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64화
[몽환규도夢幻窺刀]
[등급 : 영웅] [품질 : 중상]
몽환의 불꽃으로 빚어진 단검.
정신계열의 간섭에 강한 저항력과 파훼 능력을 사용할 수 있으며 몽환의 불꽃을 소모하여 지정된 부위를 꿈의 경계로 밀어 넣어 불태울 수 있습니다.
단, 몽환의 불꽃을 모두 소모하면 모든 기능이 사라지게 됩니다.
*착용자의 정신계열 저항력을 대폭 증가시킵니다.
*착용자에게 가해지는 정신계열 간섭을 파훼시킵니다.
*스킬 ‘신루화蜃樓火’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정보창을 읽은 레아는 천천히 그 형태를 살펴보았다.
칼끝으로 갈수록 조금씩 폭이 좁아지는 보랏빛 검신. 검날은 보석을 깎아낸 것처럼 반투명했고 안쪽에는 자신의 인챈트가 희미하게 비쳐 보였다.
거기에 일자로 깔끔하게 만들어진 크로스가드와 백란화처럼 새하얀 손잡이.
단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모양새에 레아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이게 잘 만들어졌다는 거구나…….”
무구의 힘을 완벽히 갈무리하는 마력회로와 고르게 중심이 잡혀 있는 조형.
거기에 자신의 인챈트까지 정확히 맞물려 있으니 대장장이와 인챈터가 합작해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였다.
몽상규도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레아는 잠시 고민하다가 진지한 표정으로 이세훈에게 물었다.
“후배.”
“왜.”
“가슴이 마구 뛰는 게 아무래도 사랑 같은데. 너한테 고백해도 될까?”
“…….”
무구를 살피다 뜬금없이 헛소리를 하는 레아의 모습에 이세훈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니. 하지 마.”
“쓰읍…… 알았어.”
이세훈의 단호한 거절에 레아는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셨지만 또 크게 시무룩해 하지는 않았다.
사실 완성된 무구를 보고 흥분해서 마구잡이로 내뱉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짜악!
물론 다른 사람, 집안의 어른이 듣기에는 달랐지만.
“아악!!”
불시에 등짝을 후려 맞은 레아가 허리를 쭉 펴며 파르르 떨었고 뒤에 다가온 레베카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사랑이 뭐가 어쩌고 저째? 실없는 소리로 후배나 희롱하고…… 내가 못 산다 못 살아!”
“희, 희롱이라뇨. 마음속 깊이 우러나온 진심…….”
짜악!
“끄악!”
더 듣기도 싫다는 듯이 다시 한번 등짝을 후려갈겨 레아의 입을 막은 레베카는 한숨을 내쉬며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이세훈 생도. 괜찮다면 완성품을 좀 살펴봐도 될까요?”
“아, 예. 편히 보십시오.”
몽환규도를 어떤 식으로 사용할지는 비밀이지만, 성능 자체를 숨길 생각은 딱히 없었다.
“고마워요.”
이세훈의 허락에 레베카는 즉각 레아에게서 몽환규도를 뺏은 다음 정보창을 읽어보았다.
“정말 영웅 등급이었군요…….”
완성된 무구의 자태를 보고 어느 정도 짐작하긴 했으나 막상 직접 확인하게 되니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일반], [고급], [희귀], [영웅], [전설], [신화]로 나뉘는 여섯 단계 중 네 번째인 영웅 등급.
이 위치는 무구업계에서 일종의 전환점으로 여겨진다.
무구가 영웅의 능력을 보조하는 것이 아닌, 영웅이 무구의 능력을 보조할 수 있는 수준. 그렇기에 그것을 ‘영웅 등급’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일반적인 생도들은 졸업하고 경험을 쌓은 뒤에나 만들까 말까 한 수준인데…….’
물론 인챈터인 레아의 협력과 몽환의 불꽃을 모두 사용하면 기능이 사라지는 소모품이었기에 완전한 영웅 등급의 무구를 만들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용한 재료가 몽상아와 남화우 같은 다루기 힘든 재료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실력은 이미 충분하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혼자서 영웅 등급 무구를 만들어내는 것도 시간문제겠어…….’
작년에 입학한 2학년, 아니, 역대 최고 기수라 불리는 현 3학년 학과수석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재능.
김인철 교수가 어째서 그렇게까지 자신 있게 이야기했었는지 확실하게 이해한 레베카가 흥미롭게 바라보던 그때.
“나도 봐도 되겠나?”
뒤늦게 다가온 김인철이 이세훈에게 물었다.
“얼마든지요.”
“고맙네. 잠시 보겠소.”
레베카에게서 몽환규도를 건네받은 김인철은 정보창을 가볍게 살핀 뒤 검날을 신중히 살펴보았다.
“주작의 깃털은 불꽃이면서 결정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고 기록이 남아 있지. 그 부분을 참고해서 만든 건가?”
“예. 처음 받았을 때도 결정의 형태가 남아 있기도 했었고, 다른 광석이 섞으면 성능이 조잡해질 것 같아서 이렇게 시도해 봤습니다.”
“흐음……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군. 만약 그랬다면 몽환의 마력 때문에 제어하기가 쉽지 않았을 테니…….”
몽환규도를 살피던 김인철은 그 안에 담긴 보랏빛 불꽃, 몽환의 불꽃을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 대단하군…… 이런 불꽃을 그만큼 다뤄내다니.’
어지간한 마법사들도 제대로 못 다룬다는 몽환의 마력과 제어하기 힘들기로 유명한 남화우가 더해져서 만들어진 불꽃.
과연 자신이었다면 이 신기루와 같은 불꽃으로 이런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머릿속으로 가늠해 보던 김인철은 금방 답을 깨달았다.
‘불가능해.’
여러 번 시도한다면 모를까 처음부터 모든 변수를 통제하여 완성해내는 것은 자신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후우…….”
여러 감정이 담긴 한숨을 내뱉은 김인철은 이세훈에게 몽환규도를 돌려주며 웃었다.
“이제 막 1학기 예산을 승인받은 참이었는데 아무래도 재고 요청을 넣어야겠군.”
“예?”
“다른 것도 아니고 영웅 등급 무구를 만들었는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받을 건 받아야지.”
희귀 등급까지야 학부 내에서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영웅 등급부터는 그렇게 끝낼 수준이 아니다.
류은하 학과장은 물론이며 루트비히 학원장에게도 전달되고 남을 결과물.
거기에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바벨뿐만 아니라 영웅업계에도 소문이 쫙 퍼져 사방에서 접촉해 오리라.
“이번 일로 바깥에서 지명의뢰가 들어올 수도 있을 걸세. 보통 3, 4학년들이나 받는 것들인데…….”
과연 이세훈에게 얼마나 많은 의뢰서가 날아오게 될까. 곧 자신에게 밀려올 업무량에 김인철이 쓴웃음을 짓던 그때.
“으음……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습니까?”
잠시 고민하던 이세훈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넘어가자니. 보고를 안 하겠다는 건가?”
“예. 희귀 등급 무구를 만들었거나, 아니면 아예 실패했다는 식으로 보고를 올려주셨으면 합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의아해하는 김인철의 물음에 이세훈이 멋쩍게 웃었다.
“지금은 주변에 얕보였으면 싶어서요.”
잘 보이는 것이 아니라 얕보이고 싶다. 그 해괴한 발언에 잠시 고민하던 김인철이 두 눈을 빛냈다.
“……과연. 그러고 보니 다음 주말이라고 했었지.”
노블레스 교류회와 관련된 사안임을 단숨에 알아차린 김인철. 그 눈치 빠른 모습에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 관련입니다. 부탁드려도 될까요?”
“흐음. 나야 괜찮네만…….”
슬쩍 옆을 바라보는 김인철의 모습에 이세훈도 덩달아 고개를 돌려 레베카를 바라보았다.
협조하라는 듯한 두 사람의 시선에 레베카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모처럼 좋은 구경을 했는데 답례는 해야겠죠. 이세훈 생도가 원하는 대로 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레아에게 좋은 경험을 시켜줬으니 저도 보답은 해야죠.”
“끄윽…… 아직도 아파…….”
양손으로 등을 문대고 있는 레아를 힐끗 본 레베카가 나긋하게 이야기를 이었다.
“또 부탁할 게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하세요.”
“예.”
“그럼 우리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가자꾸나.”
“아, 네. 나 간다.”
레베카가 밖으로 향하자 레아도 손을 흔들며 그 뒤를 따라갔다.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중심이 잡힌 모습.
‘방향은 잡혔나 보네.’
레아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상아탑의 선발대회에 걸려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정도면 알아서 잘 해결하지 않을까.
그렇게 이세훈이 걸어나가는 레아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역시 물어봐야겠어.”
몸을 돌린 레아가 다시 이세훈의 앞에 섰다.
“오늘 내 인챈트. 솔직히 말해서 100점 만점에 몇 점이야?”
갑작스러운 채점 요구.
그러나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하게 물어보는 레아의 모습에 이세훈이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70점 정도.”
“그럼 합격 기준은?”
여전히 진지한 레아의 물음에 이세훈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70점.”
원하는 성능이 나오긴 했지만 딱 그것뿐. 거기에 제작 과정에서 자잘한 실수들이 많았기에 그걸 커버하느라 손해를 본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이제 막 슬럼프를 걷어내려던 사람에게는 가혹한 평가일 수도 있었지만 이세훈은 이 부분에 있어서는 확고했다.
‘사실대로 말했다고 풀죽을 정도면 며칠 못 가지.’
각오를 다졌다면 자신의 능력과 상태 정도는 냉정하게 살필 줄 알아야 한다.
이세훈의 냉정한 대답에 레아가 골똘히 생각하다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럼 이건?”
인챈트 팔레트에 녹색가루, 풍속성 마석가루를 찍은 레아의 붓이 허공에 술식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스아악─
거침없이 그어진 획들이 수십 갈래로 분화되어 새로운 형태로 변해간다. 하나의 인챈트에 수십 개의 인챈트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
앞서 새겨 넣었던 인챈트를 개량한 것으로 보였는데 효과가 증폭된 것은 물론이며 몽환의 불꽃을 통제하는 데 도움이 될 술식들도 추가되어 있었다.
“허…….”
완성된 몽환규도를 보고 오답채점이라도 한 듯 더욱 훌륭하게 개선된 인챈트.
물론 다시 새길 수 없었기에 의미는 없었지만, 몇 분 만에 이렇게 수정해낸 레아의 재능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이 정도면…… 80점은 되겠네.”
“80점? 아니, 적어도 90점은 줘야 되는 거 아니야?”
“자기 평가랑 실제 평가는 다른 법이지. 흔한 일이야.”
애초에 자신의 기준에서 90점 이상을 받을 정도면 흔히 말하는 100대 장인 수준. 생도 신분으로 80점을 받은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다.
자신의 채점에 문제가 없다고, 그렇게 오만하게 서 있는 이세훈의 모습에 레아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흘겨보았다.
“뭐. 좋아. 일단 10점은 올렸으니까.”
예전이었다면 실패에 풀이 죽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90점, 100점, 만점을 넘어 눈앞의 후배가 깜짝 놀라 자빠질만한 인챈트를 떠올리기 위해 머리가 쉴 새 없이 굴러간다.
‘너라면 중간다리로 삼아도 나쁘진 않겠지.’
새롭게 생겨난 목표를 곱씹은 레아는 눈앞의 이세훈을 바라보며 당당히 선언했다.
“언젠가 울부짖으며 기립 박수 치게 만들어줄게. 후배.”
반드시 넘어서고 말겠노라고.
[대상 ‘레아 클로델’의 인연레벨이 Lv.2로 상승합니다.]
[인연레벨이 상승함에 따라 관계가 정립됩니다. 대상 ‘레아 클로델’와의 관계는 ‘타도’입니다.]
[관계 : 타도打倒]
자신보다 뛰어난 이를 넘어서고자 하는 것은 직관적이면서도 가장 강렬한 관계입니다.
그 과정이 비틀린다면 난감해지겠지만 선의의 경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만큼 긍정적인 관계는 없을 것입니다.
*대상보다 우위에 서 있을 때 인연석이 생성됩니다.
*대상보다 우위에 서 있을 때 인연석의 숙성속도가 증가합니다.
*현재 생성된 인연석 : 없음.
눈앞에 떠오른 알림창.
그리고 그 너머에서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는 레아의 모습에 이세훈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세상이 멸망하는 순간까지 대장장이로 활동하다 31년을 희귀한 자신을 이겨 먹겠다니.
그야말로 가소롭기 그지없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조금이지만 자극이 느껴졌다.
‘진짜 따라잡히면 쪽팔리겠어.’
원래도 쉬엄쉬엄할 생각은 없었지만, 저 천재에게 따라잡히지 않으려면 조금 더 노력해야겠다.
그리 다짐한 이세훈은 레아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기대하겠습니다. 선배.”
* * *
그 날 저녁.
기숙사로 돌아온 이세훈은 불 꺼진 거실의 소파에 앉아 탁자에 놓아둔 몽환규도를 내려다보았다.
우우웅
밤이 되자 은은하게 보랏빛 기운을 흩뿌리는 몽환규도.
몽환의 불꽃이 더욱 강해진 탓이었는데 다행히 바깥으로 새어 나오는 일 없이 완벽하게 힘이 통제되고 있었다.
‘원하는 것을 꿈의 경계로 밀어 넣어 불태울 수 있다라…….’
이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회귀 전의 기억을 온전히 볼 수 있을까. 다소 난해한 문제였지만, 이세훈은 처음부터 어렴풋이 감을 잡고 있었다.
가볍게 숨을 고른 이세훈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은 다음 자신의 인연을 추출했다.
우웅─
손아귀로 희미한 빛이 일렁이더니 이내 조금 불투명해진 자신의 인연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연레벨이 올라 등급이 올랐음에도 여전히 쓰임새를 가늠할 수 없는 물건.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지도 몰랐다.
‘인연이란 결국 그동안 쌓아 올린 감정과 기억이 한데 뒤엉킨 것.’
서로 혼탁하게 섞여 있어 제대로 구분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을 분리해낼 수만 있다면 기억만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가설을 다시 확인한 이세훈은 아공간 포켓에서 작은 주문이 빼곡히 새겨진 검지뼈, 불명자의 지골을 꺼내 그 안에 담긴 스킬을 사용했다.
‘경계의 눈.’
스스슥
손가락에서부터 흘러나온 거무튀튀한 마력이 전신을 타고 올라와 두 눈에 깃든다.
렌즈를 쓴 것처럼 눈에서 느껴지는 이물감.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세훈의 시야 곳곳에 검은색의 희미한 테두리가 생겨났다.
사물이 지닌 경계를 보는 눈. 저 선들을 건드린다고 부서지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무언가를 ‘구분’하는 데는 유용한 능력이었다.
‘모래알에 섞인 바늘을 단번에 찾는다거나, 조개탕에 속살이 없는 걸 단숨에 구별한다거나.’
제련은 물론 다양한 곳에 쓰일 수 있는 능력. 이만한 힘이 고작 검지뼈 하나에 담겨 있단 사실에 이세훈은 다시금 혀를 내둘렀다.
‘회귀 전에도 느꼈지만 완등자들은 하나같이 인간 같지가 않단 말이야.’
바뀐 시야에 적응되기를 기다리던 이세훈은 천천히 자신의 인연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보인다.’
자그마한 인연석 내부에 복잡하게 새겨져 있는 테두리들.
마치 사방에 균열이 퍼진 모양새였는데 이세훈은 그 모습을 정확히 기억한 다음 머릿속에 되새겼다.
‘좋아…….’
어디까지 될지는 자신도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다. 각오를 다진 이세훈은 자신의 인연석을 몽환규도의 검날에 가져다 댔다.
‘신루화.’
화르르륵
몽환규도의 검날이 올올이 풀려 불꽃처럼 변하더니 인연석의 일부분을 꿈으로 치환시킨 뒤 불태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인연석을 이룬 수많은 성분 중에서 단 하나만이 남은 순간.
우우웅─
더 이상 태울 것이 없다는 듯 움츠러드는 몽환의 불꽃.
그 반응에 이세훈은 망설임 없이 두 손으로 몽환규도의 손잡이를 역수로 붙잡았고.
푸욱!
자신의 심장을 찌르며 의식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