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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56화 (56/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56화

모든 무구에는 ‘동화율’이라는 수치가 존재했다.

정보창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수많은 연구를 통해 발견해낸 요소였는데 그 효과는 간단했다.

‘해당 무구가 얼마만큼 자연스럽게 신체의 일부로서 의식되는가.’

오랜 시간 사용하여 익숙해진 무구가 한 몸처럼 느껴지는 감각. 그것이 바로 동화율이었는데 이는 영웅들에게 있어 상당히 중요한 요소였다.

‘모든 스킬은 육체를 통해서 발현되니까.’

장갑을 낀 채로 스킬을 발동했을 때. 본래라면 장갑 안쪽의 손에서 스킬이 발현되어 충돌을 일으키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장갑을 낀 채 스킬을 발동해도 장갑 위로 멀쩡히 발현되었는데 이 이유는 간단했다.

영웅들이 무의식중에 착용한 무구를 신체의 연장선으로 생각하고 그 위로 스킬을 펼쳐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간차가 없는 건 아니지.’

모든 과정을 무의식적으로 처리하고 있을 뿐. 영웅들은 매 순간 자신의 무구를 육체의 연장선이라고 인식을 고친 다음 스킬을 발현시킨다.

어찌 보면 찰나의 순간이지만 이 사소한 차이로 생사가 판가름나는 것이 마력을 얻은 초인, 영웅들의 세계.

그리고 모든 전투에 효율을 따졌던 이세훈은 이 시간차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동화율을 높이는 방식에 대해 연구했고, 그 결과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화율이 100%가 된 무구는 영구적으로 파괴된다.’

신체의 연장선이 아니라 정말로 신체의 ‘일부’로 인식되는 순간. 영웅의 마력에 의해 침식현상이 일어나면서 마력회로가 완전히 망가져 다시는 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몇 년에 걸친 연구의 결론이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에 이세훈은 위에 구멍이 몇 개나 뚫릴 정도로 속이 쓰렸었지만, 그 덕분에 발견한 놀라운 정보도 있었다.

우드득─

동화율이 100%에 도달한 장비가 망가지기 전까지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

콰아앙!!!

그 답은 말 그대로 새로운 ‘신체’가 되는 것이었다.

[컥……!]

달려든 이세훈에게 복부를 걷어차인 폴몬트는 두 눈을 부릅뜨며 피를 토해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손과 발의 조직에서부터 억지로 쥐어짜내 재생한 육체.

약간의 충격으로도 피를 토해내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폴몬트를 놀라게 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후웅!

목을 노리고 휘둘러져 오는 칼날.

분명 첫 시작은 지금의 몸 상태로도 피할 수 있을 만큼 보잘것없는 일격이었으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우득─

버러지의 몸을 둘러싼 갑옷들이 마치 ‘근육’처럼 일그러졌고 이내 느려터진 검의 속도가 점차 가속된다.

그리고는 마침내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수준까지 빨려져 그대로 쇄도해 왔고.

푸화아악!

복부를 갈라내며 내장을 불살랐다.

[네놈…… 도대체 무슨 짓을……!]

더 이상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는 고철 덩어리에서 어떻게 저런 힘이 나온단 말인가.

당하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폴몬트는 당황하면서도 재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기어오르지 마라!!!]

카앙!!

발작적으로 휘두른 손톱과 이세훈의 오색화도가 충돌하며 불꽃이 튀어 올랐다.

“큭……!”

반발력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튕겨 나간 팔. 이대로라면 훤히 열린 가슴을 향해 폴몬트의 손톱이 파고든다.

눈앞의 상황에 이세훈은 곧장 자신의 마력회로와 연결된 쉐도우 매터 아머를 조작했다.

우드득!

갑옷 안쪽의 그림자들이 팽팽하게 조이며 뒤로 밀려 나가던 팔을 붙잡았고 이내 이세훈의 의도를 따라 강제로 앞쪽을 향해 휘둘렀다.

카강!!

다시 한번 오색화도와 부딪치며 튕겨 나가는 손톱.

온몸의 근육이 찢어지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받아치는 데 성공했다. 그 광경에 이세훈은 입꼬리를 비틀며 재차 검을 휘둘렀다.

카가가강!!

D급 영웅과 A급 몬스터가 서로 공방을 주고받는다.

한쪽이 31년을 회귀한 인물이고, 한쪽이 죽다 살아나 온몸이 걸레짝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광경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그 비밀은 바로 이세훈의 스킬 영연신마법이었다.

[영연신마법靈硏身磨㳒] 『S』

육체란 대장장이가 갈고닦을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재료.

체내의 마력회로를 제련함에 따라 신체 능력이 상승하며 그 안에 담긴 힘을 강화시킵니다.

전신을 분할하여 복수의 마력회로를 만들어내는 기술.

이를 이용해 다수의 속성마력을 다룰 수 있는 것이 영연신마법의 기본적인 사용법이었는데, 이세훈은 동화율에 관해 연구를 하면서 또 다른 사용법을 만들어냈었다.

*마력회로 [쉐도우 매터 아머] : 쉐도우 매터 아머를 다룰 수 있습니다.

[쉐도우 매터 아머] 『-』

무구 ‘쉐도우 매터 아머’의 마력회로를 모방해낸 임시 마력회로.

마력회로를 연결시켜 보다 세밀하게 무구의 성능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무구에 맞춰 임시로 마력회로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강제로 연결시킨다.

까딱 잘못하면 몸이든 무구든 폭주를 일으켜 쌍방으로 고장 날 수도 있을 만큼 위험한 방법이었지만, 그 효과는 확실했다.

[죽어라!!]

머리가 반으로 갈라지고도 아무렇지 않게 손톱을 휘둘러오는 폴몬트. 약화된 상태에서도 무지막지한 재생력에 이세훈은 정신을 가다듬으며 마력회로를 움직였다.

우득─

쉐도우 매터 아머의 기능은 어디까지나 육체에 맞춰 변형되는 것. 그 이상의 힘을 이끌어내는 기능은 본래 없지만 수동으로 만들어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콰드드득─

발끝부터 시작해서 오색화도를 쥐고 있는 손끝까지.

폴몬트의 손톱을 쳐낼 수 있는 근력을 지닌 근육이 하나하나 세밀하게 형성되어간다.

한 군데라도 어긋난 순간 도미노처럼 무너질 만큼 종잇장 같은 인공 근육. 하지만 이세훈은 그에 대해서 걱정이 없었다.

‘내 경력이 얼만데……!’

인간의 육체구조에는 통달한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카아앙!!

손톱을 완벽하게 쳐낸 순간 전신에 격통이 밀려온다.

마치 전신을 수만 개의 집게에 붙잡힌 채 동시에 잡아 당겨지는 듯한 감각. 그 통증 속에서도 이세훈은 몸을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흐읍……!”

이것이 지금에 있어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고.

카앙!

눈앞의 녀석이 가진 물건을 빼돌릴 기회였기 때문이다.

쿠구구궁!

이세훈과 폴몬트가 격돌하는 사이 다시금 공동이 크게 뒤흔들린다.

둘 사이에 오가는 치열한 공방, 때문이 아니라 앞서 봉인 당한 류은하가 점점 풀려나기 시작한 것이다.

‘안 돼…… 이대로 가다간……!’

지금 몸으로 확실하게 도주하기 위해서는 눈앞의 녀석을 족쇄로 만들어두고 도망쳐야 한다.

하지만 괴물을 묶어둘 족쇄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발목을 붙들고 늘어진다. 점점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에 폴몬트는 각오를 다졌다.

‘힘 조절은 포기한다.’

그동안 죽을까 봐 계속해서 망설였지만 이대로 가다간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

눈앞의 버러지가 자신의 공격을 버텨낼 것이라고 믿기로 한 폴몬트가 두 눈을 번뜩였다.

쿠웅!

심장이 터질 정도로 혈액을 생성해 전신에 밀어 넣자 몇 년에 걸쳐 조정된 육체가 완전히 통제하에 들어온다.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진 육체지만 지금은 오롯이 자신의 것이다. 전신을 타고 흐르는 전능감 속에서 폴몬트는 두 팔을 활짝 펼치며 모든 힘을 끌어올렸다.

콰앙!!

바닥을 찍는 다리. 가슴은 훤히 드러났으나 두 팔의 근육이 1.5배로 부풀어 오르며 곧 펼쳐질 공격을 암시한다.

자신의 뛰어난 재생력을 믿고 펼쳐내는 전력을 다한 일격. 그 모습에 이세훈은 텅 빈 가슴을 베어내는 대신 재빠르게 화적초에 오색화도를 수납했다.

우우웅!

이세훈의 화속성마력 ‘홍련’이 화적초를 통해 증폭되어 오색화도를 달궈냈고, 쉐도우 매터 아머가 갑옷의 형태를 버리고 더 선명한 근육의 형태로 변형됐다.

최소한의 방어마저 포기하고 모든 힘을 공격에 쏟아붓겠다는 의지. 그 모습에 폴몬트가 마음에 들었다는 듯 입가를 비틀었다.

[이것도 막아낸다면 인정해 주마!]

쿠웅!

내디딘 발이 더욱 깊이 지면으로 파고들었고 이어서 팽팽하게 당겨지던 폴몬트의 근육이 돌연 정지한다.

그리고 그 모든 힘이 정면을 향해 겨눠진 순간.

콰앙─!

손끝으로 돋아난 열 자루의 검이 모든 것을 찢어발기며 휘둘러졌다.

가로막는 모든 것을 베어버릴 것처럼 덮쳐오는 무시무시한 일격. 그 앞에서 이세훈은 입학식 때 선보였던 화적초의 무구스킬인 ‘화방야’를 펼칠 준비를 끝냈다.

그리고 마주 공격을 펼쳐내기 위해 검을 뽑으려던 찰나.

쩌억─

휘둘러져 오던 폴몬트의 두 팔이 반으로 갈라졌다.

키리릭!

그동안 보였던 정직한 공격은 온데간데없이 4개로 갈라진 팔이 사방을 포위하듯 쇄도해 온다.

만들어진 ‘육체’이기에 가능한 기술. 두 팔, 한 자루의 검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는 변칙적인 공격 앞에 이세훈의 몸이 굳어졌고 폴몬트가 쾌재를 내질렀다.

‘걸렸구나……!’

한 사람과 싸우는 와중에 갑작스럽게 두 사람의 습격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신체변형 능력을 사용한 그야말로 완벽한 한 수.

이에 대해서 모르는 이라면 당할 수밖에 없는 회심의 일격이었으나.

‘언제 쓰나 했다.’

31년 전으로 회귀한 이세훈에게는 해당이 안 됐다.

콰가가각!!!

지면에서 솟구쳐 올라온 수십 수백 개의 그림자 가시.

쉐도우 매터 아머의 무구스킬인 ‘쉐도우 헷지호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펼쳐져 폴몬트의 전신을 꿰뚫었다.

푸콰악!!

[크헉─!]

재생능력을 믿고 몸을 내던진 오만함. 온 힘을 공격에만 쏟아부어 회피할 수 없는 타이밍. 그리고 동화율 100%가 만들어낸 쾌속한 스킬 발동.

정보의 차이에서 앞서나간 한 수. 그것이 폴몬트의 허를 찔렀고 본래라면 있을 수 없는 빈틈을 만들어낸 것이다.

[크아아아!!]

온몸을 꿰뚫린 채로 계속해서 팔을 휘두르지만 한 번 끊어진 가속은 돌아오지 않는다.

충분히 받아칠 수 있는 속도가 된 폴몬트의 손, 그중에서도 류은하를 가리켰던 왼손의 검지를 바라본 이세훈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났고.

철컥─

허리춤의 검을 있는 힘껏 터뜨렸다.

콰아아아앙───!!!

발도와 동시에 터져 나온 오색불꽃의 폭풍.

화방야가 만들어낸 무시무시한 폭발이 폴몬트를 휩쓸고 전신을 불사르며 공동 전체를 대낮과 같이 환하게 만들어냈다.

쿠구구궁!

폭발의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크게 떨리는 공동. 전력을 다해 오색화도를 휘둘러낸 이세훈은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후우…….”

마력과 체력이 바닥나 온몸이 무거워졌고 방금 일격으로 전신의 근육과 관절이 비명을 내질렀다.

거기에 쉐도우 매터 아머도 딱딱하게 굳어져 바스라지기 시작했는데 마력회로가 완전히 침식되어 고장 나버린 것이다.

‘영웅 등급 최상품 갑옷 하나로 다 죽어가던 A급 몬스터 한 마리라…….’

침식당한 무구는 재활용도 안 되니 가성비로 치면 여전히 쓰레기였지만, 이세훈은 그에 대해서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어차피 류은하에게 빌린 무구여서 그런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이번 일로 얻은 보상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후웅─

천장의 중앙에 뚫린 구멍과 그 위에서부터 쏟아지는 달빛. 그 한가운데에 자그마한 그림자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가 다시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것을 가만히 올려다보던 이세훈은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잽싸게 낚아챘다.

“흐음…….”

주먹 안쪽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이면서도 익숙한 감촉. 그에 이세훈은 천천히 주먹을 펼치며 낚아챈 물건을 바라보았다.

각 마디마다 좁쌀만 한 글자들이 반지처럼 새겨져 있는 손가락뼈. 방금 잘라낸 폴몬트의 검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3m짜리 라이칸스로프의 손가락이라기엔 매우 작고 가늘었으며 무엇보다도 짐승이 아니라 ‘인간’의 뼈였기 때문이다.

‘역시 이거였구만.’

완등자 위르겐 크루거가 분실한 아이템.

인터뷰에서는 그저 이렇게만 나왔지만 그의 상태를 알고 있던 이세훈은 어렵지 않게 그 정체를 예상할 수 있었다.

13년 전. 마인의 습격을 받고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진 위르겐 크루거의 육체.

[아이템 ‘불명자의 지골’을 획득하셨습니다.]

그 일부를 손에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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