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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44화 (44/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44화

[언령 : 부여] 『C』

사물에 마력을 부여하는데 특화된 언령.

언령에 사용되는 심상과 마력의 양, 사물의 재료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사물과 언령의 상성에 따라 유지시간이 증가합니다.

새로운 스킬을 살피던 이세훈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이걸 벌써 습득할 줄이야…….’

회귀 전에는 입이 부르틀 때까지 언령을 써서 겨우 습득한 스킬이 시범을 위해 딱 한 번 쓴 것만으로 습득되었다.

그 사실에 이세훈은 기쁨보다는 의심스러움을 느꼈다.

‘왜 이렇게 잘되는 거지?’

이전에 마광수한테 배운 호신술들도 그렇고, 오늘 사용한 언령마법도 그렇고 회귀 전에는 잘 써지지도 않던 것들이 능숙하게 펼쳐진다.

그나마 호신술은 회귀 전의 엉망이었던 몸이 멀쩡한 시절로 돌아와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언령마법은 달랐다.

‘이건 순수하게 재능의 문제야.’

마력결상에 걸린 루이제도 사용할 수 있듯이 언령마법은 몸이 젊고 늙음이 관계없다.

필요로 하는 것은 오직 언령마법에 대한 재능뿐. 그리고 이세훈은 창시자인 폭견에게 직접 배웠음에도 제대로 다루기까지 5년이 걸렸던 둔재였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실력이 늘어난다라…….’

보통 때라면 자기가 잘난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이번은 조금 경우가 다르다. 스킬창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이세훈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몸에 무언가 변화가 생긴 건가.’

단순히 젊어진 것이 아닌, 회귀로 인한 변화가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이세훈이 묘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가르쳐줘.”

넋이 나가 있던 루이제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이세훈에게 다가왔다.

“어떻게 하면 돼? 아니, 일단 뭐부터 할까. 이제 네가 가르쳐주는 건 뭐든지 다 할게. 뭐든 말해줘. 빨리!”

두 눈을 반짝이며 얼굴을 들이미는 루이제. 한숨을 푹푹 내쉬며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던 방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는데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무의미하게 느껴졌던 괴팍한 훈련들이 정말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힘이 안 날 리가 없지 않은가.

“진정하고 앉아. 가르쳐줄 테니까.”

“알았어.”

대답과 동시에 재빠르게 책상에 앉는 루이제.

그 빠릿빠릿한 모습에 이세훈이 쓴웃음을 지으며 화이트보드에 방금 사용한 ‘구형’의 술식을 적었다.

“언령마법은 마력과 심상을 얼마나 완벽하게 결합시키느냐가 중요해. 그걸 위해서라면 술식의 구조나 완성도, 효율 같은 건 조금 무시해도 상관없어.”

필요한 것은 불을 보고도 물이라고 할 수 있는 확신.

설령 그것이 기존 마법체계에서 비효율적이라 할지라도 언령마법은 그것을 효율적으로 구사해낼 수 있다.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마법처럼, 마법의 법칙을 무시하는 것이 바로 언령마법이었기 때문이다.

“엄청 괴팍하네. 즉흥적이고.”

“그렇지. 물론 그렇다고 이론이 약해도 되는 건 아니야. 기본적인 바탕이 있어야 다채로운 심상을 품을 수 있으니까.”

고정관념을 가지진 않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하며 다른 마법사들보다도 폭넓은 지식과 자유로운 발상이 필요하다.

한 마디로 재능이 없으면 때려치워야 할 기술이었다.

“중요한 건 심상이 현실로 이뤄질 것이라는 강한 믿음. 자신에 대한 확신과 의지가 가장 중요해.”

“……알았어.”

“직접 해보면 좀 더 이해될 거야. 일단 구형부터 해보자고.”

“좋아.”

대략적인 설명을 모두 들은 루이제는 곧장 이세훈에게 배운 대로 마력을 정제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입안에 마력이 희미하게 일렁이고 루이제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아무리 근래 익숙해졌다고 해도 혀를 튕겨서 술식을 짠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이제는 그런 자신의 미숙함을 의식하기보다는 이세훈이 말한 ‘의지’에 신경을 집중했다.

‘술식이야 조금 어설플 수도 있지……!’

마력을 더 쓰든 연산과정이 길어지든 마법으로 구현만 된다면, 아픔만 느껴지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좋다.

두 눈을 이글거리며 루이제가 자신의 의지. 그리고 머릿속의 심상을 입안에 뭉쳐진 술식에 모조리 때려 박았고.

“<구형>”

투웅─

쏘아진 언령이 구형으로 맺어졌다.

눈동자만 한 작은 크기의 구형. 형태는 갖췄지만 마력을 결집시키지 못해 크기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언령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한 그 모습에 이세훈이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이 녀석도 애송이일 때가 있구나.’

회귀 전에는 매번 이것도 못하냐고 갈구던 모습만 봤는데 이렇게 자신보다 못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묘한 쾌감이 느껴진다.

루이제가 만들어낸 작은 구형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은 이세훈이 조언을 위해 막 입을 열려던 찰나.

“”

이어진 언령이 구형의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우웅─

작게 맥동치며 주변의 마력을 빨아들이는 구형. 그리고 일순간 손톱만 한 크기로 압축되었고.

파앙!

얼굴의 두 배만 한 구형이 충격파와 함께 허공에 펼쳐졌다.

마력이 새어나가고 형태가 조금 찌그러지긴 했지만 ‘마법’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형태. 그 모습에 이세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무슨…….’

그냥 구형을 만들어낸 것만 해도 사나흘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언령을 덧대는 식으로 완성해버리다니?

누군가는 두 번 써서 완성했으니 실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할 수도 있지만, 언령마법은 이쪽이 더 어려웠다.

‘언령 안에 담긴 심상이 조금만 달라도 충돌을 일으키니까.’

회귀 전 이세훈이 반년은 족히 연습해서 익혔던 응용법. 그것을 루이제는 본능적으로 단숨에 펼쳐낸 것이다.

‘재능이 어디 가진 않는 건가…….’

아무래도 언령마법으로 잘난 체하는 것도 그리 길지는 않을 것 같다.

완성된 구형을 바라보던 이세훈은 문득 루이제가 조용한 것을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

멍한 표정으로 자신이 만들어내는 구형을 바라보는 루이제.

그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이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붕대가 감겨 있는 자신의 목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안 아파.”

분명히 마법을 썼는데도,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느껴지는 것은 약간의 어지러움과 무겁게 느껴지는 몸. 술식을 짜내느라 소모된 정신력과 언령에 빨려 나간 마력의 공백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 이런 느낌이었지.’

마법을 쓴다는 것은 본래 이런 것이었다.

반년밖에 안 지났음에도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지는 그 감각에 루이제의 손이 희미하게 떨리더니 이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끄윽…….”

당장에라도 눈물이 흘러나올 것처럼 글썽거리는 두 눈. 하지만 루이제는 펑펑 우는 대신 고개를 젖히고 입술을 꾹 깨물며 참아냈다.

그 필사적인 모습에 이세훈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왜 참아? 그냥 한 바가지 쏟아내지.”

“아직은…… 아니야.”

마법을 쓰는 것은 어디까지나 중간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내 목 이렇게 만든 그 개새끼들…… 그 새끼들 목구멍도 죄다 찢어놓기 전까지는 절대 안 울어.”

눈물을 글썽인 채 이글거리며 빛나는 푸른색 눈. 그 열의를 불태우는 루이제의 모습에 이세훈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 이래야지.’

마법을 쓸 수 있게 됐다고, 그것만으로도 기쁘다며 독기가 빠져 버리면 어쩌나 했지만, 역시 타고난 성격은 어디로 안 가는 모양이다.

루이제가 눈물을 참아내는 동안 이세훈은 다시금 완성된 구형을 바라보았다.

‘그보다 하루 만에 이 정도 완성도란 말이지…….’

이 주 동안 기본기만 다져두고 병동에서 조금씩 실력을 쌓게 할 생각이었지만, 이 정도라면 그냥 만나기 쉽게 퇴원시키는 것이 좋아 보인다.

‘마침 언령부여도 얻었고…… 괜찮겠구만.’

머릿속으로 어느 정도 견적을 뽑아낸 이세훈은 고개를 젖힌 채 코를 훌쩍이는 루이제를 바라보았다.

“이 정도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되겠네.”

“킁…… 다음 단계?”

“그래.”

휴대폰을 꺼내든 이세훈이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트라우마 극복.”

* * *

상아탑에 마련된 모의 훈련장.

그 위로 수많은 인영이 한데 얽혀 발 바쁘게 움직였다.

“으악!”

“걸리적거리지 말고 비켜!”

“젠장……!”

채앵! 카앙!

다급한 표정으로 무기를 휘두르는 일곱 명의 생도들. 무기는 제각각 달랐지만 그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모두가 올해 입학한 1학년이라는 것. 두 번째는 평범하거나 그리 좋지 않은 가정형편의 입학생들이라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터엉!

그들이 상대하고 있는 적들이 검은 뼈로 만들어진 스켈레톤들이라는 것이었다.

‘스켈레톤이 왜 이렇게 강한 거야……!?’

사령술에서 가장 기초적인 언데드인 스켈레톤.

근육을 비롯한 신체기관을 재현하지 않다 보니 한계가 뚜렷하고 보잘것없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 언데드였다.

후웅!

하지만 눈앞의 검은 스켈레톤들은 별도의 힘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힘과 기술만으로 자신들을 압도하고 있다.

고작 스켈레톤 따위에게 밀리고 있다는 사실에 신입생들의 얼굴에 자괴감이 떠올랐고, 연무장 밖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갈색 머리의 청년이 지루한 표정을 지었다.

“쓸 만한 놈은 한 명도 없군…….”

전투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서 부른 건데 기억해둘 만한 녀석이 없다.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 전투에 청년, 게르윈 크루거가 손가락을 튕겼다.

파앙─!

검은 마력이 스켈레톤을 훑고 지나가자 텅 빈 동공에 검은 불꽃이 솟아올랐다.

콰앙! 터엉! 빠악!

“컥!”

“크헥!”

방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해진 스켈레톤들의 공격에 일곱 명의 생도들이 순식간에 연무장 밖으로 떨어졌다.

제대로 된 저항도 못 해보고 나가떨어진 신입생들의 모습에 게르윈이 눈매를 찌푸리며 혀를 찼다.

“쯧. 이래서 신입생들을 가려서 받아야 하는 건데……”

조금 쓸 만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무턱대고 받아들이니 이런 못 써먹을 녀석들도 같이 들어오지 않는가.

스켈레톤들을 아공간 속으로 회수한 게르윈은 바닥에 널브러진 생도들을 바라보았다.

“쓸모없으니까 다 꺼져.”

“예, 예!”

게르윈의 축객령에 끙끙거리던 생도들이 재빠르게 일어서지 못하는 이들을 부축하며 연무장 밖으로 나갔다.

모두 집안이 UD그룹과 연결된 이들인지라 오너일가인 게르윈의 심기를 거슬러봐야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만 낭비했네…….”

조만간 치러질 상아탑의 특기생 선발. 작년에는 별 탈 없이 차지했지만, 올해는 또 어떻게 흘러갈지 몰랐기에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됐다.

‘지금 가장 거슬리는 건…… 레아 클로델인가.’

입학 후 성적이 쭉쭉 떨어져 수석 자리도 지키지 못한 녀석이었지만, 최근 모든 수업을 빼먹고 공방에 틀어박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다른 곳이면 모를까 천재들이 즐비한 바벨에서는 오히려 저런 은거가 가장 위협적이다.

‘가능하면 정리해두고 싶은데…… 이 녀석은 조금 힘들겠군.’

반년 전에 처리했던 원소학부의 떨거지처럼 집안이 보잘것없었다면 간단하게 끝낼 수 있었을 텐데.

‘그때처럼 비에르한테 부탁해 볼까.’

어떤 식으로든 특기생 선발에서 제외시키기만 하면 된다. 게르윈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우웅─

갑작스레 울리는 휴대폰. 발신자에 ‘비에르’라고 적혀있는 것을 본 게르윈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

-게르윈. 타워의 게시판에 도전장이 올라왔다.

“……도전장이라고?”

-일이 귀찮게 됐다. 빨리 확인해 봐라.

조금 다급해 보이는 비에르의 목소리에 게르윈이 곧장 타워를 열어 게시판을 살펴보았다.

1위. 도전장 [485]

인기게시판 1위에 올라가 있는 짤막한 제목. 그것을 본 게르윈은 무언가 불쾌한 기분을 느끼며 게시글을 눌러보았다.

[도전장]

오랜 재활 끝에 마력결상을 극복하고 부족하게나마 다시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복학하기에 앞서 반년 전 신세를 졌던 사령학부의 3학년 학부 수석인 게르윈 크루거 생도에게 대련을 신청하려고 합니다.

시간은 오늘로부터 일주일 뒤 오후 1시. 장소는 무학관.

혹여 부상이 염려되어 참여하실 수 없다면 겸허히 받아들일 테니 부담 갖지 마시고 답장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휴학생 루이제 발렌트 올림-

용건만 간단히 적혀 있는 도전장.

하지만 그 내용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모든 생도가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명확했다.

-중환자였던 나랑 싸우는 게 겁나면 거절해라.

노골적이면서도 유치한, 그리고 거절할 수가 없는 도전장의 내용에 게르윈 크루거의 눈매가 점점 일그러졌고.

“이…… 개…….”

콰득─

애꿎은 휴대폰이 박살 나며 복귀전이 성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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