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69화 (69/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69화

이노우에 가문.

일본을 주름잡는 삼대가문 중에서도 제일가는 권세를 누리며 독보적인 비전주술을 보유하고 있던 명문가.

조금 뒤숭숭한 소문이 돌긴 했으나 마신들과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아낌없이 힘을 보태왔던 아군 중 하나였고.

“허…….”

오늘 그 일가가 역사 속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남은 게 없네…….”

이노우에 가문의 본가가 자리 잡았던 영산.

주변에 깔린 결계와 울창한 산세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던 영산은 과거 수많은 방문객이 찾는 장소였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도 없었다.

모든 생명력이 고갈된 황무지. 생명력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그 을씨년스러운 땅 위에 남은 것이라곤 거대한 ‘새장’밖에 없었다.

우우웅─

황무지의 중심지에 놓인 20m 정도 되는 은빛의 새장.

내부는 검은 그림자로 뒤덮여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간헐적으로 떨리며 안쪽에 무언가 갇혀 있음을 알려주었다.

‘토벌이 아니라 봉인이라…… 탐망이 생각보다 강했나보구만.’

전투가 어떻게 흘러갔을지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있을 때. 옆의 공간이 갈라지며 짧은 은발의 사나운 여인, 폭견 루이제 발렌트가 나타났다.

“진짜 X발 징그러워 죽겠네…… 이노우에 그 새끼들은 도대체 뭔 짓을 하고 다닌 거야?”

어지간히도 기분이 더러웠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리는 폭견. 그 격렬한 반응에 살짝 의아함이 생겨났다.

“그렇게 징그럽냐? 내가 보기엔 그냥 새장 같은데.”

“좋겠네. 살아 있는 인간 수만 명을 꼬아서 만든 봉인술이 평범한 새장처럼 보여서.”

“……민간인?”

“아니. 전부 이노우에 쪽 관계자들 같은데 동의를 구한 건 아닌 모양이야. 다가가니까 꺼내달라고 난리 부리던데.”

겉보기에는 아름답다고 느껴질 만큼 우아한 새장이지만, 그 실체는 썩 깨끗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상태는 어때.”

“봉인 자체는 문제없어. 다만 어중간하게 건드렸다간 탐망이 바로 튀어나올 거야.”

“흐음…….”

후환을 없애기 위해 찾아왔는데 괜히 건드렸다가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겨날지도 모르겠다.

새장을 바라보며 고민하고 있자 폭견이 어깨를 툭 쳤다.

“그냥 놔둬. 멸륜이랑 멸해 그 새끼들도 감당하기 힘든데 저놈도 다시 튀어나오면 답 없어.”

“……그래. 일단 경계하는 걸로 끝내자.”

이노우에 가문이 전멸한 것은 타격이 크지만 남은 십악 중에서 가장 위험했던 탐망을 봉인했다면 큰 손해는 아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인류의 전력을 헤아리며 폭견에게 눈짓했다.

“가자.”

“공손하게 말해. 땅에다가 확 처박아버리기 전에.”

틱틱거리면서 어깨에 손을 얹고 공간이동을 준비하는 폭견. 그 순간을 기다리면서 저 멀리 보이는 새장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한때 이노우에 가문의 자랑이었던 S급 영웅이었으나 마인으로 전락하고 십악이 되어 자신의 가문을 멸문시켜버린 ‘탐망貪忘’ 이노우에 에리카.

분명 비극적인 일이었으나 어째서인지 눈앞의 광경을 보고 있자니 안타까움보다는 의문이 생겨났다.

우우웅─

저 태동은 탐망이 새장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일까.

‘아니면 무언가 새롭게 태어나려는 걸까…….’

꺼림칙하지만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렇기에 시선을 거두며 생각을 멈췄고, 그 의문은 새장이 멸해에 휩쓸려 사라지는 것으로 영원히 풀리지 않았다.

* * *

“…….”

눈 깜짝할 사이에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과거의 기억. 그 광경에 이세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거…… 몽환규도인가?’

자신의 기억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선명한 광경.

이유는 몰라도 과거의 기억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 이세훈은 눈앞에 나타난 청년, 이노우에 렌을 바라보았다.

‘그때 당주가 이놈이었지.’

마신 못지않게 큰 위협이었던 탐망을 봉인해낸 업적은 훌륭했지만, 그 대가로 살아 있는 인간 수만 명을 술식의 매개체로 사용한 것은 아무래도 그냥 넘기기는 힘들었다.

‘거기다 이번에 주시자들과 연관되었다는 자료도 있었고.’

몽환규도에서 읽은 자료였기에 진위여부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회귀 전에 보았던 그 꺼림칙한 봉인술을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가능성은 보였다.

‘이걸 어떻게 한다…….’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지 이세훈이 고민하고 있던 그때.

“여동생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어.”

미소를 지은 렌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평소에 이래저래 신세를 지고 있는 것 같다던데. 너한테 폐를 끼친 건 아닌가 모르겠네.”

부드럽게 말을 걸어오는 렌의 모습에 이세훈이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그건 다행이네.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뭐하지만 여동생의 성격이 워낙 특이해서 말이야. 혹시라도 당혹스럽게 만들진 않았을까 걱정했거든.”

“그랬었긴 한데…… 뭐 그 정도면 양반이라고 생각합니다.”

회귀 전에 삼견들 뒤치다꺼리하던 시절 생각하면 에리카의 기행은 애교로 봐줘도 될 수준이다.

“…….”

옆에서 살짝 묘한 눈초리가 느껴졌지만 이세훈은 못 본 척 넘겼고, 그 모습에 렌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사이가 좋네. 평소에도 잘 지낼 것 같아서 안심이야.”

훈훈한 분위기로 흘러가는 대화. 상황만 놓고 보면 흔히 있는 친구가족과의 첫 만남이었지만, 딱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다.

“윽…… 크윽…….”

주먹을 내지르던 자세 그대로 굳어 있는 카터.

어떻게든 움직여보려 하지만 얼굴만 흉측하게 일그러질 뿐. 허공에 박제라도 된 것처럼 몸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뭘 한 거지?”

“마법이나 그런 것도 안 보이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이해할 수 없는 카터의 상태에 주변의 생도들이 웅성거렸고, 이세훈의 시선 역시 그쪽으로 향했다.

“아, 치우는 걸 깜빡했었네.”

그 모습을 본 렌이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 손에 들린 검은 막대, 부채로 자신의 손바닥을 가볍게 두드렸다.

“윽?!”

어정쩡하게 서 있던 카터의 몸이 차렷 자세로 바뀌더니 이내 연회장의 한쪽으로 빠르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이질감이 느껴지는 모습. 기묘한 불쾌감을 안겨주는 그 광경에 주변의 분위기가 가라앉았고 렌이 쓴웃음을 지었다.

“미안해. 가끔 저렇게 주제를 모르는 친구들이 나오거든. 관리를 한다고 했는데도 쉽지가 않네.”

“원래 사람 관리하는 게 제일 어려우니까요. 괜찮습니다.”

“이해해 주니 고맙네. 다음부터 이런 일은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미소를 지은 렌의 이야기에 주변에 모인 생도들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본래 교류회는 소속된 회원들끼리 협력해서 이끌어가는 구조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렌이 2학년부터 회장으로서 총괄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 말인즉 카터는 방금 일로 인해 교류회에 다시는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다, 다른 곳 좀 봐볼까?”

“그러자. 볼 것도 많으니까.”

눈치를 살핀 생도들이 여기저기로 흩어지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주변이 한적하게 변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인파를 해체해 버린 렌의 영향력에 이세훈이 살짝 감탄했다.

‘목줄을 제대로 쥐고 있구만.’

끽해봐야 골목대장 수준이 아닐까 했지만 아무래도 자신의 상상 이상으로 교류회를 휘어잡고 있는 모양이다.

이세훈이 감탄하는 사이 텅 빈 주변을 본 렌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내가 훼방을 놓아버린 모양이네.”

“괜찮습니다. 이 정도로 도망갈 정도면 저도 그렇게까지 친해지고 싶진 않아서요.”

담담한 이세훈의 대답에 렌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핫. 그러네. 기왕이면 제대로 된 사람과 교류하는 편이 좋지. 대단한걸.”

“뭐 대단할 것까지야…….”

“아니. 진심이야. 의외로 그런 사람은 보기가 드물거든. 아, 정확히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얼마 없다고 해야 하나…….”

교류회에 초대받아 온 이들 중에서 사람을 가려서 사귈 수 있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상대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든 자신의 재능만으로 압도할 수 있으리란 확신.

이세훈의 태도에서 그것을 느낀 렌은 한결 달라진 눈으로 바라보았다.

“좀 더 이야기하고 싶은데 준비해야 할 일이 있어서 힘들겠네. 나중에 시간 나면 또 보자.”

“예. 그러시죠.”

“만나서 반가웠어.”

손을 내밀어오는 렌의 모습에 이세훈이 맞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반가웠습니다.”

“그럼 나중에 또. 에리카.”

렌의 짤막한 부름에 옆에 서 있던 에리카가 바라보았다.

“할 일이 많으니까 좀 도와주겠니?”

“……알겠습니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 에리카가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나중에 봐.”

“그래. 제이크랑 돌아보고 있을 테니까 끝나면 와.”

“응.”

고개를 끄덕인 에리카가 렌에게 향했고 남매가 함께 연회장의 안쪽으로 향한다.

잠깐 대화를 나눴지만 자신에게 호의를 가졌다는 것이 숨김없이 느껴진다. 다른 생도들이라면 좋은 관계를 만들었다고 기뻐할 만도 한 상황이었지만.

‘웃는 낯짝으로 저주를 박고 가네.’

방금 맞잡은 손을 내려다본 이세훈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이는 손. 하지만 영연신마법을 통해 자신의 육체를 완벽히 인지하고 있는 이세훈에게는 그곳에 박힌 ‘쐐기’가 느껴졌다.

스스스

검은 안개로 이뤄진 흐릿한 쐐기. 그 희미한 저주가 방금 악수를 통해 손바닥에 박힌 것이다.

‘제대로 된 저주라기보다는 단말에 가깝구만.’

나중에 제대로 된 주술을 걸기 위한 사전준비.

그 때문인지 은밀성과 지속성에 특화된 것으로 보였는데 그 구조를 살핀 이세훈이 잠시 고민에 잠겼다.

‘해제 자체는 지금도 가능할 거 같긴 한데…….’

저주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모를까 지금처럼 정확하게 인지한 상태라면 영연신마법을 통해 간단히 해제할 수 있다.

하지만 이세훈은 지금 당장 해제하는 것이 오히려 손해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대놓고 저주를 걸었다는 것 자체가 날 만만하게 봤다는 거겠지.’

만약 여기서 저주를 해제해 버리면 평가가 바뀌긴 하겠지만 그만큼 경계 받게 될 터.

렌의 속내를 알아봐야 하는 이세훈으로서는 썩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일단은 놔두자.’

저런 음흉한 놈들을 상대할 때는 만만한 취급을 받고 있을 때 기습으로 얼마나 세게 후려치느냐가 관건이다.

결정을 내린 이세훈은 쐐기를 못 본 척 손을 내리며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이제 가…… 너 뭐 하냐?”

뭔가 불편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는 제이크.

그 모습에 이세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제이크가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냥 뭔가 좀 신경이 쓰여서.”

“피곤하면 나 혼자 돌아다닐까?”

“아냐아냐. 괜찮아. 요즘 피가 좀 모자라서 그런 걸 거야. 들어가자.”

도망치듯이 등을 떠미는 제이크와 함께 연회장의 안쪽으로 들어선 두 사람.

렌의 으름장 덕분인지 다가오는 생도들이 없어 쾌적하게 구경할 수 있었는데 그 모습에 이세훈이 방금 만남을 다시금 되새겨보았다.

‘생각해 보니 그것도 침 발라둔 거였네.’

교류회에서 친목도모는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이유.

그 실체는 재능과 실력을 갖춘 생도들을 영입하는 인력시장이었고, 이세훈은 조금 전 렌과의 만남으로 그에게 ‘입찰’을 당한 것이다.

‘물건 취급받는 것 같아서 영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둘러볼 여유는 생겼으니 뭐.’

아무런 방해 없이 제이크의 안내를 받으며 연회장을 걸어 다니던 이세훈은 스쳐 지나가는 이들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대부분 기억에도 없는 이들이 많았지만 간혹가다가 회귀 전에 본 적 있는 이들도 몇몇씩 있었다.

‘저놈은 비리로 잡힌 놈이고…… 저쪽은 살인청부. 협박이랑 사기, 만마전이랑 내통한 놈도 있네…….’

미래에 온갖 더러운 짓을 일삼다가 패가망신한 이들. 아직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기에 따지는 것이 무의미했지만, 이세훈은 왠지 모르게 김이 새는 것을 느꼈다.

‘생각보다도 수준이 낮아.’

교류회에 모인 생도들은 바벨에서도 알아주는 재능과 실력을 겸비한 이들.

무난하게 성장한다면 A급 영웅도 될 수 있는 이들이지만, 바꿔 말하면 ‘겨우’ A급 영웅밖에 안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쁘지는 않지만 그 정도로는 모자라지.’

이세훈이 상대해야 할 만마전에는 S급 영웅들조차 상대하기 벅찬 십악과 그 녀석들보다 강력한 육대마신이 존재했다.

거기에 무력을 떠나서 어디서 무슨 꿍꿍이를 벌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주시자까지 생각한다면 최소한 S급 영웅, 아니면 그에 버금갈 만큼 특수한 능력을 가져야만 했다.

‘한 명 정도는 건질 수 있을까 싶었는데…….’

역시 기대가 과했던 것일까. 이세훈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살피고 있을 때.

“……저기.”

앞서 걸음을 옮기던 제이크가 갑자기 멈춰 섰다.

“자, 잠깐 만나고 올 사람이 있어서. 잠시만 혼자 좀 돌아다니고 있을래?”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제이크. 그 모습을 보니 영 수상쩍었지만, 뭔가 사정이 있겠다 싶은 이세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 금방 다녀올게!”

연회장 밖의 정원 쪽으로 달려가는 제이크. 다급해 보이는 그 뒷모습에 이세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협박이라도 당했나.’

왜 저러나 궁금하긴 했지만 크게 위험한 일은 아닌 것 같았기에 이세훈은 홀로 연회장을 돌아다녔다.

“쯧…….”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돌아다녀도 건질 것이 없다 보니 절로 걸음이 멈췄고 그 결과 이세훈은 구석진 곳에 자리 잡고 챙겨온 음료를 홀짝였다.

‘이 정도면 슬슬 입질이 올 만도 한데…….’

렌이든 다른 누군가든 이제 좀 건드려줬으면 좋겠다. 이세훈이 지루한 표정으로 연회장을 살피고 있을 때.

“지루한 모양이군.”

익숙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눈에 차는 이들이 없는 건가?”

금발을 깔끔하게 넘긴 청년, 비에르 바르무트의 물음에 이세훈은 말없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대답하기 껄끄럽다면 하지 않아도 좋다. 어차피 네 표정에 다 드러나고 있으니.”

처음부터 기대도 안했다는 듯이 이야기한 비에르는 이세훈의 옆에 서서 연회장을 둘러보았다.

“뛰어난 인재를 필요로 하는 건 누구나 똑같지만, 대장장이들에게는 특히나 중요하지. 무구의 명성을 쌓아주는 건 제작자가 아니라 사용자의 몫이니까.”

“…….”

“네가 이곳에 온 것도 그런 이유 아닌가? 네가 무기를 만들어줄 만한 사람이 있는지, 아니면 충분히 지원을 해줄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말이야.”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비에르의 이야기에 이세훈은 이번에도 대답 대신 손에 들린 음료를 홀짝였다.

“……하지만 보다시피 그런 이들은 찾기 힘들다. 정확히는 네 눈에 찰만한 이들은 굳이 이런 곳에 참여해서 발버둥 치지 않는다는 거지.”

교류회에 참여한 것은 동아줄을 잡으려는 어중간한 이들. 정말로 선택받은 이들은 이미 자신만의 배후를 지닌 채 단련에만 힘을 쓰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제대로 된 ‘고객’을 가지고 싶다면, 우리와 손을 잡아라. 언젠가 학부에서 밀려날 지도교수 따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거다.”

바르무트 가문의 영입제안. 상당히 진지해 보이는 그 모습에 이세훈은 잔에 남아 있던 음료를 모두 마신 다음 옆의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그리고 진심으로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비에르를 바라보았다.

“너희는 왜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거냐.”

“……뭐?”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에 비에르가 눈매를 찌푸리자 이세훈이 피식 웃었다.

“내 눈에 안 차는 건 너희들도 똑같은데 뭘 잘난 듯이 주절거리고 있냐고.”

“…….”

“무기도 똑바로 못 만드는 놈들이 무슨…… 쯧쯧.”

비에르를 올려다보며 혀를 찬 이세훈은 더 듣기 싫다는 듯이 걸음을 옮겼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에 비에르는 말없이 걸어가는 상대를 바라보았다.

무기도 똑바로 못 만든다. 그 한 마디가 깊숙이 파고들었지만, 비에르는 주먹을 꽉 움켜쥐어 참아냈다.

‘아직은 아니다…….’

이런 기회가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 터질 것 같은 감정을 다잡은 비에르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너도 보는 눈이 형편없군.”

비에르의 이야기에 이세훈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뭐?”

“직접 보여주지. 따라와라.”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는 듯 비에르가 먼저 걸음을 옮겼고 이세훈은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뒤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연회장의 한쪽에 마련된 전시회장. 아직 한참 준비 중인 듯 어수선한 상태였는데 비에르는 다른 생도들을 밀치며 안으로 계속해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전시회장 중앙에 장식되어 있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금속패. 겉에는 두 자루의 검이 교차한 고급스러운 인장이 박혀 있었는데 그 모습에 이세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건…….’

회귀 전에도 본 적 있는 물건. 그 예상치 못한 물건의 등장에 이세훈이 놀라고 있을 때.

“이건 이번에 우리 가문이 새롭게 개발하고 있는 연금무구 ‘철장鐵欌’의 시제품이다.”

금속패, 철장을 움켜쥔 비에르가 이세훈에게 집어 던졌다.

“영웅 등급 재료 ‘파문수정’을 사용해서 만든 합금에 가문의 연금제련법으로 가공한 물건이지. 지금 시중에 나온 연금무구들과는 비교도 안 될 거다.”

비에르의 설명에 이세훈이 철장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지금 시대 기준에서는 오버 스펙이네.’

한 자루의 명검을 벼려내는 솜씨는 다른 명인들보다 뒤떨어질지 모르지만, 강력한 ‘병기’를 양산해내는 기술이라면 바르무트 쪽도 만만치 않다.

“이조차도 가문에서 진행 중인 수많은 프로젝트의 하나에 불과하지. 그리고 네가 우리와 손을 잡는다면 거기에 참여할 수 있을 거다.”

“…….”

“이래도 눈에 차지 않나?”

여기서 어떤 대답이 돌아오느냐에 따라 이 뒤의 일도 달라진다. 두 눈을 날카롭게 빛내는 비에르의 물음에 이세훈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좋네.”

긍정적인 대답. 그에 비에르의 눈에 아쉬움이 스쳐지나가던 그때.

“재료만 말이야.”

이어지는 말에 두 눈이 번뜩였다.

“……재료만 좋다?”

“그래. 이런 결함 덩어리를 보여주면서 기세등등하니…… 뭐 할 말이 없네.”

신랄하기 그지없는 평가에 비에르는 물론 시연회장에 있던 생도들의 표정이 굳어갔다.

비에르 개인이 만든 무구였다면 그냥저냥 넘어갈 수 있어도 바르무트 가문 차원에서 개발한 시제품을 깎아내리는 것은 상황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 말. 책임질 수 있나?”

차가운 비에르의 물음에 이세훈이 거침없이 대답했다.

“못 질 것도 없지.”

자신이 틀릴 리가 없다는 자신만만한 대답. 그 모습에 비에르는 눈매를 힘껏 일그러뜨려 분노를 드러내면서도 속으로 중얼거렸다.

‘멍청한 놈.’

철장에 큰 결함이 존재한다는 것은 자신들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 시제품을 챙겨온 것은 모두 이세훈을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이런 곳에서 자신에게 큰 피해를 줄 리도 없으니…… 명성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이세훈이 간과한 것은 자신들은 프로젝트 하나를 날리고 명성에 타격을 입더라도 이번 기회에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손을 잡았다면 넘어갔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오만함이 네 모든 걸 앗아가는 거다.’

이세훈이 철장으로 마력을 불어넣는 순간. 자신이 스킬을 은밀히 사용하여 폭발시킨다.

과거 루이제라는 생도에게 이미 실험해 본 적 있는 일이었기에 비에르가 은밀하게 마력을 끌어올리며 기다리고 있을 때.

후웅!

이세훈이 손에 쥐어진 철장을 허공으로 내던졌다.

예상과 다른 행동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져 있을 때. 이세훈이 철장에 붙였던 흑령사를 통해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철장의 겉면에 마력이 스며들며 균열이 퍼진 순간.

촤자자작!

완전히 분해된 수천 개의 부품이 연회장의 하늘 위로 폭발하듯이 펼쳐졌다.

“뭐…….”

그 압도적인 광경에 비에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그 모습을 바라본 이세훈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잘 봐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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