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51화
“들어와.”
먼지 한 톨 보이지 않는 깔끔한 내부.
사람이 사는 집보다는 모델하우스를 방불케 하는 제이크의 숙소에 이세훈은 신기한 표정으로 둘러보았다.
“뭐야. 나 온다고 청소했어?”
“이 정도면 평범하지 뭘…… 마실 거라도 좀 줄까?”
당장에라도 부엌에 들어갈 것 같은 제이크의 모습에 이세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물건부터 보자. 어디에 있어?”
“저쪽 방에 있어. 따라와.”
제이크가 안내한 방으로 들어온 이세훈은 내부를 보고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벽면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장식장. 안쪽에는 여러 광석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는데 거기에는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었다.
“여기 있는 광석들. 다 네가 움켜쥔 거냐?”
“뭐…… 그렇지.”
머쓱한 표정을 짓는 제이크의 모습에 이세훈이 다시금 장식장에 놓인 광석들을 살펴보았다.
손으로 꽉 움켜쥔 찰흙처럼 뭉개진 광석들.
그중에는 튼튼하기로 유명한 영웅 등급 광석도 꽤 있었는데 하나도 예외 없이 제이크의 손에 쥐어 짜인 상태였다.
‘이만한 광석들도 못 견딘 건가…… 역시 일반 광석은 상성이 안 좋네.’
장식장 안에 어떤 재료들이 있는지 모두 훑어본 이세훈은 그제야 방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물건을 발견했다.
푸른색 물이 3분의 2 정도 채워져 있는 새하얀 대야. 마석을 액화시켜서 만들어낸 마석액이었는데 얼핏 봐도 농도가 진해 보였다.
‘이 정도면 한 2억 정도는 하겠구만.’
누가 명문가 출신 아니랄까 봐 주문한 그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준비를 해뒀다.
마이어스 가문의 재력을 다시금 확인한 이세훈은 대야에 다가가 안에 잠겨 있는 물건을 살폈다.
“흐음…….”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주먹만 한 푸른색 구슬.
마석액의 마력을 빨아들이면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겉보기에는 커다란 반딧불처럼 보였다.
‘나쁘지 않네.’
겉보기에는 합격. 나머지는 직접 확인하기로 한 이세훈은 오른쪽 소매를 걷어 올린 다음 대야에 손을 집어넣었다.
우우웅!
손이 닿기 무섭게 빛을 흩뿌리며 요동치는 마석액. 이세훈의 체내 마력에 반응한 것이었는데 그 모습에 제이크가 당황하며 손을 뻗었다.
“잠깐……!”
이대로라면 전에 자신이 아무 생각 없이 손을 집어넣었을 때처럼 사방으로 마석액이 튀어서 못 써먹게 된다.
제이크가 재빠르게 이세훈의 손을 빼내려던 그 순간.
“어…… 어?”
튀어 오르기는커녕 언제 요동쳤었냐는 듯 어느덧 잔잔하게 가라앉은 마석액.
이세훈이 손을 휘적거리든 말든 변함없는 그 모습에 제이크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설마, 손을 넣자마자 마석액에 맞춰서 체내의 마력을 조정했다고?’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마석액을 다뤄본 경험이 많거나 천부적인 감각을 지닌 게 아니라면 쉽지 않은 대응법.
‘마석액의 가격대를 생각해 보면 경험이 많았을 리는 없는데…… 저걸 진짜 감으로 하다니.’
제이크가 속으로 감탄하며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을 때. 대야에서 푸른색 구슬을 꺼낸 이세훈이 정보를 확인했다.
[워터 골렘의 핵]
[등급 : 희귀] [품질 : 최상]
자연적으로 생성된 워터 골렘의 동력원.
흡수한 마력을 사용하여 토벌된 워터 골렘의 육체와 동일한 강도를 지닌 특수액체를 생성해냅니다.
*소모된 마력 양만큼 특수액체를 생성합니다. 현재 등급 : 「D」.
*현재 충전된 마력 : 100%
“음. 좋네.”
흠집도 없고 마력도 빈틈없이 꽉 들어차 있다. 이세훈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자 옆으로 다가온 제이크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근데 이걸로 검은 어떻게 만드는 거야?”
워터 골렘의 핵은 범용성이 뛰어나 건설 재료나 연금술, 사역마 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 사용되지만 무구제작에 한해서는 잘 쓰이지 않았다.
내부에 만들어져 있는 마력회로의 내구도가 너무 약한 탓에 제련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망가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못 써먹고 조금 숙성을 해야지.”
“숙성?”
“기다려봐.”
워터 골렘의 핵을 이리저리 살피던 이세훈은 왼손의 검지를 펼친 다음 백광류를 사용했다.
스스스─
손가락 끝으로 흘러내리는 새하얀 예기. 조금 불안정해 보이는 형태에 이세훈이 정신을 집중했다.
‘좀 더 가늘게…….’
흘러내리던 예기가 조금씩 손가락의 끝으로 집중되며 균일한 형태를 이룬다.
검기는 아니지만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착각할 만큼 안정적인 형태. 예기를 적당히 가다듬은 이세훈은 곧장 워터 골렘의 핵을 향해 휘둘렀다.
샤악─
허공을 가르듯이 거침없이 움직이는 검지.
그 궤적을 따라 워터 골렘의 핵 겉 부분에 얇은 실선이 새겨졌고, 그것이 하나둘씩 겹쳐지며 복잡한 형태의 마법진으로 변해갔다.
“흠흠~”
“…….”
흥얼거리며 검지를 휙휙 휘두르는 모습만 보면 대충 하는 것 같지만 막상 결과물은 몇 날 며칠을 공들인 것처럼 엄청난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옆에서 직접 보고 있는데도 합성 같은 풍경에 제이크가 묘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마법진을 모두 새긴 이세훈이 백광류를 거둬들였다.
“음. 됐네.”
수많은 마법진이 복잡하게 새겨진 워터 골렘의 핵. 확인을 끝낸 이세훈은 곧장 대야의 마석액 안에 다시 집어넣었다.
키이잉─
마법진의 선을 따라 푸른색 마력이 차오르더니 대야에 담긴 마석액이 희미하게 요동치며 조금씩 투명해진다.
워터 골렘의 핵이 마력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었는데 그 모습에 제이크가 무언가 떠오른 듯 탄성을 내뱉었다.
“아! 이거 지금 과충전시키는 거지?”
마법진을 사용해 한계 이상으로 마력을 채워 넣는 기술.
품질이 떨어지는 재료를 사용할 때 자주 쓰이는 방식이었는데 마법진에 대한 조예와 재료에 대한 이해도가 필요한 상당히 까다로운 기술 중 하나였다.
“맞아. 100%로는 부족해서.”
“그런 거면 그냥 한 단계 높은 등급의 핵을 쓰는 게 낫지 않나? 잘못하면 과부하로 망가지잖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제이크의 모습에 이세훈이 씩 웃었다.
“보기나 해라.”
워터 골렘의 핵에 새겨진 마법진이 완벽히 차올랐을 때. 이세훈은 입안으로 마력을 끌어모아 언령부여를 사용했다.
“<성질동화>, <인식강화>”
쏘아진 언령이 마석액에 녹아내리듯이 사라지더니 이내 작은 기포가 되어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글자들이 마구 뒤엉켜 만들어진, 이론적으로는 해석할 가치조차 없는 난잡한 언령마법의 술식.
그 신비한 글귀들이 워터 골렘의 핵 내부로 스며들었고 잠시 후 마법진이 빛을 발하며 떨리기 시작했다.
“오른손.”
“……어?”
“오른손 내밀라고.”
“아. 미안. 여기.”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제이크가 뒤늦게 오른손을 내밀자 이세훈이 다시 한번 백광류를 끌어올려 검지 끝을 살짝 베어냈다.
톡─
대야 안쪽으로 떨어지는 제이크의 피.
마석액과 섞이지 않고 구슬처럼 밑으로 가라앉았는데 워터 골렘의 핵이 빛을 뿜어냄과 동시에 그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우우웅─
피를 흡수하며 희미하게 떨리는 워터 골렘의 핵. 겉보기에는 별다른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일순간 제이크는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방금 나랑 비슷한 느낌이…….’
단순히 마력이 비슷하다는 것이 아니라, 몸의 일부를 본 것처럼 기묘한 동질감.
난생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제이크가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이세훈이 손가락 끝으로 피를 쭉쭉 짜내며 이야기했다.
“앞으로 일주일간 하루에 한 번씩 이렇게 마석액에다가 피를 떨어뜨리면 돼. 양은 워터 골렘의 핵이 그만 빨아들일 때까지. 평균적으로는 하루 10ml쯤 필요할 텐데 그날마다 다를 수도 있으니 매일 직접 해.”
“이게 정확히 어떤 작업인데?”
“설명하자면 복잡한데 간단히 말하자면…… 속임수지.”
“속임수?”
의아해하는 제이크의 표정에 이세훈이 피를 떨어뜨리는 손을 가리켰다.
“네가 가진 비정상적인 악력……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마력을 사용한 압축 현상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아. 무의식중에 발동되는 거라 본능에 가깝거든.”
“그런…….”
“그래서 굳이 어렵게 통제하기보다는 그걸 피해갈 수 있는 예외, 네 육체를 이용해 속이기로 한 거야.”
진짜 악력이라기보다는 조건부로 발동되는 ‘스킬’을 회피하는 방식. 그럴듯한 이세훈의 설명에 제이크가 홀린 듯이 설명을 들었다.
“이렇게 피를 흘려 넣어서 동화시키면 무구를 네 몸의 일부라고 착각하게 만들 수 있거든.”
“몸의 일부…….”
“물론 진짜로 몸의 일부가 되는 건 아니야. 그런 느낌만 내는 건데 지금은 그 정도로도 충분히 가능할 거야.”
만약 제이크의 악력, 고유스킬로 추정되는 저 힘이 제대로 각성하면서 위력이 더 강해진다면 못 견딜 가능성이 높겠지만 그건 또 그때 가서 해결할 일이다.
이세훈의 설명에 곰곰이 생각하던 제이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일리가 있네.”
“당연하지. 그래서 더 궁금한 점은?”
“지금은 없어. 어차피 일주일 뒤에 보게 될 테고.”
다른 사람이었다면 뒤에 있을 제작과정까지 모두 들었겠지만, 제이크는 방금 이야기로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듣는다고 한들 기존과 전혀 다른 방식이니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도박이나 다름없어.’
기존에 없던,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방법.
의뢰인 입장에서는 충분히 불안한 이야기였지만 제이크는 의외로 걱정이 들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눈앞의 이세훈이라면 지금처럼 아무렇지 않게 무구를 완성해낼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어떻게 만들어질지 기대되네.”
생일선물을 앞둔 어린아이처럼 두 눈을 반짝이는 제이크의 모습에 이세훈이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이대로 계속하고 있어. 10ml 진작 넘긴 거 같은데 아직도 계속 떨리는 거 보면 좀 많이 필요한가 보네.”
“알았어. 안 떨릴 때까지지?”
“그래. 나는 수업 있으니까 이만 간다.”
이세훈이 밖으로 나갔고 방에 홀로 남은 제이크는 손가락 끝으로 피를 떨어뜨리며 대야에 잠긴 워터 골렘의 핵을 내려다보았다.
“얼마나 더 있어야 하지…….”
평균 10ml 정도라고 했으니 조금만 더 하면 되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며 제이크가 떨어지는 피를 바라보았고.
“……어?”
우우웅─
30분이 지나도 워터 골렘의 핵이 멈추지 않았다.
* * *
‘제이크 그놈…… 보기보다 고집이 센가 보네.’
보르시파 구역으로 돌아온 이세훈은 방금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동화과정은 본인의 성격에 따라 과정이 달라지는데 보통 고집이 강하면 강할수록 동화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즉, 평소에 여기저기 끌려다니지만 실제 제이크의 고집도 상당하다는 뜻이었다.
‘이건 나중에 인연석 만들 때도 참고해야겠어.’
이번에는 조금 애매해서 추출을 미뤘지만 일주일 동안 기대에 부풀어 있다면 어느 정도 쓸 만한 인연석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제련학부 본관에 도착했고 이세훈은 곧장 김인철의 수업이 열리는 강의실로 향했다.
‘생각보다 강의실 입지가 썩 좋지는 않네.’
바벨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지원을 많이 받는다길래 당연히 좋은 위치에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구석진 곳에다 크기도 작아 보였다.
김인철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강의를 듣는 생도들이 적으니 그냥 작은 강의실을 고른 것이 분명하리라.
‘허세나 이런 게 없는 건 좋은데…… 수업에도 돈을 아끼려고 하면 좀 곤란한데.’
이세훈이 이 수업을 고른 가장 큰 목적은 루트비히의 관심과 막대한 예산을 타 먹는 것. 그렇기에 김인철이 쓸데없이 절약 정신을 발휘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걸림돌이었다.
썩 좋지 않은 첫인상에 이세훈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안으로 들어갔고.
“끄응…….”
“으윽…….”
“으음…….”
각종 도구를 붙잡은 채 노려보고 있는 다섯 명의 생도들이 눈에 들어왔다.
“…….”
검과 방패. 곡괭이와 삽.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라이팬.
가지각색의 도구를 손에 쥔 채 노려보는 생도들의 모습에 이세훈이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무구의 근원이라는 주제 자체가 워낙 난해하다 보니 수업도 평범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자신의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이세훈이 헛웃음을 지으며 바라보고 있을 때. 뒤쪽에서 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김인철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 어서 오게. 몸은 좀 괜찮아졌는가?”
“예. 이제 완전히 나았습니다.”
“그렇다니 다행이군. 한번 찾아갈까 싶었는데 학기 초라 그런지 영 시간이 안 나서 말일세. 미안하게 됐네.”
머쓱해 하는 김인철의 모습에 이세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어차피 큰 상처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강의실을 슬쩍 돌아본 이세훈이 김인철을 바라보았다.
“저건 뭐 하고 있는 겁니까?”
“아. 그러고 보니 자네는 아직 한 번도 강의를 안 들었군. 설명해 줄 테니 이쪽으로 오게나.”
교수가 들어왔는데도 생도들은 눈길도 주지 않고 손에 들린 도구에 집중했고 김인철 역시 그 모습에 신경 쓰지 않고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맨 앞자리에 앉게 된 이세훈은 자신의 앞에 선 김인철을 바라보았다.
“무구근원학이란 이름 그대로 우리가 만들어내는 무구의 근원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며 담아낼 수 있는지를 배우는 수업일세.”
강의실 한쪽에 놓인 장검 한 자루를 들고 온 김인철은 이세훈에게 보란 듯이 앞으로 내밀어 보였다.
“이 검으로 예를 들어보지. 자네는 이걸 제련한 대장장이가 무슨 의도를 담아 만들어낸 것 같은가?”
“……찌르기에 특화시켰네요. 무게중심을 보니 오른발을 저는 사람을 위해서 만든 것 같습니다.”
검을 힐끗 보며 곧장 대답하는 이세훈의 모습에 김인철이 살짝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어느 정도 맞추지 않을까 싶긴 했네만…… 대단하군.”
“실력이 뛰어날수록 겉으로도 드러나니까요.”
“흠. 그럼 그 이외에도 어떤 의도가 더 있는지 알아볼 수 있겠나?”
김인철에게 검을 건네받은 이세훈은 검날부터 손잡이. 그리고 그 안에서부터 느껴지는 감정을 읽어내며 대답했다.
“이 검의 주인이 누군가를 죽이지 않기를 원한 것 같네요.”
“……이유는?”
“검날이 상당히 무디게 만들어져 있는데 그에 반해 검의 중심 자체는 훌륭하게 잡혀 있습니다. 관리 부실보다는 의도적으로 보이는데…… 보통 마지못해 만들어주는 사람이 이렇거든요.”
검의 주인이 누군가를 해치는 것을 원치 않지만, 그렇다고 싸우다가 검이 부러져 죽는 것 또한 원치 않는 어중간한 검.
이세훈의 설명에 김인철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검이라는 도구가 지닌 의도는 보통 무언가를 베어내는 것이지만, 누가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또 변할 수 있지.”
검을 돌려받은 김인철은 무딘 검날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래서 결국 이 검의 근원은 검이라는 무구 자체가 지닌 ‘살의’인가. 아니면 이것을 만들어낸 대장장이가 바란 ‘불살’인가. 이것을 고찰하는 게 내 수업일세.”
“그렇군요…….”
김인철의 설명에 이세훈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회귀 전에 접했던 무구의 근원이란 학문은 그저 막연하게 모든 무구를 관통하는 근원이 존재하며 그것을 찾아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김인철이 가르치는 것은 좀 더 세밀하고 현실성 있는 고찰이었는데 이세훈은 이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탁상공론보다야 소소해도 가능성 있는 게 낫지.’
조금 어려워서 그렇지 숙달되면 실용성도 있었기에 조금만 더 체계가 잡히면 상당히 유용한 분야가 될지도 모른다.
이 이외에는 과연 어떤 식으로 수업을 진행할지 이세훈이 기대감이 생겨나던 그때.
“그런데 자네가 이번 학기 수업을 벌써 끝내 버렸군.”
김인철이 난감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예?”
“이번 학기 동안 가르칠 내용이 무구에 담긴 뜻을 읽어내는 거였네. 그래서 다들 저렇게 쳐다보고 있었던 거고.”
뒤쪽을 가리키는 김인철의 손짓에 이세훈이 뒤를 돌아보았다.
“…….”
“…….”
손에 들린 무구에서 눈을 떼고 멍한 표정을 짓는 다섯 명의 생도들.
그 반응에 이세훈은 자신이 진도를 너무 앞서 버렸음을 깨닫고 다시금 김인철을 바라보았다.
“……그럼 어떻게 됩니까?”
“뭐, 별거 있겠나.”
이세훈의 물음에 김인철이 허허 웃으며 대답했다.
“이번 학기는 만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