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55화
쿵!
부서진 암벽들과 함께 바닥에 착지한 류은하는 재빠르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반구 형태로 이뤄진 공동. 넓이는 약 500m에 높이는 자신들이 들어온 중심부를 기점으로 100m 정도 되어 보였는데 깎여져 나간 형태를 보건대 인공적인 느낌이 상당했다.
‘날카로운 무언가로 파낸 듯한 자국. 형태로 보건대 손톱을 사용해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높다.’
대략적인 정보를 모두 취합한 류은하는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이세훈을 슬쩍 내려다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짐승형 몬스터가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던전 같습니다. 마기에 침식된 흔적도 보이지 않고 은월산의 위험등급이 D급인 것을 감안하면 C급 몬스터 정도일 가능성이 높지만…….”
어두컴컴한 공동을 꿰뚫어 보듯 살피던 류은하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사전조사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A급 이상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은월산은 곧 있을 1학년 토벌수업의 후보지 중 한 곳이었기에 교수들이 지속적으로 찾아와 살펴보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이만한 규모의 던전이 단 한 번도 발견되지 않았다? 절대 평범한 던전일 수가 없었다.
‘나도 이세훈 생도가 직접 가리키기 전까진 알아내지 못했다. 절대 얕봐선 안 돼.’
그런 장소를 이세훈 생도는 어떻게 단번에 알아냈는가, 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지금은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이대로 계속해서 조사를 해야 할지, 아니면 빠져나가야 할지 류은하가 고민하던 그때.
“옵니다.”
품에 안겨 있던 이세훈이 공동의 어둠을 바라보았다.
꿀렁─
말을 꺼내기 무섭게 주변에 깔린 어둠이 출렁이며 안쪽에서 거대한 짐승들이 걸어 나온다.
2m 남짓한 크기에 검은 늑대들. 붉은 눈동자는 초점이 풀려 있었고 몸에서는 검은색에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끝없이 흘러내리며 바닥에 스며들었다.
딱 봐도 평범하지 않은 늑대들의 모습에 류은하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언데드 계열이군요. 어림잡아도 B급은 될 것 같습니다.”
한 마리만 밖으로 나가도 은월산 전체가 피로 물들 만한 수준. 그런 몬스터가 무려 200마리가 넘게 나타나 주변을 포위한 것이다.
그르릉─
이빨을 드러내며 적의를 드러내는 늑대들.
B급 몬스터 수백 마리가 동시에 내뿜는 살의는 그 자체만으로도 흉기나 다름없었지만, 거기에 둘러싸인 두 사람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이제 다 나온 것 같군요.”
한 사람은 몇 마리가 나오든 상관없었고.
“꼭 달라붙어 있을 테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구구구궁─
류은하의 체내에서 울려 퍼지는 묵직한 구동음.
앞서 포식한 무구들로 만들어둔 광혈이 전신을 질주하며 마력을 몇 배로 증폭시켜나간다.
그 마력을 오른 다리에 모조리 밀어 넣은 류은하는 천천히 오른발로 지면을 긁어냈다.
콰드드득─
흙을 파내듯이 가볍게 파헤쳐지는 암반.
반원을 그리며 오른발을 뒤로 빼낸 류은하가 자세를 살짝 낮춘 채 자신을 둘러싼 늑대들을 바라보았고.
스각─
바닥을 박참과 동시에 붉은 실선이 공동을 휩쓸었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바닥에 착지한 류은하와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은 공동.
“우욱…….”
그리고 품 안에 안긴 이세훈이 울렁거리는 표정으로 자신의 입가를 감싼 순간.
투둑─
사방을 둘러싸고 있던 수백 마리의 늑대들이 일제히 반으로 조각나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화르륵─
은은하게 타오르며 늑대들의 시체를 조금씩 집어삼키는 붉은 불꽃. 언데드라는 특색이 무색해지는 그 광경에 이세훈이 울렁거리는 속을 가라앉히며 미소를 지었다.
‘이래야 S급이지.’
은월산에서 활동하는 영웅들에게는 B급 몬스터가 재앙이나 다름없겠지만, S급 영웅인 류은하에게는 D급 몬스터인 은랑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돌려차기 한 방에 던전을 정리해 버린 류은하의 활약에 이세훈은 자신의 선택이 맞았음을 다시금 확인하며 입을 열었다.
“학과장님. 이제 내려주실래요?”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았으니 위험…….”
“이 상태로 조사도 못 하잖아요. 그리고 속이 울렁거려서요.”
이세훈의 이야기에 류은하는 주변을 한차례 훑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신 제 곁에서 떨어지지 마십시오.”
류은하의 품에서 내려온 이세훈은 흐트러진 몸을 다잡은 다음 공동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회귀 전 인터뷰에 따르면 몬스터를 다 쓰러뜨리고 나니 갑작스럽게 위르겐 크루거의 아이템이 나타났다고 했었지.’
저 언데드 늑대들 이외에 몬스터가 나타난 적은 없다고 했으니 사실상 이걸로 끝이다.
하지만 내부를 살펴본 이세훈은 한 가지 의구심이 생겨났다.
‘이런 장소가 단순히 아이템 하나만으로 생길 수 있나?’
이세훈이 수많은 사건 사고들 사이에서 이 인터뷰를 기억하고 있는 것도 이 의문 때문이었다.
완등자인 위르겐 크루거가 분실한 아이템. D급 위험지역에 은밀히 숨겨져 있는 던전.
이 중 하나만 해당하면 몰라도 두 개가 겹쳐지는 순간 평범하게 여기기에는 힘들었다.
‘회귀 전에는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지만…… 그럴 리가 없지.’
아무리 완등자의 아이템이 대단하다고 해도 이런 비밀스러운 장소를 만들어낼 능력을 보유하고 있을 리가 없다.
하물며 그 아이템이 만약 자신이 알고 있는 ‘그것’이라면 더더욱 불가능했다.
‘누구일까.’
도대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위르겐 크루거의 아이템을 사용해 이런 던전을 만들어낸 것일까. 그 의문을 떠올리며 이세훈은 다시 한번 공동을 살펴보았다.
화륵─
처음 들어왔을 때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공동의 형태가 늑대들을 불태우는 불꽃 덕분에 더욱 선명히 드러났다.
짐승이 마구잡이로 파내서 만들어낸 듯한 벽면. 류은하는 그 이상 알아내지 못했지만 이세훈의 눈에는 그 안에서 숨겨져 있는 ‘길’이 보였다.
‘주변 환경과 동화시키는 은폐장과 마기를 빨아들이는 흡수진. 그리고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이 음습한 형태와 방식…….’
대외적으로 알려진 기술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형태. 그 익숙한 구조를 본 이세훈은 공동을 만들어낸 이들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탈각』 그 새끼들이구만…….’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몬스터의 진화를 연구하던 미치광이들이자 이전에 루이제에게 접근한 『여명』과 마찬가지로 주시자에 속한 집단.
회귀 전의 악연을 떠올린 이세훈의 눈이 찌푸려지던 그때.
꿀렁─
눈앞의 그림자에서 은빛의 라이칸스로프가 솟아올랐다.
후웅─
샛노란 눈동자와 눈을 마주친 순간. 거대한 손톱이 공기를 찢어발기며 휘둘러져 온다.
1초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벌어진 동작. 생사의 갈림길 앞에서 가속된 사고가 적의 정체와 공격을 포착하게 해주었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너무 빨라.’
속도를 보건대 최소 A급. 등급으로는 3단계 차이지만 그 격차는 평범한 방법으론 몸에 닿는 것조차 불가능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느려진 세계 속에서 조금씩 가까워져 가는 손톱의 모습에 이세훈이 어떻게 해야 할지 대응법을 고르고 있을 때.
파앙─
붉은 잔상이 얼굴 옆을 스치며 지나갔다.
콰앙─!
라이칸스로프의 몸이 공동의 벽에 처박혔고, 어느새 그 앞에 도달한 류은하가 두 주먹을 꽉 움켜쥐며 무자비하게 휘둘렀다.
두두두두─!!
붉은 궤적을 흩뿌리며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주먹에 라이칸스로프의 전신이 그야말로 완전히 분쇄 당한다.
팔다리를 제외하면 핏자국을 제외하고 형체조차 남지 않은 상황. 몸통이 사라진 라이칸스로프는 이미 죽은 것처럼 보였지만 그런데도 류은하는 멈추지 않았다.
‘확실하게 배제한다.’
지금까지 완벽히 모습을 감췄다가 나타났다는 것만 봐도 분명히 숨겨둔 한 수가 있다는 뜻일 터. 류은하가 남은 사지마저 으깨 버리려던 그때.
끼기긱─!
체내의 광혈이 바닥을 드러냄과 동시에 제동음이 울리며 전신이 경직됐다. 예상치 못한 적의 등장에 생겨 버린 빈틈.
그 순간 죽은 듯이 늘어져 있던 라이칸스로프의 검지 손가락이 류은하, 그 너머에 있는 이세훈을 가리켰고.
[감…… 겨라…….]
검은 그림자가 그 끝으로부터 쏘아져 나갔다.
어떤 기술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형태. 그 모습에 류은하는 생각보다도 먼저 몸을 움직였다.
사륵─
명치에 닿은 검은 그림자가 고스란히 스며들었고 이어서 검은 구멍으로 맺혀졌다.
그리고 중심부에 새겨지는 가느다란 실선. 그것이 위아래로 천천히 벌어지며 하나의 눈동자로 변한 순간.
후웅!
류은하의 몸이 공동에서 사라졌다.
굉음으로 가득 차 있던 공동이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피로 얼룩진 잔해 속에서 끈적끈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드득─ 뚜득─ 콰드득─
팔다리에서부터 다시금 몸과 머리가 돋아나며 본래의 형태로 복원된다. 시간을 되돌리듯이 재생을 끝낸 라이칸스로프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1초도 안 돼서 9할을 파괴당하다니…… 이것이 완등에 가까운 괴물인가…….]
처음에는 얼마 남지 않은 진화를 방해받아 원통하기 그지없었지만, 상대를 알게 된 지금은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만약 자신의 몸에 심어진 이 ‘물건’과 저기 멍하니 서 있는 버러지가 없었더라면 절대로 살아남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는 없다.’
괴물을 봉인하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잠깐일 뿐. 조금만 지나면 봉인을 부수고 나와 자신을 뒤쫓을 것이다.
‘그러니 뒤쫓을 수 없도록 족쇄를 만든다.’
자신의 계획을 다시금 떠올린 라이칸스로프는 가만히 서 있는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 죽어가는 육체를 채찍질하며 바닥을 박찼고.
투웅─!
이세훈의 눈앞에 쇄도해 있는 힘껏 복부를 후려갈겼다.
콰아앙!!!
제대로 된 반격조차 하지 못하고 벽면에 처박힌 이세훈. 축 늘어진 그 모습에 라이칸스로프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괴물에게 감사해라. 덕분에 목숨을 건졌으니.]
짧은 전투였지만 괴물이 저 버러지를 아끼는 것이 노골적으로 보였다. 그러니 중상을 입혀놓는다면 치료를 위해서 자신을 뒤쫓지 않을 터.
마지막 족쇄도 완성해낸 라이칸스로프가 공동을 떠나기 위해 막 몸을 움직이려던 찰나.
“생각났다.”
벽면에서 빠져나온 이세훈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S급 몬스터 탐월(貪月) 폴몬트…… 그래. 그런 놈이었지.”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탈각』이 만들어낸 몬스터들의 목록 안에 있었기에 어느 정도는 기억났다.
달빛이 깃든 마기를 통해 털 한 올만 남아도 완벽히 재생해낸다는 몬스터. 비록 완성된 상태가 아니었기에 자료와 조금 달랐지만, 기본적인 뼈대는 비슷했다.
[……네놈. 어떻게 상처 하나 없는 거지?]
일어선 이세훈의 모습에 라이칸스로프, 폴몬트는 믿을 수 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죽이면 안 됐기에 힘 조절을 하긴 했지만 작은 상처조차 보이지 않는다니? 예상치 못한 상태에 폴몬트가 당황하던 그때.
쿠구궁─
공동에 울려 퍼지는 낮은 진동.
암벽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뒤흔들리는 감각에 폴몬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런 미친 괴물 같으니……!’
집어넣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빠져나오려 한단 말인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폴몬트는 고민할 겨를도 없이 재차 이세훈에게 달려들었다.
쾅!
겨우 일어섰던 이세훈의 몸이 다시금 지면에 처박히고 이어서 폴몬트가 두 주먹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콰가가강!
육체를 재생하느라 힘이 많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B급은 족히 될 수준. 잘 쳐줘도 C급이 될까 말까 한 버러지가 견뎌낼 수 있는 위력이 아니었다.
[큭……!]
하지만 아무리 있는 힘껏 때려도 부상을 입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자세를 잡고 공격을 견뎌내기까지 했다.
마치 다른 곳을 때리고 있는 듯한 기묘한 감각. 그 이상한 느낌에 폴몬트의 눈이 불현듯 주변으로 향했고.
쩌저적!
이상할 정도로 처참하게 부서진 공동의 벽이 눈에 들어왔다.
파앙─!
폴몬트가 한눈을 판 사이에 터져 나온 일격. 기회는 완벽했으나 신체 능력의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가슴을 스쳐 지나가는 것으로 끝나 버렸다.
“쯧…… 역시 공격은 안 되나.”
그 결과에 이세훈이 아쉬워하고 있을 때. 재생되고 있는 가슴을 내려다본 폴몬트가 차분히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갑옷. 가해진 충격을 그림자로 흘려낼 수 있나 보군.]
자신의 공격을 맞은 것처럼 부서져 있는 뒤쪽의 벽면. 뒤늦게 그것을 발견한 폴몬트는 자신이 농락당했다는 사실에 살의가 치솟았다.
기술도 아니고 고작 걸치고 있는 갑옷 따위에 속았다니.
[네놈이 자초한 것이다.]
어금니를 드러내며 털을 곤두세우는 폴몬트. 적당히 때리던 앞과는 전혀 다른 그 모습에 이세훈이 피식 웃었고.
“무서워서 도망치는 새끼가 허세는─!”
쾅!!!
말이 끝나기 전에 이세훈의 몸이 다시금 벽면에 처박혔다.
이번에도 공격이 흘려진 것을 본 폴몬트는 두 눈을 빛내며 자신의 양손을 넓게 펼쳐 들었다.
푸확!
손가락 끝을 가르며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손톱. 장검을 방불케 하는 열 개의 손톱들이 은빛으로 섬뜩하게 빛났고.
카가가강!!
이세훈의 몸을 감싼 쉐도우 매터 아머를 무자비하게 난도질했다.
잔상을 흩뿌리며 쉴 새 없이 휘둘러지는 참격. 주먹으로 난타하는 대신 손톱으로 베어낼 뿐이었지만 그 위력은 그야말로 차원이 달랐다.
카가가각!
쉐도우 매터 아머가 흘려내는 참격에 주변의 벽과 바닥이 순식간에 넝마처럼 너덜너덜하게 파헤쳐졌고 갑옷 곳곳에서 불꽃이 튀어 오른다.
주먹으로 가해지는 타격은 접촉하는 면적이 넓었기에 상대적으로 흘려내기가 쉬웠지만 가느다란 손톱에 집중된 참격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칵!
방금까지 폴몬트의 공격을 거뜬히 받아내던 쉐도우 매터 아머가 충격을 모두 흘리지 못하고 조금씩 깎여져 나간다.
그리고 계속된 참격에 기어코 그 얇은 갑옷이 갈라진 순간.
피슉!
손톱이 스쳐 지나가며 피가 새어 나왔다.
아주 살짝 스쳤을 뿐인 얕은 상처. 하지만 공격이 완전히 통하지 않던 것과 조금이라도 통하게 된 것은 차이가 컸다.
[그깟 고철 하나로 나와 견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거냐!]
카가가강!
쉐도우 매터 아머는 형태를 변형시킬 수 있는 것이지 내구도를 회복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부서진 곳을 채워 넣어도 전체적으로는 조금씩 부서져 가고 있다. 그것을 증명하듯 조금씩 수복속도가 느려졌고.
파각!
마침내 한계에 다다랐다.
참격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진 어깨부위. 안쪽에 견갑을 껴입은 덕분에 상처가 깊진 않았으나 마력회로에 손상이 생겼는지 방금처럼 빠르게 수복하지 못했다.
[어차피 느려터진 손 그대로 잘라내 주마!]
훤히 드러난 오른쪽 어깨의 빈틈. 그곳을 향해 폴몬트의 손톱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휘둘러졌고.
‘내가 부순 거 아니다.’
우득─
쉐도우 매터 아머의 흉갑이 아무런 전조 없이 일그러졌다.
카각!
살과 뼈를 가르는 소리가 아니라 금속을 긁어낸 무기질적인 소리. 예상한 것과 전혀 다른 상황에 폴몬트는 전투 중이라는 것조차 잊고 두 눈을 부릅떴다.
‘무슨…….’
분명히 어깨를 노리고 정확히 휘둘렀을 공격이 어째서 흉갑 쪽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는가. 그 이유를 생각해 본 폴몬트는 금방 답을 찾아냈다.
철컥─
눈앞의 버러지가 자신의 공격에 반응하여 피해냈다고.
파앙─!
허리춤에서부터 터져 나온 오색불꽃의 참격. 방금 있었던 것과 똑같은 공격이었기에 폴몬트는 반사적으로 회피했으나 그 결과는 처참했다.
치이익─
[크윽……?!]
살짝 스치는 수준에서 가슴 깊숙이 파고들어 내부를 불태운 참격. 예상치 못한 고통에 멀리 떨어진 폴몬트는 자신의 가슴을 감싸며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후우…….”
오색화도를 꺼내든 채 숨을 고르는 이세훈.
쉐도우 매터 아머는 완전히 망가졌는지 부서진 곳이 더 이상 수복되지 않았고 몸 곳곳이 베여 피가 흐르고 있었다.
치명상만 입지 않았다뿐이지 멀쩡한 곳이 없는 상태. 금방이라도 잡아 죽일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와 반대로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긴장하고 있다고……?’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그냥 쳐 죽여 버렸을 저런 버러지에게 자신이 긴장하다니.
믿기지 않는 상황에 폴몬트가 굳어 있을 때.
“이제 끝났냐?”
한결 가벼워진 몸을 가볍게 푼 이세훈이 씩 웃었다.
“그럼 내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