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54화
본격적으로 은월산에 오르기 시작한 뒤. 이세훈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전투를 선보였다.
파앙─!
허리춤에서 오색화도가 뽑혀 나올 때마다 겁 없이 달려들던 몬스터들 대부분이 숨이 끊어진 채 바닥을 나뒹군다.
간혹 눈치가 빠른 녀석들은 몸을 내던져 살아남기도 했지만 그 경우도 크게 변하는 것은 없었다.
푸욱!
손에 쥐어진 오색화도를 내던져 곧장 숨통을 끊고.
빠각!
허리춤에 끼워둔 화적초를 뽑아 머리통을 박살 내며.
서걱!
손날에 백광류를 둘러 베어버리는 등 이어지는 연격에 저항할 새도 없이 죽어 나갔다.
어딜 봐도 오늘이 첫 실전으로는 보이지 않는 실력. 하지만 정작 그 당사자인 이세훈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쯧…… 생각보다 힘 조절이 어렵네.’
심장만 베어낸다는 게 쓸데없이 척추까지 끊어냈고, 한 발자국만 움직여도 충분했을 상황에서 두 발자국이나 움직여 버렸다.
어찌 보면 전투에 큰 영향이 없는 사소한 실수들이었지만 이세훈은 그런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체크한 다음 곧장 수정했다.
‘재미도 없는데 효율까지 떨어지면 못 해 먹지.’
뼛속까지 대장장이인 이세훈은 일반적인 영웅들처럼 전투를 통해 자신의 힘을 갈고닦는 것을 썩 즐기지 않았다.
망치로 쇠 두드릴 시간도 부족한데 부상까지 입어가면서, 그것도 목숨을 걸고 싸우는 행위를 어찌 좋아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인생이 다 그렇듯 하기 싫다고 안 할 수가 없었기에 나름대로 해결책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전투의 ‘최적화’였다.
‘지금 신체 능력과 장비 상태로 은랑 한 마리에게 필요한 코스트는 5. 하지만 여태까지 사용된 평균 코스트는 5.7 정도…… 좀 더 줄여야 해.’
마력과 체력. 그리고 장비의 능력 등 모든 상태를 고려하여 최적의 움직임으로 몬스터를 쓰러뜨린다.
전투를 오롯이 ‘작업’으로만 여기는 건조하기 그지없는 발상.
이세훈은 이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이 없었지만 다른 영웅들의 반응은 매우 싸늘했다.
‘근본이 없군.’
‘딱 생긴 대로 노네.’
‘형님. 그냥 망치나 두드리십쇼.’
이것저것 알려주던 삼견은 물론이며 싸움 꽤나 하는 영웅들도 자신의 전투법을 보고 혹평을 넘어선 비난을 퍼부었다.
조금 욱하기도 했었지만 이세훈은 그에 대해서 크게 불평은 안 했는데, 자신 역시 효율만 따지며 무구를 만드는 대장장이들을 욕하고 다녔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좋게 봐주는 양반들이 있기는 했었지.’
한 명은 외상값 때문인지 자신의 비위를 맞춰주던 마광수. 그리고 다른 한 명은.
꼬르르륵─
뒤쪽에서 쉴 새 없이 뱃고동 소리를 내고 있는 류은하였다.
“…….”
이세훈의 전투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류은하는 자신의 배에서 난 소리를 듣고 곧장 아공간 포켓에서 붉은색 단검을 꺼내 깨물었다.
파캉! 콰드득─ 콰득!
초코바처럼 뚝 부러져서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단검의 칼날.
안쪽에 담겨 있던 화속성 마력과 잘 벼려진 칼날의 예리함이 혀끝에서부터 전신을 관통한다.
고급 등급의 무구다운 깔끔한 맛. 입가심으로는 충분했으며 평상시라면 어느 정도 허기가 가셨겠지만.
꼬르르륵─!
오늘은 오히려 항의를 하듯이 더욱 우렁차게 위장이 울기 시작했다.
“윽…….”
먹어도 먹어도 포만감은커녕 더욱더 심해져 가는 굶주림에 류은하가 눈매를 살짝 찌푸렸다.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반응. 방금까지는 그 이유를 종잡을 수 없었지만, 이제는 어떻게 된 것인지 얼추 알 것 같았다.
‘이세훈 생도 때문인가…….’
무구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내는 전투법.
처음에는 그저 훌륭하다고만 생각했지만 거듭되는 전투에 류은하는 점차 이세훈의 전투법이 지닌 무서움을 깨달았다.
화르르륵!
화적초에서 빠져나와 다섯 색의 불꽃을 수놓는 오색화도.
다른 이들은 어련히 화적초로 강화하여 휘두른다고만 생각하겠지만, 류은하의 눈에는 그 섬세한 사용법이 모두 보였다.
‘오색화도에 담겨 있는 다섯 가지의 불꽃. 그 각각의 성질을 활용해서 참격의 위력을 강화하고 있다.’
균형을 이루고 있는 다섯 가지의 불꽃. 이세훈은 그중 ‘녹색’의 비중을 높였는데 그 결과 불꽃들이 바람을 타듯이 분사되어 참격의 속도를 높인 것이다.
‘정보창에 표기되지 않을 만큼 미약한 불꽃의 성질들. 그걸 화적초로 증폭시켜서 사용하다니…….’
무구에 대한 깊은 이해도와 그것을 다룰 수 있는 뛰어난 감각이 있었기에 가능한 기교.
그 덕분에 화적초와 오색화도는 100% 이상의 힘을 발휘했고, 류은하는 그 더해진 ‘맛’이 궁금해졌다.
꿀꺽─
그냥 먹어도 맛있을 음식에 전문가의 조언이 더해진 상황.
쉽게 말하자면 탕수육에 소스를 붓느냐 찍느냐 고민하던 이에게 볶는다는 압도적인 선택지를 보여준 상황!
안 그래도 화적초와 오색화도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류은하에게 눈앞의 전투란 가히 고문에 가까웠고.
꼬르르륵!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가시지 않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군…….’
무구를 자신의 일부처럼 다루는 사람들을 봤을 때도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은 없었는데 도대체 어떤 차이인 것일까.
류은하가 의문을 품은 채 자신의 배를 잠재우기 위해 새로운 무구를 씹어 먹고 있을 때.
마지막 남은 은랑의 머리통을 걷어찬 이세훈이 거칠어진 숨을 골랐다.
“후우…… 후우…….”
20분 동안 잡은 은랑의 수는 총 94마리. 이동시간을 제외하면 쉬지도 않고 싸웠기에 체력이 슬슬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직 80마리 정도는 더 잡을 수 있지만…… 지금부터는 보존해두는 게 좋겠지.’
오늘 은월산에 온 목적은 어디까지나 위르겐 크루거의 아이템. 정확히는 그것이 숨겨져 있는 던전을 찾아낸 다음 공략하는 것.
류은하에게 전투를 모두 떠넘긴다고는 해도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만큼 최소한의 체력은 비축해둬야 했다.
결정을 내린 이세훈은 뒤에서 양날도끼를 먹고 있는 류은하를 바라보았다.
“학과장님.”
“…….”
“학과장님?”
콰드득- 콰득-
대답 없이 계속해 양날도끼의 날을 씹어먹는 류은하.
그 모습에 의아해하던 이세훈은 그녀의 두 눈이 화적초와 오색화도를 향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피식 웃었다.
‘어지간히도 먹고 싶은가 보네.’
지금이라면 산 정상에서 파는 컵라면처럼 훨씬 비싼 값에 팔아치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이세훈이 화적초에 오색화도를 집어넣었다.
찰칵!
“아, 흠. 듣고 있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잠시 쉬었다 가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편한 대로 하시면 됩니다. 원하신다면 터미널 쪽으로 다시 데려다드릴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냥 여기서 쉬겠습니다. 이것도 경험이니까요.”
이세훈의 대답에 주변을 살짝 둘러보던 류은하는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라면 괜찮겠군요. 그럼 그렇게 하십시오.”
류은하의 허락에 이세훈은 미리 봐뒀던 자리로 가서 땅바닥에 앉은 다음 바위에 등을 기댔다.
꾸드득─
그러자 쉐도우 매터 아머가 물결치듯이 움직이며 형태를 재조정했고 엉덩이랑 등에서 느껴지던 걸리적거리는 감각이 모두 사라졌다.
육체뿐만 아니라 주변의 상황에 맞춰서도 변화하는 쉐도우 매터 아머. 그 성능에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놈…… 이거 생각보다 괜찮단 말이지.’
방어구를 만들어낸 기술은 수준이 떨어졌지만 주재료인 쉐도우 매터 자체가 워낙에 범용성이 뛰어난 좋은 물건이다 보니 그것만으로도 성능이 상당하다.
갑옷보다는 피부가 한층 더 생긴듯한 착용감. 그 효과에 이세훈은 만족스러워하면서도 살짝 아쉬움을 느꼈다.
‘이것만 제대로 쓸 수 있어도 코스트를 4, 아니, 3까지도 내릴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쉐도우 매터 아머는 어디까지나 부상을 방지하기 위한 방호장치. 전투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간 류은하의 성격상 결코 좋은 평가는 남기지 않으리라.
‘게다가 그 방법을 쓰면 망가질 수도 있으니까.’
아무리 류은하가 썩 내켜 하지 않는 물건이라도 망가뜨렸다가는 나중에 다른 물건을 빌려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적당히 써먹다가 돌려주기로 하며 이세훈이 쉐도우 매터 아머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을 때.
“이세훈 생도.”
살짝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류은하가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아, 예. 말씀하시죠.”
“전투에서 오랜 경험이 담긴 움직임들이 종종 보이더군요. 혹시 누구한테 그런 전투법을 배운 건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호기심과 기대. 그리고 약간의 의문이 담겨 있는 류은하의 질문. 그 내용에 이세훈은 살짝 뜨끔했다.
‘너무 과하게 보여줬나.’
특별한 기술을 사용한 게 아니라 보여줘도 상관없지 않을까 했는데 오히려 그런 모습이 더 호기심을 자극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 정도는 회귀 후 예상한 질문이었기에 이세훈은 별 내색 없이 준비해뒀던 변명을 꺼냈다.
“누구한테 따로 배우진 않았고 그냥 혼자서 지내다 보니 생긴 요령입니다.”
“요령?”
“예. 어떻게 하면 몸을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까. 그걸 계속해서 고민하면서 움직이다 보니 전투에서도 자연스럽게 그리 움직이더라고요.”
이세훈의 담담한 대답에 류은하는 더더욱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무슨 생활을 하셨길래 그만큼 요령이 몸에 자리 잡은 겁니까?”
주변 환경과 자신의 상태를 완벽히 이해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말로는 간단해 보여도 모든 행동을 의식하고 조정한다는 시점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의 생활이라니? 약간의 의심이 류은하 속에서 피어나려던 순간.
“돈이 없었거든요.”
이세훈이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부모님의 유산은 공방을 만드는 데 다 썼고, 매달 나오는 지원비도 연습에 쓸 재룟값에 사용하니 거의 안 남고. 그래서 생각을 바꿨죠.”
“생각……?”
“예. 뭐가 됐든 몸을 ‘유지’하면 되는 게 아닌가, 하고.”
식사는 맛보다는 영양분과 가성비로, 옷은 냉난방에 지장이 생기지 않으면 사지 않았고 제련을 하지 않는 개인적인 시간은 공방의 바닥에 누워 휴식에만 사용했다.
그런 기계부품과도 삶이 바로 바벨에 오기 전까지 이세훈이 몇 년간 해온 생활 방식이었던 것이다.
“이게 들으면 쉬운 것 같아도 경계선을 찾기가 은근 어렵습니다. 너무 안 먹으면 체력이 떨어지고, 많이 먹으면 체력은 남는데 재료가 부족하니까요.”
“…….”
“그래서 딱 중간점을 찾아내는 게 중요한데 처음에는 감을 못 잡아서 탈진으로 자주 쓰러졌었죠. 첫해 겨울에는 진짜 죽을 뻔했었는데…….”
시간으로 따지면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지만 31년을 회귀한 이세훈에게는 이제는 까마득한 옛날 일이었다.
하지만 조금만 기억을 되새겨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는데 부모님의 원수를 잡아 죽이는 데 혈안이 됐던 시기였던 만큼 하루하루가 선명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참 이것저것 열심히 하던 시기였지.’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쉴 틈이 없던 나날들. 그때는 매일매일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일이 있었지 라는 느낌만 남았다.
시간이 흘러서 그런 것도 있고, 복수라는 목표를 달성해서 그런 것도 있으리라.
‘마신들도 그렇게 족쳐야 하는데 말이야…….’
이런저런 생각에 이세훈이 깊이 빠져들려던 그때.
문득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옆을 바라보았다.
“…….”
아무런 말 없이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류은하. 상당히 머릿속이 복잡해 보이는 눈빛에 이세훈은 아차 싶었다.
‘너무 생략해서 말했나.’
조금 고생하긴 했지만 저것만 말해서는 설득력이 부족하리라. 그렇기에 이세훈은 모처럼 기억이 떠오른 김에 과거의 노하우들을 풀어냈다.
“E급 몬스터 호른피그 아시죠? 이 녀석 고기가 음식물 쓰레기에 절인 생고무 같은 맛이 나는데 영양은 엄청 풍부하거든요. 가격도 싸서 주식으로 먹었는데 먹는 게 괴로우니까 체력도 아껴서 쓰게 되더라고요.”
“한 번은 중고로 샀던 집게로 쇳물이 담긴 통을 꺼내다가 부러져서 그대로 발에다 쏟은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발가락이 세 개가 될 뻔하고 나서 장비에는 돈을 덜 아꼈죠.”
“어깨를 다친 적도 있었는데 그때 돈이 없어서 그냥 반대 팔로 망치질을 했었거든요. 근데 2주 뒤에 너무 아파서 병원을 가 보니 조금만 늦었어도 완전히 고장 났을 거라는데…… 어후 그 이후로 몸 상태는 확실히 체크하게 됐습니다.”
말하다 보니 재미가 붙은 이세훈이 신나게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며 이야기하던 그때.
“됐습니다.”
굳은 표정을 지은 류은하가 이세훈의 말을 끊어냈다.
“그런 일들이 있었다면…… 확실히 방금의 전투법도 납득이 가는군요.”
자신의 목숨을 연료 삼아 재능을 한계까지 몰아붙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서류로 볼 때는 알 수 없었던 가혹한 나날들.
그 이야기를 들은 류은하는 조금 측은한 눈으로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직도 그런 방식으로 지내시는 건 아니겠죠?”
“지금은 안 그러죠. 그렇게 생활하면 신체 능력이 성장 안 하니까요.”
이세훈의 대답에 약간 경직되었던 류은하의 표정이 풀렸다.
“대신 지금은 근육이랑 마력회로가 괴사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이세훈 생도.”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온 류은하가 진지한 표정으로 어깨를 감싸 쥐었다.
“빠르게 성장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무리해서는 안 됩니다. 알겠습니까?”
“예? 뭐…… 적당히 봐가면서…….”
“알겠습니까?”
원하는 대답을 듣기 전까지는 절대 끝내지 않겠다는 모습. 회귀 전에도 종종 봐온 모습이었기에 이세훈은 하는 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정말입니까?”
“물론이죠. 걱정하지 마세요.”
당연히 그럴 생각은 없지만, 이럴 땐 안 하더라도 그냥 하겠다고 대답하고 넘기고 보는 게 더 효율적이다.
‘게다가 크게 무리하는 것도 아니고.’
오장육부를 하나하나 의식해서 움직여야 하는 것도 아니고, 신경계가 뒤틀려 전신의 움직임이 어긋난 상태도 아니고, 매일마다 마력회로를 잘라내고 다시 붙이는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그런 이세훈의 속내를 알아차렸는지 류은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학기 초라서 그렇지만 앞으로 생도들에게 많은 기회가 찾아올 겁니다. 그리고 이세훈 생도는 보르시파의 학과 수석이니 더더욱…….”
류은하가 학과 수석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이야기하던 그때. 한 귀로 흘려듣던 이세훈의 눈이 어깨너머로 움직였다.
“……어.”
어두컴컴한 산등성이 위로 쏟아지는 희미한 빛. 그 모습에 이세훈은 곧장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자욱한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달. 금방이라도 다시 가려질 듯한 그 광경에 이세훈이 곧장 류은하를 바라보았다.
“학과장님! 저 좀 안아서 높이 뛰어주세요!”
“예?”
“급한 일입니다. 빨리!”
갑작스러운 재촉에 류은하는 의아해하면서도 재빠르게 광혈을 끌어올린 다음 이세훈을 안고 바닥을 박찼다.
투웅─!
얼굴을 후려갈기는 어마어마한 바람과 함께 순식간에 변한 시야.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진 은월산의 풍경에 이세훈은 재빠르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위르겐 크루거의 아이템이 있는 던전은 달빛을 머금은 마기를 빨아들인다고 했었지.’
회귀 전에 발견했던 A급 영웅들은 우연히 그 현상을 발견했고 3주에 걸친 조사 끝에 던전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달이 떠 있지 않으면 탐색이 불가능한 탓도 있었고, 마기의 흐름이 워낙에 은밀해서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두고 영웅들은 자신들이 아니면 이렇게 일찍 찾지 못했을 거라고 호언장담했지만.
‘그거야 밑에서 찾을 때의 이야기고.’
바람과 같이 산등성이를 타고 흐르는 오염된 대기. 자연적으로 형성된 마기의 흐름을 살피던 이세훈은 이내 자신의 ‘계산’과 틀리게 움직이는 곳을 발견했다.
겉보기에는 특별할 것 없는 산봉우리. 하지만 그 중턱에 있는 공터 아래로 마기가 아주 조금씩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그 모습을 발견한 이세훈은 망설임 없이 그곳을 가리켰다.
“저쪽!”
“……저건?”
S급 영웅답게 위치를 가리키기 무섭게 이상함을 알아차리는 류은하. 그 반응에 이세훈은 그녀가 다른 생각을 하기 전에 곧장 외쳤다.
“곧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부수고 들어가야 돼요!”
그런 복잡한 구조는 아니지만, 만약에라도 류은하가 위험하다고 이쪽을 놓고 가면 곤란하다.
이세훈의 다급한 외침에 류은하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다음 재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파앙─!
허공을 걷어참과 동시에 던전의 입구를 향해 쏘아지는 몸.
붉은 잔상을 남기며 떨어지는 것이 마치 유성과도 같았고 수십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던 거리가 눈 깜짝할 사이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류은하의 몸이 그대로 지면에 충돌하려던 바로 그 순간.
후웅─
허공에서 반 바퀴 회전하며 뻗어 나간 류은하의 왼발이 지면을 후려갈겼다.
콰아아아앙─!!
솟구치는 흙과 무너져 내리는 암벽.
튕겨 나오는 대신 아래로 다시 떨어지기 시작한 몸에 두 사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들이 숨겨진 던전에 들어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