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45화
루이제의 공개도전장이 인기게시글 1위로 올라간 뒤. 하루도 지나지 않아 타워 전체가 뒤집혔다.
[익명 24] : 루이제 발렌트가 누구임???
ㄴ[익명 31] : 선배한테 물어보니까 반년 전에 게르윈 크루거랑 대련해서 졌던 사람이라는데.
ㄴ[익명 35] : 원소학부 2학년 학부 수석이던 사람임. 근데 그때 대련에서 크게 다쳐서 휴학 중이었다함.
ㄴ익명[24] : 근데 다시 도전한다고? 대단하네……?
[익명 25] : 마력결상을 극복ㅋㅋㅋ 무슨 개소리 적어둔 걸 인기게시글에 올리네.
ㄴ[익명 26] : ㄹㅇ 관리 개판이네. 본인이 적었을 리는 없고 사칭 아니냐?
ㄴ[익명 28] : 밑에 생도증 인증 있잖아. 진짜임
ㄴ[익명 43] : 진짜 치료된 거면 기사감인데…….
25번째 아들이라 해도 완등자인 UD그룹의 오너일가이자 사령학부의 3학년 학부 수석. 그리고 상아탑의 특기생 중 한 명.
각 학년의 3명씩밖에 없는 학과 수석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어떤 의미에서는 더 높은 인지도와 영향력을 지닌 생도가 바로 게르윈 크루거였다.
[익명 26] : 애는 나중에 영웅으로 활동하기 싫은갑다 ㅋㅋ
ㄴ[익명 31] : ㄹㅇ ㅋㅋㅋㅋㅋ
ㄴ[익명 33] : 퇴학하기 전에 그냥 확 지른 거 아님?
그런데 그런 인물에게 이렇게 도전장을 던지다니.
보고도 믿기지 않는 상황에 생도들은 자연스럽게 루이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됐고 반년 전의 대련에 대해서도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주일 뒤의 대련을 두고 바벨 전체가 떠들썩해졌고.
“야이 미친새끼야!!!”
화제의 주인공이 이세훈의 멱살을 붙잡고 흔들었다.
“별거 아니라며! 신경 쓸 필요 없다며!!!”
“별거 아니지. 살인예고를 한 것도 아니잖아.”
“그걸 말이라고 하냐?!”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이야기하는 이세훈의 모습에 루이제는 속이 뒤집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트라우마 극복이라길래 목의 상처와 관련된 일인 줄 알았더니 멋대로 도전장을 보내다니. 그 갑작스러운 상황에 루이제는 당혹스러움을 넘어서 의심마저 생겨났다.
‘이 새끼 이거 처음부터 이걸 노린 거 아냐?’
아무리 자신이 언령마법을 쓸 수 있게 됐다고 해도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 거기다 지난 반년 동안 재활에만 힘쓰느라 모든 기량이 떨어진 상태였다.
그런데 반년 동안 더 성장했을 게르윈 그 자식과 붙으라니? 아무리 봐도 자신을 처리하려는 속셈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루이제가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이세훈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진정해라. 설마 아무런 생각 없이 이런 짓을 했겠냐?”
“……하아.”
한숨을 푹 내쉰 루이제는 구겨진 이세훈의 옷깃을 팍팍 펴주고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래. 당연히 무슨 생각이 있었겠지. 어련하시겠어…….”
스케일이 엄청나서 당황하긴 했지만 어찌 보면 언령마법의 기초를 가르칠 때도 이러지 않았던가.
반쯤 체념한 루이제는 여유로워 보이는 이세훈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무슨 생각이 있는데?”
“앞에도 말했지만 언령마법은 정확한 계산보다는 자신의 의지가 중요해. 본능적인 마법이라 그만큼 무의식의 영향이 크고. 자, 이게 뭘 뜻할까?”
“……사용자의 상태에 민감하다?”
“정확해.”
언령마법으로 불꽃을 만들어낼 때. 불을 좋아하는 마법사라면 더욱 강력하고 다채로운 불꽃을 만들어내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반대로 불꽃에 트라우마를 가진 마법사라면 제어가 힘든 것은 물론이며 아예 마법이 발현되지 않을 수도 있다.
무의식중에 불꽃을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네가 인정할지 모르겠지만, 너는 반년 전 사건 때문에 마법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어. 어제 성공하고도 남았을 구형마법이 반만 성공한 이유도 그것 때문일 거야.”
“……그럴 수도 있겠지.”
“다행히 마법을 쓰고 싶은 갈망이 더 크긴 하지만 지금 이대로는 제약이 너무 심해. 간단히 비유하자면…… 원래 네 발로 달릴 걸 두 발로 달리고 있는 느낌?”
“그 비유 참…….”
“그만큼 네 재능이 진짜란 거지.”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악몽은 언령마법으로 극복했지만, 그때 겪었던 정서적인 충격과 심리적 불안감은 단숨에 해소되지 않는다.
상처가 치료되어도 흉터가 남듯이 루이제의 무의식에도 아직 그 잔재가 뿌리 깊이 남아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대로 놔두면 악용당할 가능성도 있고.’
회귀 전 마력불능이 된 폭견은 그것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여명黎明』이라 불리는 집단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불법적인 인체실험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전신의 마력회로를 개조당하며 ‘목줄’이란 장치가 심어졌는데 그 발동구조가 바로 체내에 침식한 마력을 사용해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것이었다.
‘앞에 마력침식기도 그렇고 어떤 방법으로 다시 수작을 부릴지 몰라. 그러니까 이번에 확실하게 처리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침식된 마력을 뿌리째 뽑는 거지만, 그쪽은 아직 루이제의 상태가 좋지 않아 마력결상이 악화될 위험도 있다.
그러니 지금으로써는 원인이 되는 트라우마를 극복시키는 것이 최선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번 대련이 반드시 필요해. 힘들어도 이해해 줘.”
이세훈의 진지한 이야기에 루이제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네가 그렇다니 해야지 뭐. 뭐든지 한다고 했으니까.”
“알아주니 고맙네.”
“근데 만약에라도 내가 지면 트라우마가 더 심해지는 거 아니야? 그런 중요한 일이면 더 신중하게 했어야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루이제의 모습에 이세훈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시답잖은 소리를 하네.”
“뭐?”
“네가 그딴 놈한테 질 리가 없잖아.”
위르겐의 25번째 아들이든 뭐든, 회귀 전에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애송이에게 당할 만큼 폭견의 재능은 가볍지 않다.
확신을 담은 이세훈의 이야기에 루이제가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
“개오글거려.”
“잔말 말고 준비나 해. 가능하다고 했지 시간이 여유롭다고 한 적은 없으니까.”
“그래그래. 오늘은 뭐하는데? 대련이니까 전투랑 관련된 언령 연습해?”
언제 화냈었냐는 듯 기분 좋게 대답하는 루이제의 모습에 이세훈이 미리 챙겨온 위생 장갑을 꺼내며 대답했다.
“검사.”
“……응?”
의아해하는 루이제의 모습에 이세훈이 장갑을 꾹꾹 잡아당기며 다시금 대답했다.
“구강검사.”
* * *
아스쿠스의 제2병동.
복도를 지나가던 이들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걸음을 멈췄고 그 사이로 흑발의 소녀가 담담하게 걸음을 옮겼다.
주변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 무심한 인물, 소문으로만 접했던 에리카의 모습에 몇몇 이들이 수군거렸다.
“저 사람이 그 에리카 맞지? 우르에 1학년 학과 수석.”
“맞는 거 같은데. 여기는 무슨 일로 왔대. 다친 곳도 없어 보이는데.”
“그 왜. 이세훈인가 보르시파 쪽 1학년 학과 수석 입원해 있잖아. 그 녀석 보러 온 거겠지.”
“허. 그럼 전에 그 소문이…….”
흥미롭다는 듯이 무언가 속삭이는 이들. 에리카의 예민한 감각은 그 대화를 완벽히 잡아냈지만 신경도 쓰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저런 별거 아닌 헛소문에 하나하나 반응할 만큼 한가롭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지금 당장은 이세훈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크게 다치지 않았다지만 제대로 확인해야 해.’
경매장에서 즉흥적으로 선보였던 백광장검의 연마.
유사 검기나 다름없던 예기를 사용해 검날을 세운 그 ‘기예’는 미세한 오차조차 허용하지 않는 섬세한 감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만약 이번 부상으로 그 감각을 잃어버렸다면? 대장장이 업계는 물론 에리카에게도 엄청난 손실이었다.
‘만약 그렇게 됐다면…… 그냥 넘기지 않아.’
자신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식은땀을 삐질거리던 제이크. 그 모습을 떠올리며 에리카의 표정이 점점 차가워져 가고 있을 때.
“야!!!”
방문을 뚫고 울려 퍼지는 고함.
잡담 한 번 들리지 않던 병실의 방음마저 간단히 뚫어버리는 우렁찬 외침에 에리카의 시선이 자연스레 명패를 향했다.
[204호실] [루이제 발렌트]
자신이 찾던 병실이라는 것을 확인한 에리카는 곧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의자에 앉아 있는 은발의 소녀와 그 맞은편에 서 있는 흑발의 청년.
조금 가까이 붙어 있어도 그리 이상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두 사람이 하고 있는 일이었다.
“귀청 떨어지겠다 임마.”
언제 다쳤냐는 듯 눈매를 찌푸리며 오른손으로 루이제의 입안 구석구석을 만지고 있는 이세훈.
“벼태새기.”
그리고 치과에 온 것처럼 입을 벌린 채 수치심과 분노로 두 눈을 파르르 떨고 있는 루이제.
“…….”
보고도 뭘 하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그 광경에 에리카가 입구에서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을 때. 두 사람이 뒤늦게 그 등장을 알아차렸다.
“어? 네가 여기엔 왜 왔어.”
“우왁! 뭐, 뭐야?! 누군데!!”
의아하게 바라보는 이세훈과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이며 기겁하는 루이제.
극과 극인 두 사람의 반응에 에리카가 담담히 용건을 이야기했다.
“마이어스가 급한 일이 생겼다고 해서 나한테 부탁한 물건을 맡겼어.”
“그래? 나한테는 오늘 할 일 없다고…….”
“갑자기 생겼어.”
아무튼 그렇게 됐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에리카. 그 반응에 이세훈은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차리고 쓰게 웃었다.
“그래그래. 그럼 부탁한 물건은?”
“여기.”
에리카의 아공간 포켓에서 나오는 작은 케이스. 그것을 건네받은 이세훈은 곧장 잠금을 풀고 물건을 바라보았다.
투명한 중심부 쪽에 작은 불꽃이 봉인되어 있는 은빛의 금속주괴. 이세훈의 옆에서 그것을 본 루이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그거 투영합금 아냐?”
“맞아.”
입학 첫 주에 자기소개 시간에 사용했었던 특수한 금속.
케이스의 안에서 투영합금을 꺼내든 이세훈은 가볍게 상태를 살펴보았다.
[투영합금]
[등급 : 고급] [품질 : 최상]
마력감응도를 극도로 끌어올린 합금.
제련과 단조, 연마의 과정을 생략하고 부여된 마력에 따라 형태를 변형시킬 수 있습니다.
변형이 완료된 이후 재가공을 시도할 경우 내구도가 급격히 떨어집니다.
*마력을 부여하여 형태를 변형시킬 수 있습니다.
“괜찮은 걸로 보냈네.”
본래 투영합금은 제대로 된 무구를 만드는 데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이 정도 품질이라면 충분히 써먹을 만한 하다.
제이크의 일 처리에 이세훈이 만족스러워하려던 찰나.
“내가 구해온 거야.”
에리카가 단호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래?”
“응. 마이어스가 아니라 내가 구한 거야.”
착각하지 말라는 듯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에리카. 그 모습에 이세훈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음음. 대단하네.”
“…….”
“다음에는 이런 일 있으면 너한테 먼저 부탁해야겠네. 그래도 괜찮지?”
“얼마든지.”
연달아 이야기하니 그제야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에리카. 그 알기 쉬운 반응에 이세훈이 피식 웃고 있을 때.
“야.”
맞은편에 앉아 있던 루이제가 이세훈의 팔을 툭툭 쳤다.
“그래서 이걸로 뭐할 건데. 빨리 설명해 줘.”
“알았어. 뭐 그리 급하다고 재촉을…… 아, 이제 돌아가도 돼. 고생했어.”
“…….”
이세훈의 이야기에 에리카가 투영합금과 두 사람을 빤히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무구 만드는 거야?”
“뭐, 그렇지?”
“그럼 나도 볼래.”
“음? 그건…….”
“뭐라는 거야?”
이세훈보다 먼저 툭 튀어나온 목소리. 눈매를 찌푸린 루이제가 짜증 난다는 듯 에리카를 노려보았다.
“일 끝났으면 나가. 방해하지 말고.”
“…….”
“내 말 안 들려? 내 병실에서 꺼지라고.”
신경질적인 루이제의 이야기에 에리카가 가만히 바라보더니 이내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나도 볼래.”
대화를 나누기는커녕 투명인간처럼 무시해 버리는 에리카. 그 노골적이다 못해 적나라한 대응에 루이제의 눈매가 일그러지며 이가 갈렸다.
빠드득─
눈 깜짝할 사이에 싸늘해진 공기와 두 사람의 감정에 대응하듯 요동치는 마력. 순식간에 험악해진 분위기에 이세훈이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별것도 아닌 걸로 싸우기는…… 궁금하면 보고 가.”
“응.”
“야!”
루이제가 사납게 소리치며 항의했지만 이세훈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다가갔다.
“자자. 시간 아깝다. 빨리 입 벌려.”
“윽…….”
손가락을 까딱이는 이세훈의 모습에 루이제가 항의하듯이 노려보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며 다시금 입을 벌렸다.
새 위생 장갑으로 갈아 낀 이세훈은 다시금 루이제의 입안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안쪽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세세히 살폈다.
“설명을 계속하자면 넌 완드나 스태프 같은 무기랑은 안 맞아. 일반적인 마법보다 발동과정이 많이 짧거든.”
“그게 무슨 상관인데?”
검사를 받느라 말을 못 하는 루이제를 대신해 질문하는 에리카. 그 물음에 이세훈이 담담히 설명했다.
“무기를 제대로 쓰려면 그 안에 정제된 마력을 불어넣어서 신체의 일부분처럼 사용해야 하는데 얘는 입안에서만 마력을 정제하거든.”
“부위의 문제구나.”
“그렇지. 무기를 입으로 물면 정제된 마력을 넣을 순 있겠지만 그러면 애는 마법을 못 쓰거든.”
결국 언령마법을 쓰는 이들은 신체 능력을 보조해 주는 물건만 쓰거나 아니면 그 형태에 맞는 ‘전용무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구강검사가 그런 전용무기를 만들기 위한 과정 중 하나지. 이제 이해됐냐?”
“…….”
전용무기를 만드는 것과 입안을 더듬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연관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루이제는 그러려니 하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성격이 괴팍하긴 해도 이세훈이 거짓말을 하진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 녀석은 좀 내보내지…….’
무심하게 이쪽, 정확히는 자신의 입안을 살피고 있는 이세훈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에리카.
방금처럼 자신에게는 눈길도 안 주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루이제는 묘하게 짜증이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왜 이렇게 마음에 안 들지.’
첫인상부터 좋지 않아서 그런지 그냥 얼굴이 보이기만 해도 묘하게 짜증이 난다.
특히 방금 대화 때문인지 몰라도 묘하게 자기가 이긴 것처럼 기세등등해 보이는 느낌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그 모습에 루이제가 자신도 모르게 이빨을 갈려고 할 때.
“야야. 내 손 있다.”
“아. 미아.”
루이제가 화들짝 놀라며 다시 입을 벌리자 이세훈이 어금니 쪽을 쓰다듬었다.
“웬만하면 맨입으로 이빨 갈지 마. 나중에 차가운 거 먹을 때 이 시린다.”
이세훈의 담담한 조언에 루이제가 콧방귀를 꼈다.
“느그이 가으 서리 하기느.”
“늙은이는 무슨. 이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야.”
“시그러.”
들은 체 만 체하는 루이제의 모습에 이세훈이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게 방금 조언들은 모두 미래의 본인, 폭견이 자신에게 해줬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긴. 늙기 전에는 모르는 거지.’
아이스크림만 가져다주면 얼굴을 찌푸리던 폭견. 그 모습을 떠올린 이세훈이 피식 웃자 루이제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이빨을 꽉 깨물었다.
“윽! 야 너 방금 일부러 깨물었지.”
“모라.”
“모르긴 뭘 몰라. 이걸 확 그냥…….”
“으읍?! 야! 혀 잡아 땡기지 마!”
구강을 검사하는 와중에도 투닥거리는 두 사람. 곁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에리카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익숙해 보여.’
입원 첫날부터 만났다고 해도 이제 일주일 조금 지났을 텐데 마치 몇 년을 알고 지낸 것 같은 친숙함이 느껴진다.
특히 누구를 상대하든 묘한 거리감을 내비치던 이세훈이 저런 친밀감을 보이니 마치 다른 사람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
그 이질적인 광경에 에리카는 처음으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은발의 소녀, 루이제 발렌트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어쩌면 제이크 마이어스나 류은하 학과장보다도 경계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루이제를 향한 에리카의 평가가 바뀌었고.
‘눈깔 더럽게 뜨네 저거.’
두 사람의 사이의 골이 더욱더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