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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53화 (53/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53화

토요일 새벽.

아침 일찍 일어난 이세훈은 미리 준비해둔 짐을 챙긴 다음 우르에 있는 ‘아공간 터미널’로 향했다.

5층으로 이뤄진 커다란 건물.

어지간한 대중교통의 터미널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넓고 화려했으며 보안 역시 철통같았는데 이곳의 중요도를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에 연결된 거점이니까 말이지…….’

각 도시의 수도나 대도시부터 시작하여 각종 위험지역에 설치된 거점 등등 수백 개의 지역을 시간차 없이 오갈 수 있는 교통의 중심지.

바벨이라는 비정상적인 교육기관을 유지해 주는 기둥 중 하나가 바로 이 아공간 터미널인 것이다.

‘예전부터 생각한 거지만…… 용케도 이런 시설이 유지된단 말이야.’

아공간 터미널을 오가는 재산의 규모를 생각하면 사회의 혼란을 노리는 마인들이나 테러리스트들에게는 이만큼 좋은 먹잇감이 없다.

하지만 그런 불안감과 달리 아공간 터미널이 직접적으로 노려진 적은 회귀 전을 포함해서 거의 없었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주인이 루트비히니까.’

최초의 완등자이자 최강의 영웅이라고도 불리는 승천제가 ‘직접’ 만들어내고 관리하는 장소.

기습을 시도한 이들은 대부분 직전에 제압당했고 만마전의 거악이라 불리는 십악의 일원조차 큰 부상을 입고 패퇴했다.

세간의 걱정과 달리 루트비히가 멸천의 마신과 공멸하기 전까지 그 위상을 유지했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투자자에게 이만한 업체는 또 없으리라.

‘……잠깐. 생각해 보니 여기 주식을 사면 되잖아?’

위기설이 돌아서 떨어졌다가 루트비히가 침입을 막아내면 다시 팍팍 치솟아 결과적으로 쭉 우상향을 유지하던 것이 아공간 터미널의 주식이 아니었던가.

우연히 떠올린 투자처에 이세훈이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주변이 묘하게 소란스러워진 것을 깨닫고 앞을 바라보았다.

“…….”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채 약속한 장소에 서 있는 류은하.

그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무표정한 얼굴과 붉은 머리칼 때문에 못 알아보는 이들이 없었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곁눈질로 살피며 웅성거렸다.

“류은하가 여기는 왜 왔대? 누구 뒷바라지해 주러 왔나?”

“뭔 소리야. 예전에 세라핌 길드장 아들도 사람들 보는 앞에서 깠던 사람인데. 그런 거 안 해주기로 유명하잖아.”

“그럼 S급 영웅이 D급 위험지역에 가는 건 말이 되고?”

류은하가 왜 이런 곳에 왔는지 의아해하며 쑥덕거리는 사람들.

그 열띤 반응에 이세훈은 새삼스레 류은하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깨달았다.

‘S급 영웅도 까마득하긴 하지.’

회귀 전에야 워낙 자주 봐서 이세훈에겐 무감각하지만 보통 S급 영웅이라고 하면 친해지기는커녕 직접 대화를 나눠보기도 힘든 까마득한 위치였다.

거기에 바벨의 학과장이라는 직책까지 달고 있으니 어지간한 이들은 류은하 앞에서 명함도 내밀지 못하리라.

‘예전에는 그냥 입맛 까다로운 단골이었는데…… 이젠 믿음직한 후원자가 됐구만.’

줄을 잘 잡았다는 것에 기쁘기도 하고, 반대로 그만큼 자신의 위치가 얼마나 낮은지 체감돼서 씁쓸하기도 하다.

이세훈이 그런 복잡한 기분을 느끼며 바라보고 있을 때.

“아.”

자신을 기다리던 류은하와 눈을 마주쳤다.

이쪽을 발견하자 거침없이 다가오는 류은하. 무표정하게 다가오는 모습에 사람들이 반사적으로 물러섰고, 자연스레 가만히 서 있던 이세훈만 남게 되었다.

“…….”

바로 앞까지 다가온 류은하는 말없이 한차례 몸을 훑어보더니 담담히 물었다.

“다친 곳은 괜찮으십니까?”

“아, 예. 이제 다 나았습니다.”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무표정해 보이면서도 진심이 느껴지는 대답.

자신의 팔에 문제가 생겼다면 앞으로 만들 무기의 수준이 떨어졌을 테니 새로운 ‘맛’을 기대하던 류은하로서는 걱정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질린 뒤라면 어떻게 되든 신경도 안 쓰겠지만…….’

류은하를 대할 때는 절대 긴장을 풀어선 안 된다. 이세훈이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 사이 두 사람을 둘러싸던 인파가 다시금 웅성거렸다.

“류은하한테 후원받는단 소문이 진짜였던 건가?”

“세상에…… 다른 사람도 아니고 류은하한테……?”

지난 경매 건으로 류은하가 이세훈에게 관심을 보인다고 소문이 퍼지긴 했으나, 그것은 말 그대로 어디까지나 소문에 불과했기에 다들 귀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두 사람이 주말에 따로 만났다는 증거가 더해진다면 그때부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바벨은 물론이고 외부에도 퍼져나갈 엄청난 소식. 그 반응을 힐끗 본 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다시 마주 보았다.

“이제 갈까요?”

“그러죠.”

이세훈이나 류은하나 이런 쓸데없는 반응에 하나하나 신경 쓸 만큼 섬세한 성격은 아니었다.

주변에 쏟아지는 시선을 무시한 채 두 사람은 곧장 한쪽 개찰구로 향했다.

삑─

[이세훈 생도. D급 위험지역 진입 허가가 나지 않았습니다.]

생도증을 가져다 대자 허공에 나타난 홀로그램. 그에 류은하가 이어서 자신의 신분증을 가져다 댔다.

삑─

“동행하겠습니다.”

[류은하 학과장. D급 위험지역 동행 확인되었습니다.]

개찰구가 열리고 안쪽의 통로로 걸어가자 푸른색 게이트가 생성된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성인 10명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넓은 게이트. 그 너머로 비치는 건너편의 풍경을 바라본 류은하가 이세훈에게 짧게 경고했다.

“울렁거릴 수도 있으니 집중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류은하가 먼저 게이트를 넘어갔고 이세훈도 그 뒤를 따라 게이트의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후웅─

한 걸음을 옮겼는데 먼 거리를 단번에 지나온 것 같은 기괴한 감각. 게이트 특유의 괴상한 거리감에 이세훈이 눈매를 찌푸렸다.

‘이놈의 거지 같은 느낌은 여전하구만…….’

몸이 어려져서 그런지 몰라도 예전보다 더 심한 것 같기도 하다.

남아 있는 감각을 털어낸 이세훈은 곧장 류은하와 함께 건물 밖으로 나왔다.

“여긴 아직 새벽이네요.”

“예. 해가 뜨려면 5시간은 걸릴 겁니다.”

거대한 방벽에 둘러싸인 터미널의 부지는 환하게 밝혀져 있지만 그 너머로 보이는 D급 위험지역, 은월산은 빛 하나 없이 어두컴컴했다.

‘저 안에 위르겐 크루거의 아이템이 있단 말이지…….’

회귀 전보다 일찍 찾아왔는데 과연 아이템이 멀쩡히 남아 있을까. 이세훈이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살피고 있을 때.

“우선 장비부터 체크하겠습니다.”

맞은편에 선 류은하가 조금 엄격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오늘 착용할 장비를 보여주십시오.”

류은하의 이야기에 이세훈은 외투를 벗고 자신이 입고 있는 장비를 보여줬다.

무기는 입학시험 때 만든 오색화도와 화적초. 방어구는 바벨에서 지급해 주는 보급형 전투복 위에 경갑으로 급소만 간단하게 가렸다.

겉보기엔 운동복 위에 갑옷만 대충 걸친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강철갑옷 두세 겹을 껴입은 것과 맞먹었다.

‘뭐. 제대로 된 놈들한테는 종잇장이나 다름없지만…….’

어차피 지금 몸으로는 그런 놈들과 치고받는 것 자체가 힘든 데다 류은하도 같이 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이세훈이 생각하고 있을 때.

“역시 방어구가 부실하군요.”

예상했다는 듯 류은하가 자신의 아공간 포켓을 두드렸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아공간 포켓에서 검은 큐브를 꺼낸 류은하는 이세훈이 뭐라 할 새도 없이 곧장 몸에다 가져다 댔다.

키릭! 카가강─

검은 큐브가 퍼즐이 분해되듯 조각조각 갈라지더니 이세훈의 신체 달라붙어 순식간에 갑옷의 형태로 빚어진다.

멀리서 보면 슈트로 보일 만큼 깔끔하면서 날렵한 디자인. 피부가 한 겹 더해진 듯한 일체감에 이세훈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정보를 확인했다.

[쉐도우 매터 아머Shadow Matter Armor]

[등급 : 영웅] [품질 : 최상]

암속성 재료인 쉐도우 매터를 사용해서 만들어낸 갑옷.

착용한 사용자의 신체에 맞춰 갑옷의 형태를 조정하며 가해진 충격을 주변의 그림자로 흘려낸다.

*착용자의 신체에 형태가 조정됩니다.

*갑옷에 가해진 충격을 이어져 있는 그림자에 흘려낼 수 있습니다.

*스킬 ‘쉐도우 헷지호그’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쉐도우 매터로 만든 갑옷이라…… 신경 좀 썼네.’

신체 능력은 건드리지 않으니 토벌연습이라는 취지에 벗어나지도 않고, 착용자가 반응하지 못한 공격을 자동으로 대응하니 안전성도 높아진다.

마치 오늘을 위해서 주문 제작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뛰어난 성능. 그에 이세훈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저 때문에 사 오신 건 아니죠?”

“이전에 선물로 받았는데 쓸 일이 없어서 창고에 넣어뒀다가 괜찮을 것 같아서 챙겨온 겁니다. 예상대로 잘 맞는 것 같군요.”

전신무장한 이세훈의 모습에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류은하. 그 모습에 이세훈은 다시금 자신이 착용한 갑옷을 내려다보았다.

‘썩 내키지 않은 물건이었나 보네.’

류은하는 정말로 마음에 들었거나 나중에 먹을 예정인 무구들은 함부로 남에게 건네주거나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거리낌 없이 준다는 것은 수준이 떨어지거나, 아니면 원해서 얻은 물건이 아니란 뜻이었다.

‘선물이라고 했으니 환심 좀 사보려고 떠넘긴 것 같은데…… 누군지 몰라도 눈치가 없구만.’

아무리 무구를 좋아한다고 해도 속이 빤히 보이게 건네준다면 먹기 거북할 뿐이다.

류은하가 겉보기엔 무신경해 보여도 이런 쪽으로는 은근히 철저했기에 경계를 받았으면 몰라도 호의는 얻지 못했으리라.

‘잘 만들기라도 했으면 몰랐을 텐데 그것도 아니고.’

쉐도우 매터라는 재료를 그냥 갑옷 모양으로 만든 수준.

좋게 말하면 재료에 충실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재료를 제대로 활용할 실력도 패기도 없다는 것이었다.

‘좀 아까운데…….’

갑옷을 내려다보며 이세훈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확인을 끝낸 류은하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따라오십시오.”

“아, 예. 알겠습니다.”

류은하를 뒤따라 걷던 이세훈은 저 멀리 보이는 방벽의 출입구를 바라보았다.

푸르스름한 자기장으로 막혀 있는 입구. 번갯불 같은 것이 틈틈이 튀어 올랐는데 겉보기에는 처음 본 이들에게는 상당히 위협적인 모양새였다.

“마기를 차단하는 마공학 장치입니다. 인간에게는 무해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간단히 설명해 준 류은하가 먼저 자기장을 넘어갔고 이세훈 역시 그 뒤를 따랐다.

파측!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푸른색 번갯불.

정전기가 몸 전체를 훑고 지나간 느낌이었는데 만약 몸 안에 마기가 자리 잡은 몬스터나 마인이었다면 거부반응을 일으켜 안쪽이 노릇하게 구워졌으리라.

‘예나 지금이나 살벌한 물건이야…….’

자기장을 무사히 넘어온 이세훈은 숲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람이 스산하게 부는 어두운 숲. 겉보기에는 그저 음침한 야산이었지만, 그곳에는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위험지역의 대기에는 마력뿐만 아니라 마기도 같이 섞여 있습니다. 거부반응이 일어날 테니 천천히 가라앉히십시오.”

평소와 같이 숨을 쉬는데도 폐가 찌릿하고 전신이 위협받은 것처럼 움찔거린다. 소량의 마기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자신의 몸에 이세훈이 슬쩍 웃었다.

‘이런 거 보면 새 몸이긴 하구만.’

정신적으로는 위험지역의 오염된 대기에 익숙해져 있지만, 육체는 이번이 처음이기에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그 기묘한 감각도 잠시, 정신에 맞춰 육체도 금방 마기를 능숙하게 흘려 넘기기 시작했고 몸 곳곳에서 느껴지던 이질감도 사라졌다.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들어온 지 1분도 안 됐는데 자연스럽게 호흡을 통해 마기를 걸러내는 이세훈. 그 모습에 류은하의 눈이 살짝 커졌다.

“대단하군요. 아무리 빨라도 처음에는 힘든 일인데…….”

“이런 쪽으로는 조금 요령이 있어서요.”

아무리 요령이 있다고 해도 1분도 채 안 돼서 적응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수준이었지만 류은하는 그에 대해서 크게 지적하지 않았다.

“훌륭합니다.”

이세훈의 재능이 비범하지 않은 거야 이전부터 알고 있었고, 류은하 본인도 그런 비정상적인 일들을 많이 이뤄낸 천재다 보니 ‘그럴 수도 있지’라고 태연하게 넘긴 것이다.

“그럼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류은하가 다시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고 이세훈은 그 뒤를 따라 은월산의 안으로 들어섰다.

후우웅─

마기를 머금은 스산한 바람. 벌레 우는 소리조차 없으니 발소리가 크게 들릴 정도였고 어둠 너머로 무언가가 이쪽을 바라보는 듯한 감각도 느껴졌다.

마기가 만들어내는 섬뜩한 환경을 살피고 있자 앞장서서 걷던 류은하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

“은월산에 서식하는 몬스터들은 모두 야행성. 후각이 발달되어 있으며 정찰과 협공을 펼칠 만큼 지능이 높은 개체들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삭─

“그렇기에 사냥 방법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낮에 몬스터들의 거처를 공략하는 방법. 밤에 돌아다니는 몬스터들을 격파하는 방법.”

주변을 살짝 훑어본 류은하가 자연스레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밤에는 몸을 숨기고 급습하여 각개격파를 하는 방법과 닥치는 대로 쓸어버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당연히 일반적으로는 전자를 선택합니다.”

한참을 걷던 류은하가 돌연 걸음을 멈추고는 수풀 너머를 빤히 바라보았다.

“오늘은 이세훈 생도의 토벌 연습을 위해 찾아왔으니 기본적으로는 개입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어떻게 움직이시겠습니까?”

기본적인 것을 가르쳐준 뒤 선택지를 넘기는 류은하. 깔끔한 질문에 이세훈은 그녀와 똑같이 정면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섰다.

“든든한 보호자도 있으니까 정면돌파로 가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위험 상황이 아니면 개입하지 않을 겁니다. 갑옷 덕분에 중상은 입진 않겠지만 그런 상황이 있었다고 간주되면 즉시 토벌을 중단하겠습니다.”

혹시라도 갑옷의 성능에 의존하여 막무가내로 싸울까 봐 확실하게 선을 긋는 류은하.

그 철두철미한 성격을 생각하면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하리라.

“괜찮습니다.”

하지만 이세훈은 그런 류은하의 경고에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무리 이 몸뚱이가 썩어빠졌다고는 해도 여기에 있는 녀석들을 상대로 고전할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류은하가 뒤로 물러섰고 이세훈이 그 바톤을 넘겨받듯이 앞으로 걸어나갔다.

조용한 숲속. 하지만 수풀 너머에서 느껴지는 적의와 시선들이 소리 없이 주변으로 흩어지며 포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세훈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계속해서 걸어 들어가 촘촘해진 포위망에 갇힌 순간.

크헝─!

수풀에서 튀어나온 검은 늑대들이 새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일제히 달려들었다.

은월산에 서식하는 E급 몬스터 은랑.

이곳에서는 가장 약한 개체지만 긴밀한 협공체계를 갖춰 초심자들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몬스터들이었다.

‘여덟 마리…… 조금 많았나.’

쉐도우 매터 아머 덕분에 다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실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는 일.

혹시라도 이세훈이 부상, 특히 손이 다칠지도 몰랐기에 류은하가 언제든지 개입할 수 있도록 태세를 가다듬고 있을 때.

우우웅─

허리춤의 붉은 칼집, 화적초의 내부에서 화속성마력이 들끓으며 요동친다.

그리고 이세훈의 오른손이 오색화도의 손잡이를 으스러져 움켜쥔 순간.

파앙─!

오색의 불꽃이 반월을 그려내며 은랑의 몸을 갈라냈다.

투둑, 툭!

반으로 갈라져 형편없이 바닥을 나뒹구는 은랑들의 시체. 단면이 불에 그을리며 탄 냄새가 퍼졌고 그 모습에 류은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

여덟 마리의 은랑이 사정거리 안으로 완벽하게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펼쳐진 발도.

기술도 기술이지만 자신이 다루는 무기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울 만큼 뛰어났다.

‘대단해…….’

다른 영웅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대장장이로서의 특징이 뚜렷하게 느껴지는 전투.

그 이질적이면서도 흥미로운 광경에 류은하는 말없이 이세훈과 그 손에 들린 오색화도를 바라보며 감탄했고.

꼬르륵─

“…….”

“…….”

조금 낯부끄러운 소리가 적막한 숲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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