세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창문이 내려가며 엘리트 같은 청년, 렌이 모습을 드러냈다.
“돌아가는 길이야?”
“……뭐, 그렇죠.”
“기숙사까지 걸어가긴 멀 텐데. 같이 타고 가는 게 어때?”
렌의 제안에 이세훈은 잠시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리무진에 올라탄 이세훈이 렌의 맞은편 좌석에 앉았고, 차가 다시금 부드럽게 도로를 나아갔다.
퍼엉─!
하늘 위에서 쉴 새 없이 터지는 불꽃. 이세훈이 차창 너머로 그 모습을 올려다보자 렌이 쓴웃음을 지었다.
“무의미해 보이지?”
“……아뇨.”
“숨길 필요 없어. 계획한 나도 그렇게 느끼고 있으니까.”
차창 너머로 시선을 돌린 렌이 불꽃을 올려다보며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아무리 화려하게 피어나도 결국 사라져 버린다는 게 허무하더라고. 그래서 불꽃놀이는 별로 안 좋아해.”
“그럼 왜 채택하셨습니까?”
“인챈트 학부에 후원하는 겸 장악을 위해서였지. 다 그런 법 아니겠어?”
슬쩍 웃으며 대답한 렌은 다시 이세훈에게 시선을 돌렸다.
“거기서 비에르와 적대한 건 실수였어. 바르무트는 네 상상 이상으로 뿌리가 깊고 넓게 퍼져 있거든.”
세간에는 새롭게 성장하기 시작한 신흥가문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그 실체는 그리 얕지 않았다.
바르무트 가문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렌은 숨김없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바벨에서는 그나마 괜찮을 거야. 이곳은 승천제가 가꾸고 있는 정원이니까.”
“…….”
“하지만 정원의 밖으로 나갔을 때는 보장할 수 없어. 네가 완등자라도 되지 않는 한 말이야.”
진심이 담긴 렌의 경고에 이세훈은 겁을 내기는커녕 계속해서 말해보라는 듯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 차분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렌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이내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본론을 꺼냈다.
“내 손을 잡아.”
“…….”
“그러면 바르무트 가문 따위, 네가 졸업하기 전에 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줄게.”
기세로 말하는 것이 아닌, 그렇게 되리라고 확신하는 목소리. 마치 미래라도 보고 온 듯한 자신감 넘치는 렌의 모습에 이세훈이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바르무트랑 완전히 적대할 생각까지 하다니…… 의외인데’
좀 더 상황을 살펴보거나 기회를 엿보리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올 줄이야.
예상과 다른 렌의 태도에 이세훈은 어렴풋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검기 무구가 어지간히도 인상 깊었나 보네.’
어쩌면 이노우에 가문이 아직은 숨기고 있는 ‘신화급 무구’의 연구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더 욕심을 내는 것일지도 모르리라.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한 이세훈은 고민하는 듯 뜸을 들이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마이어스를 믿는 거라면,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어.”
“딱히 그쪽 때문은 아닙니다.”
“그러면?”
렌의 물음에 이세훈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바르무트를 빌미로 제안을 주셨는데 그놈들 정도는 제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습니다. 뿌리를 깊이 내렸든 말든 결국 잡초니까요.”
몇십 년을 회귀했는데 이것도 못 해낸다면 앞으로 육대마신들은 어떻게 다 때려잡겠는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머릿속으로 대강 짜뒀기에 굳이 아쉬운 소리 하며 렌의 도움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미 다른 사람의 손을 잡았거든요.”
“그게 누구인데?”
“그야 이노우에의 차기 당주죠.”
“……!”
이세훈이 누구를 말하는지 깨달은 렌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이내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표정을 가렸다.
그리고 몸이 희미하게 떨리는가 싶더니 다시 고개를 치켜들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핫! 그래. 그랬었구나. 이미 선수를 빼앗겼을 줄은 상상도 못 했는걸.”
이세훈. 그리고 그와 손잡은 에리카가 가소롭다는 듯이 한참을 웃던 렌은 표정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시 권유하지는 않을게. 내가 당주가 되고 나면 어차피 너도 내 힘이 될 테니까.”
“자신만만하시네요.”
“그야 물론이지.”
거만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대답한 렌이 이세훈을 바라보며 입가를 비틀었다.
“서 있는 위치가 다르니까.”
[대상 ‘이노우에 렌’과 인연이 성립되었습니다.]
눈앞에 떠오른 알림창.
렌에게 어느 정도 자신의 존재가 각인됐음을 확인한 이세훈이 두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재수 없는 놈 같으니…….’
그럭저럭 쓸 만한 장기말로만 생각하다가 자신의 적이라고 하니 흥미가 생겨난 것이 분명하리라.
‘남매가 똑같이 나사가 하나씩 빠져있단 말이야.’
어째 천재라고 불리는 놈들은 다 이런 걸까. 이세훈이 속으로 한탄하는 사이 렌이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아.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사과해야 할 게 있네.”
“사과요?”
“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보고 싶어서 간단하게 주술을 걸었었거든. 미안했어.”
앞서 걸어뒀던 저주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는 렌의 모습에 이세훈이 살짝 의외인 듯 바라보다 금방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래놓고 영입 제안을 하는 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원래는 금방 해제하려 했었는데 사건들이 연달아 터지는 바람에 여태 까먹고 있었네. 이에 대한 사죄는 에리카를 통해서 보낼게.”
렌의 이야기에 이세훈이 차창 너머로 펑펑 터지고 있는 불꽃놀이, 돈덩어리들을 바라보고는 마지못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진심이 담겼는지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보상을 넉넉히 보내라.
그렇게 노골적으로 이야기해 오는 이세훈의 모습에 렌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부족할 일은 없을 거야. 그럼 주술을 해제하려고 하는데 잠시 손 좀 괜찮을까?”
“예. 뭐…….”
고개를 끄덕인 이세훈이 오른손을 내밀자 렌이 자연스레 손을 맞잡았고.
흑무인黑霧軔 무암경霧暗鏡
그 손에서부터 뻗어 나온 파동이 이세훈의 체내 깊이 스며들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볼게.’
대상과 동화되어 마음속 어둠을 비추는 주술인 ‘무암경’.
악의가 담긴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과거를 곱씹게 만드는 것이었기에 렌의 주술은 이세훈의 경계심을 간단히 피하고 흑무인을 통해 내부로 스며들었다.
우웅─
렌의 눈동자를 거울삼아 이세훈의 마음속 어둠이 비쳤고 귓가로 희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는 살려주마. 그리 약속했으니까.’
피와 시체로 가득한 장소에 서 있는 한 사내. 그리고 그 앞에 무력하게 주저앉아 있는 청년.
‘반드시…… 죽여 버리겠어…… 무슨 수를 써서든…….’
눈물을 흘리며 쉴 새 없이 철을 두들기며 망치를 휘두르는 청년. 그 당시의 감정. 그리고 생각들이 렌에게 선명히 느껴졌다가 곧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스쳐 지나간 기억을 곱씹은 렌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맞잡았던 손을 떼어냈다.
스스슥
손바닥에서 뽑혀 나온 흑무인이 안개로 변해 주변에 녹아들듯이 사라졌고, 더 이상 저주가 남아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한 이세훈이 렌을 바라보았다.
“이제 용건도 끝나신 것 같으니 내려 주십쇼.”
“기숙사까지는 아직 멀었는데.”
“이젠 타고 있기가 영 찝찝해서요.”
까칠해진 이세훈의 대답에 렌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좌석 옆의 호출 버튼을 눌러 차를 세웠다.
탁!
리무진에서 내린 이세훈은 자동으로 닫히려던 문을 붙잡고는 자신을 바라보는 렌을 노려보았다.
“성의. 제대로 보내세요.”
콰앙!
힘껏 문을 닫고 저편으로 걸어가는 이세훈. 그 거침없는 뒷모습에 렌은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왜 저렇게 거칠고 급하게 움직였는지 알 것 같네.’
사적인 복수. 그리고 그 대상은 자신도 알고 있을 만큼 뒷세계에서 유명한 ‘마인’이었다.
거기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니 자신의 재능을 저렇게 무차별적으로 드러내며 적과 아군을 늘리고 있음이 분명하리라.
‘당주가 될 때까지 기다리면 자연스레 손에 넣겠지만…… 그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는 것도 아쉽네.’
이세훈의 재능을 이노우에 가문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10년 안에 무구 산업을 모조리 집어삼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본가에 봉인되어 있는 ‘신기’를 자신의 무기로 만들어낼 수도 있으리라.
결정을 내린 렌은 운전 중인 기사에게 담담히 이야기했다.
“A급 마인 ‘불가살不可殺’에 대한 정보 모두 알아 와.”
* * *
“…….”
리무진에서 내려 기숙사로 향하던 이세훈은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첫 만남에 당했던 저주. 눈에 거슬렸지만 쓸 데가 있겠다 싶어 놔뒀었는데 예상대로 월척이 낚인 것이다.
‘체내에 파고들어 마음속을 엿보는 주술이라. 생긴 대로 노는구만.’
직접적인 간섭이 아니라 심리적인 장벽을 은밀히 넘어가는 방식이기에 대응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주술이었다.
그렇기에 렌도 그리 자신만만하게 사용한 것이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상대가 그리 좋지 않았다.
‘인연의 대장장이가 완전 상위호환이니까 말이야.’
마음속을 엿보는 주술과 그런 것들을 추출하고 물질로 만들 수 있는 고유스킬.
어느 정도 겹쳐 있는 영역인 만큼 이세훈은 능숙하게 회귀와 관계없는 기억만 렌에게 보여주었고, 그 틈을 타 인연을 추출해 냈다.
[대상 ‘이노우에 렌’에게서 인연을 추출합니다.]
[제작자 ‘이세훈’과의 인연은 Lv.1입니다]
인연 안에 기억이 섞이는 것은 몽환규도로 확인했다.
물론 타인의 기억인 만큼 보기가 쉽지 않지만, 이세훈은 렌과 동화된 것을 이용하여 일부분을 엿보는 데 성공했다.
‘당주가 되고자 한다면 혈육의 정과 같은 하찮은 감정마저 버려야 할 것이다.’
얇은 장막 너머로 촛불과 함께 일렁이는 한 사내의 그림자.
이제 막 10살이 된 어린 아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차가웠으나 아버지와 아들 모두 그 사실을 개의치 않았다.
‘필요하다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에리카를 죽여라. 그 날이 네가 당주가 되는 날일 것이다.’
자신의 딸이자 소년의 여동생을 죽여서 증명하라는 사내. 그 이야기에 소년, 이노우에 렌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반드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아주 짧은 대화. 이노우에 가문의 비밀에 대해서는 건지지 못했지만 그로 인해 이세훈은 한 가지 확신할 수 있었다.
‘이놈들도 무조건 구린 놈들이야.’
회귀 전의 인신공양 주술. 그리고 후계 구도에서 존속살해를 권유하는 정신 나간 가정. 이런 집안이 정상일리가 없었다.
‘마이어스는 우선 협력. 이노우에는 주의 정도면 되겠지.’
앞으로 에리카를 돕는다면 자연스레 이노우에가 주시자와 손을 잡은 게 맞는지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두 가문에 대한 대응수위를 정한 이세훈은 마지막으로 최우선 목표를 떠올렸다.
‘바르무트는 무조건 박살 내고.’
렌은 졸업 전을 이야기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놈들은 1년도 채 못 버틸 것이다.
머릿속으로 떠오른 계획들에 이세훈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