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68화
샹그릴라의 1층에 마련된 연회장.
1층의 모든 방을 공간 마법으로 엮어 만들어낸 것으로 그 넓이가 어마어마했는데 더더욱 놀라운 것은 내부를 꾸미고 있는 시설들이었다.
쏴아아─
중앙의 분수대에서 솟구친 물이 새와 물고기의 형태로 살아 움직였고, 그 위에 매달린 거대한 샹들리에가 은은하게 빛을 흩뿌리며 연회장 전체를 밝혔다.
정장을 입은 채 음식을 서빙하는 인간형 골렘과 허공에 부유한 채 음악을 연주하는 수십 종류의 악기들.
그 이외에도 바깥에서 보기 힘든 수많은 장식품이 연회장 내부를 꾸몄는데 그 화려한 풍경에 막 미궁을 통과하고 들어온 생도들이 입을 떡 벌렸다.
“와…….”
“이게 무슨…….”
바벨의 시설에 나름대로 적응했다고 생각했지만, 눈앞의 광경을 보니 그건 단순한 맛보기였다는 것이 다시금 느껴진다.
상식을 넘어선 광경에 압도되어 있을 때. 그들을 초대했던 이들이 다가와 피식 웃었다.
“뭘 이 정도 가지고. 안쪽에 더 재밌는 것도 많아.”
“앞에 말했던 사람들 소개시켜 줄게. 가자.”
이 광경에 매료되었다면 포섭은 반쯤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연회장으로 들어서며 조금씩 물들어가는 생도들.
입구 옆에 서서 무심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에리카가 담담히 중얼거렸다.
“쓸모없어…….”
유망주로서 초대받은 이들도, 그리고 그들을 초대한 교류회의 회원들에게도 아무런 가치가 느껴지지 않는다.
무의미하기 그지없는 그 광경에 에리카가 아무런 감흥도 없이 바라보았고 그 시선에 주변을 떠돌던 생도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무슨 눈빛이…….’
‘말도 못 걸겠네…….’
우르의 학과수석이자 이번 교류회를 주도한 이노우에 가문의 장녀.
배경과 재능 모두 빼놓을 게 없는 인물이었기에 이번 기회에 친분을 만들고 싶었지만,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말을 걸기는커녕 다가가기도 힘들었다.
그렇게 모두가 언젠가 기회가 생기길 기다리며 주변을 맴돌고 있을 때.
“아. 여기 있었네.”
하얀 정장을 차려입은 금발의 청년, 제이크가 에리카에게 다가가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언제 왔어?”
“방금.”
“그래? 아, 드레스 잘 어울리네.”
“응.”
관심 없다는 듯 단답으로 일관하는 에리카와 그런 반응에 별달리 신경 쓰지 않는 제이크.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주변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생도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저 둘이 친했었나?’
‘이노우에랑 마이어스는 사이가 안 좋을 텐데…….’
2년 전 교류회에서 벌어진 사건을 안다면 어색하기 그지없는 광경. 하지만 두 사람은 그런 시선들에도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세훈 걔는 어디 갔어?”
“아직 미궁에 있어.”
“아아. 그러고 보니 그게 있었지. 지금 몇 분 지났는데?”
“5분 43초.”
“……뭐?”
에리카의 이야기에 제이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이세훈은 그 까다로운 마석액도 가볍게 다뤄내는 감각의 소유자. 이번 미궁이라면 5초도 안 돼서 파훼해야 정상이었다.
‘진짜 부상이 심했나? 겉보기엔 그렇게까지 심해 보이진 않았는데…… 아니면 누가 미궁에 수작이라도 부린 건가?’
생도들이 미궁에 헤매는 것을 구경하는 자들이라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이세훈을 찾으러 가야 할지 제이크가 고민하던 그때.
끼이익
입구가 열리며 이세훈이 연회장으로 들어섰다.
“겨우 도착했네…… 뭐야. 나 기다리고 있었냐?”
두 사람을 발견하며 피식 웃는 이세훈.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이는 그 모습에 제이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음? 아아. 살짝 구경 좀 한다는 게 길을 잃어버려서.”
“……구경?”
이번 미궁은 다른 방과 연결되는 구조였던가? 들은 적 없는 이야기에 제이크가 의아해하는 사이 이세훈이 방금까지 돌아다니던 복도를 떠올렸다.
‘루트비히가 걸어둔 것 같아서 한번 살펴봤는데…… 역시 공간 마법이 쉽지 않아.’
샹그릴라에 걸린 공간 마법은 거대한 저택을 수천 조각의 블록으로 분리하여 자유자재로 조립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일종의 퍼즐 같은 방식이었기에 구조만 파악하면 공간 마법을 몰라도 어느 정도 다룰 수가 있었는데 몇 번 실수를 한 탓에 잘못된 길로 들어간 것이다.
‘그래도 뭐 덕분에 예상치 못한 소득도 얻었으니까.’
길을 잃은 도중에 우연히 찾게 되었던 관음증 환자들의 대기소. 거기서 비에르 바르무트와 마주쳤던 이세훈은 헤어지기 무섭게 새로운 알림창을 받았다.
[대상 ‘비에르 바르무트’와의 인연이 성립되었습니다.]
‘말 한마디에 인연이라…… 내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야.’
비에르와 성립된 인연. 물론 앞서 쌓아온 인연들처럼 호의적인 감정일 리는 없겠지만, 이세훈에게는 그것도 나쁘지 않은 소득이었다.
‘인연이 성립될 만큼 나를 의식하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이 정도라면 이번에 뭔가 일을 저질러도 이상하지 않다. 좀 더 긴장해 있기로 이세훈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정말이야?”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에리카가 진지한 표정으로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여기 말고 다른 방으로 갔었어?”
“몇 군데 안 갔어. 관음증 환자들 모여 있던 방이랑, 잡동사니 쌓아둔 방. 아, 마법진 깔려 있던 방도 있었네.”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이세훈.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에리카의 표정은 더더욱 진지해졌다.
‘모니터링실과 창고. 그리고 관리실까지…….’
하나같이 철통같은 보안이 깔려 있는 장소. 이세훈이 정말로 그 장소를 오간 것이라면, 사실상 샹그릴라의 공간 마법을 파훼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교류회 때문에 허술하다고 해도 공간 마법을 따로 익힌 게 아니라면 쉽지 않아. 이 정도면…… 마법적성 A, 아니 S라고 봐도 무방해.’
감각적으로 펼쳐내는 주술뿐만 아니라 세밀한 계산을 요구로 하는 마법에도 적성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재능을 파악한 에리카의 두 눈이 번뜩였고, 그 모습에 이세훈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애도 기회만 생기면 인연레벨 오르겠네.’
순조롭게 올라서 좋기는 하지만 눈빛이 영 부담스럽다. 옆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슬쩍 피한 이세훈은 교류회장을 훑어보았다.
“그보다…… 시선들이 꽤 뜨겁구만.”
이제 막 입구에 들어왔는데도 주변에 모여드는 생도들의 수가 심상치 않다. 점차 포위망이 형성되어가는 상황에 제이크가 씩 웃었다.
“오늘 주인공은 신입생들이니까 말이야.”
교류회에 초대받을 정도의 인재들은 크게 하자가 있는 게 아니라면 보통 첫 교류회 때 저마다 스폰서가 생겨난다.
즉, 이번 교류회에서 인재를 영입하는 데 실패한다면 향후 몇 년, 어쩌면 완전히 놓쳐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대장장이는 특히나 인기가 많고.’
강력한 영웅은 그 한 명으로 끝나지만, 강력한 무구는 주인을 바꿔가며 얼마든지 재사용할 수 있다.
그렇기에 세력과 자본을 갖춘 집단에게는 영웅보다 기술직, 특히나 무구 제작 쪽의 인재가 간절했다.
주변에 모여 어떻게든 말을 걸려고 기회를 엿보는 생도들. 그 모습에 이세훈은 자연스레 회귀 전의 광경이 떠올랐다.
‘광견의 창을 만들어준 대장장이다! 죽여!’
‘네놈의 폭견의 연인인가. 순순히 따라온다면 사지는 남겨주마.’
‘두령님께 자유를!!’
삼견과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납치와 암살 시도에 휘말렸고, 매번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으니 나중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만 봐도 휩쓸릴까 봐 피해 다녔다.
‘이런 건 또 오랜만이네.’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호의적인 인파. 그 낯선 상황에 이세훈은 조금 어색하면서도 썩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미소를 지은 이세훈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럼 주인공답게 가보자.”
이렇게 가만히 있어서야 주인공이 아니라 구경거리 아닌가. 이세훈의 이야기에 제이크가 씩 웃었다.
“그래. 안내는 내가 해줄게.”
제이크가 선두로 걸음을 옮기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생도들이 움찔거리며 재빠르게 옆으로 물러났다.
말을 걸어보려고 모이기는 했으나 이세훈 옆에 있는 에리카와 제이크, 두 사람의 가문이 워낙에 큰지라 섣불리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다.
“잠시 지나갈게.”
“…….”
양해를 구하는 제이크와 이세훈을 노리는 이들을 기억하겠다는 듯 살펴보는 에리카.
두 사람의 철통같은 방어에 모두가 차마 말을 걸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을 때.
“저, 저기……!”
소심해 보이는 청년이 이세훈에게 다가왔다.
“무구에 관해서 무,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자, 잠시 괜찮을까?!”
얼마나 긴장했는지 말까지 더듬어가며 물어보는 갈색머리의 청년. 그 유약해 보이는 모습에 이세훈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다짜고짜?”
“아, 아! 그게 무투학부 2학년 수석인 애덤 바이너야.”
“흐음…….”
청년, 애덤의 소개에 이세훈이 가만히 살펴보자 옆에 서 있던 제이크가 슬쩍 다가와 속삭였다.
“아는 선배님인데 별다른 의도는 없을 거야.”
“그래?”
같은 무투학부인 제이크의 설명에 이세훈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궁금하십니까?”
“괘, 괜찮아?”
“괜찮으니까 말씀하세요.”
이세훈의 대답에 애덤이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긴장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다른 게 아니고 이번에 새로 맞춘 건틀렛이 있는데 전투 중에 이질감이 느껴지거든. 근데 또 검사해 봤을 때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해서…….”
“결과가 영 못 미덥다 이거네요. 오늘 건틀렛 가지고 오셨습니까?”
“어? 아, 여기 있어!”
허겁지겁 아공간 포켓에서 검은색 건틀렛을 꺼내주는 애덤. 그것을 건네받은 이세훈은 먼지라도 털어내듯 가볍게 이리저리 휘둘러보았다.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듯한 모습. 그 모습에 주변에 모인 생도들의 표정이 오묘해질 때.
“이거 검지랑 중지 사이에 마력회로가 약간 어긋났네요.”
이세훈이 건틀렛의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정말?”
“미세하긴 한데 효율이 좀 떨어지긴 했을 겁니다. 이 정도면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을 텐데 감각이 좋으시네요.”
건틀렛의 이음새를 만지작거리던 이세훈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애덤을 바라보았다.
“근데 검사는 어떤 등신이 한 겁니까? 눈이 달려 있으면 이걸 못 볼 수가 없는데.”
겉으로 볼 때는 구분하기 힘들 수 있어도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찾아낼 수 있을 만큼 간단한 결함이었다.
그런데 이걸 검사까지 했는데 못 찾다니? 이세훈의 물음에 애덤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주변 눈치를 살피며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그 모습에 이세훈이 손을 내저었다.
“됐습니다. 이런 것도 못 찾아낼 놈이면 뭐, 굳이 들을 필요도 없으니까요.”
재능 있는 녀석들을 상대하기도 바쁜데 그런 어쭙잖은 놈을 상대할 이유는 없다.
다시 건틀렛으로 시선을 돌린 이세훈은 손가락으로 회로가 어긋난 부위를 가볍게 튕겼다.
티잉─
청아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 그 울림을 들은 이세훈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건틀렛을 돌려줬다.
“다 고쳤습니다.”
“……어?”
“살짝 어긋나 있던 거라 별거 아니었어요.”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이세훈의 모습에 애덤을 비롯한 주변의 생도들이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장비가 망가질 수 있는 마력회로를 저렇게 간단히 고친다니? 아무리 학과수석이라 해도 쉽사리 믿음이 가지 않았다.
“…….”
건네받은 건틀렛을 바라보던 애덤은 조심스레 오른팔에 착용했다.
철컥─
손을 집어넣자 부드럽게 조이며 장착되는 건틀렛. 그리고 애덤의 마력이 내부로 스며들었고.
“……어?”
이질감은커녕 이전보다 더욱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효율적인 부분도 몇 개 보이길래 살짝 조율해뒀습니다. 제대로 된 사람한테 가져가서 반대쪽도 똑같이 조율해달라고 하세요.”
수리뿐만 아니라 조정까지 단숨에 끝냈다. 그 이야기에 애덤이 멍한 표정을 짓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며 물었다.
“고, 고마워. 사례는 어떻게…….”
“계좌 보내드릴 테니까 적당히 보내주시면 됩니다.”
“알았어. 정말 고마워!”
문자로 계좌를 받은 애덤은 연신 고개를 꾸벅이며 자리를 떠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생도들이 조용히 눈치를 살폈다.
‘저 정도 실력이면 얼굴만 터둬도…….’
‘영입하려고만 안 하면 이노우에나 마이어스나 별말 없는 것 같은데.’
‘이건 놓치면 무조건 후회한다!’
재빠르게 견적을 낸 생도들이 슬금슬금 이세훈에게 다가가며 막 말을 걸어보려던 찰나.
“비켜!”
거구의 청년이 다른 생도들을 밀치며 걸어 나왔다.
2m는 족히 되어 보이는 커다란 덩치. 얼굴은 누구든 처음 본다면 주눅들만큼 험악했고 정장은 우락부락한 근육에 터질 것처럼 부풀어 있었다.
“너냐?”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물음. 절로 위압감을 안겨주는 광경이었지만 이세훈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올려다보았다.
“뭘?”
“내가 손 본 건틀렛에 헛소리를 한 게 네놈이냔 말이다.”
당장에라도 한 대 후려칠 것처럼 얼굴이 일그러진 청년. 그 살벌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이세훈의 표정이 굳어졌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굳은 듯한 모습. 자신이 우위에 섰음을 깨달은 청년이 다시금 몰아붙이려던 그때.
“왜 그렇게 형편없나 했더니 비전공자한테 맡긴 거였구만…… 미안합니다. 취미로 만든 줄 알았으면 나도 그렇게 혹평은 안 했을 텐데.”
“……뭐?”
“야. 근데 너네 선배는 왜 아칼쿠프 쪽에 무구 제작을 맡기냐. 그래도 전공자들한테 맡겨야지.”
“…….”
이세훈의 이야기에 주변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고 타박을 들은 제이크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대답했다.
“크흠. 그게…… 더글라스 선배는 아칼쿠프가 아니야.”
“뭐? 그럼 우르야?”
“아니. 제련학부 2학년 수석이셔.”
“…….”
제이크의 설명에 이세훈이 거구의 청년, 카터 더글라스를 바라보았다.
당장에라도 터질 것처럼 붉게 물든 얼굴과 새하얗게 질릴 정도로 꽉 움켜쥐어진 두 주먹.
그 모습에 이세훈이 가만히 바라보다가 턱을 쓰다듬었고.
“이게?”
김빠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 개새끼가!!!”
이세훈을 데려오라던 비에르의 명령도 잊은 채 이성을 잃고 주먹을 휘두르는 카터.
살의마저 느껴지는 그 일격에 제이크가 재빠르게 그 사이로 끼어들었고 이세훈의 옆에 서 있던 에리카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살핀 이세훈이 담담하게 다가오는 주먹, 정확히 그 옆쪽의 허공을 바라보았고.
툭
허공을 가르며 나타난 검은 막대가 주먹을 막아냈다.
“뭣…….”
아무런 무게감 없이 가볍게 주먹을 막아선 검은 막대. 그 모습에 카터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다 그 주인을 알아차리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뚜벅
아무것도 없던 공간이 갈라지고 그 너머의 복도에서 한 청년이 천천히 걸어 나온다.
에리카와 같이 새카만 흑발에 무테안경을 쓴 냉담한 인상의 청년. 보기만 해도 ‘엘리트’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모범적인 모습이었지만, 무언가 끈적거리는 불쾌함이 공존했다.
‘이놈은…….’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그 모습에 이세훈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보고 있을 때.
“……오라버니.”
옆에 서 있던 에리카가 작은 목소리로 청년을 불렀다.
이노우에 가문의 당주. 수많은 마인을 격살하고 십악 중 하나인 탐망을 봉인해낸 S급 영웅.
그리고 동생인 에리카를 마인으로 만드는 데 협조했을지도 모르는 뒤가 구린 인물.
“만나서 반가워”
이노우에 렌이 이세훈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