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67화
토요일 밤.
주말은 맞이한 각 구역의 번화가들은 언제나처럼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지만 오늘은 조금 그 비율이 달랐다.
“언제쯤 시작한대?”
“조금 있으면 시작할걸?”
보르시파의 학과구역 번화가 쪽에 위치한 언덕 아래.
바리게이트 너머로 모인 인파들은 저마다 자리를 잡은 채 어두컴컴한 언덕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축제라도 앞둔 분위기. 그 기묘한 열기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부풀어 올라가고 있을 때.
피이잉─
희미한 소리와 함께 언덕에서 솟구치는 일곱 개의 불꽃.
밤하늘에 파묻혀 금방이라도 사라질듯한 희미한 불꽃들이 하늘 높이 올라가며 한 점으로 수축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부터 막대한 마력이 용솟음친 순간.
퍼어어엉!!!
형형색색의 불꽃이 하늘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왔다!”
“빨리 찍어!”
기다리던 행사가 시작되었음을 깨달은 이들이 환호했고 거기에 보답하듯 불꽃들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퍼퍼펑!
첫 폭발 이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불꽃들이 밤하늘의 별빛마저 지워내며 화려하게 반짝인다.
치열한 입찰경쟁을 뚫고 낙찰된 인챈트 학부의 연쇄 폭발 폭죽. 교수와 조교, 생도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물건들이 하늘에서 쉴 새 없이 터지는 것이다.
“불꽃 엄청 예쁘네…….”
“마력이 어떻게 저렇게 선명하게 터지지. 미쳤네 그냥…….”
“이거 언제까지 터지는 거야?”
누구에게나 보이는 화려한 불꽃. 실력 있는 이들에게만 보이는 마력의 형태. 그리고 단가를 아는 이들에게 보이는 무시무시한 금액!
어떤 이유에서든 눈을 뗄 수 없는 불꽃놀이에 모두가 홀린 듯이 바라보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끝이 다가왔다.
휘이익
힘을 잃으며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한 불꽃. 벌써 끝나는구나 싶어 사람들이 아쉬워하던 찰나.
파앗!
언덕에서 쏘아진 수천 개의 조명이 하늘 위를 비추기 시작했다.
우우웅!
흩어지던 불꽃의 잔해가 조명과 뒤섞이더니 이내 살아 있는 생물처럼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생생히 움직인다.
그 광경에 넋 놓고 바라보던 사람들은 자연스레 조명과 함께 언덕 위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물을 바라보았다.
“저게 샹그릴라구나.”
“건물 진짜 장난 아니네…….”
수천 개의 조명을 받으며 별처럼 빛나는 새하얀 저택.
보르시파의 명물이자 바벨의 각종 행사가 열리는 초대형 연회장 ‘샹그릴라’.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연회장이 불리는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올해 첫 교류회는 장난 아니네. 벌써 얼마나 쓴 거야?”
“지금 주관하는 3학년들이 장난 아니잖아. 게다가 올해 신입생들 수준도 높으니까 제대로 투자받은 거겠지.”
“나도 초대받고 싶었는데…….”
순순히 즐기는 일반인들과 달리 바벨의 생도들 사이로 질투와 시기, 그리고 선망의 눈길이 샹그릴라를 향한다.
바벨과 영웅업계의 최상위권에 위치한 이들이 주관하는 연회. 노블레스 교류회가 시작되었음이 바벨 전역에 알려졌고.
“…….”
달리는 리무진 안에서 그 광경을 올려다본 이세훈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생도들끼리 모여서 수다 좀 떠는 행사의 전야제를 이렇게 요란하게 펼치다니. 도대체 돈이 얼마나 썩어 넘쳐야 가능한 일인지 가늠도 가지 않았다.
‘안에는 무슨 짓을 해놨을지 상상도 안 가네.’
이 정도면 온갖 값비싼 물건들을 챙겨 와서 자랑한답시고 전시회라도 열어두지 않았을까. 이세훈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어때?”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에리카가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드레스 코드에 맞춰 검은색의 단정한 드레스를 차려입은 에리카.
복장 때문인지 몰라도 평소보다 어른스러우면서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그 모습에 이세훈이 되물었다.
“뭐가?”
“방금 전야제. 어땠어?”
그냥 궁금한 것인지, 아니면 관계자로서 묻는 건지 알 수 없는 물음. 그 모습에 이세훈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대단하네.”
“정말?”
“정말이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인 이세훈이 밖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어떤 미친놈들이 저렇게 창조적으로 돈을 내다 버릴 생각을 하겠냐. 떠올린 것도 대단하고, 실행한 것도 대단해.”
자신들의 힘을 과시할 목적으로만 저만한 규모의 일을 벌이다니. 돈에 얽매이지 않는, 그야말로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한테도 후원 좀 해주면 좋겠네. 적당히 둘러대면 좋다고 돈 퍼다 줄 거 같은데.”
진지하게 한번 해볼 만할 것 같아 이세훈이 고민하고 있을 때.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에리카가 입을 열었다.
“우리야.”
“음?”
“이번 전야제 기획. 우리 가문에서 맡았어.”
“…….”
리무진 안을 가득 채우는 어색한 침묵. 이세훈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에리카가 담담하게 물었다.
“후원해 줄까?”
“……아니. 됐다.”
에리카 앞에서는 돈 씀씀이로 이야기하면 안 되겠다고 이세훈이 생각하고 있을 때. 리무진이 언덕 위로 부드럽게 오르며 샹그릴라의 본관 앞에 도착했다.
딸깍
직원이 열어준 문을 통해 리무진에서 내린 이세훈은 눈앞의 저택을 바라보았다.
사방에서 쏘아지는 조명을 받으며 새하얗게 빛나는 대저택.
멀리서 볼 때는 그냥 하얗게만 보였지만, 가까이서 보니 무지갯빛이 은은하게 맺혀져 있었다.
‘제대로 발동도 안 했는데 이 정도라…… 어지간한 방공호는 명함도 못 내밀겠는데.’
외부에서 찾아온 귀빈이나 고위층들을 맞이하는 건물이라 그런 걸까. 주변을 살피며 에리카와 입구로 향하자 대기 중이던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다가와 고개를 꾸벅였다.
“어서 오십시오 에리카님. 동행하신 분의 초대장을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응.”
에리카가 시선을 보내자 이세훈이 품에서 준비해둔 초대장을 건네주었다.
그것을 건네받아 마력으로 가볍게 스캔하여 위조 여부를 확인한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옆으로 비켰다.
“노블레스 교류회에 참석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직원들의 인사와 함께 현관문이 부드럽게 열리더니 샹들리에로 빛나는 원형의 중앙홀과 화려하게 꾸며진 거대한 문이 보였다.
‘저기가 교류회장인가.’
그 모습을 살핀 이세훈이 안쪽으로 발을 내디딘 그 순간.
후웅─
끝없이 뻗어 있는 복도가 눈앞에 나타났다.
* * *
어느 집단이든 간소하게나마 전통이 있듯 노블레스 교류회 역시 ‘미궁’이라 불리는 신고식이 있었다.
샹그릴라의 저택에 걸려있는 공간 마법을 이용하여 끝없이 이어지는 복도를 헤매게 만든다.
얼핏 보면 의미 없는 장난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나름대로 현실적인 이유도 존재했다.
[뭐, 뭐야. 다들 어디 갔어?]
[이건…….]
누군가는 당황한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만 하고, 누군가는 곧장 상황을 파악하고 공간 마법을 파훼하기 위해 움직인다.
허공에 떠오른 화면을 바라보며 그 상황을 지켜보던 교류회의 회원들이 저마다 의견을 이야기했다.
“흐음. 이 녀석은 조금 얼빵하기는 해도 감이 좋네. 적당히 투자하면 쓸 만할 것 같은데.”
“저놈은 눈치는 빠른데 재능이 떨어지네. 너무 높게 잡았던 것 같아.”
눈여겨봤던 유망주들의 재능과 능력을 다시금 확인하는 과정. 즉 초대받은 생도들의 값어치를 매기는 과정인 것이다.
“야. 이 녀석 좀 괜찮은데.”
“어디 봐봐.”
인재에 목이 마른 이들은 한 명이라도 건지기 위해 패널을 바쁘게 조작하며 살펴보았고, 여흥 삼아 보는 이들은 일부러 형편없는 생도만 골라보며 즐긴다.
그 가지각색의 풍경 속에서 금발을 깔끔하게 넘긴 듬직한 인상의 청년, 비에르 바르무트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
누구든지 살펴보고 있는 이들과 달리 패널에 손도 대지 않는 비에르. 그 모습에 같이 앉아 있던 거구의 청년이 조심스레 물었다.
“저…… 비에르 님. 다른 녀석들이라도 한 번 보시는 게…….”
“닥쳐라.”
“넵.”
비에르의 이야기에 거구의 청년, 제련학부의 2학년 수석인 카터 더글라스가 재빠르게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괜한 말을 덧붙였다가 피해를 보는 것은 자신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스.”
“예, 예! 형님.”
“이세훈이 참가하는 게 확실하나?”
비에르의 물음에 한스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마 그럴 겁니다. 수업 중에 마력사용만 자제했지 몸 상태가 안 좋은 모습은 없었으니…….”
“참가하는 게 확실하냐고 물었을 텐데.”
“그, 그건…….”
무심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비에르의 모습에 한스가 식은땀을 흘렸다.
‘왜 나한테 난리야…….’
수업 중에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경우도 잘 없고, 최근에는 아예 과제를 미리 다 제출해서 얼굴을 보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교류회에 참석하는지 안 하는지 자신이 어떻게 확신한단 말인가.
‘진짜 치사하고 더러워서…….’
본래도 후계자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관계였기에 사이가 좋지는 않았지만, 수석을 놓치고 후계자 경쟁에서 도태된 이후로는 거의 하인처럼 부려먹는다.
자신의 처지에 서러움이 팍팍 밀려왔지만 한스는 그에 대해서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바르무트 가문 자체가 본래부터 그런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 비에르 님. 왔습니다!”
한스가 막 변명을 쥐어 짜내려던 순간. 패널을 뚫어져라 살펴보던 카터가 재빠르게 화면을 띄웠다.
그러자 나타나는 것은 붉은 복도에 막 들어선 날카로운 인상의 청년. 검은 정장을 입고 있으니 생도보다는 살인청부업자와 같은 느낌이었는데 주변에서도 탄성이 나왔다.
“내가 장담하는데 저놈 사람 죽여 봤다.”
“저거 대장장이 맞아?”
“역시 학과수석인가. 분위기부터가 다르네.”
다른 생도들을 살펴보던 이들도 망설임 없이 화면을 전환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안에 모여 있던 모든 회원이 한 사람만을 보게 되었다.
이번 교류회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확연히 알 수 있는 모습.
그 상황 속에서 비에르는 화면 너머로 비치는 청년, 이세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흐음…….]
눈앞에 나타난 복도를 찬찬히 훑어보는 이세훈. 놀라기는커녕 기다렸다는 듯이 주변을 살펴보는 그 모습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저렇게 여유로워?”
“내 말이. 혹시 미리 들은 건가?”
“그럴 수도 있겠네.”
기본적으로 미궁에 관한 것은 비밀로 해뒀지만, 교류회의 분위기가 조금 느슨하다 보니 자신이 영입한 생도를 돋보이게 만들려고 언질을 해두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세훈의 경우 현재 노블레스 교류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노우에 가문한테 초대장은 받은 생도.
그 위치를 생각한다면 언질을 줬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그 분위기였다.
‘언질을 들은 녀석들은 티가 나는데…… 뭔가 다르단 말이지.’
‘알고 있다기보다는 익숙하다는 느낌이야.’
자기 실력을 뽐내려고 안달하던 다른 생도들과 달리 침착하면서도 심드렁한 태도.
특별한 것이 없는데도 이목을 모으는 그 모습에 모두가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을 때.
퉁퉁
이세훈의 갑작스레 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여기…… 흐음. 아니네…….]
벽면을 유심히 살펴보고 노크하듯 두드리는 이세훈.
마치 숨겨진 입구를 찾는 듯한 그 모습에 떠들썩하던 방안이 조용해지더니 이내 피식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뭐야. 완전 허탕이잖아.”
“대단한 거라도 보여주나 했더니…… 에휴. 그럼 그렇지.”
이번 미궁은 공간 마법을 파악하고 틈새에 마력을 조금만 불어넣어도 해제되는 수준으로 감이 좋다면 간단히 파훼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저렇게 벽만 두드리고 있다는 것은 타고난 감각이 둔하거나 마력을 사용하는 데 문제가 있다는 뜻일 터.
“이전에 감각이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고 했으니 부상을 입은 게 맞나 보네.”
“실력이 어떤지 궁금했는데 이래서야 볼 수도 없겠어.”
계속해서 벽만 두드리고 있는 이세훈의 모습에 하나둘씩 화면을 돌려버렸고, 남은 것은 헤매는 모습을 보며 비웃는 이들밖에 없었다.
“…….”
그 사이에서 말없이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비에르.
눈을 떼지 않는 그 모습에 한스와 카터가 눈치를 보고 있을 때. 굳게 닫혀있던 비에르의 입이 열렸다.
“끝났군.”
무언가 있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지만, 자신의 눈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이 보였다.
끈질기게 벽을 두드려대는 이세훈의 모습에 비에르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생각보다 부상이 심한 건가. 저 정도면 굳이 위험한 방법을 쓸 필요는 없겠어. 간단하게 『여명』의 도움을 받아서…….’
비에르가 머릿속으로 계획을 다시금 점검하던 그때.
철컥─
화면 너머로 들리는 이질적인 소리. 그에 비에르가 다시금 화면을 바라보자 텅 비어 있는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뭐?”
눈앞의 화면은 미궁이 유지되는 한 사라지지 않으며, 미궁은 생도가 빠져나가는 순간 곧장 해제되게 되어 있다.
즉, 텅 빈 복도를 비추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뭐야. 이세훈 그 녀석 없어졌는데?”
“은신 마법이라도 쓴 거 아냐?”
“그런 걸 왜 갑자기 써. 그리고 저놈 대장장이잖아.”
갑작스러운 상황에 내부가 떠들썩해졌고 화면을 돌렸던 이들도 다시금 텅 빈 복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이세훈의 모습은 발견되지 않았고 그 화면을 가만히 바라보던 비에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비에르 님?”
“복도로 간다. 따라와라.”
무슨 잔재주를 부린 것인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만 한다. 문으로 다가간 비에르가 막 문을 열려던 순간.
끼이익
바깥에서 열리는 문. 그리고 그 틈새로 화면에서 사라졌던 이세훈이 고개를 내밀었다.
“넌…….”
“뭐야. 여기 아니었네.”
연회장이 아닌 것을 확인한 이세훈이 김빠진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뒤로 빼다가 눈앞의 비에르를 바라보았고.
“쯧쯧. 음침하기는…….”
한심스럽다는 듯이 혀를 차며 문을 닫았다.
쿵
열렸던 문이 다시 닫히고 비에르와 함께 그 모습을 보았던 카터와 한스가 멍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여기는 어떻게 올라온 거지?”
“출입증 없이는 못 올 텐데. 도대체 뭐가…….”
신기루라도 본 듯한 느낌. 두 사람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비에르가 뒤늦게 문을 열고 바깥의 복도를 재빠르게 살펴보았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화면처럼 텅 비어 있는 복도. 그 모습을 본 비에르는 이세훈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깨달았다.
‘샹그릴라에 부여된 공간 마법의 구조를 파악해서 역으로 이용했다고?’
화면 속에서 벽을 두드리던 것은 무의미한 행동이 아니라 자신이 쓸 수 있는 틈새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이론으로는 이해할 수 있으나 직접 해보라고 한다면 엄두도 나지 않는 기예.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펼쳐낸 이세훈의 모습을 떠올린 비에르의 두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고.
‘음침하기는.’
빠드득
섬뜩한 소리가 입안에서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