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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46화 (46/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46화

[도전을 받아들이겠다.]

게르윈이 도전을 수락했을 때쯤. 이미 반년 전의 사건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만큼 널리 퍼졌다.

그때 당시야 그런 일이 있었다 정도로 끝났지만 지금 와서 살펴보니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냥 특기생 선발전 시기랑 우연히 겹쳤던 거 아니야?”

“그 일만 아니었으면 루이제 그 사람이 받았을 텐데? 그리고 그때 폭발한 무기 만든 사람이 비에르 바르무트라잖아. 크루거 가문이랑 협력 관계인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인데…….”

“크루거나 바르무트나…… 들리는 소문으로 생각하면 진짜 모를 일이지.”

처음에는 작은 의혹이었지만 사람들의 입을 타고 넘어갈수록 그 크기가 점점 커져간다. 그리고 마침내 바벨을 넘어 바깥으로도 흘러갔고.

-쯧. 한심한 놈.

게르윈의 본가인 UD그룹에서도 그 소문을 접했다.

-그런 별 볼 일 없는 녀석 하나 제대로 처리 못 해서 구설수를 만들어? 집안 이름에 먹칠을 해도 정도가 있지.

전화기 너머로 짜증스럽게 이야기하는 사내, 3번째 아들인 다니엘 크루거의 비난에 게르윈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죄송합니다…… 형님.”

-우리가 개입해 봐야 괜히 일만 더 커지게 될 테니 네가 알아서 해결해라. 알겠어?

“……알겠습니다.”

-멍청한 놈 같으니…….

뚝─

차갑게 전화가 끊어지고 휴대폰을 쥐고 있던 게르윈의 손이 꽉 움켜쥐어졌다.

파각!

손안에서 단숨에 부서져 버린 휴대폰. 그래도 가라앉지 않는 분노에 게르윈은 고개를 숙인 채 낮게 깔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위르겐의 3번째 아들인 다니엘의 나이는 올해로 73세.

사실상 할아버지와 손자의 관계라 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 간의 그런 화목한 교류는 없었다.

나이를 떠나 UD그룹의 수많은 계열사를 두고 다투는 정적. 그렇기에 지금 다니엘에게 이번 사건은 게르윈을 쳐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밖에 보이지 않으리라.

‘아버지께서 도와주신다면 단숨에 해결될 텐데…….’

UD그룹의 총수이자 세계에 몇 없는 완등자. 그 위르겐 크루거가 직접 움직인다면 이런 사소한 일 정도는 가볍게 해결할 수 있겠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나설 일이 없었다.

오히려 이 정도 일도 혼자서 해결하지 못하고 손을 벌렸다고 자신에 대한 평가를 낮추며 그만큼 재산과 권한을 회수해가리라.

“빌어먹을…….”

분명히 잘 해결됐을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됐단 말인가.

게르윈이 주먹을 꽉 움켜쥔 채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을 때. 노크도 없이 문이 열리며 한 청년이 들어왔다.

“게르윈.”

금발을 깔끔하게 넘긴 올백 머리에 굵직한 인상의 청년. 생도답지 않은 중압감을 지닌 그 모습에 게르윈이 입가를 비틀었다.

“이게 누구야. 내 절친한 친구인 비에르 바르무트잖아?”

“…….”

“그래. 갑자기 무슨 일이지? 우리 둘이서 반년 전에 그 버러지를 정리한 게 사실이라고 주변에 알려주고 싶어서 온 건가? 응?”

게르윈의 비아냥거림에 금발의 청년, 비에르 바르무트는 아무런 말 없이 응시했다.

그 모습에 게르윈의 미소가 점점 일그러지더니 이내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뭐라고 말이라도 해봐 이 멍청한 새끼야. 감옥에 처넣고 퇴학시켜서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었던 계획을 바꾼 게 너였잖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찰스 교수의 뜻이었나?”

본래 게르윈은 뒤탈이 없도록 루이제를 바벨에서 완전히 치워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비에르가 찰스 교수로부터 제안을 받으면서 고소를 취하했고, 그 결과 상황이 여기까지 틀어진 것이다.

그때는 자신에게도 득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받아들였지만 상황이 이렇게 됐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날카로운 게르윈의 시선에 비에르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건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군. 내 실수다.”

“나는 그딴 쓸데없는 대답을 들으려고 물어본 게 아니야.”

비에르의 앞으로 걸어간 게르윈의 검은 마력으로 일렁이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당장 해결책을 내놔. 너도 같이 계승권 밖으로 끌려가고 싶지 않다면.”

바르무트 가문의 계승권 다툼도 크루거 가문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는 않았다.

게르윈의 이야기에 비에르가 말없이 바라보더니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련 당일 무학관 동력실에서 간단한 점검이 있을 거다. 별일은 없겠지만 도중에 문제가 생긴다면 방벽의 반응이 조금 느려지겠지.”

“…….”

“그때 ‘우연히’ 대련 중이라면 위험하지 않겠나. 사고가 나지 않도록 직원에게 주의해두는 게 좋겠군.”

비에르의 이야기에 게르윈이 삐딱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게 전부인가? 그렇다면 실망인데.”

“……저쪽의 상태를 망가뜨릴 수 있는 물건이 있다. 잘 풀린다면 쓰러질 테고, 아니어도 제대로 싸울 수 없게 될 거다.”

“흠. 좋아. 그 정도면 쓸 만하겠군.”

지난번에는 일 처리가 조금 허술했지만 바르무트만큼 철두철미한 곳이 없다. 저렇게 확언을 할 정도라면 이번에야말로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으리라.

“나가봐.”

“……건투를 빌지.”

쿠웅─

문이 거세게 닫혔고, 그 소리를 들은 게르윈이 피식 웃었다.

‘주제도 모르는 놈…….’

최근 들어 입지를 넓혔다고 조금 기고만장한 듯하지만 결국 목줄을 쥐고 있는 것은 이쪽이다.

굳어졌던 비에르의 얼굴을 떠올린 게르윈은 자신의 책상 위에 장식되어 있는 아공간 포켓을 바라보았다.

‘지금이라면 그 녀석도 간단히 이길 수 있겠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나쁠 것도 없다. 그렇게 생각한 게르윈은 아공간 포켓을 열어 자신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스아아─

순식간에 방안을 가득 채우는 검은 안개. 전신을 충만하게 채우는 마력에 게르윈의 두 눈이 검은빛으로 반짝였다.

* * *

에리카와 루이제가 곁눈질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을 때. 검사를 끝낸 이세훈이 손을 빼냈다.

“이 정도면 됐어.”

“턱 아파 죽겠네…… 그래서 이걸로 끝이야?”

루이제의 물음에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료 하나만 더 준비하면 돼. 둘 다 잠깐만 나가 있어.”

“응.”

“그런 건 미리미리 좀 준비하지…….”

고개를 끄덕인 에리카가 먼저 나갔고 그 뒤로 루이제가 투덜거리며 따라 나갔다.

그에 이세훈은 루이제의 등을 미는 척 자연스럽게 인연을 추출해냈다.

[대상 ‘루이제 발렌트’에게서 인연을 추출해냅니다.]

[제작자 ‘이세훈’과의 인연은 Lv.1입니다.]

우우웅─

손을 타고 스며드는 인연. 그 양을 확인한 이세훈은 살짝 의외인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많네.’

목을 좀먹던 마력침식도 알려주고 언령마법도 가르쳐줬으니 어느 정도 심상이 쌓였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 이상으로 좋게 봐줬던 모양이다.

“아 밀지 마.”

“그럼 빨리 나가.”

툴툴거리는 루이제까지 병실 밖으로 내보낸 이세훈은 문을 닫기 전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싸우지 말고 얌전히 있어라.”

“…….”

“…….”

그동안 칼같이 대답하던 에리카가 입을 다물었고 루이제 역시 슬쩍 시선을 피한다. 벌써 원수라도 된 것 같은 두 사람의 모습에 이세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냥 치고받고 싸워.”

어중간하게 신경전 하느니 그냥 싸워서 결판내는 게 낫다. 문을 닫은 이세훈은 밖에서 들리는 소리를 무시하고 천천히 숨을 골랐다.

‘루이제의 인연석이라…….’

회귀 전에 인연레벨을 Lv.5까지 올린 사람 중 한 명인만큼 간단하게 발현해낼 수 있었지만 이세훈은 처음부터 신중히 쌓아 올렸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는 강한 의지. 자신의 감정을 속이지 않고 타인에게도 강하게 호소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감정적이고 다혈질에 싸가지 없다고 말하지만, 이세훈은 그냥 멍청하다고 생각했었다.

자신이 진심을 다한다면 상대도 거기에 응답해 주리라는 막연한 믿음. 그 멍청함이야말로 루이제 발렌트라는 인간의 근간이었다.

‘폭견은 그걸 부정하게 됐지만.’

그런 바보 같은 믿음을 간직하고 있는가 없는가.

그것이 폭견과 루이제의 차이였으며 동시에 지금 만들어내는 인연석의 차이였다.

우웅!

투명한 풍선에 물을 채워 넣은 것 같은 형태.

손에서 느껴지는 촉감도 고무에 가까웠으며 약간의 흔들림에도 출렁거리는 것이 광석보다는 슬라임에 가까워 보였다.

그 물렁물렁한 느낌의 인연석에 이세훈이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건…… 너무 다른데?’

본래 폭견의 인연석은 먹물을 풀어둔 것 같은 시커먼 색에 표면에 닿는 즉시 가시가 솟아나 마력을 침식하려 들던 무시무시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루이제의 인연석은 질감을 제외하면 모두 정반대였는데 그 모습에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면 효과도 크게 달라졌을지도.’

생각보다 장비를 만드는 과정이 달라지겠다 싶어진 이세훈은 바로 인연석의 정보를 확인했다.

[인연 - 염수석染水石]

[등급 : 고급] [품질 : 최상]

물과 같이 투명한 광석.

광석에 부여된 마력의 특성을 반영하여 성질을 특화시킵니다.

*함께 사용된 재료의 특성을 반영해서 특화됩니다.

‘특화된다는 건 똑같은데 방식에 차이가 생겼구만.’

회귀 전에는 ‘장악’해서 특화된다고 적혀있었는데 지금은 ‘반영’해서 특화된다고 적혀 있었다.

그 차이를 확실히 보기 위해 이세훈은 조심스레 염수석을 집어 들었다.

꿀렁─

‘물렁하구만. 이러면 내구도는…….’

염수석을 이리저리 만지며 살펴보던 이세훈은 살짝 힘을 줘서 양쪽으로 잡아당겼다.

투웅─

가볍게 튕기며 두 덩어리로 나뉘는 염수석. 품질에 변화도 없었고 다시 가져다 대니 언제 분리되었냐는 듯 자연스럽게 합쳐졌다.

‘강도는 약해졌지만 복원력은 더 좋아졌네.’

염수석의 성질을 모두 확인한 이세훈은 이어서 자신의 마력을 불어넣었다.

스스스─

마력이 스며들어 혼탁한 색으로 물들어가는 염수석. 그리고 안쪽이 완전히 물들었을 때쯤. 작은 떨림과 함께 변화가 일어났다.

우웅─

마구 뒤엉켜 있던 색들이 밝은 순서대로 정리된다. 그 모습을 본 이세훈은 인연석의 효과가 어떻게 달려졌는지 확실하게 이해했다.

‘좀 더 협조적으로 변한 거구만.’

회귀 전에는 다른 재료를 자신에게 맞췄다면 지금은 자신을 다른 재료에 맞춰줬다.

간단히 말하자면 회귀 전은 이기적이었고 지금은 관대해졌다고 보면 되리라.

‘흐음…… 괜찮은데?’

이런 효과라면 기존에 생각해둔 것보다 더 좋은 무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구상해둔 무구의 도면을 즉각 수정한 이세훈은 염수석에 불어넣은 마력을 회수했다.

후웅─

처음 만들어졌을 때처럼 투명한 색으로 돌아온 염수석.

재료에 변화가 생기지 않은 것을 확인한 이세훈은 밖으로 내보낸 두 사람을 안으로 불렀다.

“…….”

“…….”

이제는 서로 노려보지도 않는 에리카와 루이제.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몰라도 그 짧은 시간에 사이가 더 나빠진 것처럼 보였는데 이세훈은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싸울 수도 있지.’

자신도 삼견과 미친 듯이 싸웠지만 결국 나중에는 협력해서 싸우지 않았던가. 사이가 좋든 나쁘든 협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다 하게 되어 있는 법이다.

“이제 시작할 테니까 에리카 너는 거기서 보고 있어. 루이제 너는 여기 와서 앉고.”

“어? 나?”

“그래. 빨리 와.”

루이제를 의자에 앉힌 이세훈은 두 손을 모으게 한 다음 그 위에 염수석을 올려놓았다.

“거기다 색이 더 이상 안 변할 때까지 마력을 집어넣어. 정제할 필요는 없으니까 부담가지지 말고.”

“아, 알았어.”

“긴장할 필요 없어. 지문등록 같은 느낌이니까.”

고개를 끄덕인 루이제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마력을 염수석 내부로 흘려보냈다.

스스스─

천천히 희뿌연 색으로 물들어가는 염수석.

지저분할 정도로 여러 색이 뒤섞여 있던 이세훈과는 정반대였는데 아무래도 본인의 인연석인 만큼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였다.

“좋아. 그대로 계속하고 있어.”

루이제가 염수석에 마력을 불어넣는 사이 이세훈은 맞은편에 앉아 책상에 올려둔 투영합금을 붙잡았다.

‘폭견 때랑 비교하면 이빨도 손상이 거의 없고 마력회로도 멀쩡해.’

회귀 전에는 상태가 좋지 않아 교정에 초점을 뒀었지만 이번에는 상태도 좋고 재료도 받쳐주니 힘을 이끌어 내는 쪽으로 만들어 봐도 괜찮으리라.

우우웅─

투영합금에 마력이 스며들자 중심부의 불꽃이 녹아내리며 막 제련을 끝낸 쇳물처럼 형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정사각형의 형태로 쭉 펼쳐지는 투영합금. 크기가 커질수록 그 두께가 점점 얇아졌는데 그 모습을 옆에서 바라본 에리카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저만큼 얇게 펼쳐냈는데도 두께가 일정해.’

투영합금은 사용자의 무의식이 반영되는 재료인 만큼 아주 사소한 잡념에도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때문에 정밀한 작업을 시도할 경우 한시도 집중력이 떨어지면 안 됐는데 이세훈은 저 얇은 철판을 만들어낼 때까지 계속해서 유지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저걸 어떻게 가공할 생각이지……?’

다른 금속은 몰라도 투영합금은 재가공을 시도할 경우 내구도가 급격히 떨어지기에 첫 가공에 완벽히 만들어야 한다.

그렇기에 대부분 바로 무구의 형태로 만들어내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세훈은 재가공이 필요해 보이는 철판의 형태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모르겠어.’

평범하지 않은 시도에 에리카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 철판의 확장이 멈춤과 동시에 변화가 일어났다.

드드득─

철판 전체에 세밀하게 나타난 마력회로.

한눈에 담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게 얽힌 구조에 에리카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렇게 복잡한 마력회로를 완벽하게 인지한다고……?’

알고 있던 지식을 하나씩 연상해가며 떠올리는 것과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히 ‘인지’하고 있는 것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비유하자면 퍼즐 조각을 흩뿌려놓고 하나씩 찾아가며 맞추는 것과 잡히는 대로 망설임 없이 바로 맞춰내는 것.

대장장이로서의 실력보다는 그야말로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만 가능한 기교인 것이다.

‘……평가를 다시 수정해야 할지도.’

예상을 뛰어넘는 모습에 에리카의 눈동자가 깊어지고 있을 때. 마력회로가 완전히 새겨진 것을 확인한 이세훈이 입을 열었다.

“루이제. 끝났어?”

“어? 아, 응. 된 거 같네.”

완전히 은색으로 물든 염수석. 그 모습을 확인한 이세훈이 루이제의 손 아래로 철판을 가져다 댔다.

“여기 위에 조심히 내려놔.”

“알았어.”

꿀렁─

루이제가 손을 벌려 철판에 조심스레 염수석을 내려놓자 기다렸다는 마력회로의 안쪽을 파고들며 채우기 시작했다.

“오…….”

“…….”

살아 있는 듯한 염수석의 움직임에 두 사람이 신기하게 바라보았고 그사이 이세훈은 입안에 마력을 굴리며 언령부여를 사용했다.

“<마력증폭>”

치이익─

염수석이 채운 마력회로 위로 새겨지는 언령마법.

납땜을 하듯 이세훈은 계속해서 각 마력회로에 적합한 언령을 부여했다.

“<술식보정>, <음성증폭>, <통증완화>…….”

이세훈이 새롭게 습득한 스킬 ‘언령 : 부여’의 장점은 정교한 술식을 요구하는 인챈트와 다르게 원하는 효과를 간단하게 부여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단, 그만큼 효과가 약하고 지속성이 떨어지는 등 영구적으로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했는데 루이제의 인연석인 ‘염수석’을 사용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스스스─

자신에게 부여된 특성을 반영해내는 염수석의 효과. 그것이 효과를 강화시키고 지속성을 높여주면서 단점을 보완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철판에 73가지의 언령마법을 부여한 뒤. 이세훈은 바싹 마른 입술을 핥으며 전체적으로 훑어보았다.

우우웅─

가지각색의 색이 절묘하게 맞물린 채 완성된 철판.

무구보다는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그 형태에 루이제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예쁘네.”

부여된 언령마다 염수석의 색이 달라지면서 만들어진 현상.

회귀 전 폭견의 인연석이었다면 볼 수 없었을 그 광경에 이세훈도 슬쩍 웃었다.

“그러게.”

이걸로 무구를 완성하기 위한 밑 준비는 모두 끝났다.

철판을 바라본 이세훈은 자신이 나누어 둔 구획을 따라서 천천히 조립을 시작했다.

끼리릭── 키잉!

설계도가 그려진 종이를 접듯 철판이 스스로 구부러지고 꺾이며 서로 맞물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공정이 완료되어 마지막 파츠가 결합된 순간.

찰칵─

루이제만을 위한 무구가 완성되었다.

[무구 ‘바르그’가 완성되었습니다!]

[훌륭한 대장장이란 상식을 뛰어넘은 무구를 만들어내는 법!

재료가 지닌 잠재력을 완전히 끌어올려 새로운 형태의 무구를 만들어낸 대장장이의 상상력은 일류를 넘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판정 결과 ‘바르그’의 등급은 ‘희귀’입니다]

“후우…….”

눈앞의 결산창을 본 이세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용한 재료가 워낙 빈약해서 등급이 떨어지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희귀까지는 뽑아낸 것이다.

‘폭견의 무기는 특히나 돈을 많이 먹었으니까.’

회귀 전에 시행착오 과정에서 날려 먹은 물건들을 돈으로 환산하면 아마 작은 도시 하나는 살 수 있었으리라.

‘보자. 효과는…….’

[바르그Vargr]

[등급 : 희귀] [품질 : 상]

인간 ‘루이제 발렌트’를 위해서 만들어진 특수한 무구.

세밀하게 새겨진 언령마법과 마력회로는 사용자의 무한한 가능성을 이끌어주는 무구로 변했습니다. 마력에 담긴 의지를 강화하여 보다 강력한 언령을 내뱉을 수 있게 됩니다.

*무구에 부여된 73가지의 언령이 상황에 따라 복합적으로 적용됩니다.

*스킬 ‘변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흠. 적당히 나왔구만.’

재료만 조금 받쳐줬으면 턱걸이로 영웅 등급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이세훈이 그럭저럭 만족스러워하고 있을 때.

“……그게 내 무구라고?”

완성된 무구를 본 루이제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봐도 무구라고 볼 수 없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으음…… 한번 써봐도 돼?”

반쯤 의심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는 루이제. 그 반응에 이세훈이 씩 웃으며 바르그를 건네주었다.

“상관없는데 최대한 약한 마법으로 써라.”

“왜?”

“조절이 안 될 테니까.”

호언장담을 하는 이세훈의 모습에 루이제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손에 들린 무구, 바르그를 바라보았다.

‘……약한 바람 정도면 괜찮겠지?’

* * *

“하아…….”

병동의 복도를 걷던 안정완 교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얌전히 있는다 싶더니 그런 짓을 하다니…….”

바벨을 떠들썩하게 만든 생도가 자신의 환자라니. 어젯밤 갑자기 쏟아진 전화를 떠올린 안정완은 골이 지끈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세훈 그 친구 그렇게 안 봤는데…… 쯧.’

루이제와 어울리며 이상한 훈련을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안정완 교수는 두 사람에게 굳이 간섭하지 않았다.

그리 위험한 훈련 같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루이제가 이전보다 활기차게 변하며 무리해서 재활 실험을 하려는 낌새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마 마력결상을 교정할 수 있다느니 그런 헛소리를 하고 있었을 줄이야.’

단순히 어울리는 거라면 모를까 건강에 문제가 생길 일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혹시라도 탈이 났을까 싶어 안정완 교수가 걸음을 더욱 빨리하며 루이제의 병실 앞에 도착한 순간.

콰아아아앙───!!!

병실 안쪽에서 들리는 어마어마한 폭음. 그에 안정완 교수가 깜짝 놀라 문을 열었고.

“……미친.”

태풍이라도 휩쓸고 간 듯한 병실의 중앙에서 루이제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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