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48화
“후우…… 후우…….”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숨을 헐떡이는 이세훈.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그 모습에 루이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렇게 된 걸까.
처음 본 이세훈의 지친 모습에 루이제가 말을 잇지 못하고 있자 이세훈이 방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다른 건…… 없나.’
이 이상 수작을 부리는 건 아무래도 위험하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다른 함정이 없음을 확인한 이세훈은 한숨을 내쉬며 루이제의 곁으로 다가갔다.
털썩─
바닥에 주저앉은 이세훈은 벽에 등을 기댄 채 쓰러져 있는 루이제를 바라보았다.
“뭐 하냐?”
“뭐?”
“대련 전에 한숨 자려고?”
“……윽!”
자신의 상태를 깨닫고 황급히 몸을 일으키며 앉는 루이제. 그 재빠른 반응에 이세훈이 피식 웃다가 물었다.
“아까 이상한 이명 같은 거 들렸었지?”
“……어떻게 알았어?”
“나도 들렸거든. 저쪽에서 준비한 물건 같은데 방금 부수고 오는 길이야.”
이세훈의 설명에 루이제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체내에 침식해 있는 마력을 자극해서 스스로에게 정신계열 저주를 걸게 만드는 물건이었는데 트라우마를 건드리더라고. 덕분에 고생 좀 했지.”
“트라우마…….”
왜 갑자기 목에 감긴 붕대가 신경 쓰였나 했더니 그때부터 저주에 휩쓸려 발작을 일으켰던 모양이다.
진상을 깨닫게 된 루이제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거였나…….”
외부에서의 개입이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분통을 터뜨릴 상황이었지만 루이제는 그다지 화가 나지 않았다.
트라우마와 마주치게 하는 것은 적들의 수작이었지만,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도망쳐 버린 것은 순전히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한심하지 않아?”
“뭐가?”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그 녀석들의 수작에 놀아나서 이러고 있다는 게.”
바닥을 나뒹굴면서 머리는 다 헝클어졌고 붕대는 엉망진창으로 목을 조르고 있었으며 어디서 긁혔는지 왼손에도 상처가 나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한심하기 짝이 없는 모습에 루이제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처럼 우울해하는 게 녀석들이 노림수라는 건 알거든? 나도 아는데…… 뭔가 다잡아지지가 않네.”
자기암시의 무서움은 쌓아 올린 것이 한 번이라도 무너지는 순간. 그 잔해에 짓눌려 다시 일어서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무릎을 감싼 채 힘없이 앉아 있는 루이제. 그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던 이세훈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한심하긴 하네.”
“……그렇지?”
“싸우기도 전에 쫄아 가지고 벌벌 떨고 있는데 대견해 보이면 그게 이상하니까.”
“그래…….”
“솔직히 말하면 좀 깬다고 해야 하나. 복수하기 전에는 울지도 않겠다고 그렇게 호언장담을 하더니 그새 풀 죽어서 침울하게 있는 게 좀…… 그 얄팍하지?”
“…….”
“뭐. 어리니까 그럴 수 있다지만 사람이 한 번 내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지. 언령마법을 사용하는 사람은 특히 그런 부분이 중요한데 벌써부터 어기는 걸 보면…… 에휴 아니다. 너도 힘들 텐데.”
꾸욱─
이세훈의 신랄한 평가가 계속되자 루이제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리며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모습에 말을 멈췄겠지만 이세훈은 오히려 측은하게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근데 너무 실망하지 마라. 나처럼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완벽하게 성장한 사람이 아니면 원래 힘들어. 어중간한 천재의 숙명이라고 해야 하나.”
“……그만.”
“네 나름대로 노력한 거니까 속상해하지 마라. 안 되는 걸 못했다고 욕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힘내서…….”
“그만해 이 재수 없는 새끼야!!!”
빠악!
끝없이 쏟아지는 핀잔에 기어코 눈이 돌아간 루이제가 이세훈의 팔뚝을 후려치며 그대로 달려들었다.
“애초에 천재니 뭐니 부추긴 게 누군데! 일주일이면 충분하다고 부추긴 것도 누군데! 멋대로 기대하고 멋대로 부추겼으면서 이제 와서 뭐? 한심해? 얄팍해? 어중간해?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뭐야!!!”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차마 말할 수 없었던 부담감과 불만들을 모조리 토해내듯 루이제가 목이 터져라 외쳤다.
“천재라고 할 때마다 얼마나 부담스러웠는지 알아? 그 괴팍한 훈련도 그래! 언령마법이란 걸 알려줬으면 처음부터 열심히 배웠을 거 아냐. 나 무안하게 만들려고 일부러 그런 거냐? 어?!”
“…….”
“매번 설명도 없이 멋대로 진행해놓고 자기가 언제 틀린 말한 적 있냐는 듯이 뻔뻔하게 쳐다보고. 사실 여부를 떠나서 설명부터 해주는 게 상식이잖아 이 개념 없는 새끼야!!!”
퍼억! 빠악!
배에 올라타 가슴과 팔뚝을 마구 두들겨 패는 루이제. 소리만 요란하지 물렁하기 그지없는 주먹에 이세훈은 말없이 가만히 두들겨 맞았다.
그리고 주먹이 더욱더 느려져 토닥이는 수준이 되었을 때. 떨리는 손으로 멱살을 움켜쥔 루이제가 거칠어진 숨을 내뱉었다.
“하아…… 하아…… 재수 없는 새끼…… 개 같은 새끼…….”
이런 상황에서도 뭐가 문제냐는 듯이 올려다보기만 한다. 그 재수 없는 모습에 루이제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저 모습을 볼 때마다 자신이 더 추하게 느껴졌고 이 모든 상황이 자신이 잘못한 것처럼 느껴졌다.
‘왜 나만…….’
어째서 자신만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하는가. 그 억울함에 루이제는 충동적으로 소리쳤다.
“내가 지면…… 잘못되면…… 전부 네 탓이야…… 다 네 탓이라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이에게 이만큼 배은망덕한 이야기가 있을까. 자신이 내뱉고도 자괴감이 느껴지는 외침에 루이제의 표정이 일그러지던 그때.
“그래. 내 탓이야.”
이세훈이 기다렸다는 듯이 수긍했다.
“……뭐?”
“네가 지면 다 내 탓이라고.”
한결 차분해진 루이제와 두 눈을 마주 본 이세훈은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언령마법을 가르친 것도, 무기를 만들어준 것도, 대련을 내보낸 것도 모두 내가 한 일이야.”
“…….”
“그렇다면 잘못된 책임도 당연히 나한테 있지. 왜 너한테 있다고 생각하는데?”
예상치 못한 이세훈의 물음에 루이제가 입술을 달싹이다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건…… 내가 선택한 일이니까…….”
“틀렸어.”
루이제의 말을 잘라낸 이세훈이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약속했고, 너는 받아들였지. 그러니까 네가 책임져야 할 건 하나밖에 없어.”
멱살을 붙잡은 손을 감싼 이세훈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푸른색 눈동자를 올려다보았다.
“나를 끝까지 믿고 최선을 다할 것.”
“…….”
“그 이외에는 모두 내가 책임질 것들이야.”
이야기가 끝나고 두 사람의 눈동자만이 계속해서 서로를 응시한다.
힘겹게 떨리던 푸른색 눈동자가 무언가를 엿본 듯 천천히 잦아들었고 이내 꾹 다물어졌던 루이제의 입이 열렸다.
“구라치지 마. 그딴 놈한테 지냐고 뭐라 했을 거면서.”
“……아닌데?”
“말은 잘해요. 말은.”
뻔뻔하기 그지없는 이세훈의 얼굴에 루이제가 피식 웃고 있을 때. 대기실의 스피커에서 안내음이 울려 퍼졌다.
-5분 뒤 게르윈 크루거 생도와 루이제 발렌트 생도의 대련이 시작됩니다. 양 생도는 경기장으로 입장해서 대기해 주시길 바랍니다.
대련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안내음. 그에 루이제는 멱살을 놓아주고 배에서 내려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에서 볼 거야?”
“나? 관객석에서 볼 생각이었는데.”
“올라가지 마.”
“왜?”
이세훈을 지나친 루이제가 문을 열며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그 전에 끝날 테니까.”
언제 풀 죽었냐는 듯 자신감으로 가득 찬 모습. 익숙한 그 뒷모습에 이세훈은 자신도 모르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곧 뒤따라갈게.”
“먼저 간다.”
대기실에서 나온 루이제는 곧장 경기장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복도. 예전이라면 이 적막함이 두려웠겠지만, 지금은 저 너머로 보이는 빛밖에 보이지 않는다.
두근─!
심장이 격렬하게 뛰고 온몸이 후끈 달아오른다. 전신의 감각이 날카롭게 곤두서는 와중에 루이제는 목 언저리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걸리적거리네.”
이제 피도 안 나는데 왜 이런 걸 감고 다녔을까.
목에 감긴 붕대를 단숨에 풀어낸 루이제는 때마침 상처가 난 왼손에 대충 둘러맸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자신의 목을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지워지지 않을 만큼 깊이 새겨진 흉터.
하지만 생각한 것보다 작았고 아프지 않았다.
‘이 정도였구나.’
보기 흉하겠지만, 그냥 그뿐이었다.
더 이상 자신에게 아무런 고통도 주지 못하는 흉터에서 손을 떼어낸 루이제는 복도를 벗어나 경기장으로 거침없이 걸어 들어갔다.
와아아아아─!
쏟아지는 함성과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조명.
1,000명이 넘는 생도들이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 선명히 느껴진다.
어쩌면 저 사이에 자신의 적이 있을지도 모르며, 언제 어떤 방식으로 습격해 올지도 모른다.
‘아무렴 어때.’
어떻게 습격해 오든 자신은 그저 최선을 다해 받아치면 그만이다. 주변의 시선을 흘려넘기며 루이제는 저 멀리 자신의 맞은편에 서 있는 청년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이군.”
갈색 머리칼에 거만한 표정을 하고 있는 머저리, 게르윈 크루거가 검은색 지팡이를 손에 쥔 채 한탄했다.
“반년 전에 큰 교훈을 줬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무모하게 덤비다니. 한때나마 경쟁했던 라이벌로서 참 안타깝네.”
“…….”
뭐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한 게르윈의 모습에 루이제는 말없이 바라보았다.
기억 속에서는 좀 더 크고 엄청난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지만, 이제 보니 키도 비슷하고 몸도 얄팍한 게 돈을 처발라서 강해졌다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그때의 부상에 대해서는 나도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언데드나 꺼내.”
“뭐?”
즉 이 상황에 대해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아무것도 못 하고 쪽팔리게 실려 나가기 싫으면.”
전혀 질 것 같지가 않다는 것이다.
“…….”
두 사람의 대화가 증폭기를 통해 경기장 전체에 퍼졌다.
곳곳에서 자그맣게 들려온 비웃음에 게르윈은 손에 들린 검은 지팡이, 영웅 등급 무구 ‘망자의 안식’을 꽉 움켜쥐었다.
스스스─
그 뜻에 반응하듯 주변으로 퍼지는 검은 안개.
마력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언데드의 강화. 그리고 지배력을 높이는 물건으로 사령계열의 영웅들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살려고 할 만큼 강력한 물건이었다.
“그래. 전력을 원한다면 그렇게 해줘야지.”
반년 동안 재활이나 하던 상대에게 영웅 등급 무구까지 사용해서 이겨봐야 좋은 소리는 못 듣겠지만, 이제 그딴 건 아무래도 좋다.
‘네가 자초한 일이다.’
귀기 서린 눈으로 루이제를 노려본 게르윈은 힘차게 망자의 안식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기기기긱─
소름 끼치는 귀곡성과 함께 검은 마력이 늪처럼 경기장의 3분의 2를 뒤덮었고 이어서 허공이 살짝 벌어지며 아공간으로부터 게르윈의 언데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스켈레톤들부터 시작해 생전에 육체를 고스란히 지닌 짐승형 키메라들. 거기에 3m에 육박하는 좀비골렘까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언데드들의 모습에 경기장이 웅성거렸다.
“강화 스켈레톤이 30마리라고……?”
“저 키메라 한 마리가 몇천만 원이라는데. 진짜 돈으로 싸우네…….”
“좀비골렘은 아예 속성계열 몬스터들만 사용해서 만든 거 같은데. 마법사가 저걸 상대할 수 있나?”
기본 수천에서 많게는 수십억을 사용한 값비싼 언데드들이 게르윈의 앞에 몰려나와 진형을 갖췄다.
사용된 자본이나 내구도로나 성벽에 버금가는 언데드 군단. 그 모습에 경기장 곳곳에서 감탄이 흘러나왔고 게르윈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반년 동안 놀고만 지냈던 건 아니라서 말이야.”
이전에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마법에 대응하지 못해서 질 뻔했었지만 망자의 안식에 원소저항력을 지닌 좀비골렘도 있으니 압도적으로 짓밟을 수 있을 것이다.
기세등등해 하는 게르윈의 모습에 루이제는 별다른 말없이 자신의 아공간 포켓의 버튼을 눌렀다.
툭─
손 위로 나타난 자신만의 무기인 ‘바르그’.
눈앞의 대군에 비한다면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루이제는 그것을 쥔 것만으로 조금 남아 있던 긴장감까지 떨쳐냈다.
“후우.”
모두에게 자랑하듯 자신의 손에 들린 바르그, 검은 초커를 목에 가져다 댄 루이제는 곧장 잠금장치를 걸었다.
찰칵─
은색 버클에 검은색 몸통을 지닌 깔끔한 디자인의 초커.
공중에 떠 있는 화면을 통해 목에 나 있는 흉터가 깔끔하게 가려진 것을 본 루이제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쓸데없이 섬세하다니까.’
불편함보다는 묘한 따뜻함이 느껴지는 바르그의 감촉에 루이제가 조심스레 쓰다듬고 있을 때. 맞은편에 서 있던 게르윈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비장의 무기인가? 무슨 개목걸이도 아니고…….”
마력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자신의 손에 들린 망자의 안식과 비교하면 같은 무기라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모욕일 정도로 보잘것없었다.
노골적으로 비웃는 게르윈의 모습에 루이제는 물끄러미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이번에 새로 사귄 친구가 한 명 있거든.”
“……?”
“그 녀석이 밑도 끝도 없이 너는 무조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데…… 처음에는 무슨 개소리인가 싶더라고.”
언령마법은 사용자의 심상이 명확할수록 위력이 강해진다.
이세훈에게 매일같이 듣던 말이지만, 루이제는 그것을 제대로 실감할 수가 없었다.
이론과 계산으로 이뤄진 마법만을 배워오다가 하루아침에 그런 감정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받아들이기가 어디 쉽겠는가.
“근데 이제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우우웅─
루이제의 주변으로 요동치기 시작하는 마력.
강한 의지에 마력이 반응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은 그 규모가 달랐다.
쿠구구궁───!
수천 명을 수용하고도 남을 무학관의 경기장 내부가 단 한 사람의 의지에 반응하여 격렬하게 울린다.
피부로 직접 느껴지는 거대한 마력의 진동. 그리고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루이제의 무시무시한 적의에 게르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뭐…….”
어떻게 일개 생도가, 그것도 반년이나 병원에 처박혀있던 환자가 이만한 수준의 마력감응을 일으킬 수 있단 말인가.
마치 마력과 완전히 ‘동화’된 것 같은 모습.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게르윈이 이를 악물며 루이제를 노려보았다.
“무슨 수작을……!”
“지난 반 년간. 이 순간만을 떠올렸어.”
악몽 때문에 발작을 일으켰을 때도, 재활 중에 목을 찢어질 것처럼 아파 왔을 때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가 버리고 싶을 때도 루이제는 단 하나만을 생각하며 버텼다.
자신의 목을 이렇게 만든 녀석들을, 자신의 인생을 가지고 놀았던 개자식들의 목덜미를 반드시 똑같이 찢어발기고 말겠다는 일념.
그 어떤 마법의 형태보다도 선명하게 새겨진 심상을 되새기며 루이제가 바르그의 버클을 가볍게 눌렀다
키리릭─
검은색 초커로부터 얇은 철판이 올라와 순식간에 루이제의 입을 덮으며 힘차게 맞물렸다.
카앙!
그리고 나타난 것은 검은 이빨. 눈 깜짝할 사이에 나타난 금속 마스크에 관객석이 술렁였다.
난생 처음 보는 형태의 물건이라는 것도 있지만 그것을 장착한 순간 루이제의 분위기가 더욱 사납게 변했기 때문이다.
우우우웅───!
방금까지가 단순히 호응이었다면, 이제는 경기장에 퍼진 마력 전체가 게르윈을 향해 적의를 드러낸다.
“이, 이건…… 말…… 말도 안 돼…….”
거대한 짐승의 입안에 들어온 감각. 그 형용할 수 없는 불쾌감과 두려움에 게르윈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떨렸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그것을 깨달았지만 상황은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3
양측의 준비가 끝나며 시작된 카운트 다운.
자신의 입을 뒤덮은 검은 이빨을 쓰다듬은 루이제가 푸른 안광을 흩뿌리며 게르윈을 바라보았다.
-2
“부탁할게.”
그리고 숨김없이 자신의 진심을 담아 게르윈에게 이야기했다.
-1
“오래 버텨줘.”
자신보다 수십 배는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겠노라고.
-시작!
“당장 죽여!!!!!!”
경기장의 중앙을 가로막던 방호막이 풀린 순간. 게르윈은 발작하듯이 망자의 안식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그 외침에 언데드들이 기껏 쌓은 대열을 무너뜨리고는 저마다의 무기를 치켜들며 루이제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든다.
아무런 마법도 준비되지 않은 루이제와 모든 전력을 소환해둔 게르윈. 누가 우위에 서 있는지는 명백했으나.
【Set─】
루이제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우우웅─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언령.
불완전하게 육성이 섞이지 않은, 순수하게 마력으로만 형성된 의지가 경기장의 마력을 장악하고 심상을 재현해낸다.
채앵!
가장 먼저 달려오는 스켈레톤의 목에도, 그 뒤를 따르는 키메라의 목에도, 육중한 걸음을 옮기는 좀비골렘의 목에도 붉은빛으로 빛나는 마법진이 목줄처럼 생겨났다.
“뭐…….”
그 모습에 게르윈이 무어라 말하려던 순간.
【Death Bite】
무형의 이빨이 모든 것을 물어뜯었다.
카아앙─!
강철이 맞물리는 듯한 쇳소리와 함께 수십 개의 머리가 하늘 위로 떠올랐다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쿠구궁! 콰앙!
달려가던 그대로 중심을 잃고 경기장 바닥에 널브러지던 언데드 군단.
처음의 웅장하던 기세는 어디로 가고 꼴사납기 그지없는 그 모습에 게르윈의 눈이 부릅 떠졌다.
‘말도…… 말도 안 돼.’
일격. 별다른 캐스팅과 마법진도 없이 그저 두 단어를 내뱉은 것만으로 자신의 언데드들이 모두 쓰러진 것이다.
압도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광경에 게르윈이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친 순간. 그 모습을 깨닫고는 이빨을 꽉 깨물었다.
‘아니, 아니야! 아직이다!!’
일반적인 소환수라면 모를까 언데드들이라면 자신의 마력으로 얼마든지 수복해서 다시 움직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게르윈이 망자의 안식을 사용해 자신의 마력을 다시금 끌어올렸고.
채앵!
그보다 빠르게 붉은 마법진이 게르윈의 목을 둘러쌌다.
카아앙──!
“컥─!”
목이 끊어지는 듯한 무시무시한 통증.
마력을 끌어올리고 뭐고 할 것도 없이 바닥에 넘어진 게르윈은 창백해진 얼굴로 자신의 목을 내려다보았다.
“허억…… 허억…….”
쩌저적─
전신에 착용한 장비들이 만들어낸 두꺼운 장벽.
원소학부의 3학년 학부 수석이 전력을 다한 마법도 가볍게 막아냈던 장벽이 방금 일격으로 절반 이상 파괴된 것이다.
‘장벽으로 막았는데도 이만한 통증이라니…….’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저 괴상한 마법에 당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머리를 잃은 채 쓰러져 있는 언데드들의 모습을 본 게르윈은 온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이상해…… 뭔가 이상하다고…….’
저 강함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그리고 상태를 약화시키겠다고 호언장담하더니 왜 저렇게 멀쩡하단 말인가.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자신을 돕는 것이 아니라 끊어내려 했던 것이 아닐까. 머릿속으로 피어나는 수많은 의문에 게르윈이 당황하고 있을 때.
“그 장벽.”
어느새 앞으로 다가온 루이제가 내려다보았다.
“꽤 튼튼해 보이네.”
“자…… 잠깐. 항…….”
【Set─】
채앵!
게르윈의 말이 이어지기 전에 전신에 수십 개의 붉은 마법진이 빽빽하게 채워진다.
그 끔찍하기 그지없는 광경에 게르윈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다 이내 애원하듯 루이제를 향했고.
【Revenge Bite】
마스크 너머로 입가를 비틀며 언령을 쏘아냈다.
콰득콰득콰득콰득!!!
무형의 이빨이 게르윈을 셀 수 없이 난도질했고 방벽과 장비가 박살 남과 동시에 전신이 잘근잘근 씹혀졌다.
몸이 잘려나가지만 않았을 뿐. 엄청난 압력에 전신의 뼈가 부서지고 근육과 마력회로가 으깨진다.
“────!!!!!”
본래라면 대련이 중단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충격량이었지만 동력실에서 발생된 ‘우연한’ 고장이 그 반응을 1초 정도 느리게 만들었다.
터엉─!
그리고 뒤늦게 발동된 경기장의 방호장치가 루이제의 마법을 막아냈을 때.
“쿨럭…… 커흑…….”
경기장의 위에는 숨만 겨우 붙어 있는 무언가만이 처참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승자 루이제 발렌트]
무학관의 대련 시스템이 승자를 선언했지만 처음과 같은 함성은 없었다.
기존에 알려져 있는 언령마법들과는 차원이 다른 위력과 잔혹함에 모두가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적막 속에서 루이제는 말없이 자신을 비추고 있는 카메라를 바라보았고.
“나한테 시비 거는 새끼들은 다 이렇게 될 줄 알아.”
흠잡을 곳 없는 복귀식을 끝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