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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52화 (52/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52화

무구의 근원학을 듣던 생도들은 모두 개인적인 관심뿐만 아니라 나름대로 꿍꿍이도 있었다.

바벨에서 손꼽히는 지원을 받는 김인철 지도교수와 친해져서 여러 지원을 받는다. 이세훈이 노리던 것과 거의 비슷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어떤 것 같나?”

“음. 좀 애매한데요. 속성부여를 사용해서 순도를 끌어올린 건 좋은데 그 이외의 장점을 전혀 못 살렸어요. 제련 방식을 좀 바꿔야 할 것 같은데요.”

“역시 자네도 똑같이 생각하는군. 나였다면 제련 과정에서 비율을…….”

하지만 눈앞의 광경, 이세훈과 김인철이 수많은 무구를 살피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본 생도들은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노린 기회는 2주 만에 찾아온 1학년 학과 수석에게 완전히 빼앗겼다는 것을.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지. 시간이 날 때마다 차분히 관찰하고 모두 파악했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찾아오게나.”

수업이 끝나자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걸어나가는 생도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세훈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본의 아니게 의욕을 팍 꺾어버린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

“괜찮네. 이 정도 일로 꺾일 거라면 가르칠 가치도 없으니.”

조금 냉정하다 싶을 만큼 단호한 이야기였지만 이세훈은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죠.”

바벨은 걷고자 하는 이들에게 길을 제시하는 거지 강제로 떠밀며 걷게 만드는 장소가 아니다.

수업이 너무 어려워서 풀이 죽었다면 모를까 경쟁자가 뛰어나다고 풀이 죽어 포기할 정도라면 굳이 다독이며 가르칠 필요는 없으리라.

‘어쨌든 이걸로 경쟁자는 다 사라진 건가.’

이제 남은 건 김인철에게서 어떻게 예산을 받아먹는가. 방법을 찾기 위해 이세훈이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혹시 이 뒤에 따로 수업이 있나?”

김인철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뇨. 오늘 수업은 이게 마지막입니다.”

“음…… 그럼 잠시 시간 좀 내주겠나? 자네에게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일세.”

진지한 표정으로 제안하는 김인철의 모습에 이세훈은 기회가 왔음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괜찮습니다.”

“그럼 장소를 옮기지. 따라오게.”

강의실을 나온 김인철을 본관 건물 뒤편에 마련된 주차장으로 향했다.

바벨이 지어진 인공섬이 워낙에 크다 보니 개인차량을 보유한 사람들도 많았는데 김인철 역시 그런 사람 중 한 명으로 보였다.

‘바벨이라 그런가. 다들 비싼 차만……?’

주차장을 살펴보던 이세훈은 구석에 세워진 오토바이를 발견하고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일반 바이크의 3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엄청난 크기의 타이어에 흉악함이 느껴지는 엔진. 거기에 붉은색으로 코팅된 몸체 역시 만만치 않았는데 중요한 것은 그 재료들이었다.

‘선박도 움직일 수 있는 V16 마력 혼합 엔진에 타이어는 질감을 보니 바실리스크의 가죽을 사용한 것 같고…… 차체는 합금인가? 최소 영웅 등급은 되는 것 같은데…….’

눈에 보이는 것들만 따져 봐도 주차장에 있는 차량 전부를 합친 것보다 비싸다.

오토바이의 탈을 쓴 괴물의 모습에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누가 저런 미친 물건을 타고 다니는 거지?’

주인이 누구일지 궁금해진 이세훈이 살펴보고 있을 때. 앞서 걸어가던 김인철이 자연스럽게 오토바이 뒤쪽의 수납함을 열어서 붉은 헬멧을 꺼냈다.

“착용하게나.”

“……이게 교수님 오토바이였습니까?”

“그렇네만?”

뭐가 문제냐는 듯 바라보는 김인철의 모습에 이세훈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무래도 김인철은 자신이 생각한 것만큼 마냥 검소한 장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차후 인연석의 제작에 참고하기로 하며 이세훈이 헬멧을 쓰고 뒷좌석에 올라탔다.

“혹시 모르니까 방호장치도 쓰겠네.”

구구궁─

앞에 탄 김인철이 핸들 쪽의 버튼을 누르더니 엔진이 요동치며 이세훈의 전신에 붉은 마력이 얇게 들러붙었다.

일회용이긴 하지만 내구도 자체는 어지간한 영웅 등급 방어구와도 견줄 수 있는 수준. 그 기능에 이세훈이 감탄을 넘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엄청난 물건이네요.”

“교수가 되기 전부터 유용하게 사용하던 물건이지. 보물 2호일세.”

“2호…….”

그러면 보물 1호는 과연 어떤 물건일까. 그런 이세훈의 속내를 읽었는지 김인철이 고글을 내리며 씩 웃었다.

“1호도 곧 보여주겠네.”

부우웅─!

엔진이 배기음을 터트림과 동시에 오토바이가 순식간에 주차장 밖으로 쏘아져 나가 매끄럽게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외형과 속도와 달리 진동이 느껴지지 않는 부드러운 탑승감. 충격을 자연스럽게 분산하는 오토바이의 성능에 이세훈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원래 출력의 30%도 안 되는 것 같은데…… 밖에서 제대로 몰면 끝장나겠는데.’

이 정도면 어지간한 몬스터는 그냥 갈아버리면서 지나갈 수 있지 않을까.

오토바이의 성능을 살피던 이세훈은 문득 주변의 풍경이 달라진 것을 깨달았다.

‘여기가 외부구역인가.’

생도들이 주로 활동하는 학과구역을 벗어나면 나오는 곳으로 바벨의 교직원들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파견 온 각종 기업과 길드의 인력들이 머무르는 구역이었다.

사실상 일반 주택가나 다름없는 곳이었는데 김인철은 그중에서도 가장 구석진 곳에 위치한 주택 앞에 멈췄다.

“여기가 내 집일세.”

정원이 딸린 2층 단독주택. 크게 흠잡을 곳 없이 깔끔한 장소였는데 이세훈은 그보다도 옆에 있는 건물에 눈이 향했다.

위쪽으로 커다란 굴뚝이 솟아 있는 건물. 특수한 건물에 쓰이는 합금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딱 봐도 김인철의 공방으로 보였다.

“공방 때문에 일부러 여기다 지으신 겁니까?”

“학과구역에 가까울수록 개인연구에 제한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여기까지 왔다네.”

“아아. 교수님들이 하실 연구면 좀 위험하긴 하죠.”

나름대로 방호장치를 설치하긴 했겠지만 한 번 수틀리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당장 자신만 하더라도 회귀 전에 사소한 실수 한 번으로 공방과 함께 산 몇 개를 날려 먹지 않았던가.

‘그때 수배돼서 골치 아팠는데…….’

옛 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리며 이세훈이 추억에 잠겨 있을 때. 차고에 오토바이를 세워둔 김인철이 손짓했다.

“이쪽으로 오게.”

이세훈을 이끌고 공방으로 향한 김인철은 닫혀 있던 셔터를 힘껏 위로 올렸다.

촤르르륵─

“오…….”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자 환하게 불이 켜지는 공방.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벽면에 나란히 자리 잡은 다섯 개의 화로였는데 화구를 막아둔 반투명한 뚜껑 너머로 저마다 각기 다른 불꽃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쓰임새에 맞게 조정해둔 전용화로인가. 저거 유지비용이 꽤 나갈 텐데…….’

그 이외에도 선반이나 벽면에 각종 도구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마력엔진을 비롯한 각종 마공학 장치들도 상당히 많이 보였다.

검소하고 보수적으로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막대한 돈을 들여서 만든 것 같은 최첨단 공방. 그 모습에 이세훈은 김인철이 어떤 인물인지 어느 정도 감이 잡혔다.

‘자기가 종사하는 분야에 한해서는 열린 사람이구만.’

돈을 쓰는 것도,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도 거침이 없다.

그 모습에 이세훈은 장점과 동시에 단점이 무엇인지도 알아차렸다.

‘내가 잘하면 그만큼 퍼줄 테고…… 아니면 그냥 자기가 펑펑 쓰겠지.’

아무래도 예산을 타 먹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어필을 해야 할 것 같다.

이세훈이 공방을 살펴보는 사이 김인철이 두꺼운 장갑을 끼며 집게를 집어 들었다.

“화속성 저항 스킬은 있나?”

“불꽃의 장인이라고 C급이 하나 있긴 합니다.”

“그 정도면 힘들겠군. 저기 걸려 있는 보호복 입고 오게.”

고개를 끄덕인 이세훈은 곧장 벽면에 걸려 있는 보호복을 집어 들었다.

[샐러맨더의 보호복]

[등급 : 영웅] [품질 : 상]

화속성 정령 샐러맨더의 가죽을 가공하여 만들어낸 보호복.

마력을 소모하여 체온을 조절할 수 있으며 외부에 가해진 열기를 흡수하여 마력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마력을 소모하여 체온을 조절합니다.

*열기를 흡수하여 마력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손상될 경우 가열을 통해 복원 가능합니다.

*스킬 ‘화력통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걸 껴야 할 정도라고?’

스킬로 치면 최소 A급은 있어야 견딜 수 있는 수준. 도대체 보물 1호라는 물건이 무엇일지 궁금해진 이세훈은 곧장 보호복을 입고 김인철에게 다가갔다.

“거기서 움직이지 말게나.”

잠시 숨을 고른 김인철은 다섯 개의 화로 중 가운데에 있는 가장 큰 화로의 앞으로 다가가 화구를 막은 뚜껑을 열었다.

화아악─!

뚜껑을 열기 무섭게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열풍.

공방에 설치된 방호장치가 바로 차단했는데도 사방이 일렁이는 것을 보니 온도뿐만 아니라 불꽃의 성질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후우…….”

그런 열풍을 정면으로 받으며 화로 앞으로 다가간 김인철은 손에 들린 집게를 깊숙이 집어넣었다가 한 물건을 꺼냈다.

화르륵!

어마어마한 열기를 머금으며 새하얗게 빛나는 도신.

약간 휘어있는 곡도의 형태로 안쪽에는 큼지막한 균열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사이로 불꽃이 넘실거리며 새어 나왔다.

우우웅─!

공방 내의 수분이 순식간에 증발되고 마력마저 끓어오른다. 마치 태양의 파편과도 같은 그 모습에 이세훈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저건…….’

자신이 알던 모습과는 다르지만, 상당히 익숙하다.

그 기시감에 이세훈이 기억을 뒤져보고 있을 때. 도신을 꺼낸 김인철이 인상을 찌푸리며 재빠르게 모루 위로 옮겼다.

쿠웅!

도신을 올리기 무섭게 모루가 거대한 케이지처럼 변했고 내부에 장착된 마법진이 수십 겹으로 발동되어 열기를 완전히 가둔다.

집게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쉰 김인철은 멀리 떨어져 있는 이세훈에게 손짓했다.

“이쪽으로 오게. 혹시 모르니 방호복은 벗지 말고.”

“알겠습니다.”

방호복을 입은 채 곁으로 다가간 이세훈은 김인철의 보물 1호로 보이는 도신을 다시 살펴보았다.

검은 케이지와 수십 겹의 마법진에 둘러싸인 채 허공에 박제되어 있는 새하얀 도신. 그 모습을 살피던 이세훈은 곧장 정보창을 살펴보았다.

[부서진 불꽃]

[등급 : 영웅] [품질 : 최상]

화속성 마력을 머금은 도신.

본래는 완성된 도였으나 근원이 파괴되어 모든 기능을 잃고 자신의 열기조차 품을 수 없게 되었다.

도신 내부에 저장된 모든 열기를 방출할 경우 영구적으로 파괴된다.

*열기를 모두 소모할 경우 영구적으로 파괴됩니다.

*현재 충전된 열기 : 89%.

“허…….”

근원이 파괴되어 모든 기능이 사라진 상태인데도 영웅 등급에 최상품. 그 말인즉 정상적인 상태라면 전설 등급 무구였다는 뜻이었다.

‘이만한 물건을 이렇게 일찍 보게 될 줄이야…….’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살펴보자 옆에 선 김인철이 도신, 부서진 불꽃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건 바벨에 들어오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물건인데 처음에는 열기가 10%도 채 안 됐다네. 그래서 당시 내가 아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열기를 끌어올렸지.”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인 근원을 수리하지 못하니 유지비만 계속해서 빠져나갔고 김인철의 재산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사라지기 시작했다.

“공방을 제외한 모든 재산을 처리하고 벌어들이는 돈을 유지비에 사용했는데도 감당이 안 되더군. 그래서 그냥 포기해야 하나 하던 찰나…… 학원장님께서 찾아오셨지.”

제련학부 교수가 되는 조건으로 부서진 불꽃의 유지비를 지원해 주겠다. 그 거부할 수 없는 루트비히의 제안에 김인철은 단숨에 승낙하며 바벨의 인공섬에 들어왔다.

그 설명에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교수님이 무구의 근원학을 연구하시는 것도 이걸 수리하기 위해서였군요.”

“정확히는 부서진 불꽃을 수리할 수 있다면 나는 뭐든 상관없다네. 학원장님이 그쪽으로 성과를 내기를 원하셔서 연구하고 있을 뿐이지…….”

멋쩍어하는 김인철의 모습에 이세훈은 부서진 불꽃을 다시 바라보았다.

무분별하게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주변을 일그러뜨려 외형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들었지만 이세훈은 그 형태를 얼추 예상할 수 있었다.

붉은 도신과 그 위에 새겨진 새하얀 불꽃. 본래 그 안에 불꽃이 응축되어야 했는데 근원이 파괴되면서 계속 새어 나오는 것이다.

“저한테 이걸 보여주셨다는 건 연구를 도와주셨으면 한다는 거군요.”

제련학부의 지도교수가 올해 입학한 생도에게 도움을 구한다. 누가 듣는다면 농담으로 치부할 만한 이야기였지만 김인철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직접 말하기 부끄럽지만…… 이대로는 도저히 방법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더군.”

어느 분야든 오랜 세월을 매진하여 자리를 잡게 되면 본인이 원치 않더라도 깨달을 수밖에 없다.

자신은 여기까지이며, 이 이상은 아무리 혼자서 노력하더라도 닿을 수 없다고. 그동안 넘어온 한계들과는 차원이 다른 벽을 김인철은 부서진 불꽃을 수리하며 마주한 것이다.

“그래서 자네의 도움을 받고 싶었네. 자네는 내가 여태껏 봐온 생도…… 아니, 모든 대장장이를 통틀어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으니까.”

누군가는 자신의 한계를 외면하거나 부정하겠지만 김인철은 그보다 순순히 받아들이며 해결책을 찾아내기로 했다.

경험으로 어찌할 수 없다면 자신보다 뛰어난 천재를 찾아 조언을 구한다. 그리고 그 대상이 바로 자신을 몇 번이고 놀라게 만든 이세훈인 것이다.

‘흐음…… 마음에 드네.’

괜한 허세를 부리지 않고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김인철의 모습에 이세훈은 만족스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런 무구를 연구해 보는 건 흔치 않은 기회니까요. 제가 오히려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정말인가? 고맙…….”

“다만.”

김인철을 힐끗 본 이세훈이 말을 이어나갔다.

“제대로 연구를 하려면 이런저런 물건들이 필요할 것 같은데…… 제가 이번 학기에 받을 예산으로는 빠듯할 것 같아서…… 크흠흠.”

둘러말하는 척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이세훈. 그 솔직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김인철이 멍하니 보다 이내 피식 웃었다.

“너무 티 나게는 하지 말게나.”

역시 자기 분야에 한해서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다.

김인철이 어떤 사람인지 다시금 확인한 이세훈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고, 김인철도 힘껏 마주 잡았다.

바벨에서도 손꼽히는 돈줄. 그곳에 빨대를 꽂은 순간이었다.

* * *

“연구는 매주 한 번씩 하는 걸로 하지. 수업은 어차피 만점이니 급한 일이 있다면 오지 않아도 되네.”

“알겠습니다.”

“그럼.”

부우웅─!

굉음을 내뿜으며 저 멀리 사라지는 오토바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김인철의 모습에 이세훈이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오늘은 이래저래 재평가의 시간이구만.’

무구의 근원이라는 학문뿐만 아니라 김인철이라는 인물 자체에 대해서 다시금 재평가를 하게 되었다.

‘솔직히 예산 떼먹기는 좀 힘들 줄 알았는데.’

워낙에 고지식해 보여서 이쪽으로 융통성이 없을 줄 알았는데 설마 알아서 해 먹으라고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앞으로 어떻게 써먹을지 상상만 해도 즐거웠지만 한편으로 또 골치가 아팠다.

‘부서진 불꽃…… 그거 아무리 봐도 오행무구 같단 말이지.’

전설 등급의 무구 중에서도 ‘속성’이라는 분야에서 독보적인 능력을 지닌 다섯 개의 무구.

그것을 통틀어 ‘오행무구五行武具’라고 불렀는데 영웅들 사이에서는 아주 유명한 물건이었다.

미친놈이 가지면 도시를 날려 먹고, 평범한 사람이 가지면 죽어서 빼앗긴다. 또 사라졌다 싶으면 어디선가 나타나 쟁탈전을 일으키는 그야말로 골칫덩어리인 것이다.

‘전설 등급 무구 정도면 다 그렇긴 하지만…… 오행무구는 특히나 더 심하지.’

같은 계통의 속성마력을 크게 증폭시키며 친화도나 지배력을 영구적으로 키워줄 수 있는 엄청난 범용성.

그 때문에 쟁탈전이 벌어졌다 하면 수천 명은 그냥 죽어 나가는 물건이었는데 지금 김인철이 소유하고 있는 부서진 불꽃, ‘화천태도火天太刀’ 역시 마찬가지였다.

‘회귀 전에 마지막으로 목격됐던 게…… 인형사였네.’

십악 중 한 명이자 시체와 무구를 개조하여 자동인형을 만들어내던 마인.

화천태도를 확보한 인형사는 그것을 ‘수르트’라고 이름 붙인 자동인형으로 만들었는데 그로 인해 S급 영웅을 비롯한 600명이 넘는 영웅, 4만 명에 다다르는 시민들이 타죽었다.

마지막 자폭 때문에 도시 하나가 그야말로 흔적도 없이 증발했는데 대재앙이라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는 사건이었다.

‘그것 때문에 최우선적으로 토벌당하긴 했지만…… 가능하면 그런 일 자체가 없는 편이 좋지.’

만약 화천태도의 존재가 알려진다면 인형사는 물론이고 다른 녀석들에게도 노려질 가능성이 있다.

루트비히의 영역인 바벨 안에서 어떻게 화천태도를 빼앗아 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전에 대비해두는 것이 좋으리라.

‘수리 방법을 몰랐으면 이렇게 고민할 필요도 없을 텐데 말이야…….’

불행인지 다행인지 화천태도를 수리할 방법을 보자마자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혔다. 다만 그것을 위해서는 몇 가지 필요한 준비물이 있었는데…….

우우웅─

이어지려는 생각을 끊어내는 진동. 휴대폰을 꺼내든 이세훈은 도착한 메시지를 읽어보았다.

[이전에 이야기했던 토벌 연습. 이번 주말이 아니면 힘들 것 같은데 시간 괜찮으십니까? 답장 부탁드립니다.] - 류은하

이전에 류은하와 약속했던 토벌 연습. 그 내용을 읽어본 이세훈은 잠시 생각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수리할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구해둘까.’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 결정을 내린 이세훈은 곧장 답장을 보냈다.

[바로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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